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3장 · 실로의 아이 사무엘
아무도 듣지 못한 기도가 역사를 바꾸다
사무엘상은 이스라엘의 왕이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으며,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역사의 출발점에는 왕도, 전쟁도, 정치적 위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 여자의 눈물에서 시작됩니다.
더욱 뜻밖인 것은 그 여자의 기도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한나는 입술만 움직이며 기도했고, 곁에 있던 제사장은 그 모습을 보고 술에 취했다고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조차 알아듣지 못한 기도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움직이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렇다고 사무엘상 1장을 단순히 간절히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한나가 아들을 얻는 것은 분명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야기는 출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장의 중심에는 두 가지 움직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나의 간구를 받아들이시고, 한나는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 두 움직임 사이에서 한 가정의 슬픔이 이스라엘 전체의 미래와 연결됩니다.
사랑받지만 채워지지 않는 자리
한 가정에 함께 존재하는 사랑과 고통
이야기는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다임소빔이라는 지역에서 시작됩니다. 엘가나의 조상이 소개되고, 곧이어 그의 두 아내가 등장합니다.
엘가나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한나이고, 다른 사람은 브닌나였습니다.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사무엘상 1:2 · 두루새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녀, 특히 아들의 출생은 집안과 상속을 이어 가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자녀가 없다는 사실은 개인적인 슬픔에 그치지 않고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의 위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한나에게 어떤 잘못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을 죄에 대한 벌로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한나에게는 두 배의 몫을 주었습니다. 한나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사무엘상 1:5 · 두루새김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하지만 아이를 줄 수는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한나의 슬픔을 덜어 주려 하지만, 그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본문은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황을 여호와야훼의 다스림 아래에 놓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왜 한나에게 이런 시간을 허락하셨는지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한나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고통받았다고 단정하거나,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모든 경우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벌 또는 특별한 계획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하러 가는 날이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 되다
한나를 더욱 괴롭게 만든 것은 브닌나의 행동이었습니다.
브닌나는 한나의 처지를 알고 있었고, 바로 그 약점을 이용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집안에서 살았지만, 그 관계는 경쟁과 괴롭힘으로 뒤틀려 있었습니다.
엘가나는 해마다 실로로 올라가 여호와야훼께 예배하고 제물을 바쳤습니다. 당시 실로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성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8:1은 이스라엘 백성이 실로에 모여 회막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제물을 바친 뒤 가족이 함께 몫을 나누어 먹는 식사는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나누고 서로 어울리는 자리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오히려 자신에게 없는 것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브닌나에게는 함께 음식을 나누는 아들과 딸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습니다. 한나가 여호와야훼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혔고, 한나는 울며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사무엘상 1:7 · 두루새김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가는 길이 한나에게는 가장 깊은 상처를 다시 마주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예배의 자리에 있었고, 그곳에서도 울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오래 지속되는 슬픔 속에 있을 수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남편이 이해하지 못한 슬픔
남편 엘가나가 한나에게 말했습니다. 「한나, 왜 울어요? 왜 먹지 않아요? 왜 마음이 그렇게 슬퍼요? 내가 당신에게 아들 열보다 낫지 않아요?」사무엘상 1:8 · 두루새김
이 말에는 한나를 향한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엘가나는 자신이 한나에게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질문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남편의 사랑과 자녀를 향한 간절한 바람은 서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있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없는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 열보다 낫지 않아요?」라는 말은 위로하려는 말일 수 있지만, 한나에게는 자기 슬픔을 설명할 자리가 없어지는 말처럼 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한나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음 절에서 한나가 일어납니다.
조금 더 깊이
5절의 표현은 히브리어에서도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이 「두 배의 몫」이라고 옮긴 표현에는 하나를 가리키는 말과 둘을 떠올리게 하는 형태가 함께 있어, 정확한 분량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바로 뒤에 한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릅니다. 따라서 엘가나가 한나에게 특별한 애정을 표현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나가 일어나 하나님께 말하다
반복되던 이야기에서 처음 일어난 변화
실로에서 먹고 마신 뒤 한나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야훼의 성전 입구에 있는 문기둥 곁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사무엘상 1:9 · 두루새김
그동안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고, 브닌나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한나는 스스로 행동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자신이 겪는 일을 하나님께 직접 말씀드리기 시작합니다.
