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풀어 읽기 · 32장
이 장의 자리 · 30–33장 · 회복의 약속
무너질 성읍에서 밭을 사다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성을 둘러싼 공격용 흙 언덕이 점점 가까워지고, 사람들은 전쟁과 굶주림과 전염병에 시달립니다. 유다 왕국의 멸망은 이제 먼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십니다.
밭을 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루살렘 밖, 바벨론 군대의 위협을 받는 베냐민 땅의 밭입니다. 예레미야 자신은 왕궁 경비대 뜰에 갇혀 있어 그 밭에 갈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그는 바로 그 땅이 바벨론에 넘어갈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실제로 은을 지불합니다. 매매 계약서를 쓰고, 증인을 세우고, 계약서를 봉인한 뒤, 오랫동안 보관하도록 질그릇에 넣게 합니다.
예레미야가 기도하며 성읍이 함락되는 일과 밭을 사라는 명령을 함께 아뢰는 것입니다.
이 장은 모든 것을 확신한 사람이 믿음의 행동을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한 뒤에도, 그 말씀이 현실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는지 하나님께 묻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예언자는 감옥에 있고, 왕은 패배를 듣고 있다
32장은 시드기야가 유다를 다스린 지 열째 해라는 정확한 시점을 제시합니다. 대략 기원전 588–587년에 해당하며,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의 시기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성읍을 포위하고 있었고, 예레미야는 경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가 갇힌 이유는 왕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넘어가고 자신도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느냐고 묻습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는 칼데아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는 바벨론 왕을 직접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예레미야 32:4 · 두루새김
시드기야에게 예언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았고, 그 말이 자신의 왕권과 나라의 운명에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았습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27:12–15에서는 바벨론 왕을 섬기고 살아남으라는 권고가 등장합니다.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에 굴복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치 질서를 찬양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선고된 심판을 인정하고 더 큰 파멸을 피하라는 경고였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이 말을 전하는 예언자를 가두었습니다.
왕은 예언자를 가둘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왕국을 구할 능력은 없습니다. 반대로 예레미야는 갇혀 있어 자신이 머물 곳조차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미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데려갈 것이다. 시드기야는 내가 그를 찾아갈 때까지 그곳에 있을 것이다. 나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너희가 칼데아 사람들과 싸우더라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예레미야 32:5 · 두루새김
여기서 「찾아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파카드(פָּקַד)는 누군가를 살피거나 돌보는 일에도, 책임을 물어 벌하는 일에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 표현만으로 시드기야가 회복될 것인지, 추가적인 처분을 받게 될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의 운명이 여전히 하나님의 손에 놓여 있음을 강조합니다.
뒤의 예레미야 39:5–7은 시드기야가 붙잡혀 바벨론 왕 앞에서 심판받고 끌려가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예언자는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할 이유를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땅을 사라고 하십니다.
은 십칠 세겔과 질그릇 — 미래를 위해 남겨 둔 문서
친족에게 주어진 권리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보아라, 네 삼촌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올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 줘. 가까운 친척으로서 그 밭을 사들일 권리가 네게 있으니까.”』」예레미야 32:7 · 두루새김
아나돗은 예레미야의 고향입니다(예레미야 1:1). 예루살렘 북동쪽 베냐민 지역에 있던 제사장 성읍으로, 예레미야에게는 자신의 삶과 가족의 역사가 연결된 장소입니다.
레위기 25:23–25에는 이스라엘의 땅 소유를 이해하는 중요한 원칙이 나옵니다. 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가난 때문에 땅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가까운 친척이 그것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에서는 땅이 단순히 돈으로 교환하는 상품이 아니라 가족과 지파가 살아가는 터전으로 여겨집니다. 룻기 4:1–10에서도 친척이 땅과 가족의 권리에 관계되는 법적 책임을 논의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 사촌 하나멜이 경비대 뜰에 있는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좀 사 줘. 그 땅을 물려받을 권리가 네게 있고, 친척으로서 사들일 권리도 네게 있으니 네가 사 줘.』 그제야 저는 이것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임을 알았습니다.」예레미야 32:8 · 두루새김
그는 하나멜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멜이 실제로 찾아와 같은 요청을 했을 때, 그 말씀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임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행동은 망설임 없이 기록됩니다.
