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지나온 길 돌아보기
앞서 가신 하나님을 따르지 않은 이스라엘
신명기는 이상한 시간의 대비로 시작합니다.
호렙에서 세일 산지 길을 따라 가데스 바르네아까지 가는 데는 열하루가 걸립니다.신명기 1:2 · 두루새김
바로 다음 절은 모세가 이 말을 전한 때가 출애굽 후 마흔째 해였다고 알려 줍니다. 열하루와 마흔 해. 열하루는 호렙에서 가데스 바르네아까지 보통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나타내고, 마흔 해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보낸 전체 세월을 가리킵니다. 정확히 같은 여정을 비교한 숫자는 아니지만, 두 숫자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독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을까요?
모세의 첫 연설은 이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광야에서 겪은 온갖 고생이나 적들의 위협부터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떠나라고 명령하셨던 일, 백성을 다스릴 재판관들을 세운 일,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백성이 보인 반응을 차례로 돌아봅니다.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의 새로운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의 미래를 준비시키기 위해 과거를 다시 읽어 주는 것입니다.
요단 앞에서 과거를 다시 말하다
신명기는 모세가 요단강 동쪽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에게 전한 말로 시작합니다.
광야와 아라바, 숩과 바란을 비롯한 지명들이 이어집니다. 이 가운데 일부 지명의 정확한 위치는 오늘날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고,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백성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친 뒤였습니다(1:4). 이 두 왕과의 전쟁은 민수기 21:21–35에 기록되어 있으며, 모세는 신명기 2–3장에서 그 사건을 다시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승리의 기쁨을 길게 이야기하기보다, 이전 세대가 가나안 앞에서 실패한 일을 먼저 들려줍니다.
새로운 승리를 거둔 백성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이었습니다.
5절은 모세가 「이 가르침을 풀어 설명하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단순히 이전에 주어진 명령을 다시 읽어 주지 않습니다. 그 명령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풀어 줍니다.
실제로 이어지는 내용도 곧바로 법규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명령과 약속, 순종과 불순종이 얽힌 역사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그 명령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와 「너희」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합니다. 그의 앞에 선 이들 가운데에는 당시 어린아이였거나 이후 태어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들을 과거의 이스라엘과 무관하게 지켜보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이는 모든 청중이 과거의 모든 사건에 직접 참여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세대가 바뀌어도 같은 언약의 역사 안에 있는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앞선 세대의 역사는 이제 그들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이제 들어가라
모세가 처음 돌아보는 하나님의 말씀은 짧고 분명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호렙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산에 충분히 오래 머물렀다.』」신명기 1:6 · 두루새김
호렙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려 주신 산입니다. 출애굽기 19장 이후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막을 세웠습니다. 민수기 10:11–12에서야 구름이 떠오르고 백성이 이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 산에서 받은 가르침은 산에 계속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말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7절은 이스라엘이 나아갈 땅을 여러 방향에서 묘사합니다. 산지와 낮은 지대, 네게브와 바닷가, 가나안 사람들의 땅과 레바논, 그리고 유프라테스강까지 이어지는 넓은 땅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의 범위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5:18–21에서도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큰 강인 유프라테스강까지 언급합니다.
「『보아라. 내가 너희 앞에 그 땅을 내주었다. 들어가서 차지하여라. 여호와야훼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 뒤를 이을 자손에게 주겠다고 한 땅이다.』」신명기 1:8 · 두루새김
약속이 먼저이고, 행동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나아갈 근거는 자기들이 그 땅을 차지할 만큼 강하다는 확신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주겠다고 맹세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8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을 모두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받으려는 것은 갑작스럽게 마련된 기회가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약속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 땅 전체를 소유하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창세기 12:7; 23:17–20). 이제 그의 후손들은 그 약속의 새로운 단계에 서 있습니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약속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약속을 믿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별처럼 많아진 백성에게 필요한 것
땅으로 들어가라는 명령 다음에 뜻밖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혼자서는 백성을 감당할 수 없어서 지도자들과 재판관들을 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에서 이 문제가 먼저 등장할까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수를 늘려 주셔서, 이제 너희는 하늘의 별처럼 많아졌다.』」신명기 1:10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창세기 15:5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겠다는 약속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에는 새롭게 풀어야 할 문제도 따릅니다.
