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르기 (그리스어)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6–8장 · 뒤바뀐 처지
잠 못 이루는 밤과 뒤바뀐 영예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왕궁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왕궁을 나설 때 그는 모르드개를 죽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왕의 말에 태워 온 도시를 돌며 왕이 그를 높여 준다는 사실을 외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에스테르기 6장의 놀라움은 사건들이 우연히 맞아떨어진다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각 인물은 자기 뜻대로 행동하고 있는데, 그 행동들이 모여 누구도 바라거나 계획하지 않았던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이 장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여 주면서도, 그분이 모든 일을 직접 하시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채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 사람들의 기억과 욕심, 판단과 말들을 거치면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왕이 잊은 일을 기록은 기억하고 있었다
첫 문장의 「그날 밤」은 특별합니다.
그날 밤, 주는 왕이 잠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왕은 자기 스승에게 지난날의 일을 적은 기록을 가져와 읽어 주라고 했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6:1 · 두루새김
에스더는 앞선 잔치에서 자신의 부탁을 곧바로 밝히지 않고 다음 날 다시 잔치를 열겠다고 했습니다(5:7–8). 그사이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일 나무를 준비하고, 아침이 되면 왕에게 처형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5:14).
히브리어 에스더기 6:1은 왕의 잠이 달아났다고 말합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반면 그리스어 본문은 주께서 왕에게서 잠을 거두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같은 밤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행동을 앞에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이 잠들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 본문이 분명히 말하지만, 그 뒤의 선택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이끄셨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리스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일을 이끄시는 모습과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을 함께 놓습니다.
그런데 기록에서 발견된 사건은 독자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에스테르기 2:21–23에서 모르드개는 왕을 죽이려던 두 내시의 음모를 알아내어 보고했습니다. 왕은 조사 후 그들을 처형하고, 모르드개가 보여 준 충성을 왕실 기록에 남기도록 했습니다. 그리스어 2:23은 그 기록이 모르드개가 한 일을 칭찬하는 내용으로 남았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6장에서 왕이 묻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드개를 높여 주거나 그에게 보답한 일이 있느냐?」 왕을 시중드는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폐하께서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으셨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6:3 · 두루새김
앞에서는 왕이 모르드개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시중드는 사람들이 「폐하께서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왕실의 기록은 모르드개의 충성을 간직했지만, 왕실의 행동은 그 충성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왕실에서 왕에게 충성을 바친 사람을 높여 주고 보답하는 일은 왕의 권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충성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누가 왕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겠습니까? 왕이 모르드개가 한 일을 확인하고 보답했는지 묻는 것은 이러한 왕궁의 질서 안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보답받지 못했던 과거가 이제 그를 살릴 가능성을 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음모를 알린 직후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면, 왕이 이날 밤 기록을 읽고 다시 그를 높여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결정적인 순간에 새로운 행동의 이유가 됩니다. 본문은 그 일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한 밤, 오래전에 기록된 한 사람의 충성이 다시 왕 앞에 놓입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에서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의 사정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관원장은 그를 잊었습니다(창세기 40:14, 23). 그러다가 파라오가 꿈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관원장은 비로소 요셉을 기억합니다(41:9–14). 또한 에스테르기 6장이 창세기의 해당 이야기를 직접 인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잊혔던 사람의 과거가 결정적인 순간에 기억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주제가 서로 이어집니다.
같은 뜰에 들어온 두 가지 상반된 목적
왕이 모르드개에게 어떻게 보답할지를 생각하는 순간, 하만이 뜰에 나타납니다.
왕이 모르드개가 한 일에 관해 묻고 있을 때, 마침 하만이 뜰에 있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뜰에 누가 있느냐?」 하만은 자기가 준비한 나무에 모르드개를 매달라고 왕에게 말하려고 들어온 것이었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6:4 · 두루새김
더구나 왕은 하만이 왜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하만 역시 왕이 무슨 일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독자만 두 사람의 뜻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정보의 차이에서 이야기의 긴장과 풍자가 생깁니다.
