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6장

이 장의 자리 · 9–16장 · 예후와 왕조의 교체

성읍은 지켰지만 제단은 잃은 왕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되었습니다.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함께 쳐들어왔지만, 성을 함락하지는 못했습니다. 유다는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의 결과만 보면 아하스는 위기를 넘긴 왕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16장은 전쟁의 결과보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을 훨씬 길게 기록합니다. 아하스는 다마스쿠스에서 낯선 제단을 보고, 그 설계도를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적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하지 못했지만, 예루살렘 성전의 중심에는 다른 곳에서 가져온 제단이 들어섰습니다.

앞 장 마지막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를 유다를 치도록 보내기 시작하셨습니다(15:37). 이제 그 위기가 현실이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전쟁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대신, 위기에 처한 아하스가 누구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그 선택이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따라갑니다.

아하스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무엇을 의지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바꾸었습니까?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716장 본문 읽기 →

아하스 — 다윗의 자손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걷다

열왕기하 16:1–4 본문 →

아하스에 대한 첫 평가는 짧고 단호합니다.

아하스는 왕이 되었을 때 스무 살이었고, 예루살렘에서 16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조상 다윗과 달리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열왕기하 16:2 · 두루새김

아하스의 아버지 요담과 할아버지 아사랴는 모두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들의 길을 잇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를 평가하면서 곧바로 다윗을 불러옵니다.

다윗은 단순히 아하스의 오래된 조상이 아닙니다. 유다 왕조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할 때 중심에 놓이는 인물입니다. 여호와야훼는 다윗에게 그의 뒤를 이을 왕조에 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사무엘하 7:12–16).

따라서 아하스가 다윗과 달랐다는 말에는 단순히 한 왕의 성품이 좋지 않았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다윗 왕조의 왕좌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왕조가 따라야 할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랐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몰아내신 민족들의 역겨운 행위를 따라, 자기 아들까지 불 속으로 지나가게 했습니다.열왕기하 16:3 · 두루새김

열왕기가 북이스라엘 왕들에게 거듭 내렸던 부정적인 평가가 이제 유다 왕에게 적용됩니다.

자기 아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된 표현은 레위기 18:21과 신명기 18:10에도 등장합니다. 특히 레위기에서는 자녀를 몰렉에게 넘기는 행위가 금지되고, 신명기에서는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행위가 가나안 민족들의 금지된 관습 가운데 하나로 언급됩니다.

따라서 아하스의 행동은 단순히 불을 사용하는 평범한 의식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따르지 말아야 할 종교적 관습과 연결됩니다. 실제 희생 제물이 되었는지, 불과 관련된 다른 의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곳 민족들의 역겨운 행위를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레위기 18:24–30). 그런데 이제 그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의 왕이 바로 그 행위를 따릅니다.

이스라엘이 몰아낸 민족들의 길을,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걷고 있습니다.

그는 산당과 언덕 위와 잎이 무성한 모든 나무 아래에서 제물을 잡아 바치고 태워 연기를 올렸습니다.열왕기하 16:4 · 두루새김

이전 유다 왕들에게도 산당을 없애지 못했다는 비판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에 대한 묘사는 그보다 적극적입니다. 그는 산당을 내버려 둔 왕으로만 묘사되지 않고, 여러 장소에서 직접 제물을 잡아 바치고 태워 연기를 올리는 왕으로 등장합니다.

「잎이 무성한 모든 나무 아래」라는 표현은 신명기 12:2에서 이스라엘이 없애야 할 가나안의 제사 장소를 설명할 때도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3–4절은 아하스가 단지 종교개혁에 소극적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여호와야훼의 가르침에서 금지한 관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사실을 먼저 제시한 뒤에야 본문은 나라들 사이의 정치적 위기로 넘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지나가게 하다」에 해당하는 동사는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통과시키거나 이동시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다만 열왕기하 16:3 자체는 의식의 구체적인 절차나 그 아들의 죽음을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역대하 28:3은 아하스의 자녀들과 불을 사용하는 행위를 더 강하게 묘사하지만, 두 기록의 표현을 구별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포위된 예루살렘 — 두 왕이 공격했지만 함락하지 못하다

열왕기하 16:5–6 본문 →

그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아하스가 있는 성을 포위했지만, 싸워 이기지는 못했습니다.열왕기하 16:5 · 두루새김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어 남유다를 공격한 사건입니다. 흔히 아람-에브라임 전쟁이라고 부르는 갈등의 중심 장면입니다.

