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아담에서 이어진 족보
전사의 숫자 사이에 남은 아버지의 슬픔
역대상 7장은 강한 사람들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잇사갈에는 전쟁에 나갈 힘센 용사들이 있었고, 베냐민에도 수많은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셀 지파 역시 뽑힌 힘센 용사들과 지도자들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이 군사 명부 한가운데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에브라임의 아들 둘이 가드 사람들의 가축을 빼앗으러 갔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의 아버지 에브라임은 여러 날 동안 슬퍼하고, 형제들이 그를 위로하러 찾아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자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전쟁에 나갈 사람들로 기록된 남자들의 명단 사이에, 성읍을 세운 여자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왜 역대기는 이 이야기를 족보 가운데 기록했을까요?
잇사갈 — 많은 자손이 전쟁에 나갈 군대가 되다
잇사갈의 아들들은 돌라, 부아, 야숩, 시므론으로 모두 넷이었습니다.역대상 7:1 · 두루새김
이 이름들은 창세기 46:13과 민수기 26:23–25에도 등장합니다. 두 본문 사이에는 일부 이름을 적는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잇사갈을 이루는 주요 집안의 계보라는 점은 같습니다.
역대기는 그중 돌라의 후손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돌라의 아들들은 웃시, 르바야, 여리엘, 야흐매, 입삼, 사무엘이었습니다. 이들은 돌라에게서 이어진 각 집안의 우두머리들이며 힘센 용사들이었습니다. 집안별 계보에 따르면, 다윗 때 그 집안의 용사 수는 이만 이천육백 명이었습니다.역대상 7:2 · 두루새김
여기서 계보는 단순한 가족관계의 목록에서 군사 조직에 관한 기록으로 바뀝니다.
잇사갈의 여러 집안은 가족 단위로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집안들을 중심으로 전쟁에 나갈 사람들을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전쟁에 나설 군사들은 집안별 계보에 따라 삼만 육천 명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내와 아들을 많이 두었기 때문입니다.역대상 7:4 · 두루새김
이번에는 웃시의 아들 이스라히야와 그의 아들들이 이끄는 집단에 36,000명의 군사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집안을 중심으로 한 군사 조직에서는 가문의 번성과 전쟁에 나갈 사람들의 증가가 서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한 세대가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집안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그 결과 전쟁에 나설 수 있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역대기는 이러한 가족의 역사를 군사력에 관한 숫자와 함께 기록합니다.
네 이름인데 왜 다섯이라고 할까?
이스라히야의 아들로 미가엘, 오바댜, 요엘, 잇시야,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다섯」이라는 수가 나옵니다. 두루새김은 「이스라히야와 그의 네 아들, 이렇게 다섯」이라고 옮겨, 아버지 이스라히야까지 포함한 다섯 사람임을 밝혔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읽기입니다. 그러나 원문이 다섯이라는 수를 정확히 어떻게 계산했는지 밝히지는 않습니다. 원래 명단에 한 이름이 더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5절에서는 잇사갈 전체의 족보에 기록된 인원이 87,000명이라고 기록합니다. 이때 22,600명, 36,000명, 87,000명이라는 숫자들이 모두 같은 시점과 같은 범위에서 나온 것인지는 본문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앞의 수치들을 단순히 더하여 나머지 집안의 군사 수까지 정확히 계산하려면, 서로 겹치지 않는 집단이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1–5절은 그 군대가 실제로 어떤 전쟁에서 승리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특별한 명령을 받았다거나 군사력이 곧 하나님의 인정을 나타낸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역대기가 이곳에서 확인하는 것은 전투 능력이지, 그 능력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평가가 아닙니다.
베냐민 — 같은 지파의 족보가 서로 다르게 기록되는 이유
베냐민의 아들들은 벨라, 베겔, 여디아엘로 모두 셋이었습니다.역대상 7:6 · 두루새김
베냐민의 계보도 잇사갈과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먼저 주요 조상을 소개한 뒤, 그 자손들과 집안의 우두머리들,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기록합니다. 벨라 계통에는 22,034명, 베겔 계통에는 20,200명, 여디아엘 계통에는 17,200명의 용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상 7장은 베냐민의 아들들을 세 사람으로 소개하지만, 다음 장인 역대상 8:1–2에서는 다섯 사람을 소개합니다. 창세기 46:21에서도 베냐민의 후손 명단은 더 길게 나타납니다.
왜 같은 베냐민의 계보가 서로 다를까요?
