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정탐과 광야 세월

올라가지 않던 사람들이 올라갔을 때

민수기 14장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앞에서 올라가기를 거부합니다. 그곳의 주민들이 강하고 성읍들이 튼튼하다는 말을 듣고,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 그 땅으로 올라가지 말고 광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시자, 이번에는 기어코 산으로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올라가라는 명령을 거부했고, 나중에는 올라가지 말라는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두 행동은 겉으로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두려움 때문에 멈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행동을 모두 반역으로 판단하십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까?

모세가 백성을 위해 간청하자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 말대로 내가 용서했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그 세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용서하셨는데 왜 심판하십니까?

읽는 시간 28분소단락 814장 본문 읽기 →

죽기를 바라는 백성, 이집트로 돌아가려는 백성

민수기 14:1–5 본문 →

앞 장은 정탐꾼들이 자신들을 메뚜기 같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제 그 말이 이스라엘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타납니다.

온 공동체가 그날 밤 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백성이 아직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성읍을 공격하다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었을 뿐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패배를 그들은 이미 정해진 미래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백성의 울음은 단순한 두려움의 표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모두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온 공동체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민수기 14: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살아남아 나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억압에서 구원하시고 광야를 지나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살아남은 것을 후회합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시기 전의 장소와, 하나님이 자신들을 이끌어 오신 길에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지 새로운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정도를 넘어섭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를 나쁜 일로 다시 평가하는 말입니다.

자신들의 자녀를 지키려는 두려움

「여호와야훼께서는 왜 우리를 칼에 맞아 죽게 하려고 이 땅으로 데려가십니까? 적들이 우리 아내들과 어린아이들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이집트로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민수기 14:3 · 두루새김

고대의 전쟁에서 패배한 공동체의 가족들이 죽임당하거나 포로가 될 위험은 실제로 닥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강한 주민들과 튼튼한 성읍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정해진 결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염려를 넘어, 하나님이 자신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판단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주민들이 강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여호와야훼가 자신들을 죽게 하려 하신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바뀝니다.

「우두머리를 세워서 이집트로 돌아가자」

그들은 서로 말했습니다. 「우두머리를 세워서 이집트로 돌아가자.」민수기 14:4 · 두루새김

모세와 아론이 이끄는 여정을 그만두고, 다른 지도자를 따라 이집트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런데 백성은 그 여정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려 합니다.

다른 지도자를 세우겠다는 말은 단순히 지도자를 바꾸겠다는 뜻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출애굽의 여정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모여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공동체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민수기 14:5 · 두루새김

본문은 두 사람이 왜 엎드렸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슬픔과 간청,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서서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입니다」 — 두려움을 뒤집는 말

민수기 14:6–10 본문 →

그 땅을 살펴보러 갔던 사람들 가운데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푼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민수기 14:6 · 두루새김

옷을 찢는 행동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극심한 슬픔과 충격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 37:29, 34에서도 르우벤과 야곱이 옷을 찢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앞 장의 정탐 보고를 바로잡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공동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살펴본 땅은 정말로 아주 좋은 땅입니다.」민수기 14:7 · 두루새김

그러나 두 사람의 말은 땅의 풍요로움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데려가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민수기 14:8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아닙니다. 그 근거는 여호와야훼가 그 땅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과 그분이 백성을 기뻐하시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을 어떤 집단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과 출애굽의 역사 안에서 여호와야훼가 이끄시는 길을 신뢰하라고 호소합니다.

또한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이라는 조건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지위를 근거로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셔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확신은 자신을 향한 확신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 대한 신뢰에 놓여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먹는가?

「다만 여호와야훼께 거역하지 마십시오.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먹이입니다. 그들을 지켜 주던 그늘은 사라졌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민수기 14:9 · 두루새김

민수기 13:32에서 다른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그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주민들이 「우리의 먹이」라고 말합니다. 양쪽 모두 먹는다는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다른 정탐꾼들에게 가나안은 사람을 삼키는 땅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가나안 주민들은 이스라엘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분명히 말하는 것은 가나안 주민들이 의지하던 보호가 사라졌으며,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상대방이 약하다고 말하는 데서 확신을 찾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가 함께하신다는 사실에서 확신을 찾습니다.

