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20장
이 장의 자리 · 17–21장 · 무너지는 공동체
악을 없애려다 한 지파를 없애다
사사기 20장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하나가 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입니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일어나고, 하나로 뭉칩니다.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끔찍한 범죄를 더 이상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이 단결은 기묘한 결말을 맞습니다.
기브아에서 저지른 악을 없애려던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 전체와 전쟁을 벌입니다. 두 차례 패배하여 수많은 형제를 잃고, 세 번째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합니다. 그러나 승리한 뒤에는 베냐민의 성들로 돌아가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성마다 불을 지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스라엘에게 싸우라고 말씀하셨고, 마지막에는 베냐민을 이기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이겼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셨다는 뜻일까요?
사사기 20장은 정의를 위해 일어나는 것과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열두 조각으로 나뉜 몸이 온 이스라엘을 하나로 모으다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나섰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나섰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땅과 길르앗에서 온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미스바의 여호와야훼 앞에 모였습니다.사사기 20:1 · 두루새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는 이스라엘 땅의 북쪽에서 남쪽까지를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길르앗까지 언급하므로 요단 동쪽의 공동체도 포함됩니다.
원문에서는 케이쉬 에하드, 곧 ‘한 사람과 같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표현을 씁니다. 이 표현은 8절과 11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사사기 19장에서 레위 사람은 자신의 첩의 몸을 열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온 땅에 보냈습니다. 이제 그 조각들을 받은 이스라엘이 한마음으로 모였습니다.
한 사람의 몸은 열두 조각으로 나뉘었고, 여러 지파로 나뉜 이스라엘은 하나로 뭉칩니다. 원문에서는 이스라엘이 ‘한 사람처럼’ 모였다고 하여 이 대조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깨어났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한 여성이 끔찍한 폭력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지만, 이제 이스라엘 전체가 그 사건을 외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본문은 벌써 칼을 든 보병 사십만 명이 모였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사건을 조사하러 온 사람들만이 아니라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거대한 군사 집단입니다.
그러나 그 힘이 무엇을 향해 사용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레위 사람의 증언에는 무엇이 빠져 있는가
모인 사람들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묻자, 살해된 여자의 남편인 레위 사람이 앞으로 나옵니다.
그다음 그는 기브아 주민들이 집을 에워싸고 자신을 죽이려 했으며, 첩과 억지로 잠자리를 같이했고 여자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19장에서 폭도들은 레위 사람을 끌어내 강간하겠다고 요구했습니다(19:22). 그런데 20장에서 레위 사람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의 위협이 실제로 살해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앞 장의 직접적인 요구는 성폭력이었습니다. 레위 사람의 진술은 자신에게 가해진 위협을 다른 방식으로 요약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19:25에서는 레위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폭도들에게 내보냈다고 명시합니다.
그러나 20장의 증언에는 그 행동이 없습니다.
그는 기브아 주민들이 여자와 억지로 잠자리를 같이했고 여자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여자가 어떻게 집 밖으로 나가 그들의 손에 넘겨졌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닙니다. 증언은 언제나 일부 사실을 요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해자들의 폭력을 고발하지만, 그 폭력에 여자를 내맡긴 자신의 행동은 말하지 않습니다.
기브아의 폭도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범죄를 고발하는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중요합니다.
「저는 제 첩을 붙잡아 그 몸을 조각내어 이스라엘이 물려받은 온 땅에 보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사악하고 수치스러운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사사기 20:6 · 두루새김
그가 사용하는 표현은 이 사건이 단순히 개인의 피해가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도덕적 질서를 무너뜨린 일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린 행동이 기브아 폭도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앞 장에서 남편은 여자를 내보냈고, 집주인은 여자들을 대신 희생시키려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범죄를 직접 저지른 폭도들과 같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폭력이 가능해지는 과정에 관여했습니다.
그런데 레위 사람의 증언은 사건의 책임을 기브아 주민들에게 집중시킵니다.
이제 사건은 그의 손을 떠나 이스라엘 전체의 판단에 맡겨집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판단할 때 듣게 된 이야기는 이미 한 당사자의 입을 통해 전달된 이야기입니다.
범죄자들을 넘겨 달라는 요구가 지파 간 전쟁으로 바뀌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일어나 결의합니다.
