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지나온 길 돌아보기
하나님이 주신 땅과 주시지 않은 땅
신명기 2장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명령이 나옵니다.
세일 산지를 지나갈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싸움을 걸지 마라.」 그런데 아르논 골짜기에 이르자 전혀 다른 명령이 주어집니다. 「그에게 전쟁을 걸어라.」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어 냅니까?
본문이 제시하는 근거는 군사력의 차이나 땅의 비옥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그 땅을 주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신다는 약속은 이스라엘이 원하는 모든 땅을 차지할 권리를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장은 광야의 긴 우회로에서 시작하여 실제 전쟁의 승리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그 승리의 끝에서도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까이 가지 않은 땅을 굳이 언급합니다.
충분히 오래 돌아다녔다 — 멈추었던 역사가 다시 움직이다
「우리는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신 대로 방향을 돌려, 갈대 바다로 가는 길을 따라 광야로 떠났다. 우리는 세일 산지를 오랫동안 돌아다녔다.」신명기 2:1 · 두루새김
앞 장에서 가데스 바르네아에 이르렀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른 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모세의 회고는 그들이 다시 광야 길로 떠난 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가데스 바르네아에서는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 길이 약속의 땅으로 곧장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광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심판을 불러왔지만, 심판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걸어야 할 길을 말씀하십니다.
세일은 에서 자손들이 사는 산지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사해 남쪽에서 아라바 동쪽으로 이어지는 에돔 지역의 산악 지대와 연결됩니다.
그런데 3절에서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산지를 충분히 오래 돌아다녔다. 이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라.』」신명기 2:3 · 두루새김
「충분히 오래」라는 표현은 신명기 1:6에서 호렙을 떠나라고 하실 때 사용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호렙에서 떠날 때에는 약속의 땅을 향한 첫 여정이 시작되었고, 세일에서 방향을 돌릴 때에는 실패와 심판의 오랜 시간을 지난 뒤 새로운 행진이 시작됩니다.
두 경우 모두 떠날 때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광야를 돌아다닌 기간이 언제 끝날지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실패한 시간을 단축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방향을 돌리라고 말씀하시자 다시 움직입니다.
그러나 북쪽으로 향하는 그들의 첫 과제는 전쟁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땅을 지나가면서 그 땅을 침범하지 않는 일입니다.
에서의 땅에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세일에 사는 에서 자손들을 「너희 형제 민족」이라고 부르십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의 아들들이었습니다(창세기 25:24–26). 창세기 36:8은 에서가 세일 산지에 자리 잡았다고 기록합니다.
「『백성에게 이렇게 명령하여라. 너희는 세일에 사는 너희 형제 민족, 에서 자손의 땅을 지나게 된다.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할 것이니, 너희는 매우 조심하여라.』」신명기 2:4 · 두루새김
상대가 두려워하고 있다면, 이스라엘은 그 두려움을 이용해 압박하거나 군사적으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때 조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에게 싸움을 걸지 마라. 내가 세일 산지를 에서의 소유로 주었으니, 그들의 땅은 한 발 디딜 자리만큼도 너희에게 주지 않겠다.』」신명기 2:5 · 두루새김
여기서 「한 발 디딜 자리만큼도」라는 표현은 허용되는 땅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주 작은 땅조차 이스라엘의 몫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에서 자손들도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어받는 계보에 속하고, 에서는 그 계보 밖으로 갈라져 나옵니다. 그렇다고 에서 자손들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 24:4에서도 하나님은 야곱과 에서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에서에게 세일 산을 소유로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다른 모든 민족의 권리를 지워 버리는 선택이 아닙니다.
「『먹을 것은 그들에게 은을 주고 사서 먹고, 물도 은을 주고 사서 마셔라.』」신명기 2:6 · 두루새김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의 땅 근처를 지나갑니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해서 남의 것을 마음대로 가져갈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너희가 이 넓은 광야를 걸어 다닌 것을 알고 계셨다. 이 사십 년 동안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와 함께하셨고,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다.」신명기 2:7 · 두루새김
여기서 「알고 계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단순히 광야 여정에 관한 정보를 갖고 계셨다는 뜻으로만 읽기 어렵습니다. 백성이 걸어온 길을 하나님이 줄곧 살피셨다는 돌봄의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다」는 말 역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고통이나 부족함으로 인한 위기를 전혀 경험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겪었고, 여러 차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광야 생활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8:2–4는 이 돌봄을 더욱 자세히 돌아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돌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지 않아도 됩니다.
