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5장 · 강을 건널 준비

여리고에서 먼저 알아본 하나님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보내 적의 땅을 살피게 합니다. 그들은 여리고에 들어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가 드러나고, 왕의 추격을 받습니다. 결국 한 여자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져 돌아옵니다.

그런데 돌아온 두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보고하는 내용은 뜻밖입니다.

그들은 성벽의 높이나 성문을 지키는 병사의 수, 도시의 방어 체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여리고의 한 여자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정탐꾼들은 그 땅을 살피러 갔지만, 그 땅에서 하나님을 알아본 사람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명령을 내리시거나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분이 과거에 하신 일, 지금 이 땅에 미치는 영향, 앞으로 하실 일을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선언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라합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62장 본문 읽기 →

비밀 작전은 시작하자마자 들통난다

여호수아 2:1–7 본문 →

여호수아는 시팀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냅니다.

시팀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이스라엘의 진영입니다. 여리고는 그들이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마주하게 될 중요한 성읍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을 미리 살피는 일은 군사적으로 자연스러운 준비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읽으면 이스라엘의 과거가 떠오릅니다.

민수기 13–14장에서 모세는 가나안 땅을 살피도록 열두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땅의 풍요로움을 확인했지만, 그곳 주민들의 강함과 튼튼한 성읍들 때문에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들의 보고는 백성 전체를 낙담시켰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보냅니다.

두 명이라는 숫자가 과거의 실패를 의식한 선택인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자신이 과거의 정탐에 참여했던 사람이므로(민수기 13:8, 16), 독자는 자연스럽게 두 사건을 나란히 떠올리게 됩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시팀에서 남자 두 명을 정탐꾼으로 몰래 보내며 말했습니다.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살펴보아라.」 두 사람은 길을 나서 라합이라는 여자의 집에 들어가 그곳에 묵었습니다. 라합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였습니다.여호수아 2:1 · 두루새김

그렇다고 두 정탐꾼이 그 집에서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해석할 근거도 없습니다. 원문에서 그들이 그곳에 누웠다는 말은 머물러 잠자리를 마련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밀 작전은 별로 비밀스럽지 못했습니다.

정탐꾼들은 신분을 감추려 했지만, 왕은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며 땅을 몰래 살펴보러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왕은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 정탐꾼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라합은 두 선택지 사이에 섭니다.

하나는 여리고 왕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집에 들어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그녀는 지붕 위에 놓인 아마 줄기들 사이에 정탐꾼들을 감추었습니다. 라합은 왕의 사람들에게 정탐꾼들이 이미 성문 밖으로 나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서둘러 뒤쫓으라고 권합니다.

라합은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본문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장은 그녀의 거짓말 자체가 옳았다고 설명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이야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면서 정탐꾼들의 생명을 보호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의 행동 전체를 이해하는 것과 그 행동에 포함된 모든 수단을 옳다고 선언하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라합의 말을 들은 추격자들은 요단강의 얕은 곳들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들은 정탐꾼들이 강을 건너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얕은 곳들은 중요한 수색 장소가 됩니다.

이제 정탐꾼들은 여리고 안에 남아 있지만, 성문은 닫혔습니다.

상황은 여전히 위험합니다. 왕의 사람들은 돌아올 수 있고, 정탐꾼들은 성벽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위기의 한가운데서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아마는 섬유를 얻는 식물입니다. 줄기를 가공하여 실이나 천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붕에 아마 줄기들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는 설명은 당시 주거 공간이 물건을 말리거나 보관하는 일에도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모두가 같은 소식을 들었지만 라합은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여호수아 2:8–11 본문 →

라합은 지붕 위에 올라가 정탐꾼들에게 말합니다.

라합이 두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에게 이 땅을 주셨다는 것을 저는 알아요. 우리는 여러분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어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여러분 때문에 겁에 질려 기가 꺾였어요.」여호수아 2:9 · 두루새김

조금 전 왕의 사람들 앞에서 라합은 그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탐꾼들 앞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녀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던 지식은 정탐꾼들이 오간 길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도 아니고, 율법을 배운 사람으로 소개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아직 땅에 들어오기도 전에 그 땅의 미래를 여호와야훼의 행동과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 앞에서 갈대 바다의 물을 말리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요단강 건너편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여러분이 완전히 멸망시켰다는 소식도 들었어요.」여호수아 2:10 · 두루새김

소식을 들은 사람은 라합 혼자가 아닙니다. 여리고 사람들이 함께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에 대한 반응은 같지 않습니다.