사람이 많아지자 갈등과 다툼도 많아졌습니다. 모세는 「너희를 돌보는 수고와 무거운 짐, 너희 사이의 다툼을 어떻게 나 혼자 감당하겠느냐?」(1:12)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공동체라고 해서 그 안의 갈등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동체가 커질수록 공정한 판단과 책임 있게 이끄는 지도자들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출애굽기 18:13–26에도 모세가 재판 업무를 나누어 맡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장인 이드로의 조언이 중심에 놓이지만, 신명기는 백성이 지도자들을 내세우고 모세가 그들을 세운 과정을 강조합니다.
민수기 11:14–17에도 모세가 백성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만 그곳은 칠십 장로가 짐을 나누어 지는 사건이므로, 신명기 1장의 재판관 임명과 세부 사항을 모두 같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모세는 지혜롭고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며 각 지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남자들을 골라 내세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재판관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때 나는 너희 재판관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백성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양쪽 말을 듣고 공정하게 판결하여라. 동족끼리 다투든, 함께 사는 외국인과 다투든 그렇게 하여라.』」신명기 1:1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은 자기 지파나 동족의 이익만 보호하는 사람들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사는 외국인에게도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재판할 때 어느 한쪽을 편들지 마라. 지위가 낮은 사람의 말도 높은 사람의 말도 똑같이 들어라.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니 누구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은 내게 가져와라. 내가 듣겠다.』」신명기 1:17 · 두루새김
「어느 한쪽을 편들지 마라」(נָכַ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글자 그대로는 얼굴을 알아보거나 구별한다는 말입니다. 판결할 때 상대방의 지위나 신분을 보고 달리 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니」라는 말은 재판관의 결정을 모두 하나님의 뜻과 같게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재판관의 권한이 결국 하나님 앞에서 행사되는 것임을 일깨웁니다. 그러므로 권력 있는 사람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약한 사람을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 대목은 뒤에 나올 가데스 바르네아 사건과도 대비됩니다. 재판관들에게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백성은 가나안 사람들의 크기와 힘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사는 일은 단순히 땅을 차지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기도 합니다.
좋은 땅을 보고도 올라가지 않은 사람들
19절에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여정으로 돌아옵니다.
이스라엘은 호렙을 떠나 「그 넓고 무서운 광야」를 지나 가데스 바르네아에 도착합니다. 모세는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시켜 줍니다.
「『보아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앞에 그 땅을 내주셨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마라.』」신명기 1:21 · 두루새김
호렙에서 주어졌던 명령이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다시 울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즉시 올라가지 않고 정탐꾼을 먼저 보내자고 제안합니다. 그들은 땅을 살펴보고 올라갈 길과 들어갈 성읍들에 관한 정보를 가져오게 하자고 합니다. 모세는 23절에서 그 제안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실제로 길과 성읍을 조사하는 일은 원정에 앞서 합리적으로 준비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민수기 13:1–3에서는 정탐꾼 파견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소개됩니다. 신명기 1:22–23은 백성의 제안과 모세의 동의를 강조합니다. 두 기록은 정탐 활동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지만, 어느 기록도 정탐꾼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를 이스라엘의 결정적인 죄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정탐 후에 드러납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난 열매를 얼마 가져다가 우리에게 내려왔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은 좋은 땅입니다.』라고 보고했다.」신명기 1:25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올라가지 않은 이유는 그 땅이 나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민수기 13:27–33은 이때의 보고를 더 자세히 전합니다. 정탐꾼들은 땅의 풍요로움을 인정하면서도 주민들의 강함과 성읍들의 견고함을 강조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이스라엘이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좋은 땅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백성은 올라가기를 거절했습니다.
「너희는 천막 안에서 불평하며 말했다.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미워하셔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거야. 우리를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넘겨 없애 버리시려는 거야.』」신명기 1:27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행동을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로 그 약속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행동을 자신들을 해치려는 의도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두려움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28절에서 백성은 가나안 사람들의 큰 몸집과 높은 키, 큰 성읍과 하늘까지 닿는 성벽, 아낙 자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세도 그 정보가 모두 거짓이었다고 반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적들의 강함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을 해석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백성은 강한 적을 보고 자신들이 패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인간적으로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하나님은 자신들을 미워하신다는 결론으로 발전하면서, 그들은 이미 알고 있던 하나님의 행동과 약속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땅을 확인했지만, 그 땅을 향해 발을 내딛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28절은 먼저 갔던 동족들이 전한 소식 때문에 「우리의 용기를 꺾어 놓았어」라고 말합니다. 원문에서는 마음이 녹는다는 생생한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곳만이 아니라 결심하고 행동하는 내면까지 포함합니다. 마음이 녹아내렸다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잃었다는 뜻입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여기까지 데려왔는가
모세는 두려워하는 백성에게 다시 말합니다.
