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3–16장 · 삼손과 블레셋
꿀에서 피로 이어진 결혼 잔치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왔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어요.」
삼손이 결혼 잔치에서 낸 수수께끼입니다.
하지만 이 수수께끼는 단순히 기묘한 사건을 말놀이로 바꾼 것이 아닙니다. 사사기 14장 전체가 이 수수께끼를 닮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고집할 때, 서술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은 여호와야훼께서 일으키셨습니다.」
삼손이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선택한 일을 어떻게 여호와야훼께서 일으키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 결혼을 기뻐하셨다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이어지는 속임수와 분노, 서른 명의 죽음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삼손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지 못합니다. 반면 부모는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알지 못하지만, 서술자는 하나님이 블레셋의 지배에 맞설 길을 열고 계셨다고 알려 줍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드러난 것과 감추어진 것이 이 장의 이야기를 움직입니다.
「저는 그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
이야기는 삼손이 팀나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삼손은 팀나로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블레셋 여자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사사기 14:1 · 두루새김
팀나는 이스라엘의 산지와 블레셋 세력이 자리 잡은 평야 사이의 경계 지역과 관련된 성읍입니다. 삼손의 고향인 초르아에서도 멀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삼손이 왜 팀나에 내려갔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보았다는 사실만 말합니다.
삼손은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요구합니다. 「그 여자와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본문은 두 사람이 이전부터 알고 지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어떤 성품을 가졌는지,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삼손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아직 기록하지 않습니다.
우선 강조되는 것은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삼손에게 말했습니다. 「네 친척과 우리 겨레 가운데는 아내로 맞을 여자가 없느냐? 왜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서 아내를 얻으려 하느냐?」 삼손이 아버지에게 대답했습니다. 「그 여자를 제 아내로 데려와 주세요. 저는 그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사사기 14:3 · 두루새김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지였습니다(창세기 17:9–14). 따라서 부모의 표현에는 단순히 다른 민족이라는 문제를 넘어, 여호와야훼의 언약 백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구별이 담겨 있습니다. 더구나 블레셋은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민족이었습니다(14:4).
히브리어 야셰라 베에나이(יָשַׁר)는 글자 그대로 옮기면 「내 눈에 바르다」 또는 「내 눈에 적합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저는 그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로 옮겼습니다. 이 말은 그 여자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라는 객관적인 평가가 아닙니다. 삼손 자신이 보기에 그 여자가 마음에 든다는 판단입니다.
그의 부모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관계를 말합니다.
삼손은 자신에게 그 여자가 마음에 든다는 것을 말합니다.
두 쪽의 관심이 서로 다릅니다.
원문에서는 사사기 후반부에 사람들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말이 반복됩니다(17:6; 21:25). 삼손의 말과 이 표현은 원문에서 모두 자기 눈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언어적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러나 삼손의 결혼 선택과 사사기 후반부의 사회적 혼란을 정확히 같은 사건으로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야기가 뜻밖의 방향으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구약이 모든 다른 민족 사람들과의 혼인을 예외 없이 같은 방식으로 금지했다고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7:1–4는 특정 가나안 민족들과의 혼인을 경계하면서 그 핵심 이유를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위험에서 찾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의 혼인 문제도 그런 언약에 대한 충성의 관점에서 살필 필요가 있지만, 본문은 삼손이 어떤 구체적인 혼인 금지 조항을 어겼다고 직접 선언하지 않습니다.
「이 일은 여호와야훼께서 일으키셨습니다」
삼손의 부모는 아들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일은 여호와야훼께서 일으키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블레셋 사람들과 맞설 구실을 찾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사사기 14:4 · 두루새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이해한 범위 안에서 행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더 넓은 역사 속에서 일하십니다.
본문은 삼손이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여자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데려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 선택 속에서 진행된다는 사실과 삼손의 개인적인 동기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악을 행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선한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삼손의 결혼 선택을 요셉의 형들이 저지른 악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도와 하나님의 목적이 반드시 같지는 않으며, 하나님께서 인간의 복잡하고 때로는 잘못된 행동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결이 있습니다.
사사기 14장은 그 원리를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제 사자 한 마리를 등장시켜 그 일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블레셋 사람들과 맞설 구실을 찾는 주체를 「그」라고 표현하며, 그가 누구인지 문법적으로 완전히 밝혀 놓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를 가리킨다고 읽으면 하나님께서 블레셋과 맞설 계기를 찾고 계셨다는 뜻이 됩니다. 바로 앞에서 이 일을 여호와야훼께서 일으키셨다고 말하고, 바로 뒤에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상황을 설명한다는 점은 여호와야훼를 주체로 읽는 데 힘을 실어 줍니다. 삼손을 가리킨다고 읽으면 삼손이 블레셋과 다툴 기회를 찾고 있었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삼손이 장차 블레셋과 직접 충돌하게 된다는 이야기의 전개는 그를 주체로 이해할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다만 1–3절에서 삼손은 블레셋과 싸우겠다는 의도를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문 문맥상 여호와야훼께서 블레셋과 맞설 계기를 찾고 계셨다는 해석이 자연스럽지만, 원문 대명사의 문법적 가능성까지 없애서는 안 됩니다.
