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45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모든 것을 다스리는 왕은 어떤 분인가

시편 145편은 하나님을 왕으로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처음부터 위엄과 영광, 능력과 왕으로 다스리심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시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왕좌도, 군대도, 원수를 제압하는 승리도 아닙니다. 노래가 절정에 이르면 왕의 모습은 뜻밖에도 「주님께서는 손을 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저마다 바라는 대로 배부르게 하십니다」(16절)라고 묘사됩니다.

바로 앞의 시편 144편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왕의 손을 전쟁에 익숙하게 하시는 분으로 등장하셨습니다(144:1). 이제 시편 145편에서는 하나님 자신의 손이 펼쳐집니다. 그 손은 살아 있는 것들을 먹이고, 넘어지는 사람들을 붙들며, 몸이 굽은 사람들을 일으킵니다.

두 시편이 의도적으로 대조되도록 배열되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란히 읽으면 질문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을 다스릴 능력이 있는 왕은 그 능력을 어디에 사용하십니까?

시편 145편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설명하면서 이 질문에 답합니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위대하시지만, 그 위대함은 세상을 압도하는 권력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생명이 먹을 것을 얻는 일에도, 쓰러진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일에도 하나님의 다스림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심을 높이 찬양할수록 시선은 오히려 낮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시편의 표제는 간결합니다. 「다윗의 찬양입니다.」 히브리어로 「찬양」은 테힐라(⁨תְּהִלָּה⁩)입니다. 시편 전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이름도 같은 낱말의 복수형입니다. 시편에는 수많은 찬양 노래가 있지만, 표제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여 노래 자체를 「찬양」이라고 부르는 시편은 145편뿐입니다.

또한 145편은 표제에 다윗의 이름이 붙은 마지막 시편입니다. 이어지는 146–150편은 모두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는 외침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노래들입니다. 따라서 시편집의 현재 배열에서 145편은 다윗의 찬양이 마무리되면서 마지막 다섯 편의 찬양으로 넘어가는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이 배치는 시편의 시작과도 의미 있게 이어집니다. 시편 2편은 세상의 왕들과 통치자들이 여호와야훼의 권위에 맞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시편 145편에 이르면 다윗의 이름이 붙은 노래에서 하나님이 모든 시대의 왕으로 찬양받으십니다.

시편 145편은 히브리어 알파벳에 따라 구성된 시입니다. 각 절은 차례대로 히브리어 자음으로 시작합니다. 알파벳을 이용해 노래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시편 119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형식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질서 있게, 가능한 한 넓게 찬양하려는 시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편의 실제 움직임은 단순히 알파벳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찬양에 참여하는 존재들이 점차 늘어납니다.

· 1–3절: 「나」의 찬양

· 4–7절: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사람들의 찬양

· 8–13절: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과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들이 전하는 찬양

· 14–20절: 하나님의 돌봄과 구원에 대한 증언

· 21절: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향한 찬양의 기원

처음에는 한 사람이 하나님께 말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고, 세대들이 이어지며, 마침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처럼 찬양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시편이 찬양하는 하나님 자신이 온 세상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6145편 본문 읽기 →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함을 어떻게 전할 수 있는가

시편 145:1–7 본문 →

1–3절: 왕을 향해 말하는 사람

다윗의 찬양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나는 당신을 높이겠습니다. 영원히, 또 영원히 당신의 이름을 기리겠습니다.시편 145:1 · 두루새김

다윗의 이름이 붙은 노래에서 하나님은 왕으로 불리십니다. 이 시편은 인간 왕권의 구체적인 정치 상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윗이라는 왕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찬양에서 하나님을 궁극적인 왕으로 높이는 구조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왕권은 백성을 다스리는 권위와 책임을 포함했습니다. 왕의 중요한 임무에는 공의를 세우고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도 있었습니다(시 72:1–4). 시편 145편은 하나님을 왕이라고 부른 뒤, 그분이 실제로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차례로 보여줍니다.

날마다 당신을 기리고 영원히, 또 영원히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겠습니다.시편 145:2 · 두루새김

「날마다」와 「영원히」는 서로 다른 시간의 규모를 가리킵니다. 화자는 끝없는 찬양을 말하면서도 그 찬양이 이루어지는 자리를 오늘이라는 하루 속에 둡니다. 끝없는 찬양은 막연한 먼 미래에만 속한 일이 아닙니다. 매일의 시간 속에서 반복됩니다.

