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23장
이 장의 자리 · 22–25장 · 모압 평원의 일들
저주 앞에서 말씀하신 복
모압 왕 발락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을 때 원인을 어디에서 찾았을까요?
발락은 발람에게서 저주 대신 축복이 나오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제물이 부족했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장소를 바꿉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더 중요한 변화는 장소가 아니라 발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첫 번째 발언은 누가 이 백성을 저주할 수 있는가를 묻고, 두 번째 발언은 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바꿀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민수기 23장은 세 차례의 제단 준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제단에서는 첫 번째 축복이, 두 번째 제단에서는 두 번째 축복이 나옵니다. 세 번째 제단까지 준비되지만 그 결과는 다음 장으로 넘어갑니다.
일곱 제단과 하나님의 한마디
발람은 발락에게 제단 일곱 개를 쌓고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라고 요구합니다.
발락은 그대로 따릅니다. 제단마다 수소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바칩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바친 번제 곁에 서 계십시오. 저는 가 보겠습니다. 어쩌면 여호와야훼께서 저를 만나러 오실지도 모릅니다. 그분께서 제게 무엇을 보여 주시든 당신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발람은 나무 없는 언덕으로 갔습니다.민수기 23:3 · 두루새김
그는 제단을 세우고 제물을 바쳤으니 하나님이 반드시 나타나셔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만나실 가능성을 말할 뿐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과 이야기에서 완전함이나 충만함을 나타내는 숫자로 자주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일곱 제단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제단 일곱 개를 요구하셨다는 말도 없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을 만난 뒤 자신이 준비한 것을 보고합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을 만나셨습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제가 제단 일곱 개를 마련하고, 제단마다 수소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바쳤습니다.」민수기 23:4 · 두루새김
그런데 하나님은 발람이 바친 제물의 수량을 평가하거나, 의식의 성과를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발람의 입에 말을 넣어 주고 말씀하셨습니다.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하여라.」민수기 23:5 · 두루새김
발락이 준비한 것은 제단과 제물입니다. 발람이 기다린 것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말을 할지는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이것은 앞 장의 암나귀 사건과도 정확하게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암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셨던 것처럼, 이제는 발람의 입에 말씀을 넣어 주십니다.
발람은 말을 전하는 사람이지, 그 말이 이루어 낼 현실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첫 번째 발언 — 누가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이를 저주할 수 있는가
발람은 자신의 시를 읊기 시작합니다.
발람은 반복과 대조, 질문과 비유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에 관한 하나님의 판단을 선포합니다. 첫 번째 시는 발람을 이곳으로 데려온 발락의 요청을 되짚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발람이 시를 읊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저를 아람에서, 동쪽 산들에서 데려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서 나를 위해 야곱을 저주해 주세요. 와서 이스라엘에 분노를 쏟아 주세요.』」민수기 23:7 · 두루새김
그런데 바로 다음 문장에서 발락의 기대를 뒤집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으신 백성을 제가 어떻게 저주하겠습니까? 여호와야훼께서 분노를 쏟지 않으신 백성에게 제가 어떻게 분노를 쏟겠습니까?」민수기 23:8 · 두루새김
발람은 자신에게 저주할 능력이 없다고 단순히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의 범위가 하나님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고 선언합니다.
발락은 발람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이스라엘의 운명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의 대답은 그 순서를 뒤집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먼저 있고, 발람의 말은 그 판단을 따라야 합니다.
「저는 바위 꼭대기에서 그 백성을 보고, 언덕들에서 그들을 바라봅니다. 보십시오. 이 백성은 따로 살며 자신을 다른 민족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지 않습니다.」민수기 23:9 · 두루새김
홀로 사는 백성이라는 말의 의미
「따로 살며」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반드시 다른 민족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자신을 다른 민족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지 않습니다」라는 표현 역시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인간적으로 우월하다는 선언으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문맥에서 발람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는 위치에 놓여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만들어 낸 특별함이라기보다, 하나님과 맺은 관계에서 비롯된 독특한 지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9:5–6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특별한 소유이자 제사장 나라, 거룩한 민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동시에 온 땅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구별됨은 하나님이 다른 민족들에게 관심이 없으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신이 자기 정체성을 자랑하는 장면이 아니라, 외부인의 입을 통해 그 백성의 정체성이 선포되는 장면입니다.
