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3–8장 · 유다 마카베오의 싸움

왕은 죽었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6장은 뜻밖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유다 민족을 없애려 했던 안티오코스 왕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죽어 갑니다. 이스라엘을 짓누르던 가장 강력한 적이 사라졌으니, 이제 평화가 찾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정반대로 전개됩니다.

6장은 누가 전쟁에서 이겼는가보다, 그 전쟁이 왜 일어났으며 무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는가를 더욱 깊이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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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빼앗으려던 왕이 아무것도 뜻대로 이루지 못하다

마카베오기 상권 6:1–13 본문 →

안티오코스는 페르시아의 엘리마이스에 부유한 신전이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곳에는 금과 은이 풍부했고, 알렉산드로스가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귀중한 무기들도 있었습니다. 왕은 도시를 점령하여 그 재물을 빼앗으려 하지만, 주민들이 저항하자 물러납니다.

안티오코스가 앞서 예루살렘에서 행한 일도 성전의 재물을 약탈하는 것이었습니다(1:21–24). 이제 그는 페르시아의 다른 신전을 노립니다. 두 신전은 서로 다른 종교에 속해 있지만, 왕에게는 모두 자신의 권력을 위해 가져갈 수 있는 부의 원천이었습니다.

이러한 병치는 안티오코스의 예루살렘 침탈이 단순히 특정 종교에 대한 적대감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의 행동에는 정복자의 권력과 약탈의 논리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소의 거룩함보다 왕의 필요가 우선한다는 태도입니다.

본문은 이 도시를 알렉산드로스의 유산과 연결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후계 왕조의 왕인 안티오코스는 그 유산이 있다는 도시 하나조차 마음대로 차지하지 못합니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무력함이 대조됩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실패한 뒤 유다 땅의 소식까지 듣습니다. 리시아스의 군대가 패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히려 적에게서 빼앗은 무기로 강해졌습니다. 왕이 제단 위에 세웠던 가증한 것도 철거되었고, 성소는 다시 방어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이 장면은 앞서 묘사된 성소 정화와 재봉헌 사건(4:36–61)을 왕의 시선에서 다시 보여 줍니다. 유다인들에게는 기쁨이었던 일이 왕에게는 자신의 통치가 실패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몹시 동요했다. 그는 잠자리에 쓰러져 슬픔 때문에 병이 들었다. 일이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마카베오기 상권 6:8 · 본디새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여겼던 세계가 더 이상 통제되지 않는다는 충격입니다. 처음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내가 얼마나 큰 환난에 이르렀으며, 지금 얼마나 거센 풍랑 속에 있는가? 나는 다스리는 동안 선하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마카베오기 상권 6:11 · 본디새김

앞선 이야기에서 묘사된 그의 행동을 아는 독자에게 이 말은 낯섭니다.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학살하도록 명령했던 왕이 스스로를 선한 통치자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이어 그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서 저지른 악행들이 생각난다. 나는 그곳에 있던 은그릇과 금그릇을 모두 빼앗았고, 아무 까닭도 없이 유다 주민들을 없애려고 사람들을 보냈다.」마카베오기 상권 6:12 · 본디새김

특히 「아무 까닭도 없이」라는 인정은 무겁습니다. 정복자는 흔히 자신의 폭력에 정치적 이유를 붙입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거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안티오코스는 자신이 명령했던 폭력에 정당한 이유가 없었음을 인정합니다.

「나는 그 일들 때문에 이 재앙들이 나를 덮쳤다는 것을 알았다. 보아라, 나는 남의 땅에서 큰 슬픔에 잠겨 죽어 간다.」마카베오기 상권 6:13 · 본디새김

앞서 안티오코스는 예루살렘의 질서를 자기 뜻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자신에게 돌아왔다고 판단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남의 땅에서」 죽어 간다고 말합니다. 다른 민족의 땅을 침범하고 그 주민들을 몰아내려 했던 왕이 정작 자기 나라 밖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려 했지만,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의 삶조차 뜻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본문이 명시하는 것은 왕 자신의 이러한 인식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그의 질병을 내리셨다고 선언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서술자는 왕의 고백을 통해 그가 자신의 악행과 몰락을 연결하도록 만들지만, 질병의 구체적인 원인이나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 방식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것을 완전한 회개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왕은 잘못을 인정하지만, 본문에는 하나님을 향한 간구나 피해자들에게 행한 구체적인 배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가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마음이 어디까지 변화했는지는 독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왕이 죽자 두 사람이 왕권을 붙잡다

마카베오기 상권 6:14–27 본문 →

안티오코스는 죽기 전에 빌립에게 나라를 맡깁니다. 왕관과 왕복과 반지를 넘겨주면서 어린 아들이 장차 왕이 되도록 돌보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리시아스가 왕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자신이 길러 온 어린 안티오코스를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빌립에게는 죽은 왕이 직접 내린 명령과 왕권의 상징물이 있습니다. 반면 리시아스는 어린 왕자를 실제로 보호하고 있으며, 그를 왕위에 올릴 수 있는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티오코스의 죽음은 권력의 안정적인 이전이 아니라, 왕권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을 남깁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집니다. 유다가 성소를 정화하고 예배를 회복했어도, 성채에는 여전히 적대적인 세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소 주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활동을 방해하며 다른 민족들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예루살렘 전체가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이 성채를 포위하기로 합니다.

