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언제까지 내 마음을 괴롭히고,
말로 나를 짓부술 거야?
너희가 나를 모욕한 게 벌써 열 번이야.
나를 그렇게 가혹하게 대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아?
내가 정말 잘못했다 해도,
그 잘못은 내가 짊어질 일이야.」
「너희가 정말 나보다 잘났다고 뽐내며,
내가 당하는 수치를 나를 몰아세울 증거로 삼는다면,이것을 알아 둬.
나를 부당하게 대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분은 하나님이셔.」
「내가 『폭력을 당하고 있어!』라고 외쳐도 아무 대답이 없어.
도와 달라고 부르짖어도 판결을 받지 못해.그분께서 내 길을 막으셔서 지나갈 수가 없어.
내가 다니는 길 위에 어둠을 드리우셔.그분께서 내 명예를 벗겨 내시고,
내 머리에서 관을 치우셨어.나를 사방에서 허무셔서 나는 끝장이 났어.
내 희망을 나무처럼 뿌리째 뽑으셨어.나를 향해 분노를 불태우시고,
나를 그분의 원수 가운데 하나로 여기셨어.그분의 군대가 한꺼번에 몰려와
나를 공격할 길을 높이 쌓고,
내 천막 둘레에 진을 쳤어.」
「그분께서 내 형제들을 내게서 멀리 떼어 놓으셨고,
나를 알던 사람들은 나를 아주 낯설게 대해.내 친척들은 발길을 끊었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은 나를 잊었어.내 집에 머무는 사람들과 내 여종들도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겨.
그들의 눈에 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 되었어.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아.
내가 직접 입으로 그에게 애원하는데도 말이야.」
「내 아내는 내 입김을 역겨워하고,
내 몸에서 난 자녀들도 나를 역겨워해.어린아이들까지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헐뜯어.속마음을 나누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몹시 싫어하고,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은 등을 돌려 나에게 맞서.내 뼈는 살갗과 살에 달라붙었고,
나는 가까스로 목숨만 건졌어.」
「나를 불쌍히 여겨 줘. 나를 불쌍히 여겨 줘, 내 친구들아.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잖아.너희는 왜 하나님처럼 나를 뒤쫓는 거야?
내 살을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거야?」
「아, 내 말이 기록되면 좋겠어.
책에 새겨지면 좋겠어.쇠 펜과 납으로
바위에 영원히 새겨지면 좋겠어.」
「하지만 나는 알아. 나를 되찾아 줄 이가 살아 있고,
마지막에 흙 위에 설 거야.내 살갗이 이렇게 망가진 뒤에도,
나는 내 몸으로 하나님을 뵐 거야.내가 직접 그분을 뵙게 될 거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눈으로 그분을 뵐 거야.
내 속은 다 타들어 가.」
「너희가 『어떻게 하면 그를 몰아붙일까?』라고 말하며,
문제의 뿌리가 내게 있다고 한다면,너희 자신이 칼을 두려워해야 해.
분노는 칼의 벌을 불러오니까.
그 벌은 너희가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거야.」
19장 해설 모두 보기 819:3 친구들이 꼭 열 번 모욕했다는 뜻인가요?
욥은 친구들이 계속 말로 자신을 짓부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항의해요. 앞선 발언을 하나씩 세어 정확히 열 번에 맞추기보다, 되풀이되는 모욕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읽을 수 있어요.
19:9 명예를 벗기고 관을 치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명예가 옷처럼 벗겨지는 모습을 그리고, 높임을 받던 모습을 머리의 관에 빗대고 있어요. 욥이 실제 왕이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19:17 욥의 자녀들은 앞에서 모두 죽지 않았나요?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따르면 욥 자신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처럼 읽혀요. 그러나 1장의 사건과 이어 읽기 어려워서,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들이나 가까운 집안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해요. 본문은 표현을 유지했으며, 살아남은 자녀가 따로 있었다고 설명하지 않아요.
19:22 친구들이 욥의 살을 먹는다는 뜻인가요?
욥은 하나님께 이미 상처를 입었으니 친구들만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탁해요. 그런데도 친구들이 비난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살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공격자에 빗대어요.
19:24 쇠 펜과 납은 무엇인가요?
욥은 자기 말이 책에 기록되는 데서 더 나아가, 바위에 새겨져 영원히 남기를 바라요. 쇠 도구와 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함께 쓰는지는 이 절에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요.
19:25 욥을 되찾아 줄 이는 누구인가요?
‘되찾아 줄 이’는 룻기에서 ‘가까운 친척’으로 옮긴 것과 같은 원문 낱말이에요. 집안사람을 위해 권리와 재산을 되찾아 주는 역할에도 쓰여요. 여기서는 욥을 위해 나설 이를 가리키지만, 그가 욥의 친척이라고 밝히지는 않아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는 읽기도 있어요. 욥은 곧이어 자신이 하나님을 뵐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존재의 정체를 확정하지는 않아요.
19:26 욥은 죽은 뒤에 다시 살아 하나님을 뵌다고 말하나요?
‘내 몸으로’에 해당하는 원문은 ‘내 몸을 떠나서’로도 읽혀요.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 억울함을 밝혀 주시기를 기대하는지, 죽은 뒤의 만남을 내다보는지 해석이 갈려요. 본문에는 부활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어요.
19:29 욥은 친구들에게 칼을 휘두르겠다고 위협하나요?
친구들은 욥에게 죄와 벌을 말해 왔어요. 욥은 자신을 계속 몰아붙이는 친구들 역시 심판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경고해요. 이 절은 누가 칼을 드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