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28장
이 장의 자리 · 26–36장 · 새 세대와 땅 준비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 매일 이어지는 예배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인구조사가 끝났고, 땅을 상속받을 사람들의 권리가 확인되었으며, 모세를 이을 여호수아도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무엇이 준비되어야 할까요?
전쟁 계획이나 성읍의 배치, 새로운 지도자의 통치 방식이 나올 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뜻밖에도 매일 바쳐야 할 어린 숫양 두 마리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아침에 한 마리, 저녁에 한 마리.
안식일에는 무엇을 더 바쳐야 하는지, 달이 바뀌는 날에는 어떤 제물을 준비해야 하는지, 유월절과 칠칠절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이어집니다. 민수기 28장은 언뜻 제물의 종류와 수량을 정리한 규정집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떤 땅에서 살아갈지를 말씀하신 뒤, 그들이 그 땅에서 어떤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치십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 매주 안식일, 매달 첫날, 그리고 해마다 돌아오는 절기.
시간의 간격은 점점 넓어지지만, 그 모든 시간의 중심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특별한 날은 평범한 날의 신실함을 없애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위에 더해집니다.
하나님께 음식이 필요한 것일까요? 하나님은 왜 자신에게 바칠 제물을 그토록 정확한 시간과 분량에 맞추어 준비하라고 하실까요?
하나님의 음식이라는 낯선 표현
이 장의 첫 명령은 앞으로 나올 모든 제사 규정을 하나로 묶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명령하여라. 『너희는 정해진 때에 내 제물을 반드시 내게 바쳐라. 그것은 불로 바쳐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가 되는 내 음식이다.』」민수기 28:2 · 두루새김
하나님은 정말 음식을 드시는가
고대 세계에서는 신에게 음식을 바치는 행위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신전에서 동물을 잡고 곡식과 술을 바치는 것은 신을 섬기는 종교 행위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시편 50:12–13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배가 고프더라도 인간에게 말씀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시며, 온 세계와 그 안에 있는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어서 자신이 수소의 고기를 먹거나 숫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따라서 민수기 28:2의 「내 음식」을 하나님이 생존하기 위해 드셔야 할 식량이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음식은 인간의 삶에서 관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족은 함께 식사하고, 손님을 맞이하면 음식을 대접하며, 중요한 약속과 기쁨의 자리에도 식사가 놓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4:9–11에서는 언약을 맺은 뒤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하나님께 음식을 바친다는 표현은 그분께서 백성과 맺으신 관계 안에서 정해진 예물을 받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제사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서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
두 번째 표현은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입니다.
창세기 8:21에서는 노아가 홍수 이후 번제를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레위기 1:9에서도 번제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향기로 묘사됩니다.
민수기 28:2는 하나님이 정하신 제물이 그분께 받아들여지는 예배 행위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제물을 준비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식과 때에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정해진 때에 바쳐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예배의 시간을 정해 주십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자신의 필요나 감정에 따라서만 예배하는 백성이 아닙니다. 정해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물의 양뿐인가
민수기 28장에서 하나님은 실제로 정해진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따라서 제물의 구체적인 종류와 분량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다른 본문들은 제사를 바친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동으로 올바르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사무엘상 15:22에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번제와 희생 제물을 기뻐하시는 것보다 그분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1:11–17에서는 하나님이 많은 제물과 절기 모임을 꾸짖으시면서, 악행을 멈추고 정의를 구하며 억압받는 사람을 도우라고 요구하십니다.
이러한 본문들이 민수기 28장의 제사 규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명령하신 예배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하여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민수기 28장의 제사 규정은 단순히 의식을 정확하게 수행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은 함께 이해되어야 합니다.
아침과 저녁 — 하루의 양끝에 놓인 번제
하나님이 가장 먼저 명령하신 것은 날마다 바치는 번제입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가 나 여호와야훼에게 불로 바칠 제물은 이러하다. 한 살 된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를 날마다 늘 바치는 번제로 바쳐라.』」민수기 28:3 · 두루새김
이 제사는 특별한 축제나 위기가 있을 때만 바치는 제사가 아닙니다. 문맥에서 「늘 바치는 번제」는 제물이 하루 종일 끊임없이 바쳐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해진 제사가 날마다 빠짐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린 숫양 한 마리는 아침에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해 질 무렵에 바쳐라.』」민수기 28:4 · 두루새김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하루는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가 반복되는 시간 안에 놓이게 됩니다.
왜 아침과 저녁인가
본문은 아침과 저녁을 택하신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가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저녁에 일을 마치는 사람들도 공동체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매일 똑같은 행동을 직접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제사는 제사장들이 맡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는 공동체 전체의 정기적인 예배로 명령되어 있습니다.
