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6–11장 · 예루살렘의 성전

거룩한 집을 채운 지혜와 손길

열왕기상 7장은 조금 뜻밖의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솔로몬은 자기 왕궁을 십삼 년 동안 지어 모두 완성했습니다.열왕기상 7:1 · 두루새김

앞 장에서는 솔로몬이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일곱 해 동안 지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차이는 독자에게 자연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솔로몬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일까요?

그런데 이야기는 중간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궁전과 그 크기를 설명하던 서술자는 13절에서 갑자기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두로에서 온 청동 기술자 히람입니다.

솔로몬은 나라를 다스리고 성전을 세울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에 필요한 기둥과 물대야와 여러 기구를 실제로 만드는 데에는 다른 사람의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왕의 명령으로 시작되었지만, 왕에게 없는 기술을 지닌 사람의 손에서 모습을 갖추어 갔습니다.

이 기구들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왜 성전에는 동물과 식물의 모양이 가득했을까요?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지혜는 누구에게서 왔을까요?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97장 본문 읽기 →

열세 해 동안 지은 왕궁 — 하나의 집이 아니라 왕국의 중심

열왕기상 7:1–12 본문 →

솔로몬은 자기 왕궁을 열세 해 동안 지었습니다.

앞 장의 성전 건축 기간보다 길지만, 왕궁의 건물들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서술자는 레바논 숲의 집, 기둥 현관, 재판의 현관, 왕이 살 집, 파라오의 딸을 위한 집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이 건물들은 왕이 개인적으로 생활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왕국을 운영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사 기간만으로 솔로몬의 마음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레바논 숲의 집 — 숲처럼 늘어선 백향목 기둥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물은 「레바논 숲의 집」입니다.

그는 레바논 숲의 집을 지었습니다. 길이는 백 큐빗, 너비는 오십 큐빗, 높이는 삼십 큐빗이었습니다. 백향목 기둥 네 줄이 건물을 받쳤고, 기둥 위에는 백향목 들보를 얹었습니다.열왕기상 7:2 · 두루새김

이름에 레바논이 들어간다고 해서 그 건물이 레바논에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건물은 솔로몬의 왕궁 건축 설명에 속하며, 레바논에서 가져온 백향목을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기둥들이 여러 줄로 늘어서 있는 모습 때문에 「레바논 숲」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그 이름의 유래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앞 장의 성전 중심 건물이 길이 육십 큐빗, 너비 이십 큐빗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바닥 면적이 상당히 넓습니다. 이 건물의 용도도 7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열왕기상 10:16–17에 따르면 솔로몬은 금으로 만든 방패들을 레바논 숲의 집에 두었습니다. 따라서 이 건물이 왕실의 중요한 물품을 보관하고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장소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마흔다섯 개의 들보와 세 줄로 마주 보는 창문들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들보」(⁨צֵלָע⁩)로 옮긴 말은 문맥에 따라 방이나 옆쪽 구조물로도 읽힐 수 있어, 건물 내부의 정확한 구조를 그려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백향목 기둥과 들보, 반복된 창문의 배치가 건물의 중요한 특징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재판하는 왕에게는 재판의 장소가 필요하다

솔로몬은 이어 기둥 현관과 재판의 현관을 세웁니다.

또 왕좌의 현관, 곧 재판의 현관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은 왕좌를 놓고 재판할 곳으로, 바닥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백향목으로 덮여 있었습니다.열왕기상 7:7 · 두루새김

앞서 솔로몬은 두 여자의 다툼을 재판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보여 주었습니다(열왕기상 3:16–28). 솔로몬에게 지혜로운 마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왕국의 모든 재판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왕이 판단을 내리고 사람들이 다투는 일을 다루려면 실제 공간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왕좌는 단순히 왕이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왕은 판단을 내리고 정의를 실천해야 했습니다. 시편 72:1–4는 왕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주어져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의를 베풀기를 기도합니다.

재판의 현관은 바로 그러한 왕의 책임을 다할 장소였습니다.

재판의 현관은 정의를 행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지만, 정의로운 판단 자체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곳에 앉는 왕이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의 말을 듣는지가 여전히 중요합니다.

파라오의 딸을 위한 집

왕실이 살 집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파라오의 딸이 다시 등장합니다.