두 왕이 왜 유다를 공격했는지는 열왕기하 16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7:5–6은 그들이 아하스를 몰아내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 했다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이 공격은 단순한 국경 분쟁을 넘어 유다의 왕권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였습니다.

당시 아시리아의 세력 확대는 주변 왕국들에 심각한 압박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은 그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다를 자신들의 정치적 계획에 참여시키거나 기존 왕을 대신할 다른 왕을 세우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읽힙니다.

본문은 먼저 그들이 아하스가 있는 성을 포위했지만 「싸워 이기지는 못했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아하스가 아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따라서 아시리아가 개입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간신히 함락을 면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북쪽의 포위와 남쪽의 상실

6절에는 엘랏이 등장합니다. 엘랏은 홍해 아카바만 북쪽 끝에 있는 항구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유다 왕국이 남쪽으로 향하는 교역로와 이동로를 이용하는 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명은 열왕기하 14:22에서 이미 등장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엘랏을 다시 세워 유다에 되돌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다의 앞선 왕이 회복한 곳을 아하스 시대에 다시 잃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았지만, 유다의 영토는 이미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아하스가 아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할 때 유다는 실제로 군사적 위협을 받고 영토를 잃고 있었습니다. 그의 두려움은 아무 근거 없는 상상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위험이 실제였느냐가 아니라, 그 위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입니다.

조금 더 깊이

16:6은 아람 왕 르신이 엘랏을 되찾아 아람의 땅으로 삼았다고 말하면서, 그곳에는 에돔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아람 사람들과 에돔 사람들은 혼동되기 쉬운 이름입니다. 특히 이 구절 마지막의 주민 이름에는 자음으로 기록된 본문과 전통적인 읽기 사이에 차이가 있으며, 칠십인역도 에돔 사람이라는 읽기를 뒷받침합니다. 따라서 르신의 군사 행동과 에돔 사람들의 정착이 정확히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이 엘랏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저는 왕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 구원을 요청하는 왕

열왕기하 16:7–9 본문 →

아하스는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사람들을 보내 이렇게 전했습니다. 「저는 왕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셔서 저를 공격하는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에게서 저를 구해 주십시오.」열왕기하 16:7 · 두루새김

고대 왕들 사이의 외교 언어에서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종이라는 관계는 한쪽의 지위가 더 높고 다른 쪽이 그 아래에 속한다는 뜻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아하스는 디글랏빌레셀을 자기보다 높은 지위의 왕으로 인정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16:2는 아하스가 「조상 다윗」과 달랐다고 말합니다. 그는 다윗 왕조의 왕입니다. 하지만 전쟁의 위기 앞에서 아시리아 왕에게 자신을 「왕의 종이며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 자기 왕국을 지키기 위해 외국 제국의 왕 아래에 속하는 지위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를 구해 주십시오」

열왕기하 14:27은 여호와야훼가 여로보암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거기에서 구원하시는 분은 여호와야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하스는 아시리아 왕에게 자신을 구해 달라고 말합니다.

물론 인간의 도움을 요청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외교 관계가 곧 불신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국가 간 동맹이나 군사적 협력을 언제나 똑같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하스가 이미 여호와야훼의 길에서 벗어난 왕으로 소개되었으며, 그가 위기 앞에서 어떤 관계를 선택하고 어떤 재물을 사용했는가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은과 금을 꺼내다

아하스는 여호와야훼의 성전과 왕궁 보물 창고에 있던 은과 금을 가져다가 아시리아 왕에게 뇌물로 보냈습니다.열왕기하 16:8 · 두루새김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여호와야훼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적에게 패하거나, 가뭄이 들거나, 포로가 되는 상황까지 언급하면서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돌아와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열왕기상 8:33–50).

그 기도에서 성전은 위기 속에서 여호와야훼를 찾는 장소였습니다.

