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21장
이 장의 자리 · 21–24장 · 기근·노래·용사·인구 조사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둔 뒤에야
사무엘하 21장은 기근으로 시작하여 전쟁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의 중심에는 살아남은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의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왕은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마주하고, 뒷부분에서는 살아 있는 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그 사이에서 다윗은 자신의 힘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오래된 죄의 책임을 해결해야 하고, 고통받는 사람의 행동에 귀 기울여야 하며, 자신이 더는 모든 전쟁을 직접 치를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 해의 기근 — 이미 죽은 왕의 죄가 살아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다
이야기는 다윗 시대에 삼 년 연속으로 먹을 것이 몹시 부족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윗 시대에 삼 년 연속으로 먹을 것이 몹시 부족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야훼께 묻자 여호와야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사울과 그의 집안에 사람을 죽인 죄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이다.」사무엘하 21:1 · 두루새김
기근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회에서 단순히 먹을 것이 부족한 문제가 아닙니다. 곡식의 수확이 줄어들면 가축을 기르기 어려워지고, 다음에 뿌릴 씨앗까지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근은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사무엘하 21–24장은 앞선 이야기의 시간적 흐름을 그대로 이어가기보다 다윗의 통치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모아 보여 주는 부분입니다. 21장도 「다윗 시대에」라는 넓은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따라서 이 기근이 압살롬과 세바의 반란 직후에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원문에서 히브리어 표현 와예바케시 다비드 에트 프네 여호와야훼는 문자 그대로 다윗이 여호와야훼의 얼굴을 구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그분의 뜻과 응답을 구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기근이 계속되자 다윗은 그것을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것이 모든 기근이나 자연재해가 특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일반 원칙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 특정한 기근의 원인을 직접 알려 주시기 때문에 그 관계가 성립합니다.
사울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시대에 저질러진 일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왜 기브온 사람들인가
왕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아모리 사람들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에게 맹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을 위하려는 열심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려 했습니다.사무엘하 21:2 · 두루새김
기브온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여호수아 9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기브온 사람들은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처럼 꾸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임을 확인하지 않은 채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의 속임수가 드러났지만,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 9:18–20). 그 언약은 기브온 사람들의 속임수로 시작되었지만, 한번 맺어진 맹세는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약속이 되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혈통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9:7에서는 히위 사람들로 소개되며, 사무엘하 21:2에서는 「아모리 사람들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불립니다. 이 두 표현은 민족을 나누는 방식이 다르거나 지역을 넓게 또는 좁게 부르는 데서 생긴 차이일 수 있지만, 정확한 관계를 이 구절들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을 위하려는 열심」이라는 위험한 이유
사울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그들을 공격한 것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에는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을 위하려는 열심」이라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구체적인 정책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없애려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사무엘상에도 이 학살이 구체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없애려 했고, 그 때문에 사람을 죽인 죄의 책임이 그의 집안에 남았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를 위한다는 명분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을 깨뜨릴 권리를 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열심이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약속을 무너뜨릴 때, 그 열심은 더 이상 믿음직함의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심판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혈통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피해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맺어 준 맹세가 있었고, 그 맹세가 깨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맺은 약속을 저버린 일이 땅 전체의 문제로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보신다는 사실은 그 백성이 다른 사람에게 행한 부당한 일을 무조건 덮어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약속을 지키도록 책임을 물으십니다.
「내가 무엇으로 이 죄를 씻어야 할까요?」 — 그러나 누가 그 값을 치러야 하는가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묻습니다.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여호와야훼의 유산에 복을 빌도록, 내가 무엇으로 이 죄를 씻어야 할까요?」사무엘하 21:3 · 두루새김
기브온 사람들이 당한 피해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자 합니다. 동시에 「여호와야훼의 유산」인 이스라엘 땅이 다시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기근을 해결하려면 먼저 깨어진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저희가 사울과 그의 집안에 요구하는 것은 은이나 금이 아닙니다. 또 저희에게는 이스라엘에서 사람을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나요? 내가 해 주겠어요.」사무엘하 21:4 · 두루새김
그들은 사울의 자손 가운데 남자 일곱 명을 넘겨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을 사울의 성읍 기브아에서 여호와야훼를 위해 매달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죄를 왜 그의 자손들이 죽음으로 책임져야 합니까?