솔로몬이 살 집은 현관 안쪽의 다른 뜰에 있었고, 같은 방식으로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내로 맞은 파라오의 딸을 위해서도 이 현관과 같은 방식으로 집을 지었습니다.열왕기상 7:8 · 두루새김

파라오의 딸은 열왕기상 3:1에서 솔로몬이 이집트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는 설명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그녀를 위한 별도의 집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이 혼인이 왕궁의 실제 공간 배치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 줍니다. 이 결혼은 단순한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이집트 왕실과의 외교적 관계와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왕궁은 왕 개인의 생활 공간을 넘어, 국가의 권력이 모이고 행사되는 장소였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성전과 왕의 집이 공유한 건축 방식

9–12절에서는 왕궁에 사용된 돌과 뜰의 구조가 소개됩니다.

값비싼 돌들을 정해진 크기에 맞게 다듬고, 기초에는 십 큐빗 또는 팔 큐빗에 이르는 큰 돌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큰 뜰 둘레에는 다듬은 돌 세 단과 잘라 낸 백향목 한 단으로 담을 쌓았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뜰과 성전 현관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열왕기상 7:12 · 두루새김

두 건물은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세워졌지만, 돌과 백향목을 사용하는 건축 방식에서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들의 의미는 사용된 재료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왕궁은 왕이 살고 나라를 다스리는 곳입니다. 성전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위해 구별된 곳입니다.

이 지점에서 서술자는 왕궁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성전 건축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왕의 이름보다 기술자의 이름이 앞에 나옵니다.

왕에게 주어진 지혜, 장인에게도 있던 지혜

열왕기상 7:13–14 본문 →

5장에도 히람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히람은 두로의 왕이었고, 이번에 등장하는 히람은 청동을 다루는 기술자입니다.

히람의 어머니는 납달리 지파 출신으로 남편을 잃은 여자였습니다.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며 청동을 다루는 기술자였습니다. 히람은 청동으로 온갖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혜와 이해력과 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솔로몬 왕에게 와서 왕이 맡긴 모든 일을 했습니다.열왕기상 7:14 · 두루새김

「지혜와 이해력과 지식」이라는 표현은 앞서 솔로몬에게 주어진 지혜와 분별력에 관한 설명을 떠올리게 합니다(열왕기상 5:9). 동시에 더 오래된 성막 건축의 이야기도 생각나게 합니다. 출애굽기 31:2–5에서 하나님은 브살렐에게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시고, 지혜와 이해력과 지식을 주셔서 금과 은과 청동을 다루고 여러 재료를 가공하게 하셨습니다. 원문에서는 두 본문에 사용된 세 가지 핵심 낱말이 서로 대응합니다.

물론 열왕기상 7:14는 출애굽기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히람에게 자신의 영을 채우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인물에게 같은 방식으로 특별한 계시나 영적 경험이 주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는 왕이 사람을 다스릴 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닙니다. 기술자가 손으로 아름답고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 때에도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기술자가 성전의 기구를 만들려면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치수를 계산하며, 설계된 모양을 실제 물건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히람은 단순히 솔로몬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 손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낼 지식과 판단 능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5장에서는 솔로몬이 다른 민족의 기술을 인정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 협력의 구체적인 열매가 히람이라는 인물을 통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지만, 솔로몬 한 사람에게 모든 지혜를 몰아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성전은 여러 종류의 지혜가 함께 사용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같은 내용을 다루는 역대하 2:14에서는 어머니가 단의 딸들 가운데 속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열왕기상의 납달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두 기록을 하나의 계보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그의 아버지가 두로 사람이라는 점과 그가 뛰어난 기술자라는 점을 공통으로 전합니다.

야킨과 보아스 — 성전 문 앞에 세운 두 이름

열왕기상 7:15–22 본문 →

히람은 청동 기둥 두 개를 만듭니다.

한 기둥의 높이는 십팔 큐빗입니다. 다른 기둥의 둘레는 십이 큐빗 길이의 줄로 두를 수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기둥 꼭대기에는 청동을 녹여 부어 만든 기둥머리를 올립니다. 기둥머리는 그물처럼 엮은 장식과 사슬처럼 꼰 줄로 꾸며집니다.

본문은 기둥의 몸체보다 꼭대기 장식에 상당한 분량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두 기둥이 단순히 무게를 떠받치는 구조물로만 여겨지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성전 앞에서 눈에 띄는 특별한 건축 요소이자 상징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기둥들이 현관 지붕의 무게를 실제로 떠받쳤는지, 따로 서 있는 기념 기둥이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히람은 성전 큰 방 앞의 현관에 두 기둥을 세웠습니다.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야킨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왼쪽 기둥을 세우고 보아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열왕기상 7:21 · 두루새김

「야킨」 — 그가 굳게 세우신다

야킨(⁨יָכִין⁩)은 히브리어 이름을 옮긴 말입니다.

