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기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1–12장 · 열린 아버지의 눈
눈을 뜬 아버지, 다시 열린 집
토빗기 11장에서 가장 먼저 아들을 알아보는 사람은 눈먼 토빗이 아니라 그의 아내 안나입니다. 안나는 먼 길을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아들을 발견합니다. 토빗은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집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뜹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토빗이 시력을 되찾았을 때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집 안에 머물며 기뻐하는 대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돌아오는 사라를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장에서 시력을 되찾는 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토빗의 눈이 열리자 그의 집도 새로운 사람을 향해 열립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라파엘은 아버지를 먼저 생각한다
토비야 일행이 니느웨 맞은쪽 카세린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라파엘은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라파엘이 토비야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어떤 형편에 두고 왔는지 형제도 알지요.」토빗기 11:2 · 두루새김
라파엘은 여행에서 이룬 일부터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토비야는 은을 되찾았고, 사라와 혼인했으며, 메디아에서의 일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러나 라파엘은 니느웨에 남아 있는 토빗의 형편을 먼저 떠올립니다.
토비야는 아버지가 돌아올 날을 헤아리고 있을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조금만 늦어도 아버지가 크게 슬퍼할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토빗 9:3–4). 이제 그 걱정은 실제로 집에 돌아가는 속도를 결정합니다.
라파엘은 사라 일행보다 먼저 가서 집을 준비하자고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천천히 돌아오는 대신, 토비야와 라파엘이 앞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그 집에는 두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눈먼 아버지가 아들을 다시 맞을 준비, 그리고 새로운 며느리가 들어올 준비입니다. 라파엘은 두 일을 연결하여 이끌어 갑니다.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갔습니다. 라파엘이 토비야에게 말했습니다. 「쓸개즙을 손에 챙겨요.」 주님께서도 라파엘과 안나의 아들 토비야 뒤에서 그들과 함께 가셨습니다.토빗기 11:4 · 두루새김
티그리스강에서 물고기가 토비야를 덮쳤을 때, 라파엘은 그 물고기를 붙잡고 쓸개와 심장과 간을 보관하도록 지시했습니다(토빗 6:2–5). 당시에는 갑작스러운 위험으로 보였던 사건이 지금은 아버지의 눈을 치료할 준비였음이 드러납니다.
모든 사건의 뜻이 일어나는 순간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인물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행동하고, 독자는 나중에야 떨어져 있던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발견합니다.
그 돌보심은 이제 니느웨의 한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옮기며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시내 사본의 해당 자리에는 ‘주’를 뜻하는 약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다른 그리스어 본문 계열은 퀴온, 곧 ‘개’라고 읽습니다. 토빗기 6:2에서 개가 토비야와 함께 길을 떠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개가 뒤따랐다’는 읽기가 이야기의 흐름에 더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원문에서 ‘그녀의 아들’이라는 표현까지 붙은 시내 사본의 문장은 앞뒤 내용에 잘 맞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안나의 아들 토비야」로 풀어 옮겼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주님께서 직접 일행의 뒤를 걸으셨다는 신학적 의미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문장의 본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든, 라파엘의 안내를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큰 흐름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먼저 본 사람은 안나였다
11:5는 조용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안나는 앉아서 아들이 돌아올 길을 살피고 있었습니다.토빗기 11:5 · 두루새김
토비야와 라파엘은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지만, 안나는 제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녀의 눈은 한 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앞 장에서 안나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죽었다고 확신했습니다. 토빗이 위로해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날마다 아들이 떠난 길을 바라보았습니다(토빗 10:4–7). 이제 11장은 바로 그 길을 다시 보여 줍니다.
이번에는 길 끝에 사람이 나타납니다.
안나는 아들이 오는 것을 알아보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봐요, 당신 아들이 오고 있어요. 함께 갔던 사람도 오고 있어요.」토빗기 11:6 · 두루새김
떠날 때 보았던 두 사람이 함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녀가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눈앞에서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안나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너를 보았구나, 얘야. 이제 나는 죽겠구나.」 그러고는 울었습니다.토빗기 11:9 · 두루새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불안이 끝났기 때문에, 더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좋을 만큼 마음이 놓였다는 뜻입니다.
안나에게 아들이 돌아온 것은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아버지의 눈이 열리기 전에도 이미 한 사람의 기다림은 끝났습니다. 치유의 기적보다 먼저 일어난 것은 가족의 재회입니다.
