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풀어 읽기 · 52장

이 장의 자리 · 46–52장 · 민족들에 관한 말씀

무너진 나라와 끝나지 않은 약속

예레미야서는 왜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까요?

마지막 장에는 끔찍한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왕은 눈앞에서 아들들이 죽는 모습을 본 뒤 두 눈을 잃습니다. 백성은 굶주리고, 성벽은 허물어지며, 성전은 불탑니다. 나라를 이끌던 사람들은 처형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기록한 뒤, 본문은 갑자기 다른 왕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오래전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나 왕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죄를 심판하셨고, 그 심판은 예언자가 경고했던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나라와 성전과 왕을 잃었을 때, 그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약속도 사라지는 것일까요?

52장은 이 질문에 서둘러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무엇이 무너졌고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지를 하나씩 보여 줍니다.

예레미야 51장은 「여기까지가 예레미야의 말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책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52장을 덧붙입니다. 이 마지막 장은 새로운 예언을 전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던 예루살렘 함락과 유배의 사건을 역사적 기록의 형식으로 다시 들려줍니다.

내용은 열왕기하 24:18–25:30과 매우 가깝습니다. 다만 모든 부분이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열왕기하에는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임명된 뒤 살해되는 이야기가 들어 있지만(25:22–26), 예레미야 52장은 그 부분을 생략합니다. 대신 성전 기구와 유배민의 수를 더 자세히 기록합니다.

이러한 위치와 형식 때문에 52장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역사적 결과와 연결하는 마무리 기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장이 정확히 누구에 의해 언제 최종적으로 배치되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752장 본문 읽기 →

왕은 눈앞에서 나라의 마지막을 보다

예레미야 52:1–11 본문 →

시드기야는 스물한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열한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1절은 그의 어머니가 리브나 출신 예레미야의 딸 하무탈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하무탈의 아버지 예레미야는 예언자 예레미야와 이름이 같은 별개의 인물입니다. 예언자는 아나돗 출신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소개됩니다(1:1).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아들이며, 바벨론에 끌려간 여호야긴의 삼촌입니다(열왕기하 24:17–18).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을 유배시키고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따라서 시드기야의 왕권은 처음부터 바벨론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의 실패를 단순히 정치적 판단의 문제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야김이 행한 그대로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예레미야 52:2 · 본디새김

왕의 행위는 바벨론 왕이 보기에 성공적이었는지, 유다 백성이 보기에 유능했는지에 앞서 여호와야훼의 판단 아래 놓여 있습니다. 시드기야가 어떤 악을 행했는지는 이 절에서 구체적으로 열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앞부분을 읽어 온 독자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바벨론의 지배를 받아들이라고 권고했습니다(27:12–15). 예루살렘이 포위된 상황에서도 바벨론 군대에 항복하면 왕과 가족이 살고 도시도 불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38:17–18). 하지만 시드기야는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예레미야 38:19에서는 바벨론에 항복한 유다 사람들에게 넘겨질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시드기야의 비극은 앞날을 몰랐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경고를 듣고도 그 경고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3절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일어난 일을 여호와야훼의 분노와 연결합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그들을 자기 앞에서 내던지시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살아왔고,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성전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 땅에서 내던져집니다.

성벽은 아직 서 있지만, 성 안에서는 생명이 사라진다

4절은 시드기야 통치 제9년 열째 달 10일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고 기록합니다.

넷째 달 9일에는 성 안의 굶주림이 심해져 그 땅의 백성에게 먹을 것이 없었다.예레미야 52:6 · 본디새김

성벽은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포위전이 길어지자 그 성벽 안에 갇힌 사람들은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적을 막아 주던 구조물이 동시에 안에 있는 사람들을 고립시켰습니다.

예레미야애가 4:9는 이러한 현실을 더욱 고통스럽게 묘사합니다. 칼에 죽은 사람보다 굶주림으로 쇠약해진 사람들이 더 비참하다고 탄식합니다.

전쟁의 피해는 성을 지키는 병사들에게만 닥치지 않았습니다. 왕의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아이들과 노인들, 평범한 주민들도 굶주려야 했습니다. 52장은 그들의 고통을 각자의 죄에 대한 개별적 처벌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나라의 실패와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지를 보여 줍니다.