사자를 찢은 맨손, 그러나 부모에게는 말하지 않다
삼손은 부모와 함께 팀나로 내려갑니다.
그들이 포도밭에 이르렀을 때 젊은 사자 한 마리가 삼손을 향해 으르렁거립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께서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셨습니다. 삼손은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새끼 염소를 찢듯 그 사자를 찢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한 일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사사기 14:6 · 두루새김
여기서 「새끼 염소를 찢듯」이라는 비유는 사자의 크기를 작게 만들기 위한 설명이 아닙니다. 삼손이 그 사자를 얼마나 압도적인 힘으로 찢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왜 삼손은 말하지 않았을까요? 본문은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이 침묵은 다음 장면에서 중요해집니다.
그가 나중에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발견했을 때에도 부모에게 그 꿀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자를 죽인 장면 자체는 위험에서 벗어난 사건이었지만, 그 일이 감추어진 비밀로 남으면서 뒤에 전혀 다른 갈등의 출발점이 됩니다.
삼손은 내려가 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여자는 삼손의 마음에 들었습니다.사사기 14:7 · 두루새김
그가 실제로 여자를 만나 이야기한 뒤에도 판단의 기준은 같습니다. 두루새김의 「마음에 들었습니다」도 원문에서는 자기 눈에 좋게 보인다는 표현입니다. 그는 사자를 죽일 만큼 놀라운 힘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선택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사자의 시체에서 나온 꿀
얼마 뒤 삼손은 그 여자를 아내로 맞으러 다시 팀나로 갑니다.
얼마 뒤 삼손은 그 여자를 아내로 맞으러 다시 갔습니다. 가다가 사자의 시체를 보려고 길을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시체 안에 벌 떼와 꿀이 있었습니다.사사기 14:8 · 두루새김
살아 있을 때에는 다른 생물을 먹었던 사자의 시체 안에서, 이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꿀이 나옵니다. 이것은 자연의 질서가 뒤집힌 듯한 장면입니다.
바로 이 역설이 결혼 잔치의 수수께끼가 됩니다.
삼손은 꿀을 긁어 두 손에 담고 걸어가면서 먹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가서 꿀을 드리자 그들도 먹었습니다. 하지만 사자의 시체에서 꺼낸 꿀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사사기 14:9 · 두루새김
앞에서는 사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이번에는 꿀을 얻은 곳을 숨겼습니다. 이 두 번의 침묵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그 시체에서 꿀이 나왔다는 사실도 알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비밀을 유지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가 내는 수수께끼는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풀 수 없는 문제가 됩니다.
두 손에 담긴 꿀
이 장에는 삼손의 손이 두 번 특별하게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으로 사자를 찢습니다(14:6). 이번에는 그 손에 꿀을 담아 먹습니다(14:9).
첫 번째 손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강한 짐승을 죽입니다. 두 번째 손은 그 죽은 짐승에게서 단 것을 얻습니다. 삼손에게는 두 사건이 모두 유익하게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결혼 잔치에서 수수께끼로 사용되는 순간, 그 꿀은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한 비밀이 됩니다.
여기에서 이야기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사자를 죽인 일은 그에게 직접 닥친 위험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수께끼를 내는 일은 삼손이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삼손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나실인이었습니다(13:5). 민수기 6장의 해당 규정은 죽은 사람과 관련하여 부정해지는 일에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사사기 14장에서 삼손이 다가간 것은 사자의 시체입니다. 물론 레위기 11:24–28에는 부정한 짐승의 시체에 닿았을 때 부정해지는 일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삼손이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긁어낸 행동은 정결 규정의 관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삼손이 정확히 어느 정도로 시체에 닿았는지, 그 결과 의례상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 정결 절차를 거쳤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만으로 삼손이 모든 나실인 규정을 일부러 어겼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혼 잔치가 위험한 내기로 바뀌다
삼손의 아버지가 그 여자를 찾아 내려갑니다.
