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7장 · 사마리아의 함락

나라가 사라진 뒤에도 남은 것

사마리아가 함락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아시리아 왕에게 붙잡혔고, 백성은 고향을 떠나 아시리아의 여러 지역으로 끌려갔습니다.

여기서 열왕기의 이야기는 잠시 멈춥니다.

왕이 죽었다는 보통의 기록도, 다음 왕이 그를 이어 왕이 되었다는 말도 없습니다. 대신 서술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왜 이 나라가 무너졌는가?

그런데 열왕기하 17장은 이 질문에 답한 뒤에도 끝나지 않습니다. 24절부터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시리아 왕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데려와 이스라엘 땅에 정착시키자, 그곳에 사자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죽입니다. 결국 아시리아 왕은 이스라엘에서 끌고 갔던 제사장 한 사람을 돌려보냅니다.

그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은 뜻밖에도 이렇게 끝납니다. 「이 민족들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면서도 자기들이 새긴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왕국을 무너뜨린 문제는 왕국이 무너진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917장 본문 읽기 →

호세아 — 이전 왕들과 같지는 않았던 마지막 왕

열왕기하 17:1–6 본문 →

호세아는 사마리아에서 아홉 해 동안 다스립니다.

호세아는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이스라엘 왕들과 같지는 않았습니다.열왕기하 17:2 · 두루새김

본문은 호세아가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이전 왕들과 달랐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우상 숭배를 중단했는지, 어떤 종교적 조치를 취했는지, 또는 다른 점에서 차이가 있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에 이르게 한 마지막 왕이 반드시 그 이전의 모든 왕보다 더 악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를 호세아 한 사람의 잘못에서만 찾는다면, 서술자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과거를 설명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호세아는 악한 일을 한 왕이지만, 그가 다스리기 시작했을 때 북이스라엘은 이미 오랜 역사를 지나온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이전 장에서 보았듯이, 아시리아는 이미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끌고 갔습니다(15:29).

조공을 바치던 왕이 조공을 끊다

아시리아 왕 살만에셀이 호세아를 치러 올라왔습니다. 호세아는 그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쳤습니다.열왕기하 17:3 · 두루새김

호세아는 왕이라는 칭호를 유지하지만, 아시리아 왕의 지배 아래에서 조공을 바치는 위치에 놓입니다. 호세아는 이집트 왕 소에게 사람들을 보내고, 해마다 바치던 조공을 중단합니다. 아시리아 왕은 이를 반역으로 판단하여 호세아를 붙잡아 감옥에 가둡니다.

아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땅을 공격하여 사마리아를 세 해 동안 포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읍을 점령합니다.

호세아의 통치 9년째에 아시리아 왕은 사마리아를 점령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할라와 고산의 하볼강 가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살게 했습니다.열왕기하 17:6 · 두루새김

이것으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독립적인 왕권은 끝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 모두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쫓겨났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왕국 전체의 패배와 백성이 끌려간 일을 서술하며, 이후의 이야기에서도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정확한 수를 밝히지 않습니다.

출애굽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야기

이스라엘은 한때 이집트에서 종으로 살던 백성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은 다시 강대국의 지배 아래 놓이고, 자기 땅에서 끌려 나갑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서술자는 출애굽을 다시 언급합니다. 사마리아 함락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먼저 돌아가는 곳이 왕들의 정치적 실패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야훼의 구원 사건인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멸망을 출애굽에서부터 설명하다

열왕기하 17:7–12 본문 →

7절부터 이야기의 성격이 바뀝니다.

앞에서는 사건이 전개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사건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을 이집트 왕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여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른 신들을 두려워했습니다.열왕기하 17:7 · 두루새김

여기서 출애굽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무엇에 바탕을 두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여호와야훼를 섬겨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먼저 구원하셨고, 그 구원을 받은 백성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0:2–3에서 십계명은 바로 이 순서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이라고 밝히신 뒤,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심각한 이유는 단순히 종교 규정을 어겼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들을 두려워했습니다」

히브리어 야레(⁨יָרֵא⁩)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문맥에 따라 위험한 대상을 두려워하는 감정부터, 신을 높이고 그 권위에 복종하는 태도까지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단순히 그 신이 무섭다고 느낀다는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신을 높이고 섬기는 종교적 태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누구의 관습을 따라 살았는가?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자기들 앞에서 몰아내신 민족들의 관습과 이스라엘 왕들이 만든 관습을 따랐습니다.열왕기하 17:8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잘못은 바깥에서 들어온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백성이 따라서는 안 될 종교적 질서를 만들어 냈습니다.