이 장에서 가장 어려운 신학적 문제
하나님께서는 기근의 원인이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는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일곱 명을 죽이라고 요구한 것은 기브온 사람들이며, 그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다윗입니다.
한쪽에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왕가가 왕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상황으로 이해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이 밝히신 죄의 원인과 인간들이 선택한 처형 방식을 구별하며, 이 사건 안에도 해결되지 않은 도덕적 문제가 남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처형된 일곱 명이 각자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지운 채 이 사건을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정의로운 처벌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서는 이 장에서 인간의 죄가 한 세대에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무거운 현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무게를 인정하는 것과 자손들이 죽어야 마땅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이 죄를 씻어야」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는 카파르입니다. 죄를 씻는 제사와 관련된 문맥에서도 쓰이지만, 잘못을 바로잡고 책임을 해결하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제사장에게 제물을 가져가라는 명령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묻는 행동과 연결됩니다. 4절의 두 번째 부분은 원문상 해석이 갈립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을 죽일 법적 권한이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자신들이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구약에서 완전함이나 충만함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로 사용되곤 합니다. 따라서 일곱 명을 요구한 일이 사울 집안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고 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왜 하필 일곱 명이어야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울의 학살로 죽은 기브온 사람의 숫자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물론 9절에서는 일곱 명이 「여호와야훼 앞에」 매달려 죽고, 14절에서는 그 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결 때문에 처형을 죄를 씻는 과정의 일부로 이해하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신명기 24:16은 아버지의 죄 때문에 자녀를 죽이거나 자녀의 죄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지 말고, 각 사람을 자신의 죄로 인해 죽여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에스겔 18:20도 아들이 아버지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아버지가 아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합니다. 반면 여호수아 7장에서 아간의 죄는 공동체 전체에 재앙을 가져오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출애굽기 20:5에서도 죄의 결과가 여러 세대에 미치는 문제가 언급됩니다. 이 본문들은 각기 다른 상황을 다루며, 개인이 범죄에 대해 져야 할 책임과 공동체가 겪는 죄의 결과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무엘하 21장의 어려움을 단순히 어느 한 구절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지켜진 맹세와 희생된 후손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일곱 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을 제외합니다.
그러나 왕은 사울의 손자이며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살려 두었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는 여호와야훼를 두고 한 맹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사무엘하 21:7 · 두루새김
기브온 사람들과 맺었던 맹세는 사울이 깨뜨렸습니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맹세는 다윗이 지킵니다. 사무엘상 20:14–17에서 요나단은 자신의 집안에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 달라고 다윗에게 요청했고, 두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절을 읽으면 그 선택이 더욱 복잡해집니다.
왕은 아야의 딸 리스바가 사울에게 낳아 준 두 아들, 아르모니와 므비보셋을 데려왔습니다. 또 사울의 딸 미갈이 므홀라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에게 낳아 준 다섯 아들을 데려왔습니다.사무엘하 21:8 · 두루새김
7절의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 곧 사울의 손자입니다. 8절의 므비보셋은 리스바가 사울에게 낳은 아들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서로 다른 인물입니다.
한 사람은 살아남고, 다른 한 사람은 처형당합니다.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맹세는 그의 아들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리스바의 아들에게는 그러한 보호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본문은 다른 일곱 명이 왜 그 사람들로 선택되었는지에 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요나단의 아들은 살려 두었으므로 다윗의 선택 전체가 공정했다고 결론 내리기도 어렵습니다.
보리 추수가 시작될 때
왕은 이들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산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그들을 매달아 죽였습니다. 일곱 사람이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한 때는 곡식을 거두기 시작할 무렵, 곧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였습니다.사무엘하 21:9 · 두루새김
보리를 거두는 때는 그 땅의 농사 주기에서 이른 추수에 속합니다. 기근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여기서 풍성한 수확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추수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곡식을 거두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울 집안의 일곱 시신입니다.
오히려 이야기의 중심은 한 여인에게 옮겨 갑니다.
그녀는 처형된 사람들 가운데 두 아들의 어머니입니다.
