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16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정탐과 광야 세월

누가 여호와야훼께 가까이 갈 수 있는가

민수기 16장의 반역은 얼핏 들으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시작됩니다.

고라와 그의 무리는 모세와 아론에게 권력을 독점한다고 항의합니다. 자신들만 거룩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라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모세와 아론이 특별한 직분을 맡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을까요? 아니면 모든 사람이 거룩하다는 사실로부터, 누구나 원하는 직분을 맡을 수 있다는 결론을 끌어낸 것이 문제였을까요?

고라는 제사장의 자리를 문제 삼지만, 다탄과 아비람은 모세의 지도력과 약속의 땅에 이르지 못한 현실을 공격합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모세와 아론에게 맞섭니다.

그러나 두 갈등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누가 여호와야훼 앞에 나아가며, 그 자격은 누가 결정합니까?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16장 본문 읽기 →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모두 거룩하고」 — 옳은 말에서 잘못된 결론으로

민수기 16:1–3 본문 →

고라는 레위 지파의 그핫 집안에 속합니다. 다탄과 아비람, 그리고 온은 르우벤 지파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에서 이름난 지도자 이백오십 명이 가담합니다.

2절은 그들을 「공동체의 지도자들로, 모임에 소집되는 이름난 사람들」이라고 소개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이미 인정받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기존 지도력에 도전한 것입니다.

레위 지파는 이미 다른 지파와 구별되어 성막을 섬기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민수기 3:5–9). 그 가운데 그핫 자손은 성소의 가장 거룩한 물건들을 운반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다만 제사장들이 먼저 거룩한 물건들을 덮어야 했고, 그핫 자손은 그 물건들을 직접 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4:4–15).

따라서 고라는 성막의 거룩함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여호와야훼께서 가까이 불러 특별한 봉사를 맡기신 집안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봉사하는 것과 제사장으로서 여호와야훼 앞에 나아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맞서 모여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너무 지나칩니다.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모두 거룩하고, 여호와야훼께서 그들 가운데 계십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스스로 여호와야훼의 공동체 위에 서 있습니까?」민수기 16:3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는 이미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19:5–6). 레위기 19:2에서도 온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주장 역시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인지를 보여 주는 말과 일치합니다(출애굽기 25:8).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 속한 거룩한 백성입니다. 동시에 그 백성 가운데는 제사장이 있고, 레위 자손이 있으며,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공동체가 모두 거룩하다는 사실과 각자가 서로 다른 임무를 맡는다는 사실은 원래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구별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입니다.

만일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 마음대로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면 고라의 항의는 정당한 문제 제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세우셨다면, 고라는 사람이 권력을 함부로 쓰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선택을 거부하는 셈이 됩니다.

한편 1절에 등장한 온은 이후 이야기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일어섰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고라와 다탄·아비람이라는 두 갈등의 중심이 뚜렷해집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시는 사람」 — 모세가 되돌려 준 질문

민수기 16:4–11 본문 →

고라의 말을 들은 모세는 즉시 반박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민수기 16:4 · 두루새김

고라는 모세와 아론이 스스로 공동체 위에 서 있다고 비난했지만, 모세의 첫 행동은 몸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결정권을 자기 손에 쥐지 않습니다.

모세가 고라와 그의 무리 모두에게 말했습니다. 「아침이 되면 여호와야훼께서 누가 자신에게 속한 사람인지, 누가 거룩한 사람인지 알려 주시고 그를 가까이 오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시는 사람을 자신에게 가까이 오게 하실 것이다.」민수기 16:5 · 두루새김

고라의 문제는 단순히 모세나 아론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과 그 경계를 누가 정하는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향로 시험입니다.

모세는 고라와 그의 무리에게 향로를 가져와 불과 향을 담아 여호와야훼 앞에 서라고 명령합니다. 향로는 단순한 물건이 아닙니다. 성소에서 향을 피워 바치는 제사 행위와 연결된 기구입니다. 출애굽기 30:7–9에서는 아론이 향을 피워 바치는 일을 맡고 있으며, 레위기 10:1–2에서는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허락되지 않은 불을 드렸다가 죽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향로를 통해 고라의 주장을 확인하게 합니다. 정말 그들에게도 같은 제사장의 자리가 허락되었는지, 여호와야훼 앞에서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라가 처음 사용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줍니다.

