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풀어 읽기 · 35장

이 장의 자리 · 34–45장 · 무너지는 예루살렘

포도주를 거절한 사람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한 가족을 성전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포도주를 가득 담은 대접들과 잔들을 놓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절합니다.

이 장면은 처음 읽으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들이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거절을 칭찬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이 마련하게 하신 포도주를 마시지 않은 사람들을 칭찬하실까요?

예레미야 35장이 묻는 것은 포도주를 마셔도 되는가가 아닙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그 말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질문은 성전의 한 방에서 시작해 유다 전체의 운명으로 이어집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735장 본문 읽기 →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고, 낯선 가문이 등장한다

예레미야 35:1–5 본문 →

35장은 여호야김 시대에 주어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요시야의 아들인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에, 여호와야훼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이런 말이 왔습니다.예레미야 35:1 · 두루새김

앞 장의 사건은 시드기야 시대, 곧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35장은 그보다 앞선 여호야김 시대, 대략 기원전 609–598년으로 돌아갑니다. 예레미야서는 모든 사건을 시간순으로 배열하지 않습니다. 예언의 주제와 의미에 따라 서로 다른 시기의 사건들을 나란히 배치하기도 합니다.

34장에서는 하나님 앞에 맺은 약속을 뒤집은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35장에서는 조상의 명령을 오랫동안 지켜 온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나란히 놓인 이야기 덕분에 독자는 유다의 문제가 단지 전쟁 중의 일시적인 혼란이 아니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태도는 나라가 무너지기 전부터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레갑 가문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레갑 집안 사람들을 찾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레갑 집안은 예레미야서에서 갑자기 처음 소개되지만, 그들의 조상인 요나답은 이미 열왕기하에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10:15–23에서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이스라엘 왕 예후와 만납니다. 예후는 그를 자신의 전차에 태우고, 바알 숭배를 없애려는 행동에 참여하게 합니다. 다만 그가 왜 후손들에게 포도주와 정착 생활을 금했는지까지 열왕기하가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대상 2:55에는 레갑 집안과 겐 사람들이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이 계보를 고려하면 레갑 집안이 겐 사람들과 관련된 전통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35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정확한 혈통과 초기 역사를 모두 되살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고, 집을 짓거나 농사를 지어 정착하는 생활도 하지 않았습니다. 천막을 치고 이동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성전으로 데려오게 하십니다.

왜 하필 성전의 방이었을까

예레미야는 레갑 집안 사람들을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있는 한 방으로 안내합니다. 4절은 그 방의 위치를 매우 자세히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이 쓰던 방이며, 관리들의 방 곁에 있었습니다. 관리들의 방은 문지기 마아세야의 방 위에 있었습니다.

성전의 방들은 예배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사용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사람들을 데려간 곳은 누구나 마음대로 드나드는 일반적인 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연결된 공식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집(⁨בַּיִת⁩)안을 뜻하는 표현에도 「집」이라는 말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레갑 집안은 대대로 자기들의 집을 짓지 말라는 명령을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 안으로 들어옵니다.

예레미야는 포도주가 가득 담긴 대접들과 잔들을 내놓습니다. 독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예언자가 포도주를 내놓았을 때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지켜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저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아요」

예레미야 35:6–10 본문 →

레갑 집안은 예레미야의 권유를 거절하며 자기 조상이 남긴 명령을 설명합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저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아요. 저희 조상인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이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이에요.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마라.』」예레미야 35:6 · 두루새김
「『집을 짓지 말고 씨를 뿌리지 말며 포도밭을 가꾸지 마라. 포도밭을 소유하지도 마라. 평생 천막에서 살아라. 너희가 나그네로 머무는 땅에서 오래 살도록 하려는 것이다.』」예레미야 35:7 · 두루새김

처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이유만 설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면,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훨씬 넓은 생활 방식의 일부입니다.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포도밭을 소유하는 것은 한곳에 정착하여 땅을 바탕으로 생활하는 방식을 나타냅니다. 반대로 천막에서 살아가는 것은 이동하며 머무는 삶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요나답이 후손들에게 명령한 것은 단순히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습관이 아니라,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생활 방식과 거리를 두는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자기 소유로 확보하지 않으면서도 그 땅에서 오래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땅의 소유와 땅에서 살아가는 일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에게서 땅을 받았고, 그곳에 도시를 세우고 집을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써 그 땅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였습니다. 반대로 레갑 집안은 땅을 소유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지만, 조상의 명령을 지키며 그 땅에서 살아왔습니다.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땅에서 계속 살아갈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리에서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따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하나의 결정

