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솔로몬과 성전 건축

심판이 멈춘 자리의 성전

솔로몬은 마침내 성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준비한 목재와 금, 수많은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이제 하나의 건물을 세우기 위해 움직입니다.

그런데 역대하 3장은 성전의 웅장한 규모나 화려한 장식부터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먼저 성전이 세워질 장소를 알려 줍니다.

이 장소에는 다윗의 실패와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그 심판이 멈춘 사건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성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그 이야기를 기억해야 합니다.

역대하 3장은 이처럼 성전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입구로 나옵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성전이 무엇을 보여 주고, 동시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73장 본문 읽기 →

모리아산 — 다윗의 죄와 하나님의 자비가 만난 자리

역대하 3:1–2 본문 →

성전이 세워진 곳은 모리아산입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에서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여호와야훼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었습니다. 다윗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성전 지을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역대하 3:1 · 두루새김

역대기의 이야기에서 이 장소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본문은 역대상 21장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통치 말기에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역대상 21:1은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다윗을 부추겼다고 말하고, 21:7–8은 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으며 다윗 자신도 죄를 인정했다고 기록합니다.

인구조사 자체가 언제나 죄였던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1장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인구를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역대상 21장은 다윗의 행동을 하나님께 죄를 범한 사건으로 묘사합니다. 본문은 그가 정확히 어떤 동기로 인구조사를 실시했는지는 모두 설명하지 않으므로, 군사력에 대한 교만이나 자기 자신을 의지한 마음만을 확실한 원인으로 제시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재앙이 닥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예루살렘을 멸하려는 천사가 칼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21:15에서 하나님은 그 재앙을 멈추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 곁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역대상 21:26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번제단 위로 불을 내려 응답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어 21:27에서 하나님이 천사에게 명령하시자 천사는 칼을 거두었습니다. 이 사건을 경험한 다윗은 역대상 22:1에서 그곳이 하나님의 집과 이스라엘의 번제단이 있을 자리라고 선언합니다.

성전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위대한 민족인지를 증명하는 장소로 처음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왕조차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자비 없이는 백성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갈 집은,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했던 자리에 세워집니다.

역대하 6장에서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죄를 지은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 기도할 때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특히 6:24–25와 6:36–39에서 그는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패배하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까지 생각합니다. 성전이 세워진 장소 자체에 이미 심판과 자비의 기억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훗날 그곳을 향해 드려질 용서의 기도와 깊이 연결됩니다.

모리아라는 이름이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

「모리아」라는 이름은 창세기 22:2에도 등장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땅으로 가서, 자신이 알려 주실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칼을 대려는 순간 하나님이 그를 멈추게 하시고, 대신 숫양을 번제로 드리게 하십니다(창세기 22:11–13).

창세기 22장은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을 말하고, 역대하 3장은 「모리아산」이라고 말합니다. 두 본문을 연결하여 성전 터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장소와 같은 곳으로 보는 오래된 성경 해석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자체는 그 산이 훗날 예루살렘 성전의 자리가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사건이 정확히 같은 장소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본문이 직접 확정하는 사실과 구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이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하시고 다른 제물을 마련하십니다. 다윗의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을 멈추시고 제단에서 드린 제물에 응답하십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모두 하나님 앞에서 생명과 심판, 제물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시작한 때는 왕이 된 지 4년째 되는 해, 둘째 달 둘째 날이었습니다.역대하 3:2 · 두루새김

열왕기상 6:1도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년째 되는 해, 둘째 달에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역대하는 그달의 둘째 날이라는 날짜까지 제시합니다. 성전 건축은 막연한 이상이 아닙니다. 특정한 장소와 날짜를 가진 역사 속의 사업입니다.

성전의 치수와 장식 —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안쪽에 있다

역대하 3:3–7 본문 →

본문은 이제 건물 자체를 설명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놓은 기초의 크기는 옛 기준의 큐빗으로 재면 길이 60큐빗, 너비 20큐빗이었습니다.역대하 3:3 · 두루새김

여기서 「옛 기준의 큐빗」이라는 말은 당시 길이를 재던 기준을 설명합니다. 큐빗은 일반적으로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에 근거한 단위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성전은 길게 이어지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쪽에는 현관이 있고, 그 안으로 본당이 이어지며, 가장 깊은 곳에는 지성소가 놓입니다. 성전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특별하게 구별되는 공간을 가집니다. 그리고 가장 안쪽의 지성소가 이 건물의 중심적인 의미를 결정합니다.

