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정탐과 광야 세월
같은 땅, 서로 다른 미래
이스라엘의 정탐꾼 열두 명이 가나안 땅을 살펴보고 돌아옵니다. 그들은 거대한 포도송이를 가져왔습니다. 두 사람이 장대에 메고 와야 할 만큼 큰 포도송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땅을 보고 돌아온 사람들이 서로 반대되는 말을 합니다.
갈렙은 「반드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틀림없이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정탐꾼들은 「우리는 그 백성과 맞서러 올라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땅을 살펴본 것이 아닙니다. 같은 땅을 살피고 그 땅의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랐습니까?
이 질문을 풀어 가는 열쇠는 정탐꾼들이 무엇을 보았는가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본 것을 어떻게 해석했으며, 그 해석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전달했는가에 있습니다.
땅을 살펴보기 전에 이미 주어진 약속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살펴보게 하여라. 너희는 조상에게서 이어진 지파마다 한 사람씩 보내되, 모두 자기 지파의 지도자인 사람을 보내어라.」민수기 13:2 · 두루새김
그 땅은 이미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땅입니다.
정탐꾼들의 임무는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 땅의 실제 모습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 땅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임무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땅을 주신다는 약속과 그 땅을 자세히 살펴보라는 명령은 함께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들어갈 땅을 알아야 합니다.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성읍은 어떻게 세워져 있고, 땅은 어떤 상태인지 살펴야 합니다.
정탐을 제안한 사람은 누구인가?
신명기 1:22–23을 함께 읽으면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에게 먼저 사람들을 보내어 땅을 살펴보자고 제안했다고 돌아봅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 제안을 좋게 여겨 지파별로 한 사람씩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반면 민수기 13:1–3에서는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시고 모세가 그 명령에 따라 사람들을 보낸 것으로 기록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백성의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졌다고 이해하면 두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13장은 그 앞에 어떤 요청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기록이 정확히 어떤 시간 순서로 이어지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탐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정탐을 마친 사람들이 내린 판단입니다.
왜 지파마다 한 명씩 보내는가?
4–15절에는 열두 사람의 이름이 차례대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의 보고는 공동체 전체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서 열두 사람의 명단은 단순한 행정 기록 이상입니다. 여호와야훼가 주시겠다고 하신 땅을 살펴보는 일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대표자를 보내 참여합니다.
그런데 이 명단에는 훗날 중요한 인물이 되는 두 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다 지파의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의 호세아입니다.
이들이 모세가 그 땅을 살펴보도록 보낸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고 불렀습니다.민수기 13:16 · 두루새김
호세아(호셰아)는 구원 또는 구원하다와 연결되는 이름이며, 여호수아(예호슈아)에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이 결합되어 「여호와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가 담깁니다. 다만 이 절이 모세가 바로 정탐을 보내는 순간 이름을 바꾸었다는 뜻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독자에게 두 이름이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설명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여호수아는 아직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습니다. 정탐꾼들 사이의 논쟁에서 직접 말하는 사람은 갈렙입니다. 여호수아의 입장은 다음 장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정탐꾼에게 주어진 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구체적인 질문들이었다
모세는 정탐꾼들에게 네게브를 거쳐 산지로 올라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펴보아야 할 사항을 자세히 하나씩 말합니다. 그곳의 주민들이 강한지 약한지, 수가 많은지 적은지, 땅이 좋은지 나쁜지, 성읍들이 진영인지 요새인지, 땅이 기름진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조사하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을 보면 모세는 정탐꾼들이 좋은 소식만 가져오기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강한 주민들과 방어 시설이 튼튼한 성읍이 있을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나중에 정탐꾼들이 가나안 주민들이 강하고 성읍들의 방어 시설이 튼튼하다고 보고한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모세가 직접 살펴보라고 명령한 사항입니다.
