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4–24장 · 예루살렘 심판 예고
과거를 넘어 생명으로
한 사람이 덜 익은 포도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신맛을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포도를 먹은 사람은 아버지인데, 이가 시린 사람은 아들입니다.
에스겔 18장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하던 이 속담으로 시작합니다.
「너희는 왜 이스라엘 땅을 두고 이런 속담을 말하느냐? 『아버지들이 덜 익은 포도를 먹는데, 아들들의 이가 시다.』」에스겔 18:2 · 두루새김
이 속담에는 한 세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다음 세대가 고통받는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유다 백성에게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저지른 죄와 왕들의 잘못이 쌓여 나라가 무너지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성경 자체에도 조상들의 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0:5에서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죄를 여러 세대에 걸쳐 살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열왕기하 23:26–27에서는 므낫세가 저지른 일들이 유다를 향한 심판의 중요한 배경으로 제시됩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역사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그 속담을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아버지가 포도를 먹었다면 아들은 자신의 이가 시린 데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과거를 바꿀 수 없으므로 현재의 자신에게도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 속담의 위험은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과거의 영향이 현재의 책임과 변화의 가능성까지 없애 버린다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에스겔 18장은 바로 그 생각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이 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아버지의 죄가 아들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의 과거도 자신의 미래를 영원히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까? 본문은 처음에는 세대 사이의 책임을 묻다가, 나중에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책임을 묻습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모두 내게 속한다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한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너희는 이스라엘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18:3 · 두루새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속담 사용을 금지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 속담으로 현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방식 자체를 거부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보아라, 모든 사람은 내게 속한다. 아버지도 아들도 모두 내게 속한다. 죄를 짓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죽을 것이다.」에스겔 18:4 · 두루새김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페쉬(נֶפֶשׁ)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생명, 사람, 자신 등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몸과 분리된 불멸의 영혼을 특별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부모와 자녀는 실제로 깊은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생명을 얻고, 양육받으며, 부모의 선택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부모가 하나님 앞에서 자녀의 모든 책임을 대신하거나, 자녀가 부모의 죄에 대한 책임을 자동으로 물려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생명도 여호와야훼께 속합니다. 아들의 생명도 여호와야훼께 속합니다.
어느 한쪽의 생명이 다른 한쪽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이 직접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선언입니다.
에스겔 18장은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에게 죄의 책임과 생명의 길을 말합니다. 이 장의 생명과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과 그분 앞에서 살아가는 문제를 다룹니다. 그러나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는 죽음 이후의 최종 운명을 이 구절에 곧바로 대입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모든 죽음이 죽은 사람 자신의 특정한 죄 때문에 일어났다는 일반 법칙으로 읽어서도 안 됩니다. 에스겔은 죽음의 모든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서 누구에게 죄의 책임을 돌릴 수 있는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 설명을 위해 여호와야훼는 이제 세 사람의 삶을 차례로 보여 주십니다.
의로운 사람의 삶은 어디에서 드러나는가
「어떤 사람이 의롭고, 공정하고 올바른 일을 한다고 하자.」에스겔 18:5 · 두루새김
그의 마음이 얼마나 경건한지, 하나님을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지, 어떤 종교적인 감정을 경험했는지를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가 실제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나열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이웃을 대하는 일
「그는 산에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들을 우러러보지 않는다. 이웃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해 그 여자를 더럽히지 않고, 월경 중인 여자와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에스겔 18:6 · 두루새김
6절의 「산에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지 않고」는 산당에서 우상을 섬기는 식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원문에서는 산에서 먹지 않는다고만 말하며, 무엇을 먹었는지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이어서 우상들을 우러러보지 않는 행동이 나오므로, 우상숭배와 관련된 의식이라는 문맥은 분명합니다.
「월경 중인 여자와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레위기 18:19의 성관계 금지 규정과 연결됩니다. 이 구절은 당시 이스라엘의 정결과 성적 행동에 관한 율법의 일부입니다. 여성의 인격을 부정하거나 월경 자체를 도덕적인 죄로 규정하는 말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목록은 곧바로 경제적 행동으로 이동합니다.