그런데 3절에 이르면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함에 대해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위대하시고 더없이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그 위대하심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시편 145:3 · 두루새김

「헤아릴 수 없습니다」(⁨חֵקֶ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깊이 살피고 조사하여 알아내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이 아주 크시다는 뜻보다 강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함은 인간이 탐구하여 그 끝에 도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헤아릴 수 없다면, 사람은 어떻게 그 위대함을 알리고 찬양할 수 있을까요?

바로 다음 절이 대답합니다.

4–7절: 헤아릴 수 없지만 이야기할 수 있다

주님,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당신이 하신 일을 찬양하고 당신이 힘으로 이루신 일들을 알립니다.시편 145:4 · 두루새김

시인은 하나님의 본질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주님께서 하신 일」을 이야기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하신 일들은 기억하고 전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을 경험하지 않은 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출애굽 이야기를 들으며 여호와야훼가 어떤 분인지 배웠습니다. 시편 78편과 105편은 이런 기억의 전승을 길게 보여줍니다.

5–7절에는 비슷한 동사가 반복됩니다. 이야기하고, 말하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 말의 주체는 계속 바뀝니다.

당신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나는 읊조리겠습니다.시편 145:5 · 두루새김
그들은 당신의 두려운 일들이 지닌 힘을 말하고 나는 당신의 위대하심을 이야기하겠습니다.시편 145:6 · 두루새김

「저는」과 「사람들은」이 교차합니다. 시인의 목소리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함께 찬양을 구성합니다.

5절의 「이야기하겠습니다」(⁨שִׂיחַ⁩)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생각하거나 깊이 헤아린다는 의미와 말하거나 이야기한다는 의미를 모두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마음속으로 깊이 되새긴다는 이해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주변에 반복되는 「알릴 것입니다」, 「말할 것입니다」, 「이야기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을 고려하면 두루새김처럼 입으로 이야기하는 행동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깊이 생각한 하나님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이 드러나는 행동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출애굽의 재앙이나 바다가 갈라지는 사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움을 기뻐하는 노래로 이어 갑니다.

그들은 당신의 크나큰 선하심을 기억하며 쏟아 내듯 이야기하고 당신의 의로움을 기뻐 노래합니다.시편 145:7 · 두루새김

「기억하며 이야기를 쏟아 놓고」(⁨נָבַע⁩)의 히브리어 동사는 물이 솟거나 흘러넘치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마음에 간직해 온 하나님의 선하심이 말로 넘쳐 나오는 장면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을 과시하듯 늘어놓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능력이 선하심과 의로움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기쁨의 노래가 됩니다.

시인은 이제 하나님의 성품을 직접 선언합니다.

모든 창조물에 미치는 자비

시편 145:8–10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는 은혜를 베푸시고 가엾이 여기시는 분, 노하기는 더디 하시고 한결같은 사랑이 크신 분이십니다.시편 145:8 · 두루새김

8절은 출애굽기 34:6에서 하나님이 모세 앞에 자신의 이름과 성품을 밝히신 선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이 선언이 나오는 자리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언약을 심각하게 어긴 뒤입니다.

그때 여호와야훼는 자신이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쉽게 화내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출애굽기 34:7에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도 함께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분은 반역한 백성을 즉시 끝장내시는 대신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 갈 길을 여십니다.

시편 145편은 바로 이 성품을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심을 노래하는 한가운데 놓습니다.

왕의 권력을 설명할 때 사람은 흔히 적을 제압하는 힘이나 명령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능력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왕으로 찬양하면서 호의를 베푸심과 불쌍히 여기심, 쉽게 화내지 않으심과 한결같은 사랑을 먼저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왕이신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분의 능력만이 아니라 그 능력을 사용하시는 성품입니다.