믿음은 눈앞의 어려움을 없는 것처럼 보고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이유로 현실을 부정확하게 관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땅이 기름진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도 살펴보아라. 용기를 내어 그 땅의 열매를 가져와라.」 그때는 포도가 처음 익는 철이었습니다.민수기 13:20 · 두루새김
여기서 「용기를 내어」라는 말은 정탐이 안전한 일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직 차지하지 않은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낯선 주민들과 방어 시설이 튼튼한 성읍들이 있는 곳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세는 그 위험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용기를 내어 임무를 수행하라고 합니다.
정탐꾼들은 돌아와서 말로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실제로 얻은 것을 공동체 앞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관찰한 땅의 모습을 증언할 눈에 보이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사십 일 동안 그들이 실제로 본 것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21절은 그들이 친 광야부터 하맛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르홉까지 땅을 살펴보았다고 기록합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상당한 범위의 땅을 조사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헤브론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은 네게브로 올라가 헤브론까지 이르렀습니다. 그곳에는 아낙의 후손인 아히만과 셰샤이와 탈마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헤브론은 이집트의 성읍 초안보다 7년 먼저 세워진 곳이었습니다.민수기 13:22 · 두루새김
본문이 특별히 이 세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이유는 뒤에 나타납니다.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낙의 후손들을 다시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낙의 후손들이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를 정탐꾼들이 어떻게 묘사하는가는 구분해야 합니다. 본문은 아낙의 후손이 헤브론에 있었다고 직접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존재였다는 판단은 뒤에 정탐꾼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또한 헤브론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낯선 땅이 아닙니다. 창세기 13:18에서 아브람은 헤브론의 마므레에 살며 여호와야훼를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23:19에서는 아브라함이 사라를 헤브론 근처 막벨라 굴에 묻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곳에는 아낙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약속의 기억과 현재의 어려움이 한 장소에서 만납니다.
헤브론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땅이 아닙니다. 오래된 역사와 주민을 가진 곳입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을 차지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에슈콜 골짜기의 거대한 포도송이
그러나 정탐꾼들은 어려움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에슈콜 골짜기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잘라 두 사람이 장대로 메었습니다. 석류와 무화과도 가져왔습니다.민수기 13:23 · 두루새김
그 정확한 무게나 크기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운반했다는 묘사만으로도 그 열매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요구한 조사에 대한 실제적인 응답입니다. 땅에서 얼마나 풍성한 열매가 나는지 말로만 설명하지 않고, 그곳에서 얻은 열매를 직접 가져온 것입니다.
24절은 그곳이 포도송이 때문에 에슈콜 골짜기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정탐꾼들의 여행은 하나의 장소 이름을 남깁니다.
앞에서는 아낙의 후손들이 등장했습니다. 이제는 거대한 포도송이가 등장합니다.
둘 다 그 땅의 현실입니다.
25절은 그들이 사십 일 동안 땅을 살펴보고 돌아왔다고 기록합니다. 이제 그들은 직접 확인한 사실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땅을 살펴보는 일이 끝나고, 그 땅에 관한 말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22절에서는 히브리어 원문의 동사가 복수에서 단수로 바뀝니다. 이 단수의 주어를 갈렙으로 이해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훗날 여호수아 14:12–14에서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자신에게 물려줄 땅으로 받는 사건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3:22 자체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갈렙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22절은 헤브론이 이집트의 초안보다 칠 년 먼저 세워졌다는 설명까지 덧붙입니다. 이 비교가 정확히 어떤 역사적 건설 시점을 가리키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헤브론을 오래된 성읍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특별히 이스라엘이 나온 이집트의 성읍과 비교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여호수아 14:6–15에서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자신에게 물려줄 땅으로 요청합니다. 다른 정탐꾼들이 두려움의 근거로 제시했던 곳을, 갈렙은 훗날 자신에게 물려줄 땅으로 요청합니다. 물론 여호수아 14장은 민수기 13장보다 훨씬 뒤의 사건을 기록합니다. 두 본문을 하나로 합쳐 갈렙이 처음부터 헤브론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지만…」
정탐꾼들은 바란 광야의 가데스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만 보고하지 않습니다. 온 공동체 앞에서 자신들이 본 것을 이야기하고, 가져온 열매도 보여 줍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를 보내신 그 땅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이것이 그 땅의 열매입니다.」민수기 13:27 · 두루새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처음 듣는 말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8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 땅의 풍요로움은 이제 귀로 들은 약속일 뿐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보고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 땅에 사는 백성은 강합니다. 성읍들은 방어 시설이 튼튼하고 매우 큽니다.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도 보았습니다.」민수기 13:28 · 두루새김
여기서 「하지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땅의 풍요로움을 인정한 뒤, 그 땅을 차지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설명합니다.