역대상 7장은 군사 조직과 연결된 집안들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8장은 베냐민의 여러 후손을 다시 기록하면서 사울의 가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두 장이 반드시 같은 범위와 세대를 빠짐없이 기록하려는 명단이라고 가정할 수 없습니다.
일부 이름이 세대나 집안에 따라 다르게 분류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서로 다르게 전해 내려온 계보가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특정 이름이 왜 한 목록에는 있고 다른 목록에는 없는지까지 모두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족보마다 무엇을 기록하려 하는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마지막에 남은 불분명한 이름들
숩빔과 훕빔은 이르의 자손들이었고, 후심은 아헬의 자손이었습니다.역대상 7:12 · 두루새김
후심이라는 이름은 창세기 46:23에서 단의 아들로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두 기록의 후심이 같은 인물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헤르(אַחֵר)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뜻도 지닙니다. 따라서 이를 사람의 이름으로 읽어야 하는지, 특정 인물을 밝히지 않은 표현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해석이 갈립니다.
역대상 7장에는 단과 스불론의 독립적인 계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12절에서 단 지파의 흔적을 찾으려는 읽기도 가능하지만, 본문이 그것을 확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역대기가 남긴 이름 가운데는 우리가 더 이상 정확한 가족관계를 되살려 내기 어려운 이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잡한 베냐민의 계보가 끝나자, 다음 지파는 단 한 절로 소개됩니다.
납달리 — 한 절에 남은 네 아들과 어머니의 이름
납달리의 아들들은 야흐시엘, 구니, 예셀, 살룸이었습니다. 이들은 빌하의 자손들이었습니다.역대상 7:13 · 두루새김
빌하는 야곱의 아내 라헬에게 속한 여종이었고, 야곱에게 단과 납달리를 낳았습니다(창세기 30:3–8). 여기서 빌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납달리의 출생 배경을 밝혀 줍니다. 창세기 46:25에서도 빌하를 통해 태어난 야곱의 후손들을 함께 소개합니다.
그런데 역대상 7장에는 납달리의 군사력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왜 납달리의 기록은 이렇게 짧을까요?
이 지파가 다른 지파보다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사용된 계보 자료의 범위가 달랐을 수도 있고, 이 장에서 납달리의 후손들을 자세히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역대기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므로 확정적인 판단은 어렵습니다.
납달리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사기 4:6에서는 납달리의 게데스 출신 바락이 드보라와 함께 등장합니다. 사사기 5:18은 납달리가 전쟁에서 목숨을 걸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장이 남긴 것은 네 아들의 이름과 빌하라는 어머니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들만으로도 납달리가 이스라엘의 한 지파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확인됩니다.
므낫세 — 아들이 없었던 집안의 딸들이 상속의 역사를 바꾸다
14절부터는 요셉의 두 아들 가운데 맏아들 므낫세의 계보가 시작됩니다.
므낫세의 자손으로는 그의 아람 사람 첩이 낳은 아스리엘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길르앗의 아버지 마키르도 낳았습니다.역대상 7:14 · 두루새김
민수기 26:29에서도 마키르와 길르앗은 므낫세 지파의 주요 계보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역대상 7:14–19는 가족관계를 정확하게 연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계보 가운데 매우 분명한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마키르는 훕빔과 숩빔에게 아내를 얻어 주었습니다. 그의 여자 형제 이름은 마아가였습니다. 둘째의 이름은 츨로프핫이었고, 츨로프핫에게는 딸들이 있었습니다.역대상 7:15 · 두루새김
여기서 역대기는 딸들의 이름조차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설명을 민수기 27장과 함께 읽으면, 이 딸들이 이스라엘의 상속 제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의 이름도 사라져야 하는가
민수기 27:1–4에는 츨로프핫의 다섯 딸이 등장합니다.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입니다. 그들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 지도자들과 온 회중 앞에 나와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했습니다.
아버지는 광야에서 죽었고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집안 가운데서 사라져야 하느냐는 것이 그들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형제들 가운데서 자신들에게도 상속받을 땅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민수기 27:5–7에 따르면 모세는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갔고, 하나님은 츨로프핫의 딸들이 옳게 말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결과 아들이 없는 사람의 상속을 딸에게 넘겨주는 규정이 제시됩니다.
물론 이를 현대적인 의미의 남녀 간 완전한 상속권 평등이 실현된 사건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36:6–9에서는 그 딸들의 혼인에 대해 지파가 상속받은 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않도록 제한을 두었습니다.
