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6–27장 · 다윗의 등장

전쟁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골리앗은 사십 일 동안 이스라엘 군대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침마다 한 번, 저녁마다 한 번씩 나와 싸울 사람을 보내라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의 말을 들었고, 그를 보았으며,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전쟁터에 도착합니다. 그는 군인으로 소집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안부를 확인하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받고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소년도 골리앗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같은 말을 듣고도 전혀 다른 질문을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거대한 전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전사가 누구를 모욕하고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두려움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같은 전쟁을 무엇으로 이해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817장 본문 읽기 →

두 산 사이에 서 있는 한 사람

사무엘상 17:1–11 본문 →

전쟁은 유다의 소고와 아제카 사이, 엘라 골짜기에서 시작됩니다.

블레셋 군대는 한쪽 산에, 이스라엘 군대는 맞은편 산에 진을 쳤습니다.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군대가 양쪽 높은 지대를 차지한 채 서로 맞서는 가운데, 블레셋 진영에서 한 사람이 나옵니다.

블레셋 진영에서 적과 일대일로 싸울 전사 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는 가드 출신으로 이름은 골리앗이었습니다. 키는 6큐빗하고도 한 뼘이나 되었습니다.사무엘상 17:4 · 두루새김

골리앗은 바로 그 사이에 서서 이스라엘을 향해 외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볼 수 있는 자리에 등장하여, 전쟁 전체를 두 사람의 싸움으로 결정하자고 요구합니다.

「그가 나와 싸워 나를 쓰러뜨리면 우리가 너희의 노예가 되겠다. 하지만 내가 그를 이겨 쓰러뜨리면 너희가 우리의 노예가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한다.」사무엘상 17:9 · 두루새김

실제로 이러한 약속이 양측 사이에 공식적인 조약으로 맺어졌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뒤에 골리앗이 죽자 블레셋 군대는 이스라엘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도망칩니다. 따라서 이 말은 상대의 기를 꺾고 싸움에 끌어들이려는 골리앗의 도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골리앗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그의 몸과 무장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합니다.

청동 투구, 비늘 갑옷, 정강이에 찬 청동 보호대, 던져 쓰는 청동 창, 거대한 창, 쇠로 된 창날, 그리고 앞에서 걷는 큰 방패를 든 사람까지 하나하나 묘사됩니다. 그의 갑옷은 오천 세겔, 창날은 육백 세겔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치가 강조하는 것은 그가 무겁고 튼튼한 무장을 갖춘 전사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단순히 키만 큰 사람이 아니라, 당시의 전투 장비를 갖춘 강력한 상대로 제시됩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은 그 블레셋 사람의 말을 듣고 기가 꺾여 몹시 두려워했습니다.사무엘상 17:11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왕이 자신들 앞에 나가 전쟁을 이끌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8:20). 사울은 실제로 여러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왕은 적의 도전을 듣고 백성과 함께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울은 처음 왕으로 소개될 때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큰 사람이었습니다(사무엘상 9:2).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던 그가 이제 자신보다 더 압도적으로 묘사되는 전사 앞에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군대가 있습니다. 왕도 있습니다. 싸울 대열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골짜기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적과 일대일로 싸울 전사」로 옮긴 자리에는 흥미로운 히브리어가 사용됩니다. 이쉬 하베나임으로, 글자 그대로는 「사이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두 군대 사이로 나와 상대편 전사와 맞서 싸우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이 따르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여섯 큐빗하고도 한 뼘」이라고 되어 있으며, 두루새김은 「6큐빗하고도 한 뼘」으로 옮겼습니다. 반면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의 주요 증언과 쿰란에서 발견된 사무엘서 사본 4QSamᵃ에는 「네 큐빗하고도 한 뼘」이라는 읽기가 전해집니다. 어느 수치가 더 오래된 원형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전쟁을 하러 오지 않은 사람

사무엘상 17:12–23 본문 →

이야기는 갑자기 전쟁터를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이새의 세 아들, 엘리압과 아비나답과 삼마는 사울을 따라 전쟁에 나갔습니다. 다윗은 막내였고, 사울 곁을 오가면서 아버지의 양과 염소를 돌보았습니다.

