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풀어 읽기 · 36장
이 장의 자리 · 34–45장 · 무너지는 예루살렘
불태워진 두루마리, 다시 쓰이는 말씀
왕은 두루마리를 조금씩 잘라 불에 던졌습니다. 글이 적힌 칸 서너 개를 읽을 때마다 칼로 잘라 화로에 넣었고, 마침내 두루마리 전체가 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장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왕의 오만함입니다. 그러나 처음과 끝을 함께 읽으면 더 중요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여호와야훼는 왜 이미 여러 차례 전한 말씀을 다시 기록하게 하셨으며, 그 말씀을 거부한 왕에게까지 들려주셨을까요?
심판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
36장은 여호야김 왕이 다스린 지 넷째 해로 돌아갑니다. 대략 기원전 605년 무렵으로, 바벨론이 이집트를 격파하고 고대 근동의 세력 구도를 바꾸던 시기입니다. 예레미야 46:2는 바로 이 해에 있었던 갈그미스 전투를 언급합니다. 예레미야 25:1 역시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넷째 해를 배경으로 유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이 위기의 순간에 예레미야에게 새로운 예언만 전하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요시야 시대부터 지금까지 전했던 말씀을 모두 두루마리에 기록하게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름받은 시기는 요시야가 다스린 지 열셋째 해였습니다(1:2). 예레미야 25:3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넷째 해까지 스물세 해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진 경고를 한데 모아 백성이 다시 듣도록 하신 것입니다.
「두루마리 하나를 가져다가,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민족에 관해 네게 한 말을 모두 적어라. 내가 네게 말하기 시작한 요시야 시대부터 오늘까지 한 말이다.」예레미야 36:2 · 두루새김
예레미야의 말씀은 유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모든 민족을 아우릅니다. 유다가 겪는 위기는 바벨론과 유다의 정치적 충돌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 행하시는 심판이라는 더 넓은 시야에 놓입니다.
「어쩌면 유다 집안이 내가 내리려고 계획한 모든 재앙에 관한 말을 듣고, 저마다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가 그들의 잘못과 죄를 용서하겠다.」예레미야 36:3 · 두루새김
두루마리는 처음부터 심판을 확정하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판을 피할 길을 열어 두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유다의 응답이 여전히 열린 가능성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재앙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계획을 미리 알려 주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재앙을 피하도록 돌이킬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18:7~10의 원칙과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어느 민족을 뽑고 무너뜨리겠다고 말씀하셨더라도 그 민족이 악에서 돌아서면 재앙을 거두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세우고 심겠다고 말씀하신 민족이 악을 행하면 약속된 복을 거두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경고는 언제나 피할 수 없는 미래를 전달하는 예고문과 같지 않습니다. 때로 그 경고 자체가 미래를 바꾸도록 촉구하는 수단이 됩니다.
36장 전체의 비극은 바로 이 가능성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지에서 시작됩니다.
예언자는 들어갈 수 없지만 말씀은 들어간다
예레미야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불러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받아쓰게 합니다. 예레미야가 입으로 불러 주고 바룩이 두루마리에 기록합니다.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지시했습니다. 「나는 지금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다.」예레미야 36:5 · 두루새김
여기서 「들어갈 수 없는 처지다」로 옮긴 원문의 히브리어 아추르(עָצָר)는 붙들리거나 제한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실제로 갇혀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구절만으로 감옥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예레미야가 성전에 들어갈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제약은 그가 말씀을 전하던 위험한 환경과 어울립니다. 예레미야 26:20~23에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예언했던 우리야가 여호야김의 명령으로 처형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의 정책과 충돌하는 예언은 실제로 예언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은 말씀의 전달을 중단시키지 못합니다.