여호수아 17:3–6에서는 츨로프핫의 딸들이 실제로 상속받을 땅을 받는 장면이 기록됩니다. 아들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가문을 이어 가는 데 어려움이 생겼지만, 딸들이 자신의 몫을 요구하고 상속을 받은 중요한 역사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츨로프핫의 딸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보존되기만을 기다린 사람들이 아니라,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도록 직접 말하고 행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므낫세의 계보에 여러 여성이 등장하다
16–19절에서는 마키르의 아내 마아가가 아들을 낳는 장면이 나옵니다. 18절에는 함몰레겟이라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길르앗의 여자 형제 함몰레겟은 이스홋, 아비에셀, 말라를 낳았습니다.역대상 7:18 · 두루새김
이 단락에는 아람 사람 첩과 마아가, 츨로프핫의 딸들, 함몰레겟이 등장합니다. 앞부분의 잇사갈과 베냐민 계보가 남성 우두머리와 전쟁에 나갈 사람들의 수를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면, 므낫세의 계보에서는 여성들의 이름과 혼인, 출산, 상속 문제가 훨씬 두드러집니다.
그렇다고 역대기가 이 여성들의 처지를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첩이라는 지위는 당시 가족관계 안에 신분의 차이가 존재했음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그 여성의 이름조차 알려 주지 않습니다.
므낫세의 역사는 아버지와 아들들의 이름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가문의 역사에는 여성들이 있었고, 그들의 출산과 혼인, 상속에 관한 일들이 집안을 이루고 이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역대기는 요셉의 다른 아들 에브라임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조금 더 깊이
아스리엘과 마키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마키르가 훕빔과 숩빔에게 아내를 얻어 주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혼인 관계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15절에는 마아가와 츨로프핫도 등장하지만, 「둘째」라는 표현이 누구를 기준으로 하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원문에서는 「그의 누이」가 정확히 어느 인물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길르앗의 여자 형제」로 옮겼습니다.
에브라임 — 가축을 빼앗으러 갔다가 아들들을 잃다
20절에서는 에브라임의 여러 후손이 이어집니다.
수델라에서 베렛으로, 다핫과 엘르아다를 지나 다시 다핫과 사밧, 수델라까지 이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21절 중간에 이르러 갑자기 출생의 계보가 죽음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다핫의 아들은 사밧, 사밧의 아들은 수델라였습니다. 에브라임에게는 에셀과 엘르앗이라는 아들들도 있었습니다. 그 땅에서 태어난 가드 사람들이 이 두 사람을 죽였습니다. 두 사람이 가드 사람들의 가축을 빼앗으러 내려갔기 때문입니다.역대상 7:21 · 두루새김
다만 어떤 사정으로 가축을 빼앗으려 했는지, 그들 사이에 이전부터 분쟁이 있었는지, 이 사건이 더 큰 전쟁의 일부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사들의 명단에서 애도하는 아버지에게로
그들의 아버지 에브라임은 여러 날 동안 슬퍼했습니다. 그의 형제들이 그를 위로하러 왔습니다.역대상 7:22 · 두루새김
본문은 그의 슬픔을 짧게 기록하지만, 「여러 날 동안」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 슬픔이 한순간의 반응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에셀과 엘르앗은 가축을 빼앗으려다 죽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버지의 슬픔이 거짓이거나 의미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형제들은 사건의 책임을 따지기 위해 왔다고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에브라임을 위로하러 왔습니다.
잘못된 행동이 비극의 원인이 되었더라도, 남겨진 가족의 슬픔은 여전히 슬픔입니다.
역대기는 이 장면에서 에브라임이 울지 말아야 한다거나 슬픔을 빨리 이겨 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의 아들들이 죽도록 허락하셨는지, 그 사건이 어떤 더 큰 목적을 위해 일어났는지는 이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고통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설명하지 않는 것이 본문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에브라임에게 에셀과 엘르앗은 단순히 군사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에셀과 엘르앗이 먼저 가축을 빼앗으려 했는지는 읽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두루새김에서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가축을 빼앗으려는 행동에 참여한 것으로 옮겼습니다. 이 기록이 정확히 어느 시대의 사건을 보존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특히 에브라임이라는 조상이 직접 슬퍼하는 것으로 묘사되면서도 그 앞뒤에는 여러 세대의 계보가 이어집니다. 이 때문에 사건의 모든 인물을 단순히 한 세대의 가족관계로 배열하여 연대를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브리아 — 불행을 기억하는 이름으로 새 생명이 태어나다
에브라임이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자 아내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에브라임은 자기 집안에 불행이 닥쳤기 때문에 아들의 이름을 브리아라고 지었습니다.역대상 7:23 · 두루새김
에브라임은 불행을 잊어버리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집안에 불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름에 남깁니다.
