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5–20장 · 압살롬의 반란

성읍을 구한 여자와 살아남은 살인자

사무엘하 20장은 두 번의 뿔나팔 소리 사이에서 전개됩니다.

처음에는 왕을 떠나라는 소리에 사람들이 흩어지고, 마지막에는 전쟁을 끝내라는 소리에 사람들이 흩어집니다. 그 사이에서 두 사람이 죽고, 한 성읍이 파괴될 뻔합니다. 한 사람은 왕의 군대 지휘관이었던 아마사이고, 다른 사람은 반란을 일으킨 세바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무엘하 20장은 단순히 세바의 반란과 진압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나라의 질서가 회복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한 사람이 가진 권력과 지혜로운 사람이 행사하는 영향력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읽는 시간 25분소단락 1020장 본문 읽기 →

열 몫이 있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몫이 없다고 말한다

사무엘하 20:1–2 본문 →

새로운 반란은 뜻밖에 빠르게 시작됩니다.

마침 그곳에 세바라는 몹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그리의 아들로 베냐민 사람이었습니다. 세바가 뿔나팔을 불며 외쳤습니다. 「다윗에게는 우리 몫이 없다! 이새의 아들에게는 우리 유산이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돌아가라!」사무엘하 20:1 · 두루새김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왕에 대해 열 몫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19:44). 유다 사람들이 다윗과의 혈연관계를 강조하자, 자신들은 더 많은 지파를 대표한다고 맞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바는 정반대의 선언을 합니다.

앞에서는 다윗에게 더 큰 몫을 요구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다윗에게 아무 몫도 없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더 큰 몫을 요구하던 갈등이, 아무 몫도 갖지 않겠다는 결별로 바뀐 것입니다.

그는 다윗을 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새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왕권을 부정하는 선언 속에 놓여 있습니다.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기보다 특정 집안의 아들로 낮추어 부르는 효과를 냅니다.

그는 왕과 백성의 관계를 다시 협상하자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통치 방식을 제안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돌아가라고 합니다.

‘자기 천막으로 돌아가라’는 말의 위험

「이스라엘 사람들아,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은 단순히 집에 가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더 이상 다윗을 중심으로 한 정치 공동체에 참여하지 말라는 선언입니다.

이 말은 훗날 열왕기상 12:16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불만을 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에게 자기들의 몫이 없다고 선언하며 각자 천막으로 돌아가라고 외칩니다. 사무엘하 20장에서는 세바의 반란이 진압되지만, 열왕기상 12장에서는 이러한 결별의 외침이 왕국의 분열로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사무엘하 20장이 후대의 분열을 직접 예언하는 본문이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같은 말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다윗 왕조와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 존재했던 긴장이 얼마나 오래 이어진 문제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다윗을 떠나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은 요단강에서 예루살렘까지 자기들의 왕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사무엘하 20:2 · 두루새김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따랐다는 표현은 이야기 속에서 두 집단이 갈라지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이후의 사건에서 이스라엘 지역의 모든 사람이 세바를 끝까지 지지한 것은 아닙니다.

압살롬의 반란이 끝난 직후 나라가 다시 갈라집니다.

세바는 많은 군대를 준비해서 반란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존재하던 불만을 한마디로 모아 행동하게 했습니다. 세바가 사람들을 선동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용한 갈등은 자신이 처음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돌아오는 과정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은 이미 서로를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세바의 반란은 그 갈등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드러냅니다.

조금 더 깊이

서술자는 그를 처음부터 「몹쓸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단순히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성격이 거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강한 부정적 평가입니다. 사무엘상 2:12에서는 엘리의 아들들이 이 표현으로 불리고, 사무엘상 25:17에서는 나발의 성품을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왕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열 명의 여자는 돌아갈 곳을 잃었다

사무엘하 20:3 본문 →

다윗은 마침내 예루살렘의 왕궁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왕궁의 회복을 기념하는 행사를 보여 주지 않습니다. 대신 첩 열 명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의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왕은 왕궁을 지키라고 남겨 두었던 첩 열 명을 감시받는 집에 두었습니다. 먹을 것은 대 주었지만 그들과 잠자리를 같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여자들은 죽는 날까지 갇혀 지내며, 남편이 살아 있는데도 남편을 잃은 여자처럼 살았습니다.사무엘하 20:3 · 두루새김

이 열 명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왕궁에 남겨 두었던 여자들입니다(15:16). 그들은 압살롬의 반란 과정에서 공개적인 성적 침해와 굴욕을 당했습니다(16:21–22). 아히도벨은 그들을 이용해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권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도록 조언했습니다.