예레미야 대신 바룩이 들어갑니다. 예레미야의 목소리 대신 바룩의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전에 전해진 말씀은 두루마리에서 다시 살아 있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 금식하는 날 네가 성전에 들어가서, 내가 불러 준 대로 네가 쓴 두루마리를 읽어라.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게 해라. 자기 성읍들에서 올라오는 모든 유다 사람에게도 읽어 주어라.」예레미야 36:6 · 두루새김
금식하는 날에는 많은 사람이 여호와야훼 앞에 모입니다. 이때 두루마리를 읽으면 예루살렘 주민뿐 아니라 유다의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36:9에 따르면 실제로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다섯째 해 아홉째 달에 금식이 선포되었습니다. 당시의 정치·군사적 위기가 그 배경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본문은 금식을 선포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여호와야훼께 간절히 기도하며, 저마다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 여호와야훼께서 이 백성에게 경고하신 노여움과 타오르는 분노가 크기 때문이다.」예레미야 36:7 · 두루새김
백성은 재앙을 피하고 싶어서 금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바라시는 것은 위험에서 구해 달라는 호소만이 아닙니다. 그 위험을 불러온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금식이 아무리 엄숙하더라도 삶의 방향이 바뀌지 않으면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에 충분히 응답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바룩이 말씀을 읽을 장소도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서기관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방입니다. 성전의 위쪽 뜰, 새 문 입구에 있으므로 백성이 들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반은 요시야 왕 시대에 율법책과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서기관입니다(열왕기하 22:3~10). 이제 그 아들의 방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됩니다. 이 가족의 이름은 곧이어 또 등장합니다.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가 말씀을 듣고 왕궁으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시대에 왕에게 전달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 요시야의 아들이 다스리는 궁전으로 다시 향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31:9~13에서 모세는 율법을 기록하고, 정해진 때에 온 이스라엘이 듣도록 낭독하라고 명령합니다.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와 그들 가운데 머물러 사는 사람들까지 모두 듣고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두 기록 사이에는 주제적인 연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도자만 소유하는 비밀스러운 지식이 아니라, 백성 모두가 듣고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아야 할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같은 말씀을 듣고도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들
바룩이 낭독하는 말씀을 들은 미가야는 왕궁으로 내려가 관리들에게 그 내용을 알립니다.
관리들이 바룩에게 말했습니다. 「좀 앉아서 우리가 듣도록 읽어 다오.」 바룩은 그들에게 두루마리를 읽어 주었습니다.예레미야 36:15 · 두루새김
이미 미가야를 통해 내용을 전달받았지만, 기록된 말씀을 직접 확인합니다. 그리고 바룩의 낭독이 끝나자 예상보다 심각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은 그 모든 말을 듣고 두려워하며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룩에게 말했습니다. 「이 모든 말을 반드시 왕께 알려야겠다.」예레미야 36:16 · 두루새김
누구도 즉시 가볍게 넘기지 못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들은 말씀이 매우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곧 회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알려야 한다고 결정합니다. 이는 책임 있는 보고일 수 있지만, 왕의 판단에 문제를 맡기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두루마리의 내용을 받아들여 실제 정책을 바꾸거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바룩에게 물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불러 준 이 모든 말을 어떻게 받아 적었는지 우리에게 말해 다오.」예레미야 36:17 · 두루새김
본문은 그들의 속마음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루마리의 출처와 전달 과정을 확인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바룩이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것인지, 예레미야에게서 직접 받아쓴 것인지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바룩이 대답했습니다. 「그가 이 모든 말을 제게 직접 불러 주었고, 저는 두루마리에 잉크로 적었습니다.」예레미야 36:18 · 두루새김
기록에 사용된 잉크는 평범한 도구입니다. 두루마리 역시 불에 탈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평범하고 손상되기 쉬운 물건을 통해 백성에게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그 뒤 관리들은 바룩에게 예레미야와 함께 몸을 숨기라고 권합니다. 이 행동을 보면 그들은 왕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염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왕은 나중에 두 사람을 붙잡아 오라고 명령합니다.
성전에서는 백성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왕궁에서는 관리들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권력을 가진 왕은 아직 직접 듣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왕에게 전달된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왕이 회개한다면 나라의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 바로 여호야김의 아버지 요시야입니다.
아버지는 옷을 찢었고, 아들은 두루마리를 찢었다
관리들은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맡겨 두고 왕에게 그 내용을 보고합니다. 왕은 두루마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여후디가 그것을 가져와 읽습니다.
