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9–16장 · 예후와 왕조의 교체
왕들은 죄를 떠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열왕기하 13장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는 왕이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합니다. 그 왕의 아들 역시 악한 일을 하지만, 죽어 가는 예언자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예언자는 그 왕에게 승리를 약속하면서도, 그가 충분히 행동하지 않았다고 화를 냅니다.
그리고 예언자가 죽은 뒤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미 죽은 사람을 엘리사의 무덤에 넣었는데, 그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살아나 일어섭니다. 이 장은 죽음과 생명, 심판과 구원, 불순종과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끊임없이 엇갈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역설은 마지막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여러 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왕들이 온전히 회개했기 때문도 아니고, 이스라엘이 강한 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죄를 떠나지 않은 왕, 백성을 외면하지 않은 하나님
왕이 바뀌었지만 죄는 바뀌지 않았다
예후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여호아하스는 사마리아에서 열일곱 해 동안 다스립니다. 그런데 새로운 왕에 대한 평가는 이전 왕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일을 그대로 따르며 버리지 않았습니다.열왕기하 13:2 · 두루새김
예후는 아합 왕조를 무너뜨리고 바알 숭배를 없앴습니다. 하지만 벧엘과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 예배는 유지했습니다(왕하 10:28–29). 왕조는 바뀌었고 바알 숭배의 중심도 무너졌지만, 북이스라엘을 처음부터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예배 방식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면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마련했습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다가 다윗 왕조에 마음을 돌릴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왕상 12:26–33). 그 결과 정치적 독립을 지키려는 선택이 예배의 방식까지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문제는 특정한 악한 왕 한 사람을 없앤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들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잘못된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3절은 이 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말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그 기간 내내 이스라엘을 아람 왕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습니다.열왕기하 13:3 · 두루새김
여기서 여호와야훼의 분노는 막연한 감정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억눌리는 역사적 현실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했지만, 여러 왕조에 걸쳐 그 길을 떠났습니다. 열왕기는 아람에게 억눌리는 일을 그러한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설명합니다.
악한 왕의 간청을 하나님이 들으시다
여호아하스가 여호와야훼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자 여호와야훼께서 그의 말을 들으셨습니다. 아람 왕에게 억눌려 고통받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 13:4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아람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아람에게 당하는 고통도 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이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고통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출 2:23–25). 출애굽기 3:7에서도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백성이 이집트에서 당하는 고통을 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 있고, 열왕기하 13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언약에 불순종한 결과 아람에게 억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행동하시는 이유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분은 고통당하는 백성의 형편을 보시고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방향으로 행동하십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구원자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을 주셔서, 그들은 아람의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전처럼 자기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열왕기하 13:5 · 두루새김
그런데 그 일을 이루는 데 사용된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사사기 3:9과 3:15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자를 세워 주시는 장면에 같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사사기에서는 그 구원자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옷니엘이나 에훗입니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뒤에 아람에게서 성읍들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그를 구원자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의 후계자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영토 회복(왕하 14:25–27)과 연결하거나, 아람을 압박하여 이스라엘의 부담을 덜어 준 외부 세력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3:5는 그 가운데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원자의 정체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구원자의 이름보다 그를 주신 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스라엘은 아람보다 강해져서 스스로 해방되었다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먼저 언급됩니다. 그리고 구원의 결과는 백성의 일상생활이 회복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두루새김은 그 모습을 「예전처럼 자기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라고 옮깁니다. 원문에서는 자기들의 장막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반드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유목 생활을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각자의 거처에서 평상시처럼 안전하게 살아가는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람에게 억눌리는 동안에는 평범한 생활조차 위협받았습니다. 구원은 그 평범한 생활을 다시 가능하게 했습니다.
구원받았지만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6절은 다시 독자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로보암 집안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일을 버리지 않고 계속 따랐습니다. 사마리아에는 아세라 상도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열왕기하 13:6 · 두루새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곧 그들의 삶 전체가 변화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여호아하스가 간절히 도움을 구했다고 말하지만, 그가 금송아지 예배를 없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세라는 가나안 종교와 연결된 여신의 이름이면서, 그 여신을 섬기는 의식에 쓰이는 물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열왕기상 16:33은 아합이 아세라를 만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이 예후가 없애지 않은 아세라 상이 계속 남아 있었다는 뜻인지, 이후 다시 세워진 것인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합 집안을 무너뜨린 뒤에도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짓밟힌 흙먼지처럼 된 군대
7절은 다시 아람에게 억눌리는 일이 얼마나 심했는지 설명합니다.