창세기 35:18에서 라헬은 죽어 가면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부릅니다. 야곱은 그 아이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바꿉니다. 베노니는 어머니의 고통과 연결되는 이름입니다.
반면 역대상 7장의 브리아는 집안에 닥친 불행을 기억하는 이름으로 그대로 기록됩니다. 두 이야기가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자녀의 이름이 출생 당시 가족이 겪던 경험과 연결될 수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새로운 출생이 이전의 죽음을 지우지는 않는다
브리아의 출생을 에브라임이 슬픔을 완전히 이겨 냈다는 증거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의 슬픔이 언제 끝났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아들이 태어났다고 해서 죽은 아들들의 존재가 대체되었다고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출생은 실제로 새로운 시작이지만, 그것이 이전의 상실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면서도 다음 세대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에브라임의 가문에 속한 한 여성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는 설명보다 다른 행동으로 기억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이름 브리아(בְּרִיעָה)와 불행을 뜻하는 라아(רַע) 사이에는 소리의 비슷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브리아라는 이름을 반드시 「불행」이라고 그대로 옮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절은 이름의 소리를 이용하여 출생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에라 — 족보에서 성읍을 건설한 사람으로 기록된 여자
에브라임의 딸은 세에라였습니다. 세에라는 아래 벧호론과 위 벧호론, 웃센세에라를 세웠습니다.역대상 7:24 · 두루새김
여성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은 아닙니다. 이 장에도 빌하와 마아가, 함몰레겟 등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세에라는 출산이나 혼인 관계만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왜 아래 벧호론과 위 벧호론인가
벧호론은 높은 곳과 낮은 곳에 자리 잡은 두 성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호수아 16:3–5에서도 아래 벧호론과 위 벧호론이 에브라임 자손의 땅과 관련되어 등장합니다. 이 지역은 중앙 산지에서 서쪽 평야로 내려가는 통로에 위치하여 이동과 방어의 측면에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0:10–11에서는 아모리 연합군이 벧호론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패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열왕기상 9:17에서는 솔로몬이 아래 벧호론을 세우거나 튼튼하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자손은 단지 가축을 빼앗으러 갔다가 죽은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안에는 사람들이 살아갈 성읍을 세운 인물도 있었습니다.
죽음을 기록한 뒤 건설을 기록하다
21절에서 에셀과 엘르앗은 다른 사람들의 가축을 빼앗으려다가 죽었습니다. 24절에서는 세에라가 성읍들을 세웠습니다. 두 장면은 모두 사람들이 땅과 관계를 맺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다릅니다.
이 대비가 저자가 의도적으로 구성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본문에서는 두 사건이 가까이 놓여 있습니다.
역대기는 에브라임의 상실을 기록하면서, 그 가문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장소를 만든 여성의 이름도 남깁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고대의 계보에서 성읍을 세웠다는 표현이 반드시 그 사람이 직접 돌을 쌓아 모든 건물을 지었다는 의미로 제한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었거나 기존 성읍을 발전시키는 일을 이끌었거나, 그 사람과 연결된 집안이 성읍을 세웠다는 뜻으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세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역대상 7:24의 세에라가 그 성읍들을 처음 세웠는지, 기존 정착지를 다시 세웠는지, 어느 시기에 활동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세에라가 성읍을 세운 일과 솔로몬의 건축 사업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관계가 있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까지 이어지는 계보 — 상실을 겪은 가문에서 나온 지도자
25절부터 에브라임의 계보는 다시 이어집니다.
엘리사마의 아들은 논, 논의 아들은 여호수아였습니다.역대상 7:27 · 두루새김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이끈 지도자입니다. 민수기 27:18–23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신명기 31:7–8에서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격려합니다.
여호수아 1:1–9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역대상 7장은 여호수아의 지도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슬러 에브라임에게 연결되는 한 후손으로 소개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에셀과 엘르앗의 죽음이 여호수아의 출현을 위한 준비였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두 사건 사이에 그러한 목적 관계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에브라임의 슬픔이 여호수아의 성공으로 보상되었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업적만으로 그 이전의 모든 세대가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이름 뒤에 등장하는 땅
여호수아의 이름이 나오자 곧바로 살던 곳의 목록이 이어집니다.