그들은 기브아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흩어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아 공격을 준비하고, 각 지파에서 일정한 비율의 사람들을 뽑아 식량을 마련하게 합니다.
백 명에서 열 명, 천 명에서 백 명, 만 명에서 천 명을 뽑는다는 말은 모두 열 명 가운데 한 명의 비율입니다. 이는 전쟁에 필요한 식량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려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12–13절에서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에게 사람을 보내 요구합니다.
「기브아에 있는 그 악한 자들을 넘겨주십시오.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에서 악을 없애겠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들은 자기 형제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사사기 20:13 · 두루새김
그들은 처음부터 베냐민 지파 전체를 멸망시키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기브아의 악한 자들을 넘겨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에서 악을 없애겠습니다」라는 말은 신명기의 언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 17:7과 19:19, 21:21에는 죄에 대한 정당한 판결과 집행을 통해 공동체 가운데서 악을 없애야 한다는 명령이 반복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악을 없애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그 책임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지파에 속해 있지만 같은 백성입니다. 기브아에서 벌어진 악행은 공동체 내부의 문제이며, 베냐민 역시 그 공동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냐민은 범죄자들을 넘겨주지 않고 군대를 모아 싸우려 합니다.
본문은 베냐민이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범죄 사실을 부정했는지, 다른 지파들의 요구를 자신들의 일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에 대한 침해로 보았는지, 지파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거부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로써 처음에는 기브아의 범죄자 몇 사람에 대한 처벌 문제였던 사건이 이스라엘의 한 지파 전체와의 전쟁으로 확대됩니다.
베냐민은 여러 성에서 이만 육천 명을 모으고, 기브아에서도 칠백 명이 모입니다. 그 가운데 칠백 명은 오른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뽑힌 군사들로 묘사됩니다.
이 표현은 사사기 3:15에서 베냐민 지파의 사사 에훗을 소개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에훗은 오른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사람으로 소개되었으며, 그 특성을 활용하여 모압 왕 에글론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베냐민의 뛰어난 전투 능력이 이스라엘의 적을 상대하는 데 사용되지 않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우는 데 사용됩니다.
그들은 물매로 돌을 던져 머리카락 하나를 겨냥해도 빗맞히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고 묘사됩니다. 이 말은 전투 기술의 정밀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사십만 명과 베냐민의 군대가 서로를 향해 섭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17:7은 공동체 안에서 악을 없애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같은 신명기 16:18–20은 재판을 공정하게 하고 정의를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악을 없애야 한다는 책임과 정의롭게 판단해야 한다는 책임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물었는데 왜 두 번이나 패배했을까?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저희 가운데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 베냐민 사람들과 싸워야 합니까?」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사사기 20:18 · 두루새김
사사기 1:1–2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은 뒤 누가 먼저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야 할지 여호와야훼께 물었습니다. 그때도 여호와야훼께서는 유다가 먼저 올라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두 장면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사사기 1장에서 유다가 싸워야 할 상대는 가나안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사기 20장에서 유다가 먼저 싸워야 할 상대는 자기 형제인 베냐민입니다.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이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반복됩니다.
그들은 싸워야 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누가 먼저 싸워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미 전쟁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에서 싸움에 앞장설 지파를 정하려 한 것입니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 이스라엘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그들은 범죄자들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고, 베냐민이 이를 거부하여 무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됩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기브아에서 나와 이스라엘 군사 이만 이천 명을 죽입니다. 하나님께 물었고, 여호와야훼께서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는데도 패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교만했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전쟁을 시작한 것이 죄였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것과 첫 번째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같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패배한 뒤 다시 싸울 대열을 갖춥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저녁까지 울며 묻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올라가 여호와야훼 앞에서 저녁까지 울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께 물었습니다. 「저희 형제인 베냐민 사람들과 다시 싸우러 가야 합니까?」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치러 올라가라.」사사기 20:23 · 두루새김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먼저 나가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싸우러 가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저희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자기들이 싸우는 상대가 다른 민족이 아니라 같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직접 말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날에도 베냐민이 승리합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군사 만 팔천 명이 죽습니다.