열왕기상 12:26–33의 여로보암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새로운 예배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왕이 만든 종교적 질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백성의 생활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거슬러 옳지 않은 일들을 몰래 했습니다. 그들은 감시탑이 있는 곳부터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에 이르기까지, 자기들의 모든 성읍에 산당을 지었습니다.열왕기하 17:9 · 두루새김

「감시탑이 있는 곳부터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에 이르기까지」는 규모가 작은 거주지부터 큰 방어 성읍까지 폭넓게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잘못된 예배가 일부 지역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높은 언덕마다,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마다 신을 섬기는 기둥과 아세라 상이 세워졌습니다. 10–11절의 반복적인 장소 표현은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널리 이루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는데도, 그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열왕기하 17:1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무엇이 옳은지 전혀 알지 못했던 백성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음 단락에서 예언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조금 더 깊이

9절 앞부분의 「몰래 했습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매우 드물게 등장하므로 정확한 의미에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숨겨서 행했다는 뜻으로 옮겼지만, 그 구체적인 뉘앙스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다

열왕기하 17:13–15 본문 →

나라가 멸망한 뒤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이야기는 자칫 하나님의 심판이 어느 날 갑자기 내려진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모든 예언자와 선견자를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셨습니다.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내 종 예언자들을 통해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에 따라, 내 명령과 규정을 지켜라.」열왕기하 17:13 · 두루새김

죄의 길에서 돌아서라는 요구는 단순히 나쁜 습관 몇 가지를 고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가고 있는 방향에서 돌아와 여호와야훼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요청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는 북이스라엘뿐 아니라 유다에도 경고하셨습니다. 남북 왕국은 정치적으로 나뉘었지만, 여호와야훼의 말씀 앞에서 어느 한쪽이 저절로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믿지 않았던 조상들처럼 고집을 부렸습니다.열왕기하 17:14 · 두루새김

이어지는 「고집을 부렸습니다」(⁨קָשָׁה⁩)는 원문에서 목을 뻣뻣하게 했다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의 금송아지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32:9에서 여호와야훼는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을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목을 뻣뻣하게 한다는 비유는 인도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완고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세대가 되었지만, 광야에서 드러났던 완고함을 되풀이했습니다.

14절은 불순종과 불신을 연결합니다. 그들은 단지 규칙을 지키기 싫어했던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들은 돌아오라고 외쳤지만, 백성은 익숙한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헛된 것을 따라가 자신들도 헛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규정과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 또 자기들에게 주신 경고를 거부했습니다. 헛된 것을 따라가 자신들도 헛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변 민족들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도 그 민족들을 따라갔습니다.열왕기하 17:15 · 두루새김

이 말은 인간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삶을 의지하여 세우려 했던 대상들이 실체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들을 따라간 삶도 목적을 잃었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문맥에 적절합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처럼 되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신들을 섬기고, 그들의 관습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안전과 번영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어떤 백성인지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들과 어떤 문화적 교류도 해서는 안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이 문제 삼는 것은 다른 민족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웠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여호와야훼와 맺은 언약에 반하는 신앙과 삶의 방식을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예레미야 2:5에도 같은 히브리어 표현이 등장합니다. 거기서 여호와야훼는 조상들이 자신에게서 무슨 잘못을 발견했기에 멀리 떠나 헛된 것을 따라가 헛되게 되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강한 나라를 만나 힘이 부족해서 생긴 사건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무엇을 의지하며 어떤 길을 따라왔는지가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다가 자신을 팔아 버리다

열왕기하 17:16–20 본문 →

16–17절은 앞에서 설명한 죄를 구체적으로 다시 보여 줍니다.

송아지 신상 둘, 아세라 상,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별, 바알, 자녀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는 행위, 점을 치고 여러 징조로 앞일을 판단하는 관습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어느 한 왕의 특정한 종교 정책을 묘사한 목록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의 오랜 역사에서 나타난 여러 잘못을 하나로 모은 기록입니다.