본문은 아하스가 그 위기 동안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왕기가 기록한 그의 구원 요청은 여호와야훼를 향한 기도가 아니라 아시리아 왕에게 보낸 외교적 호소였습니다.

아시리아 왕은 아하스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올라가 그곳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기르로 끌고 갔으며 르신을 죽였습니다.열왕기하 16:9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아시리아 왕이 그의 말을 들었다고 표현합니다. 열왕기에서 왕들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가는 중요한 평가 기준입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아하스가 도움을 요청하고 응답을 얻는 상대는 아시리아 왕입니다.

그가 아시리아 왕의 말을 듣고 움직이는 장면이 아니라, 아시리아 왕이 그의 요청을 들어주는 장면입니다. 이 점에서 아하스의 외교는 당장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아하스가 선택한 도움에는 실제적인 군사적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하스가 의지할 만한 참된 안전을 얻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리고 열왕기는 그 판단을 막연한 교훈으로 설명하는 대신, 전쟁 이후의 성전으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7:4에서 여호와야훼는 아하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7:7–9에서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시며, 믿음 가운데 굳게 설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사야 7:12에서 아하스는 여호와야훼께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그 앞의 7:11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그의 거절을 겸손한 신앙의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는 위기 속에서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신뢰하라는 요청을 전하고, 열왕기는 아하스가 실제로 아시리아의 힘에 의지하는 선택을 기록합니다. 이사야 8:7–8은 아시리아의 강력한 세력을 넘쳐흐르는 큰 강에 비유하면서, 그 강물이 유다에까지 밀려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역대하 28:20–21은 같은 시대에 아시리아 왕이 아하스를 도와주기보다 그를 압박했으며, 그가 바친 재물도 결국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열왕기는 아시리아의 개입으로 아람이 무너진 사건을 전하고, 역대기는 그 관계가 유다에 가져온 부담을 강조합니다. 두 기록은 각각 다른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한쪽을 지우고 다른 쪽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제단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다

열왕기하 16:10–13 본문 →

이제 이야기의 장소가 달라집니다.

다마스쿠스는 아시리아에 점령되었고, 아하스는 디글랏빌레셀을 만나러 그곳에 갑니다. 그런데 본문은 왕들의 회담 내용을 전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하스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기록합니다.

아하스 왕은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을 만나러 다마스쿠스로 갔다가 그곳에 있는 제단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제단의 모습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세부 사항을 담은 설계도를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습니다.열왕기하 16:10 · 두루새김

아하스는 그 제단을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들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를 보낸 것입니다. 그는 여행지에서 본 제단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모양을 본떠 새로운 제단을 만들게 합니다.

누가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사용할 제단의 형태를 결정하고 있습니까?

왕의 설계도에 따라 움직이는 제사장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이 다마스쿠스에서 보낸 설계도대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왕이 다마스쿠스에서 돌아오기 전에 모두 완성했습니다.열왕기하 16:11 · 두루새김

왕이 돌아오기 전부터 제작이 완료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지시가 지체 없이 실행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25:9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성막과 그 기구들을 보여 주시는 모양에 따라 만들라고 지시하십니다. 출애굽기 39–40장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만들고 설치했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성막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보여 주신 모양이 기준이었습니다. 이 장에서 새 제단의 기준은 아하스가 다마스쿠스에서 본 모양입니다.

제단을 만드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단의 기준이 어디에서 왔는가입니다.

왕이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

왕은 다마스쿠스에서 돌아와 그 제단을 보았습니다. 그는 제단에 다가가 그 위에 제물을 바쳤습니다.열왕기하 16:12 · 두루새김

10절에서 아하스는 다마스쿠스의 제단을 「보았습니다」. 12절에서 그는 예루살렘에 만들어진 제단을 다시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본 제단이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성전에 있는 제단이 되었습니다.

아하스는 그 위에서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태우고, 술을 부어 제물로 바치며, 화목 제물의 피를 뿌립니다(16:13). 그가 바친 제물의 종류는 이스라엘의 제사 규정에도 등장하는 것들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익숙한 제사의 형식이 새로운 제단 위에서 실행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를 드리는 중심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성경이 보여 주는 문제는 외국 문화의 모든 요소를 거부해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닙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다른 지역의 재료와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는 두로 사람들의 목재와 기술이 사용되었습니다(열왕기상 5:6–10; 7:13–14).