이어지는 9절은 이 선언의 범위를 크게 넓힙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모두에게 선하시고 지으신 모든 것을 가엾이 여기십니다.시편 145:9 · 두루새김

출애굽기 34장에서 자비의 선언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회복하는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반면 시편 145편은 그 선하심이 「모두」에게 미치며 하나님이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불쌍히 여기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세상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단순히 인간이 하나님과 맺는 종교적 관계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창조된 세계가 하나님의 돌봄 안에 있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뒤이어 나오는 15–16절의 먹을 것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이 선언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여호와야훼여, 지으신 모든 것이 당신께 감사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기립니다.시편 145:10 · 두루새김

여기에는 두 종류의 응답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창조물이 실제로 인간처럼 말을 한다는 뜻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편 19:2–5에서도 하늘과 궁창은 하나님의 영광을 알리지만, 그 말소리는 사람이 하는 말과 다릅니다. 창조물이 존재하며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창조주의 위대함을 증언한다는 시적 표현입니다. 반면 「주님께 충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며 그분이 하신 일을 말로 증언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렇게 만물이 드리는 찬양과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드리는 찬양이 만납니다. 시인은 이제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밝힙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의 자비가 이스라엘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구약 안에서도 반복됩니다. 요나서에서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가 요나에게 불편한 문제가 됩니다. 특히 요나서 4:2는 출애굽기의 자비 선언을 다시 사용하고, 4:11은 하나님이 큰 성읍의 사람들과 많은 가축까지 돌보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시편 103:8도 출애굽기 34장의 자비 선언을 되풀이합니다.

영원한 왕권의 실제 모습

시편 145:11–16 본문 →

11–13절: 왕권의 영광을 널리 알리다

그들은 당신 나라의 영광을 말하고 당신의 힘을 이야기합니다.시편 145:11 · 두루새김
그분이 힘으로 이루신 일들과 그 나라의 찬란한 영광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합니다.시편 145:12 · 두루새김

앞부분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는 목적은 세대를 잇는 찬양이었습니다. 여기서는 그 목적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심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입니다.

11절의 「왕으로 다스리시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מַלְכוּת⁩)는 왕국이나 왕의 통치권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1절의 「왕이신 제 하나님」, 13절의 「다스림」과 연결되므로 두루새김이 「왕으로 다스리시는」이라고 풀어 옮긴 것은 본문의 흐름을 잘 살립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특정한 영토의 크기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미치는 시간과 범위로 묘사됩니다.

주님, 당신의 나라는 모든 시대의 나라이고 당신의 다스림은 대대로 이어집니다.시편 145:13 · 두루새김

4절에서 세대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인간의 시간 단위였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그 모든 세대를 관통합니다.

세대는 바뀝니다.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으며, 왕들이 왕좌에 올랐다가 내려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은 어느 한 세대에 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한 인간의 생애보다 길고, 한 왕조의 역사보다 오래 이어집니다.

전해 내려오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13절과 14절 사이에 알파벳 열네 번째 글자로 시작하는 행이 없습니다(아래 「조금 더 깊이」).

그런데 시인은 영원한 다스림을 선언한 직후 전혀 다른 장면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14절: 왕의 위엄이 향하는 자리

여호와야훼께서는 넘어지는 이들을 모두 붙드시고 몸 굽은 이들을 모두 일으켜 세우십니다.시편 145:14 · 두루새김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신다는 말을 들으면, 시인은 그분이 하늘과 땅을 명령하시거나 민족들을 굴복시키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넘어지는 사람들과 몸이 굽은 사람들입니다.

「붙드시고」는 쓰러지는 것을 받쳐 주는 행동을, 「일으켜 주십니다」는 구부러지거나 눌린 것을 곧게 일으켜 세우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몸이 굽은 모든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시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몸이 허약한 사람일 수도 있고, 고난과 압박 아래 짓눌린 사람들을 함께 떠올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왕권은 종종 다른 사람들을 자신 앞에 엎드리게 하는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시편 145편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쓰러진 사람들을 일으키시는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붙들고 일으키신다는 방향으로 노래를 전개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낮은 사람들은 왕의 시야에서 사라진 존재가 아닙니다.

15–16절: 모든 생명이 바라보는 손

14절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여주었다면, 15절은 시야를 다시 온 생명으로 넓힙니다.

