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3–8장 · 유다 마카베오의 싸움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마카베오기 상권 4장은 기쁨으로 끝납니다. 더럽혀졌던 성소가 정결하게 되고, 제단에 다시 제물이 바쳐지며, 예루살렘에는 봉헌의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5장은 그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주변 민족들이 성소의 재봉헌을 듣고 분노하여, 자기들 가운데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없애려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소는 회복되었지만, 예루살렘 밖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빠졌습니다. 성소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이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어 가는 동족을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야 합니다.
이 장에는 수많은 전투와 도시 이름, 군사들의 이동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복잡한 이야기 한가운데에는 단순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싸우는 일이며, 무엇이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한 싸움입니까?
회복된 제단에서 시작된 새로운 위기
5장은 앞 장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첫 절은 주변 민족들이 분노한 이유를 성소 재봉헌에서 찾습니다. 제단이 다시 세워지고 성소가 이전처럼 봉헌되었다는 소식은 유다 사람들에게 기쁜 일이었지만, 주변 민족들에게는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이들을 단순히 유다 출신 주민이라고 부르지 않고 「야곱의 자손」이라고 부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하나의 조상과 역사에 연결합니다. 정치적 경계가 그들을 갈라놓아도, 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어지는 전투에서도 같은 방식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유다가 아크라바테네에서 싸우는 상대는 「에서의 자손들」입니다(5:3). 야곱과 에서는 창세기 25–33장에서 한 가족의 형제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 후손들의 이름이 서로 대립하는 집단을 가리킵니다.
그렇다고 창세기의 야곱과 에서 이야기가 이 전쟁을 필연적으로 예고했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이 표현은 오히려 마카베오기 저자가 당대의 분쟁을 이스라엘의 오래된 역사적 정체성 안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3–8절의 전투는 빠르게 진행됩니다. 유다는 에서의 자손들을 공격하고, 길목에서 사람들을 해치던 바이안 자손들을 진멸하며, 암몬 자손들의 군대를 무찌르고 야셀을 점령합니다.
본문은 망대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불에 타 죽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런 폭력은 단순히 승리의 영광으로 환원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실제로 위협받는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살상도 있습니다. 두 사실 가운데 하나를 지워서는 본문을 온전히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짧은 전투 기록이 끝나자 이야기는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이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유다에게, 직접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구약의 다른 본문들도 이 긴장에 대해 생각할 길을 열어 줍니다. 신명기 20장은 전쟁에 관한 규정 가운데 평화 제안과 포위 전쟁을 다루며, 이사야 2:2–4는 민족들이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않는 미래를 그립니다. 이 두 본문은 마카베오기 전투의 직접적인 해설이 아닙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성경 안에서 전쟁과 평화가 하나의 단순한 공식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구원을 요청하는 편지들 — 공동체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길르앗에서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곳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공격을 피해 다테마 요새에 갇혀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고, 도비야의 땅에서는 남자 약 천 명이 살해되었으며 여자들과 아이들이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오셔서 우리를 그들의 손에서 건져 주십시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쓰러졌습니다.」마카베오기 상권 5:12 · 본디새김
이들은 유다에게 영토를 정복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적에게 포위된 자신들을 죽음에서 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요청을 읽는 동안 갈릴리에서도 전령들이 도착합니다. 그들은 옷을 찢고 있었습니다(5:14).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멀리 떨어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공동체가 공격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혼자서 대응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16절에서 그는 백성과 함께 큰 회중을 모아 형제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의논합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문제는 지도자 개인의 영웅적 판단만으로 처리되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으로 제시됩니다.
결정은 명확합니다. 시몬은 삼천 명을 이끌고 갈릴리로 향하고, 유다와 요나단은 팔천 명을 이끌고 길르앗으로 갑니다. 요셉과 아사랴에게는 남은 군사들과 함께 유대를 지키도록 합니다.
그는 그들에게 명령했다. 「이 백성을 이끌어라.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이방 민족들과 싸움을 벌이지 마라.」마카베오기 상권 5:19 · 본디새김
이 구분은 뒤에 나오는 요셉과 아사랴의 실패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전쟁에 나서는 용기만이 충성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맡긴 임무를 지키고, 필요하지 않은 싸움을 피하는 일도 충성입니다.
하나의 공동체라는 고백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겪는 고난을 공동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구체적인 의미를 얻습니다.
