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22장

이 장의 자리 · 22–25장 · 모압 평원의 일들

저주를 부르는 왕, 길을 막아서는 하나님

민수기 22장에는 기묘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자를 보지 못하고, 그가 타고 다니던 암나귀는 그 사자를 알아봅니다. 사람은 짐승을 어리석다고 여겨 때리지만, 정작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그 짐승입니다.

이 이야기는 흔히 발람의 탐욕이나 불순종을 경고하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그러나 본문을 처음부터 따라가면 더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까?

모압 왕 발락은 돈과 명예로 저주의 말을 사려 합니다. 발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발락의 요청에 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처음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다가, 나중에는 가도록 허락하시고, 그가 길을 떠나자 다시 분노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들을 향한 저주가 준비되지만, 하나님은 그 저주가 도착하기도 전에 막고 계십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22장 본문 읽기 →

두려움이 저주를 찾다

민수기 22:1–6 본문 →

이스라엘은 마침내 모압 평원에 도착합니다. 요단강 건너편에는 여리고가 있습니다. 광야를 지나온 백성이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시선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곧바로 모압 왕 발락에게 시선을 옮깁니다.

치포르의 아들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들에게 한 모든 일을 보았습니다.민수기 22:2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무너뜨렸습니다(민수기 21:21–35). 이제 그 승리의 소식이 주변 민족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모압 사람들이 미디안의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소가 들판의 풀을 핥아 먹듯, 이제 이 무리가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을 핥아 먹을 거예요.」 그때 모압의 왕은 치포르의 아들 발락이었습니다.민수기 22:4 · 두루새김

이 비유는 이스라엘을 하나의 거대한 짐승처럼 묘사합니다. 소가 풀을 핥아 먹듯, 이스라엘이 주변의 모든 것을 없애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발락이 알고 있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나타납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들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에는 앞선 사건들과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은 먼저 시혼에게 통행을 요청했고, 시혼이 거절한 뒤 군대를 모아 공격해 왔습니다. 또한 신명기 2:9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모압과 싸우거나 다투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발락은 눈앞에 보이는 세력을 두려워하지만, 그 백성을 이끌어 오신 하나님이 누구이며 무엇을 명령하셨는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발락이 선택한 수단은 군대를 더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사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백성은 나보다 강해요. 그러니 부디 와서 나를 위해 이 백성을 저주해 주세요.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쳐서 이 땅에서 쫓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당신이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나는 알아요.」민수기 22:6 · 두루새김

고대 세계에서 축복과 저주는 단순한 감정 표현만은 아니었습니다. 신의 능력이 사람이나 공동체의 운명에 작용하도록 요청하는 말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발락은 발람의 명성을 이용하여 전쟁의 결과를 유리하게 만들려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시면서 그를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그를 저주하는 사람을 저주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2:3). 발락은 발람에게 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창세기에서 그 권한을 행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민수기 24:9에서 발람은 결국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발람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들리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밤 — 이미 복을 받은 백성

민수기 22:7–14 본문 →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은 발람에게 찾아갑니다.

발람은 그들을 곧바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발람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으세요. 여호와야훼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대로 여러분에게 답을 전해 드릴게요.」 모압의 관리들은 발람과 함께 머물렀습니다.민수기 22:8 · 두루새김

발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구합니다. 본문은 그가 언제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밖에 있는 발람에게도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어서 하나님이 발람에게 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와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은 누구냐?」민수기 22:9 · 두루새김

이어지는 대화에서 방문객의 요청이 하나님 앞에 드러납니다. 발람은 발락의 말을 전하며 그 백성을 저주해 달라는 부탁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가지 마라. 그 백성을 저주하지 마라. 그들은 복을 받은 백성이다.」민수기 22:12 · 두루새김

하나님은 앞으로 그 백성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복을 받은 백성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발람이 무엇을 말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결정이 그 백성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이곳까지 데려오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복 받은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이 옳았다는 평가가 아닙니다. 그들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거두지 않으셨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발람이 관리들에게 전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조금 다릅니다.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발락의 관리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나라로 돌아가세요. 여호와야훼께서 제가 여러분과 함께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민수기 22:13 · 두루새김

발람은 여행 허락의 문제만 말하고, 저주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이유는 전하지 않습니다.

