역대하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솔로몬과 성전 건축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준비하다
성전의 벽과 문은 금으로 입혀졌고, 지성소에는 날개를 펼친 그룹들이 세워졌습니다. 이제 역대하 4장은 그 건물 안팎에 놓일 기구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장에서 가장 많은 설명을 받는 것은 금으로 만든 물건이 아닙니다. 거대한 청동 물통입니다.
본문은 그 크기와 두께, 가장자리의 모양을 설명하고, 그것을 떠받치는 소 조각상 열두 개가 어느 방향을 바라보는지까지 기록합니다. 이어서 씻는 데 쓸 물통 열 개가 등장합니다. 이 많은 물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본문은 단순히 값비싼 기구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기구들의 용도를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은 아무렇게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사와 정결, 계속되는 예배와 섬김이 필요합니다.
성전의 기구 목록은 제단에서 시작된다
솔로몬은 청동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길이는 20큐빗, 너비는 20큐빗, 높이는 10큐빗이었습니다.역대하 4:1 · 두루새김
성전의 가장 귀한 공간은 지성소였지만, 기구를 만드는 이야기는 제단에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위해 성전을 찾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태워 드리는 번제는 청동 제단에서 이루어집니다.
출애굽기 27:1에서 모세에게 명령된 번제단은 길이와 너비가 각각 다섯 큐빗이고 높이가 세 큐빗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만든 제단은 길이와 너비가 모두 네 배이고, 제단 윗면의 면적은 열여섯 배입니다.
청동 제단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제물을 드리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명령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단순히 마음속의 생각이나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관계는 정해진 행동과 공동체의 예배를 통해 표현됩니다.
레위기 1장은 번제를 드리는 절차를 자세히 정합니다. 제물을 가져오고, 잡고, 피를 제단에 뿌리고, 정해진 부분을 씻어 불살라 드리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번제에는 제물 전체를 불살라 드리는 일을 통해 예배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레위기 1:4는 번제가 예배자를 위해 속죄가 되도록 받아들여진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제단의 크기는 달라졌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 그분이 정하신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은 광야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제물을 올려놓는 또 다른 기구가 아닙니다.
물입니다.
열두 마리 소가 떠받치는 바다
그는 청동을 녹여 부어서 ‘바다’라고 부르는 커다란 물통을 만들었습니다. 모양은 둥글고, 한쪽 가장자리에서 맞은편 가장자리까지는 10큐빗이었습니다. 높이는 5큐빗이고, 둘레는 30큐빗이었습니다.역대하 4:2 · 두루새김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 바다는 때때로 혼돈과 위협적인 힘을 상징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시편 74:13–14나 89:9–10처럼 하나님이 바다와 그 세력을 다스리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 때문에 성전의 바다를 하나님이 혼돈을 제압하신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기구로 이해하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역대하 4장은 그런 의미를 직접 부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6절에서 이 바다의 실제 용도를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 일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따라서 바다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상징적 가능성과, 본문이 밝힌 예배에서의 용도는 구분해야 합니다.
높이는 5큐빗이며, 두께는 손바닥 너비만 합니다. 가장자리는 잔의 가장자리처럼 백합꽃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청동을 녹여 이처럼 크고 정교한 구조물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그 아래에 있습니다.
바다는 소 조각상 열두 개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소들은 세 마리씩 북쪽과 서쪽과 남쪽과 동쪽을 바라보았고, 엉덩이는 모두 안쪽을 향했습니다. 그 위에 바다가 얹혀 있었습니다.역대하 4:4 · 두루새김
성경에서 열둘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자주 연결됩니다. 민수기 2장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진영이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 배치되었으며, 각 방향에 세 지파씩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두 배치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바다를 떠받치는 열두 소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떠올리게 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하 4장이 소들을 열두 지파의 상징이라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이 해석은 숫자와 방향의 배열을 민수기의 진영 배치와 함께 읽을 때 가능한 성경 안의 연결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소나 송아지의 형상이 우상숭배와 연결된다는 이유로, 이 조각상들까지 곧바로 우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는 백성이 그것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반면 역대하 4장의 소들은 물을 담는 기구의 일부로 만들어졌습니다.
3절에는 바다의 아래쪽 둘레를 장식하는 더 작은 소 모양 장식들도 등장합니다. 1큐빗마다 열 개씩 두 줄로 놓여 있었으며, 바다를 부어 만들 때 함께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같은 기구를 다루는 열왕기상 7:24는 이 부분을 소가 아니라 박 모양의 장식으로 묘사합니다. 두 기록은 장식의 형태에서 차이를 보이며, 그 차이가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서로 다른 묘사 방식과 관련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바다 전체를 떠받치는 열두 마리 소에 관한 기록은 두 본문에 공통으로 나타납니다(열왕기상 7:25).
