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28장
이 장의 자리 · 25–32장 · 여러 민족을 향한 선언
신이 되려던 왕과 자기 땅에서 살 백성
한 통치자가 바다 한가운데 앉아 자신을 신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는 지혜롭고, 부유하며, 자신이 다스리는 도시는 여러 나라의 재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물으십니다. 「너를 죽이는 자들 앞에서도 네가 신이라고 말하겠느냐?」
이 질문 하나가 에스겔 28장의 전반부를 꿰뚫습니다.
그런데 이 장은 그 통치자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후반부에 이르면 시선이 바뀝니다. 하나님은 시돈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신 뒤,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모아 자기 땅에 살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들은 집을 짓고 포도나무를 심으며 안전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자신을 신처럼 높이려던 사람은 모든 것을 잃고,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평범한 삶의 자리를 돌려받습니다.
「신의 자리에」 — 인간이 자신의 자리를 잊다
「사람의 아들아, 두로의 통치자에게 이렇게 전해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이 교만해져, 자신이 신이며 바다 한가운데 신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너는 사람이지 신이 아닌데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처럼 여겼다.」에스겔 28:2 · 두루새김
에스겔 28장은 통치자의 마음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이 생겨나는 곳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판단하며 뜻을 정하는 내면의 중심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마음이 교만해졌다는 것은 단지 기분이 우쭐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그는 막연하게 자신에게 신과 같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를 신의 자리라고 부릅니다. 그 자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이 표현은 두로라는 도시의 지리적 특성과 연결됩니다. 두로의 중심지는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 자리하고 있었고, 활발한 바닷길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았습니다. 통치자가 바다 한가운데 신의 자리에 앉았다는 말은 이러한 지리적·정치적 현실을 신의 지위로 부풀린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가 실제로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인정됩니다. 다만 그 권력이 그의 존재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처럼 강력해 보일 수는 있어도, 강력해졌다는 이유로 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는 지혜롭게 판단하여 재물을 얻고, 네 보물 창고에 금과 은을 모았다.」에스겔 28:4 · 두루새김
여기서 하나님은 두로의 통치자가 어리석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가 「지혜롭게 판단하여」 재물을 얻었다고 인정하십니다.
「너는 뛰어난 지혜로 장사하여 재물을 늘렸다. 그 재물 때문에 네 마음이 교만해졌다.」에스겔 28:5 · 두루새김
처음에는 지혜가 재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재물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지혜 자체를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죄라고 선언하지도 않으십니다. 문제는 그 지혜와 재물이 통치자에게 어떤 확신을 만들어 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룬 성공을 근거로 자신을 신처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에서 자신에게 한계가 없다는 결론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통치자는 이 차이를 잊었습니다.
그런데 3절에는 조금 이상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너는 다니엘보다도 지혜롭구나. 어떤 비밀도 네게 감추어져 있지 않구나.」에스겔 28:3 · 두루새김
다니엘보다 지혜롭다는 말의 의미
하나는 하나님이 통치자의 뛰어난 지혜를 인정하시면서도 그것이 신의 지위에 오를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는 읽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통치자의 자만을 드러내기 위해 속뜻과 반대로 말씀하신다는 읽기입니다. 자신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마치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듯 「너는 다니엘보다도 지혜롭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심판의 질문들을 보면 비꼬는 듯한 말투를 느낄 수 있지만, 본문은 그 말투를 직접 설명하지 않으므로 어느 하나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통치자는 비밀을 알아낼 만큼 뛰어난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여기서 말하는 다니엘이 누구인지에도 논의가 있습니다. 에스겔 14:14, 20에도 노아와 욥 사이에 다니엘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다니엘서의 이름과 달리 일반적으로 드나엘이라는 자음 표기가 사용됩니다. 이를 다니엘서의 다니엘과 동일한 인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역시 지혜와 비밀을 밝히는 능력으로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다니엘 2:19–23). 반면 고대 우가릿의 「아크하트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넬이라는 인물을 떠올리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서 다넬은 성문에 앉아 과부와 고아의 사건을 판단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우가릿 문헌 KTU 1.17). 어느 인물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적군의 칼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정체
하나님은 다시 통치자의 마음을 지적하십니다.
2절에서 고발하셨던 문제가 그대로 반복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에 대한 심판이 선언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 민족 가운데서 포악한 외국인들을 데려와 너를 치게 하겠다. 그들은 네 지혜의 아름다움을 향해 칼을 뽑고, 네 빛나는 모습을 더럽힐 것이다.」에스겔 28:7 · 두루새김
이것은 통치자가 자랑하던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그의 지혜는 실제로 부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의 능력은 도시를 번영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지혜와 능력으로 만들어 낸 영광이 외부의 공격 앞에 무너집니다.
