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1–15장 · 정결과 부정

병든 사람을 바라보는 제사장의 눈

레위기 13장을 처음 읽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판정들이 등장합니다.

피부에 흰 반점이 생기면 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이 생긴 곳이 온몸을 덮어 완전히 희게 변하면 오히려 정결하다고 판정합니다. 그러다가 그 피부에서 생살이 드러나면 다시 부정해집니다.

왜 이런 판정이 내려질까요?

제사장은 이상이 생긴 곳을 치료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습니다. 대신 살펴보고, 기다리고, 다시 살펴본 뒤 정결한지 부정한지를 판정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 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행동은 치료가 아니라 관찰입니다.

레위기 11장은 음식과 죽은 동물의 정결을, 12장은 출산 후 정결을 다루었습니다. 이제 13장은 사람의 피부와 옷에 나타나는 변화가 정결 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장은 한 사람의 피부를 살펴보는 제사장의 눈에서 시작해, 결국 그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나아갑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813장 본문 읽기 →

제사장은 병명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정결 상태를 판정하는 사람이다

레위기 13:1–8 본문 →

「어떤 사람의 피부가 부풀거나 발진이나 밝은 반점이 생겨 차라아트의 증상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제사장 아론이나 그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인 한 사람에게 데려가야 한다.」레위기 13:2 · 두루새김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해서 모두 부정한 상태로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어 차라아트(ṣāraʿat)는 오래전부터 문둥병이나 나병으로 번역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를 현대 의학의 한센병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13장에는 한센병의 일반적인 설명만으로 아우르기 어려운 다양한 피부 변화가 등장합니다. 게다가 같은 이름이 사람의 피부뿐 아니라 옷과 가죽에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차라아트는 특정한 현대 질병 하나를 가리키는 진단명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의 정결 규정에서 특별히 판정해야 하는 피부의 이상과 물건의 자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제사장은 피부에 이상이 생긴 곳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곳의 털이 희게 변했고 그 부위가 피부보다 깊어 보이면, 그것은 차라아트의 증상이다. 제사장은 그 사람을 살펴보고 부정하다고 판정해야 한다.」레위기 13:3 · 두루새김

히브리어는 이상이 생긴 부위의 보이는 상태를 설명합니다. 그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을 살핍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서둘러 판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부에 흰 반점이 있어도 피부보다 깊어 보이지 않고 그곳의 털도 희게 변하지 않았다면, 제사장은 그 사람을 칠 일 동안 따로 있게 해야 한다.」레위기 13:4 · 두루새김

칠 일 동안 기다린 후 다시 살펴봅니다. 그때 이상이 생긴 곳이 그대로 있고 퍼지지 않았으면 다시 칠 일 동안 따로 있게 합니다.

두 번째 칠 일이 지난 뒤에는 그곳의 빛깔이 옅어지고 퍼지지 않았는지 확인합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정결하다고 판정하고, 그 사람은 옷을 빱니다.

여기서 따로 있게 하는 것은 최종적인 부정 판정과 구별됩니다. 판정을 내리기에 충분한 근거가 없을 때 관찰을 위해 일정 기간을 두는 것입니다.

제사장에게는 판정할 권한이 있지만, 그 권한을 사용하는 데에도 규정이 있습니다.

아직 판단할 수 없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7–8절에서는 정결 판정을 받은 뒤 발진이 퍼지면 다시 제사장에게 보여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한 번의 판정이 그 뒤의 모든 상황을 영원히 결정하지 않습니다. 상태가 달라지면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온몸이 하얗게 변하면 왜 정결한가

레위기 13:9–17 본문 →

이제 본문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를 제시합니다.

피부에 희게 부푼 곳이 있고, 털이 희게 변했으며, 그곳에 생살이 드러나 있으면 오래된 차라아트로 판정합니다.

「그것은 피부에 생긴 오래된 차라아트다. 제사장은 그 사람이 부정하다고 판정해야 한다. 이미 부정하므로 판정을 위해 따로 두는 기간을 거치게 해서는 안 된다.」레위기 13:11 · 두루새김

이미 부정함이 확인되었으므로, 판정을 위해 칠 일씩 관찰하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부정하다고 확정된 사람이 머무는 곳에 관한 규정은 45–46절에서 따로 제시됩니다.

그런데 곧이어 예상과 반대되는 규정이 나옵니다.

「제사장은 그 사람을 살펴보아야 한다. 차라아트가 온몸을 덮었다면, 그 사람이 정결하다고 판정해야 한다. 온몸이 희게 변했으니 그는 정결하다.」레위기 13:13 · 두루새김

본문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은 온몸이 희게 변하고 생살이 드러나지 않는 상태가 정결 판정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생살이 드러나면 판정이 다시 바뀝니다.

