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6–11장 · 예루살렘의 성전
하나님이 머무시는 집,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
열왕기상 8장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날 가운데 하나를 기록합니다. 오랜 세월 이동식 천막에 모셔졌던 언약궤가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의 가장 거룩한 곳에 놓입니다. 구름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제사장들은 여호와야훼의 영광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 서서 맡은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장의 중심에는 뜻밖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말 이 땅에 머무시겠습니까?」 성전을 지은 사람이 성전이 하나님을 담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솔로몬은 완공된 건물의 아름다움이나 제사의 위엄을 오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앞으로 닥칠 다툼과 전쟁, 가뭄과 질병, 죄와 패배를 이야기합니다.
어째서 가장 영광스러운 봉헌식에서 가장 비참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언약궤가 성전 안으로 들어오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을 가득 채웁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시선은 성전 바깥으로 넓어집니다. 이웃과 다투는 사람, 전쟁에서 패한 백성, 비를 기다리는 농부, 먼 나라에서 찾아온 외국인, 마침내 다른 나라의 땅에 끌려간 포로에게까지 이릅니다.
언약궤가 들어오고, 사람들은 물러난다
성전의 중심에 놓인 것은 무엇인가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지파의 우두머리들, 가문의 대표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읍니다. 왕이 성전을 지었지만, 봉헌식은 왕 개인의 행사가 아닙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참여하는 언약 공동체의 사건입니다.
시기는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의 축제 때입니다. 레위기 23:34에 따르면 일곱째 달에는 초막절이 시작됩니다. 본문은 절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뒤에 나오는 축제 기간과 함께 생각하면 초막절과 연결되는 시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천막 생활을 하던 때를 기억하는 절기에 하나님께서 머무실 집을 바친다는 점은 뜻깊습니다.
성전 건물 자체는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봉헌 이야기의 중심은 건물이 아니라 언약궤를 옮기는 일입니다.
다윗 성에 있던 언약궤를 제사장들이 들어 올리고, 만남의 천막과 그 안에 있던 거룩한 기구들도 함께 옮겨집니다. 광야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예배가 새로운 장소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언약궤는 성전의 안쪽 방, 곧 가장 거룩한 곳에 있는 그룹들의 날개 아래 놓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화려한 장식과 건물의 크기보다 궤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궤 안에는 모세가 호렙에서 넣어 둔 돌판 두 개밖에 없었습니다. 호렙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여호와야훼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곳이었습니다.열왕기상 8:9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성전의 크기와 금 장식이 자세히 묘사되었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성전의 중심에 언약궤를 둔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솔로몬의 부나 군사력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이 백성은 먼저 여호와야훼의 구원을 받았고, 그분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솔로몬이 새로운 집을 지었지만, 그 집에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솔로몬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일을 멈추게 하다
언약궤를 들여놓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나오자 구름이 성전을 가득 채웁니다.
제사장들은 구름 때문에 그곳에 서서 맡은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열왕기상 8:11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출애굽기 40:34–35를 떠올리게 합니다. 광야에서 만남의 천막이 완성되었을 때에도 구름이 천막을 덮었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그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때 모세는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전은 인간이 하나님을 불러들여 소유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솔로몬은 이 현상을 보고 여호와야훼께서 짙고 어두운 구름 속에 머무시겠다고 말씀하셨음을 떠올립니다. 이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짙은 어둠 가운데 임재하셨던 사건과 연결됩니다(출애굽기 20:21).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표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이 임재하시지만 인간이 그분을 자기 눈으로 완전히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솔로몬은 이어서 자신이 주님께서 머무실 집, 영원히 계실 자리를 마련했다고 선언합니다(8:13). 그러나 이 선언은 잠시 뒤 그가 드릴 기도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증언하지만, 하나님을 가두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은 먼저 성읍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구름이 성전을 가득 채운 뒤 솔로몬은 백성을 향해 돌아서서 여호와야훼를 찬양합니다.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찬양받으시기를 바란다. 그분께서는 내 아버지 다윗에게 다음과 같이 직접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손수 이루셨다.」열왕기상 8:15 · 두루새김
「직접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손수 이루셨다」는 표현은 24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원문에서는 입으로 말씀하시고 손으로 이루셨다고 표현합니다. 약속과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 사이에 아무런 간격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어도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신다는 고백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뒤 어느 성읍도 자신의 이름을 둘 성전을 지으려고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다윗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8:16).