하만이 준비한 나무는 전날 아내 조사라와 친구들이 권했던 것입니다(5:14). 그들은 아침에 모르드개를 죽이도록 왕에게 부탁한 뒤 즐겁게 잔치에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만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알맞은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기 전에 질문부터 던집니다.
왕이 하만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높여 주고 싶은 사람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 하만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왕께서 나 말고 누구를 높여 주고 싶어 하시겠어?」에스테르기 (그리스어) 6:6 · 두루새김
왕이 물은 것은 높여 주고 싶은 사람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은가입니다. 그러나 하만이 가장 먼저 판단한 것은 그 대우를 받을 사람이 누구인가입니다.
왕은 한 사람이 해낸 일을 생각하고 있지만, 하만은 자신의 지위를 생각합니다.
이런 착각은 앞선 장에서 드러난 하만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그는 왕이 자신에게 준 높은 지위와 명예를 자랑했고, 에스더의 잔치에 특별히 초대받은 사실도 과시했습니다(5:11–12). 그러나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모든 영예를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5:13).
그에게 영예는 이미 충분히 가진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이 확인받아야 하는 무엇이었습니다.
하만은 왕의 질문을 듣고도 왕의 뜻을 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왕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그의 몰락을 준비하는 결정적인 착각입니다.
하만이 설계한 가장 높은 영예
하만의 대답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그는 왕이 입는 고운 베옷과 왕이 타는 말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왕의 옷과 왕의 말은 왕의 지위를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물건들입니다. 그 물건을 사용하도록 허락받는 사람은 왕의 특별한 인정을 온 도시 앞에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특히 그가 요구하는 영예의 핵심은 사람들 앞에서 외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폐하의 가까운 신하들 가운데 존경받는 한 사람에게 맡기십시오. 그 신하가 폐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그 옷을 입히고 말에 태우게 하십시오. 또 도시의 큰길을 다니며 『왕께서 높여 주시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대우를 받을 것이다』 하고 외치게 하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6:9 · 두루새김
앞서 모르드개 한 사람이 자신에게 굽히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했던 하만을 생각하면, 이 제안의 뜻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그는 자기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는 한 사람을 없애려 했고, 동시에 온 도시가 자신에게 주어진 영예를 확인하는 장면을 꿈꿉니다.
그런데 왕은 하만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왕이 하만에게 말했습니다. 「잘 말했다. 뜰에서 일하는 유대 사람 모르드개에게 그렇게 해 주어라. 네가 말한 것 가운데 하나도 빠뜨리지 마라.」에스테르기 (그리스어) 6:10 · 두루새김
하만은 자신의 제안을 거둘 기회도 얻지 못합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자기가 구상한 가장 화려한 의식을 원수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높이는 의식의 내용뿐 아니라, 그 의식을 맡을 사람의 지위까지 스스로 정했습니다. 그는 왕의 가까운 신하들 가운데 존경받는 한 사람이 영예를 받을 사람을 섬기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바로 하만에게 그 일을 맡깁니다.
왕은 여전히 하만을 왕궁의 힘 있는 인물로 대하고 있으며, 앞서 내려진 유대인에 대한 명령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3:12–13). 그러나 하만이 완전히 장악했다고 믿었던 상황에 이미 틈이 생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왕의 호의를 이용해 모르드개를 없애려 했지만, 바로 그 지위 때문에 모르드개를 높이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돌아가고, 하만은 머리를 가린다
하만은 왕의 명령을 실행합니다.
그는 왕의 옷을 가져와 모르드개에게 입히고, 왕의 말에 태웁니다. 그리고 도시의 큰길을 다니며 왕이 그를 높여 준다는 사실을 외칩니다.
그가 어떤 표정으로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혔는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만이 실제로 명령을 따랐다는 사실만 이야기합니다.
그 침묵 덕분에 사건 자체가 더욱 강렬해집니다.
전날 밤 모르드개의 죽음을 준비했던 사람이, 이제 모르드개가 높임받는다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하만의 입은 그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끝난 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으로 돌아갑니다.
