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기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1–12장 · 열린 아버지의 눈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알게 된 사람

토빗과 토비야는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에게 재산의 절반을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돈을 받는 대신, 지금까지 감추어 두었던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그는 라파엘,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토빗과 토비야는 여행 내내 라파엘을 보았습니다. 함께 걷고 이야기하며 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는 몰랐습니다. 반대로 그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부터는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를 볼 수 있을 때는 알지 못했고, 그를 알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장은 천사의 정체를 밝히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토빗과 토비야가 자기들의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사건들 뒤에, 그들이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 줍니다.

이 발견은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하신 일을 우리는 언제, 어떻게 알아보게 됩니까?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812장 본문 읽기 →

재산의 절반을 주려 했던 사람들

토빗기 12:1–5 본문 →

혼인 잔치가 끝나자 토빗은 아들 토비야를 불러 말합니다.

혼인 잔치가 끝나자 토빗이 아들 토비야를 불러 말했습니다. 「얘야, 너와 함께 길을 갔던 사람에게 일한 대가를 꼭 주어라. 약속한 것보다 더 보태 주어라.」토빗기 12:1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제 함께 길을 간 사람의 수고에 정당하게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비야의 생각은 아버지보다 더 큽니다.

토비야가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그분께 얼마나 드릴까요? 그분이 저와 함께 가져오신 재산의 절반을 드려도 제게 손해가 되지 않아요.」토빗기 12:2 · 두루새김

토비야는 그 이유를 차례로 설명합니다. 함께 길을 간 사람은 자신을 무사히 데려왔고, 아내 사라를 고쳐 주었고, 은을 가져오는 일을 도왔으며, 아버지까지 고쳐 주었습니다.

그가 처음 여행을 떠난 목적은 아버지가 맡겨 둔 은을 찾아오는 일이었습니다(토빗 4:20–5:3). 그러나 이제 토비야가 하나씩 말하는 일들 가운데 은은 한 가지일 뿐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찾으러 떠났지만, 돌아올 때는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들을 함께 가지고 온 셈입니다.

그래서 재산의 절반이라는 제안은 단순히 넉넉한 대가를 뜻하지 않습니다. 토비야가 자신이 받은 도움의 크기를 알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토빗이 말했습니다. 「얘야, 그 사람은 자기가 가져온 모든 것의 절반을 받을 만하다.」토빗기 12:4 · 두루새김

토빗은 함께 길을 간 사람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주려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두 사람은 라파엘에게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합니다. 라파엘은 그들을 따로 불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본문은 라파엘이 실제로 그 대가를 받았는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관심은 대가를 주었는지에서 완전히 다른 문제로 옮겨 갑니다.

그들은 받은 도움의 크기는 알고 있었지만, 그 도움의 참된 근원은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남몰래 불러 놓고,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라고 하다

토빗기 12:6–7 본문 →

그때 라파엘이 두 사람을 따로 불러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베푸신 좋은 일들을 두고 살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감사하여라.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고 노래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알려라. 그분께 감사하기를 주저하지 마라.」토빗기 12:6 · 두루새김

남몰래 부른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왕의 비밀은 감추는 것이 좋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널리 알리고 드러내는 것이 좋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감사하여라. 선한 일을 하여라. 그러면 나쁜 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토빗기 12:7 · 두루새김

고대 왕궁에서 왕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의무였습니다. 왕의 결정이나 사적인 일을 함부로 공개하는 사람은 신뢰받기 어려웠습니다. 정치적인 비밀을 지키는 것은 충성의 한 형태였습니다.

라파엘은 이러한 관습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다른 원칙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이 가족에게 베푸신 구체적인 좋은 일들을 가리킵니다.

토빗에게는 아사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고(토빗 5:13), 여행하는 동안 천사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감추었던 사실을 밝히면서, 토빗과 토비야에게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숨기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여행 중에는 라파엘의 정체보다 그가 하는 일이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이 이루어진 뒤에는 누가 그를 보냈는지 알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목적은 라파엘 자신을 높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동행자로 보였던 그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알리는 데 있습니다.

자신에게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감사는 단순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참된 근원을 알아보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행동입니다.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구제가 낫다

토빗기 12:8–10 본문 →

갑자기 가진 것을 나누어 남을 돕는 일에 대한 가르침이 등장합니다.

「진실하게 기도하고 올바르게 살며 가진 것을 나누어 남을 돕는 것이, 바르지 않게 살며 부유하게 지내는 것보다 낫다.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가진 것을 나누어 남을 돕는 것이 낫다.」토빗기 12:8 · 두루새김

토빗과 토비야는 큰 재산을 얻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그 재산으로 함께 길을 간 사람의 수고에 보답하려 합니다. 라파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가르칩니다.