「아무도 억누르지 않고, 빚 때문에 담보로 받은 물건을 돌려준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굶주린 사람에게 자기 빵을 주며,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준다.」에스겔 18:7 · 두루새김
가난한 사람은 돈을 빌리면서 자신의 옷을 담보로 맡길 수도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2:26–27과 신명기 24:12–13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게서 담보로 받은 옷을 해 질 무렵 돌려주도록 규정합니다. 그 옷이 밤에 몸을 덮을 유일한 옷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담보로 받은 물건은 돈을 돌려받기 위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빚진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의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법적 권리가 있다는 사실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까지 고려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자기 빵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줍니다.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소극적인 행동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자를 붙여 빌려주지 않고 웃돈을 받지 않는다. 옳지 않은 일에서 손을 떼고, 사람들 사이의 다툼을 진실에 따라 판결한다.」에스겔 18:8 · 두루새김
이자에 관한 규정은 출애굽기 22:25, 레위기 25:35–37, 신명기 23:19–20 등과 연결됩니다. 각 규정에는 적용 대상과 상황의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모든 시대의 모든 금융 거래에 똑같이 적용되는 금지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스겔의 목록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이용하여 이득을 얻지 않는 행동이 강조됩니다.
특히 「사람들 사이의 다툼을 진실에 따라 판결한다」라는 표현은 의로움이 개인적인 선행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툼을 판단하는 자리에서도 진실과 공정함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5절에서 말한 「공정하고 올바른 일」은 막연히 좋은 성품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배와 가정, 시장과 법정,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의 처지와 굶주린 사람의 식탁에서 드러납니다.
「그가 내 규정을 따르고 내 법을 지켜 성실하게 행한다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 반드시 살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18:9 · 두루새김
여기서 의롭다는 선언은 일상과 무관한 신분 표시가 아닙니다. 바로 앞에서 설명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이토록 의로운 사람이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들도 당연히 의롭게 살까요?
같은 집안에 속하지만 같은 길을 걷지는 않는다
이제 한 집안의 세 세대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의롭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정반대의 삶을 삽니다.
가난한 사람을 억누릅니다. 남의 것을 빼앗습니다. 담보로 받은 물건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우상을 섬깁니다. 부당한 이득을 얻습니다.
「이자를 붙여 빌려주고 웃돈을 받는다. 이런 사람이 살겠느냐? 그는 살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역겨운 짓을 했으니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가 죽는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에스겔 18:13 · 두루새김
이 사람의 아버지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아들을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에는 세 번째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행한 죄를 보고도 따라 하지 않는 아들
「그런데 이 악한 사람에게 아들이 생겼다고 하자. 그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모든 죄를 눈여겨보았지만, 그런 짓을 따라 하지 않았다.」에스겔 18:14 · 두루새김
단지 아버지의 행동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생각해 보고 다른 길을 택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아버지의 행동은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그 아들은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달리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세 번째 사람은 굶주린 사람에게 자기 빵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줍니다. 다른 사람을 억누르지 않고 부당한 이익을 얻지 않습니다. 그 행동들은 첫 번째 사람의 행동과 닮았습니다.
첫째 세대와 셋째 세대는 의롭습니다. 그 사이에 악한 세대가 있습니다.
가족의 역사가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항의하는가
「너희는 『왜 아들이 아버지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 아들은 공정하고 올바른 일을 했고 내 모든 규정을 지켜 행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살 것이다.」에스겔 18:19 · 두루새김
이 질문은 앞의 속담과 연결됩니다. 아버지가 포도를 먹었으니 아들이 이가 시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죽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아버지도 아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의로운 사람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에 따른 보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자신의 악한 행동에 따른 벌을 받을 것이다.」에스겔 18:20 · 두루새김
이 선언은 신명기 24:16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부모의 죄 때문에 자녀를 죽이거나 자녀의 죄 때문에 부모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신명기의 규정이 인간 사회의 재판에서 적용할 원칙을 밝힌다면,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하면서 같은 책임의 문제를 다룹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가 속한 집안의 과거에 가두어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길을 걷는지를 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길을 바꾼다면 어떻게 됩니까?