성전 앞에 있는 현관은 성전의 너비에 맞추어 길이가 20큐빗이었고, 높이는 120큐빗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현관 안쪽을 순금으로 입혔습니다.역대하 3:4 · 두루새김

하지만 열왕기상 6:2는 성전 본체의 높이를 30큐빗이라고 기록합니다. 두 수치를 그대로 적용하면 현관이 본체보다 네 배나 높은 구조가 됩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120이라는 수치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칠십인역의 일부 사본과 고대 시리아어 전승에는 20으로 읽히는 증거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관이 본래 120큐빗 높이로 설계되었는지,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숫자에 차이가 생겼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성전의 큰 방인 본당은 사이프러스나무 목재로 덮고 그 위에 좋은 금을 입혔습니다. 거기에 종려나무 무늬와 사슬 장식을 더했습니다.역대하 3:5 · 두루새김

고대 근동에서 종려나무는 생명력과 풍요를 떠올리게 하는 식물이었습니다. 열왕기상 6:29는 성전 벽에 그룹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을 새겼다고 기록합니다. 성전 장식에 식물의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생명의 공간이며,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장소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역대하 3장은 종려나무를 에덴의 상징이라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6절에는 보석과 바르와임에서 난 금이 등장합니다. 「바르와임」은 금이 나는 곳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이해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성전의 천장을 받치는 들보와 문지방, 벽과 문짝에 금을 입히고, 벽에는 그룹의 모습을 새겼습니다.역대하 3:7 · 두루새김

겉에서 잘 보이는 부분뿐 아니라 건물의 구조를 이루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꾸밉니다. 성전이 단순히 왕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건물이라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바깥쪽의 장식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곧바로 우리를 성전의 가장 깊은 곳으로 이끕니다.

그곳은 일반 백성이 볼 수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공간에 가장 많은 금이 사용됩니다.

지성소 —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가까이 갈 수 없는 공간

역대하 3:8–9 본문 →

솔로몬은 성전 안에 가장 거룩한 방인 지성소를 만들었습니다. 그 방은 성전의 너비에 맞추어 길이가 20큐빗이었고, 너비도 20큐빗이었습니다. 그 안을 좋은 금 600달란트로 입혔습니다.역대하 3:8 · 두루새김

열왕기상 6:20은 그 높이도 20큐빗이라고 기록합니다. 두 기록을 함께 읽으면 지성소는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모두 같은 정육면체의 공간이 됩니다. 이처럼 반듯한 비례는 성전 안에서도 가장 특별하게 구별된 공간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지성소는 이름 그대로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출애굽기 26:33–34에서 성막의 휘장 안쪽에는 증거궤와 속죄소가 놓이도록 정해졌습니다. 레위기 16:2는 아론이 언제나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명령합니다. 16장 전체는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지성소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달란트는 무게를 재는 큰 단위입니다. 본문은 막대한 양의 금을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9절은 못에 사용된 금의 무게까지 기록하고, 위층 방들에도 금을 입혔다고 덧붙입니다.

성전의 가장 귀한 장식은 사람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가장 거룩하게 구별된 곳에 놓였습니다.

금은 실제로 귀하고 아름다운 재료이며, 성전의 귀함을 표현하는 데 알맞았습니다. 그러나 지성소의 위치와 역할을 함께 생각하면, 성전의 화려함을 단순히 인간의 감탄을 얻기 위한 장치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공간입니다.

이것은 앞 장에서 솔로몬이 고백했던,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분이라는 사실과도 어울립니다.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도 하나님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성스러운 방식으로 그분 앞에 드릴 공간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지성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금의 양에 있지 않습니다.

그 안에 세워지는 두 조각상에 있습니다.

