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21장
이 장의 자리 · 13–21장 · 정탐과 광야 세월
죽음의 위기를 지나 땅을 얻다
민수기 21장은 뜻밖의 대조로 가득합니다.
1절에서 이스라엘은 적에게 포로를 빼앗깁니다. 35절에서는 적의 왕을 무찌르고 그의 땅을 차지합니다.
그 사이에 죽음의 위기와 회개, 회복과 노래가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은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백성이, 광야에서 죽을 위기를 거듭 겪으면서도 마침내 땅을 차지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포로를 빼앗긴 이스라엘이 호르마에서 승리하다
21장은 이스라엘이 먼저 공격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랏 왕은 이스라엘이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싸움을 벌여 포로를 잡아갑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실제적인 패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성의 반응이 이전과 다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 맹세하며 말했습니다. 「이 백성을 반드시 우리 손에 넘겨주신다면, 그들의 성읍들을 주님께 바쳐 완전히 없애겠습니다.」민수기 21: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아랏 왕의 군대를 스스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자기 손에 넘겨주시면 어떻게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의 말을 듣고 가나안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사람들과 그들의 성읍들을 여호와야훼께 바쳐 완전히 없앴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호르마라고 했습니다.민수기 21:3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여호와야훼를 원망하거나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전쟁의 위기를 맞아 여호와야훼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런데 호르마라는 이름은 민수기 14:45에도 등장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서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가나안으로 올라갔다가 아말렉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들은 호르마까지 쫓겨났습니다.
14장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거슬러 올라간 사람들이 패배했습니다.
21장에서는 여호와야훼께 도움을 구한 사람들이 승리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사람들과 성읍들을 완전히 없앴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적군을 물리친 일이 아니라 사람들과 성읍에 대한 파괴를 포함하는 고대 전쟁의 언어입니다. 그 폭력성을 없었던 일처럼 표현해서는 안 되며, 오늘날의 종교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반적인 명령으로 옮겨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를 향해 다시 거친 말을 쏟아냅니다.
조금 더 깊이
호르마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헤렘, 곧 완전히 없애거나 온전히 바친다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2–3절에서는 맹세와 「여호와야훼께 바쳐 완전히 없앴습니다」라는 말, 그리고 지명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입니다. 두 사건의 장소가 지리적으로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역사적으로 같은 곳인지는 이 구절들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민수기의 이야기 안에서 호르마라는 이름이 패배의 기억과 승리의 기억에 모두 연결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빵도 없고 물도 없습니다. 이 하찮은 빵은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4절에서 이스라엘은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 이유는 에돔 땅을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앞 장에서 에돔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 길에서 백성은 더는 참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먼 길을 돌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물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고, 아론도 죽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가야 할 방향으로 곧장 가지 못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맞서 말했습니다.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이 광야에서 죽게 합니까? 빵도 없고 물도 없습니다. 이 하찮은 빵은 이제 지긋지긋합니다.」민수기 21:5 · 두루새김
빵이 없다면서 어떤 빵에 싫증을 내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그들이 가리키는 빵은 광야에서 먹어 온 만나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출애굽기 16장과 민수기 11장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종류의 음식이 없고, 지금 먹는 음식이 더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불평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오랫동안 어떤 선물을 누리다 보면, 그것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의 삶을 잊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만나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 만나가 자신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들이 실제로 느낀 고통까지 부정하지 않습니다. 먼 길을 돌아가는 일은 힘들었고, 광야의 물 부족은 실제적인 위기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모세가 자기들을 죽이려고 광야로 데려오셨다고 비난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더 좋은 음식을 원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자신들을 살려 온 양식을 더 이상 선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불평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돌아옵니다.
조금 더 깊이
「하찮은 빵」(קְלֹקֵ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켈로켈은 다른 곳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는 표현으로, 이 문맥에서는 형편없거나 질이 낮아 못마땅한 음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정확히 어떤 느낌을 담고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백성이 그 음식을 업신여기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불뱀의 심판과 백성의 고백
여호와야훼께서는 백성 가운데 불뱀들을 보내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백성 가운데 불뱀들을 보내셨습니다. 뱀들이 백성을 물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민수기 21:6 · 두루새김
그런데 이번에는 백성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야훼와 당신에게 맞서 말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에게서 뱀들을 없애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모세가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민수기 21:7 · 두루새김
같은 행동을 두고 평가가 바뀐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광야가 힘들었으니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앞 장에서 모세는 므리바의 물 사건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판결을 받은 뒤에도 모세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역할을 계속합니다.