8–9절에서는 에돔을 지나 모압 광야 길로 향합니다. 이때에도 하나님은 같은 원칙을 적용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모압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그들에게 전쟁을 걸지 마라. 나는 그들의 땅을 너희 소유로 주지 않겠다. 내가 아르를 롯의 자손들에게 소유로 주었기 때문이다.』」신명기 2:9 · 두루새김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입니다. 창세기 19:36–38은 롯의 두 아들에게서 모압과 암몬이 나왔다고 전합니다.
에서는 이스라엘의 형제 계보에 속하고, 모압과 암몬은 친족 관계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본문이 그들의 땅을 존중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혈연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도 땅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세상 모든 민족의 권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2:3은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명기 2장은 이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지를 직접 설명하는 장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특별한 선택과 다른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만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니었다
모압의 땅을 지나가는 이야기 가운데 갑자기 오래전 주민들에 관한 설명이 끼어듭니다.
「예전에는 에밈 사람들이 그곳에 살았다. 그들은 큰 민족으로 수가 많았고, 아낙 자손들처럼 키가 컸다.」신명기 2:10 · 두루새김
에밈은 모압 사람들이 이전 주민들을 부르던 이름입니다. 11절은 그들이 아낙 자손들처럼 르파임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르파임은 오래전 특정 지역에 살았던 강대한 주민 집단들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앞 장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낙 자손들에 관한 보고였습니다(신명기 1:28). 신명기 2장은 이제 이스라엘이 지나가는 주변 나라들에도 아낙 자손들과 비교될 만큼 크고 강한 주민들이 살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주민들이 차지하던 땅에 지금은 모압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세일에는 예전에 호리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에서 자손들이 그들을 몰아내고 멸망시킨 뒤 그 자리에 살았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서 소유로 주신 땅에서 한 것과 같았다.」신명기 2:1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두려워했던 거대한 주민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다른 곳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영원히 그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이 말을 전하던 시점에는 이스라엘이 아직 요단강 서쪽의 가나안을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12절의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서 소유로 주신 땅에서 한 것과 같았다」라는 문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몇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요단강 동쪽 땅의 점령을 돌아보는 말로 읽을 수 있고, 앞으로 이루어질 가나안 정착을 완료된 일처럼 내다본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후대에 이스라엘의 정착을 돌아보며 덧붙인 설명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본문만으로 이 가능성들 가운데 하나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이 설명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의 땅 차지는 다른 민족들의 역사와 전혀 무관한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십팔 년이 두 절 속에 지나가다
13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이동을 명령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일어나 제렛 골짜기를 건너라.』 그래서 우리는 제렛 골짜기를 건넜다.」신명기 2:13 · 두루새김
명령과 실행이 나란히 놓입니다. 하나님이 건너라고 하셨고, 이스라엘은 건넜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뜻밖의 시간 정보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가데스 바르네아를 떠나 제렛 골짜기를 건너기까지는 삼십팔 년이 걸렸다. 그동안 여호와야훼께서 맹세하신 대로, 그 세대에서 전쟁에 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 우리 진영에서 사라졌다.」신명기 2:14 · 두루새김
그는 그 기간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을 자세히 늘어놓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어디에 머물렀고 무엇을 먹었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도 여기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도 그들을 치셔서, 그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진영에서 없애셨다.」신명기 2:15 · 두루새김
삼십팔 년의 내용은 이 두 절에서 거의 전부 설명됩니다.
특히 「전쟁에 나가던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싸워야 했던 세대였습니다. 그러나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싸우기를 거부했고, 이후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싸우려다가 패배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서 한 세대가 역사 속에서 맡았던 역할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민수기 14:26–35는 당시의 불신앙과 그 세대에 내려진 판결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삼십팔 년은 사람의 삶에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부모 세대가 늙어 죽기에 충분한 세월입니다.
그 긴 세월을 모세는 두세 문장으로 지나갑니다.
그리고 16–17절에서 새로운 단계가 시작됩니다.
