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정탐과 광야 세월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사이에 서다

민수기 17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로 시작됩니다.

앞 장에서 고라의 무리에 가담한 이백오십 명이 여호와야훼 앞에 향을 바쳤다가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제사장 직분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향로를 바친 사람들은 죽었는데, 그들이 바친 향로는 거룩해졌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랍게도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향로를 버리지 말고, 두드려 펴서 제단을 덮는 금속판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잘못된 예배에 사용된 물건이 거룩한 제단의 일부가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향로가 거룩해졌다면 그들의 제사가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물건을 성소에서 사용하도록 하셨습니까?

거룩한 것에 가까이 간다는 사실과, 거룩하신 분께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여호와야훼의 거룩함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가져올 만큼 두려운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그 거룩함이 사람들의 죽음을 막고 생명을 지키는 길로도 나타납니다.

여호와야훼의 거룩함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백성이 어떻게 그분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까?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917장 본문 읽기 →

불에 탄 사람들의 향로가 제단의 덮개가 되다

민수기 17:1–5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론의 아들 엘아자르에게 불에 탄 것들 사이에서 향로를 꺼내게 하십니다.

「아론의 아들인 제사장 엘아자르에게 말하여, 불에 탄 것들 사이에서 향로들을 꺼내고 불은 멀리 흩어 버리게 하여라. 그 향로들은 거룩해졌기 때문이다.」민수기 17:2 · 두루새김

엘아자르는 아론의 아들이며 제사장입니다. 고라의 무리는 제사장 직분에 도전했다가 심판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정당하게 그 직분을 맡은 제사장이 그들이 사용했던 향로를 거둡니다.

성경에서 거룩하다는 말은 언제나 도덕적으로 훌륭하거나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졌다는 뜻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어떤 대상이 여호와야훼께 구별되어 그분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죄를 지어 목숨을 잃은 이 사람들의 향로를 사람들이 두드려 얇은 금속판으로 만들고, 그 판으로 제단을 덮게 하여라.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야훼 앞에 바쳐서 향로가 거룩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징이 될 것이다.」민수기 17:3 · 두루새김

향로를 바쳤던 사람들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향로들이 여호와야훼 앞에 바쳐졌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향로가 거룩해졌다는 선언은 바친 사람들의 죄를 정당화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거룩한 일을 자기들의 주장에 맞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 속한 것을 사람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의 죽음으로 드러났습니다.

향로는 그들이 바랐던 제사장 직분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들이 넘어섰던 경계를 기억하게 하는 물건이 됩니다.

4절은 그 향로들이 구리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출애굽기 27:1–2에서 성막의 번제단은 구리로 덮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향로들은 제단의 재료와도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제단을 바라볼 때마다 그들은 그곳에 사용된 금속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신 심판을 공동체의 예배 공간 안에 남겨 두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기억하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아론의 후손이 아닌 사람은 여호와야훼 앞에 가까이 와서 향을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여, 고라와 그의 무리처럼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를 통해 엘아자르에게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민수기 17:5 · 두루새김

여기서 금지된 사람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본문은 향을 피우는 제사장의 일에 관해 아론의 후손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합니다. 레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일을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고라가 바로 레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향로를 제단에 남겨 두신 목적은 앞으로도 사람들을 죽이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고라의 무리처럼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곧 심판의 흔적이 미래의 심판을 막는 경고가 됩니다.

그러나 이 명령이 내려진 바로 다음 날, 이스라엘은 그 경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드러냅니다.

「당신들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을 죽였습니다!」 — 심판을 보고도 달라지지 않은 공동체

민수기 17:6–10 본문 →

다음 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공동체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며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을 죽였습니다!」민수기 17:6 · 두루새김

사람들은 땅이 갈라지고 불이 나와 반역자들을 삼키는 사건을 보았습니다. 여호와야훼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확인했습니다.

