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3–7장 · 쉰두 날의 성벽 공사

성벽이 아물 때 흔들리는 마음

예루살렘 성벽이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적들이 더욱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성벽의 무너진 틈들이 메워질수록 예루살렘을 위협하는 세력은 더 적극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위협은 성벽 밖에서만 찾아오지 않습니다.

안에서는 짐꾼들이 지쳐 가고, 무너진 돌무더기는 여전히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벽을 완성할 수 없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주변 지역의 유다 사람들은 반복해서 위험을 알리고, 공동체 전체에 불안이 퍼집니다.

앞 장에서 성벽을 세울 마음이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는 성벽을 세울 수 없소」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실제로 공사는 진행되고 있었고, 그만큼 노동의 피로가 쌓였습니다. 적들의 공격 가능성도 구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성벽을 완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끝낼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여기서 느헤미야가 해야 할 일도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을 설득해 공사를 시작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제는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과 피로 때문에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4장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이야기이면서, 성벽을 세우던 사람들의 무너져 가는 마음을 어떻게 붙들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74장 본문 읽기 →

성벽의 상처가 아물자 적들의 분노가 커지다

느헤미야 4:1–3 본문 →

상처가 낫는다는 뜻의 낱말

산발랏과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이 아물어 가고 무너진 틈들이 메워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자 몹시 화가 치밀었다.느헤미야 4:1 · 본디새김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을 단순히 건축물이 복구된다고 말하지 않고, 상처가 아물어 가는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그 도시는 오래전에 무너졌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수치와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도시의 무너진 틈들이 조금씩 메워지고 있습니다.

돌을 다시 쌓는 일이 도시의 상처가 회복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아스돗은 예루살렘 서쪽 해안 평야에 있는 블레셋의 주요 성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른 집단들은 예루살렘의 북쪽과 동쪽, 남쪽 지역과 연결됩니다. 다만 이 절이 각 집단의 정확한 병력 배치나 공격 방향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반대가 몇몇 개인의 조롱에서 여러 지역 집단이 참여하는 공동의 위협으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는 성벽을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이제 성벽이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더욱 강하게 반응합니다.

성벽이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반대자들에게는 위협이 되었습니다.

「기도했고, 경비대를 세웠다」

그들은 모두 함께 모의하여 예루살렘으로 와서 싸우고 그곳에 혼란을 일으키려 했다.느헤미야 4:2 · 본디새김

그들은 반드시 성벽을 완전히 파괴해야만 재건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작업의 질서가 무너지며, 공동체 안에 혼란이 퍼지기만 해도 공사는 중단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들 때문에 밤낮으로 그들을 막을 경비대를 세웠다.느헤미야 4:3 · 본디새김

히브리어 문장은 두 행동을 나란히 연결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형편을 맡기면서, 동시에 적들의 위협에 대응할 책임을 감당합니다.

이것은 시편 127:1의 말씀과 함께 생각할 만합니다. 그 시편은 여호와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이 깨어 있는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파수꾼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파수꾼의 경계조차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일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성벽을 지킬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그 성벽을 지키는 일이 오직 자신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문제는 적들의 공격 계획만이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더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가장 위험한 말은 안에서 나왔다

느헤미야 4:4–6 본문 →

「우리는 성벽을 세울 수 없소」

유다 사람들이 말했다. 「짐꾼들의 힘이 꺾였고, 흙더미는 많으니, 우리는 성벽을 세울 수 없소.」느헤미야 4:4 · 본디새김

짐꾼들은 성벽 공사에 필요한 돌과 자재를 운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노동은 건축 과정에서 필수적이었습니다. 성벽을 쌓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필요한 자재를 옮길 수 없다면 공사를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힘이 꺾였다」는 표현은 실제 노동력의 소진을 보여 줍니다. 이것을 단순히 영적인 열심이 부족해졌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들이 게을러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공사를 포기하고 싶어서 핑계를 댄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성벽을 세우려면 무너진 돌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재료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쌓아야 할 성벽뿐 아니라 치워야 할 잔해도 그들의 작업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짐꾼들의 피로와 많은 잔해는 실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 때문에 성벽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전체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동시에 그것이 아직 확정된 미래의 사실도 아닙니다.