날개를 펼친 그룹들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자리

역대하 3:10–13 본문 →

솔로몬은 지성소 안에 그룹 조각상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조각상들에 금을 입혔습니다.역대하 3:10 · 두루새김

그룹은 성경에 등장하는 하늘의 존재들입니다. 성경에서 그룹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이 함께 계심에 관련된 존재로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25:18–22에서 하나님은 증거궤 위의 속죄소에 금으로 된 그룹 둘을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그룹들은 날개를 펴서 속죄소를 덮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두 그룹 사이, 속죄소 위에서 모세와 만나 말씀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룹들은 하나님 자신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예배하도록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4:15–16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룹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관련된 존재를 나타내는 형상입니다.

사무엘상 4:4는 하나님을 그룹들 위에 앉으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시편 80:1도 그룹들 위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부릅니다. 따라서 그룹의 형상은 하나님이 왕이시며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 그룹의 한쪽 날개는 길이가 5큐빗이고 벽에 닿습니다. 다른 쪽 날개도 5큐빗이며 맞은편 그룹의 날개에 닿습니다. 다른 그룹도 같은 모습입니다.

지성소의 너비도 20큐빗이므로, 두 그룹의 날개는 지성소의 한쪽 벽에서 다른 쪽 벽까지 펼쳐집니다. 이 모습은 지성소 안의 중요한 공간을 그룹들이 감싸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역대하 3장은 아직 하나님의 궤를 옮겨 놓는 장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 일은 역대하 5:7–8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곳에서는 제사장들이 궤를 지성소로 들여오고, 그룹들이 날개를 펼쳐 궤와 그 운반 막대를 덮고 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3장의 그룹 제작은 앞으로 궤가 놓이게 될 공간을 미리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궤는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특별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궤 자체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렇게 두 그룹의 날개는 모두 합쳐 20큐빗에 걸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룹들은 두 발로 서서 본당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역대하 3:13 · 두루새김

이것은 출애굽기 25:20에서 속죄소 위의 그룹들이 서로 마주하며 속죄소 쪽을 향하도록 한 묘사와 구별됩니다. 역대하의 그룹들은 성전 건물 안에 세워진 커다란 조각상으로, 그 얼굴의 방향도 특별히 기록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공간이 성막 시대보다 훨씬 큰 건물 안에 마련되었음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가장 거룩한 장소에는 금으로 입힌 그룹들이 서 있지만, 그 그룹들이 섬기는 하나님 자신의 모습은 없습니다.

휘장 —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지만 아무렇게나 다가갈 수는 없다

역대하 3:14 본문 →

솔로몬은 푸른색과 자주색과 짙은 붉은색 재료, 고운 아마포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 무늬를 넣었습니다.역대하 3:14 · 두루새김

휘장은 성막 시대부터 지성소를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출애굽기 26:31–33은 푸른색과 자주색과 짙은 붉은색 실, 가늘게 꼰 아마포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을 정교하게 수놓도록 명령합니다. 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휘장도 비슷한 재료와 무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의 규모와 재료는 달라졌습니다. 광야의 이동식 천막이 예루살렘의 튼튼한 건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 거룩한 구별이 필요하다는 원칙은 이어집니다.

휘장은 그 구별을 눈에 보이게 합니다.

휘장 바깥에는 제사장들이 섬기는 공간이 있고, 휘장 안쪽에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앞에서 그룹들이 지성소 안에 서 있었는데, 이제 그 공간을 구별하는 휘장에도 그룹이 나타납니다.

이 사실은 창세기 3:24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신 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도록 그룹들을 두셨습니다. 두 본문에서 그룹들은 모두 특별한 공간과 관련됩니다. 창세기에서는 생명나무로 향하는 길을 지키며,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관련된 장소를 나타내고 구별합니다.

물론 창세기의 그룹과 성전의 그룹이 같은 장면을 되살려 보여 준다고 본문이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연결은 직접적인 인용이나 분명한 설명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반복되는 주제를 통해 연결하여 읽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과 하나님께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은 함께 존재합니다.

금과 보석이 그 공간의 귀함을 보여 준다면, 휘장은 그 귀함 앞에 선 인간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 가운데 계시지만, 그분께 나아가는 방식까지 인간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성전 안쪽에 마련된 거룩한 경계의 의미입니다.