돌을 들려는 백성 앞에 나타난 여호와야훼의 영광

그러나 공동체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온 공동체가 그들을 돌로 쳐 죽이자고 말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만남의 천막에서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 나타났습니다.민수기 14:10 · 두루새김

백성은 가나안 주민들이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자기 공동체 안의 사람들을 죽이려 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던 폭력이 자기들 가운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본문은 그 영광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제 판단을 내릴 분은 공동체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우리의 먹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흐메누(⁨לֶחֶם⁩)로, 글자 그대로는 「우리의 빵」이라는 뜻입니다. 그늘은 뜨거운 햇볕에서 사람을 보호하는 장소이므로, 보호나 지켜 주는 힘을 나타내는 비유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가나안 주민들의 신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읽을 수도 있고, 그들을 지켜 주던 힘이나 방어 수단을 폭넓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백성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하나님 앞에서 모세가 구한 것

민수기 14:11–19 본문 →

여호와야훼의 첫 말씀은 질문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언제까지 나를 업신여기겠느냐? 내가 그들 가운데서 그 많은 표징을 행했는데도, 언제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민수기 14:11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가 어떤 분이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행하신 표징을 보았고, 바다가 갈라지는 사건을 경험했으며,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제 그들은 가나안 주민들을 보며 하나님이 자신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계신다고 판단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을 단순히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분을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로운 민족의 시작을 제안하십니다

「내가 전염병으로 이 백성을 쳐서 없애 버리겠다. 그리고 너에게서 이들보다 크고 강한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민수기 14:12 · 두루새김

백성은 모세 없이 새로운 출발을 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백성 없이 새로운 시작을 할 가능성을 제시하십니다.

여기서 모세는 중요한 선택 앞에 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원망했고, 자신이 이끄는 여정을 거부했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권위와 미래만을 생각한다면 이 제안은 유리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기회를 자신의 미래를 위해 붙들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거부한 백성을 위해 다시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모세는 백성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13–16절에서 모세는 이집트 사람들과 주변 민족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백성을 한꺼번에 죽이시면, 주님에 관한 소문을 들은 민족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민수기 14:15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 그 백성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그들을 데려갈 수 없으셔서, 광야에서 그들을 도살하셨다.』」민수기 14:16 · 두루새김

그는 백성의 공로를 근거로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행하신 일과 앞으로 이루실 약속을 근거로 간청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분이 백성 가운데 계시며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끄신다는 사실은 주변 민족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한다면, 민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백성을 데려가실 능력이 없으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염려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평판이 나빠진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하신 구원과 약속이 어떻게 이해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그의 기도는 출애굽기 32:11–14의 금송아지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없애 버리시고 모세에게서 새로운 민족이 나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32:10). 모세는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근거로 간청했습니다.

모세가 지키려는 것은 자신의 지도자 자리보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입니다.

「주님의 힘을 크게 드러내 주십시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힘을 크게 드러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민수기 14:17 · 두루새김

지금 하나님은 자신의 힘으로 백성을 없애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이 더 큰 능력으로 심판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여호와야훼께서는 쉽게 화내지 않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이 풍성하시다. 죄와 반역을 용서하시지만, 죄를 벌하지 않은 채 그냥 넘기지는 않으신다. 아버지들의 죄를 자손들에게, 삼 대와 사 대의 자손들에게까지 물으신다.』」민수기 14:18 · 두루새김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이 용서와 인내를 통해 나타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인용하는 말씀에는 죄와 반역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죄를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을 다시 붙듭니다

18절은 출애굽기 34:6–7에서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직접 밝히신 자신의 성품을 다시 불러옵니다. 그때는 금송아지 사건 이후 언약이 위기에 놓였을 때였습니다. 이제 또다시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공동체 전체가 심판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용서를 자신의 소망이나 기대에만 의지하여 요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스스로 밝히셨는지를 근거로 구합니다.

따라서 모세의 기도는 죄에 대한 모든 판단을 없애 달라는 요청으로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죄의 심각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가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 전체를 끝내는 결말이 되지 않기를 구합니다.

「주님의 크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집트에서부터 여기까지 이 백성을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 주십시오.」민수기 14:19 · 두루새김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완전한 믿음으로 살아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집트에서부터 여기까지 하나님의 용서가 계속 필요했던 백성이었음을 인정합니다.

이 장에서 모세가 백성을 위해 간청한 일은 인간의 신실함이 하나님의 용서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용서가 그분 자신의 한결같은 사랑과 약속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내가 용서했다」 — 그런데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민수기 14:20–25 본문 →

20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놀라울 만큼 짧게 응답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말대로 내가 용서했다.」민수기 14:20 · 두루새김

