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정탐과 광야 세월

광야에서 아직 먹지 못한 빵을 말씀하시다

민수기 15장은 뜻밖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앞 장에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정탐꾼들의 두려운 보고를 믿었고, 여호와야훼가 자신들을 칼에 쓰러지게 하려고 그 땅으로 데려오셨다고 원망했습니다. 결국 그 세대는 광야에서 생을 마치고, 자녀들이 대신 땅에 들어가리라는 심판을 받았습니다(14:29–35).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여호와야훼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살도록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심판 직후에 들려온 말씀은 새로운 처벌이나 경고가 아니라, 그들이 아직 들어가지 못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이미 심판받은 세대가 다시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 장의 판결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세대가 약속을 거부했다고 해서, 여호와야훼께서 약속 자체를 거두신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땅과 풍요를 이야기하다가, 중간에는 죄와 죽음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마지막에는 옷에 달린 작은 실 한 가닥으로 끝납니다.

이 흐름을 따라가면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과, 그 땅에서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915장 본문 읽기 →

제물에 곁들일 곡식과 포도주 — 약속의 땅에서 드릴 예배

민수기 15:1–12 본문 →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이 번제나 다른 희생 제물을 드릴 때, 짐승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곡식 제물과 포도주도 함께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제물의 크기에 따라 곁들이는 양이 달라집니다. 어린 숫양 한 마리를 바칠 때에는 고운 가루 10분의 1에파에 기름 4분의 1힌을 섞고, 포도주 4분의 1힌을 준비합니다. 숫양을 바칠 때에는 고운 가루 10분의 2에파와 기름·포도주 각각 3분의 1힌을 드립니다. 어린 수소를 바칠 때에는 고운 가루 10분의 3에파에 기름과 포도주를 각각 반 힌씩 곁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분량을 기억하는 일보다, 제물의 종류에 따라 정해진 곡식과 기름과 포도주를 빠짐없이 준비한다는 점입니다. 11–12절은 짐승을 여러 마리 바칠 경우에도 한 마리마다 그에 맞는 예물을 마련하도록 분명히 합니다.

이스라엘이 머무는 곳은 광야입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에 의지해 살아갑니다. 반면 여호와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제물에는 농사를 지으며 얻는 곡식과 기름과 포도주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한곳에 자리 잡고 사는 삶을 바탕에 둡니다. 밭에서 곡식을 거두고, 올리브에서 기름을 얻고, 포도나무의 열매로 포도주를 만드는 삶입니다.

13장에서 정탐꾼들이 가나안에서 가져온 것은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였습니다(13:23). 그 땅의 열매가 풍성하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도 이스라엘은 두려움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와야훼께서는 바로 그 땅에서 얻을 곡식과 포도주를 제물로 드릴 날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가 살도록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민수기 15:2 · 두루새김

여기서 땅은 이스라엘이 자기 능력으로 얻었다고 주장할 소유물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땅에서 거둔 것들을 다시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행위는 자신들의 삶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인정하는 일이 됩니다.

「『서원을 지키려고, 또는 스스로 원해서, 또는 정해진 명절에 소나 양이나 염소를 번제나 희생 제물로 드릴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하여라. 이는 여호와야훼께서 기뻐하시는 향기가 되도록 불로 바치는 제물이다.』」민수기 15:3 · 두루새김

이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실제로 음식이나 향기를 필요로 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레위기 1:9 등에서도 사용되는 제사 표현으로, 바쳐진 제물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받아들여지는 예배임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이 땅에서 얻을 풍요는 자기들만을 위해 쓸 소유가 아닙니다. 그 풍요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감사와 헌신을 표현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는 너희나 외국인이나 같다

민수기 15:13–16 본문 →

제물의 종류와 분량을 설명하던 말씀이 갑자기 사람들의 신분 문제로 옮겨갑니다.

「『공동체에 속한 너희에게나 너희와 함께 사는 외국인에게나 같은 규정이 적용된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정이다. 여호와야훼 앞에서는 너희와 외국인이 같아야 한다.』」민수기 15:15 · 두루새김

여기서 외국인은 단순히 이스라엘 땅을 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 규정 하나만으로 당시 사회의 모든 신분상 차이가 사라진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출신을 구별하지만, 여호와야훼 앞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하나의 규정이 적용됩니다. 그분이 받으시는 예배의 기준을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출생의 특권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명령은 잠시 뒤 죄와 용서에 관한 규정에서도 다시 등장합니다. 예배에서 하나의 규정이 적용되는 것처럼, 죄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고, 용서의 길 역시 똑같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땅의 빵을 먹을 때 — 선물의 첫 몫을 돌려드리다

민수기 15:17–21 본문 →

17절에서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다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너희를 데려가는 땅에 들어가서,』」민수기 15:18 · 두루새김

2절에서 들었던 약속이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물로 바칠 짐승이나 포도주가 아니라 빵을 말씀하십니다.