삼손은 그곳에서 잔치를 벌입니다. 본문은 당시 젊은 남자들이 하던 관습에 따른 일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잔치에 서른 명의 친구가 등장합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수수께끼 하나를 낼게요. 잔치가 이어지는 일곱 날 안에 답을 알아내서 말하면, 내가 아마포 옷 서른 벌과 갈아입을 옷 서른 벌을 줄게요.」사사기 14:12 · 두루새김
그러나 답을 찾지 못하면 그들이 삼손에게 똑같은 수량의 옷을 주어야 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옷은 단순한 일상용품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재산이었습니다. 특히 여러 벌의 옷을 한꺼번에 마련해야 한다면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내기의 규모가 크다는 사실은 뒤에 친구들이 삼손의 아내를 위협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손실을 피하려고 선택한 방법은 정당한 풀이가 아니라 협박입니다.
애초에 풀 수 있는 수수께끼였는가?
삼손이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왔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어요.」 그들은 사흘 동안 그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사사기 14:14 · 두루새김
이 수수께끼의 두 부분은 서로 짝을 이룹니다. 앞부분의 「먹는 자」와 뒷부분의 「강한 자」는 모두 사자를 가리키고, 「먹을 것」과 「단 것」은 모두 꿀을 가리킵니다.
삼손은 자신만 경험한 사건을 바탕으로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른 명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삼손이 경험한 사건을 우연히 알아내거나, 삼손에게서 비밀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수수께끼가 형식적으로는 경쟁이지만, 실제로는 삼손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그가 만든 수수께끼는 분명 말의 재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재치가 있다고 해서 그 내기가 공정한 것은 아닙니다.
삼손은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서 재물을 얻으려 합니다. 반면 상대방은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삼손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용합니다.
이제 이야기의 갈등은 단순한 수수께끼 풀이에서 관계를 이용하는 싸움으로 바뀝니다.
사랑한다면 비밀을 말하라는 아내, 말하지 않으면 불태우겠다는 친구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친구들은 삼손의 아내에게 찾아갑니다.
일곱째 날,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네 남편을 꾀어서 우리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 주게 해라. 그러지 않으면 너와 네 아버지 집안을 불태우겠다. 너희가 우리를 빈털터리로 만들려고 불렀느냐? 그런 거 아니냐?」사사기 14:15 · 두루새김
이 위협은 단순히 감정에 휩쓸려 과장한 말로만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삼손의 아내는 자기 가족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 놓였습니다.
삼손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미워하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아요. 내 겨레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냈으면서 나에게는 답을 알려 주지 않았잖아요.」 삼손이 대답했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께도 알려 드리지 않았는데, 당신에게 알려 주겠어요?」사사기 14:16 · 두루새김
그러므로 이 장면을 단순히 아내가 남편을 속여서 비밀을 빼낸 이야기로만 읽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실제로 삼손의 비밀을 알아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자유로운 상황에서 순전히 자기 이익만을 위해 그런 일을 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내 겨레 사람들」과 「내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는 삼손이 「내 겨레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냈다고 말합니다. 삼손은 자신이 「내 아버지와 어머니」께도 답을 알려 드리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가까운 관계를 내세웁니다.
여기에는 결혼 관계의 신뢰가 형성되기도 전에 서로 다른 충성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특히 아내는 삼손과 결혼하려는 사람인 동시에 블레셋 공동체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녀가 속한 공동체는 이제 그녀와 가족을 위협합니다.
삼손과의 관계가 그녀에게 안전한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삼손은 그 여자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여자는 그의 선택 때문에 벌어진 잔치에서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녀가 어떤 위협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었을까요?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삼손에게 협박 사실을 전했다고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내에 대한 압박이 이어졌고, 마지막 날에 삼손이 비밀을 알려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수수께끼의 답이 삼손의 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곧 그를 향한 공격의 수단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에서는 친구들이 사흘 동안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7절에서는 아내가 잔치가 이어지는 「일곱 날 동안」 삼손 앞에서 울었고, 「일곱째 날」에 답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이 순서를 글자 그대로 이어 읽으면 아내가 일곱 날 동안 울었다는 말과 친구들이 일곱째 날에 위협했다는 말 사이에 긴장이 생깁니다. 칠십인역의 일부 전승은 15절을 「나흘째 되는 날」로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사흘 동안 답을 찾지 못한 친구들이 나흘째에 아내를 협박했고, 그 뒤 마지막 날까지 압박이 이어졌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일곱째 날이라고 기록합니다. 또한 일곱 날 동안 울었다는 표현을 잔치 기간 전체를 요약하는 말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읽기가 원래의 문장이었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이 꿀보다 달겠어요?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어요?」
일곱째 날, 해가 지기 전에 그 성의 남자들이 삼손에게 답을 말합니다.