셀 수 없는 백성
「먼지처럼 많은 야곱의 백성을 누가 세겠습니까? 이스라엘의 4분의 1만이라도 누가 헤아리겠습니까? 저도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처럼 죽고, 제 마지막도 그들처럼 되기를 바랍니다.」민수기 23:10 · 두루새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3:16). 그 약속은 야곱에게도 이어져,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28:14).
발락이 두려워한 바로 그 인구의 많음이, 발람의 입에서는 오래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 됩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초청받은 사람이 이제는 그들의 마지막과 같은 마지막을 맞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이스라엘 모든 구성원이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말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의 앞선 이야기에는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순종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발락이 없애고 싶어 하는 백성의 미래를 발람은 자기에게도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2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진영이 네 방향으로 나뉘어 배치됩니다. 따라서 4분의 1이라는 표현을 네 진영 가운데 하나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3:10 자체가 그 진영을 직접 지정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발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죽음의 방식이나 죽음 이후의 상태를 소망했는지도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원문에서는 마지막이 같기를 바라는 대상이 바로 앞의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인지, 하나의 백성으로 묘사된 야곱과 이스라엘인지 문법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발락이 바꾸려는 것은 장소다
발락은 즉시 항의합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무슨 일을 한 거예요? 내 원수들을 저주하라고 당신을 데려왔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한껏 복을 빌어 주었잖아요!」민수기 23:11 · 두루새김
발락은 발람을 데려오기 위해 사람을 보내고 보상을 약속했으며 제단과 제물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축복했습니다.
발람이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제 입에 넣어 주시는 말을 제가 그대로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민수기 23:12 · 두루새김
그런데 발락의 다음 행동은 이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다른 곳으로 가요. 거기서는 그 백성 전체가 아니라 한쪽 끝만 볼 수 있어요. 거기서 나를 위해 그들을 저주해 주세요.」민수기 23:13 · 두루새김
발락이 믿는 방식대로라면, 의식을 치르는 장소나 조건을 조정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얻을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발람이 전한 말씀대로라면, 장소를 바꾸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비스가 꼭대기에 있는 초핌 들판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제단 일곱 개를 다시 쌓고, 각 제단에 제물을 바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발람을 만나십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발람의 입에 말을 넣으십니다(23:16). 이번에는 발락 자신이 발람에게 묻습니다.
발람이 돌아가 보니, 발락이 자기가 바친 번제 곁에 서 있었고 모압의 관리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물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민수기 23:17 · 두루새김
그는 발람이 하나님에게서 말을 듣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자신에게 불리할 때는 계속해서 다른 말을 얻으려 합니다.
이 장에서 발락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들은 말씀과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에서 축복했다는 말은 같은 어근이 반복되는 형태로 강조됩니다. 발락이 왜 시야를 제한하려 했는지는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규모 전체를 보지 않는 편이 저주하기 쉽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고, 다른 장소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고 기대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해석이든 발락이 문제의 원인을 장소나 관찰 조건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두 번째 발언 —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이루신다
두 번째 발언은 첫 번째보다 훨씬 직접적입니다.