앞 장은 여호와야훼에게서 불이 나와 향을 바치던 사람들을 삼켰다고 기록했습니다(16:35). 그러나 공동체는 그 죽음을 모세와 아론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그들이 보기에 죽은 사람들은 반역자가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백성」입니다.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는 표현은 앞 장에서 고라가 내세웠던 논리와 연결됩니다. 고라는 온 공동체가 거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공동체는 심판받은 사람들 역시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분명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보여 주는 문제는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이라는 신분이 그들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말씀 아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동체가 모세와 아론에게 맞서 모였습니다. 그들이 만남의 천막 쪽을 돌아보니, 구름이 천막을 덮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민수기 17:7 · 두루새김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자신들의 적으로 여기지만, 정작 판단하시는 분은 성막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곧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공동체 가운데서 물러나라. 내가 그들을 한순간에 없애 버리겠다.」 모세와 아론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민수기 17:10 · 두루새김

그러나 이어지는 행동은 앞 장과 다릅니다.

앞에서는 온 공동체를 위해 간절히 구하는 말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급박한 행동이 나타납니다. 이미 재앙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공동체는 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죽은 사람들을 애도했기 때문입니까? 심판이 너무 가혹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본문은 그들의 속마음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동기만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똑같은 향로가 이번에는 생명을 살린다

민수기 17:11–12 본문 →

모세는 아론에게 급히 명령합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 위의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놓으세요. 서둘러 공동체에게 가져가 그들을 위해 속죄해 주세요. 여호와야훼께서 분노를 내리셨고, 재앙이 시작되었어요.」민수기 17:11 · 두루새김

조금 전까지 향로는 사람들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고라의 무리 이백오십 명은 향로를 들고 여호와야훼 앞에 나아갔다가 불에 삼켜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을 죽게 하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한 행동에 사용됩니다.

향로 자체에 죽이거나 살리는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차이는 향로를 사용하는 사람과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관계에 있습니다.

고라의 무리는 자신들에게도 제사장 직분이 허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향을 바쳤습니다. 반면 아론은 여호와야훼께서 제사장으로 세우신 사람이며, 지금 모세의 지시에 따라 백성을 위해 속죄하려 합니다.

본문은 향을 바치는 일이 단순히 연기를 피워 재앙을 몰아내는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야훼 앞에서 백성을 위해 속죄하는 제사의 행위임을 분명히 합니다.

아론은 모세가 말한 대로 향로를 가져다가 모인 사람들 한가운데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백성 가운데 재앙이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아론은 향을 놓고 백성을 위해 속죄했습니다.민수기 17:12 · 두루새김

그곳은 자신에게 불평하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자신의 제사장 직분을 부정했던 바로 그 공동체를 위해 아론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고라의 무리는 제사장의 자리에 올라서려 했지만, 아론은 제사장으로서 죽어 가는 백성에게 달려갑니다.

조금 더 깊이

모세는 불을 어디에서 가져올지도 지정합니다. 이 점은 레위기 16:12–13과 연결됩니다. 속죄일 의식에서 아론은 여호와야훼 앞의 제단에서 불을 가져오고 향을 피워, 거룩한 곳에 나아갈 때 죽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두 의식은 같지 않습니다. 레위기 16장에서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의 안전과 속죄일 의식이 중심인 반면, 민수기 17장에서는 재앙으로 죽어 가는 공동체를 위한 긴급한 속죄가 중심입니다. 그러나 둘 다 향을 피우는 행위가 여호와야훼께 정해진 방식으로 나아가는 제사장의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과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

민수기 17:13–15 본문 →

아론이 죽은 사람들과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서자 재앙이 멎었습니다.민수기 17:13 · 두루새김

그의 행동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백성을 위한 제사장의 일을 하는 것이며, 그 결과 재앙이 그친 것입니다. 재앙으로 죽은 사람은 만 사천칠백 명입니다. 이 숫자는 고라의 일로 죽은 사람들을 제외한 수라고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14절).

이것은 가벼운 경고로 끝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체는 엄청난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둘째, 그 심판은 멈추었습니다.

