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50장

이 장의 자리 · 44–50장 · 조상들을 기림

영광의 중심에서 고개를 숙이다

집회서 50장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자는 대제사장 시몬을 찬양하기 위해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불러옵니다. 무지개와 장미꽃, 백합과 백향목, 올리브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까지 등장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도 시몬의 모습을 다 표현하기 어려운 듯합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시몬이 찬란한 옷을 입고 성소에서 나오는 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장은 집회서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앞선 장들에서는 이스라엘의 오래된 조상들과 왕들, 예언자들과 지도자들이 차례로 등장했습니다. 이제 저자는 과거의 위인들을 회고하는 긴 이야기의 끝에서 자신이 살던 시대에 가까운 대제사장을 소개합니다.

앞 장들에서는 수십 년에 걸친 전쟁과 왕조의 역사가 몇 문장으로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 사람이 성소에서 나와 제단에 서고, 잔을 기울이고, 나팔이 울리고, 백성이 엎드리는 동작 하나하나가 길게 그려집니다. 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돌아본 뒤, 이제 그 역사를 기억하는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예배의 장엄함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이스라엘에 평화를 구하는 기도로 이어진 뒤, 갑자기 주변 민족들에 대한 거친 적대감이 등장합니다. 마지막에는 책을 쓴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독자에게 지혜를 실제 삶에서 실천하라고 권합니다.

이 세 장면을 연결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어떻게 지키고, 누구에게 돌려드리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읽는 시간 25분소단락 950장 본문 읽기 →

시몬 — 성소를 지키는 일은 백성을 지키는 일이었다

집회서 50:1–4 본문 →

대제사장을 소개하는 뜻밖의 방식

오니아스의 아들 시몬은 대제사장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집을 보수했고, 자기 시대에 성소를 튼튼히 했다.집회서 50:1 · 본디새김

시몬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겼던 대제사장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인물은 오니아스의 아들인 시몬 2세와 연결되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앞선 대제사장과의 구별에는 역사적 논의가 있습니다. 본문 자체는 그의 직책과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줄 뿐, 통치 연대까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대제사장을 소개하면서 먼저 그가 어떤 제사를 드렸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성전을 보수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이어지는 2절에서도 성전 둘레 담의 높은 받침벽을 세웠다고 말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성전은 단순한 종교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배와 제사장들의 사역, 절기와 공동체 생활이 집중되는 장소였습니다. 성전이 손상되거나 외부의 위협에 취약해지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와 공동체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시몬은 제단 앞에 서는 사람이었지만, 그 제단이 있는 장소를 돌보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물을 모으고 도시를 튼튼하게 하다

그의 시대에 물을 모으는 저수지가 줄어들었다. 그것은 청동으로 되어 있었고, 둘레는 바다와 같았다.집회서 50:3 · 본디새김

앞뒤에서는 모두 시몬의 건축과 방어 시설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저수지가 줄어들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본디새김이 따른 그리스어 전승의 엘라토테는 ‘줄어들었다’는 뜻을 지닙니다. 또한 이 전승에는 청동을 가리키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다른 그리스어 전승에는 엘라토메테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돌을 깎거나 파내었다는 의미이며, 저수지를 새로 팠다는 내용이 됩니다. 이 읽기에서는 청동 대신 웅덩이나 저수지를 가리키는 말이 사용됩니다. 히브리어 전승도 저수지 건설의 방향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저자가 시몬의 공사를 비판하려고 저수지가 작아졌다고 말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문맥과 다른 본문 전승을 고려하면, 저자가 대규모 물 저장 시설을 마련한 일을 찬양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열왕기상 7:23–26에는 솔로몬 성전에 있던 큰 청동 물두멍이 ‘바다’로 불리는데, 이러한 성전의 물 저장 시설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물은 제의적인 정결과 성전의 일상적인 운영에 필요했을 뿐 아니라, 도시 주민의 생존에도 필수적이었습니다.

바로 그다음 절에서 시몬의 관심이 백성 전체로 확대됩니다.

그는 자기 백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마음을 썼고, 포위 공격에 맞서도록 도시를 튼튼히 했다.집회서 50:4 · 본디새김

그의 역할은 예배를 주관하는 데만 제한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시설을 돌보는 책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시몬은 거룩한 장소를 지키는 일과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따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그의 화려한 옷차림부터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 옷을 입고 섬기는 사람이 어떤 책임을 감당했는지를 먼저 보여 준 것입니다.