백성의 모든 일상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질서입니다.
이러한 정기적 제사는 이미 출애굽기 29:38–42에도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도 어린 숫양 두 마리를 날마다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이처럼 늘 바치는 번제는 시나이 산에서 바치던 제사다. 나 여호와야훼에게 불로 바치는 제물로,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가 된다.』」민수기 28:6 · 두루새김
시나이 산에서 시작된 예배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을 앞둔 지금도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시나이 산 아래에 있었고, 지금은 모압 평원에 있습니다.
세대도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정기적인 제사는 계속됩니다.
늘 바치는 제사는 특정한 장소나 한 세대의 경험에 묶인 제사가 아니라, 공동체의 시간이 이어지는 동안 계속되어야 할 예배입니다.
고기만이 아니라 곡식과 기름과 술도 함께 바친다
날마다 바치는 제사는 어린 숫양 두 마리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바치는 곡식 제물과, 술을 부어 바치는 술 제물도 함께 준비합니다. 본문은 어린 숫양 한 마리마다 고운 가루 10분의 1에파, 기름 4분의 1힌, 술 제물 4분의 1힌을 규정합니다. 이처럼 정확한 분량이 제시된다는 것은 제사가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치러지는 행사가 아니라 준비와 책임을 요구하는 정기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밭을 일구고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를 가꾸며 가축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얻는 것들이 자기 삶만을 위한 물건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연결됩니다.
신약에서는 이 반복되는 제사를 어떻게 읽는가
히브리서 10:11–14는 제사장들이 날마다 반복해서 제사를 드리는 모습과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제사를 대비합니다. 이것은 반복되는 옛 제사와 그리스도의 희생의 관계에 대한 신약의 신학적 해석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28장의 어린 숫양 두 마리를 곧바로 예수님의 두 가지 역할에 대응시키거나, 각 절기의 동물 수량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숨은 암호를 찾아낼 근거는 없습니다. 구약 본문이 먼저 보여 주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도록 명령받은 정기적인 제사의 질서입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이 시간을 「두 저녁 사이」라고 표현합니다. 두 저녁이라는 쌍수형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정확히 하루 중 어느 시각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 차이가 있습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때부터 해가 지는 때 사이로 읽기도 하고, 해 질 무렵의 시간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 장은 그 시간을 현대의 시계처럼 몇 시 몇 분으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안식일 — 쉬는 날에도 계속되는 제사
매일의 제사를 설명한 뒤 하나님은 안식일에 바칠 제물을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는 한 살 된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를 바쳐라. 고운 가루 10분의 2에파에 기름을 섞은 곡식 제물과, 그에 곁들이는 술 제물도 바쳐라.』」민수기 28:9 · 두루새김
「『이것은 안식일마다 바치는 번제다. 늘 바치는 번제와 그에 곁들이는 술 제물에 더하여 바쳐야 한다.』」민수기 28:10 · 두루새김
따라서 안식일에는 매일의 번제로 어린 숫양 두 마리, 안식일의 번제로 어린 숫양 두 마리, 모두 네 마리를 바치게 됩니다. 안식일은 일을 멈추는 날입니다. 출애굽기 20:8–11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지키며 일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8장에서 안식일은 제사가 멈추는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더해지는 날입니다.
이스라엘은 일상적인 노동에서 쉬지만, 그날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립니다. 노동을 멈추는 일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의 쉼은 단순히 몸의 피로를 회복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날을 구별하여 지키는 일입니다.
매일의 제사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계속 이어짐을 나타낸다면, 안식일의 추가 제사는 그 지속되는 삶 속에서 특별히 구별된 시간을 나타냅니다.
매달 초하루 — 새로운 달에도 이어지는 예배
「『매달 첫날에는 어린 수소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한 살 된 어린 숫양 일곱 마리를 나 여호와야훼에게 번제로 바쳐라. 모두 흠 없는 것으로 바쳐라.』」민수기 28:11 · 두루새김
이제 제사의 주기가 하루와 일주일을 넘어 한 달로 넓어집니다.
이스라엘의 달력에서 달의 시작은 중요한 시간의 경계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달의 주기와 관련된 달력을 사용했으며, 초하루, 곧 본문이 말하는 「매달 첫날」은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번제 동물은 모두 열 마리입니다. 여기에 숫염소 한 마리를 정화 제물로 더합니다. 또한 동물의 종류에 따라 곁들이는 곡식 제물과 술 제물의 분량이 달라집니다. 수소에는 더 많은 곡식과 포도주가 배정되고, 숫양과 어린 숫양에는 각각 다른 분량이 배정됩니다.
새로운 달을 정결하게 시작하다
초하루 제사에는 앞선 매일의 번제나 안식일의 번제와 구별되는 요소가 등장합니다.