발람이 시를 읊었습니다. 「발락이여, 일어나 들으십시오. 치포르의 아들이여,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민수기 23:18 · 두루새김
첫 번째 시가 발락의 요청을 되풀이하며 시작했다면, 두 번째 시는 발락에게 직접 주의를 요구하며 시작합니다. 「일어나」, 「들으십시오」, 「귀를 기울이십시오」라는 명령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아니시니 뜻을 바꾸지도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고도 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씀하시고도 이루지 않으시겠습니까?」민수기 23:19 · 두루새김
발락은 하나님의 뜻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며 장소를 바꾸었습니다. 발람은 바로 그 기대를 겨냥해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축복하라는 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으니 저는 그 축복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민수기 23:20 · 두루새김
발락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은 발람에게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가 하나님의 결정을 뒤집을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을 때,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길고 복잡했습니다. 야곱의 가족은 이집트로 내려갔고, 그 자손은 그곳에서 종살이했습니다. 광야에서도 여러 번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발람은 요단 건너편의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자신이 하신 말씀을 버리지 않으신다고 선포합니다.
눈앞에 서 있는 백성의 존재 자체가 그 말씀의 신실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32:14는 모세의 간구 뒤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요나서 3:10에서도 하나님이 니느웨에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민수기 23:19를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응답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읽으면, 이러한 본문들과 긴장이 생깁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발람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행동 방식을 한꺼번에 설명하려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이미 선언하신 복을 인간의 요구에 따라 뒤집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이스라엘
두 번째 발언은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를 설명합니다.
「그분께서는 야곱 가운데 재앙을 보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가운데 고난을 보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 가운데 왕을 향한 환호가 울립니다.」민수기 23:21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고난을 겪었습니다. 백성이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앞의 민수기 21장에서도 불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안에서 재앙이나 고난을 보지 않으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재앙인가, 악행인가
이 구절의 두 히브리어 명사는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아웬은 악행, 불의, 재앙을 가리킬 수 있고, 아말은 고생, 고난, 수고, 해악과 관련된 뜻으로 사용됩니다. 본문의 두 단어는 시 안에서 서로 짝을 이룹니다.
첫째는 두루새김처럼 「재앙」과 「고난」의 의미를 중심으로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는 발락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으시며, 그들에게 저주에 따른 재앙을 정해 놓지 않으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악행과 불의의 의미를 중심으로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을 저주하여 버릴 이유로 삼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이 구절을 이스라엘에게 고난이나 죄가 전혀 존재한 적이 없다는 선언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선 민수기의 이야기들이 그것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의 직접적인 문맥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락의 시도입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을 저주하기로 결정하셨느냐가 핵심 질문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 왕
「왕을 향한 환호」는 전쟁의 함성일 수도 있고, 왕을 맞이하거나 기뻐하는 환호일 수도 있습니다. 이 표현만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의식이나 장면을 가리키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인간 왕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고 있는 백성입니다. 출애굽기 15:18에서 이스라엘은 바다를 건넌 뒤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이러한 문맥에서 왕을 향한 환호는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발락은 모압의 왕입니다. 그는 관리들을 움직이고 발람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가운데에는 발락이 통제할 수 없는 왕의 다스림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
발람은 곧바로 출애굽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분께는 들소와 같은 힘이 있습니다.」민수기 23:22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사건은 발락도 알고 있었습니다(민수기 22:5). 그러나 발락의 설명과 발람의 설명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발락은 이집트에서 나온 백성을 보았습니다.
발람은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또한 22절의 「들소와 같은 힘」은 힘센 야생 동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분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대명사가 하나님을 가리키는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지에 관해서는 읽기가 갈립니다.
두루새김처럼 하나님의 압도적인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고, 하나님이 이끌어 내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힘의 가장 깊은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점은 앞의 출애굽 선언과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현재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군사력만이 아니라, 그들을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행동을 보아야 합니다.