살아 있는데 과부가 된 사람들

여기서 가장 불편한 사실은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이런 처지에 놓였다고 본문이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왕궁을 지키도록 남겨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압살롬이 그들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이제 다윗이 그들을 따로 가둡니다.

다윗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은 자기 집을 되찾는 일이었지만, 이 여자들에게는 같은 집 안에서 평생 갇혀 지내는 삶이 시작되는 일이었습니다.

서술자는 반란의 승패와 무관하게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여자들의 이야기에는 어떤 해결의 장면도 뒤따르지 않습니다. 이름도, 대화도, 이후의 변화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과 피해자들의 삶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의 마지막 표현은 히브리어로 알메누트(⁨אַלְמָנוּת⁩) 하유트(⁨חַיּוּת⁩)입니다. 글자 그대로는 ‘살아 있는 과부의 상태’라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다윗이 왜 그들과 다시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기로 했는지는 직접 설명되지 않습니다. 압살롬이 그들을 범했기 때문에 다시 가까이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고, 왕실의 정치적 문제나 관습을 고려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을 본문이 분명히 밝힌 하나님의 율법이나 피할 수 없는 의무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새 지휘관 아마사는 늦고, 다윗은 다시 요압의 사람들을 사용한다

사무엘하 20:4–7 본문 →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윗은 아마사를 부릅니다.

왕이 아마사에게 말했습니다. 「사흘 안에 유다 군사들을 내게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에 와 있어라.」사무엘하 20:4 · 두루새김

아마사는 압살롬의 반란군을 지휘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앞 장에서 그를 요압 대신 자신의 군대 지휘관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19:14). 이제 그 약속을 실제로 실행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사는 정해진 기간 안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본문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유다 군사들을 모으는 일이 예상보다 어려웠을 수도 있고, 새롭게 임명된 지휘관으로서 군대를 이끄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사가 일부러 늦었거나 다윗을 배신하려 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다윗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에게 더 큰 해를 끼칠 것이다. 너는 내 부하들을 데리고 그를 뒤쫓아라. 그가 성벽이 튼튼한 성읍들을 찾아 우리 추격을 피할지 모른다.」사무엘하 20:6 · 두루새김

압살롬에게는 왕실의 후계자로서 명성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세바는 갑자기 등장한 인물입니다. 반란이 지파들 사이에 퍼지고, 성읍들의 방어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진압이 훨씬 어려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세바가 세력을 굳히기 전에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그는 아마사를 더 기다리는 대신 아비새에게 군사를 이끌고 세바를 뒤쫓으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지금도 공식적인 명령은 요압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 출동 장면을 보면 상황이 복잡합니다.

요압의 부하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 모든 용사가 아비새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사무엘하 20:7 · 두루새김

요압이 공식 지휘관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그가 쌓아 온 군사적 영향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왕이 지휘관을 바꾸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과 실제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쥐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마사가 군대 앞에 나타납니다.

'형제여, 잘 지내요?' — 평안의 인사가 살인의 도구가 되다

사무엘하 20:8–10 본문 →

군대가 기브온의 큰 바위 곁에 이르렀을 때 아마사가 나타납니다.

8절은 그가 옷을 동여매고 그 위에 띠를 둘러 칼을 허리에 찼는데, 앞으로 나아가자 칼이 빠져 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요압은 칼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요압이 아마사에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잘 지내요?」 요압은 아마사에게 입을 맞추려고 오른손으로 그의 수염을 잡았습니다.사무엘하 20:9 · 두루새김

두 사람은 실제로 친척입니다. 아마사의 어머니 아비갈과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는 자매로 소개됩니다(17:25). 따라서 그들은 어머니 쪽으로 사촌 관계입니다.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려는 행동은 가까운 관계를 나타내는 친근한 인사처럼 보입니다.

