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르기 (그리스어)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4–5장 · 슬픔과 기도

왕관을 벗고 참된 왕 앞에 서다

에스테르기 4장은 두 개의 문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왕궁의 바깥문입니다. 모르드개는 그곳까지 가지만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쓴 사람은 왕궁 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왕이 있는 안뜰로 통하는 문입니다. 에스테르는 왕후이지만 그곳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들어가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두 사람이 유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왕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이 장의 중심에는 그런 역설이 있습니다. 제국의 가장 높은 자리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조차 왕에게 자유롭게 접근할 수 없지만, 그들은 그 왕보다 높은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그리스어 에스테르기 4장은 이 결심을 두 사람의 기도로 깊이 들여다보게 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직접 들을 수 없었던 모르드개와 에스테르의 기도가 여기서는 길게 기록됩니다. 그 기도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지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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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에 들어갈 수 없는 슬픔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5 본문 →

모르드개의 외침은 억울함에 대한 증언입니다

하만의 학살 명령이 내려지자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재를 뿌립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옷을 찢거나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는 행동은 큰 슬픔과 재앙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표현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굵은 베옷을 입었고(창세기 37:34), 니느웨 사람들은 심판의 경고를 듣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요나 3:5–8).

그러나 그가 큰길에서 외치는 말은 단순한 슬픔의 표현을 넘어섭니다.

모르드개는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고 자기 옷을 찢었다. 그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린 뒤, 도시의 큰길로 뛰쳐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한 민족이 말살되고 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 · 본디새김

하만은 유대인들이 왕의 법을 따르지 않고 나라의 안정을 해친다고 주장했습니다(3:8, 104–105). 그런데 모르드개는 그 주장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그가 외치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살려 달라는 부탁이 아닙니다. 학살 명령이 부당하다는 주장입니다.

왕궁의 문이 슬픔을 가로막습니다

그는 왕궁 문까지 가서 멈추어 섰다.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로는 뜰 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2 · 본디새김

왕궁 바깥에는 민족의 멸망을 앞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울고, 외치고, 재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왕궁 안에는 그런 모습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정치적 권력의 중심과 백성의 고통 사이에 문이 놓여 있습니다.

문서가 게시된 지방마다 유대인들 사이에 통곡과 큰 슬픔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굵은 베와 재를 깔고 앉습니다. 앞 장에서 제국의 문서가 여러 지방으로 전달되었다면, 이제 그 문서가 도착한 자리마다 슬픔이 퍼집니다.

하만에게는 행정적인 결정이었던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삶 전체를 뒤흔드는 재앙이 된 것입니다.

에스테르는 처음에 옷을 보냅니다

왕후의 여종들과 내시들이 모르드개의 모습을 에스테르에게 알립니다. 에스테르는 마음이 뒤흔들리고, 사람을 보내 모르드개가 굵은 베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도록 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거절합니다.

이 장면을 에스테르가 민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겉모습만 바꾸려 했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가 이 시점에 학살 명령의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스테르는 모르드개의 슬픔을 덮을 옷을 보내지만, 모르드개는 그 슬픔을 드러내는 옷을 벗지 않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복장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복장을 입게 만든 현실을 바꾸는 일입니다.

이렇게 모르드개의 거절은 에스테르에게 질문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에스테르는 내시 아크라타이오스를 보내 정확한 사정을 알아오게 합니다.

에스테르는 처음에는 모르드개의 모습을 바꾸려 했지만, 이제는 그가 왜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지 알려고 합니다.

문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대화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7–12 본문 →

모르드개는 소문이 아니라 문서를 보냅니다

모르드개는 아크라타이오스에게 하만이 벌인 일과 왕에게 약속한 은 만 탈란톤에 관해 설명합니다.

그런 다음 유대인들을 없애라는 문서의 사본을 에스테르에게 보여 주도록 건넵니다. 에스테르가 왕에게 간청하려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왕궁의 깊은 곳에 있는 왕후와 왕궁 문밖에 서 있는 모르드개는 직접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시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는 왕후이지만 제국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일을 모두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속한 민족에게 죽음의 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조차 다른 사람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과 현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에스테르에게 필요한 것은 왕후의 지위만이 아닙니다. 그 지위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진실한 정보입니다.

