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1–15장 · 정결과 부정
생명을 낳은 여인의 정결
레위기 12장은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정결 규정 가운데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부정한 상태가 됩니다. 남자아이를 낳았을 때는 사십 일,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는 팔십 일이 지나야 정결 의식이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기간이 끝나면 어머니는 번제와 정화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제사장은 그 여자를 위해 속죄합니다.
아기를 낳는 일이 왜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까요? 성경은 자녀를 하나님의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출산한 여성이 정화 제물을 바쳐야 할까요? 더구나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는 왜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날까요?
창세기 1:28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을 주셨습니다. 출산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생명이 이어지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레위기에서는 생명과 관련된 몸의 변화가 거룩한 영역에 접근하는 문제와 별도로 연결됩니다.
이 장의 관심은 아기의 탄생을 평가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출산을 경험한 여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소와 관련된 의례적 정결을 회복하는가에 있습니다.
앞 장에서는 죽은 동물의 몸에 닿을 때 생기는 부정함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출산의 자리에서 부정함을 다룹니다. 그 대비는 레위기의 정결 규정이 단순히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나누는 도덕적 체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출산한 여인은 왜 월경 중인 여인과 비교되는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여자가 임신하여 남자아이를 낳으면, 월경 때와 마찬가지로 칠 일 동안 부정하다.』」레위기 12:2 · 두루새김
레위기 15:19–24를 보면 월경 중인 여인의 의례적 상태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여인은 칠 일 동안 부정한 상태에 있으며, 접촉과 잠자리에 쓰는 물건 등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레위기 12장은 출산한 여인에게 적용할 규정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알고 있는 월경의 정결 규정과 연결합니다. 두 사건 모두 여성의 생식 기능 및 피의 흐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만 성경은 왜 이러한 몸의 현상이 의례적 부정함을 일으키는지에 관한 완전한 이론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피가 생명과 밀접하게 관계된다는 사실은 레위기 17:11에서 분명하게 표현되지만, 그 구절만으로 출산 후 부정함의 모든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죄를 지었다는 뜻인가
레위기에서 「부정하다」는 말은 언제나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몸의 상태나 접촉으로 인해 사람이 거룩한 영역에 접근하는 데 제한을 받는 의례적 상태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레위기 12장은 출산이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태어난 아기가 부정하다거나,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에는 그 여인이 범한 죄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출산을 회개하라는 명령도 없습니다. 그 대신 출산 후 어떤 기간이 지나야 하며, 언제 정화 의식을 행해야 하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부정함과 죄가 언제나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에서는 죄가 거룩한 영역을 더럽히는 문제도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러나 모든 부정함을 죄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부정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을 죄인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여드레째 할례 — 어머니의 정결 기간과 아이의 언약 표지가 만나다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여 포피를 잘라 내야 한다.』」레위기 12:3 · 두루새김
출산한 어머니의 정결 규정 한가운데 갑자기 아이의 할례에 관한 명령이 등장합니다.
이 명령은 창세기 17:9–14의 언약 규정과 직접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할례를 언약의 표지로 주셨습니다. 남자아이는 태어난 지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창세기 17:12).
어머니는 출산 후 칠 일 동안 월경 때와 같은 부정한 상태에 있습니다. 여덟째 날에는 아들이 할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날 어머니의 정결 기간 전체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이후에도 삼십삼 일을 더 지내야 합니다.
아들이 언약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과 어머니의 출산 후 정결 상태는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아들이 할례를 받는 데 어머니의 전체 정결 기간이 끝날 필요는 없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들이 할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결 기간을 마친 것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출산을 둘러싸고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례적 질서가 함께 진행됩니다.