그런데 같은 아들을 맞으러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아버지의 눈에 돌아온 빛
토빗은 일어나 발이 걸려 비틀거리며 뜰 문을 나섰습니다. 토비야는 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토빗기 11:10 · 두루새김
두 부모 모두 아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같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토빗은 아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눈이 보이지 않아 어려움을 겪습니다.
토비야의 손에는 물고기의 쓸개즙이 있었습니다. 토비야는 아버지의 눈에 입김을 불고 아버지를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힘내세요, 아버지.」 그러고는 아버지의 눈에 약을 발랐고, 약효가 나타났습니다.토빗기 11:11 · 두루새김
토비야는 아버지가 눈앞의 상황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붙잡고 목소리로 안심시킨 다음 약을 바릅니다. 이 장면은 치료 행위가 단순히 약을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가까워지는 과정이기도 함을 보여 줍니다.
이어 백태를 벗겨 냅니다.
「얘야, 내 눈의 빛인 너를 내가 보았구나」
눈을 뜬 토빗의 첫 반응은 자신의 건강을 확인하거나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아닙니다.
토빗은 울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 눈의 빛인 너를 내가 보았구나.」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그분의 크신 이름도 찬양받기를 빕니다.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도 모두 복을 받은 이들입니다. 그분의 크신 이름이 저희 위에 있기를 빕니다. 모든 천사도 영원히 찬양받기를 빕니다.」토빗기 11:14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안나는 돌아오지 않는 토비야를 슬퍼하며 아들을 자기 눈의 빛이라고 불렀습니다(토빗 10:5). 이제 토빗이 「내 눈의 빛」이라는 표현으로 아들을 부릅니다.
안나는 실제로 볼 수 있었지만, 아들이 없어서 자기 눈의 빛을 잃었다고 느꼈습니다. 토빗은 실제로 볼 수 없었는데, 이제 그 눈이 열리면서 아들을 자기 눈의 빛이라고 부릅니다.
11:8에서 라파엘은 아버지가 「빛을 보실 거예요」라고 예고했습니다. 그 빛이 실제로 돌아왔을 때 토빗이 가장 먼저 말하는 빛은 아들입니다.
채찍질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다
토빗은 곧바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분께서 저를 채찍질하셨고, 이제 이렇게 저는 제 아들 토비야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비야는 기뻐하며 온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토비야는 아버지에게 여행이 순조로웠고 은을 가져왔다고 알렸습니다. 또 라구엘의 딸 사라를 아내로 맞았으며, 사라가 지금 오고 있고 니느웨 성문 가까이에 있다고 말했습니다.토빗기 11:15 · 두루새김
토빗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지워 버리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까닭도 단순히 벌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채찍질이라고 부를 만큼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지나, 이제 아들을 다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빗은 죽은 동족을 묻는 일을 행한 뒤, 잠을 자다가 새의 배설물이 눈에 떨어져 시력을 잃었습니다(토빗 2:7–10). 그 사건을 특정한 죄의 직접적인 형벌이라고 설명하는 문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11:15의 말은 토빗이 자신의 고통과 회복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고백으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의 고통을 곧바로 잘못에 대한 벌이라고 넓혀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11:16–17에서 토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불쌍히 여기시고 눈을 뜨게 해 주셨다」고 밝힙니다. 고통을 기억하는 말과 자비를 찬양하는 말이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옵니다.
토빗기는 쓸개즙을 실제 치료에 사용되는 약으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회복의 의미를 약 자체에만 두지는 않습니다. 라파엘이 사용법을 알려 주고, 토비야가 그 지시를 실행하며, 토빗은 회복 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은 이 이야기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모든 병에 특정한 치료법이나 기적적인 회복을 약속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이 가족에게 일어난 특별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토빗은 아들을 무사히 데려온 사람의 실제 정체를 아직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직 알지 못하는 사실은 다음 장에서 밝혀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완전히 알기도 전에, 토빗은 먼저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11:11 끝의 「약효가 나타났습니다」에도 번역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리스어 동사 에페도켄은 주어가 드러나 있지 않아 약이 효력을 발휘했다고 읽을 수도 있고, 토비야의 약 바르는 동작이 계속되었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치료의 과정과 그 결과입니다.
