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9–16장 · 예후와 왕조의 교체

고쳐진 성전, 떠나간 보물

열왕기하 12장은 성전을 고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인 왕의 이야기입니다.

요아스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이 망가진 것을 보고 수리를 명령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자 제사장들을 불러 책임을 묻고, 헌금을 모으고 사용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마침내 목수들과 건축 일꾼들, 돌을 다듬는 사람들이 일하고 성전의 망가진 곳들이 고쳐집니다.

그런데 성전 수리에 관한 긴 기록이 끝나자마자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위협하자 요아스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보관된 보물과 왕궁의 금을 모아 그에게 보냅니다. 그렇게 해서 하사엘을 물러가게 합니다.

성전을 고치기 위해 애썼던 왕이 이번에는 성전의 보물을 외국 왕에게 내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자기 신하들의 반란으로 죽습니다.

성전을 회복하려 했던 왕의 통치는 왜 이런 결말을 맞았을까요?

열왕기 저자는 그 질문에 모든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특히 요아스가 마지막에 어떤 마음으로 행동했는지, 신하들이 왜 그를 죽였는지에 관해서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통치에서 일어난 세 가지 일을 차례로 보여 줍니다. 성전의 수리, 성전 보물이 밖으로 나간 일, 그리고 왕의 죽음입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612장 본문 읽기 →

좋은 왕이라는 평가에 붙은 두 가지 조건

열왕기하 12:1–4 본문 →

일곱 살에 왕이 된 아이의 마흔 해

이야기는 요아스가 왕이 되었을 때 일곱 살이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앞 장에서 요아스는 아달랴의 학살을 피해 살아남았고, 여섯 해 동안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숨어 지내다가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이제 본문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열왕기는 그의 통치를 평가하면서 특별한 조건을 덧붙입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가르침을 받는 동안 내내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습니다.열왕기하 12:3 · 두루새김

열왕기에서 왕을 평가하는 전형적인 문장은 그가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는지, 아니면 악한 일을 했는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요아스에 대한 평가에는 여호야다의 가르침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단순한 종교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린 왕을 보호하고, 왕위에 세우는 일을 이끌었으며, 여호와야훼와 왕과 백성 사이의 언약을 맺도록 한 사람이었습니다(왕하 11:4–17).

열왕기하 12:3 자체는 여호야다가 죽은 뒤 요아스가 반드시 악한 왕으로 변했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문장은 여호야다가 가르친 기간을 한정할 뿐,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요아스의 올바른 통치는 그를 가르친 여호야다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신명기 17:18–20은 이스라엘의 왕이 율법을 베껴 쓴 책을 가지고 그것을 읽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지키도록 명령합니다. 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자랑하며 백성 위에 마음을 높여서는 안 됩니다. 그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가르침이 자기 삶 전체를 이끄는 기준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누군가 옆에서 가르치고 바로잡아 주는 동안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과, 그 가르침을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계속 적용하는 것은 구별되는 문제입니다.

옳은 일을 했지만 산당은 남아 있었다

왕에 대한 긍정적 평가 다음에는 곧바로 그 한계를 짚는 평가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산당들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물을 잡아 바치고 태워 연기를 올렸습니다.열왕기하 12:4 · 두루새김

여기서 「그러나」는 앞의 칭찬을 취소하지 않으면서도, 그 칭찬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 줍니다. 이곳에서 드려진 모든 제사가 처음부터 바알에게 바친 것이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야훼께 제사드리는 장소로 사용된 산당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이전에는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이 언급됩니다(왕상 3:2–4). 그러나 신명기 12:5–14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실 장소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열왕기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뒤에도 산당들이 계속 유지되는 일을 반복해서 문제로 지적합니다.

따라서 요아스의 시대에 산당이 남아 있었다는 기록은 단순히 작은 종교 시설들이 계속 사용되었다는 지리적 정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예배가 아직 온전히 바로잡히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이 사실은 성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나라 전체의 예배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일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요아스는 하나님의 집을 고치는 데 관심을 가졌지만,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모든 예배 관행을 바로잡지는 못했습니다.

열왕기는 이 한계를 처음부터 밝힌 뒤 그의 성전 수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성전을 고치라는 명령은 왜 실행되지 않았는가?

열왕기하 12:5–9 본문 →

성전에는 어떤 돈이 들어오고 있었는가?

요아스는 제사장들에게 여호와야훼의 성전으로 들어오는 은을 사용하여 성전의 망가진 곳들을 고치라고 명령합니다.

