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23장
이 장의 자리 · 19–24장 · 시나이산의 언약
앞서가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백성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럴듯한 증언을 내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말에 동의하면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사실은 그들의 말과 다릅니다.
이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출애굽기 23장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지 말라고 하시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이 두 명령 사이에는 원수의 나귀를 도와주는 일, 가난한 사람을 공정하게 재판하는 일, 땅을 쉬게 하는 일, 축제를 지키는 일, 그리고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일이 놓여 있습니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규정들이지만, 이들을 연결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무엇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백성이 될 것인가요?
사람들의 압력인가요, 자기 이익인가요, 오랜 관습인가요, 아니면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앞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가요?
출애굽기 23장은 이 질문을 법정에서 시작하여 길 위에서 마무리합니다. 아직 약속된 땅에 도착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먼저 배웁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
첫 번째 금지는 거짓 소문에 관한 것입니다.
「거짓 소문을 퍼뜨리지 마라. 악한 사람과 손잡고 부당한 증언으로 남을 해치지 마라.」출애굽기 23:1 · 두루새김
「손잡고」(שִׁית)는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손을 함께 둔다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다른 사람과 한편이 되어 부당한 증언을 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거짓말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협력하면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반복합니다. 누군가 증인이 되어 주면 거짓 주장은 더욱 그럴듯해집니다.
특히 「거짓 소문을 퍼뜨리지 마라」라는 첫 명령은 법정에서 정식으로 증언하기 이전의 말까지 문제 삼습니다. 소송은 재판장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이야기가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말이 거듭 전달되면 어느새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2절에서는 한 단계 더 어려운 상황이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이 한다고 해서 악한 일을 따라 하지 마라. 재판에서도 많은 사람을 따라 옳고 그름을 뒤바꾸는 증언을 하지 마라.」출애굽기 23:2 · 두루새김
사람은 혼자 거짓말할 때보다 여러 사람과 같은 말을 할 때 자신의 책임을 가볍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동의한다는 사실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처럼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많은 사람의 동의와 정의를 구별합니다.
히브리어 라빔(רַב)은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문맥에 따라 힘이 강한 집단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수가 많은 사람들의 압력뿐 아니라, 영향력 있는 집단을 따라 판단을 왜곡하는 위험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수결 자체를 부정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본문이 문제 삼는 것은 재판에서 사실과 정의를 왜곡하면서 많은 사람 쪽에 서는 행동입니다.
진실을 말할 책임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편도 들지 말라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재판에서 그 사람을 편들지 마라.」출애굽기 23:3 · 두루새김
앞 장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지 말고 이자를 물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편들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령은 그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하여 부당하게 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반면 여기서는 누가 옳은지 판단해야 하는 재판이 문제입니다.
다만 이것을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를 금지하는 명령으로 넓혀 읽어서도 안 됩니다. 6절에서는 정반대 방향의 위험을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네 곁의 가난한 사람이 관련된 재판에서 옳고 그름을 뒤바꾸지 마라.」출애굽기 23:6 · 두루새김
공정한 재판은 힘 있는 사람의 편을 드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의 편을 자동으로 드는 것도 아닙니다. 각 사람의 처지와 관계없이 사건의 진실과 정당한 권리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균형은 레위기 19:15에서도 확인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특별히 편들거나 힘 있는 사람을 특별히 우대하지 말고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명령입니다.
성경은 약자를 보호하는 일과 공정한 판단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가지를 함께 요구합니다.
다음 규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제 문제는 법정이 아니라 길에서 발생합니다.
원수의 나귀가 길에서 주저앉았을 때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소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자신과 원수지간인 사람의 소입니다.
모르는 척 지나가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를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직접 훔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네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만나면, 반드시 그 주인에게 돌려주어라.」출애굽기 23:4 · 두루새김
그저 친하지 않은 이웃이 아닙니다. 자신과 서로 적대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그 사람이 왜 원수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내 원수라는 사실은 그의 재산을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소유권에 관한 명령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는 훨씬 생생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너를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가 짐에 눌려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보면,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마라. 반드시 그 사람과 함께 짐을 내려 주어라.」출애굽기 23:5 · 두루새김
주인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도와주면 되지만, 하필 그 주인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가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망설임을 다룹니다.