아하스의 문제는 다마스쿠스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의 중심을 왕 자신의 판단에 따라 바꾸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 변화는 이미 다른 민족들의 종교적 관습을 따르고 있던 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외국의 강력한 왕 아래에 속하는 관계를 스스로 받아들인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아하스는 제단을 세우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는 원래 있던 제단의 자리까지 바꾸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16:10은 다마스쿠스의 그 제단이 정확히 어떤 신을 위한 것이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제단이 어떤 신만을 위한 제단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아하스가 그 위에서 곧바로 그 신을 섬겼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역대하 28:23은 아하스가 다마스쿠스의 신들에게 제사를 바쳤다고 전합니다. 다만 열왕기하 16장의 초점은 새 제단이 어떤 신을 위한 것이었는지 밝히는 것보다 외국에서 본 제단이 예루살렘 성전의 중심에 들어오는 과정에 있습니다. 또한 본문은 왕이 직접 제물을 바쳤다고 서술하지만, 모든 제사 절차를 제사장의 도움 없이 수행했는지까지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하스가 제사장의 일을 직접 빼앗았다고 이 구절만으로 확정하기보다는, 왕이 새 제단의 사용을 주도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호와야훼 앞에 있던 제단이 옆으로 밀려나다

열왕기하 16:14–16 본문 →

여호와야훼 앞에 있던 청동 제단은 성전 앞, 곧 새 제단과 여호와야훼의 성전 사이에 있었습니다. 아하스는 그 청동 제단을 옮겨 새 제단의 북쪽 곁에 놓았습니다.열왕기하 16:14 · 두루새김

청동 제단은 예루살렘 성전의 기존 제단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을 때 청동 제단과 그 위에서 드리는 제사가 성전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습니다(열왕기상 8:64; 역대하 4:1).

본문은 청동 제단을 단순히 오래된 제단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 있던 청동 제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제단이 단순히 왕궁의 장식물이나 옮길 수 있는 공공시설이 아니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동의 의미는 바로 다음 절에서 분명해집니다.

모든 정기 제사가 새 제단으로 옮겨 가다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했습니다. 「새로 만든 큰 제단 위에서 아침 번제물과 저녁 곡식 제물, 나의 번제물과 곡식 제물, 이 나라 모든 백성의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태워 바쳐라. 백성이 바치는 술도 그 위에 부어라. 모든 번제물의 피와 그 밖에 잡아 바치는 모든 제물의 피도 그 위에 뿌려라. 청동 제단은 내가 뜻을 묻는 데 쓰겠다.」열왕기하 16:15 · 두루새김

청동 제단을 북쪽으로 옮긴 것은 단순한 공간 정리가 아니었습니다. 기존 제단이 맡고 있던 중심적인 역할을 새 제단으로 옮기는 조치였습니다.

아하스는 어느 제단을 어디에 놓을지 결정합니다. 어떤 제사를 어느 제단에서 드릴지도 결정합니다. 제사장에게 그 지시를 실행하게 합니다.

왕의 권한이 성전 예배의 구체적인 질서까지 지배하는 것입니다.

「청동 제단은 내가 뜻을 묻는 데 쓰겠다」

아하스는 백성의 일상적인 제사를 새 제단으로 옮기고, 청동 제단은 자신이 따로 처리하거나 사용하는 대상으로 두었습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이 명령한 모든 일을 그대로 했습니다.열왕기하 16:16 · 두루새김