송아지 신상 둘은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세웠던 금송아지를 떠올리게 합니다(열왕기상 12:28–30). 바알과 아세라 상은 아합 시대의 종교적 상황과 연결됩니다(열왕기상 16:31–33).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별에게 엎드려 절한다는 표현은 이런 하늘의 대상들을 신으로 섬기는 관습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행동은 신명기 4:19에서 금지됩니다. 자녀를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는 행위 역시 신명기 18:10에서 금지된 관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목록 끝에 특이한 표현이 나옵니다.

그들은 자기 아들들과 딸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했고, 점을 치고 여러 징조로 앞일을 판단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는 데 자신을 내맡겨 여호와야훼를 분노하게 했습니다.열왕기하 17:17 · 두루새김

여기서 「자신을 내맡겨」라는 표현은 단순히 악한 일을 많이 했다는 뜻보다 강합니다. 히브리어 바이트마케루(⁨מָכַר⁩)는 자신을 팔거나 스스로를 넘겨준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뜻을 자신을 내맡겼다고 풀어 옮겼습니다.

열왕기상 21:20, 25에서도 아합이 악한 일을 하는 데 자신을 팔았다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 비유가 특별히 인상적인 이유는 17장 처음에 나왔던 출애굽 때문입니다.

출애굽은 다른 사람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해방된 뒤 자신을 다시 다른 대상들의 지배 아래 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종살이에서 구원받았지만, 자신을 다시 종으로 만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우상 숭배는 단순히 종교적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섬기고 무엇을 의지하느냐가 자신의 삶을 누구에게 내어 주는가와 연결됩니다.

「자기 앞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몹시 화를 내고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유다 지파만 홀로 남았습니다.열왕기하 17:18 · 두루새김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여호와야훼의 얼굴 앞, 곧 그분이 계신 곳 앞에서 제거한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살아가는 백성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앞에서 쫓겨납니다.

23절에서는 같은 생각이 다시 등장하면서 그 결과가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땅에서 아시리아로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하나님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영원히 관심을 끊으셨다는 추상적인 선언이라기보다, 왕국이 누리던 땅과 지위에서 쫓겨나는 심판을 가리킵니다.

한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이 흩어지는 것은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었습니다.

그런데 18절은 유다 지파만 남았다고 말한 직후, 19절에서 그 유다에 대해서도 경고합니다.

그러나 유다도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이스라엘이 만든 관습을 따랐습니다.열왕기하 17:19 · 두루새김

따라서 17장은 북이스라엘만 비난하고 남유다는 안전하다고 선언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겪은 일이 유다에도 경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왕조의 이름이나 특정한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과 유다 모두에게 말씀하셨고, 두 나라 모두에게 그 말씀에 대한 응답을 요구하셨습니다.

처음 왕을 세우던 날로 돌아가다

열왕기하 17:21–23 본문 →

이제 서술자는 북이스라엘의 시작으로 돌아갑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의 사정은 이러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다윗 집안에서 떼어 내시자, 이스라엘 백성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를 따르지 못하게 몰아가고, 그들에게 큰 죄를 짓게 했습니다.열왕기하 17:21 · 두루새김

열왕기상 11:29–39에서 여호와야훼는 예언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왕국의 일부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이 다른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야훼의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북이스라엘의 분리는 단순히 여로보암 개인의 반역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는 솔로몬의 불순종에 대한 여호와야훼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7:21에서 「떼어 내시자」라는 말의 주어는 원문에 분명하게 반복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앞선 문맥과 열왕기상 11장의 이야기에 비추어 그 주어를 여호와야훼로 밝혀 옮겼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인간의 책임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왕국의 분리가 여호와야훼의 심판 아래에서 이루어졌다고 해서 여로보암이 이후에 행한 모든 일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왕권을 얻은 뒤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예배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은 그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시작과 끝을 잇는 한 가지 반복

이스라엘 백성은 여로보암이 저지른 모든 죄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들은 그 죄를 버리지 않았습니다.열왕기하 17:22 · 두루새김

북이스라엘에는 여러 왕조가 등장했습니다. 예후는 아합 집안을 무너뜨렸고, 그 뒤에도 새로운 왕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왕조가 바뀌었다고 해서 여로보암이 시작한 잘못된 예배 질서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열왕기는 잘못된 지도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면서 백성을 완전히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지 않습니다. 동시에 백성이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지도자의 책임을 가볍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여로보암이 시작한 길을 여러 왕과 백성이 계속 걸었고, 여호와야훼가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마침내 그 나라가 자기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떠난 땅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이제 이 장은 왕이 없는 사마리아에서 계속되는 삶을 바라봅니다.