‘그대가 보잘것없는 처지로 내 손에서 자라던 날들을 기억하십시오’

모르드개는 에스테르에게 왕을 찾아가 백성을 위해 간청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리스어 본문은 여기에 히브리어 본문에 없는 개인적인 호소를 덧붙입니다.

또 유대 사람들을 없애려고 수산에 게시한 문서의 사본을 에스더에게 보여 주도록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왕에게 들어가 간청하고 백성을 위해 청원하라는 명령을 에스더에게 전하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보잘것없는 처지로 내 손에서 자라던 날들을 기억하십시오. 왕 다음가는 자리에 있는 하만이 우리를 죽이려고 우리를 거슬러 말했으니, 주께 부르짖고 왕께 우리 일을 말씀드려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주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8 · 본디새김

지금 에스테르는 왕후이지만, 처음부터 왕후였던 것은 아닙니다. 부모를 잃고 모르드개의 보호 아래 자랐습니다. 모르드개는 그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왕후의 지위가 그의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모르드개는 자신만의 구원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왕후 에스테르에게 자신도 여전히 그 ‘우리’ 안에 속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과 왕에게 간청하는 것은 서로 대체되는 행동이 아닙니다. 모르드개는 둘 다 하라고 요구합니다. 유대 민족의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문제이지만, 에스테르에게는 왕에게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책임도 있습니다.

기도와 행동이 이 장에서 처음부터 함께 놓이는 것입니다.

왕후도 왕의 부름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에스테르는 모르드개의 요청에 곧바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라의 모든 민족이 알다시피, 남자든 여자든 부름을 받지 않고 안뜰로 왕을 뵈러 들어가는 사람은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다만 왕께서 금 홀을 내미시는 사람만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왕을 뵈러 들어오라는 부름을 받지 못한 지 벌써 삼십 일이 되었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1 · 본디새김

에스테르가 설명한 규정은 왕후에게도 적용됩니다. 금 홀은 왕이 그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고 생명을 보전해 준다는 표시입니다. 에스테르는 왕의 사랑을 받아 왕후가 되었지만, 그 사랑이 왕에게 자유롭게 나아갈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왕은 삼십 일 동안 에스테르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본문에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스테르의 입장에서는 왕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그가 왕에게 나아가는 일은 실제로 생명을 걸어야 하는 행동입니다.

'바로 이때를 위해 왕후가 되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3–17 본문 →

왕후의 자리는 민족의 운명에서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까?

에스테르의 설명을 들은 모르드개는 그에게 다시 말을 전합니다.

모르드개가 아크라타이오스에게 말했다. 「가서 에스더에게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에스더, 이 나라의 모든 유대 사람 가운데 그대 혼자 살아남으리라고 스스로 말하지 마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3 · 본디새김

이 말은 에스테르가 자기 목숨만 생각하고 있다고 단정하는 비난으로 읽기보다, 그가 자신의 지위를 잘못 이해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말로 읽는 편이 적절합니다. 에스테르는 왕후입니다. 왕궁 안에 살고 있으며,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에스테르가 자신의 민족을 감춘 것은 지금까지 그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 전체가 멸망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는 그 침묵이 언제까지 보호막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숨겨진 정체성은 현실에서 그 민족과 맺고 있는 관계를 없애 주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 도움과 보호가 생길 것입니다’

「『그대가 이때 듣지 않은 체한다면, 다른 곳에서 유대 사람들에게 도움과 보호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와 그대 아버지의 집안은 망할 것입니다. 그대가 바로 이때를 위해 왕후가 되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4 · 본디새김

그는 에스테르 한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구원이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다른 곳’이 어디인지 직접 밝히지는 않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라는 질문의 깊이

모르드개의 말은 이 장에서 가장 유명한 질문으로 끝납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일을 위해 에스테르를 왕후로 세우셨다고 직접 계시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에스테르가 왕후가 된 일이 단순히 그 자신의 삶을 바꾼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위가 지금 자기 민족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계획을 전부 안다고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계획 앞에서 에스테르가 행동해야 할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이 질문은 신앙과 불확실성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다는 길을 보여 줍니다.