「전쟁에 나가던 그 사람들이 모두 죽어 백성 가운데서 사라졌을 때,」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신명기 2:16–17 · 두루새김
그동안 하나님이 백성을 완전히 버리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7절은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그들과 함께하셨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향한 정복 여정은 심판받은 세대가 끝나기까지 지체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다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새로운 세대는 자기들이 전 세대보다 본래 더 훌륭한 사람들이어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을 계속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출발합니다.
조금 더 깊이
제렛 골짜기는 사해 동남쪽 지역에서 동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계곡 지형과 연결됩니다. 앞부분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시간이 사십 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제렛 골짜기까지의 기간을 삼십팔 년이라고 합니다. 두 숫자는 서로 다른 출발점을 기준으로 삼으므로 모순될 필요가 없습니다.
암몬의 땅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셨다
이스라엘이 제렛 골짜기를 지난 뒤, 하나님은 모압의 경계를 지나 암몬 자손들의 땅에 가까이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암몬 자손들의 땅 가까이에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거나 그들에게 싸움을 걸지 마라. 나는 그들의 땅을 너희 소유로 주지 않겠다. 내가 그 땅을 롯의 자손들에게 소유로 주었기 때문이다.』」신명기 2:19 · 두루새김
이제 세 번째로 다른 민족의 땅을 침범하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세 민족을 지나가는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떤 땅을 차지할 수 없는지 거듭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암몬에 관한 설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20–21절은 그 땅에도 이전에 르파임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살았다고 말합니다. 암몬 사람들이 잠줌밈이라고 부르던 이들입니다.
「그들은 큰 민족으로 수가 많았고, 아낙 자손들처럼 키가 컸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암몬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멸망시키셨다. 암몬 사람들은 그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살았다.」신명기 2:21 · 두루새김
모압의 경우에는 이전 주민들이 살았다고 하고, 에돔의 경우에는 그들을 몰아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암몬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이전 주민들을 멸망시키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민족의 땅 차지에도 하나님이 행동하셨다는 것입니다.
22절은 에서 자손들이 호리 사람들을 몰아낸 일도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로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이 구절들이 이스라엘과 에돔, 모압, 암몬이 모두 똑같은 언약 관계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이 특별한 관계가 하나님의 활동 범위를 이스라엘 안으로 제한하지 않습니다.
23절은 갑돌 사람들이 아윔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 땅에 살게 된 일을 덧붙입니다. 갑돌이 정확히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는 논의가 있지만, 본문은 갑돌에서 온 사람들이 가자에 이르는 지역에 정착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는 갑돌 사람들의 정착을 하나님이 직접 이루셨다는 말까지 덧붙이지 않습니다. 다만 앞선 설명들과 나란히 놓임으로써, 여러 민족의 땅이 역사 속에서 변화해 왔음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그러한 세계 속에서 자신의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미 주어진 민족들의 땅을 빼앗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어디까지가 자신의 몫인지를 분별하는 훈련입니다.
아르논 골짜기에서 명령이 바뀌다
24절에서 본문의 분위기는 갑자기 달라집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일어나 길을 떠나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보아라. 내가 아모리 사람인 헤스본 왕 시혼과 그의 땅을 너희 손에 넘겨주었다. 이제 그 땅을 차지하기 시작하여라. 그에게 전쟁을 걸어라.』」신명기 2:24 · 두루새김
같은 행동이 어떤 땅에서는 금지되고, 다른 땅에서는 명령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자기 민족의 이익을 위해 전쟁이 정당한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전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시혼은 아직 살아 있고, 그의 군대도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넘겨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뒤에 일어날 승리를 하나님의 결정에 근거하여 미리 선언하는 표현입니다. 아직 실제로 차지하지 않은 땅을 이미 이스라엘의 손에 맡기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신 땅에 실제로 들어가야 하고, 시혼과 맞서야 합니다. 이 장의 서술에서 하나님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넘겨주신다는 약속이 이스라엘의 행동을 가능하게 하고, 이스라엘은 실제 전쟁을 통해 그 땅을 차지합니다.
「『오늘부터 나는 온 하늘 아래 백성들이 너희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하겠다. 그들은 너희 소문을 듣고 너희 때문에 떨며 괴로워할 것이다.』」신명기 2:25 · 두루새김
에서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그 땅을 침범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제 시혼을 향해서는 실제 전쟁이 명령됩니다.