때는 아홉째 달입니다. 왕은 겨울 거처에 앉아 있고, 앞에서는 화로의 불이 타오릅니다.
그런데 왕은 두루마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지 않습니다.
여후디가 글이 적힌 칸 서너 개를 읽을 때마다, 왕은 서기관이 쓰는 칼로 그 부분을 잘라 화로의 불에 던졌습니다. 그렇게 두루마리 전체가 화로의 불에 다 타 버렸습니다.예레미야 36:23 · 두루새김
말씀을 듣는 행위와 그 말씀을 없애는 행위가 나란히 진행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보존하는 일을 돕는 도구가 여기서는 기록된 말씀을 파괴하는 데 사용됩니다.
열왕기하 22장에서 요시야 왕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전달받습니다. 서기관 사반이 그것을 읽어 주자 요시야는 자신의 옷을 찢습니다(열왕기하 22:10~11).
요시야는 말씀을 듣고 자신과 백성이 그 말씀 앞에 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곧 사람들을 보내 여호와야훼의 뜻을 묻게 합니다. 이어 여호와야훼 앞에서 자신을 낮춘 요시야의 반응이 인정받습니다(열왕기하 22:12~20).
그런데 여호야김에게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납니다.
이 모든 말을 들은 왕과 그의 모든 신하는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자기 옷을 찢지도 않았습니다.예레미야 36:24 · 두루새김
요시야는 말씀을 듣고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여호야김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찢었습니다.
아버지는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고, 아들은 말씀을 자신의 권력 아래 두려 했습니다.
고대 유다의 왕에게는 상당한 정치적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여호와야훼의 언약 밖에서 자기 뜻대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17:18~20은 왕이 율법을 자기 곁에 두고 읽으며, 마음이 형제들 위로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여호야김은 그 반대 방향으로 행동합니다. 자신을 판단하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이 그 말씀을 처리할 권한을 가진 것처럼 행동합니다.
25절에는 엘나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에게 두루마리를 태우지 말라고 간청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4절이 왕과 신하들의 전반적인 반응을 묘사한다면, 25절은 그 가운데 실제로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왕은 이들의 말조차 듣지 않습니다.
왕은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즈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드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서기관 바룩과 예언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숨기셨습니다.예레미야 36:26 · 두루새김
관리들은 앞서 두 사람에게 몸을 숨기라고 권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그들이 붙잡히지 않은 일을 여호와야훼의 보호하심으로 설명합니다.
여호야김은 두루마리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할 사람들의 운명까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글이 적힌 칸 서너 개」의 히브리어 표현에는 델라토트(דֶּלֶת)라는 낱말이 사용됩니다. 본래 문짝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글의 구획이나 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다시 쓰인 말씀에 더해진 것
두루마리가 모두 불타고 난 뒤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옵니다.
「다른 두루마리를 다시 가져와라. 유다 왕 여호야김이 불태운 첫 두루마리에 있던 말을 모두 거기에 적어라.」예레미야 36:28 · 두루새김
이 장면은 흔히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교훈으로 이해됩니다. 그 의미도 있지만, 본문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두루마리에는 처음의 말씀만 다시 기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전해라. 나 여호와야훼가 말한다. 여호야김아, 너는 『왜 바벨론 왕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파괴하고 사람과 짐승을 없애 버릴 것이라고 이 두루마리에 적었느냐?』라고 말하며 두루마리를 불태웠다.」예레미야 36:29 · 두루새김
이것은 그저 개인적으로 듣기 싫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의 왕국과 왕 자신의 통치가 위협받으리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왕은 그 선언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록을 태우는 일은 예언이 가리키는 현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야훼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 관해 말한다. 그의 집안에는 다윗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의 시체는 내던져져 낮에는 더위에, 밤에는 서리에 놓일 것이다.」예레미야 36:30 · 두루새김
다윗의 왕좌는 유다 왕들이 정당한 왕임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요시야의 아들로서 그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혈통과 현재의 권력이 후손의 통치를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왕의 시체가 낮의 더위와 밤의 서리에 놓인다는 선언은 왕으로서 받아야 할 존엄과 장례의 보호를 잃는 모습을 그립니다. 앞서 여호야김은 겨울 거처에서 불을 쬐며 말씀을 불태웠습니다. 이제 그의 몸은 바깥에 내던져져 추위와 더위에 놓일 것이라고 선언됩니다.