자신에게 맞서 말했던 백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그 응답은 백성이 요청한 것과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어떤 종류의 뱀이었는지, 독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뱀의 종류를 확정하거나 의학적 증상을 자세히 그려 낼 근거는 없습니다.
죽음을 가져온 뱀의 형상을 바라보면 산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불뱀 모양을 만들어 깃대 위에 달아라. 뱀에게 물린 사람은 누구든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민수기 21:8 · 두루새김
왜 하필 뱀 모양일까요?
사람들을 죽게 만든 것은 뱀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확실하게 밝히는 것은 그 모양의 의미보다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물린 사람이 보면 살 것입니다.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 깃대 위에 달았습니다. 뱀에게 물린 사람은 그 구리 뱀을 바라보면 살았습니다.민수기 21:9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우상을 만들고 섬겨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직접 뱀 모양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어떤 모양을 만든다는 행위와 그것을 신으로 섬기는 행위를 구별해야 합니다. 민수기 21장은 구리 뱀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그것을 신으로 섬기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분이 뱀들을 즉시 없애셨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9절은 여전히 뱀에게 물리는 일이 일어나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죽음의 위기가 이미 발생한 자리에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다시 살아갈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 장면을 단순히 ‘하나님을 바라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일반적인 교훈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실제로 뱀에 물린 사람들과 그들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명령을 다룹니다.
백성이 요청한 것은 뱀을 없애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것은 뱀에게 물린 뒤에도 살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 차이가 이 장면의 핵심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18:4에서는 히스기야가 모세가 만들었던 구리 뱀을 부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때까지 그 뱀에게 향을 피워 바쳤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진 형상이었지만, 후대에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못된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여호와야훼께서 정하신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것과 그 자체에 종교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다릅니다. 요한복음 3:14–15에서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사건을 직접 언급하여 자신의 사역과 연결하십니다. 이는 민수기 사건에 대한 신약의 명시적인 재해석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21장의 본래 장면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심판 가운데 죽어 가는 이스라엘에게 살아날 길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이어지는 행진과 「여호와야훼의 전쟁 책」
구리 뱀 사건이 끝나자 본문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오봇에 진을 치고, 이예하아바림을 지나 제렛 골짜기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아르논 건너편에 이릅니다.
뱀에게 물려 죽어 가던 공동체가 다시 길을 떠납니다.
그들이 겪은 심판과 죽음이 이스라엘의 여정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 아르논 건너편에 진을 쳤습니다. 그곳은 아모리 사람들의 영토에서 이어지는 광야에 있었습니다.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나누는 모압의 경계였습니다.민수기 21:13 · 두루새김
아르논은 요단강 동쪽에서 사해로 흘러드는 하천 계곡으로, 이 이야기에서는 모압과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나누는 경계로 등장합니다. 이 경계가 중요한 이유는 뒤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되는 땅이 어떤 땅인지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야훼의 전쟁 책』에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 「수파에 있는 와헵과 아르논 골짜기들,」 「골짜기들의 비탈, 곧 아르가 자리한 곳 쪽으로 뻗어 모압의 경계에 닿는 비탈.」민수기 21:14–15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의 전쟁 책」이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이곳에 등장합니다. 이 책이 정확히 어떤 문헌이었는지, 누가 썼는지, 어느 시대에 엮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민수기를 서술하는 사람이 어떤 전해 오는 이야기 또는 기록을 인용하여 아르논 지역을 설명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구절은 완결된 서술문처럼 읽히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동사가 명확하지 않고, 지명과 지리적 표현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 짧은 부분을 특정한 전투의 상세한 기록으로 만들어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는 길에는 그들보다 앞서 존재했던 왕국들의 영토와 경계가 있습니다.
그 땅들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았고, 전쟁이 있었으며, 땅의 주인이 바뀌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뒤에서 시혼의 성읍인 헤스본에 관한 노래가 등장할 때 더욱 중요해집니다.