이 생략만으로 발람이 일부러 사실을 감추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는 중요한 결과를 낳습니다. 발락의 관리들은 돌아가서 단지 발람이 오기를 거절했다고 보고합니다(22:14).

발락에게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협상처럼 남습니다. 저주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발람을 데려오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발락은 더 강한 조건으로 다시 사람을 보냅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3:5–6의 히브리어 절 구분에 해당하는 대목에서 모세는 모압이 발람을 고용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지만, 하나님이 그 저주를 복으로 바꾸셨다고 돌아봅니다. 여호수아 24:9–10 역시 발락과 발람의 사건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발람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보호하셨다고 말합니다. 특히 미가 6:5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로운 행위를 기억하라고 이스라엘에게 촉구하시면서 발락이 계획한 일과 발람이 대답한 일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이렇게 구약의 뒤이은 본문들은 발람의 사건을 단순히 한 점술가의 실패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보호를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두 번째 밤 — 허락과 기쁨은 같은 것인가

민수기 22:15–21 본문 →

발락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을, 더 높은 지위의 관리들을 보냅니다. 그가 내건 조건도 달라집니다.

「『내가 반드시 당신을 크게 높여 주겠어요. 당신이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어요. 부디 와서 나를 위해 이 백성을 저주해 주세요.』」민수기 22:17 · 두루새김

발락이 생각하는 문제의 해결책은 명예와 보상을 늘리는 것입니다. 발람이 거절했다면 충분한 대가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발락이 자기 집을 가득 채울 만큼 은과 금을 제게 준다 해도,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제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어겨 가며 할 수는 없어요.」민수기 22:18 · 두루새김

이 말 자체는 하나님의 권위를 정확하게 인정합니다. 어떤 보상도 하나님의 명령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람은 곧바로 이렇게 덧붙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밤은 여기 머물러 주세요. 여호와야훼께서 제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지 알아볼게요.」민수기 22:19 · 두루새김

하나님은 이미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주하지 말아야 할 이유까지 분명히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까?

하나는 발람이 더 높은 보상에 마음이 끌려 이미 주어진 명령이 달라지기를 기대했다는 읽기입니다. 발락의 제안이 점점 커지고, 그때마다 발람이 다시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는 이야기의 흐름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발람이 새로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다시 확인하려 했다는 읽기입니다. 실제로 발람은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겠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속으로 무엇을 원했는지 이 장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확정하기보다, 그의 반복된 질문이 불러오는 긴장에 주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와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다면,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거라. 다만 내가 네게 말하는 것만 하여라.」민수기 22:20 · 두루새김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그가 발락에게 간다고 해서 발락의 요청을 수행할 권한까지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곧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가는 일에 분노하셨습니다.」 바로 앞에서는 함께 가라고 하셨는데, 왜 가는 일 때문에 분노하십니까?

첫째, 하나님의 허락에 조건이 붙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20절에서는 사람들이 발람을 부르러 왔다면 가라고 하셨지만, 21절은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곧바로 출발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를 근거로 발람이 허락의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고 읽기도 합니다.

다만 관리들의 초청은 이미 이루어졌고, 본문은 그들이 아침에 다시 발람을 불렀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발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어겼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여행을 허락하셨더라도 발람이 그 길을 가는 방식이나 태도까지 기뻐하신 것은 아니라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32절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내가 보기에 네가 가는 길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렇지만 이 설명 역시 본문이 밝히지 않은 발람의 속마음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행동을 허락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행동의 모든 동기와 방식이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는 허락과 분노의 긴장을 남겨 둔 채, 발람이 걸어가는 길에서 실제로 무엇이 벌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은 발람을 부정적인 인물로 다시 언급합니다. 베드로후서 2:15는 불의의 대가를 사랑한 발람을 경고하고, 유다서 11절과 요한계시록 2:14도 발람의 길과 가르침을 비판합니다. 이는 성경의 뒤이은 책들이 발람에 대해 내리는 평가입니다. 그 평가를 이해하려면 민수기 25장과 31:16까지 함께 읽어야 하며, 그 내용을 미리 22장에 모두 집어넣어 발람의 동기를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길을 보는 암나귀, 보지 못하는 발람

민수기 22:22–27 본문 →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길에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가는 일에 분노하셨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그에게 맞서려고 길을 막아섰습니다. 발람은 자기 암나귀를 타고 있었고, 시중드는 사람 둘이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민수기 22:22 · 두루새김

첫 번째 — 들판으로 벗어나다 (22:23)

암나귀는 칼을 든 사자를 보고 길을 벗어나 들판으로 들어갑니다. 발람은 다시 길로 돌려놓으려고 암나귀를 때립니다.

