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지나온 길 돌아보기
땅을 나누어 준 모세는 왜 들어가지 못하는가
신명기 3장은 눈부신 승리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바산 왕 옥을 물리치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 예순 개를 비롯하여 그의 왕국 전체를 차지합니다. 모세는 정복한 땅을 여러 지파에 나누어 주고, 여호수아에게 앞으로의 승리를 확신시킵니다.
그런데 장의 마지막에 이르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모세는 다른 사람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지만, 자신은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점령하지 못할 성읍이 없었지만, 모세에게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이루어 온 일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가 평생 이끌어 온 백성이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는 순간, 왜 그는 그 여정에서 제외됩니까?
신명기 3장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일과 그 약속의 모든 성취를 자신이 직접 누리는 일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강대한 왕, 옥
모세는 바산으로 올라가던 일을 회상합니다.
바산은 갈릴리호 북동쪽과 그 북쪽으로 이어지는 고원 지대를 포함하는 지역입니다. 이곳은 요단강 동쪽의 길르앗보다 더 북쪽에 놓여 있으며, 옥은 에드레이와 아스다롯을 중심으로 그 일대를 다스리던 왕으로 등장합니다(신명기 1:4; 여호수아 13:11–12).
앞 장에서 이스라엘은 헤스본 왕 시혼을 물리쳤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북쪽으로 올라가 또 다른 아모리 왕과 마주합니다. 시혼이 그랬던 것처럼 옥도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과 싸우러 나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와 그의 온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 헤스본에 살던 아모리 왕 시혼에게 한 것처럼 그에게도 하여라.』」신명기 3:2 · 두루새김
하나님은 바산 왕국의 군사력을 분석하시거나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전략을 알려 주지 않으십니다. 이미 경험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처음 전쟁을 치르는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실제로 경험한 백성입니다. 새로운 위협 앞에서 그 경험을 기억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바산 왕 옥과 그의 온 백성도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 우리는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신명기 3:3 · 두루새김
「그때 우리는 그의 성읍을 모두 점령했다. 빼앗지 않은 성읍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예순 개로, 바산에 있는 옥의 왕국에 속한 아르곱 지역 전체였다.」신명기 3:4 · 두루새김
여기에는 「온 백성」,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 「성읍을 모두」, 「하나도 없었다」라는 표현이 이어집니다. 모세는 승리의 철저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순 개의 성읍은 단순히 작은 마을들이 아니었습니다.
5절에 따르면 그곳들은 높은 성벽과 성문, 문을 잠그는 빗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성벽이 없는 마을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이러한 성읍은 적군이 나타났다고 해서 쉽게 무너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모든 성읍을 차지했습니다.
다만 본문은 그 승리의 어두운 면도 숨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헤스본 왕 시혼에게 한 것처럼 그들을 완전히 없앴다. 성읍마다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를 모두 죽였다.」신명기 3:6 · 두루새김
이 기록을 단순히 위대한 승리라는 말로 덮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이 전쟁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옥을 넘겨주신 사건으로 해석하지만, 본문은 어린아이들까지 죽인 행위에 대한 별도의 윤리적 해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고대 전쟁 서술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기록된 폭력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장이 전하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전쟁에 대한 이스라엘의 회고이지, 후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민간인을 죽일 수 있다는 일반적인 허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는 정복한 성읍의 목록을 말하다가 갑자기 한 왕의 침대에 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옥의 철 침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8–10절은 이스라엘이 두 아모리 왕에게서 빼앗은 땅의 범위를 정리합니다.
남쪽의 아르논 골짜기에서 북쪽의 헤르몬산까지입니다. 길르앗과 바산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시돈 사람들은 헤르몬산을 시르욘이라고 부르고, 아모리 사람들은 스니르라고 부른다.」신명기 3:9 · 두루새김
이 설명은 이스라엘의 땅 이야기가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서로 접촉하던 실제 지리적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11절에서 훨씬 특이한 정보가 등장합니다.