「『너희보다 앞서 가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위해 직접 싸우실 것이다.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앞에서 너희를 위해 하셨던 것처럼 하실 것이다.』」신명기 1:30 · 두루새김
모세는 앞날의 승리를 이야기하면서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듭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파라오를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동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31절에서는 하나님의 모습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바뀝니다.
「『광야에서도 너희는 보았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안고 가듯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안고 오셨다. 너희가 이곳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모든 길에서 그렇게 하셨다.』」신명기 1:31 · 두루새김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는 능력과 자녀를 품에 안는 다정함이 같은 하나님에게 속해 있습니다.
모세가 감당할 수 없었던 백성을 하나님은 아들을 안듯이 안고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경험했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스스로 마련할 수 없었고, 길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는 백성이었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미워하셔서 이끌어 내셨다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그 하나님이 그들을 아들처럼 안으셨다고 증언합니다.
같은 역사를 두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자기들이 죽을 뻔했던 순간들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실제로 죽지 않고 여기까지 온 과정을 보라고 합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백성을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돌보신 증거였습니다.
「그분은 너희가 머물 곳을 찾아 주시려고 길에서 너희보다 앞서 가셨다. 너희가 갈 길을 보여 주시려고 밤에는 불 가운데서, 낮에는 구름 가운데서 가셨다.」신명기 1:33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22절에서 「우리보다 앞서」 사람들을 보내 땅을 살펴보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33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이미 「너희보다 앞서」 가시며 머물 곳을 찾아 주셨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정탐꾼들이 가져온 정보가 하나님이 지금까지 보여 주신 인도와 약속을 밀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이 일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믿지 않았다.」신명기 1:3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고, 그분이 하신 일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에서는 그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믿지 못한 것은 막연한 종교적 생각이 아니라, 자신들을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바로 그 하나님이셨습니다.
조금 더 깊이
모세는 9절에서 「나 혼자서는 너희를 돌보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두루새김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와 「안고 오셨다」로 옮겼지만, 원문에서는 이 두 장면에 같은 동사 나사(נָשָׂא), 곧 들다, 짊어지다, 나르다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히브리어에서는 33절의 「찾아 주시려고」에 정탐하거나 살핀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투르(תּוּר)가 사용됩니다. 민수기 13:2에서도 정탐꾼들이 땅을 살피는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약속은 남고, 약속을 거부한 세대는 들어가지 못하다
34절에서 이야기는 심판으로 넘어갑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너희가 하는 말을 들으시고 화가 나셔서 이렇게 맹세하셨다.」신명기 1:34 · 두루새김
이 구절에는 앞서 백성이 자기 천막에서 불평했다는 장면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두고 나눈 이야기는 단순히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는 대화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성품을 부정하는 말이었습니다.
「『이 악한 세대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단 한 명도 내가 너희 조상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좋은 땅을 보지 못할 것이다.』」신명기 1:35 · 두루새김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불신앙에 빠진 세대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십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약속이 취소된 것일까요?
갈렙은 들어갈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적에게 사로잡힐 것이라고 두려워했던 어린아이들도 그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거부한 세대는 자신들이 받을 수 있었던 몫을 잃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지만, 그들이 선택한 거역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갈렙과 여호수아, 그리고 어린아이들
「『다만 여푼네의 아들 갈렙은 그 땅을 볼 것이다. 그가 여호와야훼를 온전히 따랐으므로, 그가 발로 밟았던 땅을 그와 그의 자녀들에게 주겠다.』」신명기 1:36 · 두루새김
민수기 14:6–9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땅의 주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강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근거로 말합니다.
갈렙은 여전히 같은 땅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네 곁에서 너를 돕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곳에 들어갈 것이다.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라.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다.』」신명기 1:38 · 두루새김
갈렙에게는 그가 발로 밟았던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강조됩니다. 여호수아에게는 이스라엘 전체를 이끌어 그 땅을 차지하게 하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모세는 자신이 들어가지 못할 땅으로 백성을 이끌 후계자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37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백성 때문에 자신에게도 화를 내셔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가운데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십니다.
「『너희가 적에게 사로잡힐 것이라고 말한 어린아이들, 아직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줄 모르는 너희 자녀들은 그곳에 들어갈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그 땅을 주겠고,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신명기 1:39 · 두루새김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아이들의 미래가 정반대로 선언됩니다.