일곱째 날 해가 지기 전에, 그 성의 남자들이 삼손에게 말했습니다. 「무엇이 꿀보다 달겠어요?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어요?」 삼손이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이 내 암송아지로 밭을 갈지 않았다면, 내 수수께끼의 답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사사기 14:18 · 두루새김
내기는 잔치가 이어지는 일곱 날 동안 답을 알아내야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마지막 날이 끝나기 전에 답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삼손이 내건 조건을 지킨 셈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곧바로 그들이 어떻게 답을 알아냈는지 깨닫습니다.
여기서 암송아지는 삼손의 아내를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밭을 갈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가축을 이용하듯, 친구들이 자신의 아내를 이용해 답을 알아냈다는 뜻입니다.
그는 아내가 왜 그들에게 비밀을 알려 주었는지보다, 그들이 자신의 아내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이겼다는 사실에 집중합니다. 독자는 그 여자가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삼손의 말은 그 여자를 두려움에 빠진 사람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어 내는 데 쓰인 수단으로 그립니다.
처음에 삼손은 그 여자를 자신이 원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그녀를 자신을 속이는 데 이용된 대상으로 말합니다. 두 장면에서 여자의 구체적인 마음과 처지는 삼손의 말 속에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삼손이 보는 여자와 독자가 알게 되는 여자는 같지 않습니다.
삼손은 부정한 방법으로 내기에서 졌습니다. 친구들은 실제로 협박을 사용했습니다. 아내는 그 협박에 굴복해 남편의 비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이 사건에서 가장 힘없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제 삼손의 분노가 그 모든 관계를 더욱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이끕니다.
다시 내리신 여호와야훼의 영, 그리고 서른 명의 죽음
이 장에서 여호와야훼의 영께서 내리시는 장면은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사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수수께끼의 답이 밝혀진 뒤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께서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셨습니다. 삼손은 아스글론으로 내려가 그곳 남자 서른 명을 쳐 죽였습니다. 그들에게서 옷을 벗겨 가져다가 수수께끼의 답을 말한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삼손은 분노가 치밀어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습니다.사사기 14:19 · 두루새김
삼손은 잔치가 열린 팀나에서 상대방과 직접 싸워 옷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블레셋 성인 아스글론으로 내려갔습니다.
내기로 생긴 재산의 손해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사건으로 바뀐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께서 내리셨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힘을 주셨다는 사실은 본문이 말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힘을 사용한 모든 방식을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셨다는 결론은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죽임당한 남자들이 수수께끼를 부정하게 알아낸 당사자들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스글론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그러므로 삼손이 그들을 죽인 행동을 단순히 정당하게 빚을 갚은 일이나 범죄자에 대한 처벌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삼손과 블레셋 사람들 사이의 개인적인 갈등이 실제로 폭력을 쓰는 충돌로 커집니다.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넓은 흐름에서는 블레셋의 지배에 맞서는 갈등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삼손 개인의 행동에는 분노와 내기로 입은 손해를 메우려는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의 매우 불완전한 행동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의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의 분노는 무엇을 남겼는가?
처음에 삼손은 아내를 얻기 위해 아버지의 집에서 팀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분노한 채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갑니다. 결혼을 위해 내려갔던 사람이 부부 관계를 온전히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온 것입니다.
그는 내기에서 진 대가를 치렀지만, 그 일이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서른 명의 죽음으로 옷을 마련했어도 삼손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 곁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마지막 절에서 또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아내를 얻으려고 내려갔지만, 아내를 잃고 끝나다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은 짧습니다.
삼손의 아내는 잔치에서 삼손과 함께 지내던 친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사사기 14:20 · 두루새김
삼손이 마음에 든다고 했던 선택은 그가 기대했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는 그 여자를 얻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했지만, 결국 블레셋 사람들과의 갈등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랑에 실패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의 개인적인 욕망과 공동체 사이의 긴장이 폭력으로 번질 때, 그 관계 안에 있던 여러 사람이 어떤 피해를 입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장에서 정말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몸의 힘으로 사자를 이겼지만,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압박과 배신을 자신의 뜻대로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사자를 찢을 수 있었지만, 아내가 두려움에 놓인 상황을 해결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서른 명을 죽여 옷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분노와 무너진 관계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삼손에게는 다른 사람을 누를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이 자신의 삶을 바르게 이끌 능력과 언제나 함께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꿀의 단맛이 사라진 잔치
사사기 14장은 하나님이 사람의 선택과 갈등 속에서 자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만, 그 과정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시작하셨는지와 삼손이 무엇을 원했는지 사이의 차이가 이 장의 긴장을 이룹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삼손의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가 없습니다. 그가 사자를 죽인 일을 자랑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단지 그가 얻으려 했던 여자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만 남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왔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그 단맛으로 시작한 잔치는 피와 분노 속에서 끝났습니다.
그는 사자보다 강했지만, 자신이 원했던 삶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향해 시작하신 일은, 삼손 자신도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