모르드개는 뜰로 돌아갔습니다. 하만은 슬퍼하며 머리를 가린 채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6:12 · 두루새김
모르드개는 왕의 옷을 입고 도시를 행진했지만, 그 영예에 취하거나 자기 지위를 과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원래 있던 뜰로 돌아갑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에 나오는, 머리를 가리는 행동은 슬픔과 수치를 표현합니다. 압살롬을 피해 달아나던 다윗도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갔습니다(사무엘하 15:30).
앞서 하만은 왕에게 받은 영예를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자랑했습니다(5:11). 그러나 이제는 머리를 가린 채 그들 앞에 돌아갑니다. 본문은 모르드개의 마음속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하만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2:7–8의 한나의 노래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에스테르기 6장은 이러한 역전을 왕궁의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보여 줍니다.
하만의 가족은 이미 몰락의 시작을 알아본다
집으로 돌아온 하만은 아내 조사라와 친구들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5장에서 하만은 자기의 재물과 명예를 늘어놓았고, 조사라와 친구들은 그에게 모르드개를 처형할 나무를 만들라고 권했습니다(5:10–14). 6장에서는 하만이 수치를 당한 일을 이야기하고, 같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하만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아내 조사라와 친구들에게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들과 아내가 말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유대 사람이라면, 너는 이미 그 앞에서 낮아지기 시작했으니 반드시 무너지고 말 거야. 그를 절대로 막아 낼 수 없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니까.」에스테르기 (그리스어) 6:13 · 두루새김
하만은 자신이 유대 사람 한 명을 상대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의 가족은 그 싸움이 그 사람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무런 근거 없이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만이 조금 전 겪은 굴욕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의 앞날을 판단합니다.
다만 이것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은 하만의 미래에 대한 강력한 판단이지만,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선언과 같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독자는 이미 첫 절에서 주께서 왕이 잠들지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제 이야기 속의 이방인들마저 모르드개와 함께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동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말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에스더기 6:13에서도 하만의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은 모르드개가 유대인의 후손이라면 하만이 그 앞에서 쓰러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어 에스테르기는 이 말을 더해 하만의 몰락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합니다.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하만의 가족이 그에게 몰락을 경고하는 바로 그때, 왕의 내시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이 아직 말하고 있을 때 내시들이 와서, 에스더가 마련한 술잔치에 가도록 하만을 재촉했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6:14 · 두루새김
전날 하만은 에스더의 잔치에 왕과 함께 초대받은 사실을 큰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비에게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고 자랑했습니다(5:12).
그런데 이제 그 잔치에 가는 하만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에게는 경고를 충분히 듣고 대응할 방법을 세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본문은 하만이 그 말을 듣고 무엇이라고 대답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다른 계획을 떠올렸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왕의 내시들이 와서 그를 데려갑니다.
에스더가 마련한 두 번째 잔치는 예정대로 열립니다. 그러나 그 잔치에 참석할 하만의 처지는 전날과 같지 않습니다. 왕의 특별한 신임을 확신하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운명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에스더가 왕 앞에서 자신의 부탁을 밝히기도 전에 일어났습니다.
이 장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일하심
그리스어 에스테르기는 사람의 의로운 행동과 하나님께서 일을 이끄시는 것을 서로 경쟁시키지 않습니다. 모르드개의 충성은 실제로 중요하며, 왕의 판단과 하만의 말도 사건을 움직이는 실제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을 이어 주는 시작점은 어느 사람도 계획하지 않았던 왕의 잠 못 이루는 밤입니다.
모르드개가 높임받은 일을 곧바로 모든 의로운 사람의 성공에 대한 약속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모르드개가 당장 처형을 피하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유대인 전체를 향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일 허락을 받으려고 왕궁에 왔습니다. 그러나 그날 그가 왕에게서 받은 명령은 모르드개를 높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준비한 나무는 여전히 서 있었지만, 그는 그 나무에 관한 말을 왕에게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대신 왕의 옷과 말을 가져와 자신이 가장 미워하던 사람을 도시의 큰길로 이끌어야 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