불평하던 백성이 우물을 향해 노래하다
16절에서 이스라엘은 브에르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브에르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백성을 모아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신 우물이 있었습니다.민수기 21:16 · 두루새김
이 말은 앞서 므리바의 물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때도 여호와야훼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을 모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위에서 물을 내어 백성과 가축에게 마시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위를 치거나 말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대신 우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물아, 솟아올라라! 너희는 그 우물을 향해 노래하여라!」민수기 21:17 · 두루새김
앞에서는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맞서 말했습니다. 그들은 물이 없다고 불평했고, 자신들이 먹는 빵까지 하찮게 여겼습니다.
처음에는 불평이었습니다.
이제는 노래입니다.
「지도자들이 판 우물, 백성의 귀족들이 지휘봉과 자기 지팡이로 파낸 우물이다.」 그들은 광야에서 맛타나로 갔습니다.민수기 21:18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께서는 물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노래는 지도자들이 우물을 파는 행동을 기억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물을 주신다는 말이 인간의 행동을 언제나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홍해를 건넌 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서 행하신 구원을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 직후 광야에서 물이 없어 어려움을 겪습니다(출애굽기 15:22–25). 민수기 21장에서는 순서가 반대로 느껴집니다. 먼저 물이 없다고 원망하던 이스라엘이 이제 우물을 두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이동의 기록 속에 놓입니다.
이스라엘은 맛타나와 나할리엘, 바못을 지나 모압 들판과 비스가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얻고 노래한 뒤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다시 다른 왕의 영토를 통과해야 하는 문제가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물론 지도자들이 실제로 지휘봉과 지팡이만을 이용해 우물을 팠는지, 아니면 지도자들이 앞장선 역할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지휘봉과 지팡이는 지도력을 나타내는 물건이므로, 노래가 그들의 권위와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고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지명들의 정확한 연결과 모든 위치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원문에서는 20절의 골짜기와 비스가 꼭대기가 어떤 관계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모압 들판에 있는 골짜기로 갔다고 말한 뒤, 그곳 비스가 꼭대기에서 황무지가 내려다보였다고 옮겼습니다.
에돔에게 했던 요청을 시혼에게 다시 하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사람들의 왕 시혼에게 사람들을 보냅니다.
「우리가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밭이나 포도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영토를 다 지나갈 때까지 왕의 길로만 가겠습니다.」민수기 21:22 · 두루새김
이 요청은 앞 장에서 에돔 왕에게 했던 요청과 거의 같습니다. 그들은 시혼에게 처음부터 전쟁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시혼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모두 모아 이스라엘을 맞으러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야하츠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싸웠습니다.민수기 21:23 · 두루새김
에돔도 통행을 거절하고 군대를 이끌고 나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에돔의 영토를 피해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실제 전투가 벌어지고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이스라엘은 시혼을 칼로 쳐서 무찌르고 그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 땅은 아르논에서 얍복까지, 암몬 자손의 경계까지였습니다. 그 경계가 튼튼하게 지켜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민수기 21:24 · 두루새김
아르논은 앞에서 모압과 아모리 사람들의 경계로 소개되었습니다. 얍복은 요단강 동쪽의 또 다른 주요 하천으로, 이스라엘이 차지한 영토의 북쪽 범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즉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그 동쪽에서 실제 영토를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며 진을 쳤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자신들의 것으로 차지한 땅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곳의 모든 성읍을 빼앗았습니다. 그들은 헤스본과 거기에 딸린 모든 마을을 비롯해 아모리 사람들의 모든 성읍에 살았습니다.민수기 21:25 · 두루새김
그들은 더 이상 단지 지나가는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이제 어떤 성읍들은 그들이 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이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혼의 이전 전쟁을 설명합니다.
조금 더 깊이
왜 두 경우에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본문 자체는 그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2:24–37에서는 시혼과의 전쟁을 더욱 명확하게 여호와야훼의 명령과 땅을 넘겨주시는 행동에 연결하여 돌아봅니다. 반면 신명기 2:4–6은 에서 자손의 땅을 침범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모든 이웃 민족의 땅을 무조건 정복하도록 허락받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땅은 지나가지 못하면 돌아가야 했고, 어떤 땅은 전쟁을 통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헤스본의 노래 — 남의 승리를 노래하던 성읍이 무너지다
26절은 헤스본이 시혼의 성읍이었다고 말합니다.