그렇다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야 하지 않을까요? 백성이 용서받았으니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다음 말씀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다는 것과 나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리라는 것을 두고 맹세한다.」민수기 14:21 · 두루새김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표징을 보고도 거듭 시험하고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용서와 심판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전염병으로 쳐서 없애 버리시고, 모세에게서 새로운 민족이 나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십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그 자리에서 멸망하여 공동체 자체가 끝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반역한 세대에게 아무런 결과도 남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없애 버려 끝내지 않으시지만, 그들이 저지른 반역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세가 인용했던 하나님의 성품과도 연결됩니다. 여호와야훼는 죄와 반역을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죄를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34:6–7의 두 선언이 민수기 14장에서 함께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만 이 본문만으로 용서받은 사람 한 명 한 명이 죽은 뒤 어떤 상태에 있는지나 영원한 구원을 받았는지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직접 다루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계속 이어지는지와 이집트에서 나온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지입니다.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22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백성이 자신을 「이렇게 열 번이나」 시험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어 「열 번」은 실제 횟수를 가리킬 수도 있고, 거듭 반복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31:7이나 욥기 19:3에도 열 번이라는 수가 반복되는 행동을 강조하는 문맥에 등장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반역이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이집트와 광야에서 자신의 영광과 표징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할 만한 이유만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의 표징을 반복해서 경험했는데도 여전히 그분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갈렙의 「다른 마음」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들과 다른 마음을 지니고 나를 온전히 따랐다. 그러므로 그가 다녀온 땅으로 내가 그를 데려가겠다. 그의 후손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민수기 14:24 · 두루새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갈렙이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신뢰했는지가 아닙니다.

그가 누구를 따랐는가입니다.

다른 정탐꾼들은 가나안의 강한 주민들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미래를 판단했습니다. 갈렙은 여호와야훼께서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태도를 자신을 온전히 따른 것으로 평가하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24절은 갈렙뿐 아니라 그의 후손도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역한 세대의 자녀들은 광야에서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 생긴 결과를 겪게 되지만, 갈렙의 후손에게는 그가 하나님을 한결같이 따른 것과 연결된 땅을 물려받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약속의 땅 앞에서 방향을 돌리라는 명령

「아말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은 골짜기에 살고 있다. 내일 너희는 방향을 돌려 갈대 바다로 가는 길을 따라 광야로 떠나라.」민수기 14:25 · 두루새김

이는 이스라엘 전체에 주신 약속을 완전히 취소하신다는 말과 다릅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갈렙이 그 땅에 들어갈 것이며 그의 후손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반역한 세대는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데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주어진 순종은 가나안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로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어지는 광야의 경고

시편 95:7–11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반역한 세대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은 그 세대가 자신의 길을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자신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구절은 광야 세대의 실패를 후대의 예배 공동체가 기억해야 할 경고로 제시합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3:7–4:11은 시편 95편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믿지 않는 태도를 경고합니다. 이는 민수기 14장의 광야 사건을 후대의 공동체에 적용하여 성경 전체의 흐름 안에서 읽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사건과 신약이 말하는 하나님의 안식을 아무 구별 없이 같은 것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죽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말이 그들의 운명이 되다

민수기 14:26–35 본문 →

26절부터 여호와야훼는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십니다.

앞에서는 모세에게 백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응답하시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세대에 관해 선언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심판의 대상과 기간, 다음 세대의 운명을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여호와야훼가 말한다.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가 내 귀에 대고 말한 그대로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하겠다.』」민수기 14:28 · 두루새김

그들은 광야에서 죽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말 그대로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백성이 스스로 선택하려 했던 방향이 그들의 운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일반적인 원칙이 아닙니다. 본문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의 거듭된 반역에 대해 특별히 내리신 판결을 기록합니다.

스무 살 이상으로 계수된 세대

「『너희는 이 광야에서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너희 가운데 인원 조사에 등록된 스무 살 이상으로서 나를 원망한 사람 모두가 그렇게 될 것이다.』」민수기 14:29 · 두루새김

「인원 조사에 등록된 스무 살 이상」이라는 표현은 민수기 1장의 인구 조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는 스무 살 이상으로 군대에 나갈 수 있는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인원을 조사했습니다(민수기 1:3).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인원 조사에 등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세대가 됩니다.

여기서 본문이 분명히 밝히는 기준은 인원 조사에 등록된 스무 살 이상인 이들 가운데 여호와야훼를 원망한 사람들입니다. 이 구절을 모든 연령과 모든 구성원에게 예외 없이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는 뜻으로 넓혀 읽어서는 안 됩니다.

30절에서는 갈렙과 여호수아가 예외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 땅을 살펴보러 갔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약속을 믿고 백성에게 올라가자고 권했습니다.