「『그 땅의 빵을 먹을 때에는 여호와야훼께 예물을 따로 떼어 바쳐라.』」민수기 15:19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먹을 것을 두고 여러 차례 불평했습니다. 민수기 11장에서는 만나에 싫증을 내고 이집트에서 먹던 음식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에게 먹는 문제는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자신들을 제대로 돌보고 계시는지를 의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백성에게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제 「그 땅의 빵」을 말씀하십니다.

광야에서는 그날 필요한 양식을 하늘에서 받았다면, 약속의 땅에서는 곡식을 거두고 가루를 만들고 빵을 굽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때에도 첫 몫을 따로 떼어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20절에서는 「너희 반죽의 첫 몫」으로 둥근 빵을 만들어 바치라고 합니다. 본문은 이것을 타작마당에서 예물을 떼어 바치는 일과 비교합니다. 타작마당에서 거둔 곡식의 일부를 따로 드리는 것처럼, 가정에서 빵을 준비할 때에도 그 첫 몫을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배는 성막의 제단에서 가정의 일상으로 옮겨 옵니다.

땅에서 난 것을 처음 거두는 순간뿐 아니라, 그것을 일상의 음식으로 바꾸는 자리에서도 여호와야훼를 기억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는 동안에도, 약속의 땅에서 자기 손으로 만든 빵을 먹는 동안에도 양식의 근원이 여호와야훼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명령은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 주어집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풍요를 누린 뒤에야 감사하는 법을 가르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풍요를 얻기 전에 이미 그 풍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르치십니다.

신명기 8:10–18에서도 같은 문제가 등장합니다. 배불리 먹고 좋은 집에 살게 되었을 때, 자신의 능력으로 재물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아리사(⁨עֲרִיסָה⁩)가 정확히 반죽을 가리키는지, 거칠게 간 곡물 가루를 가리키는지는 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핵심 행위는 분명합니다. 먹을 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첫 몫을 구별해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것입니다.

실수한 사람을 위한 길 — 용서가 공동체 안에 마련되다

민수기 15:22–29 본문 →

지금까지 말씀은 약속의 땅에서 누릴 풍요와 그것을 바치는 방법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22절부터 갑자기 죄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하신 이 모든 명령을 너희가 실수로 지키지 못했을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하여라.』」민수기 15:22 · 두루새김

여기서 「이 모든 명령」이 바로 앞의 제사와 첫 빵에 관한 규정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23절이 모세를 통해 주어진 명령과 앞으로 이어질 세대의 책임을 함께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경우를 넓게 다루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땅에 들어간 뒤에도 완전한 공동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도 잘못할 것이고, 명령을 놓칠 것이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먼저 온 공동체가 잘못한 경우를 다룹니다. 24절은 그 일이 「공동체가 미처 알지 못한 채 실수로」 일어났다고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한 잘못이라도 여전히 잘못입니다. 다만 일부러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거부한 행위와는 구별됩니다.

이런 경우 온 공동체는 어린 수소 한 마리를 번제로 드리고, 그에 곁들일 곡식 제물과 술 제물을 함께 드려야 합니다. 또한 숫염소 한 마리를 정화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여기서 앞부분의 제사 규정이 다시 연결됩니다. 24절은 곡식 제물과 술 제물을 「규정에 따라」 드리라고 합니다. 처음에 설명했던 예배의 질서가 이제 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사용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공동체를 위해 속죄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용서받을 것이다. 그 일이 실수였고, 그 실수 때문에 여호와야훼께 불로 바치는 예물과 정화 제물을 여호와야훼 앞에 가져왔기 때문이다.』」민수기 15:25 · 두루새김
「『이스라엘 자손의 온 공동체와 그들 가운데 함께 사는 외국인은 용서받을 것이다. 온 백성이 실수로 저지른 일이기 때문이다.』」민수기 15:26 · 두루새김

27–28절에서는 개인의 죄를 다룹니다. 한 사람이 실수로 죄를 지으면 한 살 된 암염소를 정화 제물로 바쳐야 하며, 제사장이 그를 위해 속죄하면 그 역시 용서받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죄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죄를 다루기 위한 제물과 제사장의 속죄 행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잘못한 사람이 다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길을 마련하십니다.