아마사는 요압의 손에 든 칼을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은 그 칼로 아마사의 배를 깊이 찔렀습니다. 아마사는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죽었습니다. 요압과 그의 형제 아비새는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았습니다.사무엘하 20:10 · 두루새김

인사는 살인을 위한 접근이 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아브넬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사무엘하 3:27에서 요압은 아브넬을 성문 안쪽으로 따로 데려가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그의 배를 찔러 죽였습니다. 두 사건의 구체적인 동작은 다르지만, 살해 방식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요압은 전투 중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을 신뢰하거나 경계하지 않는 순간을 이용합니다.

또한 두 사건 모두 그의 정치적·군사적 지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브넬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던 인물로서 다윗과 화해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사는 다윗이 요압 대신 새롭게 지휘관으로 세우려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이 두 사람을 죽인 정확한 속마음이 모두 같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넬의 경우 요압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과거가 있었고(3:30), 아마사의 경우에는 군대를 지휘할 권한을 둘러싼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만 두 사건 모두 요압이 왕의 정치적 결정과 관계없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중요한 인물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형제라는 말이 지켜 주지 못한 생명

다윗은 유다 사람들을 설득하며 그들을 자신의 뼈와 살이라고 불렀습니다(19:13). 아마사에게도 같은 혈연관계를 강조하며 지휘관 자리를 약속했습니다. 이제 요압은 아마사를 「형제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말은 곧 살인으로 뒤집힙니다.

이야기 속에서 친척 관계가 반복해서 언급되지만, 그것이 서로를 믿을 수 있게 하거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압살롬의 반란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무너뜨린 사건이었습니다. 아마사의 죽음 역시 실제 혈연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배신입니다.

형제라고 부르는 것과 형제에게 믿음을 지키며 행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기브온은 다윗의 통치 초기에도 피를 흘리는 충돌이 벌어졌던 장소입니다. 사무엘하 2:12–17에서 아브넬의 군대와 요압의 군대가 기브온 못 곁에서 맞붙었습니다. 요압이 일부러 칼을 떨어뜨려 아마사를 속였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지만, 원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문장은 칼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요압이 일부러 떨어뜨렸는지, 어떻게 다시 손에 쥐었는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가 칼을 이용하여 아마사를 찌른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칼이 떨어진 순간의 정확한 동작까지 되짚어 그릴 수는 없습니다.

큰길 가운데 남겨진 아마사의 시신

사무엘하 20:11–13 본문 →

아마사는 죽었지만 군대는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요압의 부하 한 사람이 아마사 곁에 서서 외쳤습니다. 「요압을 지지하는 사람은 누구든, 다윗 편에 선 사람은 누구든 요압을 따라가라!」사무엘하 20:11 · 두루새김

요압을 지지하는 것과 다윗의 편에 서는 것이 같은 행동처럼 제시됩니다. 다윗은 아마사를 새 지휘관으로 세웠습니다. 요압은 그 아마사를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요압을 따르는 것이 곧 왕이 지휘관을 세운 명령을 존중하는 행동은 아닙니다.

이것은 군사들의 선택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정치적 언어입니다. 왕을 위한 행동이라는 명분 아래, 왕의 명령을 어긴 지휘관에게 다시 군사들이 모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 군사들은 멈춰 섰는가

아마사의 시신은 큰길 한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군사들이 그곳에 이르자 멈춰 섭니다. 그들이 충격을 받아서 멈췄는지, 자신들의 지휘관이 죽은 상황에서 누구를 따라야 할지 혼란스러웠는지, 길이 막혀서 멈췄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요압의 부하는 아마사의 시신을 길에서 들판으로 옮기고 그 위에 옷을 덮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이 다시 요압을 따라갑니다.

아마사가 왜 죽었는지 조사하지 않습니다. 요압을 체포하지도 않습니다. 시신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기고 나서 추격을 계속합니다.

살인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살인의 흔적이 행군을 방해하지 않도록 치워진 것입니다.

요압은 왕의 공식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지만, 실제로 군대를 움직이는 사람이 됩니다. 그가 지휘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살인은 그 자리에서 책임을 묻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바를 쫓던 군대가 성읍 전체를 무너뜨리려 한다

사무엘하 20:14–15 본문 →

세바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 지역을 지나 아벨 벳마아카에 이릅니다.

아벨 벳마아카는 이스라엘 북쪽 지역에 있는 성읍으로, 열왕기상 15:20에도 등장합니다. 세바는 아벨 벳마아카로 들어갔고, 요압의 군대는 그곳까지 뒤쫓습니다.