부모들이 약탈물이 되리라고 했던 아이들

「『그러나 너희가 적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말했던 너희 어린아이들은 내가 그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들은 너희가 거부한 그 땅을 알게 될 것이다.』」민수기 14:31 · 두루새김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그 부모들의 판단과 다르게 자녀들의 미래를 열어 가십니다. 반면 자녀들을 보호하겠다며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한 부모들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부모들은 이미 그 땅에 관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풍성한 열매도 보았고, 강한 주민들에 관한 보고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거부했습니다.

반면 자녀들은 부모가 거부한 바로 그 땅을 실제로 알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알게 될 것이다」는 단순히 그 땅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얻는다는 뜻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내가 그 땅으로 데려가겠다」는 선언과 연결되어, 그 땅에 들어가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 반역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백성을 위해 간청한 모세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신 일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하고 새로운 민족을 시작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지금의 공동체 안에 있는 다음 세대를 통해 약속을 이어 가십니다.

사십 일의 정탐이 사십 년의 광야 생활로

「『너희 자녀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가축 떼를 돌보며 지낼 것이다. 너희 모두가 이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그들은 너희가 나를 저버린 죄의 결과를 짊어질 것이다.』」민수기 14:33 · 두루새김
「『너희는 그 땅을 40일 동안 살펴보았다. 그 날수에 따라 하루에 일 년씩, 하루에 일 년씩, 40년 동안 너희 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맞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민수기 14:34 · 두루새김

땅을 살펴보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잘못은 그 일을 마친 뒤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한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을 살펴본 기간을 그들의 심판을 설명하는 기준으로 사용하십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음행을 짊어진다는 뜻

원문에서 33절에 쓰인 「음행」(⁨זְנוּת⁩)에 해당하는 말은 이 문맥에서 실제 성적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근거가 없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너희가 나를 저버린 죄의 결과」로 옮겼습니다. 여기서는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의 인도를 거부한 백성의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왜 자녀들이 부모가 하나님을 저버린 죄의 결과를 짊어져야 합니까?

자녀들은 땅을 살펴보러 갔던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세대와 구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의 행동 때문에 오랜 광야 생활을 함께 겪어야 합니다.

본문은 부모 세대가 광야에서 죽는 것과 자녀 세대가 그 기간에 광야에서 지내야 하는 것을 구별합니다. 부모들의 죄가 자녀들의 삶에 실제적인 결과를 남긴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자녀들이 부모와 같은 죄의 책임 때문에 약속의 땅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명기 24:16은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죄 때문에 처형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에스겔 18:20도 각자가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진다는 원칙을 밝힙니다. 민수기 14장의 이야기와 함께 읽을 때, 죄의 결과가 다음 세대의 삶에 미치는 것과 그 세대가 같은 죄의 책임을 갖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부모 세대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일은 다음 세대의 길을 어렵게 만들지만, 그 다음 세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까지 없애지는 못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사십 년이 이미 지나온 광야 생활을 포함하는 전체 기간인지, 판결 이후부터 새롭게 계산되는 기간인지는 34절만으로 자세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민수기 전체는 이집트에서 나온 세대가 광야에서 사라지고 다음 세대가 등장하는 긴 시간을 이 사십 년의 틀 안에서 서술합니다.

나쁜 보고를 가져온 사람들과 살아남은 두 사람

민수기 14:36–38 본문 →

36절에서 본문은 다시 그 땅을 살펴보러 갔던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모세가 그 땅을 살펴보도록 보낸 사람들 가운데는 돌아와서 그 땅에 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온 공동체가 모세를 원망하게 했습니다.민수기 14:36 · 두루새김

하나님은 그들에게 실제로 땅을 살펴보는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자신들이 본 것을 공동체에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강한 주민들과 튼튼한 성읍에 관한 정보를 전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 땅에 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습니다.민수기 14:37 · 두루새김

38절은 곧이어 여호수아와 갈렙이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이 두 구절은 땅을 살펴보는 일을 맡았던 사람들을 구별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강한 주민들과 튼튼하게 방비된 성읍을 보았습니다. 그들 역시 가나안이 차지하기 쉬운 땅이라고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차이는 자신들이 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공동체에 전달했는가에 있었습니다.

지도자는 자신이 아는 사실을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두려워하는 결론을 확정된 사실처럼 전달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공동체 전체가 그 말을 근거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사실과 해석을 구별하는 책임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그렇다고 이 장을 모든 나쁜 소식이나 위험에 관한 보고를 믿음 없는 행동으로 규정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은 위험을 발견한 데 있지 않았습니다. 위험을 근거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결론짓고, 그 판단을 공동체에 퍼뜨린 데 있었습니다.