바다는 얼마나 많은 물을 담았을까?
5절은 바다에 물을 3,000밧까지 담을 수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7:26에는 같은 바다의 용량이 이천 밧으로 나옵니다.
바다를 가득 채웠을 때의 최대 용량과 평소 사용량을 구분한 것이라는 설명도 가능하지만, 두 본문은 그렇게 구분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확정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수치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설명이 정확한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2절에 나오는 한쪽 가장자리에서 맞은편까지의 거리 10큐빗과 둘레 30큐빗도 현대적인 원주율을 정밀하게 적용한 수치는 아닙니다. 이는 고대의 대략적인 측량 수치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떤 부분을 측정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음 절에서 이 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밝혀집니다.
씻어야 하는 제물과 씻어야 하는 제사장
솔로몬은 씻는 데 쓸 물통 열 개도 만들어 오른쪽에 다섯 개, 왼쪽에 다섯 개를 놓았습니다. 이 물통에서는 번제로 바칠 제물을 씻었고, 큰 물통인 바다는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 데 썼습니다.역대하 4: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제사에서는 제물뿐 아니라 제사를 맡아 드리는 사람에게도 정결과 관련된 규정이 적용되었습니다.
레위기 1:9와 1:13은 번제를 드릴 때 제물의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도록 정합니다. 따라서 물통에서 번제로 바칠 제물을 씻었다는 말은 제물의 준비 과정과 연결됩니다.
한편 출애굽기 30:17–21에서는 제사장들이 만남의 천막에 들어가거나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기 전에 손과 발을 씻도록 명령합니다. 그 규정에는 엄중한 경고가 붙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씻지 않고 거룩한 일을 수행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씻음은 단순히 위생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물의 특정 부분을 씻는 일과 제사장이 씻는 일은 각각 정해진 예배 절차의 일부였습니다. 특히 제사장이 씻는 일은 거룩한 공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그 일에 알맞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물론 물로 씻는 행동 자체가 사람의 모든 죄를 없앤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여러 종류의 정결과 속죄를 구별하며, 각각에 해당하는 절차를 정합니다.
제사를 맡아 드리는 제사장 역시 씻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거룩한 일을 수행하도록 구별된 사람이지만, 그 지위 때문에 정결의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가까이에서 일을 수행하기 때문에 특별한 준비가 요구됩니다.
한편 본문의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 데 썼습니다」라는 표현을 바다 안에 직접 들어가 몸 전체를 담그는 방식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물의 사용 목적을 설명하지만,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물을 길어 사용했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이제 성전의 바깥쪽에서 이루어질 제사와 씻는 일이 준비되었습니다.
본문은 이어서 본당 안의 기구들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곳에서는 제물을 씻거나 불살라 드리는 일이 아니라, 빛을 밝히고 빵을 차려 놓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등불과 빵 — 하나님 앞에서 계속되는 섬김
그는 정해진 방식대로 금 등잔대 열 개를 만들어 본당 안에 놓았습니다. 오른쪽에 다섯 개, 왼쪽에 다섯 개를 놓았습니다.역대하 4:7 · 두루새김
광야 시대의 성막에는 금 등잔대 하나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5:31–40은 그 등잔대를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정합니다.
건물이 훨씬 커졌으므로 더 많은 등불이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열 개라는 숫자의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숫자에 특정한 상징을 부여하기보다, 성막의 예배 기구가 성전의 규모에 맞게 늘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편이 신중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취향대로 아무 등잔대나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정해진 예배의 방식과 규정에 따라 기구를 마련합니다.
솔로몬은 왕입니다. 그는 막대한 자원과 뛰어난 기술자들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이루어질 예배의 목적까지 자기 마음대로 정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27:20–21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순수한 올리브기름을 가져오게 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등불을 관리하도록 명령합니다. 레위기 24:1–4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등불을 계속 관리하도록 합니다.
등불을 밝히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계속 수행해야 하는 예배의 일입니다.
이어서 상들이 등장합니다.