왜 서른사흘을 더 기다리는가
「『그 여자는 출산 뒤 흐르는 피로부터 정결해지기 위해 삼십삼 일을 더 지내야 한다. 정결 기간이 끝날 때까지 거룩한 것에 손대거나 성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레위기 12:4 · 두루새김
칠 일과 삼십삼 일을 합하면 사십 일입니다. 그런데 이 두 기간을 단순히 같은 부정함이 사십 일 동안 계속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첫 번째 기간은 월경 중의 부정함에 직접 비교됩니다. 반면 두 번째 기간에서는 거룩한 것에 손대지 못하고 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제한이 특별히 명시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두 번째 기간이 첫 번째 기간과 구별되는 의례적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그 기간에 어머니가 일상생활의 모든 접촉에서 완전히 정결한 상태로 여겨지는지, 어떤 제한이 계속 남아 있는지에 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본문이 직접 밝히는 것은 거룩한 것에 손대거나 성소에 들어가는 일의 금지입니다. 따라서 사십 일 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거나, 집 안에서 아무것도 만져서는 안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에게 주어진 제한에는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본문은 정결 기간이 끝날 때까지 거룩한 것에 손대거나 성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기간이 끝나고 정해진 정화 의식을 마치면 그 제한도 끝난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깊이
4절의 원문에는 해석하기 쉽지 않은 표현이 사용됩니다. 히브리어로 디메 토호라(dĕmê ṭohorāh), 곧 「정결의 피」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출산 뒤 흐르는 피로부터 정결해지기 위해」로 풀어 옮겼습니다. 하나는 출산 후 일정한 기간의 피가 앞선 월경과 같은 부정함을 일으키는 피와는 다르게 취급된다는 읽기입니다. 이 경우 「정결의 피」는 그 기간의 피가 의례적으로 특별한 방식으로 여겨진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다른 하나는 출산 후 피와 관련된 정결 과정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읽기입니다. 이 경우 「정결의 피 가운데 지낸다」는 말은 완전한 정결에 이르기까지 기다리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본문은 두 번째 기간에 거룩한 것에 손대거나 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완전한 정결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의 피 자체가 어떤 의례적 성격을 가지는지까지 한 가지 뜻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왜 여자아이를 낳으면 기간이 두 배가 되는가
「『여자아이를 낳으면, 월경 때와 마찬가지로 두 주 동안 부정하다. 그 뒤에는 출산 뒤 흐르는 피로부터 정결해지기 위해 육십육 일을 더 지내야 한다.』」레위기 12:5 · 두루새김
| 출산한 아이 | 첫 번째 부정 기간 | 이어지는 기간 | 합계 | | --- | --- | --- | --- | | 남자아이 | 7일 | 33일 | 40일 | | 여자아이 | 14일 | 66일 | 80일 |
단순히 전체 기간만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 기간과 두 번째 기간이 각각 두 배가 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덜 가치 있기 때문인가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해석은 여자아이의 가치가 남자아이보다 낮기 때문에 정결 기간이 더 길다는 주장입니다.
여자아이를 낳았다고 어머니가 더 큰 죄를 지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더 부정한 존재라고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이 부정하다고 말하는 대상은 출산한 어머니의 의례적 상태입니다. 여자아이 자신이 남자아이보다 더 오랫동안 부정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달랐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이 규정을 설명하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또 다른 설명은 여자아이가 장차 월경과 출산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 긴 정결 기간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출산 후 몸의 회복 기간에 성별 차이가 있다는 설명도 제시될 수 있지만, 본문은 그러한 의학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왜 여자아이를 낳았을 때 기간이 두 배인지, 이것은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차이를 감추어서도 안 되지만,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장해서도 안 됩니다.
차이가 있지만 마지막 절차는 같다
「아들을 낳았든 딸을 낳았든」 정결 기간이 끝난 후에는 같은 종류의 제물을 바칩니다. 딸을 낳았기 때문에 더 많은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더 큰 정화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적용되는 기간은 다르지만, 마지막 정화 의식은 같습니다.
이것이 차이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자아이 출산이 더 큰 도덕적 잘못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본문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차이가 출산에 관한 의례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기간을 정확히 두 배로 정한 직접적인 이유였다는 근거는 본문에 없습니다. 여자아이의 장래 생식 능력과 어머니의 정결 기간을 직접 연결하는 문장이 없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낳은 여인이 왜 속죄 제물을 드리는가
정결 기간이 끝나면 어머니는 제물을 준비합니다.
「『아들을 낳았든 딸을 낳았든 정결 기간이 끝나면, 그 여자는 번제로 바칠 한 살 된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정화 제물로 바칠 어린 비둘기 한 마리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가져와야 한다. 그것들을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가져와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레위기 12:6 · 두루새김
번제는 제단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는 제사입니다. 레위기 1장에서 이미 그 절차가 설명되었습니다. 정화 제물은 부정함이나 죄로 인해 생긴 문제를 다루는 제사입니다.
「『제사장은 그 제물을 여호와야훼 앞에 바치고 그 여자를 위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여자는 몸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생긴 부정함에서 정결해진다. 이것은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를 낳은 여자가 지킬 규정이다.』」레위기 12:7 · 두루새김
출산이 죄가 아니라면 왜 속죄해야 할까요?