휘장 안에서 나온 사람 — 온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이 모이다

집회서 50:5–10 본문 →

성소에서 나오는 순간

백성이 에워싼 가운데, 휘장으로 가린 집에서 나올 때 그는 얼마나 영광스러웠던가.집회서 50:5 · 본디새김

이제 장면이 바뀝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거룩한 공간에 들어갔던 대제사장이 온 백성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그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저자는 무려 여러 절에 걸쳐 비유를 쏟아 냅니다.

해와 달과 무지개

그는 구름 가운데 있는 새벽별과 같고, 제때에 둥글게 찬 달과 같았다.집회서 50:6 · 본디새김
지극히 높은 이의 성소 위로 환히 빛나는 해와 같고, 영광의 구름 속에서 빛을 내는 무지개와 같았다.집회서 50:7 · 본디새김

이 비유들은 모두 빛과 관련됩니다. 그런데 각각의 빛이 나타나는 방식은 다릅니다.

새벽별은 어두운 하늘에서 특별하게 드러납니다. 보름달은 밤하늘을 밝힙니다. 해는 낮의 빛을 가득 채웁니다. 무지개는 구름 속에서 아름다운 색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무지개는 창세기 9:12–17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모든 생명에게 주신 언약의 표징으로 등장합니다. 이 구절이 그 언약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신 표징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는 성소의 장면과 잘 어울립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예배의 자리에서 대제사장이 얼마나 장엄하게 보였는지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자신에게 독립적으로 속한 신적인 빛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와 거룩한 옷차림을 통해 드러나는 영광입니다.

꽃과 나무, 불과 금 그릇

저자는 하늘의 빛을 충분히 묘사한 뒤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새싹이 돋는 날의 장미꽃과 같고, 물이 흘러나오는 곳의 백합과 같고, 여름날의 유향나무 새순과 같았다.집회서 50:8 · 본디새김

이제 시선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이 이미지들에서는 빛보다 생명력과 향기가 두드러집니다. 꽃은 피어나고, 나무에서는 새순이 돋습니다.

그런데 9절에서는 다시 성전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불판 위의 불과 유향과 같고, 값비싼 온갖 돌로 꾸민, 통째로 두드려 만든 금 그릇과 같았다.집회서 50:9 · 본디새김

불과 유향은 제사와 분향을 떠올리게 합니다. 금 그릇과 값비싼 보석들은 성전의 기물과 제사장의 화려한 옷차림을 연상시킵니다. 출애굽기 28:15–21에는 대제사장의 가슴받이에 여러 보석을 사용하는 규정이 나타납니다.

온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이 성소의 장면으로 모여드는 듯합니다.

열매를 내며 무성해지는 올리브나무와 같고, 구름 사이로 높이 솟는 사이프러스나무와 같았다.집회서 50:10 · 본디새김

올리브나무는 열매를 맺고, 사이프러스나무는 높이 솟습니다. 하나는 풍요로움을, 다른 하나는 장엄한 높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자는 시몬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 주려 합니다. 이제 그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보여 주기 위해 저자의 시선이 그의 옷과 손으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휘장으로 가린 집’이라는 표현은 성전의 내부, 특히 휘장으로 구별된 거룩한 공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26:31–33에 따르면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있었습니다. 이 표현 때문에 이 장면을 속죄일의 대제사장 예식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레위기 16장에는 대제사장이 백성을 위해 속죄 예식을 행하며 특별한 방식으로 지성소에 들어가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집회서 50장은 그 의식의 정확한 날짜를 밝히지 않습니다. 뒤에 나오는 포도주 전제와 나팔, 찬양의 모습까지 고려하면 일반적인 제사와 절기의 요소들이 하나의 장엄한 예배 묘사 안에 모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특정한 속죄일 예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한 목격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영광의 옷을 입고 제단으로 올라가다

집회서 50:11–15 본문 →

옷이 나타내는 영광

그가 영광의 옷을 걸치고, 자랑의 절정을 이루는 옷차림을 갖추고, 거룩한 제단으로 올라갈 때, 성소의 둘레를 영광스럽게 했다.집회서 50:11 · 본디새김

출애굽기 28:2는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되 영광과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맡았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게 나타내는 옷이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28:12, 29에서는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몸에 지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그 옷은 단순한 개인적 영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책임도 보여 줍니다.