성벽의 높이는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의 힘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공사의 진전과 사람들의 소진이 동시에 일어난 것입니다.

적들은 모르게 들어오려 하고, 주변 주민들은 돌아오라고 말한다

우리의 대적들은 말했다. 「우리가 그들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들을 죽이고 일을 멈추게 할 때까지 그들은 알아채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할 것이다.」느헤미야 4:5 · 본디새김

적들의 계획은 정면 공격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위협은 공사 자체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됩니다. 본문은 이 계획이 실제로 실행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위협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들 곁에 살던 유다 사람들이 와서 우리에게 열 번이나 말했다. 「여러분은 어느 곳에 있든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느헤미야 4:6 · 본디새김

예루살렘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적들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공사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고, 밖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해했습니다.

이제 느헤미야는 두 가지 문제에 동시에 직면합니다.

성벽을 공격하려는 적들을 막아야 합니다. 동시에 적들의 위협 때문에 무너지기 시작한 공동체의 자신감도 회복해야 합니다.

그가 취한 첫 번째 행동은 사람들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6절의 「열 번이나」라는 말은 그만큼 여러 차례 경고하거나 요청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한 말의 정확한 의미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 문장에는 「모든 곳에서」, 「돌아오다」, 「우리에게」라는 요소들이 들어 있는데,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처럼 작업자들에게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라고 요청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읽기에서는 적들이 여러 방향에서 공격할 것이라는 경고로 이해합니다. 첫 번째로 읽으면 외곽 지역 주민들이 위험 때문에 예루살렘의 일꾼들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됩니다. 두 번째로 읽으면 주변 주민들이 공격에 관한 정보를 반복해서 전달하는 모습이 됩니다.

두려움 앞에서 사람들을 가족별로 세우다

느헤미야 4:7–9 본문 →

가장 취약한 곳에 사람들을 배치하다

나는 성벽 뒤쪽의 낮은 곳, 드러난 지대에 사람들을 세웠다. 나는 자기들의 칼과 창과 활을 갖춘 백성을 씨족별로 세웠다.느헤미야 4:7 · 본디새김

느헤미야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기 전에 사람들을 배치합니다.

그는 적들의 위협을 단순한 심리적 문제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공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취약한 곳에 방어할 사람들을 세웁니다.

성벽의 틈은 메워지고 있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높이가 충분하지 않거나 외부에 노출된 구간이 있다면 그곳은 공격에 취약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약한 부분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가족이나 씨족에 따른 배치는 군사적 조직 방법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관계를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같은 가족과 친족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서게 되면 자신들이 지켜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

나는 둘러보고 일어나 귀족들과 관리들과 나머지 백성에게 말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위대하고 두려운 주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형제들과 아들들과 딸들과 아내들과 집들을 위해 싸우십시오.」느헤미야 4:8 · 본디새김

느헤미야는 적들의 힘을 부정하는 대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기억하게 합니다.

적들은 실제로 무섭습니다. 그들은 싸우고 사람들을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느헤미야와 백성의 삶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권위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적들의 위협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위협 앞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아는 일입니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단지 돌로 이루어진 성벽이 아닙니다. 그 성벽 안과 주변에서 살아가는 가족들과 그들의 삶입니다. 앞 장에서 성벽의 여러 구간이 사람들의 집과 연결되어 있었다면, 이제 그 연결은 더욱 절박해집니다.

성벽을 지키는 것은 자신들이 살아갈 장소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적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시다

우리의 적들이 자기들의 계획이 우리에게 알려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켰고, 우리는 모두 성벽으로 돌아가 저마다 자기 일을 다시 맡았다.느헤미야 4:9 · 본디새김

그런데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적들을 공격하셨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위협을 알게 되었고, 경비를 세웠으며, 취약한 곳에 무장한 사람들을 배치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모든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동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셨다는 고백과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기록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도움을 인간의 조직력이나 전략과 완전히 동일시해서도 안 됩니다. 느헤미야는 계획을 세우고 사람들을 배치하지만, 그 결과를 자신의 지혜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을 본문은 적군의 사망자 수나 전리품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일로 돌아갔다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들은 싸우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성벽을 다시 세우기 위해 모였습니다.

