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4–6장 · 위협받는 이스라엘
버림받은 사람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
유딧기 6장은 한 사람이 버림받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키오르는 홀로페르네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무시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분노했고, 홀로페르네스는 아키오르에게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는 아키오르를 적의 땅으로 끌고 가 죽게 내버려 두라고 명령합니다.
한쪽에서는 권력자가 자신의 얼굴을 거두고, 다른 쪽에서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유딧기 6장은 누구의 얼굴 앞에 서는 것이 참된 안전인가 하는 질문을, 버림받은 한 사람의 여정을 통해 보여줍니다.
「느부갓네살 말고 누가 신이냐?」
5장에서는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에 관한 정보를 요구했고, 아키오르는 그 백성의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그의 설명은 군사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조언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6장은 그 조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아키오르라는 사람 자체를 문제 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는 모압의 모든 자손에게도 말했습니다. 「아키오르야, 너는 대체 누구이며 돈을 받고 싸우는 에브라임의 군인들은 또 누구냐? 네가 무엇이기에 오늘 우리 앞에서 이렇게 예언하며,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싸 지키실 테니 이스라엘 민족과 싸우지 말라고 하느냐? 느부갓네살 말고 누가 신이냐? 느부갓네살 왕께서 군대를 보내 그들을 땅 위에서 없애 버리실 것이다. 그들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해 내지 않으실 것이다.」유딧기 6:2 · 두루새김
앞 장에서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근거해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실 가능성을 설명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그 조언을 마치 신의 권위를 내세워 자신에게 도전한 발언처럼 취급합니다.
그는 아키오르의 설명이 사실인지 살펴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정말 그런 역사가 있는지, 그들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묻지도 않습니다.
대신 말할 자격부터 문제 삼습니다.
「너는 대체 누구이며 돈을 받고 싸우는 에브라임의 군인들은 또 누구냐?」라는 표현에는 상대를 낮추어 보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느부갓네살 외에는 신이라고 부를 존재가 없다는 듯 말합니다. 이는 앞서 다른 민족들의 신을 없애고 느부갓네살만을 신으로 부르게 하려 했던 제국의 종교적 요구와 일치합니다(3:8).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백성을 보호하실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그 가능성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분의 종인 우리가 그들을 한 사람 치듯 쳐부술 것이다. 그들은 우리 말들의 힘을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유딧기 6:3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하나의 민족이지만, 홀로페르네스는 그들을 마치 한 사람을 공격하듯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의 군사력을 지나치게 작게 보는 표현입니다.
반면 자신들은 느부갓네살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앞 장에서 아키오르가 홀로페르네스를 자신의 주인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됩니다. 홀로페르네스에게는 느부갓네살이 가장 높은 권위이며, 그 왕에게 복종하는 군대가 세상을 지배할 힘을 가집니다.
「우리는 그 말들로 그들을 불태워 버릴 것이다. 그들의 땅은 그들의 피에 취하고, 평야는 그들의 시체로 가득 찰 것이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우리 앞에서 버티지 못하고, 모두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온 땅의 주인이신 느부갓네살 왕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분의 말은 한마디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유딧기 6:4 · 두루새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 전체가 죽음으로 물들 것이라는 위협입니다. 그는 단순히 느부갓네살이 그렇게 명령했다고 전달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 왕의 말이 반드시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듯 선언합니다.
이것은 아키오르를 예언한다고 비난한 사람이 정작 자신의 왕에게는 실패할 수 없는 말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입니다. 아키오르는 하나님의 행동을 함부로 확정하지 않았지만, 홀로페르네스는 왕의 말을 이미 이루어진 운명처럼 선언합니다.
이제 그 확신은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한 아키오르를 처벌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돈을 받고 싸우는 에브라임의 군인들」이 왜 아키오르와 함께 언급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키오르는 본문에서 암몬 사람으로 소개되며, 5절에서도 「돈을 받고 싸우는 암몬의 군인」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을 근거로 아키오르가 에브라임 출신이라거나 에브라임 군대의 지휘관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열왕기하 18:33–35에서 아시리아 왕의 신하 랍사게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다른 나라들의 신들이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자기 나라를 구해 낸 적이 있느냐고 묻고, 하나님이 어떻게 예루살렘을 구하실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두 장면이 직접 인용으로 이어진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제국이 전쟁에서 이겼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이 구원하실 능력까지 부정한다는 점에서 같은 문제를 드러냅니다.
죽이는 대신 적의 운명에 묶어 두다
홀로페르네스가 아키오르에게 내리는 처벌은 예상과 다릅니다.