성전의 장소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은 왕의 선택입니다.
이 순서는 사무엘하 7장과 연결됩니다. 다윗은 여호와야훼를 위한 집을 짓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다윗을 위해 왕조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무엘하 7:5–16). 사람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려는 계획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이루시는 일이 앞섭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던 마음은 좋은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을 짓도록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그의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한 소망을 인정하시는 것과 그 소망을 이루는 방식과 시기를 결정하시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솔로몬은 이제 자신이 왕좌에 앉아 성전을 지은 일이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설명은 마지막에 다시 언약궤로 돌아옵니다.
「나는 성전 안에 궤를 놓을 자리를 마련했다. 그 궤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실 때 그들과 맺으신 언약의 돌판이 들어 있다.」열왕기상 8:21 · 두루새김
왕조에 관한 약속과 출애굽의 언약이 한 장소에서 만납니다. 왕이 다스릴 근거도, 성전의 의미도 이스라엘을 먼저 구원하신 여호와야훼의 행동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늘도 담을 수 없는 하나님께 성전을 향해 기도한다
이제 솔로몬은 백성 앞에서 하늘을 향해 두 손바닥을 펼칩니다.
그의 기도는 여호와야훼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온 마음으로 자신 앞에서 살아가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사랑을 베푸시는 분입니다(8:23).
이어 솔로몬은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그런데 그는 왕위를 이어 가는 일에 관한 약속을 말하면서 그 조건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여, 주님의 종인 제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네 아들들이 자기 삶을 살펴 네가 내 앞에서 살아온 것처럼 살아갈 때에만, 내 앞에서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네 자손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열왕기상 8:25 · 두루새김
다윗 왕조의 미래에는 순종이라는 책임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왕에게 주어진 약속은 그가 무엇을 하든 여호와야훼의 뜻과 관계없이 통치할 수 있다는 허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말 이 땅에 머무시겠습니까?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도 주님을 담을 수 없는데, 제가 지은 이 성전은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열왕기상 8:27 · 두루새김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기로 하신 곳입니다. 솔로몬은 여호와야훼께서 그곳을 밤낮으로 눈여겨보아 주시고, 백성이 이곳을 향해 드리는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응답은 하늘에서 온다고 반복합니다.
「주님의 종인 저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해 기도할 때 그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주님께서 계시는 곳인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열왕기상 8:30 · 두루새김
이것은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려고 선택하시는 장소에 관한 말씀과도 연결됩니다(신명기 12:5, 11). 이스라엘은 마음대로 예배의 중심을 정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는 장소를 중심으로 그분께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있는 곳조차 하나님을 완전히 담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긴장 속에서 성전은 특별한 장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두셨기에 백성은 그곳을 향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그 장소의 경계를 넘어서 계십니다.
성전은 인간이 무너지는 모든 자리와 연결된다
솔로몬은 이제 구체적인 상황을 하나씩 제시합니다. 기도의 첫 장면은 나라 전체의 재난도, 왕의 위기도 아닙니다. 이웃 사이에서 벌어진 다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 사이의 진실을 판단하신다 (8:31–32)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 죄를 지었다는 문제가 생기고, 그 일과 관련하여 자기 말이 거짓이면 벌을 받겠다는 맹세를 성전의 제단 앞에서 하게 됩니다.