「그러나 생살이 드러나면 그 사람은 부정해진다.」레위기 13:14 · 두루새김

그리고 생살이 다시 희게 변하면 정결해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살이 드러나는 것을 회복의 신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규정에서는 오히려 부정함을 판단하는 징후가 됩니다.

레위기 13장의 정결 판정은 증상이 얼마나 넓게 퍼졌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어떤 상태로 나타나는가가 중요합니다.

제사장은 의사가 병의 완치를 선언하듯 판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정에 따라 의례적인 상태를 판정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한 가지 가능한 해석은 피부의 변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특정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결하다고 판정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온몸이 희어진 상태를 의학적으로 완전히 나은 상태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라아트가 온몸을 덮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말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명사는 미흐야(miḥyāh)입니다. 「살다」라는 뜻의 어근과 관련된 말로, 이 문맥에서는 이상이 생긴 곳 가운데 드러나는 살아 있는 살이나 날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피부 상태인지, 특정한 상처가 아물며 생긴 조직인지, 피부가 벗겨져 드러난 조직인지까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나은 종기와 화상도 다시 살펴야 한다

레위기 13:18–28 본문 →

18절부터는 새롭게 이상이 생긴 곳이 아닌, 이미 피부에 변화가 있었던 자리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다룹니다.

「피부에 종기가 생겼다가 나았는데,」 「그 자리가 희게 부풀거나 붉은빛이 도는 흰 반점이 생기면, 그 사람은 제사장에게 보여야 한다.」레위기 13:18–19 · 두루새김

제사장은 그 부위가 피부보다 낮아 보이고 털이 희게 변했는지 살펴봅니다. 그러한 징후가 있으면 부정하다고 판정합니다.

반대로 징후가 분명하지 않으면 칠 일 동안 따로 있게 합니다. 그동안 퍼지면 부정하고, 퍼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면 종기의 흉터로 판단하여 정결하다고 선언합니다.

종기는 이미 나았습니다. 그 자리에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그 흔적이 단순한 흉터인지, 차라아트의 증상인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화상도 같은 방식으로 판단한다

24–28절에서는 불에 덴 부위에 나타나는 변화가 설명됩니다. 불에 덴 자리에 붉은빛이 도는 흰 반점이나 흰 반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털의 변화와 그 부위의 깊이, 퍼지는지 여부를 살핍니다. 그리고 단순한 불에 덴 흉터로 판단되면 정결하다고 선언합니다.

이미 손상되었다가 회복된 피부에도 여러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은 단순히 흰 반점이 보인다고 해서 모두 같은 증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상이 생긴 자리와 이전 상태를 고려해야 합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모든 피부의 이상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 것이 아니라, 서로 비슷해 보이는 상태들 사이에서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머리와 수염의 병변 — 털이 판단의 기준이 되다

레위기 13:29–37 본문 →

이제 피부의 다른 부위로 시선이 옮겨 갑니다.

「남자나 여자의 머리나 수염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 「제사장은 그 부위를 살펴보아야 한다. 피부보다 깊어 보이고 그곳에 노랗고 가는 털이 있다면, 그 사람이 부정하다고 판정해야 한다. 그것은 털이 빠지는 증상이며, 머리나 수염 부위에 생긴 차라아트다.」레위기 13:29–30 · 두루새김

반면 그런 특징이 확실하지 않으면 칠 일 동안 관찰합니다. 여기서도 한 번에 판단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유지됩니다.

「그 사람은 털을 깎되 이상이 생긴 그 부위는 깎지 말아야 한다. 제사장은 그 사람을 다시 칠 일 동안 따로 있게 해야 한다.」레위기 13:33 · 두루새김

털의 변화가 중요한 판정 기준이기 때문에 이상이 생긴 부위를 그대로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칠 일이 지나 그 부위가 퍼지지 않고 깊어 보이지 않으면 정결하다고 판정합니다. 반대로 정결 판정을 받은 뒤 그 부위가 퍼지면 다시 부정함을 판정합니다.

「제사장은 그 사람을 살펴보아야 한다. 털이 빠진 부위가 피부에 퍼졌다면, 노란 털이 있는지 더 살필 필요가 없다. 그는 부정하다.」레위기 13:36 · 두루새김

모든 경우에 모든 징후를 한꺼번에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징후가 확인되면 그것만으로 판정이 가능합니다.

반대로 털이 빠진 부위가 더 퍼지지 않고 검은 털이 자라났다면, 37절에서는 증상이 나은 것으로 보고 정결하다고 판정합니다. 본문은 「그 증상은 나은 것이다」라고 말한 뒤 「그는 정결하다」고 선언합니다. 증상이 나았다는 상태의 변화와 제사장이 정결하다고 판정하는 행동이 구별되어 서술됩니다.