앞 장에서 다윗은 이미 사울의 왕궁에 들어가 수금을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시 그의 가정과 형제들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앞 장에서는 다윗이 왕궁에 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했다면, 여기서는 그가 어떻게 전쟁터에 도착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러는 동안 베들레헴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이새는 치즈 열 덩이도 천 명을 거느린 지휘관에게 가져다주고, 형들이 잘 있는지 살핀 뒤 증표를 받아 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양과 염소를 아무렇게나 두고 떠나지 않고 지키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아버지가 명령한 대로 짐을 가지고 길을 나섭니다.

진영에 도착한 뒤에도 곧바로 싸움터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가져온 짐을 짐 지키는 사람에게 맡기고 형들을 찾아가 잘 지내는지 묻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행동을 특별히 훌륭한 태도라고 직접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다윗이 맡겨진 일들을 차례로 해내다가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되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형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일대일로 싸우러 나서는 전사가 블레셋 군대 사이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는 가드 출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앞서 했던 말을 되풀이했고, 다윗도 그 말을 들었습니다.사무엘상 17:23 · 두루새김

그러나 이번에는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달랐습니다.

상황을 바꾼 것은 골리앗의 말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보았으며, 누구의 모욕으로 들었는가

사무엘상 17:24–30 본문 →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을 보자 달아납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저기 올라오는 사람 봤어? 이스라엘을 모욕하려고 올라오는 거야. 저 사람을 쓰러뜨리는 사람에게는 임금님이 큰 재산을 주어 부자로 만들어 주시고, 딸도 아내로 주실 거야. 또 그 사람의 아버지 집안을 이스라엘에서 자유롭게 해 주실 거야.」사무엘상 17:25 · 두루새김

마지막 약속이 정확히 어떤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뜻인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세금을 내거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본문은 구체적인 범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큰 보상이 제시되는데도 아무도 골리앗에게 맞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보상에 관해 묻습니다.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블레셋 사람을 쓰러뜨려 이스라엘이 당하는 모욕을 없애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해 주나요?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나요?」사무엘상 17:26 · 두루새김

본문은 그가 재산이나 왕의 딸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사울의 종들」이라고 불렀습니다(17:8).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라고 부릅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사울이라는 왕에게 속한 군대로 말합니다. 다윗은 그 군대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관계 맺고 있는 백성이라는 사실을 앞에 내세웁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나타내는 표지였습니다(창세기 17:9–14). 다윗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라는 표현을 통해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언약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것을 민족적인 차이만으로 상대방의 생명이나 존엄이 낮다고 판단하는 일반적인 원칙으로 넓혀서는 안 됩니다. 이 장에서 다윗이 문제 삼는 구체적인 행동은 골리앗이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하고 공격적으로 도전하는 일입니다.

그는 이 싸움을 단지 이스라엘 군인들의 자존심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백성을 향해 계속되는 모욕은 그들과 관계 맺으신 하나님을 향한 도전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 말을 듣고 다윗에게 가장 먼저 화를 내는 사람은 골리앗이 아닙니다.

맏형 엘리압은 다윗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화를 냈습니다. 그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여기에 왜 내려왔느냐? 광야에 있는 그 몇 마리 안 되는 양과 염소는 누구에게 맡겨 두었느냐? 나는 네가 건방지고 마음이 악하다는 것을 안다. 너는 싸움 구경을 하려고 내려온 것이다.」사무엘상 17:28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사무엘이 처음 보고 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엘리압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말은 더욱 깊은 의미를 띱니다. 하지만 독자는 다윗이 왜 이곳에 왔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잘 지내는지 물으러 왔습니다.

엘리압이 다윗에게 왜 그런 감정을 품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판단이 본문에서 알려 준 다윗의 방문 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16장 7절의 말씀이 새로운 장면 속에 되살아납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여호와야훼는 마음을 본다.」 엘리압은 다윗의 마음을 안다고 자신하지만, 독자는 그 판단을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엘리압의 마음이 반드시 악하다는 증거로 뒤집어서도 안 됩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형의 성격을 평가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내면을 안다고 자신하는 판단이 얼마나 쉽게 빗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그는 형과 길게 다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돌아서서 같은 질문을 합니다. 형의 평가가 그의 관심을 완전히 돌려놓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이 한 말이 사울에게 전해집니다.