29절에서는 주민들이 어디에 사는지도 설명합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네게브에, 헷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은 산지에, 가나안 사람들은 바닷가와 요단 강가에 산다고 합니다. 이 정보 역시 정탐 임무에 맞는 지리적 보고입니다.
정탐꾼들이 가져온 자료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합니다.
그 땅은 풍요롭습니다.
그 땅을 차지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사실 사이에 아직 모순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그 땅으로 올라가야 합니까?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 사실을 보고하는 일은 사실을 해석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일로 바뀝니다.
갈렙이 조용히 시킨 것은 백성이었고, 그가 강조한 것은 가능성이었다
30절에서 갈렙이 나섭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히 시키고 말했습니다. 「반드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틀림없이 해낼 수 있습니다.」민수기 13:30 · 두루새김
갈렙은 다른 정탐꾼들이 말한 사실을 하나하나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읍들의 방어 시설이 튼튼하지 않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아낙의 후손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갈렙의 말에는 두 가지 확신이 들어 있습니다. 올라가야 한다는 확신과, 차지할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런데 다른 정탐꾼들은 즉시 반대합니다.
그러나 갈렙과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백성과 맞서러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민수기 13:31 · 두루새김
둘 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도 아직 전쟁을 치른 것은 아닙니다. 어느 쪽도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고 실제로 싸워 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판단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실제로 강한 주민들이 살고 있고, 방어 시설이 튼튼한 성읍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의 한 부분을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분을 근거로 전체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판단 과정에서 처음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갈렙 역시 적의 강함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이스라엘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결론짓지는 않습니다.
두 입장의 차이는 위험을 보았느냐 보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그 위험을 최종적인 결론으로 삼았느냐에 있습니다.
성읍의 방어 시설이 튼튼하면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상대가 강하면 그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강하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또 다른 판단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올라갈 수 없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이 살펴본 땅 자체를 나쁘게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두 차례의 강한 강조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각각 「반드시 올라가서」와 「틀림없이 해낼 수 있습니다」로 그 강조를 살렸습니다. 13장에는 갈렙이 자신의 판단 근거를 길게 설명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가능하다고 이 자리에서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설명은 다음 장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함께 백성을 설득할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민수기 14:8–9). 따라서 13:30만으로 갈렙이 어떤 군사적 계산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생각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갈렙의 확신이 이 장의 첫머리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잘 어울린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풍요로운 땅이 주민을 삼키는 땅으로 바뀌다
그들은 살펴본 땅에 관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쁜 소문을 퍼뜨리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살펴본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켜 버리는 땅입니다. 그곳에서 본 사람들은 모두 키가 컸습니다.」민수기 13:32 · 두루새김
앞에서는 정탐꾼들이 다녀온 곳을 보고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나쁜 소문을 퍼뜨리며」라고 합니다.
조금 전까지 그들은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들어가고 싶은 땅처럼 보였던 곳이, 이제는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는 땅으로 묘사됩니다.