상대가 두려워한다고 해서 싸워도 되는 것이 아니고,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피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아르논 골짜기는 사해 동쪽에서 깊은 경계 지형을 이루는 지역입니다. 신명기 2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지나쳐야 할 땅과 차지할 땅이 갈리는 중요한 지점으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온 하늘 아래 백성들」이라는 표현을 이스라엘의 소문이 그날부터 문자 그대로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알려졌다는 역사적 진술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행동이 널리 알려지고 여러 민족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리라는 폭넓은 선언입니다.
싸우라고 하셨는데, 왜 평화를 제안했을까?
24절에서 하나님은 시혼에게 전쟁을 걸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모세는 뜻밖의 행동을 합니다.
「나는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람들을 보내 평화롭게 지내자는 뜻으로 이렇게 전했다.」신명기 2:26 · 두루새김
모세가 실제로 시혼에게 전한 요청을 보면, 그는 처음부터 시혼의 성읍을 공격하거나 땅을 빼앗겠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왕의 땅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큰길로만 가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습니다.』」신명기 2:27 · 두루새김
「큰길로만」이라는 표현은 지나가려는 목적이 제한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원문에서는 길을 가리키는 말이 되풀이됩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어 모세는 먹을 것과 물도 돈을 주고 사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에돔을 지나갈 때 하나님이 명령하셨던 방식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시혼의 땅에서도 일단 통행과 거래를 요청합니다.
신명기는 하나님이 전쟁을 명령하셨다는 사실과 모세가 평화를 제안했다는 사실을 나란히 기록합니다. 그 사이에 모세가 왜 이러한 절차를 선택했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처음부터 평화 협상을 거부하도록 지시하셨다거나,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하여 협상을 시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에돔과 모압은 실제로 통행을 허락했는가?
「『세일에 사는 에서 자손들과 아르에 사는 모압 사람들이 저희에게 해 준 것처럼 해 주십시오. 저희가 요단강을 건너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갈 때까지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신명기 2:29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그의 땅에 정착하거나 재산을 빼앗을 권리를 먼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시혼은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헤스본 왕 시혼은 우리가 자기 땅을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너희 손에 넘기시려고, 그를 고집스럽게 하시고 마음을 굳게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너희가 보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신명기 2:30 · 두루새김
모세의 설명은 사건의 결과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시혼과 그의 땅을 너희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 이제 그 땅을 차지하기 시작하여라. 그의 땅을 너희 것으로 삼아라.』」신명기 2:31 · 두루새김
여기서 「시작했다」와 「시작하여라」가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행동이 시작되었고, 이스라엘의 행동도 시작되어야 합니다.
곧 시혼과의 전쟁이 벌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29절에서 무엇을 해 주었다는 것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바로 앞의 28절은 먹을 것과 물을 은을 받고 팔아 달라는 요청이고, 29절 뒤에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널 때까지 지나가게 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에돔과 모압 사람들이 먹을 것을 팔아 준 일을 가리킬 수도 있고, 어느 정도의 통행을 허락했다는 의미까지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민수기 20:14–21이 에돔 왕이 이스라엘의 통행을 거절했다고 분명히 기록한다는 점입니다. 사사기 11:17–18도 에돔과 모압의 거절과 우회 경로를 돌아봅니다. 먹을 것과 물의 거래만을 가리킨다고 읽으면 그 긴장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2장의 문장만으로 비교 대상이 거기에 한정된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30절에서 시혼은 이스라엘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그를 고집스럽게 하시고 마음을 굳게 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에서 파라오의 마음이 완고해지는 장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출애굽기 4:21; 7:3; 9:12). 다만 두 이야기의 구체적인 맥락은 다릅니다. 시혼의 경우, 본문은 하나님이 그의 내면에 어떻게 작용하셨는지, 시혼 자신의 판단과 하나님의 행동이 철학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시혼에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는지도 이 구절만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을 단순히 시혼이 스스로 고집스러워졌다는 말로 바꾸어도 안 되고, 시혼은 아무런 의지도 없는 도구였다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승리의 기록에 남겨진 어려운 질문
시혼은 이스라엘의 통행을 거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백성을 이끌고 전쟁에 나섭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시혼을 우리에게 넘겨주셨다. 우리는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온 백성을 쳤다.」신명기 2:33 · 두루새김
여기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행동이 나란히 놓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의 성읍을 모두 점령했다. 성읍마다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를 모두 죽여 완전히 없앴다.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신명기 2:34 · 두루새김
이것은 단순히 시혼의 군대를 패배시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35절은 가축과 성읍들에서 빼앗은 물건들은 이스라엘이 자기 몫으로 가져갔다고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죽였고, 가축과 물품은 남겨 자기 몫으로 삼았습니다.
