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2–6장 · 왕들을 섬긴 다니엘

하늘을 바라보게 된 왕

다니엘 4장은 놀랍게도 느부갓네살 왕 자신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땅 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선 왕이, 자신보다 높은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왕을 낮추시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않으십니다. 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하시면서도 그루터기는 남기라고 하십니다. 심판을 선포하시지만 다니엘을 통해 삶을 바꿀 길도 제시하십니다.

이 장이 묻는 질문은 왕이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높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습니까?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74장 본문 읽기 →

평온한 궁전에 찾아온 불안

다니엘 4:1–6 본문 →

왕이 직접 자신의 실패를 이야기하다

다니엘 4장은 앞선 장들과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부터 다릅니다.

이전에는 주로 이야기의 서술자가 느부갓네살의 행동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왕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말합니다. 「나 느부갓네살은」이라는 말로 시작한 왕은 꿈을 꾸고, 지혜자들을 부르고, 다니엘에게 풀이를 요청한 일을 일인칭으로 전합니다.

그러다가 25절부터 30절까지는 잠시 삼인칭 서술로 바뀝니다. 왕의 교만한 말과 그에게 닥친 심판이 바깥에서 관찰하는 이야기처럼 기록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왕의 목소리도 다시 돌아옵니다.

이러한 구성은 왕의 삶에 생긴 단절을 독자가 느끼게 합니다. 왕이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기록하는 대신 자신이 낮아진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장은 일반적인 왕의 영광을 찬양하는 이야기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불안을 일으킨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었다

왕은 궁전에서 평온하게 지냈습니다.

본문은 그가 전쟁에서 패했거나 반란의 위협에 놓여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꿈 하나가 그의 평온을 무너뜨립니다.

그런데 꿈을 하나 꾸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떠올린 생각들과 머릿속에 나타난 환상들이 나를 불안하게 했습니다.다니엘 4:2 · 두루새김

그가 지혜자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도 자신의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꿈의 뜻을 풀이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이 들어옵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내 신의 이름을 따서 벨드사살이라고 불렸고, 그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꿈을 이야기했습니다.다니엘 4:5 · 두루새김

왕은 다니엘의 지혜가 일반적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는 말은 여전히 자신의 종교적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거룩한 신들의 영」이라는 표현은 왕의 말입니다.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최종적인 설명으로 곧바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왕은 다니엘 안에 특별한 신적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그 능력을 주신 하나님에 관해 더 배워야 합니다.

이번 꿈이 바로 그 배움의 계기가 됩니다.

모든 생물을 먹여 살리는 거대한 나무

다니엘 4:7–9 본문 →

왜 왕을 나무에 비유했을까

왕의 꿈은 땅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로 시작합니다.

「나무는 크게 자라 튼튼해졌다.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고, 땅 끝 어디에서나 그 나무를 볼 수 있었다.」다니엘 4:8 · 두루새김

그 잎은 아름답고 열매는 풍성합니다. 들짐승들은 그 아래에서 그늘을 얻고, 새들은 그 가지에서 살아갑니다. 모든 생물이 그 나무에서 먹을 것을 얻습니다.

나무를 왕국의 상징으로 이해하면, 이 묘사는 왕권이 가진 좋은 역할도 보여줍니다. 강력한 왕국은 다른 민족들을 지배하는 힘을 가질 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갈 질서를 마련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동물들이 쉬고 가지에 새들이 깃드는 모습은 왕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여러 집단을 떠올리게 합니다. 왕이 높이 서 있는 까닭은 단지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늘과 먹을 것을 제공하는 책임도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의 거대한 나무

이 꿈은 에스겔 31:3–14에 등장하는 나무의 비유와도 매우 닮았습니다.

에스겔 31장에서 하나님은 이집트 왕에게 말씀하시면서 아시리아를 레바논의 거대한 백향목에 비유하십니다. 그 나무는 높이 자라며 많은 가지를 뻗습니다. 새들은 그 가지에 깃들고 짐승들은 그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큰 민족들이 그 그늘 아래 머뭅니다.

그러나 나무가 자신의 높이를 자랑하자 하나님은 그것을 다른 나라의 손에 넘겨 쓰러뜨리십니다. 나무는 제국의 위세를 나타냅니다. 새와 짐승은 그 권력 아래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무는 높이 자라지만 결국 베어집니다.