앞서 28절에서는 아낙의 후손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곳에서 본 사람들은 모두 키가 컸습니다」라고 합니다. 본문에 실제로 키가 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정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모든 주민이 예외 없이 키가 컸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말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특정한 집단의 강함이 보고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위협적인 존재처럼 묘사됩니다.
네피림은 누구인가?
「거기서 네피림도 보았습니다. 아낙의 자손은 네피림에게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고,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습니다.」민수기 13:33 · 두루새김
본문이 네피림의 혈통을 객관적인 역사 자료로 제시하는 장면이 아니라, 정탐꾼들이 자신들이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보다 강한 민족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비범한 존재들을 만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자신을 메뚜기처럼 본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두루새김의 「스스로 보기에도」와 「그들의 눈에도」는 자신들의 시선과 상대방의 시선을 나란히 놓습니다. 상대방이 그들을 실제로 어떻게 평가했는지 정탐꾼들이 확인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본문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정탐꾼들에게 너희는 메뚜기 같다고 말했다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두려움과 열등감을 상대방의 시선에까지 비추어 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이 상대방의 생각까지 정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작아 보인다는 것과, 상대방도 자신을 그렇게 본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실입니다. 정탐꾼들은 그 차이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땅에서 시작하여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로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라는 표현의 정확한 의미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 땅에서 전쟁과 폭력이 자주 일어나 주민들이 죽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질병이나 나쁜 생활환경 때문에 사람이 살아가기 어려운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3장에는 정탐꾼들이 그러한 현상을 실제로 조사하여 확인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을 근거로 이런 말을 했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네피림이 언급되며, 옛날의 용사들과 이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네피림의 정확한 정체와 그 이름의 의미에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이들을 거인과 관련된 말로 표현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들이 실제로 어떤 존재였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네피림의 후손을 확인했는지, 두려움 속에서 아낙의 후손들을 전설적인 존재들과 연결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시편 106:24–25도 이 사건을 돌아보며, 이스라엘이 좋은 땅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민수기 13장만 읽을 때에는 아직 백성 전체의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 보고에 대한 백성의 반응과 하나님의 판결은 다음 장에서 펼쳐집니다. 신약 히브리서 3:16–19도 광야 세대의 불순종을 돌아보면서, 약속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일을 믿음과 불신의 문제로 해석합니다. 이는 민수기의 사건을 후대의 신앙 공동체에 적용한 읽기이지, 가나안 정복의 모든 역사적 상황을 신약의 상황과 같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포도송이와 메뚜기 사이에서
갈렙과 다른 정탐꾼들의 대립은 단순히 낙관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기준을 드러냅니다. 한쪽은 가나안의 강함을 근거로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다른 한쪽은 그 강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이 장을 읽으며 자신의 어려움을 무시하거나, 준비 없이 위험에 뛰어드는 것을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본문과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장을 단순히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으로 줄여서도 안 됩니다. 이 장의 첫머리에 놓인 근거는 인간의 자신감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특정한 땅의 약속을 오늘날의 모든 개인적 목표나 영토를 차지하려는 요구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과 출애굽의 역사 안에 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온 공동체 앞에는 에슈콜 골짜기에서 가져온 포도와 석류와 무화과가 놓여 있습니다. 그 열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 땅에 관해 중요한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매를 가져온 정탐꾼들의 입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강한 주민들, 방어 시설이 튼튼한 성읍들, 아낙의 후손들, 네피림.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을 메뚜기처럼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들고 온 포도송이는 조금도 작아지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이 갑자기 다른 땅으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그 땅에 관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 땅을 실제로 보고 돌아왔지만, 그들은 마지막에 자신들이 얼마나 작은지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13장은 그 말에서 멈춥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여전히 포도송이가 있습니다.
그들의 귀에는 자신들이 메뚜기 같다는 말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같은 땅에 관한 두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올라가서 차지하자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올라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직 아무도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온 공동체는 가데스에 머물러 있고, 약속의 땅에서 가져온 열매가 그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