여호아하스에게 남은 군사는 말을 타고 싸우는 군사 50명과 병거 10대와 걸어서 싸우는 군사 1만 명뿐이었습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 군대를 무너뜨려 짓밟히는 흙먼지처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 13:7 · 두루새김
흙먼지는 발에 밟히고 흩어지며 저항할 힘이 없습니다. 아람의 공격 앞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표현하는 비유입니다. 특히 병거가 열 대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아람과 같은 군사 강국을 상대하는 데 심각한 약점이었을 것입니다.
5절은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을 주셔서 이스라엘이 아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7절은 여호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심하게 억눌렸는지를 돌아보며 설명하는 부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5절의 구원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정확히 언제 완성되었는지는 이 문단에서 자세히 기록하지 않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죽고 사마리아에 묻힙니다. 그의 아들 요아스가 왕위를 잇습니다.
하지만 왕이 바뀌어도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악한 왕이 엘리사 앞에서 울다
왕의 죽음을 기록한 뒤 다시 그의 생애로 돌아가다
10–13절은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의 통치를 요약합니다.
그는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고,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일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본문은 그의 나머지 행적을 언급하고, 그가 죽어 사마리아에 묻혔으며 여로보암이 왕좌를 이어받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14절에서는 다시 살아 있는 요아스가 등장합니다.
13절까지 요아스의 통치 전체를 요약한 뒤, 14절부터 그의 생전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으로 돌아가는 구성입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독자는 먼저 왕의 전체적인 평가를 알고 엘리사와의 만남을 읽게 됩니다.
「아버지, 아버지!」
앞서 엘리사는 병이 들어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그에게 내려와 그의 앞에서 울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와 기병이시여!」열왕기하 13:14 · 두루새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때 엘리사가 외쳤던 말과 같습니다. 엘리사도 자신의 아버지라고 거듭 부르며,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기병이라고 외쳤습니다(왕하 2:12). 그런데 이제 엘리사의 생애가 끝나 가는 순간,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에게 같은 말을 합니다.
스승을 떠나보내던 제자가 어느새 나라가 의지하는 예언자가 되었고, 이제 그 역시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람에게 짓밟혀 병거와 말을 타고 싸우는 군사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실제 군대가 약해진 상황에서 왕은 한 예언자를 나라의 병거와 기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이전에도 아람의 군사 행동에 관한 정보를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주었고(왕하 6:8–12), 도단에서는 아람 군대의 포위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보여 주었습니다(왕하 6:13–17). 특히 열왕기하 6:17에서 엘리사의 종은 산에 가득한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됩니다. 그 사건은 이스라엘의 안전이 눈에 보이는 군사력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요아스는 실제 병거와 말을 타고 싸우는 군사가 부족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마저 잃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왕은 군대의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 울고 있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왕의 눈물을 보고 자신의 위대함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왕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죽어 가는 예언자의 마지막 관심은 자신이 떠난 뒤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있습니다.
왕의 손 위에 놓인 예언자의 손
왜 활과 화살이 등장하는가?
엘리사는 왕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왕이 그것을 가져오자 엘리사는 활 위에 손을 얹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자기 두 손을 왕의 두 손 위에 놓습니다. 왕이 실제로 화살을 쏘지만, 그 행동은 예언자의 말씀에 의해 시작되고 방향이 정해집니다.
이때 활과 화살은 실제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고, 군대는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활을 잡는 일은 나라가 처한 현실과 직접 연결됩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손이 왕의 손 위에 놓이면서 그 무기는 새로운 의미를 얻습니다.