모르드개의 질문을 들은 에스테르는 마침내 결정을 내립니다.

에스테르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합니다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 사람들을 모아 주십시오. 모두 저를 위해 금식하고, 사흘 동안 밤낮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마십시오. 저도 제 여종들과 함께 굶겠습니다. 그런 다음 제가 죽게 되더라도 법을 어기고 왕을 뵈러 들어가겠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6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에스테르는 모르드개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2:10, 20).

그런데 이제 에스테르가 모르드개에게 명령합니다.

모르드개는 가서 에스더가 자기에게 명령한 모든 일을 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7 · 본디새김

에스테르는 더 이상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드개의 지시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위험을 이해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했으며, 그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 공동체를 움직입니다.

에스테르가 왕후라는 지위를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금식은 여기서 단순히 식사를 하지 않는 행동이 아닙니다. 뒤이어 나오는 두 기도가 보여 주듯, 공동체가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행동입니다. 왕에게 나아가는 일은 에스테르 한 사람이 수행하지만, 그 행동을 준비하는 일에는 공동체 전체가 참여합니다.

이제 그리스어 본문은 두 사람의 기도를 들려줍니다.

조금 더 깊이

4:14의 ‘다른 곳에서 도움과 보호’를 하나님의 구원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바로 뒤에 이어지는 모르드개의 기도는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로 믿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러나 4:14의 표현 자체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므로, 그 말에 특정한 구원 방법까지 담겨 있다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그는 에스테르와 그 아버지의 집안이 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을 하나님이 침묵하는 에스테르에게 반드시 특별한 벌을 내리신다는 예언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직접적인 신적 판결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민족의 운명과 단절된 채 왕궁 안에서 홀로 안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모르드개의 기도: 사람에게 절하지 않은 이유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01–111 본문 →

누구의 권한 아래 모든 것이 있습니까?

모르드개는 주께서 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자신의 고난이나 하만의 악행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말했다. 「주님, 주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왕이시여, 모든 것이 당신의 권한 아래 있습니다. 당신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실 때 당신의 뜻에 맞설 자는 없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02 · 본디새김

앞 장에서 하만은 왕의 반지를 받아 학살을 명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권한은 그가 다스리는 제국 안에서 행사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므로 그 통치의 범위가 특정한 영토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의 기도는 하만의 권력이 작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권력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의 거절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이어서 모르드개는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설명합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 제가 오만한 하만에게 엎드려 절하지 않은 것은 무례해서도, 교만해서도, 명예를 탐내서도 아니었음을 당신은 아십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05 · 본디새김
「저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그의 발바닥에 기꺼이 입 맞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06 · 본디새김

이 말은 모르드개가 단지 사람에게 몸을 낮추는 일을 싫어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구할 수 있다면 극도로 자신을 낮추는 행동도 감수할 마음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 위에 두지 않으려고 이렇게 했습니다. 저는 저의 주이신 당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엎드려 절하지 않을 것이며, 교만한 마음으로 이런 일을 하지도 않겠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07 · 본디새김

핵심은 몸을 얼마나 깊이 굽히느냐가 아니라,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엎드리는 일이 이 상황에서는 인간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높이는 행동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왜 하만에 대한 경의를 그렇게 이해했는지는 본문이 모든 배경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어 본문은 모르드개의 거절을 개인적인 오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연결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사람에게 절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일반적인 규칙을 이 기도에서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모르드개가 설명하는 것은 하만과 자신 사이에서 일어난 특정한 행동의 의미입니다.

‘당신의 몫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모르드개의 기도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한 뒤 이스라엘의 구원으로 옮겨 갑니다.

「당신의 것으로 삼으려고 이집트 땅에서 속량하신 당신의 몫을 외면하지 마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09 · 본디새김

여기서 모르드개는 이스라엘을 단지 자신이 속한 민족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몫이며 하나님의 유산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출애굽과 언약의 기억에 근거합니다.