따라서 위기를 넘겼다는 가장 분명한 표지는 싸움이 아니라 공사의 재개였습니다.

조금 더 깊이

「낮은 곳」과 「드러난 지대」의 정확한 위치 관계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성벽에서 방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곳에 사람들을 배치했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적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과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부르는 표현은 모두 두려움과 관계된 낱말을 사용합니다. 느헤미야는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무조건 없애려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지, 누구를 기억해야 하는지를 새롭게 제시합니다. 이것은 신명기 20:1–4의 말씀과 깊이 연결됩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자신들보다 많은 병력과 말과 병거를 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한 손에는 일을, 다른 손에는 무기를

느헤미야 4:10–12 본문 →

위기는 지나갔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9절에서 적들의 계획이 좌절되었다면, 이제 경비를 해산하고 원래대로 일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날부터 내 시종들 가운데 절반은 일을 했고, 나머지 절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을 갖추고 있었다. 지휘관들은 유다 온 집안의 뒤에 있었다.느헤미야 4:10 · 본디새김

위기를 한 번 넘겼지만 앞으로도 위협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작업 방식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공사를 진행하는 힘과 공사를 보호하는 힘을 함께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앞서 백성은 이미 힘이 꺾였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노동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 일부를 경비에 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공사의 속도와 효율만 생각한다면 불리한 결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비 없이 일하다 공격을 받으면 공사 자체를 계속할 수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돌을 쌓는 것만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위협 속에서도 공사를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합니다.

지휘관들이 유다 사람들 뒤에 있었다는 기록도 이런 조직적인 대응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위치에서 어떤 명령 체계를 맡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무장한 인력과 공사 인력이 구분되어 배치되었음은 알 수 있습니다.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과 짐을 져 나르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 손으로 일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 무기를 잡았다.느헤미야 4:11 · 본디새김

그러나 이 표현을 모든 공사자가 실제로 한 손만으로 모든 건축 작업을 했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엄격하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돌을 쌓거나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에는 두 손이 필요한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문장은 작업과 무장을 함께 해야 했던 당시의 긴장된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칼을 허리에 맨 채 성벽을 세웠다. 뿔나팔을 부는 사람은 내 곁에 있었다.느헤미야 4:12 · 본디새김

두 절을 함께 보면 모든 일꾼이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무장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기를 손에 들고 일했고, 다른 사람들은 칼을 몸에 지닌 채 작업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노동이, 그 회복을 가로막으려는 폭력 때문에 더욱 힘들어진 것입니다.

본문은 이것을 이상적인 노동 방식으로 찬양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처한 비정상적인 현실을 보여 줍니다.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이 무기를 들어야 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용기뿐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도 드러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이 위험한 상황에서 또 하나의 문제를 발견합니다.

일꾼들이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뿔나팔 소리가 서로 떨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다

느헤미야 4:13–14 본문 →

성벽을 따라 벌어진 거리

나는 귀족들과 관리들과 나머지 백성에게 말했다. 「일은 많고 넓게 벌어져 있는데, 우리는 성벽을 따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느헤미야 4:13 · 본디새김

적이 어느 한 구간을 공격하면 멀리 떨어진 다른 구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즉시 알거나 지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앞 장에서 여러 사람이 각자의 구간을 맡아 공사했다는 사실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이런 분산된 작업 방식이 성벽을 효율적으로 보수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적들의 공격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은 바로 그 분산된 배치가 방어의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성벽의 틈은 메워지고 있었지만, 성벽을 따라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 떨어진 거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돌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돌들을 세우는 사람들도 위험이 닥쳤을 때 함께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뿔나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와서 우리에게 모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느헤미야 4:14 · 본디새김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행동과 하나님께서 싸우신다는 믿음이 연결됩니다.

사람들이 성벽을 따라 흩어져 일하고 있어도, 나팔 소리를 통해 위협이 발생한 곳을 알리고 지원 인력을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목표를 위해 일하는 것만으로 공동체의 모든 책임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돕기 위해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앞 장에서는 한 구간과 다음 구간이 이어져 하나의 성벽을 이루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뿔나팔 소리를 중심으로 서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필요할 때 하나로 모일 수 있게 됩니다.