「『또 숫염소 한 마리를 나 여호와야훼에게 정화 제물로 바쳐라. 늘 바치는 번제와 그에 곁들이는 술 제물에 더하여 바쳐야 한다.』」민수기 28:15 · 두루새김
여기에서 「정화 제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타트(חַטָּאָה)입니다. 전통적으로 「속죄제」 또는 「속죄 제물」로 옮겨 온 말입니다. 레위기의 제사 규정을 고려하면 죄를 다루는 기능뿐 아니라 성소와 공동체의 정결에 관계된 기능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절은 초하루마다 어떤 특정한 죄가 발생하기 때문에 숫염소 한 마리를 바쳐야 한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초하루 제사를 매달 범한 죄를 한꺼번에 용서받는 행사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공동체의 예배가 감사와 헌신의 표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과 정결을 유지하는 일도 공동체의 정기적인 제사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질서를 유지하면서, 달이 바뀌는 시점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립니다. 개인이 특별한 소원을 품었을 때만 제사를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달력에 따라 제사가 드려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개인이 특별한 필요를 느끼는 순간에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정기적인 시간 속에서도 표현됩니다.
이제 달력은 더 넓은 주기로 나아갑니다.
한 해에 한 번 돌아오는 절기들이 등장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 — 해마다 기억하는 출애굽
「『첫째 달 14일은 나 여호와야훼의 유월절이다.』」민수기 28:16 · 두루새김
앞선 초하루 제사에서는 여러 동물과 제물의 분량을 자세히 설명했지만, 유월절을 소개하는 16절은 단지 날짜와 절기 이름을 밝힙니다. 유월절에 관한 기본적인 규정은 이미 출애굽기 12장에 주어졌습니다. 그곳에는 유월절 양을 준비하는 일과 유월절 식사, 누룩 없는 빵에 관한 명령이 나옵니다.
이 장의 관심은 정기적인 공동체 제사의 시간과 제물을 규정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9절부터 나오는 절기 번제를 유월절 양 자체와 동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은 유월절 날짜를 밝힌 뒤, 그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축제 기간의 제물을 설명합니다.
「『그달 15일부터는 축제다. 일곱 날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민수기 28:17 · 두루새김
두 절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날짜와 규정에서 구별됩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을 지키게 하시고, 그날을 기념하여 대대로 절기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누룩 없는 빵 역시 출애굽과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12:39는 이스라엘이 급히 이집트에서 나오느라 반죽을 부풀릴 시간이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무교절의 음식은 단순한 식생활 규정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역사에서 나온 백성인지를 기억하게 하는 표지입니다.
왜 매년 기억해야 하는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면 출애굽의 기억이 왜 계속 필요할까요?
그들은 더 이상 이집트에서 종살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광야의 긴 이동 생활도 끝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새로운 땅에서 살면서도 자신들의 출발점을 잊지 않도록 절기를 정해 주십니다.
그들은 단순히 가나안 땅에 살게 된 새로운 주민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백성입니다.
앞으로 농사를 짓고 성읍을 세우고 땅을 상속받게 되더라도, 자신들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유월절은 바로 그 기억을 해마다 되살리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는 마음속 활동에 머물지 않습니다.
특별한 음식을 먹고, 정해진 날에 모이고,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기억하라는 명령뿐 아니라, 그 기억을 해마다 자신들의 삶 속에서 다시 행하도록 하는 절기를 받았습니다.
민수기 26장에서 확인된 것처럼 광야를 처음 출발했던 세대는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을 받을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유월절을 지키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조상에게 행하신 구원을 자신의 공동체가 계속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한 세대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예배와 생활 속에서 전해집니다.
무교절의 일곱 날 — 축제 가운데서도 멈추지 않는 번제
무교절의 제사 규정은 더욱 구체적입니다.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어라. 평소에 하는 일은 어떤 것도 하지 마라.』」민수기 28:18 · 두루새김
공동체가 함께 모여 그 시간을 구별하도록 하는 명령입니다. 이는 절기의 시간이 일상적인 생산 활동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곳의 일을 금지하는 표현을 모든 절기에서 안식일과 완전히 동일한 세부 규정이 적용된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일곱 날 동안 날마다 이와 같이 음식을 바쳐라. 이것은 나 여호와야훼에게 불로 바쳐 나를 기쁘게 하는 향기가 되는 제물이다. 늘 바치는 번제와 그에 곁들이는 술 제물에 더하여 바쳐야 한다.』」민수기 28:24 · 두루새김
무교절에 매일 바치는 번제는 어린 수소 두 마리, 숫양 한 마리, 한 살 된 어린 숫양 일곱 마리입니다. 여기에 곡식 제물이 따라가고, 속죄를 위한 숫염소 한 마리도 바칩니다. 이 반복은 절기가 단순히 시작과 끝의 특별한 행사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절기 전체가 하나님께 구별되어 있습니다.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이 있고, 마지막 날에도 거룩한 모임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도 제사는 계속됩니다.