「내일 여호와야훼 앞에서 그 안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놓아라. 여호와야훼께서 선택하시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다. 레위 자손아, 너희가 너무 지나치다!」민수기 16:7 · 두루새김

3절에서 고라는 모세와 아론에게 「당신들은 너무 지나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7절에서 모세는 「너희가 너무 지나치다!」라고 말합니다. 양쪽 모두 상대가 자기 자리를 넘어섰다고 주장합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이 공동체 위에 스스로 섰다고 말하고, 모세는 고라의 무리가 여호와야훼께서 맡기신 직분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말합니다.

이제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는 여호와야훼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고라가 이미 받은 것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서 따로 구별하여 자신에게 가까이 오게 하셨다. 여호와야훼의 성막에서 일하고 공동체 앞에 서서 그들을 섬기게 하신 것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냐?」민수기 16:9 · 두루새김
「하나님께서 너와 네 형제들인 모든 레위 자손을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는데, 너희는 제사장의 자리까지 요구하느냐?」민수기 16:10 · 두루새김

레위 자손의 직분은 공동체 앞에서 자기 권위를 뽐내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의 성막에서 일하고 공동체를 섬기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고라의 항의는 직분을 섬김의 책임보다 높고 낮은 지위의 문제로 이해하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모세는 이 대목에서 논쟁의 최종 상대를 분명히 합니다.

「그러니 너와 네 무리 모두가 모여 맞서는 분은 여호와야훼시다. 아론이 대체 누구라고 너희가 그에게 불평하느냐?」민수기 16:11 · 두루새김

모세가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아론이 자기 힘으로 제사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아론 개인의 능력이나 명예가 아니라, 그를 세우신 여호와야훼의 선택입니다.

민수기 16장은 지도자가 자신의 권한을 주장하기만 하면 누구도 그에게 도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모세와 아론이라는 특정 인물들이 여호와야훼께 부름받았는지를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판단하시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오늘날의 종교 지도자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지도자를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규정하는 것은 본문의 논리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고라와 다른 종류의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옮겨 갑니다.

이집트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민수기 16:12–15 본문 →

모세는 엘리압의 아들들 다탄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민수기 16:12 · 두루새김

고라가 제사장의 자리를 문제 삼았다면, 다탄과 아비람은 모세가 자신들을 어디에서 데려왔으며 어디로 인도했는지를 문제 삼습니다.

「우리를 광야에서 죽이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데리고 나온 것으로는 부족합니까? 이제는 우리 위에 서서 마음대로 지배하기까지 하려 합니까?」민수기 16:13 · 두루새김

다탄과 아비람은 이집트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본래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3:8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고통에서 건져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4:8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다탄과 아비람은 그 표현을 거꾸로 뒤집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음식이 그립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던 역사와 그곳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내신 여호와야훼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뒤집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의 고통을 근거로 과거를 다시 해석합니다. 광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종살이하던 이집트를 좋은 땅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당신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오지도 않았고, 밭과 포도원을 우리 몫으로 물려주지도 않았습니다. 저 사람들의 눈을 뽑으려 합니까?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민수기 16:14 · 두루새김

이 불평에는 실제 현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밭과 포도원을 자기 몫으로 물려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탄과 아비람의 말은 중요한 사실을 빠뜨립니다.

바로 앞의 민수기 13–14장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땅보다 그 땅의 주민들을 두려워했고,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탄과 아비람은 땅에 들어가지 못한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립니다.

고라는 모세 앞에 나와 그의 권위에 도전하지만, 다탄과 아비람은 모세가 부르는데도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논쟁을 벌이는 것조차 거절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몹시 화가 나서 여호와야훼께 말했습니다. 「그들의 예물을 받아 주지 마십시오. 저는 그들에게서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않았고,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민수기 16:15 · 두루새김

다탄과 아비람은 모세가 권력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지배한다고 비난했지만, 모세는 자신이 그들에게서 가장 기본적인 재산조차 빼앗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가 자신의 지도력을 변호하기 위해 내세우는 것은 군사적 능력이나 개인적인 업적이 아닙니다. 자신이 사람들을 이용해 이익을 얻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눈을 뽑으려 합니까?」는 실제로 눈을 해치겠다는 행위를 가리킬 수도 있는 강한 표현이지만, 이 문맥에서는 사람들을 속이거나 눈을 가려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비유로 이해하는 길이 있습니다. 다만 「저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자신들을 가리키는지,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향로 이백오십 개 — 사람이 모은 공동체 앞에 여호와야훼께서 나타나시다

민수기 16:16–22 본문 →

모세는 고라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각자 향로를 가져오라고 다시 명령합니다.