왕의 손에 있는 활이지만, 그 활로 얻게 될 구원은 여호와야훼에게서 온다는 뜻입니다. 그는 왕이 앞으로 경험할 승리의 의미를 보여 주는 상징적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동쪽 창문에서 쏜 화살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동쪽 창문을 여십시오.」 왕이 창문을 열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쏘십시오.」 왕이 화살을 쏘자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승리의 화살입니다. 아람을 이기는 승리의 화살입니다. 왕께서 아벡에서 아람 군대를 쳐서 완전히 무찌르실 것입니다.」열왕기하 13:17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아람에게서 벗어나는 일은 어느 한 왕의 군사적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구원의 근원은 여호와야훼입니다.
왜 세 번 치고 멈춘 것이 문제가 되었을까?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화살들을 집으십시오.」 왕이 화살들을 집자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말했습니다. 「땅을 치십시오.」 왕은 세 번 치고 멈추었습니다.열왕기하 13:18 · 두루새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왕에게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다섯 번이나 여섯 번을 치셨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아람 군대를 쳐서 완전히 무찌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람을 세 번만 치실 것입니다.」열왕기하 13:19 · 두루새김
엘리사는 처음부터 다섯 번이나 여섯 번 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땅을 치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왕이 세 번 치고 멈추자 왜 화를 냈을까요?
왕이 그 행동을 더 이어 갈 수도 있었지만, 세 번에서 끝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왕이 왜 세 번에서 멈췄는지, 그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아람 군대를 쳐서 완전히 무찌를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세 번 치고 멈춘 뒤에는 세 번만 아람을 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왕이 그 앞에서 보여 준 반응은 이어지는 예언의 내용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세 번과 다섯 번, 여섯 번이라는 숫자를 어떤 신비한 공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엘리사의 행동은 예언의 뜻을 보여 주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그 행동을 통해 왕이 전쟁에서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가 선포됩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뒤 죽습니다.
조금 더 깊이
아람의 세력은 이스라엘의 북쪽과 동쪽에서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특히 요단강 동쪽의 길르앗 지역은 앞서 하사엘에게 공격당한 곳입니다(왕하 10:32–33). 따라서 동쪽으로 화살을 쏘는 행동을 아람과의 전쟁을 향한 상징적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벡이라는 지명은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합니다. 열왕기상 20:26–30에서는 아합 시대에 이스라엘과 아람이 아벡에서 싸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장소가 여럿 있으므로, 이 구절의 아벡을 이전 전투가 벌어진 곳과 정확히 같은 장소로 보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땅을 치십시오」라는 표현은 손에 든 화살로 땅을 두드리는 행동을 가리킬 수도 있고, 화살을 땅을 향해 쏘는 행동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정확한 방법을 밝히지 않습니다. 한 가지 해석은 그가 하나님의 승리를 충분히 기대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승리의 화살을 선포했음에도 왕은 세 번만 치고 멈추었습니다. 이를 충분한 믿음이나 열성을 보이지 못한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해석은 왕이 예언의 뜻을 보여 주는 행동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엘리사는 몇 번 치라고 알려 주지 않았으므로, 세 번에서 멈춘 것을 명백한 명령 불복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죽은 예언자의 뼈에 닿은 사람이 살아나다
엘리사의 죽음은 왜 이렇게 짧게 기록되었을까?
엘리사가 죽자 사람들이 그를 묻었습니다. 해가 바뀔 무렵이면 물건을 빼앗으러 다니는 모압 군사들이 그 땅에 쳐들어오곤 했습니다.열왕기하 13:20 · 두루새김
엘리사는 열왕기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가난한 과부에게 기름이 끊이지 않게 했고(왕하 4:1–7), 수넴 여자의 아들을 살렸으며(왕하 4:32–37), 나아만을 낫게 했고(왕하 5:1–14), 사마리아의 굶주림이 끝날 것을 예고했습니다(왕하 7:1).
그런데 그의 죽음은 짧은 한 문장으로 기록됩니다.
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때는 불병거와 불말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병을 앓다가 죽고, 사람들에게 묻힙니다. 그가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기 때문도 아니고, 그가 예언자로서 맡은 일이 거짓이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장례를 치르던 사람들이 시신을 던져 넣다
사람들이 한 사람을 묻다가 갑자기 그 군사들을 보았습니다. 시신을 묻던 사람들은 시신을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 넣었습니다.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그 사람이 살아나 자기 발로 일어섰습니다.열왕기하 13:21 · 두루새김
이 장면에서 엘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죽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고, 그에게 손을 얹지도 않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서 엘리사는 죽은 아이에게 다가가 기도하고, 아이의 몸 위에 엎드리며, 생명이 돌아오기까지 여러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엘리사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죽은 사람이 살아납니다.