돕기를 꺼리는 상황에서도 반드시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문장에는 「그 사람과 함께」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원수에게 멀리서 도움을 베푸는 정도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같은 나귀 곁에 서서 함께 짐을 다루어야 합니다. 본문은 그들이 화해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서로 용서를 구했다거나 우정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감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눈앞에 주저앉은 나귀가 있고, 그 짐을 함께 내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신명기 22:1–4에서는 비슷한 명령이 「형제」의 잃어버린 가축과 쓰러진 짐승을 중심으로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23장은 그 의무를 원수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까지 분명히 밝힙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는 아조브 타아조브(עָזַב)라는 강조 표현이 나옵니다. 사용된 동사는 문맥에 따라 「놓아주다」, 「풀어 주다」, 「돕다」 등으로 이해되며, 짐을 내려 주거나 짐승을 일으키는 행위와 연결해 읽을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반드시 그 사람과 함께 짐을 내려 주어라」로 옮겼습니다.
정의가 무너지는 가장 위험한 순간
원수의 나귀를 도와주라는 명령 뒤에 법정의 문제가 다시 등장합니다.
6절은 가난한 사람이 관련된 재판에서 옳고 그름을 뒤바꾸지 말라고 하고, 7절은 거짓된 일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7절에서는 재판이 끝내 어떤 위험을 낳을 수 있는지 드러납니다.
「거짓된 일은 멀리하여라. 죄 없는 사람과 올바른 사람을 죽이지 마라. 나는 악한 사람을 죄 없다고 판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출애굽기 23:7 · 두루새김
거짓 증언은 단순히 한 사람의 평판에 상처를 입히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판결은 재산을 빼앗을 수 있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거짓이 포함된 사건에 가까이 다가가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거짓 자체로부터 거리를 두라는 명령입니다.
인간의 법정에서 유죄와 무죄를 잘못 판단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런 왜곡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는 경고입니다. 이 선언은 단순히 언젠가 모든 사건이 올바르게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오히려 재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판단을 책임져야 한다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뇌물은 왜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가
「뇌물을 받지 마라. 뇌물은 눈 밝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옳은 사람의 말을 뒤틀기 때문이다.」출애굽기 23:8 · 두루새김
사건의 진실을 알아볼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자기 이익이 끼어들면 판단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뇌물은 단순히 잘못된 판단을 사는 돈이 아닙니다.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을 실제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뇌물은 재판하는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할 뿐 아니라, 옳은 주장을 하는 사람의 말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뇌물은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을 무너뜨립니다.
「너희 가운데 와서 사는 외국인을 억누르지 마라. 너희는 외국인으로 사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외국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출애굽기 23:9 · 두루새김
여기서 「외국인으로 사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단지 그들의 법적 신분을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처지가 어떤 것인지 경험으로 안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자신들이 겪었던 불안과 무력함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만들어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외국인은 자기 출신 공동체의 보호를 충분히 받기 어려울 수 있고, 다툼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가진 사회적 힘을 이용하여 그들을 억누르지 않아야 합니다.
정의는 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일이며, 동시에 자신이 가진 힘으로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짓누르지 않는 일입니다.
땅도 쉬어야 하고, 함께 사는 외국인도 숨을 돌려야 한다
이제 본문의 시야가 법정과 길에서 밭으로 옮겨 갑니다.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땅을 쉬게 하고 그대로 두어라. 네 백성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거기서 나는 것을 먹게 하고, 그들이 남긴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하여라. 네 포도밭과 올리브나무도 그렇게 하여라.」출애굽기 23:11 · 두루새김
평소에는 땅을 가진 사람이 씨를 뿌리고 수확물을 거둡니다. 그 땅에서 나온 것은 자신의 노동과 소유에 연결됩니다.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땅을 평소와 같이 경작하고 수확물을 혼자 차지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일곱째 해의 쉼은 땅을 가진 사람만을 위한 쉼이 아닙니다. 자기 땅이 없는 사람도 그 땅에서 먹을 수 있게 하는 쉼입니다.