이백오십 명이 각각 향로를 준비합니다. 고라와 아론도 각자 향로를 가져옵니다. 그들은 만남의 천막 입구에 섭니다.

고라는 온 공동체를 만남의 천막 입구에 모아 모세와 아론에게 맞서게 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온 공동체에게 나타났습니다.민수기 16:19 · 두루새김

거룩함을 주장하며 시작된 논쟁이 공동체 전체를 끌어들이는 대립으로 번진 것입니다.

「너희는 이 공동체 가운데서 떨어져 나와라. 내가 그들을 한순간에 없애 버리겠다.」민수기 16:21 · 두루새김

처음 모세가 엎드렸을 때는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들은 직후였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에게 맞섰던 공동체가 심판받을 위험에 처한 순간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했습니다. 「하나님, 모든 생명의 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온 공동체에게 화를 내시겠습니까?」민수기 16:22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는 모세와 아론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분의 권위를 근거로 온 공동체를 위한 자비를 간구합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이 백성 위에 자신들을 높였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모세와 아론은 백성에게서 떨어져 나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백성을 위해 엎드립니다.

그들의 지도력이 드러나는 순간은 자기 권한을 주장할 때가 아니라, 자기들에게 맞섰던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간구할 때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의 간구 뒤에 온 공동체를 즉시 없애시는 대신, 공동체에게 반역자들이 사는 곳에서 물러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심판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동체 전체가 구별 없이 함께 멸망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주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라는 말도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반역에 가담한 사람이 실제로 한 사람뿐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미 여러 지도자와 이백오십 명이 행동에 참여했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고라 한 사람만 유죄이고 나머지는 모두 무죄라는 사실 보고라기보다, 앞장선 사람의 죄로 온 공동체를 함께 심판하시는 것이 합당한지를 묻는 간구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천막 곁에서 물러나라」 — 공동체가 갈라지는 순간

민수기 16:23–27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는 공동체에게 명령하십니다.

「공동체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고라와 다탄과 아비람이 사는 곳 주변에서 물러나라.』」민수기 16:24 · 두루새김

이제 단순한 의견 대립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입장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장로들과 함께 다탄과 아비람에게 갑니다. 그리고 공동체에게 말합니다.

모세가 공동체에게 말했습니다. 「이 악한 사람들의 천막 곁에서 물러나라. 그들에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모든 죄 때문에 너희도 함께 쓸려 없어질 수 있다.」민수기 16:26 · 두루새김

반역을 앞장서 이끈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행위가 이제 공동체의 생존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불쾌한 사람과 관계를 끊으라는 일반적인 교훈이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 공동체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일에 함께 휘말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심판받을 대상과 공동체를 구별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사람들은 고라와 다탄과 아비람이 사는 곳 주변에서 물러났습니다. 다탄과 아비람은 밖으로 나와 자기 천막 입구에 섰습니다. 그들의 아내들과 아들들과 어린아이들도 함께 섰습니다.민수기 16:27 · 두루새김

모세가 부를 때에는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 자기 천막 입구에 서 있습니다. 본문은 이들이 어떤 표정으로 서 있었는지, 가족들이 반역에 동의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아내들과 아들들과 어린아이들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할 뿐입니다.

여기에는 쉽게 풀리지 않는 긴장이 있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한 사람의 죄로 멸망해서는 안 된다는 간구와, 한 가정에 속한 사람들이 가장의 반역으로 일어난 심판에 함께 휘말리는 현실이 나란히 놓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떤 개인적인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심판받았다고 덧붙이지도 않고, 가족들의 운명을 우리가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독자는 이 장면을 단순히 ‘악한 사람들은 마땅히 벌받는다’는 말로 정리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16장이 묘사하는 심판에는 한 사람이나 지도자의 행동이 자기 자신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비극적인 현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들이 서 있는 땅에서 사건이 일어나려 합니다.