이때 본문은 재물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 삼는 것은 바르지 않게 살며 부유하게 지내는 것과,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태도입니다.

12:8의 그리스어에는 두 가지 중요한 결합이 나옵니다. 원문에서 진실과 함께하는 기도를 뜻하는 프로세우케 메타 알레테이아스(προσευχή), 그리고 의로움과 함께하는 구제를 뜻하는 엘레에모쉬네 메타 디카이오쉬네스(ἐλεημοσύνη)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관계를 「진실하게 기도하고 올바르게 살며 가진 것을 나누어 남을 돕는 것」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기도한다는 사실만으로 삶 전체가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며, 돈을 나누어 준다는 사실만으로 그 재물을 얻고 사용하는 모든 과정이 올바르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라파엘은 기도와 남을 돕는 일을 말하면서 그 행동에 따르는 삶의 모습까지 함께 이야기합니다.

구제가 모든 죄를 씻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가진 것을 나누어 남을 돕는 일은 죽음에서 건져 내고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준다. 그렇게 남을 돕는 사람들은 생명을 가득 누릴 것이다.」토빗기 12:9 · 두루새김

남을 돕는 일이 죄를 씻는다면, 선행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뜻입니까?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기만 하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없어집니까?

여기서는 가진 것을 나누어 남을 돕는 일이 죄를 깨끗하게 한다고 실제로 말합니다. 단순히 남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정도로 바꿀 수 없는 강한 주장입니다.

집회서 3:30은 물이 타오르는 불을 끄는 것처럼 구제가 죄를 속한다고 말합니다. 다니엘 4:27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죄에서 돌이키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권합니다. 잠언 10:2과 11:4도 의로움이 죽음에서 건져 낸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토빗은 이미 아들에게 자기 재산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가르쳤으며, 남을 돕는 일이 죽음에서 건져 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토빗 4:7–11). 라파엘은 지금 그 가르침을 다시 확인합니다.

하지만 앞뒤의 내용을 보면, 이 가르침을 돈으로 죄를 없애는 일종의 거래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라파엘은 바로 앞에서 「올바르게 살며 가진 것을 나누어 남을 돕는 것」을 이야기했고, 바로 뒤에서는 「죄를 짓고 바르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목숨의 원수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남을 돕는 일과 바르지 않은 삶을 분리하여, 바르지 않게 살면서도 남을 돕기만 하면 모든 죄가 자동으로 사라진다는 식으로 읽는 것은 앞뒤의 내용과 맞지 않습니다.

반대로 죄를 씻는다는 표현을 단지 상징적인 말로만 줄여 이해하는 것도 본문이 하는 말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구제에 죄를 깨끗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보는 유대 지혜 전통에 속합니다. 그 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후대의 신학 전통들이 서로 다르게 설명해 왔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아갈 때 이웃을 향한 자비는 덧붙이는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올바른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토빗 자신의 삶도 놓여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옷을 입히고, 죽은 사람들을 묻어 주었습니다(토빗 1:16–18). 특히 죽은 사람을 묻어 주는 행동은 그에게 위험과 손해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선한 일을 한 토빗은 실제로 고난을 겪었습니다. 따라서 「선한 일을 하여라. 그러면 나쁜 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12:7의 지혜로운 권고를 모든 고난을 즉시 피할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보장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토빗기의 이야기는 올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고난이 올바른 삶의 가치를 없애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선행을 누가 보고 있었는가

토빗기 12:11–14 본문 →

라파엘은 앞에서 말한 왕의 비밀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관한 가르침을 다시 반복합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감추었던 일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라파엘은 토빗에게 말을 이었습니다. 「너와 사라가 기도했을 때, 나는 주님께서 너희 기도를 기억하시도록 그분의 영광 앞에 전했다. 네가 죽은 사람들을 묻어 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토빗기 12:12 · 두루새김

라파엘은 자신이 토비야와 함께 길을 떠나기 이전부터 이미 토빗과 사라의 삶에 관여하고 있었다고 밝힙니다. 토빗은 자신의 고통이 너무 커서 죽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토빗 3:1–6). 사라도 모욕과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3:7–15).