야긴과 보아스 — 성전 앞에 세워진 두 이름

역대하 3:15–17 본문 →

본문은 이제 성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다시 입구로 나옵니다.

솔로몬은 성전 앞에 길이가 35큐빗인 기둥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높이가 5큐빗이었습니다.역대하 3:15 · 두루새김

여기서 35큐빗이라는 수치는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두 기둥을 언급한 다음 길이를 제시하지만, 그 수치가 각 기둥의 길이인지 두 기둥의 길이를 합한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7:15는 기둥 하나의 높이를 18큐빗이라고 기록합니다. 두 기록의 수치가 다르므로, 단순하게 같은 측정 기준을 적용하여 완전히 일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두 기둥을 합하여 기록했을 가능성이나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수치에 차이가 생겼을 가능성 등을 고려할 수 있지만, 어느 하나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16절은 기둥 꼭대기의 장식을 설명합니다. 사슬들이 있고, 그 사슬들에는 석류 모양 장식 100개가 달려 있습니다.

석류는 출애굽기 28:33–34에서 대제사장의 겉옷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요소로도 등장합니다. 열왕기상 7:18–20은 성전 기둥의 머리 장식에도 석류 장식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석류는 씨앗이 많은 열매이므로 생명과 풍요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이 구절이 석류의 뜻을 직접 해설하는 것은 아니므로, 100이라는 숫자나 각각의 석류에 특정한 상징을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성전 앞 오른쪽과 왼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웠습니다. 오른쪽 기둥의 이름은 야긴, 왼쪽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라고 했습니다.역대하 3:17 · 두루새김

보통 건축물의 기둥은 높이와 굵기, 재료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이 기둥들은 각각 고유한 이름을 가집니다.

「야긴」은 히브리어 야킨(⁨יָכִין⁩)으로, 세우다 또는 굳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나온 형태입니다. 「그가 세우실 것이다」 또는 「그가 굳게 하실 것이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흔히 「그에게 힘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다만 이름이 정확히 어떤 말들로 이루어졌는지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으므로 그 의미를 하나의 확정적인 문장으로 고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역대상 17:11–14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뒤를 이을 후손을 세우시고 그의 왕권을 굳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역대상 22:10에서도 솔로몬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을 지을 것이며, 하나님이 그의 왕권을 굳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솔로몬은 그 약속에 따라 성전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흐름에서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은 건물과 왕권을 굳게 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은 본문에 직접 기록된 이름의 의미와 역대기 전체의 흐름을 함께 읽은 해석입니다. 두 기둥의 이름을 역대기가 분명하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선언이라고 설명한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지성소에서 사슬을 만들어」라는 표현은 원문의 이해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히브리어에는 성전 안쪽 방을 가리키는 드비르가 사용되는데, 그것이 제작 장소를 뜻하는지, 안쪽 방의 장식과 관련된 방식을 나타내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지성소와 두 기둥의 장식이 어떤 특별한 상징 체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화려한 건물보다 먼저 있었던 것

역대하 3:1–17 본문 →

성전이 세워진 땅에는 하나님이 심판을 멈추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전 안에는 하나님이 어떤 형상으로도 제한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나타납니다. 성전 앞에는 굳게 세움과 힘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이 서 있습니다. 성전의 의미는 그곳에서 예배받으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달려 있습니다.

솔로몬은 건물 앞에 두 기둥을 세우고 이름을 붙입니다. 오른쪽에는 야긴이 서 있고, 왼쪽에는 보아스가 서 있습니다. 그 뒤에는 금으로 장식된 본당이 있고, 더 깊은 곳에는 휘장으로 구별된 지성소가 있습니다.

이제 성전의 건축은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는 아직 그곳으로 옮겨 오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완성과 하나님께 바치는 일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입니다.

이 장이 끝나는 순간, 독자가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것은 금으로 덮인 지성소가 아닙니다.

성전 앞에 서 있는 두 기둥입니다.

야긴과 보아스. 세움과 힘을 떠올리게 하는 두 이름이, 심판이 멈춘 타작마당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집 앞에 서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