「르파임 가운데 남아 있던 사람은 바산 왕 옥뿐이었다. 그의 침대는 철로 만든 것이었다. 그 침대가 암몬 자손들의 랍바에 있지 않느냐? 보통 쓰는 암마로 재어 길이가 아홉 암마, 너비가 네 암마이다.」신명기 3:11 · 두루새김
왜 모세는 전쟁 이야기 한가운데에서 옥의 침대 크기를 이야기할까요?
앞 장에서 모세는 에밈과 잠줌밈을 르파임으로 여겨지던 옛 주민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신명기 2:10–11, 20–21). 이들은 크고 수가 많으며 아낙 사람들처럼 키가 큰 집단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본문의 관심은 바산을 다스리던 옥이 그 강대한 옛 주민 집단과 연결된 인물이라는 데 있습니다.
모세의 청중은 옥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그가 단순한 지방의 작은 군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의 침대는 매우 컸고, 철로 만들어졌으며, 암몬 자손들의 랍바에 있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랍바는 암몬의 중심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은 앞서 암몬의 땅을 침범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신명기 2:19). 그런데 옥의 침대는 그 암몬 땅에 남아 있다고 기록됩니다. 어떻게 그 물건이 랍바에 있게 되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이 자랑했을 법한 힘과 규모를 보여 주는 물건은 남았지만, 그가 다스리던 왕국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닙니다.
이제 모세는 그 왕에게서 빼앗은 땅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암마는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를 바탕으로 하는 단위입니다. 그렇다고 침대의 길이가 곧 옥의 실제 키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두루새김이 「침대」로 옮긴 히브리어 에레스(עֶרֶשׂ)가 여기서 일반적인 침대를 가리키는지, 특별한 형태의 침대나 누울 자리를 가리키는지에 관한 논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물건의 정확한 제작 방식이나 용도를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땅을 얻은 다음에 모세가 한 일
옥의 왕국까지 무너진 뒤,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쪽의 넓은 땅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회고는 이 승리를 자기 개인의 업적으로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 땅을 차지했다. 나는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 시작되는 땅과 길르앗 산지의 절반과 그곳의 성읍들을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주었다.」신명기 3:12 · 두루새김
땅을 차지한 것은 「우리」입니다. 그러나 그 땅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준 일은 「나는」, 곧 모세의 책임으로 서술됩니다.
전쟁에서 얻은 땅이 이제 지파들이 소유하고 살아갈 땅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는 남쪽의 아르논에서 길르앗 일대에 이르는 땅을 받았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절반은 길르앗의 나머지 지역과 바산을 받았습니다.
이 분배의 더 자세한 배경은 민수기 3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은 요단강 동쪽 땅이 가축을 기르기에 적합하다고 보고 그곳을 자신들의 소유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처음에 모세는 그들이 다른 지파들과 함께 가나안 정복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과 가축을 동쪽에 남겨 두더라도 무기를 갖춘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4–15절에는 야이르와 마키르라는 이름도 등장합니다. 야이르는 므낫세의 후손으로, 자신이 차지한 바산의 성읍들을 자기 이름을 따서 하워트 야이르라고 불렀습니다. 마키르 역시 므낫세의 아들로 소개되는 조상이며, 여기서는 그 후손들의 땅 차지와 연결됩니다(민수기 32:39–42).
정복한 왕의 이름을 가진 땅이 이스라엘의 지파와 가문들의 이름으로 다시 불리기 시작합니다.
16–17절의 경계 설명도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아르논 골짜기와 얍복 골짜기, 요단강과 킨네렛, 소금 바다가 땅의 범위를 표시합니다. 여기서 킨네렛은 갈릴리호와 연결되는 이름이고, 소금 바다는 오늘날 사해라고 부르는 호수입니다.
앞 장에서 하나님은 다른 민족에게 주신 땅을 침범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 안에서도 각 지파에게 주어진 소유의 범위가 정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차지하는 것과 그 땅을 공동체 안에서 질서 있게 나누는 것은 서로 이어지는 일입니다.