처음에 유다와 형제들은 산지에서 적을 기습하는 전투를 주로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공성 기계를 만들고 요새를 포위할 수 있는 군대를 갖추었습니다. 저항 운동이 점차 조직적인 군사력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적군의 반격을 불러온 것은 성채를 지키던 외국 군사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성채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가운데 일부가 합류하여 새 왕을 찾아갑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박해받는 충성스러운 백성으로 소개합니다.

「저희는 임금님의 아버지를 기꺼이 섬기며, 그분이 하시는 말씀대로 행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랐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6:23 · 본디새김

유다와 그의 동료들에게 안티오코스의 명령은 성소와 율법을 파괴하는 부당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을 찾아간 사람들에게 그 명령에 복종하는 일은 정당한 충성이었습니다.

유다의 편에서는 성소를 되찾고 조상들의 법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지만, 왕에게 호소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족에게 쫓겨나고 재산을 빼앗겼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서술자는 그들을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규정하며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은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증언입니다.

「서둘러 그들을 먼저 제압하지 않으면, 그들은 이보다 더 큰 일들을 벌일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님께서도 그들을 막아 내지 못하실 것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6:27 · 본디새김

자신들의 문제를 왕국의 안보 문제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분노하며 대군을 소집합니다.

이 장의 전쟁은 단순히 외국 군대와 유다 민족 사이의 싸움이 아닙니다. 같은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이 누구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를 두고 갈라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분열은 제국의 군사력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입니다.

산들을 불태울 듯한 군대와 한 사람의 죽음

마카베오기 상권 6:28–47 본문 →

본문은 새 왕의 군대를 유난히 길게 묘사합니다.

보병 십만 명, 기병 이만 명, 전쟁에 익숙한 코끼리 서른두 마리가 등장합니다. 코끼리마다 무장한 보병과 기병이 배치되고, 등에는 나무로 만든 망대가 설치됩니다. 군사들은 코끼리에게 포도와 오디의 즙을 보여 주어 전투에 나서게 하려 합니다.

햇빛이 금방패들 위에서 반짝이자, 그 빛으로 산들이 반짝이며 타오르는 횃불처럼 환히 빛났다.마카베오기 상권 6:39 · 본디새김

여기에 군사들의 함성과 행군 소리,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까지 더해집니다. 적군을 마주한 사람들의 눈과 귀에 그 군대가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보여 주는 서술입니다. 산들을 덮을 만큼 넓게 펼쳐진 군대와 거대한 코끼리들은 제국의 힘을 눈앞에 실체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거대한 군대 한가운데로 엘르아살이 뛰어듭니다.

엘르아살은 마타티아스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2:5). 그는 다른 코끼리보다 크고 왕의 갑옷을 갖춘 코끼리를 보고 왕이 그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르아살의 판단이 맞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구하고 스스로 영원한 이름을 얻으려고 자기 몸을 내놓았다.마카베오기 상권 6:44 · 본디새김

성경의 영웅 이야기에서는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명예에 대한 소망이 언제나 분리되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엘르아살 역시 두 가지를 함께 품습니다. 본문은 그 가운데 한쪽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적의 대열을 뚫고 코끼리 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짐승을 찔러 죽입니다.

그런데 코끼리가 쓰러지면서 엘르아살도 깔려 죽습니다.

유다의 군사들은 왕국의 힘과 그 군대의 거센 기세를 보고 그들 앞에서 물러났다.마카베오기 상권 6:47 · 본디새김

만약 전형적인 영웅담이었다면 엘르아살의 희생이 적군을 무너뜨리고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엘르아살이 죽였던 것은 코끼리 한 마리였으며, 제국의 거대한 군대는 계속 진격합니다.