두 사람의 기도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서로의 사정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라파엘은 두 사람의 기도를 모두 하나님 앞에 전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의 응답은 죽음이 아니라 치유와 새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 원했던 해결과, 하나님이 그들에게 마련하신 해결은 같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기서 모든 간절한 기도가 사람들이 바라지 않았던 방식으로 반드시 좋은 결말을 얻는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토빗기는 이 두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기도는 외면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기억하시도록 그분의 영광 앞에 전했다

이야기가 표현하는 것은 기도가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고 기억되는 모습입니다. 그들의 말은 고통의 현장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라파엘은 그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전해졌다고 밝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남을 돕는 일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토빗기 12장에서는 두 행동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기억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이 하나의 신앙생활 안에 놓여 있습니다.

먹던 음식을 그대로 둔 채 시신을 묻으러 갔을 때

「네가 주저하지 않고 일어나 먹던 음식을 그대로 둔 채 죽은 사람의 시신을 거두러 갔을 때,」토빗기 12:13 · 두루새김

토빗은 오순절 잔치를 준비해 놓고 식사하려다가, 광장에 이스라엘 사람의 시신이 버려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식사를 미루고 그 시신을 거두어 묻어 주었습니다(토빗 2:1–8).

토빗은 이전에도 동족을 묻어 주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1:18–20). 그럼에도 죽은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기억한 것은 단순히 토빗이 시신을 묻어 주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식사를 하려던 자리에서 주저하지 않고 일어났다는 구체적인 행동까지 언급합니다.

그 행동은 아무 보상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토빗에게 감사하거나 보답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신을 묻어 주는 과정에서 토빗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라파엘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앞서 남을 돕는 일에 관한 가르침이 왜 나왔는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 가르침은 막연한 교훈이 아닙니다. 토빗이 실제로 살아 낸 한 장면과 연결됩니다.

토빗은 자신이 죽은 사람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던 순간에도 하나님은 토빗의 삶을 돌아보고 계셨습니다.

「너를 시험하도록 네게 보내졌다」

「바로 그때 나는 너를 시험하도록 네게 보내졌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네 며느리 사라도 고치도록 나를 보내셨다.」토빗기 12:14 · 두루새김

토빗의 고난을 이야기의 바깥에서 내려진 무의미한 재앙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전체 과정 안에서 바라보도록 합니다. 라파엘은 자신이 누구에게서 왔는지, 무엇을 위해 보내졌는지 밝힙니다. 그렇다고 고난의 모든 원인과 목적을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기도의 기억을 하나님 앞에 가져갔다고 표현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표현을 「주님께서 너희 기도를 기억하시도록 그분의 영광 앞에 전했다」로 풀어 옮겼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하늘의 왕으로 그리고, 그 앞에서 천사들이 섬기는 모습을 보여 주는 왕궁의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표현을 하나님이 기도를 모르고 계셔서 천사가 알려 드려야 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출애굽기 2:23–25에서도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올라가며, 하나님이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단순히 정보를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그 백성의 고통을 돌아보시는 행동과 연결됩니다. 이사야 58:6–10은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고통받는 사람을 돌아보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과 연결합니다. 잠언 19:17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여호와야훼께 꾸어 드리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신약의 사도행전 10:4에서도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기억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스어 본문에는 토빗기 12:12와 같은 기억의 어휘가 등장합니다. 직접적인 인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도와 이웃을 향한 자비가 하나님 앞에 올려진다는 주제를 공유합니다. 시내 사본을 대표로 하는 긴 그리스어 본문에는 라파엘이 토빗을 시험하도록 보내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바티칸 사본과 알렉산드리아 사본으로 대표되는 짧은 그리스어 본문에는 이 시험에 관한 문장이 없습니다. 짧은 본문에서는 토빗의 선행이 라파엘에게 감추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이 토빗과 사라를 고치도록 자신을 보내셨다는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긴 본문의 표현을 따르더라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해 시험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토빗이 눈이 멀게 된 일이 어떤 방식으로 시험과 연결되는지, 라파엘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12:14만으로 자세히 밝혀낼 수는 없습니다.

「나는 라파엘이다」 — 동행자의 정체가 밝혀지다

토빗기 12:15 본문 →

「나는 라파엘이다. 주님의 영광 앞에 서서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다.」토빗기 12:15 · 두루새김

라파엘은 토빗의 눈이 회복되고 사라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힘으로써 그 치유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치유하신다는 뜻을 가진 이름의 천사가,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치유를 이루는 도구로 일했던 것입니다.

라파엘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 있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평범한 여행길을 함께 걸었던 존재입니다.