지금 땅을 받은 지파들은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르우벤과 갓, 므낫세 지파의 절반은 자신들이 살아갈 땅을 확보했지만, 다른 지파들은 여전히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먼저 자기 몫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전쟁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도 됩니까?
자기 땅을 얻었어도 형제들이 안식을 얻기까지
모세는 요단강 동쪽에서 땅을 받은 지파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때 나는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셨다. 이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무기를 갖추고 너희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서 건너가라.』」신명기 3:18 · 두루새김
자기 몫의 약속을 받았다고 해서 다른 동족들의 몫이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해야 할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아내들과 어린아이들이 있었고, 많은 가축이 있었습니다. 이제 자신들의 땅에 정착하여 집을 돌보고 생업을 시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만 너희 아내들과 어린아이들과 가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들에 머물게 하여라. 너희에게 가축이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신명기 3:19 · 두루새김
물론 가족을 남겨 두고 전쟁에 참여하는 일에는 적지 않은 희생이 따랐을 것입니다. 본문은 그동안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먼저 땅을 받은 지파들에게 아무런 부담도 없는 명령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동족도 너희처럼 편히 살게 하시고,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요단강 서쪽 땅을 차지한 뒤에야 각자 내가 너희에게 준 자기 땅으로 돌아와라.』」신명기 3:20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편히 사는 것은 단순히 전투를 잠깐 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와 연결됩니다.
먼저 편히 살게 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편히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소유를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몫을 가진 채 동족들의 몫을 위해 함께 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단락은 개인의 소유와 공동체의 책임을 대립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소유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무관한 고립된 권리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 22:1–9에서 여호수아는 요단강 동쪽 지파들이 동족들을 떠나지 않고 함께 싸운 일을 인정하며, 그들에게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허락합니다. 신명기 12:9–10에서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들어갈 땅에서 누리게 될 안식이 다시 중요한 주제로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안식은 자기 힘으로 확보한 안전만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마련해 주시는 삶의 자리와 연결됩니다.
그런데 신명기 3장에서 이 안식을 나누어 주는 일을 준비하는 사람은 정작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모세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미래의 전쟁을 보여 주신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특별히 명령합니다.
「그때 나는 여호수아에게도 이렇게 명령했다.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 두 왕에게 하신 모든 일을 직접 보았다. 네가 건너가는 곳의 모든 왕국에도 여호와야훼께서 똑같이 하실 것이다.』」신명기 3:21 · 두루새김
여기서 전쟁의 승리는 단지 땅을 얻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앞으로 지도자가 되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경험이 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본받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로서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판단을 내렸는지도 강조하지 않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 두 왕에게 하신 모든 일」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너희를 위해 싸우신다.』」신명기 3:22 · 두루새김
2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이제 여호수아에게 전해집니다. 모세는 옥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 그 말씀을 다음 지도자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그 경험을 미래를 향한 신뢰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것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넘겨주는 일이 아니라, 그들도 의지할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 알려 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매우 개인적인 방향으로 바뀝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백성에게 명령하고, 땅을 나누어 주고, 여호수아를 격려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간청합니다.
모세의 마지막 소원과 하나님의 거절
23절은 짧지만 분위기를 크게 바꿉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을 백성에게 전하는 사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신이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주 여호와야훼여, 주님께서는 종인 저에게 주님의 위대하심과 강한 손을 보여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어떤 신이 주님께서 하신 일과 같은 일을 하며, 주님처럼 큰 능력을 펼칠 수 있겠습니까?』」신명기 3:24 · 두루새김
모세는 이미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보았고, 홍해를 건넜으며, 광야의 긴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이제 시혼과 옥에게서 승리하는 일까지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경험을 두고 하나님이 자신의 위대하심을 「보여 주기 시작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모세에게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목격한 하나님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일은 이제 막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모세는 그 앞에 더 많은 일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자신의 소원을 말합니다.