에브라임의 자손들이 차지하고 살던 곳은 벧엘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동쪽의 나아란, 서쪽의 게제르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그리고 세겜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이었습니다. 그 땅은 아야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까지 이어졌습니다.역대상 7:28 · 두루새김
여호수아 16–17장에는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받게 된 땅의 경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역대상 7:28–29는 계보를 한 지역에 자리 잡고 살아간 공동체의 역사로 넓힙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나누어 주는 일과 밀접하게 연결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그의 업적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았는지를 기록합니다.
므낫세 자손들의 땅 곁에는 벧스안과 거기에 딸린 마을들, 타아나크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므깃도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도르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이 있었습니다. 이곳들에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들이 살았습니다.역대상 7:29 · 두루새김
이 성읍들은 사사기 1:27에서 므낫세 지파가 가나안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던 지역들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이 목록을 이스라엘이 모든 지역을 아무 저항 없이 완전히 차지했다는 기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를 함께 읽으면 상속받을 땅으로 지정된 곳과 실제로 차지하고 살던 곳 사이에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원문에서 29절의 성읍들을 므낫세가 실제로 소유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두루새김처럼 「므낫세 자손들의 땅 곁」에 있었다는 지리적 설명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의 표현만으로 모든 경계를 명확하게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의 역사는 조상의 이름에서 시작하여 실제 사람들이 살아간 땅의 이름으로 이어집니다.
아셀 — 다시 군사 명부로 돌아오지만 여성들의 이름도 남는다
30절부터는 마지막 지파인 아셀의 계보가 등장합니다.
아셀의 아들들은 임나, 이스와, 이스위, 브리아였고, 그들의 여자 형제는 세라였습니다.역대상 7:30 · 두루새김
세라라는 이름은 창세기 46:17과 민수기 26:46에도 등장합니다. 서로 다른 시기의 계보 기록에 이름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이 본문들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헤벨은 야블렛과 소멜과 호담, 그리고 그들의 여자 형제 수아의 아버지였습니다.역대상 7:32 · 두루새김
그러나 역대기는 그 여성들이 왜 특별히 기록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요한 사건 때문에 기억되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가족관계나 집안에 전해 내려온 이야기 속에서 이름이 보존되었을 수 있습니다.
역대기의 족보는 남성 우두머리들을 중심으로 기록되었지만, 여성들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용사들의 숫자
아셀의 계보는 여러 세대의 이름을 길게 기록한 뒤 마지막 절에 이릅니다.
이들은 모두 아셀의 자손으로, 각 집안의 우두머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뽑힌 힘센 용사들이며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우두머리였습니다. 아셀의 자손 가운데 전쟁에 나갈 군인으로 족보에 기록된 남자들은 이만 육천 명이었습니다.역대상 7:40 · 두루새김
이 숫자는 지파의 총인구가 아닙니다. 본문은 전쟁에 나갈 남자들의 수라고 밝힙니다. 이 숫자에는 전투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 곧 어린아이와 여성, 노인과 그 밖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역대기는 이곳에서 모든 지파를 같은 항목으로 비교하는 완전한 통계표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종류의 계보와 전해 내려온 이야기가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다시 숫자가 남지만
역대상 7장은 강한 공동체가 얼마나 많은 용사를 가졌는지 기록하면서, 그 공동체를 이루었던 사람들의 삶이 용사의 숫자보다 훨씬 넓었다는 사실도 보여 줍니다. 전쟁에 나갈 사람들의 명단은 조직과 규모를 알려 줍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잃었을 때 가족이 어떻게 슬퍼했는지, 아들이 없는 가문에서 딸들이 어떤 문제를 제기했는지, 사람들이 살아갈 성읍을 누가 세웠는지는 다른 종류의 기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역대기는 그 여러 기록을 한 장에 함께 남겼습니다.
역대상 7장에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거나 어떤 일을 행하셨다는 서술이 없습니다. 이들을 함께 읽으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지만, 역대상 7장이 말하지 않은 내용을 직접적인 진술처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한쪽에는 전투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다른 쪽에는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아버지가 있고, 그를 위로하러 온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사람들이 살아갈 성읍을 세운 세에라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아래 벧호론, 위 벧호론, 웃센세에라.
전사들의 명단 사이에서 그 세 성읍의 이름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