그의 용기는 진실했지만, 그 용기가 곧바로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앞서 죽은 안티오코스와 엘르아살 사이에 뜻밖의 대조가 생깁니다. 안티오코스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으려 했고, 엘르아살은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한 사람은 왕권의 정점에서 죽었고, 다른 사람은 적의 코끼리 밑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두 사람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지위나 군사적 성공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엘르아살이 원했던 「영원한 이름」은 전장에서의 승리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패배한 전투 속에서도 그의 이름과 행동을 지우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은 이 즙을 포도와 오디의 「피」(αἷμα)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부릅니다. 붉은 액체를 전쟁 준비에 이용한 것으로 묘사하지만, 실제로 코끼리에게 어떤 효과를 주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35절의 배치 장소도 원문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골짜기들」 또는 「대열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는 홀로 돌진하는 짐승이 아니라 보병·기병과 함께 조직된 전투 체계의 일부였습니다. 37절의 망대에 탄 군사 수에는 본문 전승상의 어려움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서른두 명으로 옮겼지만, 그리스어 전승에는 서른 명 또는 서른두 명이라는 숫자가 나타나며, 일부 비평 본문은 네 명으로 교정하여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서른두 명을 한 코끼리의 망대에 실제로 탑승한 확정적인 인원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3:18–22에서 유다는 군대의 많고 적음이 구원의 결정적인 기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6장은 그 믿음이 곧 모든 전투의 승리를 뜻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성소를 지키는 사람들을 무너뜨린 것은 굶주림이었다

마카베오기 상권 6:48–54 본문 →

유다 군대가 물러난 뒤 왕의 군대는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먼저 벳술이 위기에 빠지고, 이어 시온산의 성소가 포위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쟁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보병과 기병의 수, 코끼리와 공성 기계의 위력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벳술과 성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식량입니다. 벳술 주민들은 안식년으로 인해 포위를 버틸 먹을거리가 부족하여 왕과 합의하고 도시를 떠납니다.

안식년은 땅을 쉬게 하라는 율법의 규정입니다. 출애굽기 23:10–11과 레위기 25:2–7은 일곱째 해에 농경과 통상적인 수확을 중단하도록 명령합니다. 이는 땅이 인간의 소유물일 뿐이라는 생각을 제한하고, 가난한 사람과 들짐승까지 그 땅의 소산을 함께 누리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해에 전쟁과 포위 공격이 일어납니다.

이 사실을 단순히 안식년 준수 때문에 패배했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안식년뿐 아니라 전쟁과 피난이 겹쳐 생긴 식량 부족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성소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때가 일곱째 해였고, 이방 민족들에게서 유대로 피신해 온 사람들이 비축해 둔 식량의 나머지를 다 먹었기 때문이었다.마카베오기 상권 6:53 · 본디새김

5장에서 유다와 형제들은 주변 지역에 흩어져 위협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출하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피난민들이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를 53절만으로 모두 확정할 수는 없지만, 앞장에서 이루어진 구출과 이주를 이 장의 식량 부족을 이해하는 배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는 먹을 것을 나누는 일이 뒤따릅니다. 공동체를 넓게 보호할수록 제한된 식량을 더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합니다. 그 결과 성소를 지킬 군사들에게 남은 식량도 줄어듭니다.

본문은 이를 누구의 잘못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피난민들이 식량을 먹었다는 사실과 군사들이 굶주렸다는 사실을 나란히 놓을 뿐입니다.

결국 성소에는 얼마 남지 않은 군사들만 남고, 나머지는 자기 고장으로 흩어집니다.

성소를 되찾고 그 둘레에 높은 성벽을 세웠던 사람들은 이제 그 성벽 안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에 충실하고 성소를 지키려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물질적인 궁핍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본문은 그들의 굶주림을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다는 증거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성소를 지킨다는 것은 돌로 쌓은 성벽을 지키는 일만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생명과 공동체의 삶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공동체는 거의 무너질 지경에 이릅니다. 유다의 군사력만으로 상황을 뒤집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때 뜻밖의 소식이 왕의 진영에 도착합니다.

적군의 지휘관이 전쟁의 원인을 인정하다

마카베오기 상권 6:55–59 본문 →

리시아스는 빌립이 페르시아와 메대에서 돌아와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앞서 죽은 안티오코스는 빌립에게 왕의 권위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리시아스는 어린 안티오코스를 직접 왕위에 올렸습니다. 이제 빌립이 돌아와 권력을 요구하면서, 리시아스는 유다 땅에서 벌이는 전쟁과 왕국 내부의 권력 다툼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리시아스는 철수를 서두릅니다. 그는 왕과 지휘관들에게 군대의 식량이 부족하고, 포위한 곳의 방어 시설이 견고하며, 나라의 일들이 자신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때까지 굶주림은 주로 성소를 지키는 사람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리시아스의 말에 따르면 왕의 군대 역시 식량이 부족해지고 있었습니다.

리시아스는 평화를 제안하면서 단순히 철수하자고만 하지 않습니다. 그는 유다인들에게 예전처럼 자기들의 법도를 따라 살 수 있게 하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원인을 설명합니다.

