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4장 · 지나온 길 돌아보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면

신명기 4장에는 특이한 말이 반복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직접 본 일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바알브올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았고, 호렙에서 불타는 산을 보았으며, 이집트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보는 일을 강조하던 모세가 호렙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행동을 보았지만 하나님의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요?

보이는 모습이 없으니 자신들이 상상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들어도 됩니까? 아니면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까?

모세는 이 질문에서 출발하여 우상숭배의 위험, 약속의 땅에서 쫓겨날 가능성, 그리고 심판 뒤에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희망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장의 마지막에서는 갑자기 모세가 성읍 세 곳을 따로 정한 일이 기록됩니다. 뜻하지 않게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이 도망하여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마련한 곳들입니다.

읽는 시간 26분소단락 104장 본문 읽기 →

살아 있으려면 말씀을 들어야 한다

신명기 4:1–4 본문 →

모세는 지난 역사를 돌아본 뒤 이제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로 화제를 돌립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정과 법을 듣고 그대로 행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살고,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신명기 4:1 · 두루새김

「이제」라는 말이 전환점입니다.

앞선 장들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겪어 온 실패와 승리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그 역사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합니다.

신명기에서 「듣다」는 말은 흔히 순종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듣는 행위가 귀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말에 따라 행동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살고」라는 표현을 단순히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만 좁힐 필요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땅의 소유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삶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서 사는 방식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 마라. 내가 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지켜라.」신명기 4:2 · 두루새김

자기 생각을 덧붙여 하나님의 명령을 다른 것으로 만들거나, 불편한 부분을 빼서 명령의 의미를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든 시대의 번역이나 설명, 새로운 상황에 대한 판단 자체를 금지한 말씀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가르침을 백성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금지되는 것은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 주어진 명령을 자신의 뜻에 맞게 바꾸는 일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야훼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무엇을 하셨는지 직접 보았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바알브올을 섬기던 사람들을 너희 가운데서 모두 없애셨다.」신명기 4:3 · 두루새김

바알브올 사건은 민수기 25:1–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에 참여하면서 바알브올을 섬기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굳게 붙어 있는 너희는 오늘 모두 살아 있다.」신명기 4:4 · 두루새김

신명기 4:4에서 「굳게 붙어 있는」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단순히 어떤 신을 선택해 이름을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분에게 충실히 결합되어 있는 관계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긴 결과와 하나님께 굳게 붙어 있었던 결과를 그들이 이미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단순히 잘못된 종교 지식을 갖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살게 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지혜는 어디에서 드러나는가

신명기 4:5–8 본문 →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가르침을 이스라엘에게 전했다고 밝힙니다.

「보아라.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너희에게 규정과 법을 가르쳤다. 너희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신명기 4:5 · 두루새김

그는 규정과 법을 스스로 만들어 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것들을 잘 지켜 행하여라. 여러 민족이 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지혜롭고 분별 있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큰 민족은 참으로 지혜롭고 판단력이 뛰어난 백성이구나!』라고 말할 것이다.」신명기 4: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위대한 민족임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나라들을 얼마나 많이 정복했느냐가 아닙니다. 그들이 어떤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뛰어난 철학이나 나라를 다스리는 기술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르침을 실제로 실행하는 삶에서 드러나는 지혜입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가까이 계시듯, 자기들의 신들이 가까이 있는 큰 민족이 어디 있느냐?」신명기 4:7 · 두루새김
「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모든 가르침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을 가진 큰 민족이 어디 있느냐?」신명기 4:8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특별함은 하나님과의 가까운 관계와 공정한 삶의 질서라는 두 방향에서 드러납니다. 모세가 자랑하는 것은 법이 많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 법이 올바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기도할 수 있다는 의미만을 갖지 않습니다. 그분이 주신 공정한 질서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책임도 따릅니다. 신명기 1장에서 재판관들에게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의 말을 똑같이 들으라고 명령한 일이 이러한 가르침의 구체적인 예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제사나 의식만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며, 공동체 안에서 어떤 정의를 실천하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함은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삼았다는 주장보다,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의 의로움이 그들의 삶에 나타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바로 다음 절에서 가장 큰 위험을 경고합니다. 그들이 직접 경험했던 일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소리는 들었지만 모습은 보지 못했다

신명기 4:9–14 본문 →

9절은 매우 강한 경고로 시작합니다.