본문은 한나가 일어나고 엘리가 앉아 있는 모습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이것만으로 엘리의 영적 상태를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는 반면, 엘리는 그 기도를 오해합니다. 두 인물의 대조는 그때부터 선명해집니다.
한나는 무엇을 구했는가
한나의 기도는 절박합니다.
한나는 이렇게 굳게 약속하며 기도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야훼여, 주님의 종인 제가 겪는 고통을 꼭 살피시고, 저를 기억하시고 주님의 종을 잊지 않으시며, 주님의 종에게 아들을 주신다면, 저는 그 아이를 평생 여호와야훼께 드리겠습니다. 그 아이의 머리카락은 자르지 않겠습니다.」사무엘상 1:11 · 두루새김
한나는 자기 가정 안에서조차 상황을 바꿀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르는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야훼입니다. 한나의 처지와 하나님의 호칭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습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의 권능 앞에 내어놓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누군가를 기억하신다는 표현은 단순히 잊었던 정보를 떠올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형편에 주목하시고 그를 위해 행동하시는 것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24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이어지는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하십니다. 한나의 간구도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의 관심과 행동 안으로 들어오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달라고 하면서 평생 드리겠다는 서원
한나의 기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그는 아들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들을 주시면 그 아이를 평생 여호와야훼께 드리겠다고 굳게 약속합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을 얻자마자 자신에게서 떠나보내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은 한나의 마음속 동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아이를 얻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려 했다거나, 반대로 처음부터 완전히 욕심 없는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자신에게만 속한 존재가 되기를 구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사무엘의 삶이 펼쳐질 방향을 미리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성전」은 훗날 솔로몬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히브리어에서는 「꼭 살피시고」에 해당하는 표현이 동사의 반복을 통해 강조됩니다. 한나는 자기 형편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아이의 머리카락은 자르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은 민수기 6:1–21의 나실인 서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별히 여호와야훼께 구별된 사람은 서원 기간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13:5에서도 삼손이 태어나기 전에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칼을 대지 말라는 지시가 주어집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 구별된다는 점에서 사무엘과 삼손의 이야기는 닮았습니다. 다만 사무엘상 1:11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나실인이라는 이름이 직접 나타나지 않습니다. 칠십인역에는 아이가 포도주와 독한 술도 마시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나실인 규정과의 관계가 더욱 뚜렷해집니다. 따라서 사무엘을 나실인과 비슷하게 평생 구별된 인물로 이해할 근거는 충분하지만, 히브리어 본문만으로 민수기 6장의 모든 규정이 사무엘에게 적용되었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제사장은 입술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셨다
성소에서 일어난 뜻밖의 오해
한나가 오래 기도하는 동안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어서 입술만 움직일 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사무엘상 1:13 · 두루새김
엘리는 한나를 보고 있었지만, 한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입술의 움직임을 보았지만 기도의 내용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황을 판단해 버렸습니다.
엘리가 한나에게 말했습니다.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겠느냐? 술기운을 떨쳐 버려라.」사무엘상 1:14 · 두루새김
예배하러 온 한나는 이미 브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는 자리에서 제사장에게까지 잘못된 판단을 받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그 오해 앞에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한나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제사장님. 저는 마음이 몹시 괴로운 여자입니다. 포도주도 독한 술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 앞에 제 마음을 쏟아 놓고 있었습니다.」사무엘상 1:15 · 두루새김
단순히 마음속 생각 몇 가지를 전달했다는 뜻을 넘어, 고통받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놓았다는 표현입니다.
「제사장님의 종인 저를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근심과 괴로움이 너무 커서 지금까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사무엘상 1:16 · 두루새김
엘리는 한나를 악한 여자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심각한 악행을 저지르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아직 1장을 읽는 독자는 그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2장으로 넘어가면 1장에서 한나가 받은 오해가 새롭게 보입니다.
성소의 권위를 지닌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응답보다 먼저 찾아온 변화
한나의 설명을 들은 엘리는 자신의 판단을 바꾸고 말합니다.
엘리가 대답했습니다. 「평안히 가거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네가 그분께 청한 것을 주시기를 바란다.」사무엘상 1:17 · 두루새김
엘리는 이제 한나를 술 취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간구에 응답하시기를 빕니다.