두 번째 — 담에 바짝 붙다 (22:24–25)

양쪽에 담이 있는 포도원 길에서 암나귀는 사자를 피하려다가 발람의 발을 담에 짓누릅니다. 발람은 다시 때립니다.

세 번째 — 길에 엎드리다 (22:26–27)

이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비켜 갈 수 없는 곳입니다. 암나귀는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드립니다. 발람은 화가 나서 막대기로 때립니다.

처음에는 들판으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담 사이의 좁은 길이었고, 마지막에는 어디로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계속 앞으로 가려 하지만, 하나님이 막으시는 길에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암나귀는 사자를 세 번 모두 봅니다. 그러나 발람은 한 번도 보지 못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발락이 먼 곳까지 사람을 보내 데려오려고 할 정도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자기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일을 올바르게 알아본다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발람은 암나귀의 행동을 자기에게 저항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암나귀가 발람의 목숨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에서 「맞서려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레사탄(⁨שָׂטָן⁩)입니다. 「대적하는 자로서」, 또는 「방해하는 자가 되어」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사자의 역할을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사탄」이라는 고유한 존재가 나타났다는 의미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입을 여시다

민수기 22:28–31 본문 →

마침내 이야기는 가장 뜻밖의 순간에 이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암나귀의 입을 여셨습니다. 암나귀가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저를 이렇게 세 번이나 때리세요?」민수기 22:28 · 두루새김

발람은 말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발락은 바로 그 능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에게 말을 주시기 전에 암나귀의 입부터 여십니다.

발람이 암나귀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놀림거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손에 칼이 있었더라면 지금 너를 죽였을 것이다.」민수기 22:29 · 두루새김

그러나 독자는 바로 그 순간 칼을 든 하나님의 사자가 발람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발람은 자신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죽음의 위협 앞에 서 있는 것은 발람 자신입니다.

암나귀가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오래전부터 오늘까지 타고 다닌 암나귀 아닌가요? 제가 전에도 당신에게 이런 행동을 하곤 했나요?」 발람이 대답했습니다. 「아니다.」민수기 22:30 · 두루새김

이번에는 과거의 경험을 증거로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갑자기 이상하게 행동하는 데에는 발람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발람의 대답은 자신의 판단을 되돌아볼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이 암나귀의 말을 듣고 스스로 사자를 알아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발람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발람은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칼을 뽑아 손에 들고 길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몸을 굽히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민수기 22:31 · 두루새김

암나귀는 본 것을 말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입을 여시자 말하게 됩니다. 발람은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이 눈을 열어 주시자 비로소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입을 열어 주셔야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이 눈을 열어 주셔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조금 전까지 암나귀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화를 내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권위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암나귀가 발람을 살렸다

민수기 22:32–35 본문 →

하나님의 사자가 입을 열어 처음으로 묻는 것은 발람이 왜 그 길을 가고 있는지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왜 네 암나귀를 이렇게 세 번이나 때렸느냐? 보아라. 나는 너에게 맞서려고 나왔다. 내가 보기에 네가 가는 길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민수기 22:32 · 두루새김

발람은 암나귀가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해 왔지만, 사자는 오히려 발람이 암나귀에게 한 일을 꾸짖습니다. 사자는 그가 가고 있는 길을 멈춰 세워야 할 대상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발람은 암나귀가 자신을 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암나귀는 나를 보고 내 앞에서 이렇게 세 번이나 비켜 갔다. 나귀가 나를 피해 비켜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려 두었을 것이다.」민수기 22:33 · 두루새김

발람이 벌주려 했던 존재는 오히려 그를 죽음의 위협에서 보호했습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쉽게 자기중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발람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길을 계속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멈추게 하는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자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 잘못된 것은 그가 가고 있던 길이었습니다.