「다만 늘 조심하고 자신을 잘 지켜라. 너희가 직접 본 일들을 잊지 말고, 평생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게 하여라. 그 일들을 너희 자녀들과 손자녀들에게 알려 주어라.」신명기 4:9 · 두루새김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본 것을 언제까지나 올바르게 기억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사건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더라도, 그 사건이 자신에게 무엇을 알려 주었는지를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세대는 언젠가 사라집니다. 다음 세대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앞선 세대가 들은 말씀과 본 일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호렙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 섰던 날을 기억하여라. 그때 여호와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백성을 내 앞으로 모아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겠다. 그들이 땅 위에 사는 동안 늘 나를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고, 자기 자녀들에게도 가르치게 하려는 것이다.』」신명기 4:10 · 두루새김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감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알고 그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포함합니다.

「너희는 가까이 다가와 산 아래에 섰다. 산에서는 불길이 하늘 한가운데까지 치솟았고, 어둠과 구름과 짙은 먹구름이 덮여 있었다.」신명기 4:11 · 두루새김

불과 어둠은 서로 대조되는 모습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함께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엄청난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강렬한 빛과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 자신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불 속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말씀하시는 소리는 들었지만 어떤 모습도 보지 못했다. 오직 소리만 들었다.」신명기 4:12 · 두루새김

13절은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인 「열 가지 말씀」을 알려 주시고 돌판 두 개에 쓰셨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다만 그 방식이 눈에 보이는 모습이나 조각상이 아니라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그분을 알아본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열 가지 말씀은 백성이 실행해야 할 언약의 내용으로 주어졌습니다. 이 언약은 출애굽기 20:1–17에 기록된 계명들과 연결되며, 신명기 5장에서 다시 선포됩니다. 모세는 자신이 그 가르침을 백성에게 전하도록 명령받았다고 다시 말합니다(4:14).

그리고 곧바로 호렙에서 어떤 모습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상숭배 금지와 연결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20:18–20에서도 백성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자리에서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눈앞의 현상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구별됩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는데 왜 우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가

신명기 4:15–20 본문 →

15절은 앞에서 한 말을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너희는 자신을 잘 지켜라. 여호와야훼께서 호렙의 불 속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날, 너희는 어떤 모습도 보지 못했다.」신명기 4:15 · 두루새김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스스로 모습을 만들어 그것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려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지 않은 모습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말씀으로 알려 주셨는데, 사람이 그분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이해하려 한다면 하나님이 스스로를 알리신 방식을 거스르게 됩니다.

16–18절은 본떠 만들지 말아야 할 모습을 길게 나열합니다. 남자와 여자, 땅의 짐승, 하늘의 새,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것, 물속의 물고기까지 등장합니다. 사람에서 동물로, 하늘과 땅과 물속으로 시선이 옮겨 갑니다.

이러한 목록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과 땅의 짐승과 새와 물고기는 모두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 피조물의 모습을 본떠 신의 모습을 만든다면, 창조된 것을 창조주를 나타내는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19절에서는 시선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또 눈을 들어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곧 하늘의 모든 군대를 보다가 그것들에 마음이 끌려 절하고 섬기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것들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온 하늘 아래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주신 것들이다.」신명기 4:19 · 두루새김

고대 근동 세계에서 해와 달과 별들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살아가게 될 지역에도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신과 연결하는 종교적 전통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 해와 달과 별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너희를 데려다가 쇠를 녹이는 가마, 곧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오늘처럼 너희를 그분의 소유인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이었다.」신명기 4:20 · 두루새김

쇠를 녹이는 가마는 극심한 열과 고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표현은 이집트에서의 가혹한 종살이를 생생하게 나타냅니다. 열왕기상 8:51과 예레미야 11:4에서도 이집트가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앞에서 호렙의 불을 보았던 이스라엘이 이제 이집트의 가마를 기억하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불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건져 내신 고난의 가마입니다.

여기서 「그분의 소유인 백성」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재산을 소유하는 관계가 아니라, 언약을 맺어 하나님께 특별히 속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출애굽기 19:5–6에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와 거룩한 민족으로 불립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신할 모습을 만든다면,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바꾸려는 셈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소유로 삼으셨는데, 이제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신으로 삼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이 해와 달과 별들을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한 가지 읽기는 하나님이 모든 백성이 그 해와 달과 별들을 누리도록 주셨다는 뜻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은 모두에게 주어진 창조 세계의 일부이지, 숭배받아야 할 신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이 구절이 여러 민족에게 해와 달과 별들과 관련된 종교적 몫이나 영역이 나누어졌다는 고대의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봅니다. 이 경우에도 그것이 다른 민족에게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하라고 명령하거나 허락한다는 뜻인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본문의 「나누어 주신」이라는 표현만으로 그 분배의 구체적인 의미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신명기 17:2–5에서도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군대를 섬기는 행위는 여호와야훼와의 언약을 어기는 일로 규정됩니다.