본문은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 은을 언급합니다. 돈으로 쓰이는 은, 사람마다 매겨진 값에 따라 내는 은, 그리고 누구든 스스로 마음이 내켜 가져오는 은입니다.

레위기 27:2–8에는 서원과 관련해 사람에게 정해지는 값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요아스가 말한 은 가운데 일부는 그러한 규정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35:21–29에는 마음이 움직여 성막을 위해 예물을 가져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2:5의 세 표현을 출애굽기나 레위기의 특정한 세금 항목들과 빠짐없이 일대일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돈으로 쓰이는 은」을 곧바로 특정 인구 조사세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사장들은 각자 아는 사람에게서 그 은을 모두 받아라. 그 은으로 성전의 망가진 곳을 고쳐라. 망가진 곳이 발견되면 어디든 고쳐야 한다.」열왕기하 12:6 · 두루새김

「망가진 곳」의 반복은 이야기의 관심이 성전의 장식이나 겉으로 보이는 웅장함보다 실제 건물의 망가진 부분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성전을 위해 은을 모으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닙니다.

모인 은으로 망가진 곳을 실제로 고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해 보이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십삼 년째가 되었는데도 고쳐지지 않은 성전

그러나 요아스 왕의 통치 23년째가 되었는데도 제사장들은 성전의 망가진 곳을 고치지 않았습니다.열왕기하 12:7 · 두루새김

이십삼 년째라는 시점은 이 문제가 통치 초기에 잠깐 생겼다가 해결된 일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다만 처음 마련된 방식이 성전 수리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요아스 왕이 제사장 여호야다와 다른 제사장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너희는 왜 성전의 망가진 곳을 고치지 않느냐? 이제 너희가 아는 사람들에게서 은을 받지 마라. 그 은은 성전을 고치는 데 내놓아라.」열왕기하 12:8 · 두루새김

그는 수리 비용을 모으고 관리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제사장들도 이에 동의합니다.

제사장들은 백성에게서 은을 받지 않고, 성전의 망가진 곳을 고치는 일도 맡지 않기로 동의했습니다.열왕기하 12:9 · 두루새김

기존에는 제사장들이 은을 거두는 일과 수리하는 일을 함께 맡았습니다. 새로운 방식에서는 성전 수리를 위한 은을 받는 일과 공사를 진행하는 일을 나누어 맡게 됩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여호야다에게 성전 수리 문제를 묻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여호야다 역시 왕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왕은 문제를 지적하고, 제사장은 새로운 방식에 참여합니다.

좋은 관계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문제가 드러났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성전 수리는 단순한 건축 공사를 넘어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 책임을 수행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아주 평범한 물건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구멍이 뚫린 상자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왕이 처음 성전 수리를 명령한 연도는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명령을 내린 뒤 정확히 이십삼 년 동안 공사가 지연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사장들이 헌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인지, 필요한 만큼 은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수리를 맡길 사람이나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사장들이 헌금을 빼돌렸다고 단정하는 해석은 본문보다 앞서 나갑니다.

성전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구멍 뚫린 상자였다

열왕기하 12:10–17 본문 →

헌금 상자는 무엇을 바꾸었는가?

여호야다는 상자 하나를 가져와 뚜껑에 구멍을 뚫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의 성전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오른쪽, 제단 곁에 놓습니다. 성전 입구를 지키는 제사장들은 성전으로 들어오는 은을 그 상자 안에 넣습니다.

먼저 은을 받는 경로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일정한 양이 모이면 왕의 기록 담당 관리와 대제사장이 함께 그 은을 모아 양을 확인합니다. 그다음 무게를 잰 은을 공사를 맡은 책임자들에게 넘깁니다.

책임자들은 목수와 건축 일꾼, 담을 쌓는 사람과 돌을 깎는 사람들에게 일한 대가를 치릅니다. 또한 목재와 다듬은 돌을 사는 데 사용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헌금이 많이 모였다는 이야기보다 더 구체적입니다. 은이 어디로 들어오고, 누가 확인하며, 누구에게 전달되고, 어떤 일에 사용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성전 수리가 처음으로 실제 공사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앞에서는 왕의 명령과 제사장들의 책임만 있었습니다. 이제는 목수들이 있고, 건축 일꾼들이 있고, 돌을 다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은 실제로 그 집을 돌보는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은 그릇보다 먼저 고쳐야 할 것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성전으로 들어온 은으로 성전에서 쓸 은 대접이나 등불의 심지를 자르는 가위, 뿌리는 그릇, 나팔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 밖의 어떤 금 기구나 은 기구도 만들지 않았습니다.열왕기하 12:14 · 두루새김

성전에는 여러 가지 기구가 필요했습니다. 열왕기상 7:48–51은 솔로몬이 성전을 위해 만든 기구들과 성전의 창고에 들여놓은 금과 은의 물품들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요아스 시대의 수리 사업에서는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전의 망가진 곳을 고치는 일입니다.