11절에서 우리야는 왕이 보낸 「설계도대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16절에서도 그는 왕이 「명령한 모든 일을 그대로」 합니다. 원문에서는 두 자리 모두 왕이 보낸 모든 것, 왕이 명령한 모든 것을 따랐다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왕의 설계도가 실행되었고, 다음에는 왕의 예배 지침이 실행되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은 등장하지만, 그가 여호와야훼의 가르침을 근거로 왕에게 다른 길을 제시하는 모습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가 두려워서 순종했는지, 왕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왕이 요구한 새로운 예배 질서가 제사장의 손을 통해 성전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공동체라면, 일이 효과적으로 처리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결정이 옳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권위 있는 사람이 내린 명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명령이 언제나 정당한 것도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청동 제단은 내가 뜻을 묻는 데 쓰겠다」라는 말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레바케르는 살펴보다, 조사하다, 가려보다와 관련된 뜻을 가집니다. 문맥에 따라 어떤 일을 알아보거나 판단하는 행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청동 제단을 자신이 살펴보고 판단할 대상으로 남겨 두겠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그는 청동 제단을 이후에 어떻게 처리하거나 사용할지 아직 확정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청동 제단을 특별히 뜻을 묻거나 판단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청동 제단은 정기 제사와 별도의 기능을 맡게 됩니다. 본문만으로는 어느 의미가 확실한지 판정하기 어렵습니다.

성전의 기구들까지 바뀌다 — 아시리아 왕 때문에

열왕기하 16:17–18 본문 →

아하스의 변화는 제단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하스 왕은 물통 받침대들의 테두리를 잘라 내고, 그 위에 놓인 물통들을 치웠습니다. ‘바다’라고 부르는 큰 물통도 그것을 받치고 있던 청동 소들 위에서 내려, 돌을 깐 바닥에 놓았습니다.열왕기하 16:17 · 두루새김

이 기구들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마련한 것들입니다. 열왕기상 7:23–26에는 청동으로 만든 커다란 물 저장 시설이 등장합니다. 「바다」라고 불린 이 시설은 열두 마리의 청동 소가 받치고 있었습니다. 두루새김은 17절에서 이것을 「‘바다’라고 부르는 큰 물통」이라고 풀어 줍니다.

열왕기상 7:27–39에는 옮길 수 있는 받침대들과 물통들이 자세히 설명됩니다. 그것들은 제사와 관련된 성전의 물 사용을 위한 시설이었습니다.

아하스가 청동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뜯어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본문은 그 재료를 녹여 조공으로 바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솔로몬 시대부터 이어져 온 성전의 설비와 배치가 아하스에 의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무엇 때문에 성전 시설을 옮겼는가?

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세워 놓은 안식일용 덮개 시설과 왕이 드나드는 바깥 출입구도 성전에서 옮겼습니다. 아시리아 왕 때문이었습니다.열왕기하 16:18 · 두루새김

본문은 그 시설들을 바꾸라는 아시리아 왕의 직접적인 명령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두려워서 그랬는지, 아시리아 왕의 요구를 예상해서 그랬는지, 제국과의 관계에 맞춰 의식이나 드나드는 길을 바꾸려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하스의 성전 개조가 아시리아 왕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7절에서 아하스는 아시리아 왕에게 자신을 「종이며 아들」이라고 부르며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18절에서 그는 아시리아 왕 때문에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있는 시설들을 바꿉니다.

그는 외부의 위협에서 벗어나려고 강한 왕의 도움을 구했지만, 그 왕과의 관계는 예루살렘 성전 안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금 더 깊이

「안식일용 덮개 시설」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 무사크는 덮개나 가려 놓는 시설과 관련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건축 형태가 지붕 있는 통로였는지, 왕이 사용하는 특별한 자리였는지까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문장의 구조상 시설을 성전에서 옮겨 치웠다고 읽을 수도 있고, 왕이 다니는 길이나 시설의 배치를 성전 쪽으로 돌렸다고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왕은 죽었지만, 제단은 바뀐 채 남았다

열왕기하 16:1–20 본문 →

아하스의 마지막 기록은 간결합니다.

아하스는 죽어 다윗 성에 자기 조상들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그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열왕기하 16:20 · 두루새김

다윗 왕조는 계속됩니다.

그러나 왕조가 이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아하스가 남긴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열왕기하 16장은 아하스가 세운 제단을 철거했다거나, 옮겨 놓은 청동 제단을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16장은 아하스가 외국의 강한 왕에게 구원을 요청해서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만 묻지 않습니다. 그가 자신과 나라를 지키는 동안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무엇이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성읍은 지켰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 앞에 있던 제단은 제자리를 잃었습니다.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왕좌에 오른 뒤에도, 독자는 그 옮겨진 청동 제단을 기억하게 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