재앙이 멎은 뒤, 아론은 만남의 천막 입구에 있는 모세에게 돌아왔습니다.민수기 17:15 · 두루새김

그는 만남의 천막에서 출발하여 모인 사람들 한가운데로 달려갔다가, 다시 만남의 천막 입구에 있는 모세에게 돌아옵니다. 그가 성막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향로와 제단의 불이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 속죄한 뒤 돌아왔을 때, 재앙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함부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금하셨지만, 동시에 백성을 위해 가까이 나아갈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그 사람이 정해진 일을 했을 때 재앙이 멈추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론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아론은 스스로 재앙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세우신 제사장으로서, 주어진 방식에 따라 속죄의 일을 합니다. 그 일이 백성을 살리는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그 길을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라는 제사장 직분이 자신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7장은 제사장 직분이 단지 남보다 특별한 지위를 갖는 일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 자리는 죽어 가는 백성을 위해 위험한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책임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재앙이 어떤 질병이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죽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특정한 전염병으로 확정하거나 아론이 질병의 전파를 물리적으로 차단했다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 주제는 계속 발전합니다. 히브리서 5:4는 아론처럼 하나님께 부름받는 제사장 직분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민수기 17장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사장 직분이 스스로 차지하는 영예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부르심이라는 주제를 이어받습니다.

또 하나의 시험 — 이번에는 향로가 아니라 지팡이다

민수기 17:16–22 본문 →

재앙이 멎은 뒤 여호와야훼께서는 새로운 명령을 주십니다.

이번에는 향로가 아니라 지팡이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조상에게서 이어진 지파마다 그 지파의 지도자에게 지팡이 하나씩, 모두 열두 개를 받아라. 각 사람의 이름을 그의 지팡이에 써라.」민수기 17:17 · 두루새김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들을 만남의 천막 안, 증언 앞에 놓아야 합니다.

이 명령에는 앞 장의 향로 시험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모세가 사람들의 주장에 직접 판결을 내리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의 물건을 여호와야훼 앞에 두고, 여호와야훼께서 누구를 선택하셨는지 드러내시도록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앞 장에서는 제사장 직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각자 향로를 들고 여호와야훼 앞에 섰습니다. 이번에는 지도자들의 지팡이를 모아 여호와야훼 앞에 놓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표하는 물건이 놓입니다.

각 지팡이에 지도자의 이름을 쓰게 한 것도 중요합니다. 지팡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선택이 모호한 소문이나 개인적인 주장으로 남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하는 사람의 지팡이에서 싹이 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하는 불평을 내가 그치게 하겠다. 그 불평은 나를 향한 것이다.」민수기 17:20 · 두루새김

반복되는 반발과 심판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향로를 든 사람들이 죽었고, 온 공동체의 불평 때문에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또다시 죽음을 통해서만 자신의 선택을 알리시려 하지 않으십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표징을 주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열두 개의 지팡이와 아론의 지팡이 사이의 관계에는 해석상 여지가 있습니다. 본문은 지팡이 열두 개를 받으라고 말하면서, 아론의 지팡이도 그들 가운데 있었다고 기록합니다(21절). 따라서 아론의 지팡이가 그 열두 개에 포함되었는지, 별도로 더해졌는지를 이 구절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지팡이

민수기 17:23–24 본문 →

다음 날 모세가 증언의 천막에 들어갑니다.

다음 날 모세가 증언의 천막에 들어가 보니, 레위 집안의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 있었습니다. 그 지팡이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으며, 아몬드 열매까지 맺어 익혔습니다.민수기 17:23 · 두루새김

보통 나무가 싹을 내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지팡이에는 그 과정이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더구나 지팡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이미 나무에서 잘려 나와 사람이 들고 다니는 물건입니다.

그런 지팡이에서 새 생명의 활동이 나타난 것입니다.

앞에서는 심판을 받은 물건이 남아 경고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생명이 나타난 물건이 선택의 표징이 됩니다.

지팡이들은 모두 여호와야훼 앞에 놓였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지팡이에서 싹이 날지는 사람들이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아론의 지팡이에 열매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가 자기 힘으로 제사장 직분을 확보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선택하셨다는 표징이 됩니다.

고라는 온 공동체가 거룩하다고 주장하며 아론의 특별한 직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론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능력이 있는지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지팡이를 통해 누가 자신의 선택을 받았는지 드러내셨습니다.