성전이 망가져 있는데 겉을 장식할 새로운 기구들을 마련하는 일이 먼저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일을 위해 모은 재물은 실제로 그 목적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목적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여러 좋은 일에 조금씩 사용하는 것이 언제나 가장 충실한 사용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을 모든 시대에 건물 수리가 다른 모든 예배 활동보다 우선한다는 규칙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이 특정한 시기에 성전 수리를 위해 마련된 은이 그 목적에 충실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계산은 철저하게 했는데 회계는 따지지 않았다?

일꾼들에게 줄 은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그 은을 어떻게 썼는지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정직하게 일했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 12:16 · 두루새김

은이 상자에 모이면 왕의 기록 담당 관리와 대제사장이 그 양을 확인했습니다. 공사 책임자들에게 넘기기 전에 은의 무게를 재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반면 16절에서 은을 어떻게 썼는지 따져 묻지 않았다는 사람들은 일꾼들에게 줄 은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즉, 모인 은의 양을 확인하고 지급하는 절차는 있었지만, 공사를 진행하는 책임자들에게는 자세한 사용 내역을 일일이 계산하게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핵심은 회계 관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뢰는 책임을 없애는 말이 아니라, 맡은 일을 충실하게 수행한 사람에게 붙는 평가입니다.

처음에는 성전 수리를 맡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 일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방식에서는 돈이 실제로 공사에 사용되고,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 정직하게 일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열왕기 저자는 왕이나 제사장뿐 아니라 성전을 고치는 실무자들의 신실함도 기억합니다.

이들은 왕의 이름처럼 길게 소개되지 않습니다. 특별한 기적을 행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실한 노동을 통해 성전의 망가진 곳들이 고쳐졌습니다.

훗날 요시야 왕 시대의 성전 수리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22:7은 성전 공사를 맡은 사람들에게 회계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제사장들의 몫은 왜 따로 남겨 두었는가?

성전 수리 이야기는 한 가지 예외를 언급하며 끝납니다.

배상 제물과 속죄 제물에 딸린 은은 여호와야훼의 성전으로 들여오지 않았습니다. 그 은은 제사장들의 몫이었습니다.열왕기하 12:17 · 두루새김

레위기 7:7은 속죄 제물과 배상 제물에 관한 제사장들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12:17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은을 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정당한 몫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이는 앞서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은을 거두지 말라고 한 명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왕은 모든 종교적 재원을 빼앗아 건축비로 사용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수리에 사용해야 할 은과 제사장에게 속하는 은을 구별했습니다.

성전 수리라는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해서 다른 정당한 책임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아스의 개혁은 단순히 돈을 더 모으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은을 누가 관리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 어떤 몫은 따로 남겨 두어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열왕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환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에서 성전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선택하신 장소였습니다(왕상 8:29).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실제로 땅 위에 거하실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모시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제가 지은 이 집이겠습니까?」(왕상 8:27의 뜻) 성전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분께 기도하며, 그분과의 언약 관계를 확인하는 장소였습니다.

성전을 고친 뒤 성전의 보물을 내주다

열왕기하 12:18–19 본문 →

하사엘은 왜 예루살렘을 위협했는가?

18절에서 아람 왕 하사엘이 등장합니다.

그 무렵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 가드를 공격하여 점령했습니다. 그러고는 예루살렘도 치러 올라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열왕기하 12:18 · 두루새김

하사엘은 이전에 엘리사가 장차 이스라엘을 심각하게 해칠 것이라고 예고했던 인물입니다(왕하 8:12–13). 그는 실제로 북이스라엘의 영토를 공격했고, 예후 시대에는 요단강 동쪽의 여러 지역을 쳤습니다(왕하 10:32–33).

그런데 이제 하사엘의 위협이 남유다까지 이릅니다.

여기서 열왕기는 그가 예루살렘을 실제로 공격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공격할 마음을 먹었다고 기록한 다음, 요아스의 대응을 전합니다.

요아스는 무엇을 내주었는가?

19절은 요아스가 하사엘에게 보낸 물품들을 자세하게 나열합니다.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하나님께 따로 바친 물품들, 요아스 자신이 바친 물품들, 그리고 여호와야훼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던 금입니다. 「하나님께 따로 바친」이라는 표현은 그 물건들이 여호와야훼께 구별되어 바쳐진 것임을 나타냅니다.