이 규정은 레위기 25:2–7의 안식년 규정과 연결됩니다. 레위기에서는 땅의 안식을 하나님을 위한 안식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땅에서 나는 것이 사람과 가축의 먹거리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출애굽기 23장은 특히 가난한 사람과 들짐승이 먹게 된다는 결과를 앞세웁니다.
일곱째 날에는 누가 쉬는가
「엿새 동안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일을 멈추어라. 네 소와 나귀가 쉬고, 네 여자 노예의 아들과 너희 가운데 와서 사는 외국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출애굽기 23:12 · 두루새김
두 규정 모두 여섯 단위의 활동 뒤에 일곱째 단위의 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그 쉼의 혜택이 명령을 받는 땅의 소유자나 집주인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소와 나귀, 여자 노예의 아들, 함께 사는 외국인입니다. 이들은 모두 집주인의 노동과 생활에 관계되어 있지만, 자신의 노동 조건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인이 일을 멈추더라도 가축에게 계속 짐을 지우고, 집안의 노예에게 일을 시키며, 함께 사는 외국인에게 노동을 맡긴다면 그 쉼은 진정으로 공동체 전체의 쉼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주인이 쉬어야 한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쉼이 다른 존재들에게 미쳐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숨을 돌리게」는 단순히 일을 멈추는 것을 넘어 쉬면서 기운을 회복한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31:17에서도 하나님의 창조와 쉼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앞서 주저앉은 나귀의 짐을 내려 주라고 하셨던 하나님이, 여기서는 소와 나귀에게도 정기적인 쉼을 허락하십니다.
물론 본문이 모든 사람에게 오늘날과 같은 사회적 권리나 평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노예제와 사회적 신분의 차이는 여전히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제도 안에서도 하나님은 힘을 가진 사람의 행동에 제한을 두시고, 다른 사람을 보호할 의무를 부과하십니다.
일곱째 해에는 내가 거두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는 내가 일을 멈춤으로써 다른 사람도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다른 존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법입니다.
시간을 구별하는 백성 — 세 번의 축제
안식에 관한 규정 다음에는 예배와 축제에 관한 명령이 이어집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주의하여 지켜라. 다른 신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 네 입에서 그 이름이 들려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3:13 · 두루새김
이것을 다른 신들의 이름을 어떤 문맥에서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경 자체도 다른 신들의 이름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문맥상 중요한 것은 다른 신들의 이름을 불러 의지하거나 예배하는 행위를 멀리하라는 요구입니다.
세 축제는 이스라엘의 시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하나님은 한 해에 세 번 축제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첫째는 누룩 없는 빵의 축제입니다.
「누룩 없는 빵의 축제를 지켜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 달의 정해진 때에 7일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라. 네가 그달에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아와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3:15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한 해는 단순히 계절이 돌아오는 시간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어떤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지를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둘째는 수확의 축제입니다.
「네가 밭에 씨를 뿌리고 일해서 얻은 첫 수확으로 수확의 축제를 지켜라. 또 한 해가 끝날 때 밭에서 일해 얻은 것을 거두어들이며, 수확물을 모으는 축제를 지켜라.」출애굽기 23:16 · 두루새김
그들은 밭에 씨를 뿌리고 수고합니다. 열매는 그 수고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수확을 하나님 앞에서 축제로 기념합니다.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것이지만, 그 결과를 오직 자기 힘으로만 얻었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는 수확물을 모으는 축제입니다.
여기서 한 해가 끝난다는 표현은 현대 달력의 12월 말일을 뜻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농사의 수확을 마무리하는 시기와 연결된 표현입니다. 이 축제는 이후의 초막절과 연결되며, 수확의 축제는 칠칠절이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합니다(신명기 16:9–15).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과 현재의 노동, 그리고 한 해 동안 거둔 것이 예배의 시간 안에서 연결됩니다.