주님, 모두의 눈이 당신을 바라며 기다립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제때 먹을 것을 주십니다.시편 145:15 · 두루새김

여기서 「모든 생명」은 바로 다음 절의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연결됩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먹을 것을 필요로 하는 생명 전체를 바라보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눈들이 하나님을 향합니다. 하나님은 제때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리고 손을 펴십니다.

살아 있는 존재들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들이 의존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강한 생명도 스스로 생명의 모든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16절은 그 의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손을 펴시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바라는 대로 배불리 먹이십니다.시편 145:16 · 두루새김

왕의 손이 펴지고, 생명들이 배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말하던 노래는 이제 먹을 것을 얻는 생명들의 모습 속에서 왕의 선하심을 발견합니다.

다만 이 표현을 모든 생명이나 사람이 원하는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약속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구체적인 장면은 먹을 것을 주시고 생명을 유지하도록 돌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시인은 모든 생명이 늘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현실을 관찰하여 보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된 생명들이 하나님의 공급에 의존한다는 믿음을 찬양의 언어로 고백합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은 알파벳의 열세 번째 글자인 「멤」으로 시작하고, 14절은 열다섯 번째 글자인 「사메크」로 시작합니다. 그사이의 「눈」으로 시작하는 행이 없어 현재의 마소라 본문은 22자 가운데 21자로 구성됩니다. 반면 사해 사본의 시편 두루마리(11QPsᵃ)와 고대 그리스어 번역인 칠십인역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만하고 그분의 모든 행동에는 한결같은 사랑이 담겨 있다는 행이 있습니다. 하나는 본래 존재했던 행이 전하는 과정에서 빠졌다는 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빠져 있던 자리를 후대에 채워 넣었다는 읽기입니다. 추가된 행의 표현이 17절과 매우 가깝다는 점은 후자의 가능성을 살펴보게 합니다. 어느 쪽이 본래 형태인지는 확정할 수 없으며, 이 행을 싣지 않더라도 시편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공백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16절의 「바라는 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명사 라촌(⁨רָצוֹן⁩)은 바람, 뜻, 기쁨, 호의 등을 가리킬 수 있어, 생명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 주신다는 의미와 하나님이 호의를 베풀어 만족하게 하신다는 의미로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먹을 것을 기다리는 생명들의 모습을 강조한 문맥에 따라 「저마다 바라는 대로」라고 옮겼습니다. 시편 104:27–28에도 생명들이 하나님에게서 먹을 것을 기다리고, 하나님이 손을 펴실 때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14절의 왕의 모습은 시편 146:7–9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펼쳐지는데, 거기서 여호와야훼는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행하시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몸이 굽은 사람들을 일으키시는 분으로 찬양받으십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장면(마태복음 6:26)도 시편 145편을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공급과 인간의 신뢰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이 창조 세계의 돌봄이라는 주제와 이어집니다.

모두에게 가까우시지만 악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

시편 145:17–20 본문 →

17–18절: 하나님의 의로움과 가까이 계심

여호와야훼께서는 모든 길에서 의로우시고 하시는 모든 일에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시편 145:17 · 두루새김

17절은 앞에서 펼쳐진 하나님의 행동을 하나의 선언으로 묶습니다. 의로움은 하나님의 판단과 행동이 올바르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결같은 사랑은 그분이 관계 속에서 선하고 변함없이 행동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14절에서 쓰러진 사람들을 일으키시고 15–16절에서 생명들을 먹이시는 행동은 이 성품의 구체적인 사례로 읽힙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분을 부르는 모든 이,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십니다.시편 145:18 · 두루새김

시편 처음에서 하나님의 위대함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대함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도달할 수 없는 거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진실하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אֶמֶת⁩)는 「진실 안에서」 또는 「참되게」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말은 단순히 기도하는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평가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인정하고 충실하게 부르는 태도까지 포함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8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특별한 장소나 의식의 절차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언제나 인간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신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절은 하나님이 인간을 뛰어넘는 분이시라는 사실과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이 부르는 사람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19절: 생명의 필요에서 사람의 부르짖음으로

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바람을 이루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어 그들을 구해 주십니다.시편 145:19 · 두루새김