마침내 성벽이 뚫리자 군사들은 밤에 달아납니다.

7절은 도주로를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왕의 정원 곁, 두 성벽 사이에 있는 성문, 그리고 아라바를 향한 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멀리 가지 못합니다.

시드기야는 여리고 평야에서 붙잡히고, 그의 군대는 그를 떠나 흩어집니다. 성벽도, 군사도, 왕권도 더 이상 그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붙잡힌 시드기야는 하맛 땅 리블라로 끌려갑니다. 리블라는 바벨론 왕이 군사적 지휘와 처벌을 수행하던 장소로 본문에 등장합니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도살했다. 유다의 모든 고관도 리블라에서 도살했다.예레미야 52:10 · 본디새김

그다음 시드기야의 두 눈을 멀게 합니다.

눈앞에서 아들들이 죽임당했다는 기록과 이어지는 실명은, 왕이 가문과 통치의 미래를 한꺼번에 잃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시드기야는 청동 족쇄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죽는 날까지 감옥에 갇힙니다.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살던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바벨론의 감옥에 갇힌 죄수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비극을 시드기야 개인의 불행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왕이 쓰러진 뒤에는 그가 다스리던 도시 전체의 파괴가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아라바는 요단 계곡과 이어지는 저지대 지형을 가리키며, 이어지는 여리고 평야는 도망치는 일행이 동쪽으로 향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2절의 표현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기 눈을 잃습니다. 이 두 표현 사이에 의도적인 문학적 대응이 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 앞에 놓인 왕이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은 본문의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이 장면은 예레미야 34:3의 예언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직접 보고 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되었습니다. 그리고 52장에서 그는 실제로 바벨론 왕 앞에 끌려와 판결을 받습니다.

성전도 왕궁도 불탔다

예레미야 52:12–16 본문 →

시드기야가 붙잡힌 뒤, 바벨론 왕의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옵니다.

본문은 그날을 느부갓레살 통치 제19년 다섯째 달 10일로 기록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집과 왕의 집을 불태웠다.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모든 큰 집도 불에 태웠다.예레미야 52:13 · 본디새김

성전과 왕궁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건축물이었지만, 유다의 역사에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이 머무는 장소였고, 왕궁은 다윗 왕조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이 두 건물이 함께 불탔다는 것은 유다 백성이 의지하던 종교적 중심과 정치적 중심이 동시에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7장에서 하나님은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예루살렘이 안전하다고 믿는 태도를 책망하셨습니다. 백성이 불의를 행하면서도 여호와야훼의 집에 와서는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7:8–11). 특히 7:12–15에서 여호와야훼는 과거 실로에 있었던 성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장소라는 사실이, 그곳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보증은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오래전부터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동시에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고 무죄한 피를 흘리는 일을 책망해 왔습니다(7:5–10; 22:3). 따라서 성전의 파괴는 단순히 바벨론의 군사력이 여호와야훼보다 강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예레미야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가 무시된 결과로 해석합니다.

성벽도 모두 허물어집니다. 이제 예루살렘에는 왕이 없고,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예배도 중단되며, 도시를 보호하던 방어 시설까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15–16절은 또 하나의 사실을 전합니다.

느부사라단은 일부 백성을 유배지로 끌고 가면서도,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남겨 포도원을 돌보고 밭을 갈게 합니다. 앞에서는 굶주림이 심해 온 백성에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살아남은 일부 사람들에게 포도원을 돌보고 땅을 경작하는 일이 맡겨집니다. 그들은 독립된 유다 왕국의 백성으로 자유롭게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지배 아래 남겨진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졌지만 유다 땅에서 사람의 삶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27절은 유다가 자기 땅에서 유배되어 떠났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16절은 그 땅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존합니다. 하나는 나라 전체가 겪은 역사적 단절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그 재앙 속에서도 계속된 삶의 현실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25:8은 같은 사건과 관련하여 다섯째 달 7일이라고 기록합니다. 두 날짜가 서로 다른 단계의 사건을 가리킬 가능성과 기록 전승에서 차이가 생겼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지만, 어느 설명이 옳은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52장은 분명히 10일을 제시합니다.

왜 무너진 성전의 기구를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는가

예레미야 52:17–23 본문 →

17절부터 본문은 뜻밖에도 성전 기구의 목록으로 들어갑니다.