모세가 건너지 못하는 땅, 이스라엘도 잃을 수 있다

신명기 4:21–28 본문 →

21–22절에서 모세는 자신이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언급합니다.

「나는 이 땅에서 죽고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다. 그러나 너희는 건너가 그 좋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신명기 4:22 · 두루새김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경고합니다.

「조심하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와 맺으신 언약을 잊지 마라. 그분이 금하신 대로, 어떤 모습이든 본떠 너희를 위한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마라.」신명기 4:23 · 두루새김

모세의 개인적인 운명과 이스라엘의 미래가 나란히 놓이면서 한 가지 사실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약속의 땅은 인간이 아무런 책임 없이 소유할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하나님에게서 받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면 그 땅에서 계속 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집어삼키는 불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신명기 4:24 · 두루새김

일상에서 질투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탐내거나 자신의 불안 때문에 상대를 통제하려는 감정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질투는 그런 의미로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언약 관계에서 다른 신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호렙에서 이스라엘은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 불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심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같은 불의 모습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심판을 나타냅니다.

25절에서 모세는 먼 미래를 내다봅니다.

「너희가 자녀와 손자녀를 낳고 그 땅에서 오래 살다가 악한 길에 빠져, 어떤 모습이든 본떠 우상을 새겨 만들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여 그분을 화나게 한다면,」신명기 4:25 · 두루새김

처음 땅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 땅을 주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기억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 세대가 지나면 그 땅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자신들이 원래부터 누려야 할 권리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워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요단강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반드시 곧 멸망할 것이다. 그곳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반드시 완전히 망할 것이다.」신명기 4:26 · 두루새김

모세는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름으로써 자신이 전하는 경고가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너희를 여러 민족 가운데 흩으실 것이다. 그분이 너희를 몰아 보내시는 민족들 사이에서 너희는 얼마 남지 않게 될 것이다.」신명기 4:27 · 두루새김

이 경고는 훗날 이스라엘과 유다가 실제로 겪게 되는 나라의 멸망과 포로 생활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4장은 특정한 포로 사건의 연도나 왕의 이름을 예고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언약을 저버린 결과로 땅을 잃고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질 가능성이 경고되고 있습니다.

「거기서 너희는 사람이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섬길 것이다. 그것들은 보지도 듣지도 먹지도 못하고, 냄새를 맡지도 못한다.」신명기 4:28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을 만들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신은 정작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말씀이 들리는 하나님을 버리고, 아무 말도 듣지 못하는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더 가까이 붙잡아 두려는 시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설명에서는 오히려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는 길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신명기 4장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돌아섭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4:14에서도 여호와야훼는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소개되시며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과 연결됩니다. 고대의 언약과 법적 선언에서는 증인을 세워 약속의 엄중함을 확인하는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신명기 30:19와 31:28에서도 하늘과 땅이 증인으로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게 된다

신명기 4:29–31 본문 →

29절은 한 단어로 새로운 가능성을 엽니다.

「그러나 거기서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찾을 것이다. 마음과 목숨을 다해 그분을 찾으면, 그분을 만날 것이다.」신명기 4:29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다시 찾을 곳은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상숭배 때문에 쫓겨나 흩어지게 된 바로 그곳입니다.

7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부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29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먼 나라에 흩어져 있을 때에도 그분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장소가 달라져도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일에는 마음과 목숨을 다하는 진실한 응답이 요구됩니다. 「마음」과 「목숨」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속마음과 의지, 삶 전체를 아우릅니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간절해지는 순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훗날 이 모든 일이 닥쳐 너희가 괴로움을 겪을 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돌아와 그분의 말씀을 따를 것이다.」신명기 4:30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다른 신을 따랐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다시 따르는 일과 연결됩니다. 회개는 잘못에 대한 후회나 슬픔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떠났던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너희를 버리지도 멸망시키지도 않으실 것이다.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며 맺으신 언약도 잊지 않으실 것이다.」신명기 4:31 · 두루새김

앞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집어삼키는 불이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약을 배신하는 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동시에, 그 언약을 기억하시며 돌아올 길을 열어 두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기억을 완벽하게 지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잊어버린 약속을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26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땅에서 멸망하고 완전히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27절은 여러 민족 가운데 얼마 남지 않게 된다고 말하고, 31절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도 멸망시키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26절의 심판을 이스라엘 전체가 단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존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으로만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땅을 잃고 공동체의 삶이 무너지는 엄중한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잊지 않으시므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 이런 일이 있었는가

신명기 4:32–40 본문 →

32절에서 모세는 갑자기 시야를 넓힙니다.