「그들이 예전처럼 자기들의 법도를 따라 살 수 있게 보장합시다. 우리가 그들의 법도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그들이 화를 내어 이 모든 일을 벌인 것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6:59 · 본디새김

왕에게 호소했던 사람들은 유다인들이 위험한 반역자이며 왕국을 위협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리시아스는 그들이 왜 저항하게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문화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정결한 음식을 먹고, 할례를 행하며, 조상들에게 주어진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앞서 안티오코스는 바로 이러한 삶을 금지하려 했습니다(1:41–50).

그러므로 리시아스의 제안은 예배 몇 가지를 허용하겠다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적·종교적 질서를 회복하도록 허용하자는 것입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단순히 외국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이 되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지키려 했던 것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였습니다(2:19–22, 27).

이제 적국의 지휘관이 그 사실을 인정합니다.

제국은 군사적으로 우세했지만,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처음에 부정했던 삶의 질서를 다시 인정해야 했습니다.

또한 리시아스의 제안은 상대의 행동을 평가하기 전에 그 행동을 낳은 부당한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저항의 방법을 무조건 정당화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지 않은 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평화를 이루는 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법도」는 단순히 국가가 제정한 법률 조항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한 공동체가 따라 살아가는 관습과 규범, 전통적인 생활 질서까지 포함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물론 리시아스가 유다인의 신앙을 깊이 이해하거나 존중하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에게는 전쟁을 끝내고 왕국의 내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절박한 정치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른손으로 맺은 평화를 스스로 깨뜨리다

마카베오기 상권 6:60–63 본문 →

왕과 지도자들은 리시아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유다인들에게 평화를 제안하고, 그들이 받아들이자 조건들을 지키겠다고 맹세합니다.

유다인들은 그 맹세를 믿고 요새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왕은 시온산에 들어와 성벽을 보는 순간 마음을 바꿉니다.

왕은 시온산으로 들어가 그곳의 요새를 보았다. 그는 자기가 한 맹세를 어기고 명령을 내려 둘레의 성벽을 허물었다.마카베오기 상권 6:62 · 본디새김

왕은 평화를 맺었지만, 자신이 보기에 위협적인 방어 시설까지 그대로 두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협상을 통해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상대가 실제로 강한 세력으로 남아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옛 왕은 성소의 재물을 빼앗았고, 새 왕은 성소를 둘러싼 성벽을 허뭅니다. 왕은 바뀌었지만, 자신의 권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만 상대의 삶을 인정하려는 태도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평화 협상으로 이루어진 모든 변화가 완전히 취소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명시적으로 기록하는 위반 행위는 성벽의 철거 명령입니다. 왕이 법도 준수 허용까지 공식적으로 철회했는지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절에서 왕은 서둘러 안디옥으로 돌아갑니다. 빌립이 그 도시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은 그와 싸워 무력으로 도시를 차지합니다.

제국의 군사력은 막강하지만, 제국의 질서는 결코 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본문에서 58절의 「오른손을 내밀고」는 화해와 합의의 몸짓을 나타냅니다. 상대를 적으로만 대하지 않고 약속을 맺을 대상으로 인정하는 행동입니다. 서술자는 단순히 협상 조건에 이견이 생겼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왕이 이미 한 맹세를 어겼다고 분명히 평가합니다. 여기서 여호수아 9:18–20과의 주제적 연결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 맹세를 했지만, 그 맹세를 함부로 어길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상대가 자신들을 속였다는 사실조차 맹세를 가볍게 파기할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반면 마카베오기 상권 6장의 왕은 자신이 정식으로 맺은 약속을 스스로 어깁니다.

성소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

마카베오기 상권 6:1–63 본문 →

이 장에서 하나님에 관한 질문은 전쟁의 승패보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어떤 삶을 지키려 하는가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마음속의 신념만이 아니었습니다. 땅을 경작하는 방법, 음식을 먹는 방식,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 성소에서 예배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장에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거나 기적적으로 적군을 물리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따라서 전투의 패배나 빌립의 귀환을 각각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나 기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왕은 시온산에 서 있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유다인들이 어렵게 다시 세운 성벽이 있습니다. 그 성벽은 안티오코스의 박해를 견디고, 성소를 회복하고, 다시는 예배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남긴 흔적입니다.

왕은 그 성벽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맺은 맹세를 어기고 그것을 허물라고 명령합니다.

왕은 성벽을 허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벽을 세우게 했던 믿음과 삶의 질서까지 허물었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왕은 서둘러 안디옥으로 떠납니다. 그가 떠난 시온산에는 허물어진 성벽과, 자신들의 법도를 따라 살아가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