청동 기둥 둘, 받침대들, 청동 바다, 솥과 삽, 심지 가위, 대접과 숟가락, 등잔대와 제사용 그릇까지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심지어 청동 기둥의 높이와 둘레, 두께, 기둥머리의 크기, 그물 장식에 붙어 있던 석류의 수도 알려 줍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끌려가는 이야기에 이렇게 긴 기물 목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7절에서 등장하는 청동 기둥과 청동 바다, 받침대들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만든 것들입니다. 열왕기상 7:15–39은 이 기구들의 제작 과정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특히 성전 입구에 세워진 두 청동 기둥에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열왕기상 7:21). 청동 바다는 성전에서 씻는 일과 관계된 커다란 물두멍이었습니다(역대하 4:6).

이것들은 솔로몬 시대부터 이어져 온 예배의 흔적이었습니다.

52장에서는 그 기구들이 해체됩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청동 기둥과 받침대, 바다를 부순 뒤 금속을 가져갑니다.

성전의 역사와 의미를 담고 있던 기구들이 바벨론의 전리품이 되는 것입니다.

20절은 솔로몬이 여호와야훼의 집을 위해 만든 것들의 청동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엄청난 재료와 정성을 들여 제작한 물건들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그것들을 예배를 위한 기구가 아니라 가져갈 금속으로 취급합니다.

19절의 「금으로 된 것은 금으로 된 것대로, 은으로 된 것은 은으로 된 것대로 가져갔다」라는 기록은 그 차이를 실감하게 합니다. 성전의 기구들은 본래 저마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탈자의 눈에는 금속의 종류가 중요했습니다.

이 기구들은 이미 예레미야의 예언에 등장했다

예레미야 27:19–22에서 하나님은 성전에 남아 있는 기둥들과 청동 바다, 받침대들, 그 밖의 기구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야긴이 처음 유배될 때 가져가지 않고 남겨 두었던 물건들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28:1–4에서 예언자 하나냐는 전혀 다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바벨론으로 옮겨진 성전 기구들이 두 해 안에 돌아오고, 유배된 여호야긴도 돌아올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선언이 여호와야훼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28:15–17).

성전 기구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아 있던 기구들까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성전 기구 하나하나가 예레미야의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됩니다.

기록자는 막연히 성전이 파괴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물건이 있었고, 무엇을 빼앗겼는지 구체적으로 기억합니다.

예레미야 27:22에서 하나님은 이 기구들이 바벨론에 머무르다가 여호와야훼가 돌보시는 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52장에서는 아직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구들은 바벨론으로 옮겨질 뿐입니다. 예언자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지만, 그 말씀에 담긴 회복의 약속까지 모두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이 목록은 바로 그 사이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21–23절에는 기둥의 치수와 석류의 수가 나옵니다. 바깥쪽의 아흔여섯 개와 둘레 전체의 백 개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는 본문만으로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없습니다. 또한 20절에서 청동 소들이 받침대들 아래에 있었다는 표현은 열왕기상 7:25의 청동 바다를 받치는 소들과 배치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억지로 조화시키거나 빠진 배치를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라를 이끌던 사람들의 이름이 사라지다

예레미야 52:24–27 본문 →

성전의 기구들이 사라진 다음에는 성전을 섬기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수석 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 문지기 세 명을 붙잡습니다. 이어 왕 앞에 출입하던 사람들, 군사들을 감독하던 관리, 군사령관의 서기관, 성 안에 남아 있던 백성 예순 명도 붙잡습니다. 이들은 리블라로 끌려가 바벨론 왕에게 처형당합니다.

왕과 고관들이 사라지면서 정치적 통치가 무너졌습니다. 제사장들이 붙잡히면서 성전의 제도적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군사와 행정 관계자들이 처형되면서 나라를 조직하고 운영하던 체계도 무너졌습니다.

52장은 단순히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건물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 그 도시를 운영하던 사람들의 운명까지 기록합니다.