시혼이 통행을 거절하고 이스라엘과 싸웠다는 사실이 그의 성읍에 살던 여자와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정당화합니까?
신명기 2장은 이 질문에 대해 현대 독자가 기대할 만한 별도의 윤리적 설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24절에서 하나님은 시혼에게 전쟁을 걸라고 명령하셨지만, 거기서 남녀노소를 모두 죽이라고 구체적으로 명령하셨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34절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행했다고 서술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전쟁 명령과 이스라엘이 사람들을 모두 죽여 없앤 행위를 본문의 서술 안에서 연결하여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행위의 모든 세부 사항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 어느 민족이든 자신들의 전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2장은 특정한 시혼과의 전쟁을 돌아보고 있을 뿐,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무제한적인 전쟁 허가를 선언하지 않습니다.
너무 높아 점령하지 못할 성읍이 없었다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안의 성읍에서 길르앗까지, 우리가 점령하기에 너무 높고 견고한 성읍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 모든 곳을 우리에게 넘겨주셨다.」신명기 2:3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이전에 가나안의 성읍들이 크고 견고하며 성벽이 하늘까지 닿는다는 보고를 듣고 두려워했습니다(신명기 1:28). 그러나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성읍의 높이는 이스라엘이 올라갈 수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금 모세는 그 높이가 승리를 막지 못했다고 돌아봅니다.
모세는 승리의 이유를 하나님의 행동으로 설명합니다. 24절에서 하나님은 시혼의 땅을 넘겨주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31절에서는 넘겨주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3절에서는 실제로 시혼을 넘겨주셨고, 이제 36절에서는 그 모든 곳을 넘겨주셨다고 돌아봅니다.
선언에서 시작된 약속이 구체적인 전쟁의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승리의 선언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헤렘은 문맥에 따라 어떤 것을 일반적인 사용에서 완전히 제외하거나 하나님께 돌리는 개념과 연결되지만, 이 구절에서는 사람들을 남김없이 멸하는 전쟁 행위를 가리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모두 죽여 완전히 없앴다」로 옮겼습니다. 한편 고대의 전쟁 기록에는 적을 완전히 멸망시켰다고 선언하는 승전 표현들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장이 실제 전투의 모든 세부 사항을 얼마나 문자적으로 기록하는지에 대해서는 역사 서술 방식의 문제가 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만으로 신명기 2:34가 분명히 말하는 죽음을 없는 일처럼 바꿔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 전쟁의 실제 인명 피해 규모를 본문 밖의 독립적인 자료로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가까이 가지 않은 땅
「그러나 너희는 암몬 자손들의 땅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얍복 골짜기 주변의 모든 지역과 산지의 성읍들, 그 밖에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신 모든 곳에 가지 않았다.」신명기 2:37 · 두루새김
36절과 37절 사이의 「그러나」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시혼을 이겼습니다. 그의 성읍들을 차지했고, 상당한 땅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가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땅을 차지할 권리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얍복 골짜기는 요단강 동쪽에서 아르논 북쪽에 위치한 중요한 경계 지역입니다. 이스라엘은 시혼의 땅을 차지했지만 암몬에 속한 땅으로 계속 침입하지 않았습니다.
19절에서 하나님이 암몬의 땅을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명령이 37절에서 실제로 지켜진 것입니다.
얍복 골짜기에 남겨진 경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는 일이며,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탐내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성공할 수 있는 힘이나 기회가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가져도 된다는 사실은 서로 다릅니다.
모세는 승리한 성읍들의 이름을 말한 뒤, 이스라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을 가리킵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주어진 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땅을 자기 몫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2장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 앞에서 멈춘 이스라엘의 발걸음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