두루새김의 「자기 말이 거짓이면 벌을 받겠다는 맹세」는 거짓말을 한다면 그에 따른 저주를 감수하겠다고 선언하는 맹세를 풀어 쓴 말입니다. 본문만으로 누가 그 맹세를 요구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에게는 죄가 있다고, 옳게 행한 사람에게는 옳다고 판결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성전은 왕과 제사장들이 장엄한 제사를 드리는 장소인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서기를 구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예배 의식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못된 행실이 바로잡히는지, 억울한 사람이 정당하게 인정받는지와도 관계됩니다.
성전이 하나님께 속한 집이라면, 그 집에서는 사람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정한 판단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돌아서는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소서 (8:33–36)
두 번째와 세 번째 간청은 전쟁의 패배와 가뭄을 다룹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 죄를 지어 적에게 졌을 때, 그들이 여호와야훼께 돌아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33절의 「그들이 주님께 돌아와」와 34절의 「그들을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는 히브리어 슈브(שׁוּב), 돌아서다·돌아오다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삶의 자리로 돌아오는 회복은 하나님께 돌아서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뭄에 관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이 죄에서 돌아서면 여호와야훼께서 용서하시고 땅에 비를 내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요청합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님의 종들과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이 걸어야 할 좋은 길을 가르쳐 주시고, 주님의 백성에게 대대로 차지하도록 주신 주님의 땅에 비를 내려 주십시오.」열왕기상 8:36 · 두루새김
가뭄을 끝내는 것만으로는 백성의 삶이 바로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땅의 회복과 더불어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는 신명기 28장에서 이스라엘의 순종과 불순종이 땅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회복은 단순히 이전의 형편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마음의 재앙 (8:37–40)
이제 기도의 범위가 훨씬 넓어집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일과 전염병, 곡식이 말라 죽거나 누렇게 병드는 일, 메뚜기와 곡식을 갉아 먹는 해충, 적의 포위, 각종 재앙과 병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앞선 두 간청에서는 죄와 재앙의 연결이 분명히 밝혀졌지만, 이 단락은 나열된 모든 재앙을 각 사람의 특정한 죄에 대한 결과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재난의 원인을 일일이 밝히려 하지 않고, 그 재난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에게 시선을 옮깁니다.
「어느 한 사람이든 주님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든, 저마다 자기 마음의 고통을 알고 이 성전을 향해 두 손바닥을 펼쳐 어떤 기도와 간청을 드리든,」열왕기상 8:38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마음의 재앙을 말하며, 두루새김은 이를 「자기 마음의 고통」(נֶגַע)으로 옮겼습니다. 개인이 자기 마음으로 아는 고통이나 어려움을 가리키는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특별히 자신의 죄책을 깨닫는다는 뜻까지 포함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지만, 그 의미만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열된 재앙은 공동체 전체에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앙을 겪는 사람의 마음속 고통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계시는 곳인 하늘에서 들으시고, 용서하시고, 행동해 주십시오.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가 한 모든 일에 따라 갚아 주십시오. 주님만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열왕기상 8:39 · 두루새김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완전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에 그의 삶을 공정하게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악을 선으로 선언하는 일이 아니며, 그분의 판단은 고통받는 사람의 사정을 무시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의 범위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각 사람의 마음에까지 이르렀을 때, 솔로몬은 이제 이스라엘 바깥의 사람들에게 눈을 돌립니다.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사람의 기도도 들으소서
그는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외국인이 먼 나라에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듣고 찾아오는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그 외국인은 여호와야훼의 위대한 이름과 강한 손과 뻗으신 팔에 관한 소식을 듣습니다. 이 표현들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신명기 4:34; 5:15).