19절의 「바라는 것」과 16절의 「바라는 대로」에는 원문에서 같은 히브리어 명사 라촌이 쓰입니다. 하지만 두 구절의 상황은 다릅니다. 16절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먹을 것을 얻습니다. 19절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두 구절 사이에서 시선은 생명 전체의 필요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간절한 부탁으로 옮겨 갑니다. 하나님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부르는 사람들의 간절한 부탁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다음 절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분의 위대함과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와 충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시편의 수많은 탄식시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던 응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편 145편에는 시인 자신이 겪는 특별한 위기가 서술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찬양은 고통받는 사람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소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0절: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은 모순되는가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지키시고 악한 이들은 모두 없애십니다.시편 145:20 · 두루새김

9절에서는 하나님이 모두에게 선하시다고 했습니다. 14절에서는 넘어지는 모든 사람을 붙드신다고 했습니다. 16절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배부르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절에서는 악한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키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모든 창조물에 미친다는 선언과, 하나님이 악한 사람들을 멸망시키신다는 선언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합니다. 앞의 선언은 하나님이 창조된 세계를 어떻게 대하시는가에 관한 말입니다. 뒤의 선언은 하나님이 악을 어떻게 대하시는가에 관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의 행동을 똑같이 옳다고 인정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왕권 이해에서 의로운 통치에는 억압받는 사람을 구하고 악을 막는 일이 포함됩니다. 시편 72:4에서도 왕이 가난한 백성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억압하는 사람을 꺾기를 구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45편의 마지막 심판 선언은 앞에서 말한 선하심과 분리된 별개의 주제가 아닙니다. 다만 본문은 자비와 심판이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어떤 순서로 실현되는지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관계를 하나의 단순한 공식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악한 사람들의 운명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먼저 고백합니다. 이 노래에서 심판은 찬양의 유일한 주제도, 마지막 목적지도 아닙니다.

시인은 악한 사람들에 대한 선언을 지나 다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향해 입을 엽니다.

한 사람의 입에서 모든 육체로

시편 145:21 본문 →

내 입으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겠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영원히, 또 영원히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기리기를.시편 145:21 · 두루새김

처음에 시인은 「제가 주님을 높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는 「제 입으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처음에 없었던 표현이 덧붙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모든 살」 또는 「모든 육체」를 뜻합니다. 문맥에 따라 모든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고, 살아 있는 존재들을 넓게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시편에서는 9절의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 16절의 「살아 있는 모든 것」과 호응하기 때문에 생명 전체로 넓게 울려 퍼지는 표현입니다.

처음에는 「나」의 찬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찬양하는 하나님이 온 생명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노래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만으로는 그 찬양이 충분하지 않다는 곳에 이릅니다.

마지막 동사의 히브리어 형태는 문맥에 따라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진술이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기원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찬양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옮겼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입으로 찬양하겠다고 다짐한 다음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찬양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흐름에 잘 어울립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모든 창조물에 미친다면, 그분을 향한 찬양 역시 살아 있는 모든 것에까지 이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펼쳐진 손 아래에서

시편 145:1–21 본문 →

시편 145편은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을 반복하여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 선언의 의미를 독자가 짐작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시편이 말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은 단순히 세상을 지배하시는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그분의 의로움과 한결같은 사랑이 온 세상을 향해 행동으로 나타나는 통치입니다. 창조주로서 모든 생명을 돌보시는 하나님과, 구원자로서 부르짖는 사람을 건지시는 하나님은 서로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시편은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위엄을 이야기하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며, 영원한 다스림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다가 왕의 손이 펼쳐지는 장면에 이르렀습니다.

그 아래에는 눈을 들어 먹을 것을 기다리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옆에는 넘어지는 사람들과 몸이 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며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인이 찬양하는 왕은 바로 그들을 보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을 알게 된 시인은 자신의 찬양으로 노래를 끝내지 않습니다. 자신이 높이기 시작한 하나님의 이름을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함께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시편 145편의 가장 위대한 왕권 선언은 어쩌면 가장 평범해 보이는 이 장면에 담겨 있습니다.

왕의 손이 펼쳐지고, 살아 있는 것들이 먹을 것을 얻습니다.

그 손을 바라보는 모든 생명 가운데서, 한 사람의 찬양이 시작되어 온 세상을 향해 퍼져 나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