이는 「굳게 세우다」, 「확립하다」라는 뜻을 가진 쿤에서 나온 형태로, 「그가 굳게 세우신다」 또는 「그가 세우실 것이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2:12는 솔로몬의 왕권이 굳게 섰다고 말했습니다. 2:46도 나라가 솔로몬의 손안에서 굳게 섰다는 말로 끝났습니다. 원문에서는 두 곳에서 왕권이 굳게 서는 일을 나타내는 동사가 야킨이라는 이름과 같은 어근을 사용합니다.

솔로몬의 왕국이 굳게 섰다는 사실이 반복되어 온 이야기에서, 이제 성전 문 앞에는 「그가 굳게 세우신다」라는 이름을 가진 기둥이 서 있습니다. 그 이름의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기둥 이름 자체에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전이라는 문맥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세우시고 굳게 하시는 분이라는 신앙의 고백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왕국을 세운 사람이 솔로몬인 것처럼 보이지만, 솔로몬 자신도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을 왕좌에 세우셨다고 고백했습니다(열왕기상 2:24).

「보아스」 — 힘은 어디에 있는가

다른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이 이름은 흔히 「그 안에 힘이 있다」라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다만 보아스라는 이름 전체의 어원과 정확한 문장 구성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반드시 「여호와야훼 안에 힘이 있다」라는 완전한 문장을 뜻한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힘과 관련된 의미를 담은 이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신중합니다.

두 이름을 함께 읽으면 하나의 고백처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그분에게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두 이름을 하나의 문장으로 합쳐 읽으라는 설명을 직접 하지 않습니다. 이 해석은 이름의 의미와 성전의 문맥을 연결한 읽기입니다.

성전 앞의 기둥은 웅장하지만, 그 이름이 가리키는 힘은 청동 자체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성전은 튼튼한 돌과 나무와 금속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이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인간의 기술로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 장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자신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열왕기상 6:12–13).

성전의 아름다움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기둥은 굳게 서 있지만, 성전과 그곳에서 예배하는 백성의 미래는 여전히 하나님과 맺은 관계 안에 놓여 있습니다.

석류와 백합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기둥에는 석류와 백합 모양의 장식이 있습니다.

석류는 많은 씨를 가진 열매이며, 구약의 제사장 옷에도 장식으로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28:33–34에서는 대제사장의 겉옷 가장자리에 석류 모양과 금방울을 번갈아 달도록 지시합니다. 따라서 성전의 석류 장식은 제사장과 성막의 장식 전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백합 모양도 성전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식물 장식입니다. 앞 장의 성전 내부에는 종려나무와 꽃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제 성전 입구의 청동 기둥에도 식물 장식이 나타납니다.

본문은 그 장식의 수량과 모양을 자세히 기록하지만, 각각의 상징적 뜻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성전의 아름다움에 창조 세계의 식물 모양이 사용되었고, 그 장식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장소를 꾸미는 데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히람은 두 기둥을 완성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치수들을 두 기둥에 적용되는 대표적인 크기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본문의 문장은 한 기둥의 높이와 다른 기둥의 둘레를 차례로 언급합니다. 따라서 치수에 관한 설명이 두 기둥의 크기를 똑같이 나열한 설계도처럼 제시된 것은 아닙니다.

성전 뜰의 바다 — 열두 마리 소 위에 놓인 물

열왕기상 7:23–26 본문 →

히람은 금속을 녹여 부어 바다라고 부르는 큰 물통을 만들었습니다. 둥근 물통의 한쪽 가장자리에서 맞은편 가장자리까지는 십 큐빗이었고, 높이는 오 큐빗이었습니다. 삼십 큐빗 길이의 줄로 그 둘레를 두를 수 있었습니다.열왕기상 7:23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는 실제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청동 물통의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바다라고 부르는 큰 물통」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그런데 더욱 특별한 것은 그 물통을 떠받치는 구조입니다.

이 물통은 소 조각상 열두 개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소 세 마리는 북쪽을, 세 마리는 서쪽을, 세 마리는 남쪽을, 세 마리는 동쪽을 향했습니다. 소들의 뒷부분은 모두 안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열왕기상 7:25 · 두루새김

왜 열두 마리의 소인가?