왕국의 번영 자체가 반드시 악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왕이 그 번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있습니다.

자신의 높이를 다른 생명들을 돌보는 책임으로 받아들입니까, 아니면 자기 스스로가 위대하다는 증거로 여깁니까? 다니엘 4장의 꿈은 이 질문을 아직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먼저 나무가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 충분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갑자기 하늘에서 다른 존재가 등장합니다.

나무는 베어지지만 그루터기는 남는다

다니엘 4:10–14 본문 →

하늘에서 내려온 「깨어 있는 거룩한 이」

왕이 꿈을 보고 있을 때, 하늘에서 한 존재가 내려옵니다.

「내가 잠자리에 누워 환상을 보고 있는데, 깨어 있는 거룩한 이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다니엘 4:10 · 두루새김

그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하늘의 존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권력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그 권력을 판단하시는 분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무를 베고 가지들을 잘라 버려라. 잎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흩어 버려라. 나무 아래의 짐승들을 달아나게 하고, 가지에 깃든 새들을 떠나게 하여라.』」다니엘 4:11 · 두루새김

나무의 몰락은 나무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나무에 의지하던 생명들의 삶도 달라집니다. 왕국의 통치자가 무너지면 그 통치 아래에서 살아가던 사람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다니엘 4장은 왕의 개인적인 교만을 다루지만, 그것을 결코 개인의 문제에만 가두지 않습니다.

왜 완전히 뽑아 버리지 않는가

그런데 하늘의 명령은 나무를 완전히 없애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붙은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어라. 쇠와 청동 띠로 묶인 채 들의 풀밭에 두어라. 그를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게 하고, 짐승들과 함께 땅의 풀을 먹게 하여라.』」다니엘 4:12 · 두루새김

나무를 베어 버리라는 명령은 심판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루터기를 남기라는 명령은 그 심판이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나무의 높이를 꺾으시지만, 뿌리까지 없애지는 않으십니다.

나무가 베이는 일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왕은 실제로 왕권과 인간다운 생활을 잃습니다. 다만 그 고통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루터기가 미리 알려줍니다.

나무가 어느새 사람이 되다

이제 나무를 가리키던 말이 「그를」이라는 표현으로 바뀝니다. 13절에서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짐승의 마음이 되게 하여라. 그에게 일곱 때가 지나가게 하여라.』」다니엘 4:13 · 두루새김

나무가 베이는 이야기가 어느새 한 사람이 짐승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로 변하고 있습니다. 꿈은 왕의 정체를 아직 직접 밝히지 않았지만, 비유의 대상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드러냅니다.

여기서 마음은 단순한 감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알아보고 판단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포함하는 말로 읽어야 합니다. 그가 사람으로서 지닌 판단 능력과 생활 방식을 잃고, 짐승과 같은 상태에 놓인다는 표현입니다.

나무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가 상징하는 왕은 땅에서 풀을 먹는 존재가 됩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가장 낮은 처지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심판의 목적이 먼저 밝혀지다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는 그 일이 왜 일어나야 하는지도 설명합니다.

「『이 판결은 깨어 있는 이들의 결정이며, 이 명령은 거룩한 이들의 말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가장 높으신 분께서 사람들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분은 원하시는 누구에게나 나라를 주시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낮은 이를 그 나라 위에 세우신다.』」다니엘 4:14 · 두루새김

왕을 포함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인간의 권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높은 왕위를 차지하는 일이 그 사람 자신의 뛰어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낮게 여겨지는 사람도 왕위에 세우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왕은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본래 더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왕위는 그가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왕위를 다른 사람에게 주실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루터기에는 쇠와 청동 띠가 둘러집니다. 이 띠의 구체적인 의미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루터기를 보호하거나 보존하는 장치로 이해할 수도 있고, 움직이지 못하게 제한하는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나중에 다니엘이 이 장면을 풀이할 때 그루터기가 남는다는 사실을 나라가 다시 왕의 것이 된다는 약속과 연결하는 것은 분명합니다(4:23). 14절에는 「깨어 있는 이들의 결정」과 「거룩한 이들의 말」이라는 복수 표현도 나옵니다. 이는 하늘의 회의나 하늘에 속한 존재들의 참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러 하늘의 존재가 하나님과 별개로 왕국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이어지는 풀이에서 그것이 「가장 높으신 분께서 저의 주인이신 왕께 내리신 결정」이라고 밝힙니다(4:21).