조금 더 깊이
옷을 찢는 행위는 구약에서 극심한 슬픔이나 재난을 나타낼 때 흔히 등장합니다(창세기 37:29, 여호수아 7:6). 출애굽기 2:23–25에서 이스라엘의 고통과 부르짖음은 하나님 앞에 이르며, 하나님은 그들의 처지를 돌아보십니다. 이어 3:7–10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아시고 모세를 보내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마카베오기 5장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유다에게 직접 사명을 주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따라서 유다를 모세와 동일한 위치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억압받는 백성을 위험에서 건져 내고,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며, 공동체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기본적인 구원의 흐름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승리의 목표는 적을 없애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시몬의 갈릴리 원정은 짧게 기록됩니다.
그는 여러 차례 싸워 적들을 물리치고 돌레마이 부근까지 추격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원정의 마지막 장면으로 선택한 것은 전투가 아닙니다.
시몬은 갈릴리와 아르바타에 있는 형제들을 아내들과 자녀들과 함께 데리고 나왔으며, 그들의 소유도 모두 챙겼다.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이들을 유대로 데려왔다.마카베오기 상권 5:23 · 본디새김
여기서 구원은 적군을 격파하는 순간 완성되지 않습니다. 위험한 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 안전한 곳까지 이르게 해야 합니다.
한편 유다와 요나단은 요단강을 건너 광야에서 사흘을 이동합니다. 그들은 길에서 나바테아 사람들을 만납니다. 나바테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데도 유다를 평화롭게 맞이하고, 길르앗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세하게 알려 줍니다(5:25–27).
본문은 이스라엘 밖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민족적 구분이 전쟁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제 관계는 그 구분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격하고, 어떤 사람들은 평화롭게 맞이합니다.
나바테아 사람들이 전한 정보는 매우 급박합니다. 여러 요새에 사람들이 갇혀 있고, 적들이 다음 날 그들을 공격하여 하루 만에 모두 없애려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곧바로 방향을 바꿉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유다는 보솔을 공격한 뒤 밤새 이동하여, 적군이 요새를 공격하고 있는 현장에 도착합니다. 새벽에 그들이 본 것은 사다리와 공성 기계를 들고 요새를 공격하는 수많은 군사였습니다. 요새 안에서는 외침과 나팔 소리가 하늘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는 자기 군사들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형제들을 위해 싸워라.」마카베오기 상권 5:32 · 본디새김
유다는 여기서 자신의 명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영토를 얻거나 적에게 복수하자고 외치지도 않습니다. 그는 전투의 이유를 분명히 합니다. 지금 저 성벽 안에 자신들의 형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군대는 세 부대로 나뉘어 적의 뒤로 접근합니다. 나팔이 울리고 군사들은 소리 높여 기도합니다. 31절에서는 포위된 도시의 외침이 하늘까지 올라갔고, 33절에서는 구출하러 온 군사들의 기도가 울려 퍼집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직접 어떤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키셨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적군이 유다를 알아보고 달아났다는 것이 전투의 직접적인 전개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승리를 단순한 군사적 성취만으로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전투의 한가운데 기도를 배치합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을 향한 의지는 극적인 신적 발현보다, 기도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모습 속에 드러납니다.
먼저 강을 건너는 사람 — 두려움과 용기의 경계
디모데는 패배한 뒤 다시 군대를 모읍니다.
이번에는 주변 민족들을 불러들이고 아라비아 사람들까지 고용합니다. 그들은 시내 건너편에서 유다의 군대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잠시 적군의 진영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디모데는 자기 지휘관들에게 유다가 먼저 강을 건너면 자신들이 그를 막아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유다가 두려워하여 건너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건너가 공격하겠다고 합니다.
독자는 유다보다 먼저 이 전략을 듣게 됩니다. 따라서 유다가 시내 앞에 도착했을 때,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적군의 기대가 이루어질 수도,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다는 물이 흐르는 시내에 가까이 이르자 백성의 서기관들을 시냇가에 세우고 명령했다. 「아무도 진을 치게 두지 마라. 모두 싸움터로 나아가게 하라.」마카베오기 상권 5:42 · 본디새김
그리고 그가 먼저 강을 건넙니다. 군사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유다는 적이 유리한 조건에서 공격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먼저 위험한 경계를 넘어섭니다. 그 결과 적군은 무기를 버리고 가르나임의 신전 경내로 도망합니다. 유다의 군사들은 그곳을 불태우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을 죽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신전 경내까지 불사르는 행위를 저자는 승리의 일부로 기록하지만, 그곳에 피신한 사람들이 죽는 장면에는 분명한 폭력의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그 장소가 신전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죽음이 정당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유다에게는 구체적으로 구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훗날 요셉과 아사랴도 전쟁터로 나가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이유로 싸웁니다.
그 차이는 곧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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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서기관들의 구체적인 군사적 역할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맡은 임무는 분명합니다. 군사들이 시냇가에 머물러 주저하는 일을 막고, 모두 전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전투는 귀환하는 길에 있었다
길르앗에서 여러 차례 전투를 치른 뒤 유다는 사람들을 모읍니다.