열둘이라는 숫자는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떠올리게 합니다.

더구나 세 마리씩 네 방향을 향한 배치는 광야에서 열두 지파가 성막을 중심으로 네 방향에 진을 쳤던 모습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민수기 2장). 그러나 열왕기상 7장은 소 열두 마리가 열두 지파를 뜻한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본문에 나타나는 수와 배치가 비슷하다는 데서 출발한 해석이지, 확정적으로 주어진 설명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예배 대상으로 삼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출애굽기 32장). 그렇다면 성전에는 왜 소의 모양이 있을까요? 열왕기상 7장의 소 조각상들은 예배받을 신의 모습으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큰 물통을 떠받치는 받침 구조의 일부입니다.

구약에서 모든 동물 모양을 만드는 일이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만들었는가뿐 아니라 그것을 무엇으로 여기고 어떻게 사용했는가도 중요합니다.

이 바다의 물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열왕기상 7장은 바다라고 부르는 큰 물통의 크기와 장식을 설명하지만, 그 물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직접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에는 같은 내용을 다루는 역대하 4:6이 도움을 줍니다. 그곳에서는 이 큰 물통이 제사장들이 씻는 일을 위한 기구였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작은 물대야들은 번제물과 관련된 것을 씻는 데 사용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광야의 성막에도 물대야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0:17–21에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가거나 제단에 가까이 가서 섬길 때 손과 발을 씻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정결 예식은 성소에서 섬기는 일이 일반적인 일상 활동과 구별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성전의 큰 물통은 그 전통이 더 큰 규모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다만 제사장들이 실제로 이 큰 물통 안으로 들어가 목욕했는지, 그곳에서 물을 떠서 씻었는지는 이 구절들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전에서의 예배와 제사장들의 섬김에 물을 통한 정결이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서술자는 거대한 바다 하나에서 작은 물대야 열 개로 시선을 옮깁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기구의 이름을 고대의 혼돈의 바다와 연결하거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물을 다스리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구약에는 여호와야훼께서 바다를 다스리시는 분으로 묘사되는 본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시편 89:9–10). 그러나 열왕기상 7장은 이 물통에 그런 우주적 상징을 직접 부여하지 않습니다. 26절은 이 큰 물통에 이천 바트가 들어간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역대하 4:5에는 삼천 바트가 들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실제 사용하던 물의 양은 이천 바트이고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은 삼천 바트였다고 구별하는 읽기가 있습니다. 반면 본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숫자에 차이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그러한 구별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설명이 옳은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바퀴가 달린 물대야 열 개 — 거룩한 일에도 실제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열왕기상 7:27–39 본문 →

바다라고 부르는 큰 물통은 거대한 하나의 기구였지만, 다음에 등장하는 물대야들은 열 개입니다.

히람은 먼저 청동 받침대 열 개를 만듭니다. 각 받침대의 길이와 너비는 사 큐빗이고, 높이는 삼 큐빗입니다.

받침대마다 청동 바퀴 네 개와 바퀴를 연결하는 청동 축이 있었으며, 네 발에는 버팀대가 있었습니다. 물대야 아래의 버팀대들은 금속을 부어 만들었고, 각각 화환 장식 곁에 있었습니다.열왕기상 7:30 · 두루새김

축과 바퀴테, 바퀴살과 바퀴통이 있고, 그 구조는 전투용 수레의 바퀴와 같았다고 합니다(7:33). 성전에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물을 담고, 필요한 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능만 생각하여 만든 것도 아닙니다.

받침대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 종려나무와 화환 모양의 장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전에서 사용하는 실용적인 기구라고 해서 아름다움이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함께 있는 이유

받침대 장식에는 여러 생물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사자는 강한 힘을 가진 동물입니다. 소는 농사를 짓는 사회에서 힘과 노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입니다. 그룹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함께 계시는 것과 관련된 존재입니다. 종려나무와 화환은 식물의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하나의 기구에 함께 새겨집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다양성이 성전 장식 속에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열 개의 물대야가 필요한가?

히람은 받침대 위에 놓을 물대야도 열 개 만듭니다.