하늘의 영광 앞에 서 있는 천사가 길을 모르는 청년과 함께 길을 갔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일을 돕고, 혼인을 이루도록 안내하고, 잃어버릴까 염려하던 은을 찾아오는 일을 도왔습니다. 이 모든 일은 화려한 종교적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행의 구체적인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라파엘 자신은 이 발견이 천사에 대한 감탄으로 끝나지 않도록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주님의 영광 앞에 서서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라는 말은 단순히 천사가 일곱 명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까이에서 섬기는 특별한 천사들의 무리를 가리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하늘 왕궁의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열왕기상 22:19에서는 하늘의 군대가 하나님 좌우에 서 있고, 다니엘 7:10에서는 수많은 존재가 하나님의 앞에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토빗기 12장은 그러한 하늘 왕궁의 이미지를 더욱 구체적인 천사들의 활동과 연결합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평화를 말하다

토빗기 12:16–19 본문 →

지금까지 함께 이야기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 있는 천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두려워하며 땅에 엎드립니다.

라파엘이 두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여라.」토빗기 12:17 · 두루새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던 것은 내 호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때문이었다. 날마다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께 노래하여라.」토빗기 12:18 · 두루새김

「내 호의 때문이 아니라」라는 말은 그가 자기 판단이나 개인적인 친절만으로 그들과 함께 길을 간 것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토빗과 토비야는 라파엘을 돈을 주고 함께 길을 가도록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여행은 인간 사이에서 일한 대가를 주고받는 관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길을 갈 사람을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라파엘을 보내셨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적절한 사람을 만나 여행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만남 자체가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라파엘은 정말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가?

「너희 눈에는 내가 보였지만,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너희에게는 모습만 보였을 뿐이다.」토빗기 12:19 · 두루새김

그는 길을 걷고 대화를 나누며 함께 여행하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그의 실제 존재 방식은 일반적인 사람과 달랐습니다. 이야기는 라파엘이 토비야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합니다. 그의 존재를 단순한 착각이나 꿈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가 사람들에게 어떤 물리적 방식으로 나타났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이 확실히 밝히는 것은 라파엘의 정체와 그가 보인 모습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사사기 13:19–21에서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천사가 불꽃 가운데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그때에도 천사가 떠나는 장면은 그 존재의 정체를 새롭게 알아보게 하는 순간이 됩니다.

천사는 올라가고, 사람들은 땅에서 찬송한다

토빗기 12:20–22 본문 →

라파엘은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명령합니다.

「이제 너희는 땅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보아라,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올라간다. 너희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을 기록하여라.」 그러고는 라파엘이 올라갔습니다.토빗기 12:20 · 두루새김

그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토빗과 토비야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장소는 지금 그들이 살아가는 땅입니다.

라파엘은 하늘로 돌아가고, 사람들은 땅에서 그 일의 의미를 전합니다.

토빗과 토비야가 경험한 일은 그들만의 비밀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드러내라는 앞선 명령이 이제 기록하라는 구체적인 요청으로 이어집니다.

독자는 지금까지 토빗의 고난, 사라의 기도, 토비야의 여행과 치유를 이야기로 읽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서 라파엘이 그 모든 일을 기록하라고 명령합니다.

독자가 읽고 있는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전하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가

두 사람은 일어났지만 더는 라파엘을 볼 수 없었습니다.토빗기 12:21 · 두루새김

앞 장에서 토빗은 눈을 뜨고 아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시력의 회복이었습니다. 이번 장에서 토빗은 자신이 이미 보고 있었던 사람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눈앞의 모습을 보는 것과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이해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토빗은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에 라파엘의 정체를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토비야도 라파엘을 계속 보았지만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지 못했던 까닭은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일의 진실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이 위대한 일들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자기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토빗기 12:22 · 두루새김

이것은 라파엘이 처음부터 요구했던 반응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보거나 기억하는 데 머물지 말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라파엘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알려 준 진실은 남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이 실제로 어떤 방식의 문서 기록으로 이어졌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토빗기가 두 사람이 남긴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역사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독자는 토빗과 사라의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토빗 3:16–17). 라파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12장에서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독자에게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독자가 알고 있었지만 인물들은 알지 못했던 진실이 마침내 그들 자신에게 알려지는 장면입니다.

천사가 떠난 뒤

토빗기 12:1–22 본문 →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때와 사람들이 그 일을 알아보는 때는 반드시 같지 않습니다.

토빗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전해졌을 때, 토빗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라파엘이 토비야와 함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토비야는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라파엘이 그 모든 진실을 밝힙니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님이 언제나 모든 사건의 의미를 나중에 설명해 주신다는 약속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토빗과 토비야는 이 특별한 이야기 속에서 그러한 설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경험을 모든 인간의 고난과 회복에 적용할 수 있는 규칙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장면에는 두 사람만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자신들 앞에 서 있던 라파엘을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누가 그를 보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함께 길을 걸었던 천사는 사라졌지만, 그 길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는 남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