아직 땅도 얻지 못했는데 수확의 축제를 명령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은 지금 시내산에 있습니다.
아직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밭에서 씨를 뿌리고 수확하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그 땅에서 수확할 때 지킬 축제를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 땅에 들어간 뒤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치십니다. 그 땅에서 자신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노동의 열매를 하나님 앞에 가져오며, 정해진 때에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는 일입니다.
17절은 남자들이 모두 한 해에 세 번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공동체가 정기적으로 함께 예배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만 이 구절이 여성의 예배 참여를 전면적으로 금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남자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분명히 밝히고 있을 뿐, 모든 참석자의 범위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축제의 끝에 놓인 이상한 명령
18–19절은 제물에 관한 규정을 제시합니다.
제물의 피를 누룩이 든 것과 함께 바치지 말 것, 축제에 바친 제물의 기름진 부분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 것, 땅에서 처음 거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의 집으로 가져올 것이라는 명령입니다. 이 규정들은 축제와 제물을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네 땅에서 처음 거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너의 하나님인 나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가져와라.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마라.」출애굽기 23:19 · 두루새김
19절의 「처음 거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 역시 맨 처음 거둔 것이라는 시간적 의미와 으뜸가는 것이라는 질적 의미 사이에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처음 거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는 말로 옮겼습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뒷전으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 구절은 출애굽기 34:26에서 처음 거둔 것에 관한 명령과 함께 다시 등장하고, 신명기 14:21에서는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에 관한 규정 끝에 나타납니다. 후대 유대교에서는 이 명령이 고기와 유제품을 분리하는 음식 규정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3:19 자체가 분명히 금하는 것은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는 행위입니다.
이 명령이 특정한 이방 종교의 의식을 금지하기 위한 것인지, 생명을 먹이는 어미의 젖을 새끼의 죽음에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본문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어떤 고대의 풍요 의식을 가리킨다고 확정하려면 그 의식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이 규정과 관련되었다는 별도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본문만으로 그 배경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예배의 질서는 축제 날짜나 제물의 종류에만 관한 것이 아닙니다. 수확물과 음식을 어떻게 다루는가까지 포함합니다.
20절에서 갑자기 새로운 장면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먼저 길을 준비하시고, 그다음에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네 앞에 천사를 보내겠다. 길에서 너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를 데려가게 하려는 것이다.」출애굽기 23:20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나왔지만, 출애굽은 이집트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이 마련하신 곳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길을 찾아내고 하나님이 뒤따라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먼저 보내십니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길을 걸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그 길에서 그들을 지키고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3:21–22에서 여호와야훼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앞에서 길을 인도하셨던 모습과 연결됩니다.
「내 이름이 그의 안에 있으므로」라는 말은 무엇인가
「그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에게 거역하지 마라. 내 이름이 그의 안에 있으므로, 그는 너희가 거역한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출애굽기 23:21 · 두루새김
하나님이 보내시는 천사는 평범한 길 안내자처럼 묘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특별한 천사로 이해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직접 함께하신다는 점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천사를 대하는 일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네가 그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행한다면, 나는 네 원수들의 원수가 되고 너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맞서겠다.」출애굽기 23:22 · 두루새김
천사의 말을 듣는 일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그 천사에게 거역하는 것은 단순히 길 안내자의 지시를 무시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권위에 맞서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람들의 의견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잘못된 목소리를 거절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을 따라 살아갈 것인지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시는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3–15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내 이름이 그의 안에 있으므로」라는 말은 이 천사가 하나님의 권위를 지니며, 하나님이 그를 통해 특별한 방식으로 함께하심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표현만으로 천사의 정확한 정체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구절만을 근거로 천사가 하나님과 완전히 같은 존재라거나 특정한 인물이라고 확정하는 것은 본문이 말하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21절의 「그는 너희가 거역한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경고 역시 천사의 권위를 가볍게 대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문장만으로 하나님에게 용서가 전혀 없다는 일반 원칙을 끌어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기 34:6–7은 하나님의 용서와 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땅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디로 인도하시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내 천사가 네 앞에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 데려갈 것이다. 내가 그들을 멸망시키겠다.」출애굽기 23:23 · 두루새김
앞에서는 원수의 재산을 돌려주고 함께 사는 외국인을 억누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다른 민족들을 멸망시키거나 몰아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종류의 명령은 어떻게 함께 이해해야 할까요?