신명기 9:26, 29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큰 권능으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몫이라고 기도합니다. 모르드개 역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출애굽을 기억합니다. 두 사람의 기도는 모두 자신의 공로나 백성의 의로움보다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 행위에 호소합니다.

「저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당신의 몫에 자비를 베푸십시오. 저희가 살아서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저희의 슬픔을 잔치로 바꾸어 주십시오. 주님, 당신을 찬양하는 이들의 입을 없애지 마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10 · 본디새김

하만과 왕은 학살 명령을 내려놓고 잔치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죽음의 위협을 받는 백성의 슬픔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잔치로 바뀌기를 구합니다.

마침내 4:111은 온 이스라엘이 있는 힘껏 부르짖었다고 말합니다. 모르드개의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부르짖음은 죽음을 앞둔 백성의 부르짖음과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점에서 출애굽기 2:23–25와 연결되지만, 이 장에서 아직 구원의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의 구원 이야기들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들으시는 분으로 드러나십니다. 에스테르기 4장은 그 백성이 바로 그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리까지 독자를 이끌어 옵니다.

에스테르의 기도: 왕관 아래 감추어진 고통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12–121 본문 →

왕후가 영광스러운 옷을 벗는다

모르드개의 기도 다음에는 에스테르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에스더 왕후도 죽음의 고뇌에 사로잡혀 주에게 피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12 · 본디새김

에스테르가 죽음의 위험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영광스러운 옷을 벗고 고난과 슬픔의 옷을 입었다. 사치스러운 향료 대신 재와 똥으로 머리를 뒤덮었다. 자기 몸을 몹시 낮추고, 기쁨의 장식으로 꾸몄던 곳마다 자기의 땋은 머리카락으로 덮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13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에스테르는 열두 달 동안 향유와 향품으로 몸을 가꾼 뒤 왕에게 나아갔습니다(2:12–16).

그런데 이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합니다.

그는 왕후입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화려한 왕관을 쓴 통치자의 배우자가 아니라, 자기 민족과 함께 멸망의 위협을 받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모르드개는 왕궁에 들어갈 수 없는데도 굵은 베옷을 벗지 않았습니다. 에스테르는 이제 스스로 왕후의 옷을 벗고 같은 슬픔의 자리에 섭니다.

왕궁 문밖에 있던 모르드개의 슬픔이, 왕궁 안에 있던 에스테르 자신의 슬픔이 되었습니다.

‘홀로 있으며 당신 외에는 도울 이가 없는 저’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주에게 간구하며 말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왕이시여, 오직 당신뿐이십니다. 홀로 있으며 당신 외에는 도울 이가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14 · 본디새김

에스테르에게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는 여종들이 있고, 모르드개가 있으며, 함께 금식하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홀로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문자적인 설명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 앞에서 느끼는 고립과 무력함을 드러냅니다.

자기 백성을 구하고 싶지만, 그들을 구할 권한이 자신에게 있지도 않습니다. 그는 높은 자리에 있지만 자신을 확실하게 보호해 줄 사람은 없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을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왕이라고 부릅니다. 에스테르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왕이시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가?

에스테르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 온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여러 민족 가운데서 선택하시고,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저희가 당신 앞에서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저희를 저희 원수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17 · 본디새김

모르드개는 하만의 학살 명령에 관해 말했습니다. 유대 민족이 그런 명령을 받을 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스테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놓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이방 신들에게 영광을 돌렸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런 언약적 죄의 고백은 신명기 28–30장의 경고와, 포로기 이후 백성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기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다니엘 9:4–19에서 다니엘은 공동체의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을 구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인정한다고 해서 하만의 학살 계획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테르는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고백하지만, 동시에 원수들이 하나님의 유산을 없애려 한다고 호소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일은,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의 악을 선하다고 인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만이 없애려는 것은 한 민족만이 아니다