상 열 개도 만들어 본당 안 오른쪽과 왼쪽에 다섯 개씩 놓았습니다. 또 금 대야 100개를 만들었습니다.역대하 4:8 · 두루새김
이 반복된 배열은 성전 내부가 질서 있게 계획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상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쓸 모든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금 제단과 하나님 앞에 빵을 차려 놓는 상들도 만들었습니다.역대하 4:19 · 두루새김
출애굽기 25:30에서 하나님은 자신 앞에 빵을 늘 차려 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레위기 24:5–9은 빵 열두 개를 만들어 두 줄로 차려 놓고, 안식일마다 새롭게 놓는 절차를 설명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음식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 50:12–13에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며, 자신이 황소의 고기를 먹거나 숫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놓인 빵은 그분의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언약의 백성으로 예배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예배 기구와 제물의 일부입니다. 레위기 24:8은 이 빵을 계속 차려 놓는 일을 이스라엘과 관련된 영원한 언약의 표현으로 연결합니다.
등잔대에는 계속 빛을 밝히는 일이 있고, 상에는 계속 빵을 차려 놓는 일이 있습니다. 둘 다 한 번 설치한 뒤 그대로 두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이 반복해서 돌보고 관리해야 하는 기구들입니다. 등불에는 기름이 필요하고, 빵은 정해진 때에 새롭게 차려 놓아야 합니다.
성전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그 안에서 수행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건축이 끝난 다음부터 계속되는 예배의 일이 시작됩니다.
9–10절에서는 제사장들의 뜰과 큰 뜰, 그리고 문짝들이 언급됩니다. 바다가 성전 오른쪽의 남동쪽에 놓였다는 사실도 기록됩니다.
뜰이 있고, 문이 있으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구별됩니다. 이러한 구별은 각 장소에서 수행할 일과 연결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성전의 모든 곳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에게 맡겨진 일과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여하는 예배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성전의 공간 구성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섬김의 질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제 본문은 다시 건축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완성된 기구들의 목록이 이어지면서, 그 기구들을 만든 사람과 장소가 등장합니다.
거룩한 기구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
후람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해 두로에서 요청했던 기술자입니다.
본문은 그가 완성한 청동 기구들을 다시 늘어놓습니다. 기둥과 머리 장식, 그물 장식과 석류 모양 장식, 받침대와 물통, 거대한 바다와 소 조각상 열두 개, 솥과 삽과 갈고리까지 등장합니다.
앞 장에서 기둥의 이름과 장식이 소개되었고, 이번 장 앞부분에서는 바다와 물통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같은 기구들이 다시 등장하는 이유는 그 형태를 새롭게 설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후람이 완성한 작업의 범위를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의 시선이 건물에서 만든 사람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특히 솥과 삽과 갈고리 같은 기구들이 눈에 띕니다. 이것들은 금으로 장식된 지성소의 기구처럼 웅장하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이 실제로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실용적인 도구들입니다.
제단에서 제물을 다루려면 솥과 삽이 필요합니다. 재와 불을 관리하고 여러 작업을 수행할 도구들도 필요합니다.
성전의 거룩한 일은 특별한 예배 절차와 장엄한 장면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불을 관리하고, 제물에 필요한 물건을 옮기고, 사용한 기구를 정리하는 일도 그 일에 포함됩니다.
그런데 역대하 4장은 이 기구들을 만든 장소까지 알려 줍니다.
왕은 요단 평지의 숙곳과 스레다 사이에서 이 기구들을 만들게 했습니다. 흙으로 만든 틀에 녹인 청동을 부어 만들었습니다.역대하 4:17 · 두루새김
기구들은 장차 거룩한 예배를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만드는 작업은 흙과 불과 금속을 다루는 실제적인 제작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청동을 녹여 부어 만들고, 완성된 물건을 옮기는 일에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성전이 거룩하다는 사실은 제작 과정의 현실적인 수고를 없애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배의 목적을 위해 그러한 수고가 사용됩니다.
역대기에서 성전 건축의 주인공은 솔로몬이지만, 솔로몬이 모든 기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기술자 후람이 실제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본문은 그의 수고를 이름 없는 노동으로 지워 버리지 않습니다.
그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늘어놓고, 그가 일을 마쳤다고 기록합니다. 솔로몬은 왕으로서 건축을 명령하고 자원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명령은 실제로 금속을 다루고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의 능력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한 일에는 왕의 결정뿐 아니라 기술자의 지식과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 모든 기구를 아주 많이 만들었습니다. 쓰인 청동은 무게를 헤아리지 않을 만큼 많았습니다.역대하 4:18 · 두루새김
「무게를 헤아리지 않을 만큼 많았습니다」라는 말은 청동의 정확한 무게를 알 수 없다는 기술적인 보고라기보다, 사용된 청동의 양이 매우 많았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본문은 엄청난 양의 청동이 사용되었다고 말한 뒤, 다시 성전 안의 금 기구들로 시선을 돌립니다.