「너희보다 앞선 옛날 일을 물어보아라. 하나님께서 땅에 사람을 만드신 날부터 지금까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살펴보아라.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런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신명기 4:32 · 두루새김

그가 확인시키려는 것은 이스라엘이 겪은 일이 얼마나 특별한 사건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두 가지 사건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일입니다.

「어떤 백성이 너희처럼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살아남았느냐?」신명기 4:33 · 두루새김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9:12–13에서는 백성이 산의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엄중한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산에 함부로 다가가는 일은 죽음을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앞에서 너희를 위해 하신 모든 일과 같은 일을 한 신이 있느냐? 그분처럼 여러 시험과 표징과 기적과 전쟁,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서 데려다가 자기 백성으로 삼으려고 나선 신이 있느냐?」신명기 4:34 · 두루새김

이 표현들은 출애굽 사건의 여러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집트에서 일어난 재앙과 표징, 파라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강력한 행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단순히 노예들이 자유를 얻은 사건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 이루신 행동이었습니다.

호렙에서 말씀을 들은 일과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일은 서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그 구원받은 백성에게 자신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과의 언약 안에서 살아가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하나님이시며 그분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보여 주신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하나님이시며 그분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명기 4:35 · 두루새김

이 문장은 단순히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야훼가 다른 신들보다 더 강하시다는 뜻을 넘어섭니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으로 인정할 다른 이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것을 알고 마음에 새겨라. 위로 하늘에서도 아래로 땅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 하나님이시며, 다른 신은 없다.」신명기 4:39 · 두루새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숭배하지 말라고 했던 앞부분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는 땅의 하나님만이 아니시며, 하늘의 신들과 경쟁하는 어느 한 지역의 신도 아니십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은 단순히 자신들에게 맞는 종교로 바꾸는 문제가 아닙니다. 온 세상의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진실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모세는 다시 구원의 역사로 돌아갑니다.

「그분은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시고 그 뒤를 이을 후손을 택하셨다. 그래서 직접 그 크신 능력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신명기 4:37 · 두루새김

신명기 4장은 이스라엘이 특별히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거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선택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이 이스라엘의 구원에 앞선다는 사실입니다.

38절에서는 그 사랑이 땅을 주시는 일로 이어집니다.

모세는 이스라엘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소유로 주시는 일을 하나님의 행동으로 설명합니다. 이 대목 역시 실제 정복 과정의 폭력과 옳고 그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주장 자체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누리는 땅은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40절에서 모세는 다시 명령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그분의 규정과 명령을 지켜라. 너희와 너희 뒤를 이을 자녀들이 잘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언제까지나 주시는 땅에서 너희가 오래 살게 하려는 것이다.」신명기 4:40 · 두루새김

신명기 4장은 이스라엘이 명령을 지켜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시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조상들을 사랑하셨고, 그 후손을 선택하셨으며,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순종은 바로 그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의 관계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모세는 먼저 하나님의 행동을 기억하게 한 뒤, 그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고, 마지막으로 그 앎에 걸맞게 살아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모세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한 가지 구체적인 행동이 기록됩니다.

조금 더 깊이

37절의 히브리어는 여러 조상을 언급한 뒤 「그의 후손」(⁨זֶרַע⁩)이라는 단수 표현으로 바뀝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그 뒤를 이을 후손」으로 옮겼습니다. 원문의 단수 표현을 특정한 한 조상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여지도 있지만, 이 문장만으로 누구인지를 확정하여 이름을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세 성읍을 지정하다

신명기 4:41–43 본문 →

41절에서 글의 말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모세가 백성에게 직접 말하는 긴 연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모세의 행동을 기록합니다.