바벨론 왕은 하맛 땅 리블라에서 그들을 쳐서 죽였다. 이렇게 유다는 자기 땅에서 유배되어 떠났다.예레미야 52:27 · 본디새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땅과 자손과 복을 포함했습니다(창세기 12:1–3; 15:18–21). 이후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거쳐 그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땅에서 쫓겨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릴 때 땅에서 쫓겨나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습니다(신명기 28:63–68; 30:1–5). 예레미야 52장은 그 경고가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렇지만 땅을 잃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약속이 소멸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명기 30:1–5는 흩어진 곳에서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고, 하나님이 다시 백성을 모으실 것이라는 가능성을 함께 말합니다. 예레미야 역시 유다를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30:3; 32:37–41).

따라서 27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무의미해졌다는 결론이라기보다, 그 약속이 얼마나 깊은 상실을 통과해야 하는지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수석 제사장 스라야는 51:59에서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가지고 바벨론으로 가도록 명령받은 스라야와 구별해야 합니다. 이름은 같지만, 앞 장의 스라야는 네리야의 아들로 소개되는 반면 이곳의 스라야는 수석 제사장입니다.

숫자로 남은 사람들

예레미야 52:28–30 본문 →

28절부터는 유배민 명부가 나옵니다.

느부갓레살 통치 제7년에 3,023명, 제18년에 832명, 제23년에 745명이 끌려갔다고 기록합니다.

유배는 예루살렘 함락 하루에 일어난 사건만이 아니었습니다.

28–30절은 서로 다른 해에 이루어진 추방을 기록합니다. 느부갓레살 제7년부터 제23년까지 유다 사람들이 여러 차례 끌려갔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고향을 떠나야 했고, 앞서 떠난 사람과 뒤에 남은 사람이 서로 다른 상황을 겪었습니다.

예레미야 29장은 먼저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29:4–7). 그들에게 유배는 잠시 머물렀다가 곧 끝나는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땅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각각의 유배 시기와 인원이 구별되어 기록됩니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그들의 이동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열거된 성전 기구의 목록과도 닮았습니다. 성전이 불탔다고 해서 그 기구들이 무엇이었는지 잊지 않았듯이, 나라가 무너졌다고 해서 끌려간 사람들의 기록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레미야 52장은 상실을 추상화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24:14에서는 여호야긴이 유배될 당시 끌려간 사람이 만 명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52:28에서는 느부갓레살 통치 제7년에 끌려간 유다 사람을 3,023명이라고 합니다. 열왕기하 24:12가 제시하는 통치 연수 역시 제8년으로 한 해 차이가 납니다. 집계 대상이 달랐거나 왕의 통치 연수를 계산하는 방식이 달랐을 가능성은 있지만, 본문은 그 차이를 해명하지 않습니다. 4,600명이 유배된 모든 남녀와 어린이를 빠짐없이 포함하는 전체 인원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 명부가 특정 범위의 사람들을 집계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또 다른 왕

예레미야 52:31–34 본문 →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31절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됩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유배된 지 37년째 되던 해 열두째 달 25일에,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이 자기가 왕이 된 해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우대하고 그를 감옥에서 나오게 했다.예레미야 52:31 · 본디새김

여호야긴은 시드기야보다 먼저 바벨론으로 끌려간 왕입니다. 열왕기하 24:8–17에 따르면 그는 짧은 기간 왕으로 다스린 뒤 느부갓레살에게 항복했고, 바벨론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 뒤 시드기야가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52장의 마지막은 앞에서 나라를 잃은 시드기야의 후일담이 아닙니다. 더 오래전에 유배된 또 다른 다윗 왕조의 왕에게 시선을 돌리는 이야기입니다.

32절은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있던 다른 왕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유다 왕조가 독립된 통치를 되찾았다는 뜻이 아니라, 바벨론에 머물던 포로 왕들 가운데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의 새로운 지위는 여전히 바벨론 왕의 결정과 보호에 의존합니다.

왜 하필 여호야긴인가

여호야긴의 등장은 예레미야 24장을 기억하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예레미야 24장에서 하나님은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가 담긴 두 광주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좋은 무화과는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으로 유배된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 반면 나쁜 무화과는 시드기야와 유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24:1–10).

당시 상황만 보면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과 약속의 땅을 계속 누리고 있었습니다. 반면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고향과 자유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배민들을 좋은 무화과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본래 더 의롭거나 흠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고, 다시 자기 백성으로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24:5–7).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보는 처지와 달랐습니다.