그들의 후손은 자신들이 직접 만난 적도 없을 수 있는 조상의 명령을 계속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명령은 먼 옛날의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집을 짓지 않는다는 것은 편리함을 제한하는 일입니다. 포도밭과 밭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착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상의 명령을 지켜 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일반적으로 집을 짓지 말거나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신명기 6:10–11에서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자신들이 세우지 않은 도시와 집, 자신들이 심지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나무를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주 역시 성경에서 언제나 금지되는 음식은 아닙니다. 신명기 14:26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기는 절기와 관련하여 포도주가 언급됩니다.

그러므로 레갑 집안의 생활 방식이 이스라엘 전체에 적용되는 율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그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요나답이 왜 그러한 명령을 내렸는지는 본문이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한 가지 가능성은 이스라엘의 오래된 광야 생활을 지키려는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나온 뒤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살아갔으며, 땅을 소유하고 정착한 이후에도 광야의 경험을 중요한 신앙의 기억으로 간직했습니다. 다른 가능성은 정착 생활과 연결된 종교적·사회적 관습에서 자신들의 집안을 구별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0장에서 요나답이 예후의 바알 숭배 제거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종교적 구별을 중요하게 여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요나답이 실제로 명령을 내린 이유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천막을 떠나 예루살렘에 들어온 이유

예레미야 35:11 본문 →

레갑 집안은 자신들이 현재 예루살렘에 머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 땅에 쳐들어왔을 때, 저희는 『자, 칼데아 군대와 아람 군대를 피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자.』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어요.」예레미야 35:11 · 두루새김

열왕기하 24:1–2에서도 여호야김 시대에 칼데아 군대뿐 아니라 아람 사람들의 부대가 유다를 공격했다고 기록합니다. 예레미야 35장의 전쟁 상황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는 기록입니다.

레갑 집안은 전쟁의 위험을 무시하면서까지 천막 생활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피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뒤에서 그들이 조상의 명령을 지켰다고 반복해서 인정하십니다.

레갑 집안은 조상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이동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천막 생활을 원칙으로 삼으면서도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는 피난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정확히 어떤 형태의 숙소에서 지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를 조상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전쟁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피하는 것과 조상의 명령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그들에게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레갑 집안의 이야기를 유다 전체를 향한 말씀으로 바꾸십니다.

한 번의 말과 거듭된 말씀

예레미야 35:12–16 본문 →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옵니다.

지금까지는 레갑 집안의 생활 방식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그들의 행동이 왜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나야 했는지 밝혀집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해라. 『너희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내 말을 듣지 않겠느냐? 나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예레미야 35:13 · 두루새김

하나님은 레갑 집안을 유다 백성이 배워야 할 사례로 제시하십니다. 그 대신 레갑 집안이 조상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보라고 하십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자기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령한 말은 지켜졌다. 그들은 조상의 명령을 따라 오늘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 나는 너희에게 부지런히 거듭 말했지만,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예레미야 35:14 · 두루새김

이 비교는 단지 레갑 집안의 순종이 유다보다 훌륭하다는 평가가 아닙니다. 말씀하시는 분의 권위와 말씀의 반복이라는 차이까지 드러냅니다. 레갑 집안은 오래전에 살았던 한 조상의 명령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땅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듣고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듣다」는 말의 무게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일이 아닙니다. 레갑 집안은 조상의 말을 들어 왔다는 사실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차례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 말씀에 맞게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7:23–24에서 하나님은 백성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자기들의 고집스러운 마음을 따라 걸었다고 말씀하십니다. 35장에서는 그 비판이 한 집안의 행동과 대조되면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침묵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신 뒤 백성이 따르지 않자 곧바로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들도 계속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충분히 알아들을 기회도 없이 그들을 심판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백성이 오랫동안 말씀을 거절하는 동안 계속해서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부르셨습니다.

「『나는 내 종들인 모든 예언자를 너희에게 거듭 보내 이렇게 말했다. “부디 저마다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행동을 바르게 해라. 다른 신들을 따라가 섬기지 마라. 그러면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내 말을 듣지 않았다.』」예레미야 35:15 · 두루새김

이 명령들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 방식에 관한 규칙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을 대하는 행동, 예배의 대상에 관한 근본적인 요구입니다.