두 번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이만 이천 명과 만 팔천 명, 합계 사만 명을 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두 차례나 그들이 패배하도록 허용하셨는지, 그 패배가 특정한 죄에 대한 징계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장면을 ‘처음에는 금식하지 않아서 졌고, 나중에는 금식했기 때문에 이겼다’는 공식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렇게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이 패배를 거듭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질문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보여 줍니다.
싸울 것인가, 멈출 것인가
두 번째 패배 뒤 이스라엘은 다시 벧엘로 올라갑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 앞에 앉아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번제와 친교 제물을 바칩니다. 금식은 고통과 간절함을 표현하는 행동이며, 번제와 친교 제물은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야훼께 물었습니다. 그 무렵 그곳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그 무렵 아론의 손자이며 엘아자르의 아들인 핀하스가 언약궤 앞에서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희 형제인 베냐민 사람들과 또 싸우러 나가야 합니까, 아니면 그만두어야 합니까?」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가라. 내일 내가 너희에게 베냐민을 이기게 해 주겠다.」사사기 20:27–28 · 두루새김
첫 질문은 누가 먼저 싸울 것인지였습니다. 둘째 질문은 다시 싸울 것인지였습니다. 셋째 질문은 또 싸울 것인지, 아니면 그만둘 것인지를 묻습니다.
특히 「그만두어야 합니까?」라는 말은 전쟁을 중단하는 선택까지 하나님 앞에 놓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앞선 두 응답과 달리 이번에는 승리가 분명하게 약속됩니다. 「내일」이라는 시점도 제시됩니다.
조금 더 깊이
핀하스라는 이름은 사사기 후반부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출애굽 세대의 제사장 아론의 손자이며, 민수기 25장과 여호수아 22장에도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여호수아 22장에서 핀하스는 요단 동쪽 지파들이 제단을 세운 문제 때문에 같은 백성끼리 전쟁을 벌일 위기에 처했을 때 대표단을 이끌고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동쪽 지파들이 잘못된 제단을 세워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의심했지만, 그들의 설명을 들은 뒤 전쟁을 피했습니다(여호수아 22:13–34). 사사기 20장에서는 실제로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고, 그 범죄자들을 넘겨 달라는 요구를 베냐민이 거부하면서 전쟁이 벌어집니다. 두 사건의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같은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서 죄와 책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반복됩니다. 핀하스의 등장은 이 사건을 사사기 마지막에 놓인 이야기의 위치만 보고 모든 사사들의 활동보다 나중에 일어난 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보여 줍니다. 다만 핀하스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자세히 서술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 전투 — 승리를 확신한 사람들이 패배를 맞다
세 번째 날 이스라엘은 전략을 바꿉니다.
그들은 기브아 둘레에 군사들을 숨겨 놓습니다. 주력 군대는 앞선 두 번처럼 기브아를 향해 싸울 대열을 갖춥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성에서 나와 싸우자 이스라엘은 일부러 물러나며 그들을 큰길 쪽으로 끌어냅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들이 전처럼 우리에게 지고 있어!」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리 이렇게 의논했습니다. 「우리가 달아나서 저들을 성 밖 큰길로 끌어내자.」사사기 20:32 · 두루새김
그들은 이미 같은 상대를 두 번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은 일부러 물러나고 있으며, 숨어 있던 군사들은 기브아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만 보고 판단합니다.