조금 더 깊이
8절에는 원문이 전해져 온 과정과 관련하여 중요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18:19에서는 사울의 딸 가운데 아드리엘과 결혼한 사람이 미갈이 아니라 메랍이라고 기록합니다. 또 사무엘하 6:23은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녀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일부 히브리어 사본과 칠십인역의 일부 전승, 시리아어 역본에는 「메랍」이라는 읽기가 전해집니다. 반면 마소라 본문과 칠십인역의 주요 전승에는 「미갈」이 나타납니다. 메랍으로 읽으면 사무엘상 18:19의 결혼 기록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반면 미갈이라는 읽기를 유지하면서 다섯 아이를 미갈이 직접 낳은 자녀가 아니라 돌보아 기른 자녀로 해석하는 전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일반적인 표현 자체는 낳았다는 뜻이므로, 길렀다는 설명을 원문에 직접 기록된 사실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메랍이 원래의 이름이었다가 베껴 쓰는 과정에서 미갈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전해지는 본문만으로 모든 문제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리스바 — 죽은 아들들 곁을 떠나지 않은 어머니
사무엘하 21장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은 리스바의 행동입니다.
아야의 딸 리스바는 거친 베를 가져다가 바위 위에 펼쳐 두었습니다. 곡식을 거두기 시작할 때부터 시신들 위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질 때까지, 낮에는 새들이 시신 위에 내려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습니다.사무엘하 21:10 · 두루새김
리스바는 사울의 첩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앞서 사무엘하 3:7에서도 등장합니다.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사울의 첩 리스바와 관계를 맺은 문제를 따졌던 사건입니다.
그때 리스바는 왕권을 둘러싼 남자들의 갈등 속에서 언급되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녀의 아들들은 왕가의 정치적 책임을 해결한다는 이유로 처형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리스바 자신이 행동합니다.
거친 베는 슬픔을 나타내고 죽음을 애도하는 데 사용되던 옷감입니다. 리스바는 그것을 자신의 자리에 펼쳐 놓고 시신들 곁에 머뭅니다.
날이 바뀌고 밤이 찾아올 때마다 리스바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리스바는 무엇을 요구했는가
그녀는 다윗에게 찾아가 항의하지 않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에게 시신을 내려 달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행동으로 정확히 어떤 정치적 요구를 전달하려 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처형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의 몸은 아직 땅에 묻히지 않았습니다.
리스바는 그 상태를 자신의 몸으로 견딥니다.
리스바가 지킨 것은 죽은 자들의 존엄이다
리스바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처형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공동체 앞에 드러냅니다.
죽은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내려진 처분에 항의할 수도 없고, 자신의 시신을 거두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리스바는 그들 곁에 남습니다.
그녀는 죽은 사람들의 생명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왕의 결정을 취소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몸으로 남지 않도록 지킬 수는 있습니다.
리스바는 아들들을 살릴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죽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존중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처럼 취급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녀가 지키는 것은 시신이지만, 그 행동은 살아 있던 사람들의 존엄을 향해 있습니다. 그들이 왕가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처형되었더라도, 그들의 몸은 여전히 애도받고 묻혀야 할 몸입니다.
리스바가 한 일이 다윗에게 전해졌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소식이 왕을 움직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행동이 얼마나 오래 계속되었는지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곡식을 거두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질 때까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몇 주 또는 몇 달이 지났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신명기 21:22–23에서는 처형되어 나무에 매달린 사람의 시신도 밤새 그대로 두지 말고 그날 묻으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과 연결됩니다. 다만 원문이 가리키는 정확한 처형 방식과 시신을 어떻게 매달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의 해당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때 어떤 법적 문제가 발생하는지 세부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뼈까지 거두어 장사한다
리스바의 행동을 들은 다윗은 뜻밖의 일을 합니다.
그는 처형된 일곱 명의 시신만 거두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뼈까지 찾아옵니다.
다윗은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에게 가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져왔습니다.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길보아에서 사울을 쳐 죽인 날,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벳산 광장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은 그곳에서 두 사람의 시신을 몰래 가져왔던 것입니다.사무엘하 21:12 · 두루새김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울의 시신을 거두어 온 데에는 과거의 인연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1장에서 사울은 암몬 사람들에게 위협받던 야베스 길르앗을 구했습니다. 사울의 죽음 이후 그들은 자신들을 구했던 왕에게 마지막 충성을 베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뼈는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던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의 손에 거두어져 묻혀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뼈를 가져와 사울의 가족 무덤에 다시 묻습니다. 그리고 처형당한 일곱 명의 뼈도 거둡니다.