과거의 악이 현재의 회개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가
「그러나 악한 사람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에서 돌아서서 내 모든 규정을 지키고 공정하고 올바른 일을 한다면, 반드시 살 것이다. 죽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18:21 · 두루새김
여기서 에스겔의 논증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갑니다.
세대 사이의 책임을 구별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더라도, 자신이 이미 저지른 죄 때문에 앞으로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 가능성마저 열어 놓으십니다.
21절에서는 돌아서는 행동 뒤에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따라옵니다. 여호와야훼의 모든 규정을 지킵니다. 공정하고 올바른 일을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돌아서는 것은 이전에 걷던 길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걷는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과거에 저지른 죄는 어떻게 됩니까?
「그가 저지른 모든 죄는 그에게 불리하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행한 옳은 일 때문에 살 것이다.」에스겔 18:22 · 두루새김
과거에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죄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 피해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 죄를 돌이킨 사람에게 계속해서 불리한 판결의 근거로 삼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악한 사람이 죽는 것을 정말 기뻐하겠느냐?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그가 가던 길에서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겠느냐?」에스겔 18:23 · 두루새김
어떤 행동을 심판하시는 것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결과를 기뻐하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는 악을 정당화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악한 사람이 영원히 악한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은 죄인이 그 죄에서 돌아서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의로움은 현재의 악을 덮어 주는가
21–23절을 읽으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악한 사람이 돌이켜 살 수 있다면, 반대로 의로운 사람이 악하게 변할 때는 어떻게 됩니까?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 옳은 길에서 돌아서서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악한 사람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한다면, 그가 살겠느냐? 그가 전에 행한 옳은 일은 하나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저지른 배신과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에스겔 18:24 · 두루새김
22절에서는 악한 사람이 돌아섰을 때 그가 저지른 모든 죄가 불리하게 기억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24절에서는 의로운 사람이 악하게 변했을 때 그가 전에 행한 옳은 일이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의 죄가 현재의 의로운 삶을 무효로 만드는 것도 아니지만, 과거의 의로운 삶이 현재의 죄를 무효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은 선행과 악행의 점수를 계산하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전에 맺은 관계와 삶의 방향을 버리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말합니다.
여기서 「옳은 길에서 돌아서서」라는 표현은 단순히 한 번 실수했다는 말보다 넓습니다.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그 사람은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악한 사람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합니다. 즉 이전에 걷던 의로운 길을 버리고 악한 길로 향한 것입니다.
과거의 죄 때문에 회개를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과거의 의로움 때문에 현재의 불의를 정당화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던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공정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아, 잘 들어라. 내가 하는 일이 공정하지 않으냐? 오히려 너희가 하는 일이 공정하지 않은 것 아니냐?」에스겔 18:25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논쟁의 방향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백성이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속담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각 사람의 현재 행동과 돌이킴에 따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공정함은 단순히 모든 사람을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는 악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을 구별하십니다. 또한 돌아선 사람과 계속 악을 행하는 사람을 구별하십니다.
26–28절에서는 앞서 설명한 두 경우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나 28절에는 특별한 표현이 덧붙습니다.
「그는 자기가 한 일을 돌아보고, 저지른 모든 죄에서 돌아섰다. 그러므로 반드시 살 것이다. 죽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18:28 · 두루새김
「자기가 한 일을 돌아보고」라는 말은 14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14절에서 악한 아버지의 아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눈여겨보았지만 그것을 따라 하지 않았습니다. 28절에서는 악한 사람이 자기가 한 일을 돌아보고 모든 죄에서 돌아섭니다.