라합의 설명에 따르면 주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스라엘이 다가온다는 소식 때문에 두려움에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반면 라합은 그 두려운 소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는 두려움에 마음이 무너졌어요. 여러분 때문에 누구도 더는 용기를 낼 수 없었어요.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에요.」여호수아 2:11 · 두루새김

이 표현은 신명기 4:39와 가깝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위로 하늘에서도 아래로 땅에서도 하나님이심을 마음에 새기라고 권합니다.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이 배워야 할 진리가, 여호수아 2장에서는 여리고의 한 여성의 입에서 나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단순히 군사력의 결과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에게 땅을 주셨다고 이해합니다.

그 판단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여리고 왕은 같은 위협 앞에서 정탐꾼들을 붙잡으려 합니다. 라합은 그들을 보호합니다. 왕과 라합의 선택을 단순히 두려움과 믿음의 대립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라합 역시 두려움을 알고 있으며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은 정탐꾼들을 없앰으로써 위협을 막으려 하고, 라합은 여호와야훼께서 하시는 일을 인정하면서 자신과 가족이 살아남을 길을 찾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위험을 보지 못한 채 잘될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이 아니라, 위험 속에서 누구의 행동이 결정적인지를 알아보는 판단으로 나타납니다.

녹아내린 마음이 뒤바뀌다

출애굽기 15장에서 이스라엘은 바다를 건넌 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노래의 15절에는 가나안 주민들이 녹아내렸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곳의 히브리어 나모구(⁨מוּג⁩)는 여호수아 2:9에서 라합이 주민들의 상태를 말할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동사의 형태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다를 건넌 뒤 노래했던 일이 이제 가나안 주민의 증언으로 들려오는 셈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반전이 있습니다.

신명기 1:28에서 모세는 첫 번째 정탐 사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던 말을 돌아봅니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크고 성읍들이 튼튼하다는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자기들의 마음이 녹아내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가나안의 강한 주민들 때문에 이스라엘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에 관한 소식 때문에 가나안 주민들의 마음이 무너지고 기가 꺾입니다.

그 변화는 이스라엘이 갑자기 두려움 없는 강력한 군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라합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갈대 바다 사건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시작할 무렵의 일입니다. 시혼과 옥을 물리친 사건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일어났습니다(민수기 21:21–35). 라합의 말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관한 소문이 오랫동안 이 지역에 퍼져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라합은 자신의 생명만 구하지 않는다

여호수아 2:12–14 본문 →

라합의 고백은 신앙에 관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부탁드려요. 제가 여러분에게 잘해 주었으니, 여러분도 제 아버지의 집안에 잘해 주겠다고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해 주세요. 그 약속을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도 주세요.」여호수아 2:12 · 두루새김

라합은 여호와야훼께서 이 땅을 주셨다는 자신의 판단에서 살아남기 위한 요청으로 나아갑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실제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다면 여리고는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따라서 라합은 단지 정탐꾼들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다가올 사건에서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제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과 그들에게 딸린 모든 사람을 살려 주세요.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구해 주세요.」여호수아 2:13 · 두루새김

라합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용기만을 칭송하는 방향으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그녀가 정탐꾼들에게 잘해 준 일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까지 지키는 길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본문의 폭력적인 현실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라합이 「죽음에서 구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꾸며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과 가족의 죽음을 실제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라합에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가 하는 일을 알리지 않는다면, 여러분 대신 우리 목숨을 내놓겠어요.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 우리도 잘해 드리고 약속을 지키겠어요.」여호수아 2:14 · 두루새김

「여러분 대신 우리 목숨을 내놓겠어요」라는 말은 매우 강한 보증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약속을 지키는 데 자신들의 생명을 걸겠다고 말합니다. 앞서 라합이 요청한 호의와 믿을 만함이 정탐꾼들의 대답에서 함께 나타납니다.

서로의 목숨이 서로의 손에 맡겨집니다.

지금은 라합이 그들을 살리고, 나중에는 그들이 라합을 살려야 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거래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서로 지켜야 할 조건이 존재하지만, 한쪽이 다른 쪽의 생명을 실제로 보호했고 다른 쪽은 앞으로 그 책임을 지겠다고 맹세한다는 점에서 신뢰와 위험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특히 라합의 행동은 아직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약속을 얻은 뒤 정탐꾼들을 숨긴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들을 보호했고, 그다음에 자기 가족의 생명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녀가 여호와야훼에 관한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이 행동의 순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후 여호수아 6:17, 22–25에서 여리고가 무너질 때 라합과 그의 가족이 실제로 구출되는 것은 이 맹세가 지켜졌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수아 6:25은 라합이 이스라엘 가운데 살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라합이 사용하는 「잘해 주었으니」와 「잘해 주겠다고」에 해당하는 원문의 말은 히브리어 헤세드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감정이나 한 번의 선행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관계 안에서 상대방에게 충실하게 행동하고, 도움과 책임을 실천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성벽의 창문이 생명의 경계가 된다

여호수아 2:15–21 본문 →

라합은 정탐꾼들을 창문으로 내려보냅니다.