에스테르는 원수들이 단순히 유대인들을 없애려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유산을 없애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의 입을 막으며, 하나님의 집과 제단의 영광을 꺼뜨리려 한다고 호소합니다(4:119–121). 에스테르에게 유대 민족의 멸망은 단순히 어떤 민족 집단의 인구가 사라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의 역사,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의 삶, 그리고 성전 예배의 기억과 희망이 위협받는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하만이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려는 별도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테르는 유대 민족 전체를 제거하려는 계획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의 존속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기도 속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수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이방 신들을 찬양하는 민족들의 입을 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사라지고, 헛된 것들과 ‘살로 된 왕’이 영원히 경탄받게 되는 상황을 에스테르는 두려워합니다.

‘살로 된 왕’이라는 표현은 인간 왕의 유한성을 강조합니다. 제국의 왕은 막강한 권세를 지녔지만 결국 육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왕에게 하나님의 자리에 해당하는 영광을 돌리려 한다면, 피조물과 창조주의 질서가 뒤바뀌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 위에 두지 않으려 했습니다. 에스테르는 원수들이 살로 된 왕을 영원히 경탄받게 하려 한다고 고발합니다.

두 사람의 기도 모두 궁극적으로는 누구에게 영광을 돌릴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이릅니다.

두 개의 홀: 인간 왕의 허락과 하나님의 통치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22–125 본문 →

에스테르의 기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당신의 홀을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게 넘기지 마십시오. 그들이 저희가 쓰러진 것을 비웃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계략을 그들 자신에게 돌려주십시오. 저희를 치는 일에 앞장선 자를 공개적으로 수치스럽게 하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22 · 본디새김

조금 앞에서 에스테르는 왕의 금 홀을 언급했습니다. 왕의 금 홀이 내밀어지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4:11).

그런데 이제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홀을 말합니다.

인간 왕의 홀은 한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권한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홀은 모든 권력 위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냅니다.

에스테르는 인간 왕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 허락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왕의 권한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스테르가 구하는 것은 막연한 용기가 아니다

4:123–124에서 에스테르는 자신의 구체적인 상황을 놓고 기도합니다.

「주님, 기억해 주십시오. 저희가 환난을 겪는 이때 당신을 드러내시고 저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신들의 왕이시며 모든 권세를 다스리시는 분이시여,」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23 · 본디새김
「사자 앞에서 제 입에 알맞은 말을 넣어 주십시오. 그의 마음을 돌려 저희와 싸우는 자를 미워하게 하시고, 그자와 그에게 동조하는 자들이 끝장나게 해 주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24 · 본디새김

‘사자’는 에스테르가 나아가야 할 인간 왕을 가리킵니다. 왕을 사자에 비유한 표현은 그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드러냅니다. 에스테르는 왕에게 나아가기로 했지만, 왕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스테르 자신이 왕 앞에 설 것입니다.

에스테르 자신의 입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왕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그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에스테르는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기도는 인간의 행동을 없애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행동을 가능하게 해 달라는 요청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은 앞에 나오는 헛된 신들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방 신들이 참된 신적 권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다만 하찮은 인간 권력을 낮추어 부르는 표현으로 읽을 여지도 있습니다. 알맞은 말을 구하는 이 기도는 출애굽기 4:12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신 장면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모세는 바로 앞에서 말하는 일을 두려워했습니다. 에스테르는 페르시아 왕 앞에서 말해야 하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두 상황은 다르지만, 위험한 권력자 앞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는 점에서 서로 만납니다.

왕관을 역겨워하는 왕후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26–130 본문 →

에스테르의 기도는 마지막 부분에서 매우 개인적인 고백으로 바뀝니다.

앞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의 언약을 말했습니다. 이제는 자기 몸과 왕후의 생활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왕후의 지위가 반드시 기쁨은 아니었다

「당신은 제가 어쩔 수 없는 처지에 있음을 아십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 머리에 쓰는, 저의 위세를 나타내는 표지를 역겨워합니다. 저는 그것을 월경 때 쓰는 헝겊처럼 역겨워하며, 조용히 지내는 날에는 그것을 쓰지 않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27 · 본디새김

그가 말하는 ‘위세를 나타내는 표지’는 왕관입니다. 앞 장에서 왕은 에스테르를 사랑하여 왕후의 왕관을 씌워 주었습니다(2:17). 그 장면에서 왕관은 에스테르가 왕후로 선택되었다는 표시였습니다.