레갑 집안의 조상 요나답의 명령과 하나님의 말씀은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제한된 권위를 가진 조상의 명령조차 이렇게 충실히 지켜졌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유다는 왜 듣지 않았느냐고 물으십니다.

따라서 이 본문을 조상이나 부모의 모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은 레갑 집안의 충실함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모든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갑 집안의 행동이 유다를 고발하는 이유는 그들의 생활 방식이 더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들은 말을 삶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과 15절에는 「거듭」이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히브리어에는 본래 일찍 일어나는 행동을 나타내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이 열심히, 지속적으로 말씀하시거나 예언자들을 보내셨다는 의미로 쓰이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내가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35:17 본문 →

17절에서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경고한 재앙을 모두 내리겠다. 내가 말해도 그들이 듣지 않았고, 내가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예레미야 35:17 · 두루새김

말함과 들음, 부름과 대답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 실패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7:13에서도 하나님은 거듭 말씀하시고 부르셨으나 백성이 듣거나 대답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백성을 향해 일방적으로 명령만 내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응답하기를 바라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언자들을 보내신 것도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레갑 집안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즉시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거절이었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조상에게서 받은 명령을 존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유다에게 말씀하셨을 때에는 제대로 된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 대조가 특별한 것은 하나님이 레갑 집안의 거절을 인정하시면서, 유다의 거절은 심판하신다는 점입니다. 레갑 집안은 오랜 명령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권유를 거절했습니다. 유다는 자신들에게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거절했습니다.

따라서 이 장은 무조건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태도를 칭찬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말에 충실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말을 들었다는 사실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묻습니다.

심판의 말씀 속에서 한 가문에게 주어진 약속

예레미야 35:18–19 본문 →

그런데 18절에서는 예레미야가 다시 레갑 집안을 향해 말합니다.

이번에는 포도주를 마시라는 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레미야가 레갑 집안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너희 조상 요나답의 명령을 듣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켰으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다 행했다.』」예레미야 35:18 · 두루새김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하여 실제 행동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충실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조상이 남긴 명령 전체를 자신들의 삶에 적용해 왔다는 점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약속이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야훼인 내가 말한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집안에는 언제나 내 앞에 서는 사람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예레미야 35:19 · 두루새김

유다 왕국은 멸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레갑 집안에게는 그들의 후손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조상의 명령이 하나님의 약속이 되다

레갑 집안의 조상은 후손들에게 천막에서 살아야 그 땅에서 오래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조상이 자신의 후손들에게 남긴 생활의 지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 자신이 그 집안이 계속 이어질 것을 약속하십니다.

레갑 집안은 왕도 아니었고, 유다 전체를 대표하는 정치적 지도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지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을 유다 백성 앞에 세우셨고, 그들의 충실함을 인정하셨습니다.

유다의 왕과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지만, 이름 없는 세대들 속에서 조상의 명령을 지켜 온 한 집안은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 「내 앞에 서다」(⁨עָמַד⁩)는 표현은 여러 문맥에서 사용됩니다. 누군가를 섬기거나 그 앞에서 맡은 일을 수행하는 것을 나타낼 수도 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관계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 10:8에서는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섬기는 일을 맡습니다. 열왕기상 17:1에서는 엘리야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런 용례가 있다고 해서 예레미야 35:19의 레갑 집안이 반드시 제사장 직분을 받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성전의 특정한 일을 맡게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장의 중심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이는 그 집안이 계속 이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성전의 한 장면

예레미야 35:1–19 본문 →

하나님은 레갑 집안의 충실함을 백성 앞에 드러내기 위해 그들을 성전으로 데려오게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내놓은 포도주는 그들이 조상의 명령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거절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아니라, 자신들이 따르는 생활 원칙을 드러내는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유다 백성을 향한 자신의 오랜 부르심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가 레갑 집안을 데려옵니다. 그들 앞에는 포도주가 가득 담긴 대접들과 잔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들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시지 않습니다.

한 조상의 말을 여러 세대가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거듭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 대조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기 위해 복잡한 논증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포도주가 담긴 잔과 그것을 거절하는 한 가족의 대답이면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말씀을 거절한 백성을 심판하셨지만, 오랫동안 들은 말을 지켜 온 사람들의 충실함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날 성전의 방에서 레갑 집안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짧은 대답은 유다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너희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내 말을 듣지 않겠느냐?」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