군대는 성읍을 에워쌉니다.

그들은 흙을 높이 쌓아 올려 성벽에 접근하고,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들이칩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바 한 사람을 붙잡기 위해 성읍 전체가 파괴될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전쟁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성읍 안의 모든 사람이 세바의 반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압의 군대는 성읍 전체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반란 진압이라는 정당한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는 방법 사이에 긴장이 생깁니다.

서술자는 요압의 성읍 공격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보여 준 뒤, 전혀 다른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그녀는 군대를 이끌지 않습니다.

성벽 위에서 말을 건넵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은 지명과 집단 이름을 가려 읽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베리 사람」이 정확히 어떤 집단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특정 씨족이나 지역 사람들을 가리킬 수도 있고, 다른 이름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달라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대의 성읍 공격에서 공격군은 성벽에 가까이 가기 위해 흙이나 돌로 경사로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높은 성벽을 직접 공격하기 어려우므로 공격 장비와 군사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자 — 싸우기 전에 물어보라는 성읍의 기억

사무엘하 20:16–19 본문 →

한 여자가 성읍에서 외칩니다.

한 지혜로운 여자가 성읍에서 외쳤습니다. 「들어 보세요, 들어 보세요! 요압에게 『이쪽으로 가까이 와 주세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하고 전해 주세요.」사무엘하 20:16 · 두루새김

이것은 사무엘하 14장에 등장했던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드고아의 여자는 요압이 마련한 계획에 따라 다윗에게 접근하여 압살롬이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여자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녀는 요압의 부탁을 받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압의 군대가 자신의 성읍을 공격하자 직접 요압을 불러냅니다. 왕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내진 여자가 아니라, 자기 성읍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나선 여자입니다.

요압이 가까이 오자 여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요압인가요?」 요압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요압이에요.」 여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종인 제 말을 들어 주세요.」 요압이 대답했습니다. 「듣고 있어요.」사무엘하 20:17 · 두루새김

조금 전까지 요압의 군대는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말을 걸자 요압은 공격 명령만 반복하지 않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벨에서 꼭 물어보아라’

여자는 옛말을 꺼냅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아벨에서 꼭 물어보아라』 하고 말했어요. 그렇게 해서 일을 해결했어요.」사무엘하 20:18 · 두루새김

이 말은 정확히 어떤 옛 관습이나 사건을 가리키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아벨이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조언을 구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압은 그 성읍에 물어보지도 않고 성벽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여자의 말에는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물어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에서 평화롭게 살며 신의를 지키는 사람 가운데 하나예요. 그런데 당신은 이스라엘에서 어머니 같은 성읍을 죽이려 하고 있어요. 왜 여호와야훼의 유산을 삼키려 해요?」사무엘하 20:19 · 두루새김

여자는 성읍을 단순한 건축물이나 군사적 목표로 보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공동체로서 지닌 역사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읍은 왜 ‘어머니’인가

여기서 어머니는 한 개인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성읍 자체를 공동체를 돌보고 유지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로 부르는 표현입니다. 여자는 요압에게 성읍을 공격하면 단지 성벽 하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어머니와 같은 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땅과 공동체가 하나님께 속한 유산이라는 생각은 단순히 땅을 재산으로 소유할 권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주신 땅이며, 그분의 통치와 약속 아래 있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여자는 성읍을 지키기 위해 성읍의 힘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 성읍이 하나님께 속한 유산이라는 사실을 내세웁니다. 그가 다윗 왕을 위해 싸우고 있다면, 그 다윗 왕이 다스리는 백성과 성읍 역시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왕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으로 왕이 돌보아야 할 백성을 파괴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무엘하 20장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나타나 말씀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반란을 어떻게 진압하라고 명령하시지도 않고, 요압의 살인을 직접 심판하시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는 중요한 자리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여자의 질문입니다.

여자는 성읍이 요압이나 다윗의 마음대로 파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왕과 장군의 권력을 제한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자기 백성을 자기 소유물처럼 다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맡기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 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왕의 이름이나 권위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께 속한 백성과 그들이 살아가는 공동체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평안이라는 말과 평화를 만드는 행동

요압은 아마사에게 「잘 지내요?」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러나 그 인사 뒤에 칼이 따라왔습니다. 지혜로운 여자는 자신이 평화롭게 살며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 뒤에는 성읍 전체의 파괴를 멈추게 하는 협상이 이어졌습니다.