조금 더 깊이
17절에서 원문의 흙에 관한 표현은 정확한 기술적 의미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흙으로 만든 틀에 녹인 청동을 부어 만들었습니다」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주조에 적합한 흙이나 그곳의 지형·토질과 관련된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흙으로 만든 틀이라는 설명을 넘어 구체적인 제작 도구나 작업 방식까지 확정하여 보충할 수는 없습니다. 16절은 그를 후람아비라고 부릅니다. 이름 뒤의 표현이 그의 이름 일부인지, 높여 부르는 말이나 부름말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가 숙련된 청동 작업자였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청동에서 금으로 — 성전 안쪽을 향하는 마지막 기록
이제 본문은 다시 성전 안쪽의 기구들을 늘어놓습니다.
금 제단, 하나님 앞에 빵을 차려 놓는 상들, 등잔대와 등잔들, 꽃 장식과 집게, 심지를 자르는 가위와 대야, 오목한 그릇과 불씨를 담는 그릇이 등장합니다. 앞에서는 청동 제단과 물을 담는 청동 기구들이 중심이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금 기구들이 중심이 됩니다.
여기서 금 제단은 1절의 청동 제단과 다른 기구입니다.
출애굽기 30:1–10에 따르면 금으로 만든 제단은 향을 피우는 일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이 제단은 성소 안에서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 앞에 놓이도록 정해졌습니다. 반면 청동 제단은 제물을 불살라 드리는 번제단입니다.
따라서 역대하 4장이 청동 제단으로 시작해 금 제단을 포함한 내부 기구들로 마무리되는 것은 성전의 서로 다른 예배 공간을 보여 줍니다.
20절에서는 등잔대와 등잔들을 순금으로 만들었다고 하고, 21절에서는 꽃 장식과 등잔과 집게도 아주 순수한 금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22절에는 순금으로 만든 여러 도구들이 이어집니다. 이 표현들은 귀한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금은 그 자체가 예배의 목적이 아닙니다.
등잔대는 불을 밝히기 위한 것이고, 집게와 심지를 자르는 가위는 등불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불씨를 담는 그릇과 대야 같은 기구들도 정해진 예배의 일에 사용됩니다.
등잔대와 거기에 놓을 등잔은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지성소 앞에서 정해진 방식대로 불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역대하 4:20 · 두루새김
귀한 재료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공간의 존귀함을 표현하고, 그 기구를 정해진 방식에 따라 사용하는 것은 예배의 질서를 따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기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일과 분리된다면 그 목적을 잃게 됩니다. 반대로 실용적인 기능만을 생각하고 왜 그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지 잊는다면, 성전의 기구들이 특별히 구별된 이유를 놓치게 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문이다
심지를 자르는 가위와 대야, 오목한 그릇과 불씨를 담는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안쪽 문과 본당으로 들어가는 성전 문도 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역대하 4:22 · 두루새김
문은 공간을 연결하면서도 구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문이 있다는 것은 그 너머에 다른 공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나 아무 때나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전에는 서로 다른 예배의 일을 위한 장소들이 있습니다. 청동 제단과 물통들이 있는 곳, 등잔대와 상이 놓인 본당,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모실 지성소가 구별되어 있습니다. 이 공간들 사이에는 문과 휘장, 뜰과 출입구가 놓입니다.
다만 이 문에 별도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본문이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실제 건축에 필요한 문이며, 금으로 마감된 성전의 일부입니다.
성전의 여러 공간에는 각각 수행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을 드나드는 일에도 정해진 질서가 있습니다.
이 장은 그 질서를 위한 공간과 기구의 준비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보면 역대하 4장의 중심에는 화려한 기구 자체보다 그 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섬김이 놓여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지만, 그곳에서의 예배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은 씻어야 하고, 제물을 준비해야 하며, 등불을 관리하고, 빵을 차려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계속되는 책임이 있습니다.
본문은 반복 자체를 거룩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정하신 예배를 실제로 수행하기 때문에 그 일이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청동 제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다에는 물을 담을 수 있고, 물통들도 제자리에 놓였습니다. 본당에는 금 등잔대와 상들이 있으며, 제사에 필요한 크고 작은 도구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금으로 된 문들이 지성소와 본당의 입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본문은 제사장들이 등불을 밝히거나 제물을 드리는 장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모든 기구가 준비되었지만, 그 기구들이 사용될 성전을 하나님께 드리는 본격적인 일은 다음 장에서 이어집니다.
이제 누군가 그 기구들을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서 섬겨야 합니다.
금으로 된 등잔대는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등불은 하나님 앞에서 밝히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