라합은 밧줄로 두 사람을 창문 밖으로 내려보냈습니다. 라합의 집이 성벽 속에 있었고, 라합은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 2:15 · 두루새김

성문은 이미 닫혔습니다. 왕의 사람들은 요단강 쪽에서 수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합의 집에는 성 밖으로 통하는 창문이 있습니다.

성읍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성벽이, 이 순간에는 정탐꾼들을 탈출시키는 통로가 됩니다.

라합은 그들에게 요단강을 향해 곧바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추격자들이 그쪽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산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추격자들이 돌아간 후에 이동하라고 알려 줍니다.

여리고 서쪽에는 산지가 있고, 요단강은 동쪽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라합의 지시는 정탐꾼들이 원래 돌아가려던 방향과 반대로 몸을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정탐꾼들에게 안전을 바라는 말만 하지 않습니다. 추격자들의 움직임을 고려하여 실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은 떠나기 전에 맹세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생명을 보장하는 약속에는 지켜야 할 조건이 있다

두 사람이 라합에게 말했습니다. 「다음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가 해 드린 이 맹세를 지킬 책임은 없어요.」여호수아 2:17 · 두루새김

이어지는 18–20절을 읽으면 그들이 맹세의 책임을 어떤 조건 아래 지겠다는 것인지 설명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내려보낸 창문에 붉은 줄을 매야 합니다. 보호받을 가족을 자기 집 안에 모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의 일을 알리지 않아야 합니다.

「누구든 이 집 문 밖으로 나갔다가 죽으면 그 죽음은 자기 책임이고,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어요. 하지만 이 집 안에 함께 있는 사람을 누가 해쳐 죽게 하면, 그 죽음은 우리 책임이에요.」여호수아 2:19 · 두루새김

여기서 「그 죽음은 자기 책임」과 「그 죽음은 우리 책임」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은 히브리어로 그의 피가 그의 머리에 있다, 또는 그의 피가 우리 머리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죽음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밝히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이 장면은 출애굽기 12:21–23의 유월절 이야기와 닮아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집의 문 양옆 기둥과 위쪽 가로대에 피를 발라야 했고, 아침까지 집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집 안에 머무는 것과 죽음에서 보호받는 일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신 유월절의 피가 표지입니다. 여호수아 2장에서는 정탐꾼들과 라합 사이의 맹세에 따라 붉은 줄이 표지가 됩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에는 살아남기 위한 표지와 집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붉은 줄 자체가 유월절의 피를 의미한다고 본문이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줄을 곧바로 예수님의 피에 대한 예언으로 확정하는 것도 이 장에서 확인할 수 없는 해석입니다.

왜 진홍색 줄인가?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우리를 내려보낸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어 두세요.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과 아버지의 온 집안을 이 집 안으로 모으세요.」여호수아 2:18 · 두루새김

정탐꾼들이 여리고에 다시 들어올 때 어느 집을 보호해야 할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은 붉은색이 선택된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정탐꾼들을 내려보낸 15절의 「밧줄」(⁨חֶבֶל⁩)과 18절의 「붉은 줄」(⁨תִּקְוָה⁩)은 원문에서 서로 다르게 표현됩니다. 두 표현이 반드시 전혀 다른 물체를 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같은 밧줄이라고 본문이 밝히지도 않습니다.

라합과 정탐꾼들이 맺은 약속 속에서 그 줄은 보호받아야 할 집을 알아보게 하는 표지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표지를 다는 장소가 정탐꾼들이 탈출한 창문입니다.

이 창문을 중심으로 두 방향의 생명 보호가 연결됩니다.

정탐꾼들은 그 창문으로 내려가 살아남습니다. 라합과 가족은 그 창문에 매단 줄을 통해 자신들이 보호받을 집에 있음을 드러내게 됩니다. 앞서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잘해 준 일과 앞으로 정탐꾼들이 라합에게 지켜야 할 약속이 하나의 창문에 연결된 것입니다.

라합은 약속을 미래로 미루지 않는다

라합의 마지막 대답은 짧습니다.