유다는 유다 땅으로 가려고 길르앗 땅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작은 이부터 큰 이까지 모두 모았다.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과 짐도 함께 모으니 대단히 큰 무리가 되었다.마카베오기 상권 5:45 · 본디새김
각자의 짐까지 가지고 있으니 행렬은 길고 이동은 느렸을 것입니다. 전투 경험이 없는 사람들까지 보호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원정의 진정한 난관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릅니다.
강한 군대를 물리치는 것과 수많은 피난민을 안전하게 데리고 돌아오는 일은 서로 다른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에프론에 도착합니다. 그곳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우회할 수 없고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습니다.
유다는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 평화로운 말로 전했다. 「나는 우리 땅으로 가려고 그대의 땅을 지나가겠소. 아무도 그대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그저 걸어서 지나가겠소.」 그러나 그들은 그에게 문을 열어 주려 하지 않았다.마카베오기 상권 5:48 · 본디새김
유다는 도시를 공격하여 점령한 뒤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도시를 파괴합니다. 51절은 그들이 죽임당한 사람들 위를 넘어 도시를 통과했다고 기록합니다.
피난민들을 안전하게 데려오기 위한 길이 다른 사람들의 시체 위로 이어진 것입니다.
저자는 이 장면을 생략하거나 완곡하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파괴의 윤리적 정당성을 별도로 논증하지도 않습니다. 구원을 위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본문은 그 현실을 그대로 남겨 둡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유다는 유다 땅에 이를 때까지 가는 길 내내 뒤처지는 사람들을 모으고 백성을 격려했다.마카베오기 상권 5:53 · 본디새김
앞에서 유다는 적군을 먼저 공격하고, 강을 먼저 건너고, 성읍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행렬의 뒤쪽을 살핍니다.
승리한 장군의 모습과 지친 사람들을 보살피는 지도자의 모습이 한 사람 안에 함께 나타납니다.
유다의 원정은 시온산에서 마무리됩니다.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 속에 산으로 올라가 번제를 바칩니다. 그들 가운데 아무도 쓰러지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입니다(5:54).
성소의 회복은 건물을 되찾는 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예배할 사람들이 살아 돌아왔을 때, 회복의 기쁨은 더 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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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절의 평화로운 통과 요청은 민수기 20:14–21에서 모세가 에돔 왕에게 통과를 요청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도 상대의 땅을 해치지 않고 지나가겠다고 제안했지만, 에돔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은 에돔의 거절을 받아들이고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마카베오기에서 유다는 공격을 감행합니다. 두 장면이 직접적인 문학적 인용 관계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평화로운 통과 요청과 거절이라는 상황은 뚜렷하게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이 이야기의 폭력성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뒤처지는 사람들을 모으는 장면은 사무엘상 30:18–25의 다윗 이야기를 주제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에게 사로잡힌 가족들을 구출했고, 지쳐서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공동체의 몫에서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두 이야기를 직접적인 인용 관계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전투의 성과를 강한 사람들만의 소유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 통합니다. 54절에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말은 이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무리에 관한 설명으로 읽어야 합니다. 5장은 이미 여러 이스라엘 사람이 살해되었다고 전했고, 뒤에서는 또 다른 전투에서 이천 명이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전체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희생자가 없었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전쟁, 다른 이유 — 이름을 얻으려다 잃은 사람들
여기서 이야기는 뜻밖의 방향으로 돌아갑니다.
유다와 요나단이 길르앗에 있고 시몬이 갈릴리에 있던 때, 유대에 남아 있던 지휘관들이 그들의 승리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도 스스로 이름을 떨칠 것이다. 가서 우리 둘레의 이방 민족들과 싸우자.」마카베오기 상권 5:57 · 본디새김
이 말은 32절의 유다의 말 「오늘 우리 형제들을 위해 싸워라」와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두 집단 모두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섰습니다. 두 집단 모두 이방 민족과 싸웁니다. 그러나 전쟁을 시작한 이유가 다릅니다.
한쪽은 위험에 처한 형제들을 구하러 갔습니다. 다른 한쪽은 다른 이들의 승리 소식을 듣고 자기들도 명성을 얻으려 했습니다.
요셉과 아사랴는 야브네를 향해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가 고르기아스에게 패배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약 이천 명이 죽었습니다.
백성이 크게 패주한 것은 그들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가 용맹을 떨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마카베오기 상권 5:61 · 본디새김
그들은 용기가 부족해서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들도 용맹을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싸움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공동체의 필요와 자신들에게 맡겨진 임무보다 자기 명예를 앞세웠다는 데 있습니다.