사울의 갑옷을 벗는 다윗

사무엘상 17:31–40 본문 →

다윗이 사울 앞에 섰을 때 첫마디는 뜻밖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도 저 사람 때문에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사무엘상 17:32 · 두루새김
사울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저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싸울 수 없다. 너는 아직 소년이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싸워 온 전사다.」사무엘상 17:33 · 두루새김

사울의 판단은 현실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험과 체격과 무장을 생각하면 둘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사울이 다윗을 염려한 것 자체를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험 많은 전사에게 어린 소년을 내보내는 일은 실제로 위험합니다.

다윗은 다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는 아버지의 양과 염소를 돌보던 일을 말합니다. 사자나 곰이 가축을 물어 가면 뒤쫓아 가서 그 입에서 구해 냈고, 짐승이 덤벼들면 맞서 싸워 죽였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말을 이었습니다. 「사자와 곰에게서 저를 구해 주신 여호와야훼께서 저 블레셋 사람에게서도 저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가거라. 여호와야훼께서 너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사무엘상 17:37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자기 능력의 증명으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위험에서 구해 주실 분은 같은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을 모든 위험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을 살려 주실 것이라는 보편적인 약속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다윗이 이 특별한 전쟁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모든 신자가 다윗과 동일한 결과를 보장받는다고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사울의 옷과 청동 투구와 갑옷, 칼까지 다윗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은 사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윗을 무장시키는 행동입니다. 왕으로서 어린 전사가 가능한 한 잘 보호받기를 바랐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을 옷 위에 차고,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장비를 걸친 채 걸어 보려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이것들을 걸치고는 걸을 수 없습니다. 제가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장비를 벗었습니다.사무엘상 17:39 · 두루새김

이 장면을 「인간의 무기는 버리고 믿음만 사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움직임을 막는 장비를 벗고 익숙한 도구를 선택합니다. 지팡이, 양과 염소를 돌볼 때 쓰는 주머니, 매끄러운 돌 다섯 개, 그리고 무릿매입니다.

무릿매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 돌을 넣어 돌린 뒤 던져 목표물을 공격하는 원거리 무기였습니다. 사사기 20:16에서도 베냐민 사람들 가운데 무릿매로 정확하게 돌을 던지는 전사들이 등장합니다.

골리앗은 몸을 보호하는 갑옷과 가까운 거리에서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창과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멀리서 돌을 날릴 수 있는 무기를 선택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맞는 무기를 선택하면서, 승리를 결정하는 근거를 다른 곳에 두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사자의 손, 곰의 손, 블레셋 사람의 손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사자와 곰에게서」, 「저 블레셋 사람에게서도」 구해 주신다는 말로 옮겼습니다. 요나단은 블레셋 군사들이 주둔한 곳으로 건너가면서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실 수도 있고 적은 사람으로 구원하실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사무엘상 14:6). 요나단과 다윗은 서로 다른 상황에 놓였지만, 둘 다 구원의 가능성을 인간의 군사력이 더 강한지에만 달려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두 전사가 서로에게 선언한 것

사무엘상 17:41–47 본문 →

골리앗이 다윗에게 다가옵니다.

그의 앞에는 여전히 큰 방패를 든 사람이 있습니다.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보고 업신여겼습니다. 다윗이 얼굴이 불그스레하고 잘생긴 소년이었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17:42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이 표현이 앞 장에서 다윗을 처음 묘사했던 말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잘생긴 외모가 칭찬의 대상이 아닙니다. 골리앗에게는 다윗의 젊고 보기 좋은 모습이 오히려 전사답지 못하다는 증거처럼 보입니다.

골리앗은 다윗의 겉모습을 보고 그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여호와야훼의 영이 임했다는 사실은 모릅니다. 그가 어떤 경험을 통해 이 자리에 섰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개냐? 왜 막대기들을 들고 내게 오느냐?」 그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사무엘상 17:43 · 두루새김

그는 다윗이 가져온 지팡이를 보고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위협합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말을 이었습니다. 「이리 와라. 내가 네 몸을 하늘의 새들과 들짐승의 먹이로 주겠다.」사무엘상 17:44 · 두루새김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의 몸이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시신이 온전히 거두어지지 못하는 비참한 죽음을 뜻합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죽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의 몸을 버려 두겠다고 선언합니다.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던져 쓰는 창을 들고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네게 간다. 그분은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시다.」사무엘상 17:45 · 두루새김