혼자가 아닌 제사장

그가 제사장들의 손에서 제물의 팔다리를 받아 제단의 화덕 곁에 서 있을 때, 그 자신은 둘러선 형제들의 화관이었고, 레바논의 백향목 새순 같았다. 그들은 종려나무 줄기처럼 그를 에워쌌다.집회서 50:12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실제적인 협력을 보여 줍니다. 제사에는 여러 직무가 필요했고, 공동체의 예배는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에는 위계가 있지만 동시에 서로 연결된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화관은 여러 부분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장식을 이룹니다. 시몬은 다른 제사장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인물이지만, 그 영광은 그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론의 모든 아들은 자기들의 영광에 싸여 있었고, 온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주에게 드릴 제물을 손에 들고 있었다.집회서 50:13 · 본디새김

이 장면에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제사를 주관합니다. 제사장들은 제물을 준비하고 섬깁니다. 백성은 그 예배에 참여하며 하나님 앞에 섭니다.

포도의 피를 쏟다

부어 드리는 잔을 향해 손을 뻗어 포도의 피를 부어 바쳤다. 지극히 높은 만물의 임금에게 향기로운 냄새가 되도록 제단 밑바닥에 쏟았다.집회서 50:15 · 본디새김

앞에서는 하늘의 빛과 꽃과 나무를 사용해 시몬을 묘사했지만, 이제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제사 행위로 시선이 모입니다.

화려한 옷보다 중요한 것은 그 옷을 입고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시몬을 높이 찬양하면서도 하나님을 모든 것의 임금이라고 부릅니다. 시몬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의 직무는 만물의 임금이신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제물이 드려지는 순간, 성전 전체에 소리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포도의 피’는 포도주를 나타내는 시적 표현입니다. 신명기 32:14에서도 포도주를 가리키는 유사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에서는 포도주를 붓는 전제가 드려졌습니다. 민수기 28:7과 14에는 전제에 관한 규정이 나타납니다. 신약에서는 제사장과 예배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새롭게 해석됩니다. 특히 히브리서 7–10장은 구약 제사장직과 제사의 의미를 그리스도의 사역에 비추어 설명합니다. 그러나 집회서 50장을 읽을 때에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던 역사적 예배의 의미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이 드린 제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그분의 복을 받으려는 공동체의 삶이 있었습니다.

나팔이 울리자 온 백성이 엎드리다

집회서 50:16–19 본문 →

하나님 앞에서 기억의 표가 되다

그때 아론의 아들들이 소리를 질렀고, 두드려 만든 나팔을 울렸다. 지극히 높은 이 앞에 기억의 표가 되도록 큰 소리가 들리게 했다.집회서 50:16 · 본디새김

민수기 10:10에서는 기쁜 날과 절기와 초하루에 제물을 드릴 때 나팔을 불도록 명령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기억의 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기억의 표를 세운다는 표현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적 관계를 나타내는 제의적 언어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택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제사를 드립니다. 나팔은 그러한 예배의 순간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모두 고개를 숙이다

그때 온 백성은 자기들의 주, 전능하고 지극히 높은 하나님에게 경배하려고 함께 서둘러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집회서 50:17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앞서 길게 이어진 찬란한 비유들의 의미를 결정적으로 바꿉니다.

저자가 그토록 아름답게 묘사했던 시몬은 백성의 경배를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역을 통해 백성은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시몬이 가장 영광스럽게 보이는 순간에, 백성은 시몬을 바라보는 대신 하나님께 얼굴을 숙입니다.

시몬의 영광은 백성이 자신을 높이게 만드는 데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가 섬기는 하나님을 백성이 경배하는 데서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감미로운 노래와 끊이지 않는 기도

노래하는 이들은 자기 목소리로 찬양했고, 크나큰 집 안에서 노랫가락이 감미롭게 울렸다.집회서 50:18 · 본디새김

이제 성전 안에는 나팔의 큰 소리와 노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함께 울립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경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이 하나의 예배 안에 공존합니다.

백성은 주를 위한 의식이 마무리되고 그들이 그를 섬기는 일을 끝낼 때까지 자비로운 이 앞에서 기도하며 지극히 높은 주에게 간청했다.집회서 50:19 · 본디새김

제사장은 제물을 드리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찬양하며, 백성은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서로 다른 역할이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비로운 이’라고 불리십니다. 앞에서는 ‘지극히 높은 만물의 임금’이라고 불리셨습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동시에 자기 백성의 간청을 들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제 예배의 마지막 중요한 행동이 등장합니다.