사마리아에 사자들이 나타나다 — 그 땅의 신을 섬기는 법

열왕기하 17:24–28 본문 →

24절에서 아시리아 왕은 여러 지역의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킵니다.

바벨론, 구다, 아와, 하맛, 스발와임에서 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떠난 성읍에 정착합니다. 아시리아는 정복한 지역의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그 땅에 정착시킴으로써 제국의 지배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이주민들이 사마리아에 살기 시작했을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처음 그곳에 살 때에는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에게 사자 떼를 보내셨고, 사자들은 그들 가운데 여러 사람을 죽였습니다.열왕기하 17:25 · 두루새김

그런데 다음 절에서 이주민들이 이 사건을 설명하는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이 아시리아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왕께서 사마리아의 성읍들로 강제로 옮겨 살게 하신 민족들은 그 땅의 신을 섬기는 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신이 사자 떼를 보내어 그들을 죽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땅의 신을 섬기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 17:26 · 두루새김

서술자는 여호와야훼께서 사자 떼를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주민들은 그 사건을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신을 달래기 위한 종교적 문제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 땅의 신인가?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지만, 성경은 그분을 특정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신으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출애굽 이야기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집트에서도 행동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파라오의 지배에서 구원하셨고, 광야에서 인도하셨으며, 가나안으로 데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에 온 사람들은 여호와야훼를 그 지역에 살기 위해 알아 두어야 할 신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기보다, 당장 사자들의 공격을 멈추게 할 종교적 방법이었습니다.

아시리아 왕은 이스라엘에서 끌려간 제사장 한 사람을 돌려보냅니다. 그는 벧엘에 살면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여호와야훼를 어떻게 두려워해야 하는지 가르칩니다.

벧엘은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우고 북이스라엘의 예배 중심지로 삼았던 곳입니다(열왕기상 12:28–33).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잘못된 예배 질서를 마련했던 장소에서 이제 다른 민족들에게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 시작됩니다.

물론 이 제사장이 과거 벧엘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사장 일을 했는지, 그가 실제로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본문이 알려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신앙을 가르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서아시아의 여러 종교에서는 특정한 신이 특정 지역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땅에 들어가 살려면 그 땅의 신을 올바른 방식으로 섬겨야 한다고 여길 수 있었습니다. 이주민들의 설명은 바로 이런 생각을 반영합니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면서도 자기 신들을 섬기다

열왕기하 17:29–34 본문 →

제사장이 돌아와 가르쳤으니 상황이 나아졌을까요?

그러나 각 민족은 저마다 자기 신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성읍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지어 놓은 산당 신전에 그 신상들을 두었습니다.열왕기하 17:29 · 두루새김

9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모든 성읍에 산당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29절에서 이주민들은 바로 그 산당 신전들에 자기 신상들을 놓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국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세운 산당은 다른 신들을 위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건물이 남았다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한 세대가 만들어 놓은 종교적 관습과 시설은 그 세대가 사라진 뒤에도 다음 세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주민들이 가져온 신들

30–31절은 이주민들이 섬긴 여러 신들의 이름을 나열합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의 신상을, 구다 사람들은 네르갈의 신상을,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의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의 신상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아들들을 불에 태워 바쳤습니다.

이주민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신들을 가져왔고, 사마리아 땅에서 계속 섬겼습니다.

여기에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의식이 추가됩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면서도, 자기들이 끌려오기 전에 살던 땅의 관습대로 자기 신들을 섬겼습니다.열왕기하 17:33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행위가 기존 신앙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기존 신앙에 더해진 것입니다.

「두려워하면서도」와 「두려워하지 않았고」는 모순인가?

그들은 이 기록이 쓰일 때까지 옛 관습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여호와야훼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주신 규정과 법과 율법과 명령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사람입니다.열왕기하 17:34 · 두루새김

34절의 「그들」은 앞에서 설명한 이주민들을 가리킨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33절은 그들이 여호와야훼에게 어느 정도 종교적 경외를 나타냈다는 사실을 말하고, 34절은 그런 행동이 여호와야훼의 가르침에 맞는 참된 경외가 아니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한편 34절에는 야곱의 자손에게 주어진 율법과 명령이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이 구절을 이전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는 대목으로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절 사이의 긴장을 완전히 풀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한다고 말하거나 여호와야훼를 위한 의식을 행하는 것과,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35–39절은 그 차이를 이해할 기준을 제시합니다.