리스바의 행동이 다윗을 바꾸었는가
먼저 리스바가 시신들을 지킵니다. 그 행동이 다윗에게 전해집니다. 그다음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가져오고 처형당한 사람들의 뼈도 거두어 묻습니다. 이 배열은 리스바의 행동이 다윗의 장례 조치에 영향을 주었다는 읽기를 강하게 뒷받침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죄 때문에 기근이 일어났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왕입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에 하는 일은 사울 집안의 죽은 사람들을 함께 묻는 일입니다.
사울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과 죽은 사울의 몸을 존중하는 일은 같은 사건 안에서 함께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언제 그 땅을 위한 간구를 받아들이셨는가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베냐민 땅 셀라에 있는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덤에 묻었습니다. 그들은 왕이 명령한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받아들이셨습니다.사무엘하 21:14 · 두루새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일곱 명이 처형된 직후에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리스바의 긴 애도와 다윗의 장례 조치를 기록한 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받아들이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무엘하 21장의 회복은 단순히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라는 문제까지 지나간 뒤에야 마무리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다윗이 정확히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왜 사울과 요나단의 뼈까지 옮기기로 결정했는지는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리스바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고, 사울 집안 전체의 장례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어느 하나를 확정적인 동기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10절에는 이미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는 말이 나오므로, 비가 내린 시점과 14절의 기도를 받아들이신 시점을 단순히 동일한 순간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 비가 기근의 끝을 알리는 비였는지, 정확히 어느 시점에 기근이 끝났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한쪽에서는 기브온 사람들과 맺은 언약을 어긴 책임이 처형을 통해 해결되었고, 장례는 그 과정을 마무리하는 행동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처형만으로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며, 죽은 사람들을 거두어 제대로 묻는 일이 회복의 중요한 부분으로 제시된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두 관점은 반드시 서로를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본문이 처형과 장례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기근 해결의 유일한 조건으로 밝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처형을 기록하고, 리스바의 애도를 보여 주고, 다윗의 장례를 기록한 다음 하나님의 응답을 전합니다.
다시 전쟁터에 선 다윗 — 이번에는 그가 구원받는다
14절에서 기근과 장례 이야기가 끝나면,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는 전쟁 기록이 시작됩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다가 지쳤습니다.사무엘하 21:15 · 두루새김
젊은 다윗은 골리앗 앞에 나서서 블레셋 사람을 쓰러뜨렸습니다(사무엘상 17장). 그는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에도 전쟁을 치렀고, 왕이 된 뒤 여러 민족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보여 주었던 힘과 달리, 지금 그는 적과 싸우다가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질 만큼 지쳐 있습니다.
그때 라파의 후손 가운데 이스비브놉이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의 청동 창날은 무게가 삼백 세겔이고, 새 무기를 차고 있습니다. 이스비브놉은 강력한 전사이며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윗이 그를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등불을 꺼뜨리지 마십시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그때 다윗의 부하들이 왕에게 맹세하며 말했습니다. 「다시는 저희와 함께 전쟁에 나가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의 등불을 꺼뜨리지 마십시오.」사무엘하 21:17 · 두루새김
등불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고, 사람들이 길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존재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왕이 살아 있는 것이 이스라엘 전체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지 한 명의 뛰어난 전사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세우신 왕이며, 이스라엘 공동체가 의지하고 있는 중심 인물입니다.
여기서 등불이라는 이미지는 생명이 이어지고 왕조가 계속된다는 의미로도 넓혀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1:36에서는 다윗을 위해 예루살렘에 등불이 남도록 하신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등불이라는 말은 다윗 개인의 싸우는 능력만이 아니라, 그의 왕권이 이스라엘에게 지니는 의미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등불이 되는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더 이상 자신이 모든 싸움에서 직접 승리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왕의 역할이 달라진 것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왕이 모든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합니다. 그는 계속 왕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 역할이 반드시 전쟁터 맨 앞에서 칼을 드는 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가 더 이상 모든 전투를 직접 치르지 못한다고 해서 왕으로서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이스라엘을 위한 더 알맞은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삼백 세겔은 상당한 무게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다만 원문에는 그 무게의 단위가 나와 있지 않아, 두루새김은 앞뒤 내용을 따라 세겔을 보충했습니다. 「새 무기」도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원문에는 ‘새것’이라는 표현만 남아 있어 칼이나 다른 장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해석들이 있습니다.