「참으로 야곱 가운데는 징조를 살피는 일이 없고, 이스라엘 가운데는 점을 치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듣게 될 것입니다.」민수기 23:23 · 두루새김
하나는 두루새김의 「야곱 가운데는 징조를 살피는 일이 없고, 이스라엘 가운데는 점을 치는 일이 없습니다」처럼 이스라엘 안에 그런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인지는 징조를 살피거나 점을 치는 일에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징조를 살피거나 점을 치는 일이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발락이 시도하는 저주가 하나님의 복을 뒤집을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히브리어 전치사의 쓰임과 문맥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생깁니다. 두 읽기의 근거가 모두 있으므로 하나만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발락은 발람의 말을 통해 이스라엘의 미래를 바꾸려 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의 행동이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선언합니다.
사자처럼 일어나는 백성
두 번째 발언은 강렬한 동물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보십시오. 이 백성이 사자처럼 일어나고, 사자처럼 몸을 일으킵니다. 먹이를 먹고 죽임당한 이들의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않을 것입니다.」민수기 23:24 · 두루새김
발락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이제 그 두려움을 없애 주기는커녕, 이스라엘을 강력한 사자에 비유합니다.
고대의 시에서 사자는 압도적인 힘과 왕의 권세, 전투에서의 승리를 묘사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49:9에서도 야곱은 유다를 사자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이스라엘이 앞으로 행하는 모든 폭력이 정당하다는 선언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전투의 힘과 승리를 묘사하고 있을 뿐, 모든 형태의 폭력을 허용하는 명령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발락이 듣고 싶었던 말과 실제로 들은 말의 거리가 첫 번째 발언보다 더 커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자처럼 강한 백성으로 묘사되지만, 바로 앞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그 힘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설명되지 않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강한 백성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광야에서 그들이 얼마나 자주 두려워하고 흔들렸는지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백성이 이제 외부인의 입을 통해 사자처럼 일어나는 백성으로 선포됩니다.
이것은 그들의 현재 능력에 대한 단순한 평가라기보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을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에 근거한 선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저주도 축복도 하지 말라는 왕
발람의 두 번째 발언을 들은 발락은 이전과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아요!」민수기 23:25 · 두루새김
처음에 그는 저주를 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 연속 축복을 듣고 나자,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발람의 말이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이제 그가 기대한 영향력이 자신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민수기 23:26 · 두루새김
발락은 처음부터 발람을 자기 뜻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돈과 명예를 약속하고, 장소와 의식을 준비하면 원하는 말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발람 자신의 인격이 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발언과 행동에 관한 평가는 이야기 전체를 통해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만 이 장의 두 예언에서는 발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말씀을 바꾸어 발락을 만족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분명합니다.
발락은 저주하는 말을 사려고 했지만, 발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주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세 번째 제단 — 실패한 방법을 다시 반복하다
발락은 다시 한 번 발람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 합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오세요. 내가 당신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겠어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거기서 나를 위해 그들을 저주하는 일을 좋게 여기실지도 몰라요.」민수기 23:27 · 두루새김
이제 발락은 단순히 발람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 자체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발락은 발람을 황무지가 내려다보이는 브올 꼭대기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발람은 다시 제단 일곱 개와 수소 일곱 마리,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발락은 다시 그대로 행합니다.
그가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장소와 종교 의식을 얼마든지 바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발락은 방법을 고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결과 자체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결론 — 다시 제단 앞에 선 발락
그는 자신이 원하는 말을 얻기 위해 장소를 바꾸고 제물을 바칩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하나님이 발람의 입에 넣어 주신 말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복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복되게 여기신다는 사실은 그들의 모든 행동을 승인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브올 꼭대기에 다시 일곱 제단이 세워졌습니다.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가 준비되었습니다. 발락은 이번에도 발람이 요구하는 일을 모두 행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여전히 요단 건너편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들은 발락의 제단을 보지 못하고, 발람의 시를 듣지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발람의 입에서는 그들에 관한 하나님의 판단이 거듭 선포되고 있습니다.
발락은 다음 장소에서 어떤 말을 듣게 될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자는 이미 그보다 중요한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으니 저는 그 축복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제단의 불이 피어오르기 전에, 이 장은 그 사실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