돈을 지불하고 증인을 세우다
예레미야는 은 열일곱 세겔을 달아 주고 밭을 삽니다.
예레미야는 마음속으로만 그 땅이 회복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소유권을 주고받는 거래를 위해 은을 내놓았습니다.
10–12절에서는 매매 절차가 자세히 기록됩니다. 계약서를 쓰고 봉인하며, 증인들을 세우고, 바룩에게 계약서를 넘깁니다. 예레미야는 실제로 효력을 갖는 거래를 했습니다.
또한 이 행동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멜도 보고 있고, 증인들도 보고 있으며, 경비대 뜰에 앉아 있는 유다 사람들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한 사람에게만 마음속 확신을 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사건을 통해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서들, 곧 봉인된 매매 계약서와 펼쳐 둔 계약서를 가져다가 질그릇에 넣어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예레미야 32:14 · 두루새김
질그릇에 넣어 둔 계약서는 가까운 시일에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계약서가 필요한 미래는 예레미야 자신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시대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다시 집과 밭과 포도밭을 사게 될 것이다.』」예레미야 32:15 · 두루새김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평온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집과 밭을 사고, 포도밭을 가꾸며, 거래를 증명하는 계약서를 주고받는다면 그 땅에 다시 삶을 이어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가 산 밭의 의미는 그 밭이 지금 안전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안전하지 않은 그 땅에서 언젠가 다시 일상의 삶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예레미야 32:8의 하나멜은 「그 땅을 물려받을 권리」와 「친척으로서 사들일 권리」를 함께 말합니다. 두 표현의 법적 범위가 정확히 어떻게 구분되는지는 본문만으로 전부 확인할 수 없지만, 예레미야에게 일반적인 구매자와 다른 친척으로서의 우선적인 권리가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특히 봉인된 계약서와 펼쳐 둔 계약서가 함께 언급됩니다. 고대의 거래 문서는 봉인하여 보존하는 형태와 내용을 볼 수 있는 형태를 함께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본문에서 두 계약서를 정확히 어떤 법적 기능으로 구별했는지는 완전히 확정할 수 없습니다.
순종한 뒤에 시작된 질문
16절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바꿉니다.
예레미야는 거래를 마친 후 기도합니다. 앞의 장면만 보면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충분히 이해하고 행동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들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 주 여호와야훼여! 주님께서는 큰 힘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주님께 너무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예레미야 32:17 · 두루새김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라면 예루살렘과 유다의 운명도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그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8–19절에서는 하나님의 두 성품이 함께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수천의 사람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으십니다. 사람들의 모든 삶을 살피시고 살아온 길과 행동의 열매에 따라 갚으십니다.
18절의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미치는 결과와 19절의 개인별 책임은 서로 긴장 관계를 이룹니다. 이 본문은 세대에 걸친 죄의 결과를 인정하는 동시에 각자의 행동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판단을 말합니다. 이를 개인에게 아무 책임 없이 조상의 죄를 떠넘긴다는 주장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어서 예레미야는 출애굽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표징과 놀라운 일을 행하셨고,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셨으며,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23절에서 주어가 바뀝니다.
「『그들은 이 땅에 들어와 차지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모든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게 하셨습니다.』」예레미야 32:23 · 두루새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지만, 백성은 그 땅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예레미야가 앞서 선포했던 심판의 메시지와 일치합니다.
그런데 24절에서는 기도가 갑자기 현재의 전쟁터로 돌아옵니다.
「『보십시오. 적군이 성읍을 차지하려고 쌓은 흙 언덕이 성읍에까지 닿았습니다. 칼과 굶주림과 전염병 때문에 성읍은 이곳을 공격하는 칼데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일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도 보고 계십니다.』」예레미야 32:24 · 두루새김
예레미야가 기도하는 동안에도 바깥에서는 성을 포위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면서 눈앞의 전쟁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꺼냅니다.