이제 백성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판결을 듣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다시 한번 뜻밖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저희가 죄를 지었으니 올라가겠습니다」

민수기 14:39–45 본문 →

모세가 이 모든 말을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 전하자 백성은 몹시 슬퍼했습니다.민수기 14:39 · 두루새김

처음에는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울었습니다. 이제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씀을 듣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의 슬픔이 곧바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이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날 아침에 벌어진 일을 기록합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말했습니다. 「저희는 준비되었습니다. 저희가 죄를 지었으니,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올라가겠습니다.」민수기 14:40 · 두루새김

이 말은 언뜻 회개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앞에서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제 올라가는 것이 바른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왜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어기느냐? 이 일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민수기 14:41 · 두루새김

앞에서는 올라가지 않는 것이 불순종이었습니다.

이제는 올라가는 것이 불순종입니다.

어제의 명령과 오늘의 명령은 다르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들은 두려워하며 올라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25절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명령을 주셨습니다. 「내일 너희는 방향을 돌려 갈대 바다로 가는 길을 따라 광야로 떠나라.」

그러므로 40절의 행동은 앞서 거부했던 명령을 뒤늦게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주어진 명령을 다시 거부하는 행동입니다.

백성은 자신들이 죄를 지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고백과 함께 자신들이 원하는 행동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새 명령에 순종하기보다, 이전에 놓쳤던 기회를 자기 힘으로 되찾으려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말과 하나님이 지금 명령하시는 것을 따르는 행동은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제의 불순종을 만회하려다 오늘의 불순종을 저지릅니다.

모세는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하는가?

「적들에게 패하지 않으려면 올라가지 마라.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민수기 14:42 · 두루새김

9절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도 백성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는데도 백성이 올라가려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행동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함께 싸우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말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거기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는 칼에 맞아 죽을 것이다. 너희가 여호와야훼를 따르다가 돌아섰으므로, 여호와야훼께서는 너희와 함께하지 않으실 것이다.」민수기 14:43 · 두루새김

가나안에 올라가는 행동 자체가 언제나 잘못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광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는데도 자신의 뜻대로 올라간다면, 그 행동은 더 이상 순종이 아닙니다.

언약 궤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모하게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언약 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민수기 14:44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앞서 민수기 10장에서 이스라엘이 시나이를 떠날 때와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그때에는 여호와야훼의 언약 궤가 그들 앞에서 나아가 쉴 곳을 찾았습니다(민수기 10:33). 모세는 언약 궤가 출발할 때마다 여호와야훼께서 일어나 적들을 흩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백성은 나아갑니다.

언약 궤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모세도 진영에 남습니다.

여기서 본문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는 장면으로 표현합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향해 올라가지만,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하신 분의 말씀은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적들

그 산에 살던 아말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여 호르마에 이르기까지 쳐부수었습니다.민수기 14:45 · 두루새김

이 패배는 땅을 살펴보러 갔던 사람들이 처음부터 옳았다는 증거일까요?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주민들보다 약하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패배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경고를 받은 뒤, 그 명령을 어기고 싸우러 올라간 결과로 서술됩니다.

따라서 이 패배는 하나님의 약속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과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는 길이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마침내 용기를 내었는데도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은 채 용기만 앞세웠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바야아필루(⁨עָפַל⁩)는 이 문맥에서 대담하거나 무모하게 행동하며 올라갔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물론 언약 궤가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는 바로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경고가 주어졌기 때문에 언약 궤가 멈춰 있는 모습이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신명기 1:26–46에서 모세는 이 사건을 다시 돌아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올라가기를 거부한 일과, 이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무모하게 올라갔다가 패배한 일을 함께 기록합니다. 신명기 1:29–33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보다 앞서 가셔서 싸우시고, 광야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안듯 백성을 돌보셨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결심을 앞세울 때

민수기 14:1–45 본문 →

중요한 것은 앞으로 가느냐 뒤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말씀을 따라 움직이느냐는 것입니다. 용서는 죄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행위가 아닙니다. 심판도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완전히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반역을 심각하게 다루시면서도 자신이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를 계속 이끌어 가십니다.

물론 오늘 우리에게 민수기 14장의 이스라엘처럼 구름과 언약 궤, 그리고 모세를 통한 직접적인 출발 명령이 언제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자신의 어떤 계획이 성공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신 것이고, 실패하면 함께하시지 않았다는 식으로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아침 일찍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어제 밤새 울던 사람들이 이제는 산꼭대기로 향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으로 올라가겠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모세는 경고합니다. 「적들에게 패하지 않으려면 올라가지 마라.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가운데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산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여호와야훼의 언약 궤는 진영 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모세도 떠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발걸음은 앞을 향하지만, 하나님의 명령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아말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이스라엘은 패배합니다.

백성은 산으로 올라갔고, 언약 궤는 진영에 남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