속죄는 언제나 개인의 죄를 용서받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히브리어 동사는 키페르(kipper)입니다. 이 말은 죄에 대한 속죄와 용서를 말할 때 자주 사용되지만, 레위기에서는 사람이나 거룩한 장소의 의례적 상태를 정화하고 바로잡는 일에도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8:15에서는 제단을 위해 속죄한다고 말합니다. 제단은 죄를 짓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단을 정화하고 거룩하게 구별하는 의식에서 속죄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출산과 관련된 의례적 부정함이 생겼고, 정해진 기간과 제사를 거쳐 정결해지는 과정에 속죄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제사의 결과가 죄의 용서로 표현되지 않고 정결해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몸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생긴 부정함」에서 정결해진다는 말
7절의 「몸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생긴 부정함에서」라는 표현도 주목할 만합니다. 직역하면 「그 여인의 피의 근원에서부터」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출산 후 어머니의 몸에서 일어나는 출혈과 관계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표현을 출혈이 그 순간 완전히 멈춘다는 의학적 설명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정결 기간이 끝나고 제사장이 제물을 바쳤을 때, 그 여인이 출산 후 피와 관련된 의례적 상태에서 정결해진다는 것입니다.
기간이 지나기만 하면 모든 의식이 저절로 끝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여호와야훼 앞에 제물을 바치고 그 여인을 위해 속죄한 뒤, 정결해졌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여인은 어디로 돌아오는가
본문은 여인이 정결 기간 동안 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간이 끝나자 제물을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가져오도록 명령합니다.
본문은 여인이 그 뒤에 실제로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결 기간 동안 적용되었던 성소 접근의 제한이 끝나도록 하는 절차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결 규정은 누가 거룩한 영역에서 제한되는지만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제한이 어떻게 끝날 수 있는지도 가르칩니다.
어린 숫양을 마련할 수 없는 여인에게도 같은 길이 있다
「『그 여자가 양 한 마리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와야 한다. 한 마리는 번제로, 다른 한 마리는 정화 제물로 바쳐야 한다. 제사장은 그 여자를 위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여자는 정결해진다.』」레위기 12:8 · 두루새김
원문에는 직역하면 「그 여인의 손이 양에 미치지 못하면」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사용됩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양 한 마리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되면」으로 옮겼습니다. 이것은 제물을 마련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의 한계를 나타냅니다.
형편에 따라 제물은 달라지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양을 바친 여인도 정결해집니다.
양을 마련할 수 없어 새 두 마리를 바친 여인도 정결해집니다.
제물의 경제적 가치는 다르지만, 본문은 정화 의식의 결과를 다르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어떤 사람이 정결의 길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5:7–13에서는 제물을 마련할 능력에 따라 다른 종류의 제물이 허용됩니다. 양이나 염소를 마련할 수 없는 사람은 새를 바칠 수 있으며, 그마저 마련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일정한 분량의 고운 밀가루가 허용됩니다.
레위기 14:21–32에서도 피부병에서 정결해지는 사람이 가난하여 정해진 제물을 모두 마련할 수 없다면 다른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레위기 12장의 마지막 절은 이러한 제사 규정의 특징과 연결됩니다.
왜 더 값싼 제물을 바치는 여인도 동일하게 정결해지는가
정결해지는 결과를 제물의 값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여인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장이 그들을 위해 속죄합니다. 그리고 둘 다 정결해집니다.
제사는 경제적 가치의 교환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의례적 질서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 질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누가복음 2:21–24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후에 이 규정과 관련된 일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으십니다(누가복음 2:21). 그리고 정결 기간이 끝났을 때 부모가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제물로 바칩니다(누가복음 2:22–24). 특히 새 두 마리를 바쳤다는 기록은 레위기에서 양을 마련할 형편이 없는 사람에게 허용한 제물과 일치합니다. 이 연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가족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의 질서 안에서 행동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레위기 12장이 예수님의 탄생을 직접 예언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래 이 규정은 이스라엘의 출산한 여인들에게 적용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맺음말 — 양을 마련할 수 없는 여인이 제사장 앞에 서다
레위기 12장은 출산한 여인이 부정해진다는 선언으로 시작하지만, 그녀가 정결해지는 길을 보여 주며 끝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가볍게 다룰 수 없지만, 그 거룩함에 접근하는 길이 부유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도 아닙니다.
양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는 한 여인이 만남의 천막 입구에 서 있습니다. 그 여인의 손에는 새 두 마리가 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더 값비싼 제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정결 의식에 허용하셨습니다.
제사장이 그 여인을 위해 속죄합니다. 그리고 본문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그러면 그 여자는 정결해진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출산한 여인의 부정함이 아닙니다.
그 여인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정결해졌다는 말씀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