골리앗은 자기 무장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하려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포함한 모든 군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구원의 근거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와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나는 너를 쳐서 목을 베고, 오늘 블레셋 군사들의 시체를 하늘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에게 먹이로 주겠다. 그러면 온 땅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사무엘상 17:46 · 두루새김

골리앗은 다윗 하나를 위협하지만, 다윗은 상대편 군대 전체의 패배를 선언합니다. 앞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골리앗을 이기는 사람이 어떤 보상을 받을지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직접 선언하는 승리의 목적은 자신의 재산이나 지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이 여호와야훼께서는 칼과 창으로 구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전쟁은 여호와야훼께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사무엘상 17:47 · 두루새김

다윗은 「온 땅」에 이어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다윗의 승리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 주는 사건인 동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다시 알리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언약의 하나님과 맺은 관계, 골리앗이 그 하나님을 모욕한 일,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믿음 속에서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선언을 국가나 집단의 모든 군사행동을 하나님께서 무조건 인정하신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말은 인간이 자기 전쟁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이면 승리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전쟁을 끝까지 지배한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승리와 구원을 결정하는 최종 권한이 여호와야훼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 선언이 끝나자마자, 말로 진행되던 대결이 실제 싸움으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이 이집트 군대 앞에서 두려워했을 때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출애굽기 14:13–14). 사사기 7장에서는 기드온의 군대를 줄이시면서 이스라엘이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 점은 신약에서도 주제적으로 이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27–29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이 약하고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것들을 선택하심으로써 인간이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무엘상 17장을 직접 인용한 설명은 아니지만, 인간의 힘과 하나님의 구원 사이의 관계를 생각할 때 연결되는 신학적 주제입니다.

하나의 돌과 상대의 칼

사무엘상 17:48–54 본문 →

골리앗이 다윗을 향해 다가옵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도 그와 맞서려고 싸움터로 재빨리 달려갔습니다.사무엘상 17:48 · 두루새김

이 동작은 다윗이 자신의 확신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싸움을 다스리신다고 믿는 것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내 무릿매로 던져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혔습니다. 돌이 이마에 박혔고,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졌습니다.사무엘상 17:49 · 두루새김

골리앗의 몸과 무기를 소개할 때는 여러 절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를 쓰러뜨리는 장면은 한 절에 담겨 있습니다.

앞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당당하게 서서 외치던 사람이 이제 땅에 엎드러져 있습니다. 이 장면의 반전은 힘의 크기를 비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눈에 그렇게 결정적으로 보였던 차이가 결과를 보장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와 돌로 그 블레셋 사람을 이겼습니다. 다윗은 그를 쳐 죽였지만, 손에 칼을 들고 있지는 않았습니다.사무엘상 17:50 · 두루새김

조금 전 다윗은 여호와야훼께서 칼과 창으로 구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서술자는 다윗이 손에 칼을 들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다윗의 말이 실제 전투의 결과와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다윗이 칼을 사용합니다.

그는 골리앗에게 달려가 그 사람의 칼을 뽑아 목을 벱니다. 처음에 골리앗이 가졌던 칼은 그의 힘을 상징하는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 칼이 골리앗 자신의 패배를 완성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어 블레셋 군사들은 자기들의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군사들은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블레셋 군사들을 뒤쫓습니다.

처음에는 골리앗을 보자 달아나던 군대가, 이제는 그가 쓰러지자 적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군사들은 블레셋 진영을 약탈합니다. 다윗이 승리한 뒤 이스라엘 전체가 움직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모두 이상적인 믿음의 표현이라고 평가할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적군을 뒤쫓고 전쟁에서 빼앗은 물건을 챙겼다고 기록합니다.

그 뒤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그의 무기를 자기 천막에 둡니다. 골리앗의 칼은 이후 사무엘상 21:9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때 다윗은 도망자가 되어 그 칼을 얻습니다.