「『부디 저도 요단강을 건너 그 좋은 땅, 그 좋은 산지와 레바논을 보게 해 주십시오.』」신명기 3:25 · 두루새김
모세는 단순히 멀리서 땅을 바라보고 싶다고 구하지 않습니다. 직접 요단강을 건너가서 그 땅을 보고 싶다고 간청합니다.
이것은 가데스 바르네아에서 정탐꾼들이 전했던 보고와도 연결됩니다. 그들은 그 땅이 좋다고 말했습니다(신명기 1:25). 이 기도에는 땅을 소유하려는 욕망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온 사람이 그 약속의 성취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뜻밖에도 단호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너희 때문에 나에게 화를 내시고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만하여라. 이 일로 다시는 내게 말하지 마라.』」신명기 3:26 · 두루새김
지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판결을 바꾸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이끌어 오시는 과정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특별한 관계와 오랜 봉사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요구할 권리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이유가 기도 표현의 부족 때문이라는 설명이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고백했고, 겸손하게 간청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건너지는 못하지만,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거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비스가 꼭대기에 올라가 눈을 들어 서쪽과 북쪽과 남쪽과 동쪽을 바라보아라. 네 눈으로 그 땅을 보아라. 너는 이 요단강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신명기 3:27 · 두루새김
모세는 건너가서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건너가는 일은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보는 일은 허락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일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앞으로 백성에게 주실 땅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은 그곳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일을 보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은 다릅니다.
모세가 보게 될 땅은 자신의 다음 여정이 아니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나아갈 자리입니다. 이 사실은 한 사람의 눈앞에 있는 약속이 반드시 그 사람 자신의 소유가 되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그만하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브 라크(רַב)는 문자적으로 「네게 충분하다」라는 뜻을 가진 표현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충분하니 더 이상 이 문제를 꺼내지 말라는 단호한 명령입니다. 모세는 「너희 때문에」라고 말합니다. 신명기 1:37과 4:21에도 백성과 관련하여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나 민수기 20:10–12는 므리바 물 사건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이스라엘 앞에서 그분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두 기록을 읽을 때 어느 한쪽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는 모세 자신의 행동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일을 이스라엘 공동체의 실패와 얽힌 역사 안에서 회고합니다. 신명기 3장만으로 모세에게 아무런 개인적 책임이 없었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자기 소원이 거절된 사람이 해야 할 일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라. 그가 이 백성보다 앞서 건너가고, 네가 보는 땅을 그들이 차지하게 할 것이다.』」신명기 3:28 · 두루새김
모세는 자신의 소원이 거절된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 대신 들어갈 사람을 격려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모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간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 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는 것은 그에게 단순히 자신감을 불어넣거나 높은 직책을 보장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맡은 사명이 무엇이며, 그 사명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려 주는 일입니다.
이미 모세는 22절에서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너희를 위해 싸우신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마지막까지 요구하신 것은 자신이 시작한 일을 자신이 반드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다른 사람을 통해 계속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백성을 이끌어 냈고,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했으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의 목적은 모세 자신이 가장 큰 영광을 얻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건너가고, 백성이 땅을 차지하고, 각 지파가 자기 땅을 얻으며 편히 살게 되는 일은 모세 개인의 소원이 좌절되었다는 이유로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이야기가 멈추다
하나님은 모세의 개인적인 바람을 들어주시지 않으면서도, 모세에게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이루도록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언제나 한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이 주신 약속을 그분 자신의 뜻과 시간에 따라 이루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3장의 마지막에서 모세는 아직 비스가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눈을 들어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장면도 아직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머물렀다.」신명기 3:29 · 두루새김
그곳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두 왕을 물리치고 넓은 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승리를 이끌었던 모세는 자신이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건너갈 것입니다.
모세는 그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건널 수 없는 강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백성에게는 여전히 건너가야 할 강입니다.
모세가 받은 명령은 그 강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3장은 그 명령을 받은 모세와 아직 건너지 않은 이스라엘을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남겨 둔 채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