다윗의 전쟁이 부하들의 전쟁으로 이어지다
이어서 블레셋과의 전쟁 네 건이 차례로 기록됩니다.
첫 번째는 앞서 이스비브놉과의 전투입니다. 그다음에는 후사 사람 십브개가 라파의 후손 삽을 죽입니다. 세 번째 전투에서는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입니다. 네 번째 전투에서는 다윗의 조카 요나단이 손과 발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씩 있는 거대한 전사를 죽입니다.
적들은 모두 라파의 후손으로 연결됩니다. 반면 적을 쓰러뜨리는 사람들은 다윗의 부하들입니다.
라파의 후손은 누구인가
히브리어 라파(רָפָא)는 한 조상의 이름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거대한 체격을 가진 집단을 가리키는 표현과 관련지어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라파가 정확히 한 사람의 이름인지, 그러한 전사 집단이나 혈통을 가리키는 말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가드와 관련된 강력한 블레셋 전사들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전사는 손과 발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씩 모두 스물네 개였다고 기록됩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그의 특이한 몸의 특징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가 몸의 특징 때문에 특별한 죄를 지었거나 하나님께 저주받은 존재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죽임을 당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조롱하며 적대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은 누가 죽였는가
곱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베들레헴 사람 야아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쳐 죽였습니다. 골리앗의 창 자루는 베틀의 가로대 같았습니다.사무엘하 21:19 · 두루새김
사무엘상 17장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21:19의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인 것으로 나옵니다. 이 두 기록은 쓰인 말만 보면 서로 맞지 않습니다.
다윗의 시대에는 다윗 자신 외에도 강력한 블레셋 전사들을 쓰러뜨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다윗 혼자 싸우지 않는다
이 네 사람은 가드에서 태어난 라파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죽었습니다.사무엘하 21:22 · 두루새김
이 장에서 다윗은 직접 적을 죽이는 영웅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하의 도움으로 죽음을 피합니다. 그런데도 마지막은 그 승리들을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함께 속한 것으로 말합니다.
왕의 승리가 반드시 왕 개인의 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윗의 군대가 이룬 승리는 그의 통치와 연결됩니다. 동시에 그 승리는 실제로 싸웠던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십브개와 엘하난과 요나단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싸웠고, 강한 적들을 쓰러뜨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왕권이 계속된다는 것은 다윗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해내면서 공동체를 지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상에서는 엘하난이 죽인 사람이 골리앗 자신이 아니라 그의 형제 라흐미라고 기록합니다. 또 엘하난의 아버지 이름도 사무엘하와 역대상에서 다르게 전해집니다. 이 차이를 설명하는 주요한 읽기는 둘입니다. 첫째, 사무엘하의 본문이 베껴 쓰는 과정에서 달라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베들레헴 사람」과 「라흐미」의 히브리어 자음 형태가 서로 관련되어 있고, 「베틀」이라는 단어와 연결된 표현도 겹쳐 쓰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역대상 20:5의 읽기가 본래의 내용을 더 잘 간직했을 수 있습니다. 둘째, 사무엘하와 역대상이 서로 다르게 전해져 온 이야기를 담고 있거나, 역대상이 앞선 기록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썼다고 보는 것입니다. 현재 전해지는 두 본문만으로 어느 쪽이 원래의 형태였는지 완전히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맺음 — 한 사람은 밤새 지켰고, 다른 사람들은 왕을 지켰다
리스바는 죽은 사람들이 더 이상 모욕당하지 않도록 지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살아 있는 왕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킵니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왕이 이기는 일만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들을 함부로 버려두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꺼지지 않도록 서로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다윗은 더 이상 혼자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젊은 전사가 아닙니다. 그의 부하들이 강한 적들을 쓰러뜨립니다. 이스라엘의 등불은 여전히 타고 있지만, 그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이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앞부분, 기브온 사람들의 처형장 가까운 바위 위에는 리스바가 펼쳐 놓았던 거친 베가 있습니다. 그녀는 하늘에서 비가 쏟아질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죽은 사람들의 뼈가 거두어졌고, 사울과 요나단도 조상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사무엘하 21장은 왕의 영광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을 지킨 어머니의 오래된 기다림을 기억하게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