눈을 뜬 아버지는 다시 성문으로 나간다
토비야는 집 안으로 들어가 여행의 일을 아버지에게 알립니다.
여기서 여행의 성공은 처음 목적이었던 은을 되찾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토비야는 새 가정을 이루어 돌아왔고, 아버지도 치유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출발점에 있었던 돈 문제보다 훨씬 큰 변화가 일어난 셈입니다.
토빗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며느리를 맞으러 니느웨 성문으로 나갔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토빗이 누구의 손에도 이끌리지 않고 힘차게 걸어가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토빗기 11:16 · 두루새김
조금 전 그는 자기 집 뜰 문을 나서다가 비틀거렸습니다. 이제는 성문까지 걸어갑니다.
이 대목에서 회복은 한 사람의 경험을 넘어섭니다. 앞서 한 가족 안에서 일어난 일을 니느웨의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눈먼 사람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그 자체로 변화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토빗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회복을 보여 주기 위해 성문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본래 목적은 사라를 맞이하는 데 있습니다.
토빗이 회복한 눈과 발이 향하는 첫 번째 새로운 목적지는 자신에게 오는 사람, 곧 사라입니다.
「네 집으로 들어오너라」
토빗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불쌍히 여기시고 눈을 뜨게 해 주셨다고 밝혔습니다. 토빗은 아들 토비야의 아내 사라에게 다가가 복을 빌며 말했습니다. 「무사히 잘 왔다, 딸아. 너를 우리에게 데려오신 너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다. 네 아버지도, 내 아들 토비야도, 너도 복을 받기를 빈다, 딸아. 복과 기쁨 속에서 무사히 네 집으로 들어오너라. 들어오너라, 딸아.」 그날 니느웨에 사는 모든 유대 사람이 기뻐했습니다.토빗기 11:17 · 두루새김
사라는 단순히 아들이 데려온 아내로 소개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토빗은 그녀를 자신의 가족 안에 속한 딸로 맞아들입니다.
사라는 일곱 남편을 잃었고, 자신의 형편을 두고 모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토빗 3:7–10).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의 혼인과 삶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라가 새로운 가정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시아버지가 하는 첫 말은 그녀의 과거를 캐묻거나 불길한 일을 걱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그녀에게 복을 빕니다.
자기 집에 들어오라고 하면서 토빗은 그곳을 「네 집」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사라가 이제 이곳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 줍니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손님으로 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녀의 고통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비난과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그 비난의 반복이 아니라 따뜻한 환영입니다.
이 장은 사라의 마음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라의 반응조차 직접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 토빗이 어떤 말로 그녀를 맞아들였는지를 자세히 들려줍니다.
사라의 회복은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한 설명보다, 그녀를 맞이하는 가족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한 가정에서 시작된 기쁨이 니느웨로 번진다
이야기는 마지막에 시야를 한 번 더 넓힙니다.
「그날 니느웨에 사는 모든 유대 사람이 기뻐했습니다.」 토빗은 아시리아의 중심 도시 니느웨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동족의 장례를 치르고, 율법을 지키며, 가족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의 삶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주와 포로 생활을 겪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토빗의 회복과 아들이 돌아온 일, 사라의 혼인은 한 가족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와 삶을 나누던 유대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됩니다.
마지막에 아키카르와 나답이 기뻐하며 찾아오는 장면은 그 기쁨에 구체적인 얼굴을 더합니다. 공동체 전체의 기쁨을 말한 뒤, 가족과 친척의 방문으로 장면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다시 열린 문
토빗기 11장은 회복된 삶의 모습을 가족과 이웃이 서로를 다시 만나고 맞아들이는 장면으로 그려 냅니다. 여기서 치유는 단순히 몸의 기능을 되찾는 일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다시 삶을 나누는 길을 엽니다.
성문 가까이에는 사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먼 길을 지나온 여인입니다. 토빗은 그녀에게 다가가 복을 빕니다. 그의 입에서 「딸아」라는 부름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들어오너라, 딸아」라고 말합니다.
한때 자기 집 뜰조차 비틀거리며 나서야 했던 사람이 이제 성문까지 걸어 나가 새로운 가족을 맞아들입니다.
토빗의 눈에서 백태가 벗겨진 사건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복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사람은 아직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그는 사라를 바라보고, 그녀에게 복을 빌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토빗기 11장은 눈이 열린 이야기에서 문이 열린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