자녀를 불에 태우는 행위의 반복

17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자기 아들들과 딸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31절에서는 스발와임 사람들이 자기 아들들을 불에 태워 신들에게 바쳤다고 말합니다.

두 구절의 표현이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17절은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는 행위를, 31절은 불에 태워 바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자녀와 불이 결합된 금지된 종교적 관습이라는 점에서 두 장면은 서로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들이 바뀌었지만, 여호와야훼의 말씀과 충돌하는 종교적 관습은 계속됩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원문에서는 규정과 법을 가리키는 말에 붙은 「그들의」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부분을 「여호와야훼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주신 규정과 법과 율법과 명령」으로 옮겼습니다.

「오직 …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해라」 — 무너진 나라에서 다시 들리는 언약의 말씀

열왕기하 17:35–41 본문 →

35절부터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말씀이 다시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야곱의 자손과 언약을 맺고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에게 엎드려 절하지도, 그들을 섬기지도, 그들에게 제물을 잡아 바치지도 마라.」열왕기하 17:35 · 두루새김

이 명령은 단순히 어떤 신을 마음속으로 믿느냐만 묻지 않습니다. 누구를 경외하고, 누구에게 몸을 굽히고, 누구를 섬기고, 누구에게 제물을 바치는지를 함께 묻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마음속 감정이나 종교적 지식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삶에서 실제로 누구의 권위를 인정하고 누구에게 충성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오직 큰 힘과 펼치신 팔로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해라. 그분께 엎드려 절하고 그분께 제물을 잡아 바쳐라.」열왕기하 17:36 · 두루새김

7절에서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야훼가 언급되었습니다. 이제 36절은 그 사실을 근거로 오직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와야훼를 경외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이 단순히 이스라엘 땅에 있는 신이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 땅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 그 땅의 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말씀은 전혀 다른 출발점을 제시합니다.

「그분이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해 내실 것이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해라. 그분이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해 내실 것이다.」열왕기하 17:39 · 두루새김

호세아는 아시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이집트에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했고, 아시리아는 사마리아를 점령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을 모든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반드시 군사적으로 승리한다는 무조건적인 보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언약의 관계 안에서 이 약속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관계를 계속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가 무너진 뒤에도 열왕기는 여호와야훼께서 구원하실 능력을 잃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그분과 맺은 관계를 저버렸다고 설명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아시리아의 군사적 압박과 호세아의 반역 시도가 사마리아 함락의 직접적인 배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는 그 사건을 언약의 역사 속에서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고」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고 옛 관습을 그대로 따랐습니다.열왕기하 17:40 · 두루새김

14절에서도 백성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1절에서 그들의 후손들까지 조상이 하던 대로 행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민족들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면서도 자기들이 새긴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의 자녀와 손자들도 조상들이 한 일을 그대로 따라, 이 기록이 쓰일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열왕기하 17:41 · 두루새김

17장에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예언자들을 통해 경고하셨으며,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반복한 관습입니다. 조상들이 하던 대로 행하고, 그 자녀와 손자들도 같은 길을 따릅니다.

문제는 시간이 흘렀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것을 이어받았는가에 있습니다.

왕국이 사라진 뒤, 벧엘의 산당에는

열왕기하 17:1–41 본문 →

왕이 바뀌고, 백성이 바뀌고, 나라의 지배자가 바뀌어도, 그 땅에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를 잃어버리게 한 문제는 사마리아를 차지한 사람들에게서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7장은 여기서 멈춥니다.

무너진 왕궁의 재건도, 돌아오는 왕도, 새로운 승리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사마리아의 산당들에서 이어지는 예배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그분을 섬기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만든 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한때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세웠던 그 땅에서, 새로운 세대가 자기 신들의 형상을 만들어 섬깁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그 일이 얼마나 오래 계속되었는지를 말합니다. 「그들의 자녀와 손자들도 조상들이 한 일을 그대로 따라, 이 기록이 쓰일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국은 끝났지만, 하나님 앞에서 돌아서지 않는 삶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하 17장은 사마리아의 폐허보다 더 오래 남은 그 모습으로 이야기를 닫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