이 장면의 핵심은 아론의 뛰어남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표징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죽은 사람들을 삼킨 불만으로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생명 없는 지팡이에서 열매가 맺히게 하심으로써, 그분이 세우신 직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보여 주십니다.

모세는 이 표징을 혼자 간직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야훼 앞에 있던 지팡이들을 모두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가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지팡이들을 보고 각자 자기 지팡이를 가져갔습니다.민수기 17:24 · 두루새김

선택받지 못한 지팡이들도 숨기거나 없애지 않습니다. 각자가 자기 지팡이를 가져갑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아론에게만 주어진 비밀스러운 계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확인할 수 있는 표징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누구를 선택하셨는지에 대한 논쟁은 이제 단순히 모세의 주장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아몬드나무를 선택한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5:33–34에서는 성막의 등잔대 장식에도 아몬드꽃 모양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아몬드꽃은 성막의 다른 기구와도 연결되는 식물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17장이 그 장식을 직접 언급하거나 아몬드의 특별한 상징성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몬드 자체에 지나치게 복잡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지팡이를 다시 보관해야 하는가?

민수기 17:25–26 본문 →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을 사람들이 모두 확인한 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것을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를 증언 앞으로 다시 가져다 놓고 보관하여라.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표징이 되게 하여라. 그들이 내게 불평하는 것을 그치게 하여, 죽지 않게 하여라.」민수기 17:25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의 거룩함을 업신여기는 행동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심판을 반복해서 경험하지 않도록 백성에게 기억할 표징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날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증거로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앞으로도 살아가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불평과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누구를 선택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팡이는 과거의 기적을 기념하는 물건이면서, 앞으로 공동체가 어떤 질서 안에서 살아야 할지를 계속 알려 주는 표징이 됩니다.

처음의 향로는 제단을 덮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제사장 직분을 차지하려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게 했습니다. 반면 아론의 지팡이는 증언 앞에 보관되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누구를 선택하셨는지 기억하게 했습니다.

하나는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그 경계 안에서 누가 백성을 위해 일하도록 세워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점은 다음 장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책임에 관한 규정으로도 이어집니다. 민수기 18장은 누가 어떤 일을 맡아 성소를 섬겨야 하는지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17장은 아직 그 설명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뜻밖의 반응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끝내 모두 죽어야 합니까?」 — 기적을 보고도 두려워하는 백성

민수기 17:27–28 본문 →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아론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백성은 안심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 우리 모두 망했습니다!」민수기 17:27 · 두루새김

이 절은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말입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에 이어 「우리 모두 망했습니다!」라고 거듭 말하고, 마치 이미 죽음이 닥친 것처럼 말합니다.

「가까이 가는 사람, 여호와야훼의 성막에 가까이 가는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우리는 끝내 모두 죽어야 합니까?」민수기 17:28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는 아론의 지팡이를 표징으로 보관하도록 명령하시면서 「죽지 않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여호와야훼의 목적과 백성의 반응이 서로 어긋납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께 함부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성소에 가까이 오는 모든 사람이 무조건 죽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야훼께서는 백성이 죽지 않도록 제사장의 일을 맡을 사람을 구별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백성의 마지막 질문은 단순한 무지라기보다, 거룩함 앞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두려움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심판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 앞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는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 두려움을 억지로 해소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막으시는 여호와야훼, 생명을 드러내시는 여호와야훼

민수기 17:1–28 본문 →

여호와야훼의 거룩함은 함부로 침범할 수 없지만, 그분께서는 그 거룩함 앞에서 백성이 살아갈 길도 마련하십니다. 이 장에서 그분은 자신의 선택을 분명히 하시고, 제사장을 통해 재앙을 멈추게 하시며, 앞으로도 백성이 죽지 않도록 표징을 남기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백성에게 주시는 거룩한 질서의 목적은 죽음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이 죽지 않도록 표징을 주셨지만, 백성은 아직 죽음의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광야의 성막 안에는 한 지팡이가 남겨져 있습니다. 다른 지팡이들과 함께 놓였던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아몬드 열매가 익었습니다. 백성은 아직 그 표징의 의미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두려워하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그것을 치우지 않으십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백성이 계속해서 보아야 할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신 지팡이에 맺힌 생명의 열매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