히람은 청동 물대야 열 개를 만들었습니다. 물대야 하나에는 사십 바트가 들어갔고, 크기는 사 큐빗이었습니다. 받침대 열 개 위에 물대야를 하나씩 놓았습니다.열왕기상 7:38 · 두루새김

같은 내용을 다루는 역대하 4:6에 따르면 작은 물대야들은 번제물과 관련된 것을 씻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제사를 위해 짐승을 준비하고 다루는 일에는 물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여러 물대야를 마련해 두는 것은 성전을 실제로 운영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바퀴 달린 받침대는 필요할 때 물대야를 옮기기 위한 구조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실제로 어느 범위까지 옮겼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히람은 받침대 열 개를 모두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모두 같은 방식으로 부어 만들었고, 크기와 모양도 같았습니다.열왕기상 7:37 · 두루새김

이것은 성전 기구를 만드는 데 일정한 기준과 정밀한 기술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물대야들은 아무렇게나 놓이지 않습니다. 다섯 개는 성전 오른쪽에, 다섯 개는 왼쪽에 놓입니다. 바다라고 부르는 거대한 물통은 성전의 오른쪽, 곧 남동쪽에 놓입니다.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는 마음속에서만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제물이 필요했고, 물이 필요했으며, 그것을 담고 운반하는 기구들이 필요했습니다. 성전의 거룩함은 실용적인 작업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작업에도 정교함과 아름다움이 필요했습니다.

히람의 지혜가 이런 곳에서 드러납니다.

요단 평야의 주조 현장 — 완성된 기구 뒤에 숨은 노동

열왕기상 7:40–47 본문 →

40절부터 서술자는 히람이 만든 기구들을 다시 나열합니다.

기둥 두 개와 기둥머리, 그물 장식과 석류, 받침대와 물대야, 바다라고 부르는 큰 물통과 소 조각상 열두 개, 솥과 삽과 대접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제작 과정을 하나하나 소개한 뒤, 그 작업이 완성되었음을 정리하는 목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목록의 끝에서 독자의 시선은 성전 뜰을 떠나 요단 평야로 이동합니다.

왕은 요단 평야의 숙곳과 사르단 사이에서 이 기구들을 만들게 했습니다. 단단한 흙으로 만든 틀에 금속을 부어 만들었습니다.열왕기상 7:46 · 두루새김

청동을 부어 큰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틀을 마련하고 뜨거운 금속을 다루는 복잡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 지역의 흙이 금속을 부어 만드는 작업에 적합한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작업 현장에서 금속을 녹이고 틀에 부어 만든 다음, 성전까지 운반해야 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은 왕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건축물과 기구들을 만든 사람들은 여러 지역에서 일했습니다. 레바논에서는 나무를 베었고, 산에서는 돌을 떠냈으며, 요단 평야에서는 청동을 부어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성전은 예루살렘에 세워졌지만, 그 건축을 가능하게 한 노동과 기술은 여러 장소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왜 청동의 무게를 달지 않았는가?

솔로몬은 기구가 너무나 많아서 무게를 달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청동의 무게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열왕기상 7:47 · 두루새김

이 문장은 기구들의 수량과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강조합니다. 히람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은 사용한 금속의 총량이 아니라, 그 금속을 다루어 어떤 물건을 만들어 냈는가에 있습니다. 성경은 그의 기술이 만들어 낸 결과를 매우 자세히 기록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지혜는 재료를 실제적인 목적과 아름다운 모양으로 바꾸는 능력이었습니다.

청동에서 금으로 — 성전 안쪽의 예배 기구들

열왕기상 7:48–50 본문 →

히람의 청동 작업에 관한 목록이 끝나자, 서술자는 금으로 만든 기구들을 소개합니다.

솔로몬은 여호와야훼의 성전 안에 둘 모든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제단은 금으로 만들고, 하나님 앞에 차려 놓는 빵을 올릴 상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열왕기상 7:48 · 두루새김

바다라고 부르는 큰 물통과 물대야, 받침대들은 성전 뜰과 관련된 기구였습니다. 반면 금 제단과 빵을 올릴 상, 등잔대들은 성전 내부의 예배 공간에 놓이는 기구들입니다. 성막에서도 바깥 제단과 물을 담는 대야에는 청동이 사용되었고, 안쪽의 중요한 기구들에는 금이 사용되었습니다(출애굽기 27:1–8; 30:17–21; 25:23–40).

다만 청동은 덜 거룩하고 금은 더 거룩하다는 식으로 재료의 가격을 거룩함의 등급과 일대일로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서로 다른 예배 공간과 용도에 따라 기구들이 구별되어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차려 놓는 빵은 무엇을 뜻하는가?