증상의 변화는 관찰되는 사실입니다. 정결하거나 부정하다는 판정은 그 사실에 근거하여 제사장이 내리는 의례적 판단입니다.

조금 더 깊이

13장이 차라아트를 어떻게 판정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면, 14장은 차라아트가 나은 사람이 어떻게 정결 의식을 거쳐 다시 공동체의 생활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마가복음 1:40–45에서 차라아트가 있는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깨끗하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깨끗하게 하신 뒤,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것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마가복음 1:44).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을 깨끗하게 하셨지만, 그 사람이 정결해졌음을 공동체의 규정에 따라 확인하는 제사장의 역할도 언급됩니다. 여기서 신약은 레위기 13장의 직접적인 예언을 성취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정결 규정을 배경으로 예수님의 치유와 정결하게 하시는 일을 서술합니다.

흰 반점도 탈모도 언제나 부정한 것은 아니다

레위기 13:38–44 본문 →

38절부터 본문은 다시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옅은 흰 반점이고, 다른 하나는 머리털이 빠지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 사람을 살펴보아야 한다. 피부의 반점들이 옅은 흰색이라면, 그것은 피부에 돋은 흰 발진이다. 그 사람은 정결하다.」레위기 13:39 · 두루새김

본문은 흰 반점 자체를 곧바로 차라아트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절은 더욱 분명한 예외를 보여 줍니다.

「남자의 머리털이 빠지면, 그는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다. 그는 정결하다.」레위기 13:40 · 두루새김
「이마 쪽의 머리털이 빠지면, 그는 이마가 벗겨진 사람이다. 그는 정결하다.」레위기 13:41 · 두루새김

다만 머리나 이마가 벗겨진 자리에 붉은빛이 도는 흰 자국이 생기면 그때는 제사장이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그 자국이 차라아트의 특징에 맞으면 부정하다고 판정합니다. 즉, 머리털이 없다는 사실과 그 자리에 차라아트의 증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겉모습이 다르다는 것과 부정하다는 것은 다르다

부정하다고 판정받는 일은 단순히 몸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판정은 그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까지는 제사장의 눈이 피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판정이 한 사람의 삶을 어디로 옮겨 놓는지가 나타납니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 판정 이후의 삶

레위기 13:45–46 본문 →

「차라아트의 증상이 있는 사람은 찢어진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쳐야 한다.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하고 외쳐야 한다.」레위기 13:45 · 두루새김

이러한 모습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난 상태를 겉으로 드러냅니다. 특히 찢어진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치는 모습은 성경에서 슬픔을 나타내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왜 자신의 부정함을 외쳐야 하는가

다른 사람이 그의 상태를 대신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신이 외쳐야 합니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건강 상태에 관한 정보가 아닙니다. 공동체에 자신의 의례적 상태를 알리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머무는 곳의 제한으로 이어집니다.

「그 증상이 있는 동안은 계속 부정한 상태다. 그는 부정하므로 따로 살아야 한다. 그가 머무는 곳은 진영 밖이어야 한다.」레위기 13:4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진영은 가족과 친족, 공동체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그 진영 밖에서 따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일상의 관계와 생활에 심각한 제한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왜 진영 밖이어야 하는가

레위기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진영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머무시는 공동체의 공간입니다. 민수기 5:1–4에서도 특정한 부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는 명령이 나오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진영 가운데 머무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상황에서 진영의 정결을 유지하는 문제와 관계됩니다.

의례적으로 부정한 사람과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은 동일한 부류가 아닙니다. 레위기 13장은 차라아트가 있는 사람의 죄를 찾아내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증상의 모양과 변화에 따라 부정함을 판정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부정하다고 판정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 사람이 하나님께 특별한 벌을 받았다고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 상태를 그 사람의 인격이나 신앙의 수준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거룩한 공동체의 경계와 한 사람의 고통

그러나 이 규정의 신학적 목적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당사자의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 사람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정확히 그려 낼 수 있는지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진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반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만 본문은 그의 마음속 생각이나 가족의 반응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판정은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레위기 13장은 제사장에게 판정의 권한을 주면서, 그 권한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함께 제시합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10:6에서 모세는 아론과 남은 아들들에게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거나 옷을 찢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제사장의 일을 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슬픔을 나타내는 행동이 제한되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13장에서는 차라아트가 있는 사람에게 비슷한 겉모습을 요구합니다. 이 둘을 동일한 의식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옷과 머리 모양이 사람의 특별한 상태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감염을 예방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이 규정의 유일한 이유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레위기에서 부정함은 전염성 질병과 동일한 개념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외침을 현대 감염병 관리의 경고 방송처럼만 이해하면 본문의 의례적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옷에도 차라아트가 생긴다 — 같은 이름, 다른 대상

레위기 13:47–59 본문 →

사람에 관한 규정이 끝난 뒤, 본문은 갑자기 옷과 가죽에 관한 규정으로 넘어갑니다.