앞부분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의 정의와 이웃에 대한 의무를 다룹니다. 뒷부분은 약속된 땅에 들어가는 일과 그 땅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아야 할 언약의 의무를 다룹니다.
「그들의 신들에게 엎드려 절하거나 그 신들을 섬기지 마라. 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마라. 그 신들의 형상을 반드시 무너뜨리고, 그들이 신을 섬기려고 세운 돌기둥도 반드시 깨뜨려라.」출애굽기 23:24 · 두루새김
「그들이 신을 섬기려고 세운 돌기둥」은 종교적 의미를 지닌 세워진 돌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다른 신들에 대한 예배와 관련된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것이 이 본문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23절은 그 민족들을 멸망시키겠다고 말하며, 31–33절은 그 땅의 주민들을 몰아내고 살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표현들은 실제 사람들의 생존과 거주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단순히 마음속의 우상을 없애라는 상징적 명령으로 바꾸어 읽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장은 그 땅에 살던 모든 개인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을 근거로 그 주민들 개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모두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을 주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기존 주민들과 그들의 종교적 질서를 없애시겠다고 선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땅에 관한 특별한 약속과 명령이지, 후대의 다른 민족이나 국가가 자신들의 영토 확장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주어진 일반적인 권한이라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땅에서 누릴 복은 무엇인가
「너희 하나님인 나 여호와야훼를 섬겨라. 내가 너희가 먹는 빵과 마시는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가운데서 병을 없애겠다.」출애굽기 23:25 · 두루새김
「네 땅에는 유산이나 불임이 없을 것이다. 내가 네 수명을 다 채워 주겠다.」출애굽기 23:26 · 두루새김
땅을 차지하는 것만으로 그곳에서의 삶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먹을 것이 있어야 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하며, 다음 세대가 이어져야 합니다.
26절의 유산과 불임에 관한 약속도 사람에게만 적용되는지, 가축의 번식까지 아우르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그 땅에서 생명이 이어지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날들을 누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오늘날 어떤 사람에게도 병이나 유산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보증으로 옮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과 연결된 언약의 복으로 제시됩니다.
왜 하나님은 한꺼번에 몰아내지 않으시는가
이제 하나님은 그 땅을 차지하는 과정을 설명하십니다.
먼저 자신이 일으키는 두려움을 보내어 여러 민족을 혼란에 빠뜨리고, 원수들이 등을 돌리고 달아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네 앞에 말벌을 보내어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을 네 앞에서 몰아내게 하겠다.」출애굽기 23:28 · 두루새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그들 앞에서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 예상하지 못한 제한이 등장합니다.
「나는 그들을 한 해 만에 네 앞에서 몰아내지는 않겠다. 땅이 버려진 채 거칠어지고, 들짐승이 불어나 너를 위협할까 해서다.」출애굽기 23:29 · 두루새김
기존 주민들이 모두 갑자기 사라진다면 농경지와 거주지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들짐승이 불어나 새롭게 들어온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네 수가 늘어나 그 땅을 차지할 때까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몰아내겠다.」출애굽기 23:30 · 두루새김
이 느린 과정은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벌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제시됩니다.
약속이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약속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모든 지연이 하나님의 배려라는 일반적인 원칙으로 확대해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는 특별히 땅이 버려진 채 거칠어지고 들짐승이 불어나는 위험이라는 이유가 분명히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땅을 얻은 뒤 어떻게 농사를 짓고 쉬게 해야 하는지를 명령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땅을 얻는 과정에서도 땅의 상태와 사람들의 수가 고려됩니다.