그때 모세는 요단강 동쪽에 있는 성읍 세 곳을 따로 정했습니다.신명기 4:41 · 두루새김

모세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가 실제로 백성의 삶에 필요한 제도를 마련한 사건으로 옮겨 갑니다.

전부터 미워하던 사이가 아닌 이웃을 뜻하지 않게 죽인 사람이 그곳으로 도망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신명기 4:42 · 두루새김

이 세 성읍은 일반적으로 도피성이라고 불립니다. 민수기 35:9–34는 도피성 제도를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당시에는 가족의 죽음에 대해 피의 보복을 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일부러 사람을 죽이지 않은 사람이 즉각적인 보복으로 죽임당하지 않도록 보호받으며 사건에 대한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마련된 곳입니다.

따라서 도피성을 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안전을 보장하는 장소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35장과 신명기 19:1–13은 일부러 저지른 살인과 뜻하지 않은 죽음을 구별합니다. 도피성 제도는 그 구별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다른 사람을 죽입니다. 다른 사람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이웃을 죽게 할 수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는 같지만, 그 행위의 의도와 책임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차이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43절은 세 성읍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르우벤 지파의 땅에 있는 베체르, 갓 지파의 땅인 길르앗의 라못, 므낫세 지파의 땅인 바산의 골란입니다. 이 성읍들은 모두 요단강 동쪽에 있습니다.

앞 장에서 모세는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이 지역의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생명을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합니다.

6–8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올바른 규정과 법을 지켜 행할 때 다른 민족들이 그들의 지혜를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모세가 실제로 세운 제도는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판단이 이루어질 기회를 마련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추상적인 도덕 원칙으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세는 요단강 서쪽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이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요단강 동쪽의 땅에서 이런 질서를 세우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1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대로 행하여 살아야 했습니다. 4절에서는 하나님께 굳게 붙어 있는 사람들이 오늘 모두 살아 있다고 했습니다. 33절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운 은혜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42절에서는 뜻하지 않게 이웃을 죽인 사람이 도피성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런 반복만으로 도피성 단락이 앞선 연설을 의도적으로 풀어 주도록 배치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41절부터는 말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 바뀌고, 44절부터는 새로운 가르침을 소개하는 머리말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성된 본문의 흐름 안에서 이 장면은 앞서 선포된 가르침이 실제 공동체의 생명과 정의에 관계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모세의 가르침이 다시 시작될 자리

신명기 4:44–49 본문 →

44절부터는 새로운 도입부가 시작됩니다.

다음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가르침입니다.신명기 4:44 · 두루새김

이 부분은 단순히 신명기 4장을 마무리하는 결론이라기보다, 이어지는 가르침을 소개하는 새로운 머리말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신명기 5장에서는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규정과 법을 들으라고 명령하고, 호렙에서 맺은 언약과 열 가지 말씀을 다시 선포합니다.

먼저 장소를 알려 줍니다.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 헤스본에 살던 시혼의 땅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시혼과 옥을 물리치고 차지한 땅의 범위를 다시 밝힙니다.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의 아로엘에서 헤르몬산에 이르는 땅, 요단강 동쪽의 아라바와 아라바 바다까지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추상적인 공간에서 선포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왔고, 광야를 지났으며, 두 아모리 왕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이제 요단강 동쪽의 땅을 차지한 채 서쪽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이 주어집니다.

그들의 역사와 하나님의 명령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모세가 전하려는 규정과 법은 그들이 이미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과 돌보심, 심판과 자비를 바탕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음 장에서 열 가지 말씀을 다시 듣기 전에 독자가 알아야 할 배경입니다.

조금 더 깊이

48절의 「시온산, 곧 헤르몬산」이라는 표현에서 시온산은 예루살렘의 시온산과 구별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바로 뒤에서 헤르몬산과 같은 산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히브리어 표기도 예루살렘의 시온과 다릅니다.

세 성읍으로 끝나는 장

신명기 4:1–49 본문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모습을 만들어 그분을 붙잡는 백성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실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속한 백성임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공정한 재판과 이웃을 보호하는 제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질서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제 구체적인 세 성읍의 이름을 남깁니다.

베체르, 라못, 골란.

이스라엘은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미 차지한 땅에는 세 성읍이 따로 정해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뜻하지 않게 이웃을 죽이고 자신도 죽임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은 그 성읍 가운데 하나로 도망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로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주신 가르침에 따라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마련되었습니다.

신명기 4장은 그 세 성읍의 이름을 남긴 채 다음 가르침으로 넘어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