레위기 4장에서도 실수로 지은 죄를 위한 정화 제물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15장은 이 원칙을 광야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공동체에 다시 적용하며, 함께 사는 외국인에게도 같은 용서의 규정이 적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종류의 불순종을 똑같이 취급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높이 든 손 — 실수와 반역의 경계

민수기 15:30–31 본문 →

30절에서 본문의 분위기가 날카롭게 바뀝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난 사람이든 함께 사는 외국인이든, 거리낌 없이 거역하는 사람은 여호와야훼를 모독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민수기 15:30 · 두루새김

「거리낌 없이 거역하는」이라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베야드 라마로, 곧이곧대로 옮기면 ‘높이 든 손으로’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자신이 하는 행동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여호와야훼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일부러 맞서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그분의 명령을 어겼으므로 반드시 끊어질 것이다. 그에게는 자기 죄의 책임이 남아 있다.』」민수기 15:31 · 두루새김

중심은 단순히 행위를 일부러 했는지가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고의로 지은 죄는 모두 용서받을 수 없다’는 일반적인 말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레위기 5:20–26(일부 성경의 절 구분으로는 6:1–7)은 남의 물건을 속이거나 빼앗는 등의 잘못을 범한 사람이 배상하고 속건 제물을 드리는 길도 제시합니다. 그 잘못들이 모두 단순한 부주의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민수기 15장의 대조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권위 아래에서 자신의 죄를 다루는 경우와, 여호와야훼의 말씀 자체를 업신여기고 거부하는 경우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앞의 경우에는 속죄와 용서의 질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뒤의 경우에는 그 질서의 근거 자체를 부정합니다. 31절 마지막의 「그에게는 자기 죄의 책임이 남아 있다」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단절을 보여 줍니다.

30절의 「끊어질 것이다」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관해서는 구절 자체가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다른 문맥에서 이 표현은 공동체에서의 배제나 죽음과 연결되지만, 이 구절만으로 그 집행 방식 하나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본문은 이 규정을 설명하는 대신, 광야에서 실제로 일어난 한 사건을 들려줍니다.

안식일에 나무를 줍던 남자 — 명령의 무게가 드러나다

민수기 15:32–36 본문 →

32절은 매우 짧고 일상적인 행동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있을 때, 사람들이 안식일에 나무를 줍는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민수기 15:32 · 두루새김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데려옵니다. 그리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가두어 둡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남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온 공동체가 진영 밖에서 그를 돌로 쳐야 한다.」민수기 15:35 · 두루새김

36절은 공동체가 그대로 실행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장면은 현대 독자에게 매우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심각성을 줄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가벼운 교훈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남자가 왜 나무를 주웠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배고픔이나 가족을 위한 필요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명령을 일부러 무시한 것이었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속마음을 상상하여 죄를 더 무겁거나 가볍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이 30–31절 바로 뒤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앞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행위를 경고했고, 뒤에서는 그 말씀을 어기는 행동이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중대한 문제로 다루어지는지 보여 줍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나무라는 물건의 가치에 있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자기 삶의 시간을 여호와야훼의 명령 아래 두도록 하는 언약의 표지입니다. 출애굽기 31:13–17에서 안식일은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표지로 설명됩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엄중한 형벌은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 공동체와 그 법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오늘날 개인이나 종교 공동체가 안식일 위반자를 폭력으로 처벌할 근거로 옮겨 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번에는 사람의 몸에 걸치는 옷에 관한 말씀입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20:8–11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명령합니다. 출애굽기 31:14–15와 35:2에서는 안식일을 더럽히고 그날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사형 규정까지 분명히 밝힙니다. 그렇다면 34절에서 왜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았다고 말합니까? 한 가지 해석은 안식일 위반에 대한 사형 규정은 이미 있었지만, 이 구체적인 행위에 그 규정을 어떻게 적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집행해야 할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해석은 나무를 줍는 행위가 사형에 해당하는 위반인지부터 판단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본문은 이 의문을 직접 풀어 주지 않으므로 어느 하나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옷자락의 파란색 끈 — 눈이 보아야 할 것을 바꾸다

민수기 15:37–40 본문 →

37–38절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옷자락 귀퉁이에 술을 달고, 그 술에 파란색 끈을 달라고 명령하십니다.