유다는 분명히 돌아올 때까지 전쟁을 벌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맡겨진 일은 유대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책임을 이행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승리를 모방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이 맡겨진 그 사람들의 가문에 속하지 않았다.마카베오기 상권 5:62 · 본디새김
첫째, 저자는 유다와 그의 형제들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특별한 역할이 맡겨졌다고 이해합니다. 수동형으로 「주어졌다」고 표현하여 그 임무가 그들에게 맡겨졌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표현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전제하는 신앙적 이해가 담겨 있다고 읽을 수 있지만, 이 구절이 하나님을 직접 주어로 명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이 진술은 마카베오 가문의 특별한 위치를 강조하는 저자의 역사 서술입니다. 여기서 모든 구원 활동이 오직 특정 혈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보편적인 교리를 도출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앞서 본문이 지적한 두 지휘관의 실패는 단순히 혈통이 달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명령을 어겼고, 명예를 얻으려는 동기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요셉과 아사랴는 이름을 떨치려고 싸우다가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자신들이 이름을 얻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는데도 큰 영예를 얻습니다.
명예를 목적으로 삼은 이들은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렸고, 공동체를 구하는 일을 감당한 이들에게는 명예가 뒤따랐습니다.
다만 이 대비를 언제나 선한 사람은 성공하고 허영심이 있는 사람은 실패한다는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판단하는 것은 구체적인 전쟁의 동기와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이름 표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앞서 유다에게서 유대 방어를 맡았던 지휘관들입니다. 「우리도 스스로 이름을 떨칠 것이다」라는 말은 창세기 11:4에서 바벨탑을 세우던 사람들의 욕망을 연상시킵니다. 그들 역시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바벨탑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인용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을 크게 만들려는 욕망이 공동체적 책임보다 앞서는 모습은 두 이야기에서 공통으로 발견됩니다. 2:51–64에서 마타티아스는 자녀들에게 조상들의 믿음과 용기를 기억하도록 권면하며, 영광과 이름을 얻는 일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강조되는 것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 율법과 언약에 대한 충실함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제사장들 — 거룩한 신분도 분별을 대신하지 못한다
5장의 마지막에는 다시 유다의 전투가 기록됩니다.
유다는 남쪽에서 에서의 자손들과 싸우고 헤브론을 공격합니다. 이어 블레셋 땅을 향해 이동하며 아소도에서 제단들을 무너뜨리고 신들의 조각상을 불태웁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짧고 뜻밖의 기록이 끼어듭니다.
그날 제사장들이 전쟁에서 쓰러졌다. 그가 용맹을 떨치려고 무모하게 싸움터로 나섰을 때였다.마카베오기 상권 5:67 · 본디새김
앞서 패배한 지휘관들도 자기들의 용맹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 이 구절의 초점은 단순히 전쟁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신중하지 못하게 전투에 참여했다는 데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카베오 가문 역시 제사장 가문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직무를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행동이 지혜롭거나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제사장들의 죽음은 이 장 전체가 무조건적인 승전 기록으로 끝나지 못하게 합니다. 유다의 군대는 계속 전진하지만, 그 전쟁의 주변에서는 자기 능력을 증명하려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5장은 여기서 인간의 용기와 신중함을 구별합니다.
어떤 용기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합니다. 다른 용기는 자기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위험을 만들어 냅니다.
마지막 절에서 유다는 아소도의 이방 제단들을 허물고 신상들을 불태운 뒤 유대로 돌아옵니다. 이는 성소를 더럽힌 이방 제단들을 제거했던 앞선 이야기와 연결됩니다(1마카베오 4:43–45).
하지만 여기서도 그의 파괴 행위를 모두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저자는 율법에 충실하려는 유다의 종교적 투쟁을 그리면서 동시에 전쟁과 약탈의 행위들을 기록합니다.
오늘의 의미 — 강한 사람의 속도에 맞추지 않는 공동체
유다의 가치는 적을 많이 죽였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감당했다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그의 군사적 승리를 길게 서술하지만, 원정의 중요한 끝자락에는 그가 지친 사람들을 모으고 격려하는 모습을 놓아둡니다.
앞에는 길을 아는 사람들이 있고, 뒤에는 걷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가족의 손을 잡고 걸으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짐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그들은 수많은 위험을 지나왔고, 이제 고향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유다는 그 행렬의 뒤쪽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가 구하려 했던 사람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 시온산에 이릅니다.
그들은 제단 앞에서 번제를 바칩니다. 얼마 전에 회복했던 그 제단입니다.
5장의 가장 뜻깊은 승리는 적을 무찌른 순간만이 아니라, 구하러 떠났던 사람들이 뒤처진 이들까지 데리고 돌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선 데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