다니엘은 왕의 몰락을 반기지 않는다

다니엘 4:15–24 본문 →

해석을 알고도 마음이 무거워진 사람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 꿈의 뜻을 풀이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반응은 예상과 다릅니다.

벨드사살이라고도 불리는 다니엘은 잠시 넋을 잃었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때문에 불안해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벨드사살아, 꿈과 그 뜻 때문에 불안해하지 말아라.」 벨드사살이 대답했습니다. 「저의 주인이신 왕이시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그 풀이가 가리키는 일은 왕의 원수들에게 닥치기를 바랍니다.」다니엘 4:16 · 두루새김

다니엘은 자신과 자기 민족을 정복한 왕의 몰락을 알려 주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 왕은 유다를 정복했고, 성전의 기물을 빼앗아 갔으며, 포로들을 바벨론으로 데려온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왕에게 닥칠 재앙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꿈의 의미를 숨기지 않습니다. 왕이 듣기 좋아할 말로 바꾸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전하는 그의 태도에는 왕이 겪을 고통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심판받는 사람에게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일과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심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길을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실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왕 앞에 섭니다.

「그 나무는 바로 왕이십니다」

다니엘은 왕이 본 나무를 다시 설명한 뒤 그 정체를 밝힙니다.

「왕이시여, 그 나무는 바로 왕이십니다. 왕께서는 위대하고 강해지셨습니다. 왕의 위세는 하늘에 닿을 만큼 커졌고, 왕께서 다스리시는 곳은 땅 끝까지 이르렀습니다.」다니엘 4:19 · 두루새김

다니엘은 왕이 교만하다는 이유로 그가 이룬 모든 것을 거짓이거나 가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강함을 인정하는 것과 그 강함이 영원하거나 절대적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나무는 실제로 크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크게 자랐다는 사실이 나무를 베어 낼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니엘은 이어서 왕이 겪을 일을 밝힙니다.

「왕께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쫓겨나 들짐승들과 함께 살게 되실 것입니다. 소처럼 풀을 먹게 되시고,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몸이 젖게 되실 것입니다. 왕께 일곱 때가 지나갈 것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께서 사람들의 나라를 다스리시고 원하시는 누구에게나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깨달으실 때까지 그렇게 지내실 것입니다.」다니엘 4:22 · 두루새김

그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일반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앞선 장들에서도 왕은 하나님의 능력을 여러 차례 인정했습니다.

이번에는 더 구체적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다스리는 왕국이 자신의 소유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루터기가 남은 이유

다니엘은 이어서 그루터기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나무의 뿌리가 붙은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는 말은, 왕께서 하늘이 다스린다는 것을 깨달으시면 나라가 다시 왕의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다니엘 4:23 · 두루새김

여기서 「하늘이 다스린다는 것」은 단순히 하늘이라는 공간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뒤 문맥에서 「가장 높으신 분」께서 다스리신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부분에서 심판과 회복은 서로 분리된 사건이 아닙니다. 왕의 교만을 꺾는 일과 왕을 회복시키는 일은 모두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하나의 이야기 안에 놓여 있습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생각 자체가 달라져야 합니다.

다니엘은 왜 가난한 사람을 이야기하는가

꿈의 뜻을 풀이한 다니엘은 왕에게 조언합니다.

「그러니 왕이시여, 제 조언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옳은 일을 하여 죄에서 돌아서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도우며 악한 일을 그만두십시오. 어쩌면 왕께서 누리시는 평안이 더 오래 이어질지도 모릅니다.」다니엘 4:24 · 두루새김

그런데 다니엘은 왕에게 단지 마음을 겸손하게 가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옳은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도우라고 권합니다.

왜 하필 가난한 사람들입니까?

그 나무에는 모든 생물을 위한 먹을거리가 있었습니다. 짐승들은 그 아래에서 그늘을 얻었고, 새들은 그 가지에서 살았습니다. 나무가 크고 아름다웠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나무의 가치는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생명들과도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바로 그 책임을 일깨웁니다.

왕권의 위대함은 왕궁의 화려함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 왕권 아래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중요합니다.