한나가 말했습니다. 「제사장님의 종인 저를 좋게 보아 주십시오.」 한나는 돌아가 음식을 먹었습니다. 얼굴에도 더는 슬픈 기색이 없었습니다.사무엘상 1:18 · 두루새김
그런데 아직 아들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아직 임신했다는 소식조차 없습니다.
한나의 모습이 달라진 것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된 뒤가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말씀드린 뒤입니다.
이 장면을 모든 기도자가 즉시 평안을 느껴야 한다는 규칙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한나의 변화는 그가 겪은 특정한 사건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의 네페시는 여기서 「내 영혼」 또는 「내 자신」을 가리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제 마음」으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엘리의 말이 확정적인 예언인지, 기도에 대한 축복의 말인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장 자체는 하나님이 한나의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말입니다. 이 장면에는 엘리가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여호와야훼는 한나를 기억하셨다
한나의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
다음 날 아침, 엘가나의 가족은 일찍 일어나 여호와야훼께 엎드려 예배하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엘가나는 아내 한나와 잠자리를 같이했고, 여호와야훼께서 한나를 기억하셨습니다.사무엘상 1:19 · 두루새김
본문은 임신을 신비롭거나 극적인 사건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합니다.
한나는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여호와야훼께서 한나를 기억하셨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기도와 응답이 같은 표현으로 연결됩니다.
창세기 30:22에서도 라헬이 아이를 낳기 전에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두 여자의 처지는 닮았지만, 그들이 낳은 아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게 전개됩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행동은 매우 조용합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의 장면도,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아이의 출생이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한나의 간구에 대한 여호와야훼의 응답임을 분명히 합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에 담긴 기억
한나는 임신했고, 때가 되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나는 「내가 여호와야훼께 이 아이를 청했어요」 하며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사무엘상 1:20 · 두루새김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한나가 겪었던 긴 기다림과 기도를 기억하게 합니다.
아이의 출생은 단순히 없던 것이 채워진 사건이 아닙니다. 그가 태어난 과정 자체가 앞으로도 기억되고 이야기될 사건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의 이름을 설명하는 이 문장에는 히브리어의 말놀이가 담겨 있습니다. 「청했어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샤알입니다. 이 동사는 이미 엘리의 축복에서 등장했고, 장의 마지막에서도 반복됩니다. 다만 「사무엘」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 말의 뿌리를 따져 보았을 때 곧 「청했다」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의 정확한 어원에는 다른 설명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사전적인 어원 풀이보다, 한나가 그 이름을 자신이 여호와야훼께 청한 사건과 연결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를 얻은 한나가 실로에 가지 않은 까닭
서원이 이루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한나가 아들을 얻은 뒤 엘가나와 온 집안은 다시 실로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나가 함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 뒤에 아이를 데려가 여호와야훼 앞에 나아가게 할게요. 아이는 그곳에서 평생 지낼 거예요.」사무엘상 1:22 · 두루새김
한나가 실로에 가지 않는 것은 서원을 잊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여호와야훼께 드리겠다고 굳게 약속했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책임을 버리지 않습니다. 젖을 떼기 전까지 필요한 돌봄을 계속합니다.
이 장면에는 기도할 때의 한나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때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아들을 구했습니다. 지금은 아들을 얻었고, 자신의 약속을 어떻게 실행할지 구체적으로 결정합니다.
한나의 신앙은 간절히 구하는 행동에서 약속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한나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엘가나
남편 엘가나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해요. 아이의 젖을 뗄 때까지 집에 있어요. 다만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요.」 한나는 집에 머물며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젖을 먹였습니다.사무엘상 1:23 · 두루새김
8절에서 그는 한나의 슬픔을 자신의 사랑으로 위로하려 했습니다. 23절에서는 한나가 결정한 일을 받아들입니다. 아이를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일은 가정의 미래와도 연결되는 중대한 결정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은 여호와야훼께서 「그의 말씀」을 이루시기를 바란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앞부분에는 여호와야훼가 아이의 출생이나 아이를 드리는 일에 관해 직접 말씀하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여호와야훼께서 「네 입에서 나온 말」을 이루시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전합니다. 이 읽기에 따르면 엘가나는 한나의 서원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것입니다. 두 읽기 사이의 차이는 있지만, 엘가나가 한나의 결정을 허락하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기본적인 흐름은 같습니다.
「저는 이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시 실로로 올라온 한나
아이가 젖을 떼자 한나는 그를 데리고 실로로 올라갑니다.