「새로운 일을 일으키셔서」 — 땅이 입을 열다

민수기 16:28–34 본문 →

모세는 공동체 앞에서 자신이 왜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이제 일어날 일로 너희는 여호와야훼께서 나를 보내 이 모든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민수기 16:28 · 두루새김

고라는 모세와 아론이 스스로를 높였다고 비난했고, 다탄과 아비람은 모세가 자기 뜻대로 백성 위에 서서 지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신의 행동이 「내 마음대로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하나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죽는다면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면, 그들이 여호와야훼를 업신여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 새로운 일을 일으키셔서 땅이 입을 벌려 이들과 이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삼키고, 이들이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간다면, 너희는 이 사람들이 여호와야훼를 업신여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민수기 16:30 · 두루새김

그리고 모세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 일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이 말을 모두 마치자, 그 사람들 발밑의 땅이 갈라졌습니다.민수기 16:31 · 두루새김
땅이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안사람들,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모든 재산을 삼켰습니다.민수기 16:32 · 두루새김
그들은 자기들에게 속한 모든 것과 함께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갔습니다. 땅이 그들을 덮었고, 그들은 공동체 가운데서 멸망했습니다.민수기 16:33 · 두루새김

앞에서 다탄과 아비람은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끝에서 그들은 아래로 내려갑니다. 본문이 이 반복을 의도적으로 배치했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 읽는 독자에게는 분명한 역설을 남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려 했지만, 결국 발아래 땅조차 지탱할 수 없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주변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땅에 삼켜진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달아나며 말했습니다. 「땅이 우리도 삼킬지 몰라!」민수기 16:34 · 두루새김

고라는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모두 거룩하다고 주장하며 그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함께 서 있는 것이 두려워 달아납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하나의 거룩한 공동체라는 주장이, 실제로는 그 공동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행동과 결합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이 「새로운 일을 일으키셔서」로 옮긴 자리는 원문에서 히브리어 베리야 이브라로 되어 있습니다. ‘창조’라는 의미를 가진 명사와 동사가 함께 사용된 독특한 표현입니다. 창조의 능력이 생명을 세우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행하는 데에도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15:12에서는 이집트의 군대가 멸망한 일을 노래하면서 땅이 그들을 삼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민수기 16장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의 사람들이 땅에 삼켜집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 안에서 일어나는 반역을 무조건 눈감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스올은 히브리어 셰올(⁨שְׁאוֹל⁩)로, 구약에서 죽은 사람들이 속하는 영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그들이 평범한 죽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살아 있는 채로 아래로 삼켜진다는 보통과 다른 심판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 표현만으로 그들의 죽음 이후 상태나 영원한 운명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32절은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땅에 삼켜졌다고 말하지만, 고라 자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이 절의 문장만으로 분명하지 않습니다. 고라를 땅에 삼켜진 사람들에 포함시키는 해석이 있고, 향로를 들고 있던 무리에 포함시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후에 민수기 26:9–11에서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면서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고 밝히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으로 고라의 모든 후손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향을 바치던 사람들을 태워 죽인 불

민수기 16:35 본문 →

땅이 갈라지는 사건이 끝나자, 본문은 향로를 든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여호와야훼께로부터 불이 나와 향을 바치던 250명을 태워 죽였습니다.민수기 16:35 · 두루새김

이백오십 명은 모두 향로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향로를 들었다는 사실이 그들을 제사장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은, 가까이 나아가려는 사람의 주장이나 행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레위기 10:1–2를 강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불을 드렸을 때에도, 여호와야훼께로부터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켰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은 이미 제사장으로 세워진 사람들이 허락되지 않은 방식으로 향을 바친 사건이고, 민수기 16장은 제사장 자리의 자격 자체에 도전한 사람들이 향을 바치는 사건입니다. 향을 바치는 것은 거룩한 행위지만, 그 행위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바치는 사람이 여호와야훼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거룩하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민수기 16:1–35 본문 →

거룩함은 인간이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 내는 자격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와의 관계 안에서 주어집니다. 그렇기에 모든 이스라엘이 거룩하다는 사실과 특정한 사람들이 구별된 일을 맡는다는 사실은 함께 성립할 수 있습니다. 고라의 반역이 드러낸 문제는 단지 높은 자리를 탐냈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맡기신 봉사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거룩함을 자기 요구를 밀어붙이는 근거로 사용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지만 16장은 화해나 회복의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는 이백오십 개의 향로가 있습니다.

그 향로들은 모두 같은 목적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도 여호와야훼께 가까이 나아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들고 섰습니다.

그 아침이 지나고, 향을 바치던 이백오십 명은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호와야훼 앞에 서려고 했지만, 그분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자리를 스스로 차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