이제 52장에 이르면 시드기야는 두 눈을 잃고 감옥에서 죽을 운명을 맞지만, 여호야긴은 감옥에서 나와 이전보다 나은 대우를 받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24장의 약속을 완전히 성취한 사건은 아닙니다. 유배민들은 아직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복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좋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실제로는 멸망을 향해 가던 시간이었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유배의 자리에는 아직 미래가 남아 있었습니다.

감옥의 옷을 벗고 식탁에 앉다

여호야긴은 감옥에서 입던 옷을 갈아입고,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 늘 왕 앞에서 음식을 먹었다.예레미야 52:33 · 본디새김

예레미야 52장은 시드기야에게 청동 족쇄가 채워지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여호야긴이 감옥의 옷을 벗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족쇄와 옷은 모두 사람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를 보여 주는 구체적인 물건입니다.

여호야긴의 회복은 왕관이나 군대가 아니라 식탁으로 표현됩니다.

고대 왕궁에서 왕의 식탁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식사를 제공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왕의 호의를 받고 그의 보호 아래 있다는 표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호야긴은 더 이상 감옥에 갇힌 죄수로만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는 왕의 식탁에 앉는 사람으로 대우받습니다.

죽는 날까지 갇힌 왕, 죽는 날까지 양식을 받은 왕

그의 양식, 곧 바벨론 왕이 정기적으로 주는 양식은 그가 죽는 날까지,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 날마다 하루 몫씩 그에게 지급되었다.예레미야 52:34 · 본디새김

‘그가 죽는 날까지’,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 ‘날마다’, ‘하루 몫씩’이라는 말들이 겹쳐 나타납니다. 기록자는 여호야긴이 한 번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만 알리지 않습니다. 그의 처지가 달라진 뒤에도 매일 양식이 지급되었다고 말합니다.

시드기야는 죽는 날까지 감옥에 갇혔습니다.

여호야긴은 죽는 날까지 양식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두 왕의 인격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누는 장면이 아닙니다. 여호야긴 역시 예레미야 22:24–30에서 엄중한 심판의 말씀을 들은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22:30에서는 그의 후손 가운데 다윗의 왕좌에 앉아 유다를 다스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52장에서도 여호야긴은 유다의 왕좌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석방을 그가 이전의 모든 잘못을 용서받고 다윗 왕조가 완전히 회복된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예레미야 33:14–17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고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호야긴의 석방은 그 약속의 직접적인 성취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다윗 왕조에 속한 인물의 이름과 삶이 기록된다는 사실은, 왕조의 미래에 관한 물음을 끝내 닫아 버리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여러 차례 자기 백성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31:28에서는 하나님이 뽑으시고 무너뜨리시고 파괴하시고 재앙을 내리시는 일을 지켜보셨듯이, 다시 세우시고 심으시는 일도 지켜보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1:10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민족들과 왕국들 위에 세우시며 뽑고 허물고 파괴하고 넘어뜨리는 일뿐 아니라 세우고 심는 일도 맡기셨습니다.

예레미야의 사명은 처음부터 심판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52장에는 아직 그 세움과 심음의 완전한 성취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무너진 성벽은 다시 세워지지 않습니다. 불탄 성전도 복구되지 않습니다. 끌려간 백성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33절에서 여호야긴은 감옥에서 입던 옷을 갈아입습니다. 이 문장의 주어를 여호야긴 자신으로 읽을 수도 있고, 앞의 바벨론 왕이 그의 옷을 바꾸어 주었다고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여호야긴 자신이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옮겼습니다. 어느 쪽이든 옷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그의 처지가 달라졌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 장면 — 하루 몫의 양식

예레미야 52:1–34 본문 →

이 한 사람의 식탁에는 예레미야서의 긴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심판은 실제로 이루어졌고, 잃어버린 것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이 닫힌 것은 아닙니다.

그의 앞에 차려진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예루살렘이 아닌 바벨론에서 그 음식을 먹습니다. 왕이지만 나라가 없고, 특별한 대우를 받지만 독립된 통치권은 없습니다.

예레미야서는 독자에게 완성된 회복의 광경을 보여 주지 않은 채 끝납니다. 대신 한때 감옥에 갇혀 있던 왕이 이제 하루하루의 양식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남깁니다.

예레미야서의 마지막에 남은 것은 다시 세워진 왕좌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을 위해 날마다 차려지는 식탁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