「아키오르야, 돈을 받고 싸우는 암몬의 군인아, 너는 오늘 그런 말을 하여 잘못을 저질렀다. 오늘부터 내가 이집트에서 나온 민족에게 보복할 때까지 너는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유딧기 6:5 · 두루새김
그는 아키오르가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선언합니다. 아키오르의 발언이 잘못이라는 판단은 전적으로 홀로페르네스의 권위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처벌의 첫 번째 내용은 죽음이 아니라 추방입니다.
고대 왕이나 권력자의 얼굴 앞에 선다는 것은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지위와 관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아키오르는 지금까지 군사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 자리에서 완전히 배제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형벌의 전부는 아닙니다.
「너는 그들과 함께 죽임을 당할 때까지 살아 있을 것이다.」유딧기 6:8 · 두루새김
아키오르에게는 이제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이 주어집니다. 그들이 살면 그도 살고, 그들이 죽으면 그도 죽게 하려는 것입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아키오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그들의 승리를 기대한다면, 그들과 함께 그 결과를 직접 경험하도록 만들려 합니다.
「네가 정말 그들이 사로잡히지 않으리라고 마음속으로 기대한다면, 풀죽은 얼굴을 하지 마라. 내가 말했다. 내 말은 한마디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유딧기 6:9 · 두루새김
홀로페르네스는 겉으로는 낙담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키오르의 기대가 곧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아키오르의 마음속 기대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아키오르를 이스라엘과 함께 죽게 하려고 그들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동시에 아키오르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만듭니다. 지금까지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고 있었지만, 본문은 그가 그들과 함께 살거나 예배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아키오르를 죽음의 장소로 보낸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보내는 곳은 아키오르가 말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입니다.
묶어 버린 사람들과 풀어 준 사람들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의 종들에게 아키오르를 베툴리아로 데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명령과 조금 다릅니다.
종들은 아키오르를 끌고 평야를 지나 산지로 올라갑니다. 베툴리아 아래에 있는 샘들에 도착했을 때 도시의 남자들이 그들을 발견합니다.
도시의 남자들은 산꼭대기에서 그들을 보고 무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도시 밖 산꼭대기로 나왔습니다. 물매를 쓰는 사람들은 모두 올라오는 길을 굳게 지키며 그들에게 돌을 날렸습니다.유딧기 6:12 · 두루새김
앞서 대제사장 요야김은 유대로 올라가는 좁은 통로를 장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제 베툴리아 사람들은 그 통로를 지키며 접근하는 아시리아 병사들을 막아 냅니다. 그들은 거대한 군대를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서 돌을 날리며 적군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 방어 때문에 뜻밖의 일이 일어납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종들은 산 아래로 몸을 숨겨 들어가 아키오르를 묶었습니다. 그들은 아키오르를 산기슭에 내던져 두고 자기들의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유딧기 6:13 · 두루새김
그는 무기를 가진 병사도 아니고,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이 섬기던 군대에 붙잡혀 왔고, 이제는 적의 도시 아래에 묶인 채 버려졌습니다.
반면 아키오르는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도시에서 내려와 아키오르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들은 그를 풀어 주고 베툴리아로 데려가 도시의 지도자들 앞에 세웠습니다.유딧기 6:14 · 두루새김
아키오르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 그들을 공격하려는 군대의 지휘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베툴리아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버려졌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아키오르를 버린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묶었습니다.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아직 그의 말을 듣기도 전에 묶인 줄부터 풀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경험한 일을 말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신명기 10:18–19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본문은 하나님이 나그네를 사랑하시며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도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유딧기 6장이 이 율법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아키오르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적의 진영에서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공동체 밖에서 온 사람을 대하는 이스라엘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나그네를 돌보신다는 구약의 가르침과 의미 있게 연결됩니다.
한 사람을 가운데 세우고 그의 말을 듣다
베툴리아에는 세 명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시므온 지파 출신인 웃시야, 카브리스, 카르미스입니다. 그 가운데 웃시야가 도시의 장로들을 불러 모읍니다.
웃시야는 도시의 장로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도 모두 모임에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아키오르를 온 백성 한가운데 세웠고, 웃시야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유딧기 6:16 · 두루새김
홀로페르네스의 천막에는 군대의 지휘관들과 여러 민족의 지도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베툴리아에서는 장로들뿐 아니라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도 모임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그가 대우받는 방식은 다릅니다.