「양털 옷이나 아마포 옷에 차라아트 자국이 생겼을 때 지킬 규정은 이러하다.」 「아마나 양털로 된 날실이나 씨실, 가죽이나 가죽으로 만든 물건에도 이 규정을 적용한다.」레위기 13:47–48 · 두루새김

본문은 푸르스름하거나 불그스름한 자국을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곰팡이와 정확히 동일한 현상인지, 섬유나 가죽이 손상되는 어떤 특정한 변질인지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색의 변화와 퍼짐, 빤 뒤의 변화 등이 판정 기준으로 제시되므로, 물건에 나타나는 눈에 보이는 손상이나 변질을 다룬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옷도 이레 동안 관찰한다

사람의 피부에 나타나는 증상과 마찬가지로, 옷에 자국이 나타났다고 곧바로 불태우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자국을 살펴보고 그 물건을 칠 일 동안 따로 둡니다. 그 뒤 자국이 퍼졌다면 물건을 망가뜨리는 차라아트로 판정합니다.

「제사장은 자국이 생긴 옷이나 양털 또는 아마로 된 날실이나 씨실이나 가죽 물건을 태워야 한다. 물건을 망가뜨리는 차라아트이므로 불에 태워야 한다.」레위기 13:52 · 두루새김

물건을 망가뜨리며 번지는 성질을 뜻하는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는 성질을 뜻하는지 정확한 뜻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것이 심각한 이상으로 판정되며 해당 물건을 불태우도록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퍼지지 않았어도 반드시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부분의 규정은 피부 증상과 조금 다릅니다.

피부 증상에서는 퍼지지 않고 빛깔이 옅어지는 것이 정결 판정의 중요한 근거였습니다. 옷에서도 자국이 퍼지지 않았으면 빨고 다시 칠 일 동안 따로 둡니다.

「그 물건을 빤 뒤에 제사장은 자국을 살펴보아야 한다. 자국의 빛깔이 변하지 않았다면, 더 퍼지지 않았어도 그 물건은 부정하다. 그것을 불에 태워야 한다. 안쪽이든 바깥쪽이든 그 물건이 파먹힌 것이다.」레위기 13:55 · 두루새김

여기서는 자국이 퍼지는지뿐 아니라, 빨아서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중요한 기준입니다. 사람의 피부와 옷에 같은 차라아트라는 이름이 사용되지만, 구체적인 판정 기준이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각 대상의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됩니다.

옷의 일부만 제거할 수도 있다

빤 뒤 자국의 빛깔이 옅어졌다면 옷 전체를 불태우지 않고, 자국이 있는 부분만 찢어 냅니다. 그러나 자국이 다시 나타나면 불태워야 합니다. 반대로 빤 뒤 자국이 사라졌다면 다시 빨아 정결하게 합니다.

사람의 피부에서는 정결하거나 부정한 상태를 판정합니다. 옷과 가죽에서는 그 판정에 따라 빨거나 일부를 제거하고, 경우에 따라 전체를 불태웁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옷처럼 불태우라는 명령이 내려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부정하다고 판정되면 진영 밖에서 살아야 하지만, 물건을 처리하는 방식과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구별됩니다. 같은 차라아트라는 이름이 사용된다고 해서 모든 대상에게 동일한 처분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55절의 「안쪽이든 바깥쪽이든」은 옷이나 물건의 어느 부분 또는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두루새김은 물건의 위치를 뜻한다고 이해하는 읽기를 따라 「안쪽이든 바깥쪽이든」으로 옮겼습니다. 다만 이 표현의 정확한 의미에는 여전히 불분명한 점이 있습니다.

맺음말 — 이레가 지난 뒤 다시 살펴보는 사람

레위기 13:1–59 본문 →

이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상태를 정확하게 구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과정입니다. 레위기 13장은 거룩함의 경계를 지키도록 명령하면서,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을 얼마나 신중하게 살펴야 하는지도 가르칩니다.

현대 의학의 진단과 치료는 이러한 의례적 규정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피부에 흰 반점이 생겼다고 성경의 규정으로 질병을 진단하거나, 특정한 피부 질환이 있는 사람을 의례적으로 부정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을 단순히 아무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현대적 교훈으로 바꾸는 것은 본문의 본래 의미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거룩함을 지킨다는 이유로 사람을 성급히 판단하거나, 그 사람의 도덕적 가치를 낮게 평가해도 된다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본문의 마지막에서도 제사장은 옷과 가죽에 생긴 자국을 살펴 정결한지 부정한지 판정합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합니다. 살펴보고, 기다리고, 다시 살펴본 뒤 판정하는 일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생활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먼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레위기 13장은 바로 그 책임을 제사장의 눈앞에 놓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