사람들은 왕관을 영광과 권세의 상징으로 봅니다. 그러나 에스테르는 그 왕관을 자신의 진정한 기쁨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에스테르는 왕후가 되었지만, 그 자리를 온전히 자유롭게 선택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 왕궁에 이끌려 왔고, 왕의 선택으로 왕후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기도는 그 지위가 그에게 단순한 영광이나 행복만을 의미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에스테르는 이방 왕궁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

4:126–129에서 에스테르는 자신이 이방인과의 잠자리를 역겨워하며, 하만의 상에서 먹지 않았고, 왕의 술잔치를 영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또 술 제물로 바치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앞 장에서 에스테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며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는 설명(2:20)을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에스테르가 이방인과의 잠자리를 역겨워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놓인 특정한 결혼과 종교적 상황을 하나님 앞에서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모든 이방인이 본질적으로 부정하다는 선언이나, 오늘날 모든 문화 간 결혼을 판단하는 일반 법칙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고백은 이방인 전체에 대한 추상적인 평가라기보다, 페르시아 왕궁에서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삶과 하나님께 대한 충성 사이의 고통스러운 긴장을 드러냅니다.

또한 하만의 상에서 먹지 않았다는 말과 술 제물로 바치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는 말은, 그가 왕궁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곳의 모든 종교적 관습에 동참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에스테르가 어떤 음식 규정을 얼마나 지켰는지, 왕궁의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했는지까지는 이 기도로 모두 재구성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여종은 제 처지가 바뀐 날부터 지금까지 당신 말고는 그 무엇으로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신 주님,」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29 · 본디새김

이 고백은 단순히 왕궁에서 사는 일이 언제나 불행했다는 심리적 보고만은 아닙니다. 에스테르가 자신의 가장 깊은 충성과 기쁨의 대상을 누구로 여기는지 밝히는 신앙 고백입니다.

앞 장에서는 왕후의 자리에 오른 에스테르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에스테르가 자기 삶을 어떻게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드러납니다.

‘저를 제 두려움에서 건져 주십시오’

기도의 마지막에서 에스테르는 자신의 가장 깊은 두려움을 다시 꺼냅니다.

「모든 이 위에 힘을 떨치시는 하나님이시여, 희망을 잃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시고 악을 꾸미는 자들의 손에서 저희를 건져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제 두려움에서 건져 주십시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30 · 본디새김

에스테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낼 힘이 충분하다고 자신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자기가 용감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자신에게 용기가 필요하다는 고백으로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월경 때 사용하는 헝겊에 빗댄 이 비교는 강한 혐오감을 표현합니다. 월경과 관련된 물건을 의례적 부정의 언어로 사용하는 고대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를 여성의 몸 자체가 혐오스럽다는 가르침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맺으며: 왕관을 벗은 왕후가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한다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4:1–130 본문 →

처음에는 모르드개가 입고 있던 베옷을 벗기려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이 영광스러운 옷을 벗습니다. 그는 왕후의 자리에 있지만 더 이상 그 자리만을 자신의 안전과 영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에스테르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왕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힘이 아닙니다. 왕 앞에 설 용기와 그 앞에서 해야 할 말입니다.

에스테르는 왕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돌릴 수 없습니다. 금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살아남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스테르는 아직 왕에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왕이 금 홀을 내밀지, 그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유대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왕궁의 법은 그대로 있고, 학살 명령도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후의 왕관을 벗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저를 제 두려움에서 건져 주십시오.」

에스테르는 아직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두려움 때문에 왕에게 나아가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이 사라진 뒤 행동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행동하려 합니다.

왕궁의 안뜰로 향하는 문은 아직 닫혀 있습니다.

에스테르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왕후의 화려한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선 지금, 그는 자신이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