통치자가 지혜롭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지혜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너를 구덩이로 내려보낼 것이다. 너는 바다 한가운데서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에스겔 28:8 · 두루새김
통치자는 바다 한가운데 신의 자리에 앉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장소가 전혀 다른 의미로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신과 같은 권위를 누리는 자리였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죽음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너를 죽이는 자들 앞에서도 네가 신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찌르는 자들의 손안에서 너는 사람이지 신이 아니다.」에스겔 28:9 · 두루새김
이 질문은 통치자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주장을 실제 상황 속에 놓습니다. 통치자가 다른 사람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졌더라도, 결국 자기 생명은 다른 사람의 손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그가 자신을 신이라고 불렀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끝내 인간으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음 말씀에서 두로의 왕은 훨씬 더 놀라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단순히 바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통치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조금 더 깊이
10절의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외국인의 손에 죽을 것이다」는 수치스러운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언약을 나타내는 표인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죽는다는 말이 이방 왕에게 사용되면서, 그의 위엄과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생각이 철저히 부정됩니다.
에덴에 있던 왕 — 왜 인간 통치자가 그룹으로 묘사되는가?
「사람의 아들아, 두로의 왕을 두고 슬픈 노래를 부르며 그에게 전해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완전함을 보여 주는 도장과 같았다. 지혜가 가득하고 아름다움에 흠이 없었다.」에스겔 28:12 · 두루새김
여기서 말씀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앞에서는 「두로의 통치자」였는데, 이제는 「두로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의 흐름은 모두 두로의 최고 통치자를 향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다만 앞부분이 자신을 신이라고 내세우는 통치자를 고발했다면, 이번에는 왕의 영광과 몰락을 슬픈 노래의 형식으로 표현합니다.
27:3에서 두로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완전하다고 자랑했습니다. 도시 전체의 자랑이 이제 왕 개인에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무대가 크게 달라집니다.
「너는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다. 온갖 보석이 너를 덮고 있었다. 홍옥수와 피트다와 야할롬, 타르시스와 쇼함과 벽옥, 사피르와 노페크와 바르카트, 그리고 금이었다. 너를 위한 손북과 보석을 끼우는 홈들이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네가 창조된 날에 그것들이 마련되었다.」에스겔 28:13 · 두루새김
왜 두로의 왕이 에덴에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창세기 2–3장에서 에덴은 하나님이 인간을 두신 동산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풍요로운 환경이 있으며, 인간은 그 안에서 살아갈 자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고, 결국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름답고 완전한 상태가 있습니다. 그다음 죄가 발견됩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장소에서 쫓겨납니다. 이러한 구조는 창세기의 인간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그는 왕의 영광과 몰락을 설명하기 위해 에덴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로의 왕은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 때문에 교만해졌지만, 에덴의 이야기는 그 아름다움이 선물로 주어진 것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보석으로 덮인 왕
이 목록에 나오는 몇몇 보석의 정확한 현대적 이름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귀중한 보석들이 왕을 덮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출애굽기 28:17–20의 대제사장 가슴받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열두 개의 보석이 박힌 가슴받이를 착용했습니다. 에스겔 28장에 나오는 보석들 가운데 여러 이름이 그 목록과 겹칩니다.
본문은 두로 왕의 특별한 영광을 묘사하면서 에덴과 성소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 더욱 낯선 존재가 등장합니다.
「너는 날개를 넓게 펴서 덮는 그룹이었다. 내가 너를 세웠고, 너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있었다. 너는 불의 돌들 사이를 거닐었다.」에스겔 28:14 · 두루새김
그룹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계시는 곳과 연결되어 등장하는 존재입니다. 창세기 3:24에서는 에덴동산으로 가는 길을 지키며, 출애굽기 25:18–20에서는 언약궤의 속죄소 위에 날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전통적인 읽기를 따르면 두루새김처럼 왕 자신이 「날개를 넓게 펴서 덮는 그룹」이었다고 말합니다. 반면 칠십인역 에스겔 28:14는 왕이 그룹과 함께 있었다는 방향으로 읽습니다. 두 읽기 모두 왕이 하나님의 특별히 거룩한 영역에 있었으며 높은 지위를 누렸다는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그러나 왕과 그룹의 관계는 달라집니다.
왕은 그 자리를 스스로 차지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를 세우신 분이 계십니다.
「네가 창조된 날부터 네 안에서 잘못이 드러날 때까지, 네가 살아온 길에는 흠이 없었다.」에스겔 28:15 · 두루새김
이것은 그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악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름다움과 높은 지위를 받은 존재가 그 상태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타락을 묘사한 본문인가?