온 이스라엘에서 뽑힌 군사 만 명이 기브아 맞은편으로 왔습니다. 싸움이 거세졌지만, 베냐민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재앙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사사기 20:34 · 두루새김
독자는 이미 이스라엘의 전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들은 모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베냐민을 이스라엘에게 패하게 하셨습니다. 그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군사 이만 오천백 명을 죽였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칼을 든 군사였습니다.사사기 20:35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서술자의 설명입니다. 앞서 레위 사람이 자신의 말로 사건을 진술하던 경우와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개입과 인간의 행동이 한 사건 안에서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36–41절은 앞서 묘사한 전투를 다른 시점에서 다시 보여 줍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도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성에서 연기가 기둥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니 성 전체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치솟고 있었습니다.사사기 20:40 · 두루새김
34절에서 베냐민은 재앙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41절에서는 재앙이 닥친 것을 깨닫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승리가 이제 베냐민에게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베냐민의 전투 패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서술 방식은 아이 성을 공격하던 여호수아 8장의 전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도 이스라엘은 일부러 물러나 적군을 성에서 끌어냈고, 숨어 있던 군사들이 성을 차지한 뒤 불을 질렀습니다(여호수아 8:3–22). 여호수아 8장에서 상대는 가나안의 아이 성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사기 20장에서 상대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지파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할 때 사용하던 전투 방식이 이제 자기 형제를 쓰러뜨리는 데 사용됩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죽이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베냐민 사람들은 광야 쪽으로 달아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을 계속 뒤쫓습니다. 베냐민의 군사들은 기브아 부근에서 쓰러지고, 도망하던 사람들 역시 큰길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스라엘은 기드옴까지 쫓아가 남은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47절에는 육백 명이 림몬 바위로 달아나 넉 달 동안 머물렀다고 기록됩니다. 베냐민 군대는 패배했고, 남은 군사들은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48절에서 이스라엘 군사들은 다시 베냐민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돌아가 성 안의 모든 사람부터 가축까지, 눈에 띄는 모든 생명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또 눈에 띄는 모든 성에 불을 질렀습니다.사사기 20:48 · 두루새김
처음에 이스라엘이 요구한 것은 기브아의 범죄자들을 넘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이 죽인 사람들은 기브아의 범죄자들만이 아닙니다.
이제 전쟁은 범죄자들을 처벌하거나 베냐민의 군사적 저항을 끝내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한 지파가 살아갈 터전 전체를 파괴하는 행동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35절은 여호와야훼께서 베냐민을 패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48절에서는 이스라엘 군사들이 돌아가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성에 불을 질렀다고 말합니다. 이 두 문장 사이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모두 명령하셨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전투의 승리를 주셨다는 사실을 근거로, 승리한 군대가 뒤이어 벌인 모든 살육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 모든 행동을 분명하게 책망하셨다는 말씀도 이 장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점까지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베냐민은 기브아의 범죄자들을 보호한 선택에 책임이 있고,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어디까지 폭력을 행사했는지에 대해 별도로 판단받아야 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보호하려는 집단의 충성심도 위험하지만, 그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에게 같은 책임을 묻는 것 역시 위험합니다.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44절에서는 만 팔천 명이 쓰러졌다고 말합니다. 45절에서는 큰길에서 오천 명이 죽고, 기드옴까지 뒤쫓는 과정에서 이천 명이 더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수치를 합하면 이만 오천 명입니다. 그런데 35절에서는 이만 오천백 명이 죽었다고 말하며, 46절에서는 다시 이만 오천 명이라고 요약합니다. 서로 다른 집계 범위나 수치의 반올림을 고려할 수 있지만, 본문이 정확한 계산 방식을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처음 모인 베냐민 군사는 여러 성에서 이만 육천 명, 기브아에서 칠백 명이었고, 마지막 생존자는 육백 명으로 기록됩니다. 이 숫자들을 단순하게 더하고 빼면 설명되지 않는 차이가 남습니다. 본문에 있는 수치를 마음대로 고쳐 일치시키기보다는, 각 수치가 어느 장면에서 무엇을 설명하는지 구별하는 편이 적절합니다.
결론 — 기브아에서 솟아오른 연기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는 목적과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방법이 올바르지 않다면, 강한 단결은 오히려 더 큰 파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악을 없애기 위해 하나가 되었지만, 그들이 마지막에 남긴 것은 정의가 회복되었다는 선언이 아니라 불타는 베냐민의 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승리의 한복판에서 기브아의 성이 불타오릅니다.
이 연기는 이스라엘의 승리를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숨어 있던 군사들은 계획대로 성을 차지했고, 연기가 피어오르자 이스라엘의 주력 군대는 돌아서서 베냐민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승리의 신호였지만, 베냐민에게는 자신의 집과 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불은 계속됩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베냐민의 여러 성으로 돌아가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성마다 불을 지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독자가 보는 것은 불타는 성들과, 림몬 바위로 달아나 넉 달 동안 숨어 지내는 육백 명입니다.
기브아에서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러나 그 연기 속에서 자기 형제들의 집도 함께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