옷은 사람이 늘 몸에 지니는 물건입니다. 성막에서 제물을 바치는 순간이나 명절을 지키는 날뿐 아니라, 길을 걷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동안에도 함께합니다.

「『너희는 그 술을 보고 여호와야훼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여 지켜라. 너희 마음과 눈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지 마라. 너희는 그것들을 따라가며 나를 저버리고 있다.』」민수기 15:39 · 두루새김

13:2에서 여호와야훼는 사람들을 보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십니다. 원문에서는 그때의 ‘정탐하다’와 15:39의 「따라가지 마라」(⁨תּוּר⁩)가 같은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13장에서는 실제로 땅을 살피는 일을 가리키고, 15장에서는 자기 마음과 눈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가는 일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13장의 정탐꾼들은 눈으로 땅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높은 성벽과 강한 주민들을 보았고, 결국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작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13:28, 33). 그들이 본 것이 모두 거짓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나안에는 실제로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눈으로 확인한 현실을 여호와야훼의 약속보다 더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었습니다.

같은 땅을 살펴본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14:6–9). 따라서 본문은 눈으로 현실을 살피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았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본 것을 어떤 말씀 아래에서 이해하느냐입니다.

이제 15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그 백성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표지를 주십니다.

앞에서는 눈으로 본 거인들의 크기가 그들의 행동을 지배했습니다. 이제는 옷자락의 작은 술이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기억하게 해야 합니다.

39절의 「나를 저버리고 있다」(⁨זָנָה⁩)를 원문에서는 이를 음행의 말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음행은 특정한 성적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이 그분을 떠나 다른 것을 좇는 불충실함을 표현하는 언약의 비유입니다. 구약의 여러 예언서에서도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 이러한 언어로 묘사됩니다(호세아 2장; 예레미야 3장).

민수기 15장은 그 비유를 특정한 우상 숭배 행위 하나로 좁히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과 눈을 따라가는 태도 전체를 경계합니다.

「『이것은 너희가 나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지키며, 너희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람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민수기 15:40 · 두루새김

기억은 머릿속에 정보를 보관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고, 그 말씀에 따라 실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옷자락의 술 자체에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기억하고 지키도록 주어진 표지입니다.

이렇게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로부터 식탁의 빵을 지나, 사람의 눈과 마음을 이끄는 일상의 자리까지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그렇다면 파란색 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고대의 정확한 색과 염료에 관해서는 논의가 있지만, 성막과 제사장 옷의 색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복에서도 만나게 된다는 연결은 분명합니다. 이것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제사장과 같은 지위에 놓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룩함이 성막 안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도 관계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 — 모든 명령의 마지막 근거

민수기 15:41 본문 →

민수기 15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지키라는 권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민수기 15:41 · 두루새김

출애굽은 율법에 순종한 대가로 주어진 보상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구원받은 뒤에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출애굽기 20:2에서도 십계명이 주어지기 전에 여호와야훼께서 먼저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신 분임을 선언하십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라는 표현은 이 모든 명령이 어떤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바라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규정을 정확히 지키는 집단으로만 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구원하신 분을 하나님으로 알고, 그분의 말씀을 믿으며 살아가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삶은 여호와야훼의 구원에서 시작하여,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아직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미 준비해야 할 삶

민수기 15:1–41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살아갈 미래를 열어 주시면서, 그 미래가 그분의 말씀을 떠난 삶이 되지 않도록 가르치십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했기 때문에 땅이 약속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땅을 선물로 받는다는 사실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선물로 주어진 삶에는, 그 선물을 주신 분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책임이 따릅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광야에 있습니다. 아직 자기 밭에서 거둔 곡식으로 빵을 만들지도 못했고, 약속의 땅에서 포도주를 드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이 언젠가 먹게 될 빵을 말씀하시고, 그들이 매일 입는 옷에는 파란색 끈을 달게 하십니다.

먼 훗날 먹을 빵은 아직 손에 없지만, 오늘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지는 옷자락에 달 수 있습니다.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아직 보지 못하는 광야에서도, 그 약속을 주신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민수기 15장은 광야에 머무는 백성의 옷자락에서 끝납니다. 그들은 앞으로 무엇을 보게 될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기 눈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작은 파란색 끈을 지니게 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