특별한 제사도 매일의 제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날마다 늘 바치는 아침 번제에 더하여 이 제물들을 바쳐라.』」민수기 28:23 · 두루새김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큰 구원을 기념하는 일과, 오늘도 계속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일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출애굽을 기억하는 특별한 절기가 매일의 예배를 대신하지 않고, 매일의 예배가 출애굽의 기억을 불필요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두 시간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이어집니다.
기쁨의 절기에 왜 속죄가 필요한가
22절에는 숫염소 한 마리를 정화 제물로 바쳐 속죄하도록 하는 명령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공동체라고 해서 거룩함과 속죄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이곳에서 속죄를 위한 제물은 축제와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는 일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28장은 출애굽의 절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축제가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과거의 구원을 기억하는 절기와는 다른 방향에서 시작합니다.
칠칠절 —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다
「『첫 열매의 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어라. 그날은 너희가 칠칠절을 지키며 새 곡식으로 만든 제물을 나 여호와야훼에게 바치는 날이다. 평소에 하는 일은 어떤 것도 하지 마라.』」민수기 28:26 · 두루새김
앞선 유월절과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역사를 중심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칠칠절은 수확과 연결됩니다.
「칠칠절」은 일곱 주를 세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레위기 23:15–16에서는 안식일 이튿날부터 일곱 주를 세고, 그다음 날 새 곡식 제물을 바치라는 규정이 나옵니다. 신명기 16:9–12에서도 일곱 주를 센 뒤 칠칠절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이 절기의 시간은 농사를 짓는 생활의 수확 주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곡식을 바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새 곡식으로 만든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표현은 그해 수확한 곡식과 관련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손으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며 추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열매를 온전히 자기 능력의 결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얻은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6:10은 칠칠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복을 주신 만큼 자원하는 예물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칠칠절의 제사는 단순히 농사의 성공을 축하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받은 것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그분의 은혜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디에서 데려오셨는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칠칠절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에서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는 구원의 역사에 관한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삶에서 받는 열매에 관한 감사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수확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먼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아가며 얻는 열매를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장면입니다.
칠칠절에도 거룩한 모임과 정화 제물이 있다
칠칠절에는 거룩한 모임이 있어야 하고, 평소에 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제물의 구성은 무교절에 규정된 절기 번제와 같습니다. 어린 수소 두 마리, 숫양 한 마리, 한 살 된 어린 숫양 일곱 마리입니다. 그에 곁들이는 곡식 제물도 바쳐야 합니다.
「『너희를 위해 속죄하도록 숫염소 한 마리도 바쳐라.』」민수기 28:30 · 두루새김
감사와 속죄가 같은 절기 안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16장의 칠칠절 규정에는 민수기 28장에서 직접 설명하지 않는 중요한 요소도 나옵니다. 그곳에서는 자녀와 남녀 종, 레위 사람, 나그네, 고아와 과부가 함께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도록 명령합니다(신명기 16:11). 또한 레위기 23:22에서는 수확할 때 밭의 끝까지 다 거두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를 위해 남겨 두라고 명령합니다.
민수기 28장은 제사에 필요한 제물과 분량을 설명하는 데 집중합니다. 그러나 같은 절기를 다루는 다른 율법 본문들은 그 감사가 공동체의 삶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백성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서로의 삶을 돌보아야 하는 백성이기도 합니다.
결론 — 새로운 땅에서도 아침은 다시 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룩한 시간을 따로 마련하라고만 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 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억하도록 하십니다. 그분은 매일의 노동과 쉼, 달의 변화와 계절의 수확,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사 속에서 자신의 백성을 만나시는 분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성막과 제사장 직분, 동물 제사 제도는 신약의 교회가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해야 하는 규범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를 모든 사람이 매일 정해진 분량의 종교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새로운 율법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28장의 직접적인 명령은 고대 이스라엘의 공동체 제사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천막을 거두고 정착하며, 밭을 일구고, 곡식을 거두고,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생활 속에서도 아침은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저녁도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그 반복되는 시간에 자신을 기억하고 예배하도록 명령하십니다.
특별한 승리의 날뿐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날에도.
풍성한 수확을 얻은 절기뿐 아니라,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아침과 저녁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삶은 특별한 날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다시 찾아오는 아침부터 이어집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더라도 하루는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아침에 어린 숫양 한 마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땅에서의 첫날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