성벽의 연결이 공사의 진전이었다면, 사람들의 연결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조건이 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이 말은 출애굽기 14:14와 신명기 1:30, 3:22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홍해 앞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명기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분이라는 고백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4장에서 이스라엘은 바다 앞에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느헤미야 4장에서 백성은 성벽을 세우고, 경비를 서고, 무기를 갖추고, 나팔 소리에 따라 모여야 합니다. 이 이야기들을 하나의 군사적 공식으로 묶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신다는 고백은 공통되지만, 각 이야기에서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행동과 하나님의 개입이 드러나는 방식은 다릅니다.

동이 틀 때부터 별들이 나올 때까지

느헤미야 4:15–17 본문 →

밤과 낮의 경계가 사라지다

우리는 일을 했고, 내 시종들 가운데 절반은 동이 틀 때부터 별들이 나올 때까지 창을 잡고 있었다.느헤미야 4:15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히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다는 표현을 넘어, 그들의 노동과 경계가 하루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계속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이미 짐꾼들의 힘이 꺾였다고 말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위협이 커지면서 무장 경비와 야간 경계까지 해야 했습니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피로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부담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또 그때 나는 백성에게 말했다. 「저마다 자기 시종과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밤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를 위해 밤에는 경비를 서고 낮에는 일을 할 것입니다.」느헤미야 4:16 · 본디새김

이 지시는 예루살렘 밖에 거주하거나 다른 곳에서 와서 일하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은 낮에 성벽을 보수한 뒤 밤에는 거주지로 돌아갔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모든 일꾼의 평소 이동 경로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낮의 노동력과 밤의 방어력을 함께 확보하려는 조치입니다. 공사와 경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위험한 시기 동안 도시 안에 머물도록 조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맞습니다.

여기서 느헤미야는 사람들의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새롭게 조직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자신도 옷을 벗지 않았다

나와 내 형제들과 내 시종들과 나를 따르는 경비대원들, 우리는 아무도 옷을 벗지 않았다. 저마다 자기 무기, 물.느헤미야 4:17 · 본디새김

이것은 계속되는 경계와 긴장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평소라면 하루의 일을 마친 뒤 쉬거나 잠자리에 들기 위해 옷을 갈아입거나 벗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협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계속 준비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다른 사람들에게 밤낮으로 경계하라고 명령하고 자신만 안전한 곳에서 쉬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과 형제들, 시종들, 경비대원들도 같은 긴장 속에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느헤미야가 앞서 「우리가 처한 고난」이라고 말했던 태도가 위기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백성의 위험을 멀리서 관리하는 사람으로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위협을 받고 있는 공동체 안에 함께 서 있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마지막의 「저마다 자기 무기, 물」이라는 표현에는 중요한 번역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이쉬 쉴호 함마임으로, 문자적으로는 「각 사람, 그의 무기, 물」이라는 요소들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낱말들을 연결하는 동사가 없고, 무기와 물이 어떤 관계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옷을 벗지 않았다는 의미로 연결해 읽는 전통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읽기에서는 무기를 계속 손 가까이에 두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어느 해석도 현재의 문장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칠십인역의 해당 구절도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본디새김이 문장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특정 행동을 보태지 않고 「저마다 자기 무기, 물」이라고 남긴 것은 원문의 난점을 드러내는 선택입니다.

맺음 — 별들이 나올 때까지 창을 잡은 사람들

느헤미야 4:1–17 본문 →

성벽을 세우는 일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이 무너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진 뒤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이어 갑니다. 이 장의 중심에는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위협 속에서도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조직된 공동체가 있습니다.

물론 본문의 이런 조치들을 오늘날의 모든 공동체가 그대로 따라야 할 운영 방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실제 무력 공격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억한 하나님의 약속은 위협이 전혀 없으리라는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위협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이제 성벽 위로 밤이 내려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경비를 서며, 다른 사람들은 다음 날 다시 돌을 쌓을 준비를 합니다. 별들이 나타나는 시간에도 성벽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벽을 따라 일하던 사람들은 더 이상 각자의 구간에만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서 뿔나팔이 울리든, 그들은 그곳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4장의 끝에 남는 것은 전투의 승리 소식이 아니라, 서로를 지킬 준비를 한 사람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계속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긴 밤에 느헤미야도 그들 가운데 서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