에스겔 28:12–19는 기독교 해석의 역사에서 사탄의 타락과 연결되어 읽히기도 했습니다. 에덴과 그룹, 하나님의 산, 높은 자리에서 쫓겨나는 장면들이 그런 연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사야 14:12–15에서 높은 곳에 오르려다 떨어지는 존재의 이미지와도 비교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직접 지목하는 대상은 「두로의 왕」입니다. 또한 16절과 18절에서는 왕의 거래와 그 가운데 있는 폭력이 죄의 핵심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실제 두로의 정치적·경제적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고발입니다.
따라서 에스겔 28장을 사탄이 원래 어떤 천사였으며 언제 어떻게 타락했는지 알려 주는 직접적인 역사 기록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사탄의 타락을 이 본문과 연결하는 것은 후대의 신학적 읽기로 구별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의 「완전함을 보여 주는 도장과 같았다」는 히브리어 호템 타크니트를 옮긴 것입니다. 도장과 잘 재어진 비례 또는 짜임이라는 뜻을 가진 낱말들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잘 재어진 완전한 모양에 도장을 찍는다는 뜻으로도, 완전한 설계의 도장이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문장 구조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이어지는 두 표현이 그 의미를 밝혀 줍니다. 왕은 지혜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됩니다. 13절 끝에는 「손북과 보석을 끼우는 홈들」이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말이 등장합니다. 관련 히브리어 표현은 정확한 뜻이 불확실하여 악기나 장식물, 보석을 끼우는 구조물 등으로 다양하게 이해됩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두로의 왕이 원래 하늘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존재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문이 제공하는 정보보다 훨씬 나아간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과 「불의 돌들」도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와 물체를 가리키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거룩한 산은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를 떠올리게 하며, 불의 돌들은 하나님이 계신 곳의 찬란함이나 위엄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1:13에서도 하나님의 보좌 환상에 등장하는 생물들 사이에 타오르는 숯불 같은 모습이 묘사됩니다.
교역이 폭력으로 가득 찰 때
「네 거래가 많아지자 네 안이 폭력으로 가득 찼고, 너는 죄를 지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더럽혀 하나님의 산에서 내쫓았다. 날개로 덮는 그룹아, 불의 돌들 사이에서 너를 없애 버렸다.」에스겔 28:16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앞의 화려한 에덴 장면을 현실로 되돌려 놓습니다.
에덴과 그룹, 하나님의 산과 불의 돌들 사이를 거닐던 왕이 이제 장사와 폭력의 문제로 고발됩니다. 에스겔 27장은 두로가 얼마나 많은 나라와 거래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금과 은과 보석만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상품으로 거래되었습니다(27:13).
본문은 거래가 많아지는 과정에서 폭력과 공정하지 못한 일이 나타났다고 고발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장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장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왕의 지혜는 부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그 부를 얻는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바로잡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처음에 그를 세우셨던 하나님이 이제 그를 내쫓으십니다. 이는 창세기 3장에서 에덴 밖으로 쫓겨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지된 열매를 먹었습니다. 에스겔에서는 왕이 거래하는 가운데 폭력을 저지르고 공정하지 못하게 행동했습니다. 두 본문을 완전히 같은 사건으로 합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좋은 자리를 인간이 자기 죄로 잃어버린다는 주제는 분명히 연결됩니다.
「너는 네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고, 네 빛나는 모습 때문에 네 지혜를 망쳤다. 나는 너를 땅에 내던지고, 왕들이 구경하도록 그들 앞에 두었다.」에스겔 28:17 · 두루새김
여기서 왕은 지혜가 부족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지혜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과 영광 때문에 그 지혜가 비뚤어졌습니다.
원래 지혜는 자신과 세상을 바르게 판단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의 영광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진 능력이 오히려 자신을 이해하는 눈을 흐리게 만든 것입니다.
처음에는 신의 자리에 앉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왕들이 구경하는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18절에서는 더욱 뜻밖의 장면이 나타납니다.
「너는 수많은 죄와 공정하지 못한 거래로 네 성소들을 더럽혔다. 그래서 내가 네 안에서 불이 나오게 하자, 그 불이 너를 삼켰다. 너를 보는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내가 너를 땅 위의 재로 만들었다.」에스겔 28:18 · 두루새김
앞에서는 외국인들이 쳐들어와 왕을 죽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왕의 안에서 불이 나옵니다. 이것은 앞서 왕의 안이 폭력으로 가득 찼다는 말씀과 의미 있게 연결됩니다.
왕이 누린 영광과 종교적 지위는 그가 저지른 잘못을 덮어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잘못이 그의 거룩한 곳들을 더럽혔다고 고발됩니다. 왕이 어떤 방식으로 부를 쌓는가는 그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보석으로 덮였던 왕이 재가 되고, 신의 자리에 앉았다던 통치자가 땅에 내던져집니다.