「주님께서 계시는 곳인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외국인이 주님께 부르짖어 구하는 대로 모두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민족이 주님의 이름을 알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주님을 두려워하게 해 주십시오. 또 제가 지은 이 성전이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곳임을 알게 해 주십시오.」열왕기상 8:43 · 두루새김
이스라엘에 관한 앞선 간청들에서는 죄에서 돌아서는 일과 용서가 강조되었습니다. 반면 이 외국인에 관한 간청에서는 그가 여호와야훼의 이름 때문에 찾아와 기도한다는 사실이 앞에 놓입니다. 본문은 이 사람이 먼저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절차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외국인의 기도 응답을 이스라엘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여호와야훼를 알게 되는 일을 목적으로 제시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땅의 모든 가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2:3).
하나님께서 한 백성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두셨다는 사실은 그분의 이름이 그 백성만의 소유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27절의 고백이 새로운 의미를 얻습니다. 하늘과 가장 높은 하늘도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은 한 민족의 경계 안에 제한되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특정한 장소에 세워졌지만, 그곳에서 알려지는 하나님의 이름은 온 땅을 향합니다.
가장 먼 곳에서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가
기도의 마지막 두 상황은 전쟁과 포로 생활입니다.
44–45절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서 보내시는 길로 적과 싸우러 나가는 경우를 다룹니다. 솔로몬은 그들이 성전과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권리를 지켜 주시기를 구합니다.
여기서 모든 전쟁의 승리를 보장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보내시는 길이라는 조건을 제시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정을 공정하게 돌보시기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간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적과 싸우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 넘겨집니다. 그들은 패배하고 사로잡혀 먼 나라로 끌려갑니다.
성전이 무너지기 전부터 포로의 기도가 준비되어 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의 백성이 주님께 죄를 지어 주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적에게 넘기셨을 때,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이 그들을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적의 땅으로 끌고 갔을 때,」열왕기상 8:46 · 두루새김
이 말은 지금까지의 기도가 왜 그렇게 많은 용서의 간청으로 채워졌는지 밝혀 줍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맺은 백성이지만 죄에서 자유로운 백성은 아닙니다. 오히려 언약 관계 안에 있기 때문에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해칩니다.
열왕기 전체의 이야기에서 보면 이 기도는 특별한 무게를 지닙니다. 열왕기하 17장에서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열왕기하 25장에서는 예루살렘의 함락과 유다의 포로 생활이 기록됩니다. 독자는 성전 봉헌식에서 제기된 이 가능성이 훗날 왕국의 역사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자기 잘못을 깨닫고 돌아서서, 자기들을 사로잡은 자들의 땅에서 주님께 간청하며 『저희가 죄를 지었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악하게 행동했습니다』라고 말하고,」열왕기상 8:47 · 두루새김
여기서는 어떤 제물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포로들이 성전 제단 앞에 서는 장면도 아닙니다. 이어 솔로몬은 그들이 온 마음과 온 생명을 다해 하나님께 돌아와 자신들의 땅과 예루살렘과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을 그립니다(8:48).
앞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한 뒤 하나님께 돌아올 때 다시 땅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간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포로 기도에서 솔로몬은 먼저 포로들이 용서받고 자신들을 사로잡은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8:49–50). 이 대목 자체에는 자기 땅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요청이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성전이 있는 땅에서 멀어져도 기도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포로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자리에서도 그들을 위해 행동하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인 이유
마지막 간청의 근거는 51절에서 나타납니다.
「그들은 주님의 백성이며 주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쇠를 녹이는 용광로 같은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열왕기상 8:51 · 두루새김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충분히 고통받았으므로 이제 받을 벌을 다 받았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을 근거로 호소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고, 모든 민족 가운데서 구별하여 자신께 속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8:53). 이것은 출애굽기 19:4–6과 신명기 7:6–8에 전해지는 언약의 말씀과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시고 선택하신 행동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그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신 백성에게 계속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여기에는 신명기 30:1–6의 말씀과 가까운 주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진 뒤에도 마음을 돌려 여호와야훼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8장은 그 약속의 모든 내용을 반복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설 수 있는 길을 나라를 잃은 자리에서까지 열어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언약의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성전이 완성된 바로 그날, 솔로몬은 사람들이 그 성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전을 잃을 수도 있고, 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길마저 잃지 않기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자신에게 기울게 하시기를
긴 기도를 마친 솔로몬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22절에서는 그가 제단 앞에 서서 손을 펼쳤다고 했는데, 54절은 그가 무릎을 꿇고 두 손바닥을 하늘로 펼친 채 기도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이제 백성을 향해 복을 빕니다.