「『그런데 주 여호와야훼여, 주님께서는 제게 은을 주고 밭을 사고 증인들을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읍은 칼데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는데도 말입니다.』」예레미야 32:25 · 두루새김
이 기도에는 직접적인 질문문이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왜 그런 명령을 하셨느냐고 분명히 묻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명령과 눈앞의 현실을 나란히 놓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행동했고, 그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려 하기에 기도했습니다.
순종과 질문은 반드시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도 그 말씀이 자신의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이해할 수 없음까지 하나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조금 더 깊이
24절의 흙 언덕은 성벽을 공격하기 위해 흙과 돌 등을 쌓아 만든 시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되물으신다 — 정말 내게 어려운 일이 있느냐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첫 말씀은 예레미야가 앞에서 했던 고백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듯합니다.
「보아라, 나는 모든 생명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다.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예레미야 32:27 · 두루새김
17절에서 예레미야는 「주님께 너무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고백했던 하나님의 능력이 이제 하나님의 입을 통해 다시 확인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성읍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이 성읍을 칼데아 사람들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주겠다. 그가 이곳을 차지할 것이다.」예레미야 32:28 · 두루새김
하나님에게 어려운 일이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반드시 사람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심판을 취소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심판과 회복을 모두 자신의 뜻대로 이루실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왜 예루살렘은 무너져야 하는가
29절부터 하나님은 성읍이 불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사람들은 지붕 위에서 바알에게 제물을 태우고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부어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불타게 될 집들은 단순히 죄 없는 공간이 적에게 파괴되는 장소로만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우상숭배가 행해졌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32절에서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열거됩니다. 왕들, 관리들, 제사장들, 예언자들,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입니다. 정치적 지도자와 종교적 지도자, 일반 백성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느 한 집단의 잘못만으로 파멸을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게 얼굴을 향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내가 부지런히 거듭 가르쳤지만, 그들은 듣지도 않고 가르침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예레미야 32:33 · 두루새김
누군가에게 얼굴을 향하는 것은 관계를 맺고 그의 말을 듣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문제가 된 것은 말씀이 부족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향한 백성의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34–35절에서 그 불순종의 심각성이 절정에 이릅니다.
「그들은 아들딸을 몰렉에게 바치려고 벤힌놈 골짜기에 바알의 제사터들을 세웠다. 나는 그런 역겨운 일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았고,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유다가 죄를 짓게 했다.」예레미야 32:35 · 두루새김
종교적 행위라는 이름으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생명을 해쳤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자신의 뜻으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심판하시는 것은 종교적 충성심을 충분히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그 성읍이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쌓인 악을 더 이상 눈감아 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어떤 사건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다는 뜻으로 읽기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도나 명령과 전혀 관계없는 행위임을 강하게 부정하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7:31에서도 자녀를 불사르는 행위에 대해 같은 취지의 말씀이 나옵니다.
심판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 다시 심으신다
36절은 앞의 심판 선언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꿉니다.