이 말씀이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려는 마음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이유가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실 대상은 그들이 죽을 것이라고 걱정했던 바로 그 자녀들입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20:1–13에서는 므리바 물 사건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 일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로 제시됩니다. 반면 신명기 1:37은 모세가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일을 백성의 불신앙을 돌아보는 이야기 가운데 놓고, 「너희 때문에」라고 표현합니다. 이 차이를 없애기 위해 신명기 1장의 불신앙 사건과 민수기 20장의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합칠 필요는 없습니다. 신명기 1장은 모세의 책임과 그가 들어가지 못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다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거역이 남긴 결과를 모세 자신의 운명까지 포함하여 돌아보고 있습니다.
올라가지 않을 때 올라가다
「『그러나 너희는 방향을 돌려 갈대 바다로 가는 길을 따라 광야로 떠나라.』」신명기 1:40 · 두루새김
여기서 이야기는 처음과 정반대로 움직입니다.
7절에서 하나님은 호렙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방향을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가나안 앞에서 방향을 돌려 광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백성은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그러자 너희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여호와야훼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올라가 싸우겠습니다.』 너희는 저마다 무기를 차고, 산지로 올라가는 일을 쉽게 여겼다.」신명기 1:41 · 두루새김
이 장면만 따로 보면 용기 있는 회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올라가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이제 스스로 전쟁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다음 말은 예상과 다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적에게 패하지 않도록, 올라가지도 말고 싸우지도 말라고 전하여라. 내가 그들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신명기 1:4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처음에 올라가라는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이제는 올라가지 말라는 명령을 거절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전 행동이 잘못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명령하시는지에는 다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주어진 명령을 지금이라도 실행하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과거의 명령을 골라 실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제 순종했어야 할 일을 오늘 고집하는 것이 반드시 오늘의 순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의 죄 고백이 어느 정도 진심이었는지는 본문만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백한 뒤에 선택한 행동이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을 거스른 것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43절에서 모세는 그 행동을 「건방지게 행동하며」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행동하려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믿음의 용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 산지에 살던 아모리 사람들이 너희와 맞서 싸우러 나왔다. 그들은 벌 떼처럼 너희를 뒤쫓으며 세일에서 호르마까지 너희를 쳐부수었다.」신명기 1:44 · 두루새김
벌 떼처럼 뒤쫓는다는 비유는 패배한 사람들을 끈질기게 추격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백성이 처음 올라가기를 거부했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들보다 앞서 가시며 직접 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아도 이전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울음을 듣지 않으셨다
「너희는 돌아와 여호와야훼 앞에서 울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너희 울음소리를 들어주지 않으셨고,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신명기 1:45 · 두루새김
이 장에서 하나님은 이미 백성의 말을 들으셨습니다. 34절에서 그들의 불평을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패배한 뒤 울부짖을 때에는 그 울음소리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회개를 거부하신다는 일반 원칙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미 내리신 판결이 그들의 울음 때문에 거두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장에서 반복되는 것은 듣는다는 행위입니다. 재판관들은 백성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양쪽 말을 공정하게 들어야 했습니다(1:16–17). 백성은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1:43). 결국 하나님도 그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지 않으셨습니다(1:45).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들리기를 원했지만, 정작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14:40–45는 이 장면에서 모세와 언약궤가 진영에 머물렀다고 전합니다. 그 기록도 백성의 행동이 하나님의 명령과 동행을 떠난 무모한 시도였음을 강조합니다.
다시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신명기 1장은 화려한 승리나 새로운 출발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명기 1장이 보여 주는 실패는 단순히 용기가 부족했던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판단을 앞세웠던 실패입니다. 신명기 1장에서 믿음은 이미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이 지금도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태도입니다.
「너희는 가데스에 오랫동안 머물렀다.」신명기 1:46 · 두루새김
장의 처음에서 하나님은 호렙에 있는 백성에게 충분히 오래 머물렀으니 이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장의 마지막에서 백성은 가데스에 다시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처음의 오래 머무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다음 여정을 준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의 오래 머무름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른 뒤 맞이한 시간이었습니다.
두 장소 모두에서 백성은 머물렀지만, 머무름의 의미는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올라가 보려 했지만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가데스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길을 알고 있었지만, 그 길에서 자신들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마흔 해가 지난 지금, 다시 약속의 땅 앞에 선 이스라엘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의 눈앞에는 새로운 세대가 있습니다. 그들이 향할 땅은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먼저 보여 주는 장면은 그 땅의 풍요로움이 아닙니다.
가데스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신명기는 바로 그 장면을 남긴 채 첫 장을 닫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