발람이 여호와야훼의 사자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길에서 저를 막아서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제가 가는 일이 보시기에 잘못이라면 돌아가겠습니다.」민수기 22:34 · 두루새김

앞에서는 자기 뜻대로 길을 계속 가려 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자가 보시기에 잘못이라면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자는 뜻밖에도 다시 가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 가거라. 다만 내가 네게 말하는 것만 말하여라.」 발람은 발락의 관리들과 함께 갔습니다.민수기 22:35 · 두루새김

20절에서 하나님은 발람에게 「내가 네게 말하는 것만 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35절에서는 「내가 네게 말하는 것만 말하여라」라고 하십니다.

발람은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조종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말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장면을 모든 삶의 장애물이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한 신호라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실제로 사자를 보내 발람의 길을 막으신 특정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잘 알면서도,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자기 판단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는 충분히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저항이나 질문을 제대로 듣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32절의 「내가 보기에 네가 가는 길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원문의 히브리어 야라트(⁨יָרַט⁩)는 의미를 확정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문맥에 따라 길이 비뚤어져 있다는 의미로 읽거나, 위험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33절의 원문의 히브리어 조건 표현에는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경우를 가정하는 문장인지 문법만으로 완전히 확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발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가 암나귀를 때린 행동을 구체적으로 회개한 것인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길을 간 것을 고백한 것인지, 또는 그 두 가지를 함께 인정한 것인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고백이 얼마나 깊은 마음의 변화를 뜻하는지도 이 장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왕이 줄 수 있는 명예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민수기 22:36–41 본문 →

발람이 모압에 도착하자 발락은 직접 그를 맞으러 나옵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부르려고 분명히 사람을 보내지 않았어요? 왜 내게 오지 않았어요? 내가 정말 당신을 높여 줄 수 없겠어요?」민수기 22:37 · 두루새김

발락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이 발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반면 발람은 자신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슨 말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제 입에 넣어 주시는 말만 하겠습니다.」민수기 22:38 · 두루새김

독자는 조금 전 길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암나귀의 입을 여셨고, 암나귀는 발람에게 필요한 말을 했습니다.

두 장면은 서로를 비춥니다. 암나귀가 자기 의지로 발람을 깨우치는 특별한 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듯, 발람도 자신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하는 말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암나귀는 하나님이 입을 열어 주셨을 때 자신이 경험한 일을 말했습니다. 발람은 앞으로 하나님이 주실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발람의 선언은 중요한 원칙이지만, 아직 그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이후의 이야기가 그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발락은 발람을 데리고 키르얏후초트로 갑니다. 다만 발락이 발람을 맞이하고 대우하는 장면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음 날 아침, 발락은 발람을 데리고 바못바알로 올라갔습니다. 발람은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 무리의 한쪽 끝을 보았습니다.민수기 22:41 · 두루새김

발락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저주받기를 원하는 대상을 발람에게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발람이 이스라엘 전체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처음 발락이 본 것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힘이었습니다. 길에서 발람이 배워야 했던 것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발람은 발락과 함께 이스라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이 백성에 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는 결정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22:40에서 원문의 짐승을 잡는 표현만으로는 이것이 제사를 위한 도살인지, 방문한 손님을 대접하는 식사와 관련된 것인지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저주의 말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민수기 22:1–41 본문 →

민수기 22장에서 하나님의 복은 인간의 저주가 얼마나 강한지 시험해 보아야 하는 불확실한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복이기에 인간의 말이 그것을 마음대로 뒤집을 수 없습니다. 다만 민수기 22장 자체는 아직 저주의 말이 축복으로 바뀌는 순간까지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에 앞서 인간이 누구의 말을 따르고 누구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을 위해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의 길을 막으시는 동안에도 그들은 요단강 건너편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높은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아래에는 이스라엘 백성 무리의 한쪽 끝이 보입니다. 발락은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이 이제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먼 곳에서 특별한 사람을 불러왔고, 명예를 약속했으며, 마침내 저주할 대상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발락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옆에 선 발람은 이곳까지 오는 길에서 칼을 든 사자를 만났습니다. 자기 암나귀가 자신보다 먼저 본 것을 뒤늦게 보았고,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기 뜻대로 될 수 없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제 두 사람이 같은 백성을 바라봅니다.

발락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보이고, 발람에게는 앞으로 말을 해야 할 대상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백성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는 이미 하나님이 밝히셨습니다. 「그들은 복을 받은 백성이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