요압이 「잘 지내요?」라고 안부를 묻는 말과 여자가 자신을 설명할 때 사용한 「평화롭게」라는 말은 원문에서 모두 히브리어 샬롬(⁨שָׁלוֹם⁩)과 연결되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실제 행동은 정반대입니다.

평안을 말하는 것과 평안을 이루는 것은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여자가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명기 20:10에서 성읍을 공격하기 전에 평화를 제안하라고 명령하는 내용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여자가 그 율법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쟁의 목적과 방법을 구별하고, 성읍 전체를 파괴하기 전에 다른 해결의 길을 찾는다는 점에서 관련이 있습니다. 사사기 5:7에서 드보라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일어났다고 노래합니다. 그 표현과 이 장의 표현이 정확히 같은 역할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라는 말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생명과 보호를 나타내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신명기 17:18–20에서 왕에게 율법을 읽고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도 이러한 관점과 연결됩니다. 왕은 자기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여서는 안 되며, 주어진 말씀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합니다.

요압은 성읍을 파괴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조건을 제시합니다

사무엘하 20:20–22 본문 →

요압은 즉시 반박합니다.

요압이 대답했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절대로요! 제가 이 성읍을 삼키거나 무너뜨리다니요!」사무엘하 20:20 · 두루새김

그런데 독자는 바로 앞에서 그의 군대가 성벽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이 성읍의 파괴가 아니라 세바를 붙잡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아니에요. 에브라임 산지에서 온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는 사람이 다윗 왕께 맞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그 사람만 넘겨주세요. 그러면 제가 이 성읍에서 물러갈게요.」 여자가 요압에게 말했습니다. 「그의 머리를 성벽 너머로 당신에게 던져 줄 거예요.」사무엘하 20:21 · 두루새김

처음에는 성읍 전체를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성읍과 협상하여 반란을 이끈 사람만 넘겨받으려 합니다.

여자의 말이 요압의 행동을 바꾼 것입니다.

다만 이 합의를 완전히 평화로운 해결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녀는 성읍을 살리기 위해 세바를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여자는 성읍의 모든 사람에게 가서 지혜롭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졌습니다. 요압이 뿔나팔을 불자 군사들은 성읍에서 물러나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흩어졌습니다. 요압은 예루살렘에 있는 왕에게 돌아갔습니다.사무엘하 20:22 · 두루새김

여자가 성읍 사람들에게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녀가 어떻게 설득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성읍의 모든 사람에게 가서 「지혜롭게 말했습니다」라고만 말합니다.

지혜로운 행동인가, 잔혹한 타협인가

한편으로 여자는 성읍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전쟁을 멈추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행동은 지혜로운 해결로 제시됩니다. 본문도 그녀가 「지혜롭게」 말했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세바는 재판을 거쳐 처형된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 세바가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기회를 얻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행동을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정의의 실현이라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 여자의 지혜는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낸 지혜가 아니라, 이미 폭력이 닥친 상황에서 더 큰 파괴를 막아 낸 지혜입니다.

두 번째 뿔나팔

세바는 뿔나팔을 불며 사람들을 다윗에게서 떠나게 했습니다. 요압은 뿔나팔을 불며 군사들을 전쟁터에서 떠나게 합니다. 처음에는 공동체를 갈라놓는 소리였습니다. 마지막에는 공격을 중단하고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의 갈등이 완전히 풀렸다는 말은 없습니다. 다윗과 유다,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가 다시 하나가 되었다고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을 일으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요압보다 약한 사람이 요압의 힘을 제한합니다

군대를 지휘할 수는 없지만 성읍 사람들과 의논할 수 있습니다.

요압에게 명령할 수는 없지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성벽을 직접 지킬 힘은 없지만 성읍이 왜 보호받아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자신에게 가능한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결과를 바꿉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차이는 힘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닙니다. 주어진 힘과 영향력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입니다. 요압은 적을 제거하는 일에 뛰어납니다. 여자는 공동체를 지키는 길을 찾아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능력과 사람들을 살아 있게 하는 지혜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지혜는 단순히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기술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행동을 멈추고, 그 행동이 실제로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지 보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잠언 24:5–6에서 지혜와 분별 있는 조언이 전쟁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언급되는 내용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20장의 여자는 전쟁을 더 효율적으로 치르기 위한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더 이상 계속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찾아냅니다.