이렇게 읽으면 왕의 교만은 단순히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마음의 태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왕이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본문은 느부갓네살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악한 일을 저질렀는지 하나하나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왕의 죄와 악한 일을 바로잡는 방법으로 옳은 일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돕는 것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왕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있는지는 왕의 말뿐 아니라, 그 권력 아래에서 살아가는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22:15–16과 깊이 연결됩니다. 거기서 예레미야는 유다 왕 여호야김을 책망하면서 그의 아버지 요시야가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의 권리를 바르게 판단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시편 72편에서 이상적인 왕은 가난한 백성을 공정하게 재판하고, 궁핍한 사람을 구하며, 억누르는 자를 꺾는 왕으로 묘사됩니다(시편 72:2–4, 12–14). 다니엘 4장은 바벨론 왕이라는 이방 통치자에게도 이 기준을 적용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의 율법을 받은 왕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권을 주신다는 사실은 왕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허가가 아니라, 그 왕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책임을 묻는 근거입니다.

죄를 의로운 일로 끊는다는 뜻

다니엘은 왕에게 악한 일을 계속하면서 좋은 일을 조금 보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돌아서고, 옳은 일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도우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 결과를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다니엘은 회개하면 심판이 반드시 취소될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왕이 지금 자신의 길을 바꿀 수 있도록 권합니다. 따라서 꿈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알려 주는 정보로만 쓰이지 않습니다. 왕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가 아직 평온할 때, 자신의 삶과 통치를 바꿀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다니엘의 대답은 왕을 향한 궁중의 예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다니엘이 실제로 불안해했다고도 서술합니다. 따라서 그의 대답을 단순히 형식적인 아첨으로 여길 이유는 없습니다. 「일곱 때」를 해로 이해하는 해석이 있지만, 원문 자체는 그 시간의 단위를 밝히지 않습니다. 이 기간이 정확히 얼마나 긴지는 본문에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정해진 기간이 충분히 지나야 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24절의 「죄에서 돌아서시고」에 해당하는 원문에 쓰인 아람어 페루크(⁨פְּרַק⁩)는 끊어 버리거나 풀어 내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맥에서는 죄에서 돌아서라는 권고입니다. 이 표현을 자선을 베풀어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뜻으로 읽는 전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루새김은 「옳은 일을 하여 죄에서 돌아서시고」로 옮겨, 왕의 행동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

열두 달 뒤, 왕궁 지붕 위에서

다니엘 4:25–30 본문 →

경고는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왕에게는 꿈의 경고를 들은 뒤에도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기간에 왕이 다니엘의 권고를 얼마나 실천했는지, 혹은 전혀 실천하지 않았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은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말했던 올바른 통치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생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보여주는 열두 달 뒤의 왕은 여전히 자신이 이룬 위대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 왕궁 지붕 위를 걷습니다. 그리고 자기 발아래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이 거대한 바벨론은 내가 왕이 머무는 곳으로 삼고 내 위엄을 드러내려고, 내 큰 힘으로 세운 곳이 아니냐?」다니엘 4:27 · 두루새김

왕은 자신이 이룬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문제는 왕이 그 성취를 어떻게 설명하는가입니다.

27절에는 왕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들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 위엄」

「내 큰 힘」

왕은 도시의 규모와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것이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잊은 것은 자신의 권력 자체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니엘은 이미 그에게 하나님이 사람들의 나라를 다스리시고 원하시는 누구에게나 나라를 주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 권력을 자신이 소유한 절대적인 힘처럼 말합니다.

꿈속의 나무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았습니다. 현실의 왕도 가장 높은 자리에서 자신이 세운 도시를 굽어보며 자신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한다. 왕권이 네게서 떠났다.」다니엘 4:28 · 두루새김

왕의 말과 하늘의 말이 맞부딪칩니다.

왕이 자기 권력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이해한 순간, 그 권력이 자신의 소유가 아님이 드러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대답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쫓겨나 짐승들과 함께 지냅니다. 소처럼 풀을 먹고 이슬에 젖습니다. 머리털은 독수리의 깃털처럼 자라고 손발톱은 새의 발톱처럼 됩니다.

왕은 자신을 지나치게 높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인간으로서 지닌 판단 능력마저 잃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왕이었지만,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자신을 다른 인간들보다 높이 올려놓았던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 자체를 잃는 것입니다.