대제사장의 두 손이 백성을 향하다

집회서 50:20–21 본문 →

제물을 드리던 손이 복을 전하는 손이 되다

그때 그는 내려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자기 입술로 주를 찬미하고 주의 이름을 자랑하려는 것이었다.집회서 50:20 · 본디새김

이 동작은 레위기 9:22에서 아론이 백성을 향해 손을 들고 축복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민수기 6:22–27에는 아론과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할 때 사용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15절에서 시몬은 손을 뻗어 포도주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20절에서는 두 손을 들어 백성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합니다.

손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섬기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복을 백성에게 알리는 사람입니다. 제사와 축복은 서로 다른 행동이지만 같은 관계 안에 있습니다.

다시 엎드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극히 높은 이에게서 온 복을 드러내려고 그는 다시 엎드려 절했다.집회서 50:21 · 본디새김

본디새김은 이 절의 주어를 시몬으로 읽습니다.

그토록 화려한 옷을 입고 영광스럽게 묘사되었던 시몬이 마지막에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는 백성에게 복을 전하면서도 자신 역시 하나님의 복이 필요한 사람임을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복은 시몬에게서 독립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높은 이에게서 온 복’입니다. 대제사장의 사역은 그 복을 백성에게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예배의 장면을 마친 뒤 저자는 독자들을 향해 직접 입을 엽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비평본은 ‘그들이 다시 경배했다’는 복수 동사를 채택하며, 히브리어 사본 B도 복수입니다. 본디새김은 이와 달리 단수로 옮깁니다. 복수로 읽으면 앞서 17절에서 엎드린 백성이 축복을 받기 위해 다시 경배하는 장면이 됩니다. 시몬을 주어로 읽으면 대제사장 자신이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백성을 주어로 읽으면 제사의 마지막에 회중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다시 엎드리는 행동이 강조됩니다.

이제 모두 하나님을 찬미하여라

집회서 50:22–24 본문 →

인간의 영광을 찬양하다가 하나님을 찬양하다

이제 모두 하나님을 찬미하여라. 그는 어디서나 큰일을 이루며, 태 안에서부터 우리의 날들을 높이고, 자기 자비에 따라 우리를 대한다.집회서 50:22 · 본디새김

이 절에서 중요한 말은 ‘이제’입니다.

지금까지 저자는 대제사장 시몬의 아름다움을 길게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장면이 끝나자 곧바로 모두에게 하나님을 찬미하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시몬에게 사용했던 영광의 언어가 이제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옮겨 갑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큰일을 이루시는 분이며, 태 안에서부터 우리의 날들을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시작되는 자리까지 하나님의 돌보심이 미칩니다. 이 구절은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며, 살아가는 날들 또한 그분의 자비 아래 있다는 고백입니다.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구하다

그가 너희에게 마음의 기쁨을 주고, 우리의 날들에 이스라엘에 평화가 있게 하기를, 영원한 날들 내내 그러하기를.집회서 50:23 · 본디새김

앞에서 시몬은 성전을 보수하고 도시를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전한 성벽만으로 사람의 삶이 온전히 평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도 기쁨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그 기쁨이 하나님에게서 오기를 구합니다.

이어지는 기도는 이스라엘의 평화입니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고, 공동체의 관계가 바르게 유지되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질서를 누리는 상태와 연결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예배를 드렸지만, 예배가 끝난 뒤 살아갈 세상에는 여전히 어려움과 위험이 있습니다. 예배에서 받은 복이 성전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백성이 살아가는 날들 속에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비를 맡기시고 우리를 속량하시기를

그가 자기 자비를 우리에게 맡기기를, 그의 날들에 그가 우리를 속량하기를.집회서 50:24 · 본디새김

본디새김의 ‘맡기기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엠피스튜사이(ἐμπιστεύω)는 자비를 우리에게 맡긴다는 의미와, 자비가 우리와 함께 굳게 머물도록 한다는 의미의 방향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어느 한쪽으로만 좁히지 않더라도 분명한 것은 저자가 하나님의 자비를 단순히 잠깐 경험하는 도움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자비가 공동체 가운데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속량’은 속박이나 위험에서 구해 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출애굽의 구원과 같은 역사적 경험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구절은 구체적으로 어떤 위협에서 언제 구출되기를 바라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성전은 세워져 있고, 제사는 드려지며, 대제사장은 백성에게 복을 전합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하나님께 속량을 구합니다.