곧이어 하나님은 사람들이 쫓겨난 모든 땅에서 그들을 다시 모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이 정당하다는 것을 밝히신 뒤에도, 그 심판으로 모든 관계를 끝내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노여움과 타오르는 분노와 큰 격분으로 그들을 쫓아 보냈던 모든 땅에서 그들을 모으겠다. 그들을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하게 살게 하겠다.」예레미야 32:37 · 두루새김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에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바뀌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동일한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시면서도 백성을 회복시키겠다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한 마음과 한 길
38–40절은 귀환 이후에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예레미야 32:38 · 두루새김
「내가 그들에게 한마음과 한길을 주어 언제나 나를 두려워하게 하겠다. 그들과 그 뒤를 잇는 자녀들이 잘되게 하려는 것이다.」예레미야 32:39 · 두루새김
문맥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삶의 방향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는 왕들과 제사장들, 예언자들과 백성이 각기 자기 길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백성에게 자신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공통된 마음과 길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단순히 처벌을 무서워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앞의 35절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다른 신들에게 바치는 끔찍한 일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잘되게 하려고 새로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겠다. 그들에게서 돌아서지 않고 계속 좋은 일을 베풀겠다.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그들 속에 넣어 주어, 그들이 내게서 떠나지 않게 하겠다.」예레미야 32:40 · 두루새김
과거에 백성은 언약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백성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그들이 그 관계 안에 머물 수 있도록 그들 속에 자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넣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하는 주체는 여전히 백성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러한 응답이 지속될 수 있도록 백성의 마음에 직접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31장에서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면, 32장은 그 언약 관계가 지속되도록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온 마음과 온 영혼을 말씀하시다
41절은 이 장에서 가장 뜻밖의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일을 베풀며 기뻐하겠다. 내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그들을 이 땅에 확실히 심겠다.」예레미야 32:41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하나님이 백성에게 한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백성을 다시 세우시는 일을 단순히 의무로 수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에게 좋은 일을 베푸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라고 하신 명령도 이제 새로운 의미를 갖습니다. 그 명령은 단지 장차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그 땅에 백성을 다시 심겠다는 뜻을 나타내는 행동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의 「내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는 원문에서는 「내 온 마음과 내 온 영혼을 다해」에 해당하며, 히브리어로 브콜 리비 우브콜 나프시입니다. 이 표현은 신명기 6:5의 명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는 모습을 빌려, 하나님이 이 회복을 얼마나 진실하고 확고하게 이루려 하시는지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의 거래를 다시 말씀하신다
42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가장 깊은 질문에 답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백성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내렸듯이, 그들에게 약속하는 모든 좋은 일도 이루어 주겠다.」예레미야 32:42 · 두루새김
예레미야는 눈앞에서 심판의 확실성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심판의 확실성이 회복의 약속을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성읍의 멸망이 그 땅의 마지막 이야기는 아닙니다.
「너희는 이 땅을 두고 『사람도 짐승도 없이 황폐하고 칼데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다시 밭을 사게 될 것이다.」예레미야 32:43 · 두루새김
44절은 처음에 예레미야가 밭을 살 때 밟았던 절차를 거의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주변에서, 유다의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낮은 지대의 성읍들과 네게브의 성읍들에서 사람들이 은을 주고 밭을 살 것이다. 계약서를 쓰고 봉인하며 증인들을 세울 것이다. 내가 그들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예레미야 32:44 · 두루새김
처음에는 전쟁 중의 감옥 뜰에서 이루어진 특별한 거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서 행하는 평범한 거래가 됩니다. 예레미야의 행동은 단 한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명령이었지만, 그 행동이 가리킨 미래는 많은 사람의 일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예루살렘이라는 한 성읍만의 회복이 아니라 유다의 여러 지역에서 땅을 사고팔고 그곳에 자리 잡고 사는 생활이 다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특히 베냐민 땅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는 사실은 8절에서 하나멜이 팔려고 했던 아나돗의 밭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이제 처음의 거래가 마지막 약속 속에 포함됩니다.
예레미야가 알지 못하는 미래를 위해 남겨 둔 것
예레미야는 명령을 받았고, 순종했고, 그 후에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에 하나님은 단순히 자신을 믿으라고만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심판이 필요한지, 그 이후에 어떤 관계를 회복시키려 하시는지, 그리고 왜 밭을 사라는 명령이 미래의 약속과 연결되는지 차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개인적인 성공이나 재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보증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모든 위기 속에서 땅에 투자하면 언젠가 이익을 얻는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특별히 명령하신 일을 했고, 그 행동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을 알리는 예언적 표징이 되었습니다.
바룩은 매매 계약서를 받아 질그릇에 넣어 오랫동안 보관해야 합니다. 성 밖에는 적군이 있고, 성 안에는 굶주림이 있으며, 예레미야는 감옥 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작은 질그릇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 안에는 은 열일곱 세겔을 지불하고 산 밭의 매매 계약서가 들어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그 땅에서 평화롭게 농사짓지 못합니다. 계약서가 언제 다시 필요해질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버리지 말고 보존하라고 하셨습니다.
현재의 사람들이 아직 살아 보지 못한 미래를 위해, 오늘 한 장의 계약서를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예레미야는 질그릇 속에 매매 계약서를 남겨 둡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