금 상 위에는 「하나님 앞에 차려 놓는 빵」을 두게 됩니다.

히브리어 레헴 하파님은 말 그대로 「얼굴의 빵」 또는 「임재 앞의 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5:30에서 하나님은 그 상 위에 빵을 항상 자신의 앞에 두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레위기 24:5–9에서는 이 빵의 준비와 교체, 제사장들이 그것을 먹는 일에 관한 규정이 제시됩니다.

그러므로 이 빵은 하나님께서 배가 고프시기 때문에 마련되는 음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고, 그분과 맺은 관계를 계속 기억하게 하는 성소의 기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사는 특정한 날이나 사건에 드리는 행위일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빵을 놓는 일은 계속 이어지는 예배의 질서에 속합니다.

성전은 특별한 제사만 드리는 장소가 아니라, 정해진 방식으로 하나님을 계속 섬기는 장소였습니다.

열 개의 등잔대

49절에는 등잔대들이 등장합니다.

안쪽 방 앞에 놓을 등잔대는 오른쪽에 다섯 개, 왼쪽에 다섯 개였고, 모두 질 좋은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꽃 장식과 등잔과 집게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열왕기상 7:49 · 두루새김

광야의 성막에서는 하나의 금 등잔대가 중요한 기구였습니다(출애굽기 25:31–40). 그런데 솔로몬 성전에는 열 개의 등잔대가 놓입니다. 성전의 구조와 규모가 성막과 달라지면서, 예배 기구의 수와 놓는 위치에도 변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성막에서는 제사장들이 등불을 돌보아 하나님 앞에서 계속 타오르게 해야 했습니다(출애굽기 27:20–21). 성전의 등잔대 역시 내부 예배 공간에 빛을 제공하는 중요한 기구였습니다.

가장 작은 기구까지 기록하는 이유

50절에서는 대야와 심지 가위, 대접과 국자, 불을 담는 그릇, 문짝의 축을 끼우는 받침까지 등장합니다.

등잔을 관리하려면 심지 가위가 필요하고, 제사에 사용되는 불과 물건들을 다루기 위한 여러 기구도 필요합니다. 문짝이 열리고 닫히려면 문짝의 축을 끼우는 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작은 기구들은 웅장한 기둥이나 금으로 입힌 벽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없다면 성전의 일상적인 운영도 어려워집니다.

하나님의 집을 완성한다는 것은 벽과 지붕을 세우는 일만이 아니라, 그 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는 다시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다윗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윗 — 성전은 솔로몬 혼자 이룬 일이 아니다

열왕기상 7:51 본문 →

이렇게 솔로몬 왕이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위해 하던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께 바쳐 따로 구별해 둔 은과 금과 기구들을 가져와 여호와야훼의 성전 보물 창고에 넣었습니다.열왕기상 7:51 · 두루새김

성전을 위한 준비는 솔로몬 시대에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하 8:11에 따르면 다윗은 여러 나라에서 얻은 은과 금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쳤습니다. 역대상 22:14–16과 29:2–5에서는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많은 자재와 귀중품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더욱 자세히 기록됩니다. 다윗 자신은 성전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다음 세대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다윗이 바친 모든 금과 은이 이미 성전의 장식이나 기구에 사용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그것들을 가져와 보물 창고에 넣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즉 다윗이 하나님께 바쳐 따로 구별해 둔 물품들이 성전의 소유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후손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사무엘하 7:12–13). 그 약속은 솔로몬 시대에 실제 건축 사업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여러 사람의 서로 다른 역할과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다윗이 바친 물품들이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하나님의 약속과 사람들의 수고가 세대를 넘어 이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끝맺음 — 다윗의 금과 은이 들어온 보물 창고

열왕기상 7:1–51 본문 →

하나님의 집에는 왕이 계획한 건축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인의 지혜와 수많은 사람의 노동, 그리고 이전 세대가 하나님께 바쳐 따로 구별해 둔 것들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한 사람이 시작한 일이 다른 사람의 손에서 계속되고, 한 세대가 준비한 것이 다음 세대에 이르러 자리를 찾습니다.

성전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백성이 모여 언약궤를 옮겨 오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모든 작업이 끝나고, 성전에서 사용할 것들이 준비된 순간입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은과 금과 기구들을 성전의 보물 창고에 넣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들이 마침내 하나님의 성전 안에 놓였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