라합이 대답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 라합이 두 사람을 보내자 그들이 떠났습니다. 라합은 창문에 붉은 줄을 매었습니다.여호수아 2:21 · 두루새김

그녀는 정탐꾼들이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고 나중에 실제로 여리고를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는 라합이 약속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실행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아직 성 밖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리고는 그대로 서 있고, 이스라엘은 강 건너편에 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미 다가올 일을 준비합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11:31은 라합이 정탐꾼들을 받아들인 일을 믿음과 연결하고, 야고보서 2:25는 그들을 맞아들여 다른 길로 보낸 행동을 언급합니다. 이들은 라합의 행동을 믿음의 관점에서 해석한 후대의 본문들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17절에는 조건을 나타내는 말이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선언을 조건이 아직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을 부인하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고, 앞으로 제시할 조건을 어길 경우 자신들이 책임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미리 밝히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후자의 의미를 강하게 뒷받침합니다. 정탐꾼들은 실제로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를 구체적으로 구별하기 때문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흐름을 따라 조건을 밝혀 옮겼습니다. 다만 원문의 17절 자체만으로 이 두 읽기의 문장상 차이를 완전히 풀 수는 없습니다.

정탐꾼들은 라합의 말을 가지고 돌아온다

여호수아 2:22–24 본문 →

라합이 알려 준 대로 정탐꾼들은 산으로 갑니다.

그들은 사흘 동안 숨어 있고, 추격자들은 길을 샅샅이 뒤지지만 발견하지 못합니다. 왕의 추격을 받던 두 사람은 아무 전투도 치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숨어 기다립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산에서 내려와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갑니다. 이야기는 정탐꾼들이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이 겪은 모든 일을 보고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최종 보고는 단 두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온 땅을 우리 손에 넘겨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우리 때문에 겁에 질려 기가 꺾였습니다.」여호수아 2:24 · 두루새김

특히 9절의 「겁에 질려 기가 꺾였어요」와 24절의 「겁에 질려 기가 꺾였습니다」는 원문에서도 같은 히브리어 동사의 형태로 반복됩니다. 원문에서는 녹아내렸다는 표현입니다.

라합이 한 말이 정탐꾼들의 보고에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처음에 여호수아는 정탐꾼들에게 땅과 여리고를 살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그들이 성벽을 조사하거나 군사시설을 살피는 과정을 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탐꾼들이 들키고, 숨겨지고, 한 여자의 말을 듣고, 그녀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이야기에 대부분의 분량을 사용합니다.

결국 이 장에서 독자에게 전해지는 가장 중요한 정탐 정보는 적의 군사적 약점보다 그 땅에 퍼져 있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에 대한 라합의 해석입니다.

첫 번째 정탐 사건과 반대되는 결말

과거에는 땅의 주민들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이스라엘의 판단을 좌우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주민들이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가 이스라엘의 판단에 영향을 줍니다.

과거의 불신앙은 눈앞의 장애물이 하나님의 약속보다 크다고 판단하는 데서 나타났습니다. 라합과 두 정탐꾼의 말은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들은 다가올 전쟁을 하나님의 행동에 비추어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적의 두려움을 알았으므로 이제 모든 승리가 자동으로 보장되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수아서 뒤에는 이스라엘의 실패도 등장합니다. 다만 이 장에서 두 정탐꾼은 여호수아가 처음 받은 약속을 다시 확신하게 하는 보고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여리고의 성벽 안에도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호수아 2:1–24 본문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 믿음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라합에게 그것은 정탐꾼들을 숨기는 일이었고, 정탐꾼들에게는 장차 라합과 그의 가족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순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경계 안에서도 한 사람이 잘해 준 일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그 생명을 지킨 일이 다시 새로운 생존의 약속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그 땅의 모든 사람을 아무 구별 없이 바라보아도 된다는 뜻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적의 성읍 안에 있는 라합과 그의 가족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맹세가 이미 맺어졌습니다.

여호수아 2장은 여리고 정복에 따르는 폭력과 죽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라합과 가족이 살아남을 것을 약속하는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해서, 다른 주민들이 마주하게 될 죽음의 현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라합의 이야기를 단지 믿으면 누구나 안전하다는 공식으로 바꾸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2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탐꾼들은 이미 요단강을 건너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야훼께서 그 땅을 주셨다고 보고합니다.

하지만 라합은 여전히 여리고에 남아 있습니다.

그녀의 가족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결정적인 시험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정탐꾼들이 약속을 지킬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여리고의 왕은 여전히 왕이고, 성벽은 여전히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벽의 한 창문에 붉은 줄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 줄은 아직 누구도 구해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가 누구에게 어떤 약속을 했는지, 다가올 날에 누구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벽 밖에서는 이스라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벽 안에서는 한 여자가 그 약속을 붙들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