「말씀하신 대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안을 주신 여호와야훼께서 찬양받으시기를 바란다. 그분께서 자기 종 모세를 통해 하신 좋은 말씀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졌다.」열왕기상 8:56 · 두루새김
이 말씀은 여호수아 21:43–45와 매우 가깝습니다. 그곳에서도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땅과 안식을 주셨으며, 하신 좋은 말씀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졌다고 고백합니다. 출애굽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가 땅을 얻고 평안을 누리는 일로 이어졌다는 고백입니다.
솔로몬이 이어서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의 마음이 자신께 향하게 해 주시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이 그분께 향하게 하셔서, 우리가 그분의 모든 길을 따르고 그분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명령과 규정과 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바란다.」열왕기상 8:58 · 두루새김
이 기도는 61절의 명령과 나란히 읽어야 합니다.
「너희 마음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온전히 향해야 한다. 오늘처럼 그분의 규정에 따라 살고 그분의 명령을 지켜라.」열왕기상 8:61 · 두루새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간의 책임이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분의 지속적인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성전의 건축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결국 인간의 마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전을 짓는 데에는 나무와 돌과 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예배하는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향한 마음입니다.
왕은 건물을 완성할 수 있지만, 백성의 마음을 자기 힘으로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완성한 왕이 하나님께 백성의 마음을 돌보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성전에서 시작된 기쁨이 백성의 집으로 돌아간다
기도와 복을 비는 말이 끝난 뒤 큰 규모의 제사가 이어집니다.
본문은 소 이만 이천 마리와 양과 염소 십이만 마리라는 엄청난 수를 기록합니다. 제물이 너무 많아 청동 제단만으로는 모두 담을 수 없었기에 솔로몬은 성전 앞뜰 한가운데도 거룩하게 구별하여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본문은 제물의 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참여하는 축제와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하맛 어귀에서 이집트 개울까지, 이스라엘의 북쪽과 남쪽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본문은 칠 일에 또 칠 일을 더해 모두 십사 일 동안 축제를 지켰다고 기록합니다.
여덟째 날에 솔로몬은 백성을 돌려보냈습니다. 백성은 왕에게 복을 빌고 각자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종 다윗과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좋은 일 때문에 그들은 기뻐하며 마음이 즐거웠습니다.열왕기상 8:66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자기 천막들로 돌아간다고 표현합니다. 두루새김은 여기서 천막이 각자의 생활 터전을 가리키는 익숙한 표현이라는 점을 살려 옮겼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어 66절은 여덟째 날에 백성을 돌려보냈다고 말합니다. 이 여덟째 날이 어느 기간을 기준으로 하는지 본문 자체는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같은 사건을 전하는 역대하 7:9–10은 절기의 마지막 집회와 백성을 돌려보낸 날짜를 더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과 사람이 돌아가는 곳
솔로몬이 완성한 성전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고 그분께 나아가는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성전 봉헌 기도는 성전의 영광보다 인간의 연약함을 더 길게 다룹니다. 성전은 이스라엘이 다시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에도 여호와야훼께 돌아갈 수 있다는 소망의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하며, 온 마음으로 다시 그분을 향하는 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는 더 이상 구름도, 가장 거룩한 곳의 그룹들도, 셀 수 없이 많은 제물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께서 베푸신 좋은 일 때문에 기뻐하며 마음이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제사장들이 서 있을 수 없었던 곳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백성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성전은 한곳에 세워졌지만, 그곳에서 기억한 여호와야훼의 선하심은 사람들이 돌아가는 모든 삶의 자리와 연결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