이는 성전이 존재하고 예배가 이루어진다는 사실만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22–24절은 성전 예배의 아름다움을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기도로 확장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독자는 갑작스럽고 불편한 말을 만나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전승의 24절에는 시몬과 비느하스의 언약을 언급하는 내용이 나타납니다. 민수기 25:10–13에서 하나님이 비느하스에게 주신 제사장직의 언약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그 전승을 따르면 하나님의 자비가 시몬과 그의 후손에게 계속되고 제사장직의 언약이 굳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기도가 됩니다. 반면 본디새김이 따른 그리스어 본문은 ‘우리’에게 자비가 머물고 ‘우리’가 속량받기를 바라는 공동체 전체의 기도에 무게를 둡니다. 두 전승의 강조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자비와 약속이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중심 의미는 공통됩니다.

두 민족과 세겜의 백성 — 평화를 구한 뒤 등장하는 적대감

집회서 50:25–26 본문 →

내 마음은 두 민족에게 분노했고, 셋째는 민족도 아니다.집회서 50:25 · 본디새김
사마리아 산에 사는 이들과 블레셋 사람들, 그리고 세겜에 사는 어리석은 백성이다.집회서 50:26 · 본디새김

방금 전까지 저자는 마음의 기쁨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구했습니다.

왜 저자는 이처럼 아름다운 예배의 묘사와 평화의 기도 뒤에 적대적인 말을 덧붙였을까요?

사마리아 산인가, 세일 산인가?

본디새김이 따른 그리스어 본문에는 ‘사마리아 산’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전승에는 ‘세일 산’이 나타납니다.

세일은 에돔과 연결된 지역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어의 읽기를 따르면 저자가 적대감을 표현하는 세 집단은 에돔 사람들, 블레셋 사람들, 세겜에 사는 사람들로 구분됩니다. 반면 그리스어의 ‘사마리아 산’을 따르면 첫 번째 집단과 세 번째 집단이 모두 사마리아 지역의 주민들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차이가 생긴 정확한 경위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마리아 산이라는 읽기와 세일 산이라는 읽기 가운데 하나를 반드시 원래 표현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세겜의 백성은 당시 유대 공동체와 갈등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겜은 그리심산 가까이에 있는 도시입니다. 사마리아 공동체는 그리심산을 중요한 예배의 장소로 여겼으며,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 공동체와 예배 장소와 종교적 정통성을 둘러싼 갈등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세겜에 사는 어리석은 백성’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그들의 지능이나 문화적 수준을 평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자가 자신이 속한 종교 공동체의 입장에서 그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표현입니다.

왜 저자는 그들을 민족도 아니라고 말하는가?

25절의 ‘셋째는 민족도 아니다’는 표현은 단순한 비판보다 강합니다.

상대 집단이 온전한 민족으로 인정받을 자격조차 없다는 식의 경멸을 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정당성과 제사장직의 권위를 높이 평가하는 저자에게, 다른 장소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는 심각한 경쟁 상대처럼 보였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장의 대부분이 예루살렘 성전과 대제사장 시몬의 영광을 찬양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지막의 적대적인 표현이 그런 종교적 갈등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자가 특정한 민족을 경멸하는 말을 기록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그 민족을 그렇게 평가하라고 명령하셨다는 주장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형식이 아닙니다. 저자 자신이 ‘내 마음은’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집회서 저자의 감정과 시대적 관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을 시대와 문맥에서 떼어 내 오늘날 특정한 민족이나 종교 집단을 멸시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 구절을 곧바로 모든 다른 민족에 대한 저자의 태도로 일반화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집단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배를 둘러싼 구체적인 갈등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강한 배타적 표현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도 희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실제로 적대감을 표현합니다. 독자는 그 말을 불편하게 느낄 수 있으며, 그 불편함을 무리하게 없애기 위해 저자가 전혀 다른 뜻을 말했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화의 기도와 적대감이 나란히 놓인 이유

이 두 구절은 앞의 평화의 기도와 날카로운 긴장을 이룹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백성의 안전과 예배, 하나님의 약속이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강한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이 장은 이 긴장을 직접 해결하지 않습니다.

성전 예배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장면과, 다른 공동체를 향해 경멸을 표현하는 장면이 같은 저자의 글 안에 존재합니다. 이는 인간의 공동체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복잡한 갈등과 한계를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저자는 곧바로 시선을 다시 돌립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기록한 책을 소개합니다.