조금 더 깊이
16절에서 원문은 「그들은」이라는 복수 주어를 사용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상인들이나 도시의 주민들을 떠올릴 수 있으나, 그 가운데 하나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루새김은 그들이 누구인지 드러내지 않고 「네 안이 폭력으로 가득 찼고」라고 옮겼습니다. 18절의 「네 성소들」이 어느 특정한 성소들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두로의 종교적 장소들을 떠올릴 수 있지만, 본문은 그 이름이나 위치를 밝히지 않습니다.
시돈 — 하나님이 심판 가운데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시다
두로의 왕에 대한 슬픈 노래가 끝나자, 하나님은 에스겔의 얼굴을 다른 도시로 돌리십니다.
시돈은 두로와 함께 페니키아 해안 지역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두 도시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바다를 통한 거래와 정치적 관계에서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시돈을 향해 별도의 말씀을 전합니다.
반면 시돈에 대해서는 그런 구체적인 죄의 목록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시돈의 죄를 자세히 설명하기보다 하나님이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강조합니다.
「이렇게 전해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시돈아, 내가 너에게 맞서겠다. 나는 네 안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내가 그곳을 심판하고 내 거룩함을 드러낼 때, 사람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28:22 · 두루새김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은 그분이 인간의 권력이나 우상과 구별되는 분이라는 사실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특정한 나라의 힘에 매이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실 수도 있고, 그 백성을 업신여긴 다른 나라들을 심판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곳에 전염병을 보내고, 거리에는 피가 흐르게 하겠다. 사방에서 칼이 그곳을 쳐서, 그 안에서 사람들이 죽어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28:23 · 두루새김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낸다는 말을 인간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선언하지만, 역사 속 모든 전쟁과 전염병이 특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이라고 일반화할 근거를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24절에서 갑자기 이스라엘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업신여기던 주변 사람들은 더는 그들에게 찌르는 가시덤불이나 아프게 하는 가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주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28:24 · 두루새김
이 말씀은 시돈에 대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미래를 연결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주변 나라들의 심판이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씀하십니다.
「찌르는 가시덤불」과 「아프게 하는 가시」는 민수기 33:55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주민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눈의 가시와 옆구리를 찌르는 것으로 남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에스겔 28장에서는 비슷한 모습이 이스라엘 주변에서 그들을 업신여기는 민족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이 가시들은 단순히 불편한 이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히고 상처 입히는 적대적인 세력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위협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장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왕은 쫓겨났고, 백성은 자기 땅으로 돌아온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이 흩어져 있던 여러 민족 가운데서 모을 때, 여러 민족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통해 내 거룩함을 드러내겠다. 그들은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자기 땅에서 살 것이다.」에스겔 28:25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에스겔 28장의 마지막을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꿉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두로의 왕을 하나님의 산에서 내쫓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땅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땅은 하나님이 조상에게 주신 약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5:12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래전에 주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흩어진 백성을 그 땅에 다시 살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안전하게 살며 집을 짓고 포도나무를 심을 것이다. 내가 주변에서 그들을 업신여기던 자들을 모두 심판할 때, 그들은 안전하게 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28:26 · 두루새김
그들은 오랫동안 전쟁과 유배를 겪었습니다. 자기 땅을 떠났고, 집과 생활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집을 짓고 포도나무를 심는다는 말은 단순한 경제 활동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곳에 머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포도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그 땅에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포도나무를 심는 사람은 오늘 당장 모든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야 포도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안전은 신처럼 높아지는 일이 아니라, 자기 땅에서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주변 나라들의 적대감과 위협이 사라지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을 다른 모든 민족이 사라지고 이스라엘만 남게 된다는 뜻으로 넓혀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의 강조점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주변의 적대적인 세력 때문에 끊임없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두로의 통치자는 자신이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하십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통해 그분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두로 왕의 에덴은 그의 영광과 몰락을 표현하는 시적인 모습이고,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일은 유배된 백성이 돌아오는 역사적 회복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자신의 죄 때문에 심판받았습니다. 에스겔은 앞부분에서 예루살렘의 죄와 멸망을 매우 엄중하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그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백성을 다시 모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에덴동산으로 돌아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야곱에게 주어진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살아갈 자리를 주시고, 죄로 잃어버린 삶을 다시 세우신다는 주제는 분명하게 이어집니다. 에스겔 36:33–36에서는 황폐했던 땅이 에덴동산처럼 되리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맺음말 — 보석으로 덮인 왕과 포도나무를 심는 백성
두로의 왕은 신이 되려고 자신을 높였지만, 결국 인간으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을 다시 받습니다.
하나님은 두로의 왕에게 그가 사람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임을 알려 주십니다.
한쪽에서는 신이라고 주장하던 목소리가 사라집니다.
다른 쪽에서는 집을 짓는 소리가 들리고, 포도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땅을 일굽니다.
에스겔 28장은 그 평범한 풍경에서 끝납니다.
자신을 신이라 부르던 왕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이 모으신 백성은 자기 땅에서 살아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