성경에서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엘리사의 뼈에 닿았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 주시는 능력이 나타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죽었는데 왜 생명의 이야기가 이어지는가?
엘리사는 죽기 직전 아람에 대한 승리를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 이후에도 생명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특히 이 장에서는 군사적으로 거의 무너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으로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한 죽은 사람이 실제로 살아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두 사건 모두 인간의 힘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명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가 누구의 아들이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의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죽어 있던 사람이 살아나 자기 발로 일어섰다고 말합니다.
엘리사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가능성은 그와 함께 묻히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엘리사의 무덤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오히려 상황을 보면 갑자기 나타난 군사들 때문에 급하게 시신을 처리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엘리사의 뼈나 무덤을 숭배하라는 명령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엘리사의 뼈에 닿으면 언제나 살아난다는 일반적인 법칙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본문은 단 한 번 일어난 특별한 사건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 이유
다시 하사엘의 억압으로 돌아오다
엘리사의 죽음과 놀라운 생명 회복의 사건이 끝나자 이야기는 다시 아람의 억압으로 돌아옵니다.
하사엘은 여호아하스가 다스리는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억눌렀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은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돌보셨습니다.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지 않으셨고, 지금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열왕기하 13:23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현재 행동보다 훨씬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여기서 다시 언급됩니다.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돌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들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십니다.
원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돌아서셨다고 말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돌보셨습니다」로 옮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셨다는 것은 그들을 외면하거나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이 죄를 버리지 않았다고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은 심판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심판 가운데서도 그들을 완전히 끝내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왜 하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인가?
본문은 여기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언급합니다. 다윗 집안의 왕들은 남유다에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역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입니다.
정치적으로 다윗 집안의 나라와 갈라졌고, 오랫동안 잘못된 예배의 길을 걸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이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7:7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창세기 26:3–4에서는 이삭에게 그 약속을 확인하셨고, 창세기 28:13–15에서는 야곱에게 땅과 후손에 관한 약속을 다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지금 눈앞에 있는 한 왕의 행동만을 기준으로 모든 관계를 즉시 끝내 버리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이 실제로 저지른 죄를 심판하시면서도, 오래전에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지금까지」라는 말의 무게
「지금까지」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결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앞에서 쫓겨날 수 없다는 무조건적인 보장을 뜻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7장은 훗날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내쫓으셨다고 설명합니다(왕하 17:18–23). 따라서 13:23의 「지금까지」는 이야기의 현재 시점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죄의 길을 계속 걸어도 괜찮다는 선언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보여 주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언약 때문에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이제 실제 역사 속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세 번의 승리와 돌아온 성읍들
엘리사의 마지막 말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왕이 됩니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는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에게서 성읍들을 되찾았습니다. 요아스의 아버지 여호아하스가 전쟁에서 아람에게 빼앗겼던 성읍들이었습니다. 요아스는 그를 세 번 쳐서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되찾았습니다.열왕기하 13:25 · 두루새김
엘리사는 요아스가 화살로 땅을 세 번 치고 멈추자 아람을 세 번만 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에서는 예언을 보여 주는 행동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예언에 맞는 역사적 결과가 기록됩니다.
엘리사는 죽었지만 그가 전한 말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왕이 다섯 번이나 여섯 번 쳤더라면 아람 군대를 완전히 무찔렀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제한된 승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본문이 특별히 「세 번」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어진 언약에는 땅에 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람에게 성읍들을 빼앗겼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성읍들을 되찾게 하십니다. 이것이 언약에 따른 회복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맺음 — 엘리사는 죽었지만, 구원의 말씀은 살아 있었다
엘리사는 이미 죽었지만, 그가 전한 구원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버리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죽어 가는 엘리사는 왕의 두 손 위에 자기 두 손을 놓고 승리의 화살을 쏘게 했습니다. 그 손은 결국 죽음으로 힘을 잃었지만, 그가 전한 말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아람을 세 번 치고 잃었던 성읍들을 되찾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