지혜를 비처럼 쏟아 낸 사람 — 저자가 독자에게 남기는 말

집회서 50:27–29 본문 →

긴 역사 이야기 끝에서 자기 이름을 밝히다

나, 예루살렘 사람이며 엘르아살의 아들 시라의 아들인 예수는 깨달음과 지식의 교훈을 이 책에 새겨 썼다. 나는 내 마음에서 지혜를 비처럼 쏟아 냈다.집회서 50:27 · 본디새김

집회서 50장의 마지막 부분은 책 전체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예수는 신약의 예수와는 다른 사람으로, 집회서의 저자입니다. 그가 기록한 것은 정보의 목록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고 배워서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훈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지혜를 마음속에만 간직하지 않고, 후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글로 남겼습니다. 앞에서는 단단한 것에 새기는 행동이 나타났는데, 이제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새기는 일은 어떤 내용을 오래 남기는 행동입니다. 비를 쏟는 일은 넓은 곳을 적시고 생명을 자라게 하는 행동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지혜를 기록하여 보존하려 했고, 동시에 그 지혜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흘러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집회서 24:30–34에서 지혜의 가르침이 물줄기처럼 흘러넘치는 장면과도 어울립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주어진 복

이것들을 따라 살아갈 사람은 복이 있다. 그는 이것들을 자기 마음에 두고 지혜로워질 것이다.집회서 50:28 · 본디새김

성경에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자리만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며, 무엇을 사랑하고 선택할지 결정하는 인간의 중심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됩니다. 따라서 지혜를 마음에 둔다는 것은 좋은 말을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가르침이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형성하도록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위대한 조상들의 삶을 들려주었습니다. 왕과 예언자, 제사장들의 믿음과 실패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감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집회서가 독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아니라, 그 지혜에 따라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실천할 때 힘이 된다

실상 그가 이것들을 실천하면 모든 일을 감당할 힘이 있을 것이다. 그의 발자취가 주의 빛이기 때문이다.집회서 50:29 · 본디새김

집회서 전체에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 죽음과 한계가 자주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의미는 지혜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실패하지 않거나 고통받지 않는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지혜가 삶의 어려움을 감당하고 바르게 판단하는 힘이 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리스어 본문은 ‘주의 빛’과 ‘그의 발자취’를 나란히 놓아 그 관계를 나타냅니다. 주의 빛이 그의 걸음을 비춘다는 의미와, 그가 걷는 길이 주의 빛과 연결된다는 의미를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시편 119:105는 하나님의 말씀이 발에 등이 되고 길에 빛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집회서 50장의 마지막 표현도 이러한 지혜 전통과 어울립니다.

지혜는 삶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사람이 실제로 걸어가는 길을 밝혀 주는 빛입니다. 그 빛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별하게 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생각하게 합니다.

시몬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집회서의 모든 독자가 대제사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제단에 올라가 제물을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길은 자신의 일상에서 지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는 예루살렘 사람이며, 시라의 아들 예수라고 소개됩니다. 그리스어 본문에서 엘르아살이라는 이름이 연결되는 방식에는 문법적 모호함이 있지만, 히브리어 전승에서는 시라의 아들 엘르아살의 아들 예수라는 계보로 나타납니다. 집회서 1:14는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집회서 24장에서는 지혜가 하나님에게서 나와 이스라엘 가운데 자리를 얻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집회서 50장의 성전 예배는 이러한 지혜 이해와 잘 어울립니다.

맺음말 — 모두의 얼굴이 땅을 향하던 순간

집회서 50:1–29 본문 →

집회서가 묘사하는 예배의 절정은 대제사장의 영광이 아니라, 그 영광을 통해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과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살아가는 일은 서로 분리된 삶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사람은 그 앞에 고개를 숙일 뿐 아니라, 다시 일어나 그분의 지혜를 따라 살아갑니다.

집회서 50장의 가장 오래 남는 모습은 그래서 화려한 제사장의 옷만이 아닙니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백성을 향해 두 손을 들어 복을 전하고, 온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 앞에 얼굴을 땅에 대는 장면입니다.

나팔 소리가 울리고, 찬양이 성전을 가득 채우며, 사람들은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구합니다.

그곳에서 모든 사람의 영광은 자신을 위한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함께 서는 기쁨으로 모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