헤스본은 아모리 사람들의 왕 시혼의 성읍이었습니다. 시혼은 전에 모압 왕과 싸워 아르논까지 이르는 그 왕의 땅을 모두 빼앗았습니다.민수기 21:26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당시 시혼이 다스리던 아모리 사람들의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토 가운데 일부는 이전에 모압에 속했다가 시혼에게 빼앗긴 땅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본문은 모압의 경계를 자세히 설명하고, 시혼의 이전 승리를 노래하는 시를 인용합니다.
그래서 시를 읊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헤스본으로 오너라. 시혼의 성읍이 세워지고 굳게 자리 잡기를!」민수기 21:27 · 두루새김
처음에는 시혼의 성읍을 찬양하는 노래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헤스본에서 불이, 시혼의 성읍에서 불꽃이 나와 모압의 아르를 삼키고, 아르논의 높은 곳들을 차지한 사람들도 삼켰기 때문이다.」민수기 21:28 · 두루새김
시혼의 전쟁 승리가 마치 성읍에서 나오는 불꽃처럼 표현된 것입니다. 이어서 모압을 향한 조롱이 등장합니다.
「모압아, 슬프구나!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망했구나! 그모스는 자기 아들들을 도망자 신세로 내주고, 자기 딸들을 아모리 왕 시혼에게 포로로 넘겨주었다.」민수기 21:29 · 두루새김
여기서 그모스는 모압 사람들이 섬기던 신입니다. 예레미야 48:7, 46에서도 그모스는 모압과 연결되어 등장합니다.
전쟁은 단지 왕과 군대 사이의 싸움으로 이야기되지 않았습니다. 한 민족의 패배는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의 무능력이나 패배를 조롱하는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민수기는 그 노래를 인용하고 있지만, 그 노래의 모든 조롱과 평가를 그 자체로 신학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30절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관점이 바뀌는 듯한 말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쏘아 맞혔다. 헤스본은 디본에 이르기까지 무너졌다. 우리는 노파흐까지, 메드바에 이르는 곳까지 폐허로 만들었다.」민수기 21:30 · 두루새김
앞에서는 헤스본이 모압을 무찌른 일을 노래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헤스본을 무너뜨린 듯한 표현이 나옵니다.
시혼은 한때 모압의 땅을 빼앗은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헤스본은 그 승리를 노래할 만큼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시혼이 이스라엘에게 패배했습니다.
남의 땅을 빼앗고 승리를 자랑하던 왕이, 이제 다른 민족에게 자기 땅을 빼앗긴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을 이스라엘이 시혼의 승리를 노래하던 시에 자신의 승리를 덧붙인 것으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절의 히브리어는 이해하기 어렵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와 지명들의 관계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어느 부분이 원래의 노래이고 어느 부분이 후대에 더해졌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바산 왕 옥 —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과 땅의 획득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차지한 뒤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모세는 야제르를 살펴보도록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들은 그 지역의 마을들을 점령하고, 모세는 아모리 사람들을 쫓아냅니다.
이어 이스라엘은 바산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그때 바산 왕 옥이 자기 백성을 거느리고 에드레이에서 싸우러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앞선 시혼과의 전쟁에는 없었던 여호와야훼의 직접적인 말씀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옥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 아모리 사람들의 왕으로 헤스본에 살던 시혼에게 한 것처럼 그에게도 하여라.」민수기 21:34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단순히 용기를 내라는 격려가 아닙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에 근거한 명령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강한 주민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 두려움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야훼께서 함께하시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14:6–9).
이제 민수기 21장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실제로 강한 왕과 그의 군대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옥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땅을 차지했습니다.민수기 21:35 · 두루새김
이것은 완전한 군사적 파괴를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그 사실을 단순히 아름다운 승리의 이야기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변화의 중심에는 백성의 군사적 자신감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32절의 마지막 동사가 단수 주어를 사용하므로, 누가 직접 쫓아냈는지는 문법적으로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그 주어를 모세로 밝혀 옮겼습니다. 모세가 살펴보도록 지시했고, 이스라엘 측이 그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끝나지 않은 길 위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약속
민수기 21장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실패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패와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살리시고, 약속의 땅을 향한 길을 계속 열어 가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이스라엘은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합니다.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아직 모든 여정이 끝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단지 가나안의 풍요를 먼 곳에서 바라보는 백성만은 아닙니다.
자신들이 발을 딛고 살아갈 땅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여호와야훼께서 약속하신 미래가 그들의 눈앞에서 실제 땅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