이스라엘이 차지할 땅은 지도 위에 표시할 공간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고 농사를 짓고 짐승이 움직이는 실제 환경입니다.
물론 이러한 점진적인 과정이 정복과 쫓아내는 일의 폭력성을 없애 주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여전히 기존 주민들을 옮겨 가게 하고 없애는 일을 말합니다.
조금 더 깊이
「말벌」은 신명기 7:20과 여호수아 24:12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적들을 몰아내시는 일과 연결됩니다. 이를 실제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벌 떼로 읽을 수도 있고, 적들에게 닥치는 두려움이나 재앙을 표현하는 이미지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벌의 종류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하지 않으므로 어느 한쪽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넓은 경계보다 더 중요한 경고
31절에서는 하나님이 주실 땅의 경계를 말씀하십니다.
「네 땅의 경계를 갈대 바다에서 블레셋 사람들의 바다까지, 광야에서 그 강까지 정하겠다. 내가 그 땅의 주민들을 너희 손에 넘겨줄 것이니, 너는 그들을 네 앞에서 몰아낼 것이다.」출애굽기 23:31 · 두루새김
「블레셋 사람들의 바다」는 일반적으로 지중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반면 「그 강」은 유프라테스강으로 읽는 것이 흔하지만, 이 절에는 강 이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광야」 역시 여기서 정확한 범위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경계선의 모든 위치를 확정하거나, 특정 시대에 실제로 다스리던 지역과 곧바로 일치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 약속은 추상적인 영적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여러 민족이 살아가는 지역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경계를 정하신 직후 하나님은 다시 경고하십니다.
「그들과도, 그들의 신들과도 언약을 맺지 마라.」출애굽기 23:32 · 두루새김
「그들이 네 땅에 살게 하지 마라. 그들이 너를 나에게 죄짓게 만들까 해서다. 네가 그들의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네게 덫이 될 것이다.」출애굽기 23:33 · 두루새김
여기서 「덫」은 자유롭게 걸어가던 존재를 붙잡는 장치의 이미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억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땅에 들어간 뒤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붙잡히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땅을 약속하시지만, 땅을 차지하는 것 자체를 신앙의 최종 목표로 제시하지는 않으십니다.
그 땅에서 누구를 섬길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갈 땅에는 이미 종교적 관습과 예배의 전통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그들과의 관계가 이스라엘을 다른 신들에 대한 예배로 이끌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하십니다.
함께 사는 외국인을 보호하라는 명령과 가나안 주민들을 몰아내라는 명령은 법과 이야기 속에서 주어진 맥락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맥락의 차이를 밝힌다고 해서, 사람들을 자기 땅에서 몰아내는 일의 윤리적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출애굽기 23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다른 민족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행하실 것인지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습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의 약속과 그 땅에서 지켜야 할 예배의 충성을 중심으로 말씀합니다.
또한 여호수아와 사사기의 이야기는 땅을 차지하는 일이 이 선언만으로 곧바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특히 사사기 1장은 여러 지역에서 기존 주민들이 계속 남아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3장의 약속은 이후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함께 읽어야 하며, 이미 완전히 이루어진 사실처럼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법정에서 시작하여 약속된 땅으로 나아가는 말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그들은 파라오의 명령에서 벗어났지만, 아무런 기준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도록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백성으로 부름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고, 그다음 시내산에서 그들이 살아갈 방식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법규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구원을 얻기 위해 미리 수행해야 했던 조건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 어떤 삶으로 그 구원에 응답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에는 두 장면이 오래 남습니다.
하나는 길에서 무거운 짐에 눌려 주저앉은 나귀의 모습입니다. 그 곁에는 서로 미워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함께 짐을 내려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다른 하나는 아직 가 보지 못한 땅을 향해 떠나야 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그들을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눈앞에 곤란한 원수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앞에 알지 못하는 길이 펼쳐져 있어도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앞에는 아직 차지하지 못한 땅이 있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긴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길을 찾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앞서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은 길의 끝을 모두 보여 주지 않은 채, 그 길에서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며 마무리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