왕은 자기 거처 안에서는 무엇이 타고 무엇이 남을지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의 끝과 왕조의 미래를 결정할 권한은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1절에 이르면 심판의 범위가 다시 넓어집니다.
「내가 그와 그의 자손과 신하들의 죄를 따져 벌하겠다. 그들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사람들에게 내가 경고한 모든 재앙을 내리겠다. 내가 경고했는데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예레미야 36:31 · 두루새김
성경에서 「듣다」는 단지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응답하는 일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왕은 분명히 말씀의 일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용도 이해했습니다.
29절에서 그가 바벨론에 관한 예언을 문제 삼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씀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응답을 거부했습니다.
왕은 무엇을 들었는지 몰라서 거부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들었는지 알면서도 거부했습니다.
35장에서 레갑 사람들은 조상 요나답이 오래전에 명령한 생활 규칙을 지켰습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의 순종을 통해 유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셨습니다(35:14~16). 36장에서는 그 대조가 더욱 구체적인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예레미야는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인 서기관 바룩에게 주었습니다. 바룩은 유다 왕 여호야김이 불태운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다시 적었습니다. 거기에 그와 같은 내용의 말들도 많이 덧붙여졌습니다.예레미야 36:32 · 두루새김
이것은 예레미야서가 만들어진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입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은 기록으로 모아졌고, 그 기록이 다시 작성되면서 내용이 더해질 수 있었습니다.
다만 처음 두루마리나 두 번째 두루마리가 오늘날의 예레미야서 전체와 정확히 어느 정도 일치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기록과 재기록의 과정을 증언하지만, 각 두루마리의 완전한 목차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왕은 처음 두루마리에 있던 재앙의 말씀을 없애려 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두루마리에는 그 재앙의 말씀과 함께 왕 자신의 거부에 대한 심판까지 담기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24:6~8에 따르면 여호야김이 죽은 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실제로 왕이 되었고, 약 석 달 동안 통치했습니다. 따라서 36:30을 그의 후손 가운데 누구도 단 한 순간도 왕좌에 앉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으면 열왕기하의 기록과 긴장이 생깁니다. 한 가지 해석은 이 선언을 여호야김의 왕조가 안정되고 지속적인 통치를 이어 가지 못하리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호야긴은 짧은 통치 후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열왕기하 24:10~17). 그러나 본문이 그 의미를 직접 풀이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해석은 가능한 설명으로 남겨 두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호야김의 장례에 관해서는 예레미야 22:18~19에도 수치스러운 매장에 관한 예언이 나옵니다. 반면 열왕기하 24:6은 그의 죽음을 간략하게 서술할 뿐 구체적인 매장 과정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언된 시체의 모습이 역사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이 기록들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불이 꺼진 뒤에 남은 장면
처음 두루마리에 담긴 경고는 사람들이 돌아서기를 바라시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두 번째 두루마리에는 그 경고를 거부한 역사가 더해졌습니다. 따라서 이 장의 하나님은 심판을 말씀하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심판을 피할 길을 먼저 열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거부하는 행동을 끝없이 눈감아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모든 비판이나 의견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진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주장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뜻으로 적용해서도 안 됩니다.
왕은 말씀을 줄이려 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더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36장의 마지막에는 더 이상 왕의 화로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불길도, 칼도, 붙잡아 오라는 명령도 없습니다.
다만 예레미야의 입에서 말씀이 다시 흘러나오고, 바룩은 다른 두루마리 위에 그것을 써 내려갑니다.
왕이 없애려 했던 말씀은 다시 기록되었고, 왕이 없애려 했던 경고는 이제 그의 행동까지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