요압은 다시 군대 지휘관이 됩니다

사무엘하 20:23–26 본문 →

반란이 끝난 뒤 본문은 갑자기 왕국의 관리 명단을 제시합니다.

요압은 이스라엘의 온 군대를 맡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을 맡았습니다.사무엘하 20:23 · 두루새김

이어서 강제로 동원된 일꾼들을 맡은 아도람과 기록을 맡은 관리 여호사밧, 문서를 맡은 관리 스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다윗의 제사장 이라가 소개됩니다. 이런 명단은 처음 읽으면 이야기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행정 기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사건을 기억하면 뜻이 달라집니다.

다윗이 그를 공식적으로 다시 임명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요압이 아마사를 죽인 일에 대해 재판을 받았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글을 전하는 이는 그냥 그가 군대를 맡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사를 지휘관으로 세우려던 다윗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요압은 경쟁자를 제거했고, 군대를 지휘하는 권한을 계속 유지합니다. 본문은 그의 지위가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할 뿐, 그 과정이 도덕적으로 옳았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왕의 명령과 실제 권력의 차이

왕국에는 왕이 있고, 관리들이 있으며, 제사장들과 기록을 맡은 관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을 왕이 실제로 통제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특히 요압은 왕을 위해 싸우는 지휘관이면서도 왕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판단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물입니다.

왕국의 제도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제도 안에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왜 마지막에 강제 노역 관리가 등장하는가

24절에서는 아도람이 「강제로 동원된 일꾼들」을 맡았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왕국이 단순히 군대를 가진 공동체가 아니라 여러 행정 기능과 노동 조직을 갖춘 나라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강제로 사람들을 불러 일을 시키는 것은 왕권이 백성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사무엘상 8:11–17에서 사무엘은 왕이 백성의 아들들과 딸들을 데려가 자신의 일에 사용하고, 재산과 노동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다만 이 구절만으로 그 일이 정확히 어떤 조건에서 이루어졌는지, 모든 일꾼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군대를 움직이는 권력, 사람들을 불러 일을 시키는 권력, 기록과 행정을 관리하는 권력, 제사를 드리는 종교적 직책이 함께 놓입니다. 왕권은 한 사람의 왕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여러 제도와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작동합니다.

처음과 끝의 관리 명단

사무엘하 8:16–18에도 다윗 왕국의 관리 명단이 나옵니다. 그때도 요압이 군대 지휘관으로 소개되고, 여호사밧과 사독과 아히멜렉 등 주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8장의 명단은 다윗의 군사적 승리와 왕권이 굳게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 주는 흐름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반면 20장의 명단은 압살롬과 세바의 반란, 아마사의 죽음, 북쪽 성읍의 포위가 끝난 뒤에 놓입니다. 두 명단은 겉으로 비슷하지만 독자가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릅니다. 왕국의 조직은 유지되었지만, 그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동까지 바로잡힌 것은 아닙니다.

이 장의 끝에는 요압의 이름이 다시 놓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보는 독자는 큰길 한가운데 쓰러져 있던 아마사를 기억합니다.

맺음 — 성벽을 무너뜨리는 사람과 성읍을 지키는 사람

사무엘하 20:1–26 본문 →

왕의 명령을 받았던 아마사는 죽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세바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 없이 아마사를 살해한 요압은 살아남아 다시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합니다. 질서가 다시 세워졌다는 사실만으로 그 질서가 정의롭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성읍에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요압에게 성벽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단순히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자신의 말을 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왜 여호와야훼의 유산을 삼키려 해요?」

그 질문은 요압이 하려던 일을 다른 눈으로 보게 했습니다. 그가 눈앞에서 보고 있던 것은 반란자가 숨은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말한 것은 여호와야훼께 속한 유산이며, 이스라엘에서 어머니 같은 성읍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요압처럼 마지막 관리 명단에 오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벽이 무너지지 않고 남게 된 것은 그녀가 말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반란이 끝나자 요압은 뿔나팔을 불었습니다. 군사들은 물러갔고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흩어졌습니다. 요압도 예루살렘에 있는 왕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벨 벳마아카는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한 사람은 성벽을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20장이 마지막까지 보여 주는 차이는 바로 그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