조금 더 깊이

50절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요약하고, 51절은 골리앗의 칼을 사용한 마지막 행동을 자세히 전합니다. 두 구절만으로 골리앗이 돌에 맞은 즉시 죽었는지, 칼을 사용한 마지막 공격에서 죽었는지 의학적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이 훗날 왕이 된 뒤 차지한 성읍으로 기록됩니다(사무엘하 5:6–9). 그런데 이 장에서는 아직 사울이 왕인 시점에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다윗이 훗날 그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간 사실을 미리 요약한 서술로 읽을 수 있습니다. 또는 당시 예루살렘 일대의 상황과 이동 가능성을 고려하여 사건 당시의 행동으로 이해하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본문 자체는 그 경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그 머리를 정확히 언제, 어떤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가져갔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뒤이어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손에 들고 사울 앞에 선다는 점에서, 54절과 57절은 모든 사건을 엄격한 시간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라기보다 전쟁의 결과를 요약한 뒤 다른 장면으로 시선을 돌리는 서술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승리한 소년에게 왕이 물은 것

사무엘상 17:55–58 본문 →

골리앗이 쓰러지고 이스라엘이 승리했으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도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마지막으로 사울과 다윗의 대화를 기록합니다.

앞서 사울은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과 싸우러 나가는 것을 보고 군대 지휘관 아브넬에게 물었습니다. 「아브넬아, 저 소년은 누구의 아들이냐?」 아브넬이 대답했습니다. 「임금님, 임금님의 목숨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는 모릅니다.」사무엘상 17:55 · 두루새김

사울은 다시 확인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이 사울 앞에 섰을 때, 왕은 직접 묻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물었습니다. 「소년아,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다윗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임금님의 종인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입니다.」사무엘상 17:58 · 두루새김

바로 앞 장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기름부음을 받았던 다윗은, 이 장에서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던 전사를 쓰러뜨린 뒤에도 아직 사울 앞에 선 종입니다. 그는 이미 새로운 왕으로 선택되었지만, 아직 왕의 자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그의 신분을 둘러싼 긴장을 해결하지 않은 채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사울은 앞 장에서 이미 다윗을 불러 수금을 타게 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에게 직접 사람을 보내기도 했습니다(16:19, 22). 첫 번째는 사울이 다윗의 신분을 공식적으로 다시 확인하려 했다는 읽기입니다. 앞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사람에게 주어질 보상 가운데 왕의 딸을 아내로 주고 그 아버지 집안을 자유롭게 해 주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17:25). 그러므로 사울이 다윗의 아버지를 묻는 것은 단순히 다윗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보상을 받을 집안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사울이 이러한 이유로 질문했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사무엘상 16장과 17장에 서로 다르게 전해 내려온 이야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보는 읽기입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지금 읽는 것처럼 다윗이 형들에게 심부름하러 오는 이야기와, 마지막에 사울이 그의 아버지를 묻는 이야기를 모두 포함합니다. 반면 칠십인역의 비교적 짧은 본문 전승, 특히 바티칸 사본에서는 17:12–31과 17:55–58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긴 본문과 짧은 본문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형성되었는지, 각각의 이야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형태가 되었는지는 논의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사본의 차이만으로 그 모든 과정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의 이야기 안에서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입니다. 다윗 왕권이 이후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연결되고,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된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마태복음 1:1; 누가복음 1:32–33). 그러나 그 연결은 다윗의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모든 무기와 행동을 예수님의 사역에 대응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이 장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왕권과 구원,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대표자의 역할을 이해해야 합니다.

골리앗이 쓰러진 뒤에도 남아 있는 질문

사무엘상 17:1–58 본문 →

사무엘상 17장은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기술보다, 그 전쟁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무기를 사용하지만, 하나님을 자신의 무기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싸움을 도와주시기만을 기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 싸움 자체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고백합니다.

본문의 골리앗은 단순히 다윗 개인의 꿈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전사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성공을 위한 개인적인 싸움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속한 백성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기 위해 행동합니다.

다윗은 그 질문에 말로 대답한 뒤 실제로 골짜기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이제 처음에 두 산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던 거대한 전사는 더 이상 서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두려워하던 목소리는 사라졌고, 사람들은 승리한 소년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소년에게 왕관을 씌우며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의 손에는 자신이 쓰러뜨린 골리앗의 머리가 들려 있습니다. 그는 그 머리를 들고 사울 앞에 서서 대답합니다.

전쟁은 여호와야훼께 달려 있었고, 그 전쟁을 통해 지금까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다윗이 이스라엘 앞에 드러났습니다.

그의 손에는 골리앗의 머리가 있지만, 그의 입에서는 승리의 자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