한 지도자는 자신의 확신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에게서 말할 기회를 빼앗았습니다. 다른 지도자는 적의 진영에서 온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아키오르는 홀로페르네스의 회의에서 오간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자기가 아시리아 지도자들 앞에서 한 모든 말과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큰소리친 말들을 전했습니다.유딧기 6:17 · 두루새김
여기서 아키오르는 자신의 불행만을 호소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왜 쫓겨났는지 설명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이 지금 어떤 적을 상대하고 있는지 알려 줍니다. 그가 전하는 말에는 실제적인 군사 정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키오르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을 말했는지도 전합니다. 그가 이전 회의에서 했던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어떻게 행동하셨는가에 관한 설명이었습니다.
한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시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자신의 역사를 알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적군의 진영에서 쫓겨난 사람이 자신들이 어떤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인지 말하고, 그 하나님 때문에 적군의 지휘관이 자신을 버렸다고 설명합니다.
이 장면에서 아키오르는 단순히 적군의 움직임을 알리는 전달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민족의 사람도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했다가 고난을 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인이 됩니다.
왕에게는 버림받은 얼굴, 하나님께는 굽어보아 달라는 얼굴
백성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유딧기 6:18 · 두루새김
처음에 홀로페르네스는 아키오르에게 말했고, 이어서 아키오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말합니다.
「주님, 하늘의 하나님, 그들의 거만한 짓을 내려다보시고 비참한 처지에 놓인 저희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오늘 당신께 거룩하게 바쳐진 사람들을 굽어살펴 주십시오.」유딧기 6:19 · 두루새김
높은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을 멸망시키겠다고 위협하는 사람들과, 그 위협 아래에서 낮아진 사람들이 마주 놓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나 의로움을 근거로 승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적의 거만한 짓과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하나님께 보여 드립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난을 감추지 않습니다. 동시에 자기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모든 결정을 자신들이 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비참한 처지」를 반드시 죄에 대한 회개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기도의 직접적인 배경은 홀로페르네스의 위협과 백성이 처한 굴욕적인 상황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겪는 고난을 어떤 구체적인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에서 「거룩하게 바쳐진 사람들」은 하나님께 구별되어 속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완전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관계를 근거로 돌보심을 구합니다.
이제 처음에 등장했던 얼굴의 이미지가 원문에서 다시 돌아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아키오르에게 「너는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오늘 당신께 거룩하게 바쳐진 사람들을 굽어살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원문에서는 이 사람들의 ‘얼굴’을 굽어보아 달라고 합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권력자가 상대를 자기 앞에서 배제하는 행동입니다. 반면 하나님께 얼굴을 굽어보아 달라는 기도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외면하지 말아 주시라는 간구입니다.
이제 그들의 기도는 사람을 향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6:24–26의 제사장 축복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얼굴을 백성에게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안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시편 27:8–9에서는 시편의 기도자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며, 그 얼굴을 숨기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러한 본문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단순한 외모의 묘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하여 관심과 은혜를 베푸시는 관계를 표현합니다. 유딧기 6장의 기도도 같은 신앙의 언어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키오르를 위로하고, 밤새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다
백성은 아키오르를 위로하고 크게 칭찬했습니다.유딧기 6:20 · 두루새김
홀로페르네스에게 처벌의 이유가 되었던 말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칭찬받을 행동이 된 것입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진영에서 아키오르는 위험한 말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툴리아에서는 자신들의 하나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말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웃시야는 모임에 있던 아키오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고, 장로들을 위해 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들은 그날 밤 내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유딧기 6:21 · 두루새김
그러나 이 모임을 이미 승리를 확신한 축하 잔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서로를 맞아들이고 함께하는 일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일이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아키오르는 안전하게 도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도시 자체는 아직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를 묶었던 줄은 풀렸지만, 홀로페르네스의 군대는 여전히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을 구해 낼 수 있었지만, 자신들의 공동체 전체를 구원할 힘까지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사람을 버리는 방식과 살리는 방식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의 왕의 말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의 말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명령이 됩니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을 침묵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함께 상황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키오르를 구원하셨다는 직접적인 선언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본문은 그를 풀어 준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기도와 버림받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같은 이야기 안에서 나란히 나타난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마침내 웃시야의 집에는 아키오르가 머물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날 밤, 그 집에서는 장로들이 함께 모였고,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의 말이 한마디도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베툴리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그렇게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직 무엇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버림받은 한 사람을 자기 집에 맞아들이고, 함께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왕에게는 더 이상 얼굴을 보일 수 없게 된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유딧기 6장은 그 밤의 기도로 끝납니다. 아직 날은 밝지 않았고, 그들이 구한 도움도 아직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산기슭에 홀로 버려졌던 아키오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