한 사람은 아버지의 행동을 눈여겨봅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봅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살펴보는 일이 다른 삶을 선택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그들의 역사적 현실은 여전히 어려웠고, 나라의 멸망이라는 위협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돌이킬 가능성까지 잃어버린 존재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공정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하는 일이 공정하지 않으냐? 오히려 너희가 하는 일이 공정하지 않은 것 아니냐?」에스겔 18:29 · 두루새김
이 반복은 논쟁이 단순히 정보를 몰라서 생긴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일 것인지, 자신들이 익숙하게 생각해 온 책임과 공정함의 기준을 고집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이제 여호와야훼는 더 이상 가상의 아버지와 아들을 이야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직접 부르십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이들이 어떤 이유로 불공정하다고 느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의 논증을 통해 적어도 두 가지 불편함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오랫동안 의롭게 살았던 사람이 악하게 돌아섰다고 해서 심판받는 것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둘째, 악하게 살았던 사람이 돌아서서 옳은 일을 하면 살아난다는 것이 지나치게 너그럽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두 해석은 문맥에서 가능한 설명이지만, 본문이 백성의 항의 이유를 그 두 가지로 밝힌 것은 아닙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너희를 각자가 행한 대로 심판하겠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돌이켜라. 너희의 모든 죄에서 돌아서라. 그러면 죄가 너희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에스겔 18:30 · 두루새김
심판이 있기 때문에 지금 돌이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는 단지 과거에 저지른 행동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에서도 사람을 넘어뜨릴 수 있는 걸림돌이 됩니다.
「너희가 저지른 모든 죄를 내던져라.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이스라엘 백성아,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에스겔 18:31 · 두루새김
삶의 방향을 바꾸는 내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왜 마음과 영인가
여기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이 일어나는 장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마음은 생각과 의지, 판단과 결단을 포함하는 인간의 내면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영 역시 이 문맥에서는 인간 안에서 작용하는 생명의 방향과 내적 태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새 마음은 다른 사람을 억누르지 않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새 영은 부당한 이익을 거절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자기 빵을 주는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처음에 백성은 자신의 고통이 아버지들의 행동 때문에 결정되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와야훼는 왜 그들이 계속 죽음의 길을 선택하려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그들이 처한 모든 현실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비난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사로잡혀, 지금 돌이킬 수 있는 길마저 외면하지 말라는 부름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11:19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백성에게 새로운 영을 주시고 그들 가운데서 돌 같은 마음을 없애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에스겔 36:26에서도 여호와야훼는 새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그들 안에 두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백성에게 직접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라고 명령하십니다. 한 가지는 두 본문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같은 변화의 서로 다른 측면을 말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18장은 심판의 말씀을 듣고 있는 백성에게 지금 돌이키라고 촉구하는 장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책임과 결단이 강조됩니다. 반면 36장은 심판과 포로 생활 이후에 하나님이 백성을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문맥입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내면을 새롭게 하시는 행동이 강조됩니다. 이렇게 읽으면 두 본문은 서로 모순되기보다 긴장 관계 안에서 함께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 긴장을 너무 쉽게 없애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중에 새 마음을 주실 것이므로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36장을 읽는 독자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모든 내적 변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돌아서라. 살아라」
에스겔 18장이 여는 새로운 가능성은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과거를 바꿀 수 없어도 지금 걷는 길에서는 돌아설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누구든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주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돌아서라. 살아라.」에스겔 18:32 · 두루새김
23절에서는 「악한 사람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32절에서는 「누구든 죽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마지막 말씀의 울림을 넓힙니다.
이 두 명령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돌아서는 것은 이전에 걷던 길을 버리는 행동입니다. 살아가는 것은 그 변화가 향하는 목적입니다.
이 말씀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막연한 위로가 아닙니다. 자기 길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공정하지 않다고 비난하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덜 익은 포도의 신맛이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누구의 입에 포도가 들어갔는지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
그리고 그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자신이 원하시는 길을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돌아서라. 살아라.」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