다만 이 장면을 질병이나 장애를 겪는 사람에게 적용하여 그 고통이 교만에 대한 벌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느부갓네살에게 주어진 특정한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모든 인간적 고통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왕궁과 들판 사이의 거리

왕의 추락을 더욱 실감하게 하는 것은 공간의 변화입니다.

처음에 그는 궁전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평온하게 살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들짐승들과 함께 들판에 있습니다.

왕을 지켜 주던 보호막이 사라진 것입니다.

큰 나무는 짐승들에게 그늘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였던 왕이 이제 짐승들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가 아닙니다. 바깥의 환경에 그대로 드러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상태가 영원히 계속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일곱 때가 지나면 왕에게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예상보다 조용한 행동으로 시작됩니다.

왕이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다

다니엘 4:31–34 본문 →

회복은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 기간이 끝났을 때, 나 느부갓네살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나는 다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가장 높으신 분을 찬양하고,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을 높이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분의 다스림은 영원하고, 그분의 나라는 대대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다니엘 4:31 · 두루새김

앞에서는 왕궁 지붕 위에서 자신의 도시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들판에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이 두 장면은 단순한 자세의 차이가 아닙니다. 왕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왕은 자신보다 높은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그의 생각하는 능력이 회복되는 일과 함께 나타납니다.

왕은 더 낮은 자리로 떨어진 뒤에야, 자신보다 높은 분을 올바르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분별력이 돌아오자 무엇을 먼저 하는가

느부갓네살은 다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된 뒤 즉시 자신의 왕궁으로 달려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앞에서는 자신의 도시와 권력과 위엄을 말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원한 다스림을 말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지배한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2장에서 다니엘이 하나님에 관해 찬양했던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그분은 때와 시기를 바꾸시고, 왕들을 물러나게 하시며 왕들을 세우십니다.」(다니엘 2:21)

그때는 다니엘이 하나님을 그렇게 찬양했습니다. 이제는 왕 자신이 같은 진실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에 대한 지식이 다른 사람이 들려준 설명에서 왕 자신의 경험과 고백으로 옮겨 간 것입니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그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32절에서 왕은 하나님의 권세를 더욱 강하게 고백합니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그분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분은 하늘의 군대와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뜻대로 행하십니다. 그분의 손을 막거나 「무엇을 하신 겁니까?」 하고 따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다니엘 4:32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인간의 가치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으로 단순하게 읽어서는 안 됩니다. 문맥에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간 권력 사이의 비교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매우 강력한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군대가 있었고, 궁전이 있었으며, 명령을 실행하는 관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가진 왕도 자신의 왕권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왕도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다스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근거가 아니라, 왕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고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왕권은 돌아왔지만, 이전과 같은 왕인가

33절은 왕의 회복을 기록합니다.

그때 나는 다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왕으로서의 위엄과 영광도 되찾았습니다. 내 고문들과 귀족들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다시 왕의 자리에 세워졌고, 전보다 더 큰 위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다니엘 4:33 · 두루새김

여기서 처음의 그루터기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회복의 의미를 단순히 하나님이 왕에게 더 큰 성공을 주셨다는 보상으로 이해하면 이야기의 중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왕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권력의 크기가 아닙니다.

그 권력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이제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높이며 영광을 돌립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모두 참되고, 그분이 가시는 길은 모두 올바릅니다. 그분은 거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낮추실 수 있습니다.다니엘 4:34 · 두루새김

처음에 왕은 자신에게 닥칠 심판의 꿈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 심판을 행하신 하나님이 가시는 길이 올바르다고 고백합니다. 왕은 자신이 겪은 일을 단순히 억울한 재앙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교만과 하나님의 낮추심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맺음 — 왕이 올려다본 하늘

다니엘 4:1–34 본문 →

왕이 자신의 권력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다시 왕으로 세워집니다. 그때 하나님은 왕의 높이를 이전보다 더 크게 만드시는 데만 관심을 두시는 분으로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왕이 자신의 높이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왕은 다시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고문들과 귀족들이 그를 찾아왔고, 그의 왕권과 위엄도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왕이 자랑하는 것은 바벨론이 아닙니다.

그는 하늘의 왕을 찬양합니다.

처음에 느부갓네살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나무였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보다 높은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