앞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위해 재물을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있던 재물을 내어 줍니다.

왕은 성전을 돌보는 일에 힘썼지만, 나라가 군사적 위기에 처하자 성전에 바쳐진 물품들까지 외교적 대가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행동이었는가?

이 장면을 읽으면 요아스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한편으로 요아스는 전쟁을 피하고 예루살렘을 보호하기 위해 보물을 내놓았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가 여호와야훼께 바쳐진 물품들까지 외국 왕에게 넘겼다는 사실은 신앙의 질문을 남깁니다.

왕은 하사엘을 물러가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에는 성전과 왕궁에 쌓인 보물을 내주는 대가가 따랐습니다.

전에 바친 왕들의 이름을 왜 모두 적었을까?

19절에서 한 가지 놓치기 쉬운 특징은 하나님께 따로 바친 물품들을 바친 왕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는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다고 평가받은 왕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친 물품들도 성전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본문이 이 이름들을 나열하는 이유를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나열은 왕이 내어 준 것이 단순히 어느 시점의 현금만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성전에 바쳐진 재물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합니다.

성전 수리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은과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집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면, 하사엘에게 보물을 보내는 이야기는 여러 세대에 걸쳐 바쳐진 물품들이 성전과 왕궁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조금 더 깊이

군사적으로 강한 상대와 전쟁을 벌이는 대신 재물을 제공해 철수를 얻어 내는 것은 고대 국가 사이에서 가능한 외교적 대응이었습니다. 성전을 고치려 애쓴 왕이 위기 앞에서는 성전의 보물을 대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관찰만으로 그의 행동을 완전히 정당화하거나 명백한 불신앙이라고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열왕기 저자는 다른 경우에는 왕이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다고 직접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는 그와 같은 분명한 판단이 없습니다.

신하들의 손에 죽은 왕

열왕기하 12:20–22 본문 →

왜 반역이 일어났는가?

요아스의 마지막은 갑작스럽습니다.

요아스의 신하들이 반란을 꾸미고, 실라로 내려가는 쪽에 있는 밀로의 집에서 요아스를 공격했습니다.열왕기하 12:21 · 두루새김

요아스는 어린 시절 여러 사람의 보호를 받아 살아남았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그의 생명을 지키고 왕위에 세우기 위해 군사 지휘관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처음에는 왕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왕을 죽이기 위해 신하들이 함께 움직입니다.

본문은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이름과 왕이 죽은 장소를 기록할 뿐, 그들의 동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왕좌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그를 쳐서 죽인 신하들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바드와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습니다. 사람들은 요아스를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묻었습니다. 그의 아들 아마샤가 그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열왕기하 12:22 · 두루새김

왕의 죽음은 왕조의 끝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달랴가 다윗 왕가의 자손들을 죽였을 때 왕조가 끊어질 위기에 놓였지만 요아스가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요아스가 죽었지만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왕의 생애와 같지 않습니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 어떤 왕이 죽는다고 해서 그 약속 자체가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기록을 함께 보면 그의 통치를 완전한 실패라고 할 수도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성공적인 통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열왕기는 그의 실제 성과와 한계, 그리고 비극적인 마지막을 함께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하 24:17–22에 따르면 여호야다가 죽은 뒤 요아스는 유다의 고관들의 말을 듣고 여호와야훼를 떠났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그들을 책망하자, 요아스는 그를 여호와야훼의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이게 했습니다. 이어 역대하 24:25는 신하들이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일 때문에 요아스를 해쳤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2장에는 스가랴의 죽음이나 그와 관련된 반란의 동기가 직접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맺음 — 고쳐진 성전, 떠나간 보물

열왕기하 12:1–22 본문 →

성전을 고치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고쳤다고 해서 모든 위협이 사라지거나 왕의 앞날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아스의 이야기는 한 가지 좋은 일을 이루었다는 사실과 삶 전체에서 하나님께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 장의 마지막에서 독자가 보는 것은 왕의 성취를 기념하는 행렬이 아닙니다.

성전의 보물을 외국 왕에게 보낸 뒤, 자기 신하들의 손에 죽은 왕의 장례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아마샤가 다시 왕좌를 이어받습니다.

성전의 망가진 곳은 고쳐졌지만, 그것만으로 왕국의 모든 균열이 고쳐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이 죽은 뒤에도 성전은 남아 있었고, 그 성전을 어떻게 돌보며 그 주인이신 여호와야훼께 어떻게 충실할 것인가라는 과제도 남아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