한나는 아이의 젖을 뗀 뒤, 수소 세 마리와 곡식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가 든 가죽 부대 하나를 챙겨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아이를 실로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아이는 아직 어렸습니다.사무엘상 1:24 · 두루새김
11절에서 한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을 평생 여호와야훼께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아들은 그의 곁에 있는 어린아이입니다. 한나가 데리고 올라온 아이는 말로만 생각하던 서원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가 낳고, 젖을 먹이고, 돌보며 길렀던 아이입니다.
바로 그 아이를 이제 여호와야훼께 드리려 합니다.
본문은 이 과정에서 한나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울었는지, 기뻤는지, 마음이 흔들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만난 한나와 엘리
한나가 말했습니다. 「제사장님,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제사장님의 목숨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는 전에 이곳에서 제사장님 곁에 서서 여호와야훼께 기도하던 여자입니다.」사무엘상 1:26 · 두루새김
이 말은 독자를 9–18절의 장면으로 데려갑니다. 그때 한나는 소리 없이 기도했고, 엘리는 그를 술 취한 사람으로 오해했습니다. 이제 한나는 같은 성소에 돌아왔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곁에 아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한나가 사용하는 「이곳에서」라는 말도 의미가 있습니다. 한나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저는 이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제가 청한 것을 주셨습니다.」사무엘상 1:27 · 두루새김
이 장면에서 사무엘은 한나의 기도가 실제로 응답받았다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됩니다.
청한 아이를 다시 내어 드리다
「그래서 저도 이 아이를 여호와야훼께 드립니다. 이 아이는 살아 있는 동안 평생 여호와야훼께 드린 아이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여호와야훼께 엎드려 예배했습니다.사무엘상 1:28 · 두루새김
사무엘상 2:19에 따르면 한나는 이후에도 해마다 남편과 함께 실로에 올라가 어린 사무엘을 위해 만든 작은 겉옷을 가져다줍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까지 끝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나는 아들의 미래를 자신만의 소유로 붙잡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모든 부모가 자녀를 한나와 같은 방식으로 바쳐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나의 서원은 이 이야기 안에서 특정한 형태로 이루어진 약속입니다. 이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명령으로 바꿀 근거는 없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는 인물로 성장하고(사무엘상 3:19–21),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돌아오도록 이끌며(7:3–6), 왕을 요구하는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8:6–22),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인물이 됩니다(10:1; 16:13). 본문은 처음부터 사무엘이 그런 역할을 하리라고 밝히지는 않습니다. 독자는 이후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떤 인물이 되는지 알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24절의 수소에 관해서는 전해 내려온 본문에 차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수소 세 마리를 말하지만, 칠십인역은 세 살 된 수소 한 마리로 읽습니다. 이어지는 25절에는 「그 수소 한 마리」라고 나옵니다. 어느 읽기가 최초의 형태에 더 가까운지는 이 장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아이」라는 표현은 문장의 앞에 놓여 강조됩니다. 27절에서 한나는 여호와야훼께 아이를 청했습니다. 28절에서는 같은 어근을 활용하여 아이를 여호와야훼께 내어 드린다고 말합니다. 이 말놀이는 사무엘의 이름을 설명했던 20절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28절의 원문 표현을 오늘날의 일시적인 대여처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를 일정 기간 맡겼다가 다시 데려오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맺음 — 그때 기도하던 여자와 그 곁에 선 아이
한나는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아들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평생 여호와야훼께 드렸습니다. 그 결과, 이후 이스라엘을 이끌게 될 인물이 실로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이 한나의 고통을 단순히 국가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1장은 한나의 괴로움을 충분히 보여 주고, 하나님이 그의 개인적인 간구를 기억하셨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는 다시 실로에 섭니다.
그때와 같은 제사장이 있습니다. 같은 성소가 있습니다. 한때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던 기도가 드려졌던 자리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나 곁에 어린아이가 서 있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는 이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제가 청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때 한나의 입술은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가 청했던 아들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그 아이를 여호와야훼께 내어 드립니다.
본문은 여호와야훼께 엎드려 예배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고통을 안고 여호와야훼 앞에 섰던 여자가, 마지막에는 자신이 받은 아이를 데리고 다시 여호와야훼 앞에 서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의 마지막에 서 있는 그 어린아이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